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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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pattyhodapp.com/2005_London_Bombin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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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7 July 2005 London bombings

1. 개요
2. 7월 7일
3. 7월 21일
3.1. 여파
4. 인명 피해
5. 후일담


1. 개요[편집]


2005년 7월 7일7월 21일 양일간 영국 런던 시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폭탄 테러 사건. 7/7이라고도 부른다.


2. 7월 7일[편집]


이 날은 런던제30회 올림픽의 개최지로 선정된 바로 다음날이었다. 사건 발생 시간은 러시 아워가 막 끝나 가는 오전 8시 50분경. 모두 네 곳에서 폭탄이 터졌다.

가장 먼저 폭발한 열차는 리버풀가 역에서 알드게이트 역 방면으로 가던 서클선 열차였다[1]. 이 열차는 킹스 크로스 세인트 판크라스 역을 출발한 지 약 8분 후에 폭발했다. 두번째로 에지웨어 로드 역을 막 발차한 서클 선 열차가 폭발했다. 역시 킹스 크로스 세인트 판크라스를 출발한 지 약 8분이 지난 상태였다. 세번째 피해 열차는 피카딜리선 킹스 크로스 세인트 판크라스를 발차한 지 1분만에 터널 안에서 폭발했다.

사건은 폭발한 열차에 탑승하던 승객들이 터널을 걸어 반대쪽 끝으로 빠져나오면서 알려졌다. 운영주체 측에서는 처음에는 전기 합선으로 인한 폭발로 추정했으나 곧 폭탄 테러임을 감지하고 모든 런던 지하철의 운행을 중단시켰다.

파일:external/www.ghostofaflea.com/london_tube_map416.gif

런던 지하철 노선도를 기준으로 본 당시 사건발생 지점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는 시내버스마저 폭발했다. 유스턴에 도착한 알렉산더 데니스 사제의 데니스 트라이던트 2 30번 버스(London Buses roote 30, Dennis Trident 2) 17758호(fleet number 17758)는 지하철 운행 중단으로 패닉에 빠진 승객들을 싣고 출발했는데 유스턴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타비스톡 스퀘어를 지나가다가 폭발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정말로 버스 뚜껑(지붕)이 열렸다고. 다행히 폭발 지점이 영국의사협회 본부(British Medical Association's (BMA) headquarters) 바로 앞이어서 의사간호사들이 긴급히 사고 현장으로 출동해서 2차 인명피해를 줄었다.

범인은 총 네 명으로[2] 이 중 저메인 린지는 자메이카 출생 영국 이민자이며 나머지는 모두 파키스탄 이민자의 자녀들로 영국에서 태어났다. 모두 네 명이 각자 폭탄을 싣고 열차와 버스에 탑승해서 사망하였으며 이들 중 두 명은 비디오 메시지를 남겨 나중에 알 자지라를 통해 공개되었다. 이전에 전혀 정보가 없던 신진세력이라 정보기관에서도 테러 발생 가능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미국, 영국 등 G8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부시 행정부의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 기조가 계속되고 있었고 영국 역시 미국의 우방국으로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병력을 파병 중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겨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1년 전인 2004년 3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발생한 열차 테러 사건과 같은 맥락.[3]

파일:external/msnbcmedia2.msn.com/050717_ukbombings_hlg7a.grid-6x2.jpg

사건 직후 공개된 범인들의 CCTV 촬영 모습. 외견상으로는 이들의 모습에서 테러 위협 용의자로서의 징후(예: 폭발물 소지 여부)를 찾아내기 매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3. 7월 21일[편집]


이 날은 테러가 실패로 돌아갔다. 영국 현지시간(서머 타임 적용) 오후 12시 26분에 해머스미스 앤 시티선 쉐퍼즈 부시 마켓 역에서, 오후 12시 30분에 노던선 오벌역, 오후 12시 45분에 빅토리아선 워렌가 역 부근에서 열차가 폭발했다. 하지만 기폭장치만 불타고 폭탄은 터지지 않아 화재만 발생했다. 목격자들은 수상한 냄새(strange smell)를 맡았다고 한다.

오후 1시 30분 26번 2층 버스에서 작은 폭발이 벌어졌다. 이 버스도 데니스 트라이던트 2 모델이었다.

3.1. 여파[편집]


7월 22일 영국 경찰은 불심검문에 달아나던 사내를 사살했는데 브라질인 불법체류자인 진 찰스 데 메네제스라는 것이 드러났다. 브라질 정부나 유족이 항의했지만 영국에서 그야말로 756명이 죽거나 다친 초대형 테러가 일어난 데다 전날에도 폭탄 테러가 미수에 그쳐 총비상령을 내린 와중에 검문에 불응하고 달아난 불체자가 문제라며 런던 경찰청장이 방송에 나와 사살한 경찰들이 잘못은 없다고 옹호했다. 결국 경찰관 셋은 임시전출했을 뿐이고 처벌은 없었다. 메네제스에 대하여 무고하다는 이유로 보상금이 나오긴 했다.

파일:external/pds21.egloos.com/e0006522_58b79447d250f.jpg

메가쑈킹은 이 사건을 메네제스가 흑인이라고 하여 벌어진 일이라고 탐구생활에서 편견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웹툰 1부에서 깠는데 보다시피 메네제스는 흑인이 전혀 아니었다. 브라질인에 불심검문 불응으로 사살되었다고 흑인처럼 그린 메가쑈킹의 편견이었던 것이다.


4. 인명 피해[편집]


  • 사망자 56명 (범인들 4명 포함)
  • 부상자 700명


5. 후일담[편집]


사건 발생 7년 후인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생전 사진을 콜라주하여 보여주며 추모 스테이지를 진행하였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9.11 테러 희생자를 추모했는데 일부는 의도에 공감했지만 올림픽과 관련 없는 사건을 세계적인 축제에서 추모의 장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정치적으로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의 희생자 추모는 2005년 런던 올림픽 개최지 선정일 바로 직후인 다음날에 일어난 참사이기에 취지에 공감하는 의견이 다수였으며 실제로 해당 참사를 떠올리면 런던 올림픽이 연상되어 이에 동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2016년 런던 시장 선거에서 공교롭게도 파키스탄계 무슬림 이민자 후손인 사디크 아만 칸(Sadiq Aman Khan, 1970년생)이 노동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며 경쟁 상대인 보수당에서는 유대인인 잭 골드스미스(Zac Goldsmith)를 후보로 내세웠다. 골드스미스는 칸이 무슬림이라는 것에 대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심지어 <메일 온 선데이(The Mail on Sunday)>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 “(선거일인) 목요일, 테러리스트를 친구로 여기는 노동당에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를 넘겨줄 겁니까?”였으며 테러 당시 폭발로 부서진 버스 사진을 싣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2016년 5월 5일 칸은 역사상 첫 무슬림 런던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칸은 무슬림이지만 동성결혼을 찬성하고 가족들에게 이슬람을 강요하지 않았다. 또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명예살인을 벌이지 마라고 했으며 '무슬림이기에 앞서 나는 영국인이다'라고 오래전부터 주장하던 사람으로서 이슬람 단체와 허구헌날 갈등을 빚으며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담을 쌓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보수당에도 이미 무슬림 의원들이 여럿 소속되어 있다.

런던 폭탄 테러가 일어난 지 12년 뒤 맨체스터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인해 23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참고.

그리고 같은 해 9월 15일 런던 디스트릭선의 Parson Green역에서 또다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망자는 없었다.

2013년 발생한 케냐 쇼핑몰 테러가 이 폭탄 테러와 연관이 있다. 이 사건의 주동자 저메인 린제이의 아내 사만다 루스웨이트가 케냐 테러의 주동자로 꼽혔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만다는 영국 백인 여성이다. IRA를 진압하던 북아일랜드 경찰 특공대출신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사만다는 테러사건에 오랫동안 투입되면서 PTSD를 겪던 부모에게 어릴적 버림받아 이웃집 무슬림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며 이슬람에 심취했고 남자친구이자 훗날 남편이 되는 저메인 린제이를 만나 아이를 낳았다. 테러가 일어났을 당시 인터뷰에선 아무 것도 모른 척했지만 사실상 이 테러의 주동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정보에 의하면 이 여자는 영국에서 흘러흘러 소말리아의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테러집단 알샤바브까지 흘러들어갔고, 알샤바브에서 상당한 위치까지 올라갔다. 직책은 "대모". 어린 아이들을 정신교육시켜 테러리스트로 키워낸 것으로 보인다. 케냐에서 잡혔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알 샤바브가 건재하기에 여전히 행방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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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에 휘말린 해당 전동차는 "런던 지하철 C형 전동차" 통칭: C 스톡(C Stock). 그 중 발생한 쪽이 '6번째 칸'이다![2] 모하메드 시디크 칸(Mohammad Sidique Khan محمد صدیق خان), 셰자드 탄위어(Shehzad Tanweer), 저메인 린지(Germaine Maurice Lindsay), 하시브 미르 후세인(Hasib Mir Hussain میر حسین حسیب)[3] 2004년 당시 스페인도 이라크 전쟁에 병력를 파병했는데 결국 사건 직후의 총선에서 좌파 정당이 승리하면서 스페인은 이라크에서 철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