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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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투표 아이콘(흰 테두리).svg 대한민국의 주요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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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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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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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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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동시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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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6차
1987년 10월 27일
시행 불가능***
[ 역대 투표 펼치기 · 접기 ]
1차 · 2차 · 3차 · 4차 · 5차 · 6차

* 제2대 부통령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병행하지 않고 이시영 부통령의 사임에 의해 별도로 시행한 보궐선거이므로 편의상 보궐선거로 분류함.
** 국민투표는 선거에 포함되지 않으나, 편의상 기술함.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국회에서 추가적인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함.





대한민국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발표 영상


2006년 5월 31일
4회 지선

2010년 6월 2일
5회 지선

투표율
51.6% ▲ 2.8%p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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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당선인 수
비율
[[한나라당|

한나라당
]]


12석
75.00%
[[민주당(2005년)|

민주당
]]
2석
12.50%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
1석
6.25%
[[무소속|{{{#!wiki style="margin: 0 -10px; padding: 2px 3px; display: inline; background: #808080; border-radius: 3px; font-size: .9em"
무소속]]
1석
6.25%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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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당선인 수
비율
[[한나라당|

한나라당
]]


155석
67.39%
[[민주당(2005년)|

민주당
]]
20석
8.69%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
19석
8.26%
[[국민중심당|

국민중심당
]]
7석
3.04%
[[무소속|{{{#!wiki style="margin: 0 -10px; padding: 2px 3px; display: inline; background: #808080; border-radius: 3px; font-size: .9em"
무소속]]
29석
12.60%

광역의회의원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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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당선인 수
비율
[[한나라당|

한나라당
]]


557석
75.47%
[[민주당(2005년)|

민주당
]]
80석
10.84%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
52석
7.05%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
15석
2.03%
[[국민중심당|

국민중심당
]]
15석
2.03%
[[무소속|{{{#!wiki style="margin: 0 -10px; padding: 2px 3px; display: inline; background: #808080; border-radius: 3px; font-size: .9em"
무소속]]
14석
1.90%

기초의회의원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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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당선인 수
비율
[[한나라당|

한나라당
]]


1621석
56.12%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
630석
21.81%
[[민주당(2005년)|

민주당
]]
276석
9.55%
[[국민중심당|

국민중심당
]]
67석
2.31%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
66석
2.28%
[[무소속|{{{#!wiki style="margin: 0 -10px; padding: 2px 3px; display: inline; background: #808080; border-radius: 3px; font-size: .9em"
무소속]]
228석
7.89%


파일:민선 4기 광역자치단체장 060531.png
파일:4회기초.png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결과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국민중심당 무소속



1. 개요[편집]


2006년 5월 31일 시행된 전국동시지방선거. 37,064,282명 유권자 중 19,116,622명이 투표하여 투표율은 51.6%로 최종 집계되었다.

여러모로 인상 깊은 선거인데, 한 정당이 이렇게 싹쓸이한 전례가 없었고, 민주당계 정당 3연패[1]의 시작이 된 선거[2]이며, 여당이 이 정도로 참패를 당한 적 역시 없었기 때문이다.[3] 민주당계 진영으로서는 2002년 6월 13일에 치러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보다 더 참패했기에 여러모로 뼈아픈 선거였다.

2. 상세[편집]


"한나라당에서 가 후보로 나와도 당선된다."

선거 당시의 유행어[4]

[5]

여러모로 이 선거를 상징하는 말인데 후술하겠지만 실종돼서 사망한 상태였던 후보자가 선거유세도 없이 가족들의 대리 등록만으로 당선된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만큼 당시에 참여정부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토 정서가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인 셈이다.[6][7]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99석 중 152석을 기록하는 압승을 거뒀던 여당 열린우리당은 2004년 국회의원 선거 압승 이후에 계파 싸움으로 사분 오열하였고 당의 지도부 체제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슈 선점을 전혀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다.[8] 덕분에 2004년 재보궐선거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했고, 2005년 여름에 터진 대연정 파동의 후폭풍 때문에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지지 기반이 붕괴에 가까운 타격을 받는다. 이런 여파가 여당의 무덤이라 불리는 지방선거에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게 된다.

이에 여당은 정권의 각료를 맡던 인사들을 광역자치단체장 후보에 내보내는 극약처방으로 나섰다. 강금실법무부장관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진대제정보통신부장관경기도지사 후보로, 오거돈해양수산부장관부산광역시장 후보로[9], 김두관행정자치부장관경상남도지사 후보로, 오영교행정자치부장관충청남도지사 후보로 내보내는 등이었다. 그러나 공식 선거 기간에 들어가면서 그나마 팽팽하던 여론조사의 대결구도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후보들의 지지율이 30% 밑으로 내려갈 정도로 거품이 꺼졌다.[10] 결국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선거전 내내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측에서는 그러면서도 내심 반전을 기대했으나 반전은 없었다. 결국 이들 모두 아예 개표 1%가 되기 전부터 떡실신 당하고 말았다. 선거전 내내 무기력하게 끌려다녔기 때문에 이 행태가 고스란히 선거 결과로 나와버린 것. 물론 다른 후보들 역시 20%나 넘었나? 할 정도로 엄청나게 저조한 결과를 얻었다. 선거전 초반 우위를 보이던 대전광역시도 막판 박근혜 커터칼 피습 사건으로 한나라당에 빼앗겼다.[11]

수도권에서의 한나라당 후보 득표율이 영남권 한나라당 후보 득표율과 별 차이가 없었다. 여당 열린우리당은 울산, 충남, 제주에서는 2위도 아니고 3위를 기록했다.[12] 거꾸로 민주당과의 분당을 통해 호남당 색을 빼면서 보수의 심장인 TK지역 득표율은 당시까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대구 이재용 21.08%, 경북 박명재 23.20%)경남지사에서도 김두관 후보는 4년 사이 16.88%에서 25.40%로 상승, 다음 지선에서의 당선의 발판을 닦았다.[13] 거기다 텃밭이라 생각했던 호남권 역시 전라북도만 간신히 건졌고[14] 광주광역시전라남도민주당에 압도적으로 탈탈 털렸다.

한편,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입장에선 그야말로 역대급 승리를 거둔 선거로, 한나라당은 이 선거를 발판으로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권을 빼앗아 오게 된다. 한편,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 선거로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 빠져들었고, 17대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30%도 얻지 못하는 대패를 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또한, 이 지방선거 때의 한나라당의 대승은 그대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로 이어져 범보수 진영인 한나라당-자유선진당-친박연대가 압승을 거두게 된다.

파일:/image/033/2006/06/02/1149213448.610531_cover1-1.jpg

파일:external/ph.jejusori.net/18449_18816_5216.jpg

선거전에 돌입할 당시 40%를 상회하던 한나라당의 지지율 대비 열린우리당은 20%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고, 다급한 마음에 급기야는 아마도 국내 선거 역사상 최초로 상대 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는 비참한 퍼포먼스를 하기에 이르렀으나 참패를 막지 못했다.# 한편, 그러는 와중에도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과 당직자들은 이번에 패배해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승리할 수 있다는 근거가 희박한 정신승리를 시전하기도 했으나 알다시피 대선 역시 패배하고 만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주당계 정당의 암흑기(2006~2008)의 본격적인 시작.[15][16] 이는 이듬해의 제17대 대통령 선거와 곧이어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이어진다.

특별한 점으로는 이 선거를 통해 제주도제주특별자치도로 재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이 발의한 주민소환제가 통과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방의원인 기초의원에 대해 정당공천제도와 유급제(봉급 지급제),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가 시행되었다.# 2005년의 우리당-한나라당의 빅딜에 따른 것.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논란이 된 기초의회 선거제도에 대한 여러 제도가 이때부터 시행된 것이다. 다만 광역의회 정당비례는 2002년부터 적용되었다. 또한 2005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인해 최초로 국내 장기 거주 외국인이 지방선거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지방선거이기도 했다.

투표율은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투표율 48.9%보다 조금 높아 역대 최저를 면한 수준에 그쳤다..[17] 허나 투개표 전부터 이미 판세를 예상해서인지 당일 편성표에서부터 MBC, SBS 개표방송은 밤 10시 종료로 나와 있었다. 10시 이후에 두 방송사는 뉴스 시간을 빼면 죄다 정규편성을 진행했다.

이 선거에서는 한 가지 나름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데, 주 5일 근무 제도의 시행으로 인해서 전국단위 선거가 치러지는 날이 목요일에서 수요일로 변경되었고 그것이 적용된 첫번째 선거였다는 것이다.

3. 투표율[편집]


연령대별 투표율은 선관위 공식 통계에 근거한다.
(단위는 %)
  • 19세 37.9
  • 20대 전반 38.3
  • 20대 후반 29.6
  • 30대 전반 37.0
  • 30대 후반 45.6
  • 40대 55.4
  • 50대 68.2
  • 60세 이상 70.9

4. 출구조사[편집]


광역단체장 MBC-코리아리서치 출구조사 결과 (총 16석)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경합
11
2
1
2
[ 펼치기 · 접기 ]
지역
예측 1위
예측 2위
서울
오세훈
62.9%
강금실
26.6%
부산
허남식
68.8%
오거돈
21.3%
대구
김범일
72.8%
이재용
18.8%
인천
안상수
63.7%
최기선
22.0%
광주
박광태
55.2%
조영택
33.6%
대전
{{{#ffffff '박성효'}}}
44.5%
{{{#000000 '염홍철'}}}
42.5%
울산
박맹우
66.0%
노옥희
24.3%
경기
김문수
60.0%
진대제
30.6%
강원
김진선
72.9%
이창복
19.6%
충북
정우택
63.8%
한범덕
26.6%
충남
이완구
46.7%
이명수
27.0%
전북
김완주
58.9%
정균환
28.6%
전남
박준영
69.8%
서범석
18.2%
경북
김관용
81.0%
박명재
19.0%
경남
김태호
64.1%
김두관
24.7%
제주
{{{#ffffff '김태환'}}}
44.0%
{{{#ffffff '현명관'}}}
41.5%
,예측 1·2위 후보명이 기울임체로 표시된 것은 출구조사 결과가 경합이다.,


광역단체장 KBS-SBS-미디어리서치-TNS 출구조사 결과 (총 16석)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경합
11
2
1
2
[ 펼치기 · 접기 ]
지역
예측 1위
예측 2위
서울
오세훈
63.5%
강금실
25.9%
부산
허남식
64.5%
오거돈
24.3%
대구
김범일
63.8%
이재용
23.8%
인천
안상수
66.5%
최기선
21.6%
광주
박광태
55.6%
조영택
31.3%
대전
{{{#ffffff '박성효'}}}
44.4%
{{{#000000 '염홍철'}}}
42.2%
울산
박맹우
68.5%
노옥희
23.0%
경기
김문수
61.8%
진대제
30.3%
강원
김진선
72.1%
이창복
25.9%
충북
정우택
60.9%
한범덕
29.3%
충남
이완구
49.2%
이명수
23.4%
전북
김완주
51.2%
정균환
31.3%
전남
박준영
72.8%
서범석
17.0%
경북
김관용
76.8%
박명재
23.2%
경남
김태호
64.6%
김두관
23.5%
제주
{{{#ffffff '현명관'}}}
42.3%
{{{#ffffff '김태환'}}}
42.1%
,예측 1·2위 후보명이 기울임체로 표시된 것은 출구조사 결과가 경합이다.,


4.1. 세대별/성별 상세[편집]


출처 : #
KBS/SBS 기준 (단위는 %)

서울시장 연령별/성별
-
열린우리당
강금실

한나라당
오세훈

전체
25.93%
63.28%
연령별 (단위: %)
20대
35.47%
54.51%
30대
41.99%
46.51%
40대
26.72%
62.34%
50대
17.28%
71.14%
60대 이상
15.18%
75.06%
성별 (단위: %)
남성
24.32%
62.90%
여성
27.45%
63.63%

광주시장 연령별/성별
-
열린우리당
조영택

민주당
박광태

전체
31.69%
54.67%
연령별 (단위: %)
20대
36.95%
47.37%
30대
35.42%
41.89%
40대
31.77%
55.40%
50대
24.93%
64.88%
60대 이상
29.90%
63.63%
성별 (단위: %)
남성
30.52%
54.22%
여성
32.87%
55.10%

대전시장 연령별/성별
-
열린우리당
염홍철

한나라당
박성효

전체
42.38%
44.10%
연령별 (단위: %)
20대
48.46%
35.39%
30대
51.81%
30.27%
40대
41.70%
46.28%
50대
36.06%
52.27%
60대 이상
37.73%
50.40%
성별 (단위: %)
남성
41.19%
45.56%
여성
43.61%
42.60%

경기지사 연령별/성별
-
열린우리당
진대제

한나라당
김문수

전체
30.96%
60.77%
연령별 (단위: %)
20대
39.76%
50.37%
30대
45.23%
43.39%
40대
29.86%
62.26%
50대
21.01%
72.60%
60대 이상
18.85%
75.35%
성별 (단위: %)
남성
31.17%
60.60%
여성
30.78%
60.88%

제주지사 연령별/성별
-
열린우리당
진철훈

한나라당
현명관

무소속
김태환

전체[18]
14.90%
42.61%
42.49%
연령별 (단위: %)
20대
17.32%
42.30%
40.38%
30대
16.99%
37.84%
45.17%
40대
12.96%
43.31%
43.73%
50대
12.68%
47.02%
40.30%
60대 이상
15.37%
43.02%
41.61%
성별 (단위: %)
남성
14.09%
43.27%
42.64%
여성
15.70%
41.95%
42.35%

5. 선거 결과[편집]


광역자치단체장 개표 결과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민주당(2005년)|
파일: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타입.svg
]]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무소속|
무소속
]]

12
2
1
1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대전
울산
경기
강원
충북
충남
경북
경남
광주
전남
전북
제주
오세훈
허남식
김범일
안상수
박성효
박맹우
김문수
김진선
정우택
이완구
김관용
김태호
박광태
박준영
김완주
김태환

무소속 당선인들의 복당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민주당(2005년)|
파일: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타입.svg
]]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12
2
2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대전
울산
경기
강원
충북
충남
경북
경남
광주
전남
전북
제주
오세훈
허남식
김범일
안상수
박성효
박맹우
김문수
김진선
정우택
이완구
김관용
김태호
박광태
박준영
김완주
김태환

파일:1121343453535.png

파일:external/www.donga.com/200606010167b.jpg

5.1. 광역자치단체장[편집]



5.1.1. 서울특별시장[편집]


{+1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강금실(康錦實)
1,077,890
2위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7.31%
낙선
2
오세훈(吳世勳)
2,409,760
1위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61.05%
당선
3
박주선(朴柱宣)
304,565
3위

[[민주당(2005년)|
파일: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타입.svg
]]

7.71%
낙선
4
김종철(金鍾哲)
117,421
4위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2.97%
낙선
5
임웅균(任雄均)
14,111
5위

[[국민중심당|
파일:국민중심당 흰색 로고타입.svg
]]

0.35%
낙선
6
이귀선(李貴仙)
4,790
7위

[[시민당(동음이의어)|
]]

0.12%
낙선
7
이태희(李泰熙)
4,481
8위


0.11%
낙선
8
백승원(白承元)
13,808
6위

[[무소속|
무소속
]]

0.34%
낙선

선거인 수
7,983,648
투표율
49.82%
투표 수
3,977,842
무효표 수
31,016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정당


투표 수
(투표율)

후보
강금실
오세훈
전체
1,077,890
(27.31%)

2,409,760
(61.05%)

3,977,842
(49.82%)
◁ 33.74%p
종로구
19,369
(27.48%)
41,992
(59.59%)

71,240
(52.9%)
◁ 32.11%p
중구
15,382
(28.03%)
32,708
(59.62%)

55,369
(51.7%)
◁ 31.59%p
용산구
26,087
(27.45%)
58,427
(61.48%)

95,809
(51.1%)
◁ 34.03%p
성동구
35,842
(27.42%)
77,631
(59.40%)

131,927
(49.4%)
◁ 31.98%p
광진구
39,716
(28.36%)
83,209
(59.42%)

141,079
(48.1%)
◁ 31.06%p

동대문구

40,952
(26.92%)
92,583
(60.87%)

153,571
(50.3%)
◁ 33.95%p
중랑구
41,950
(27.17%)
94,016
(60.90%)

155,626
(46.8%)
◁ 33.73%p
성북구
52,218
(28.66%)
107,844
(59.21%)

183,552
(49.7%)
◁ 30.55%p
강북구
37,446
(28.20%)
75,788
(57.07%)

133,339
(47.8%)
◁ 28.87%p
도봉구
41,460
(28.27%)
88,101
(60.08%)

147,638
(50.6%)
◁ 31.81%p
노원구
70,050
(29.40%)
140,438
(58.95%)

239,926
(51.5%)
◁ 29.55%p
은평구
50,411
(29.30%)
100,572
(58.45%)

173,479
(47.2%)
◁ 29.15%p

서대문구

40,422
(29.55%)
80,851
(59.11%)

137,876
(49.7%)
◁ 29.56%p
마포구
46,057
(30.07%)
88,818
(57.98%)

154,442
(49.4%)
◁ 27.91%p
양천구
52,456
(27.34%)
117,983
(61.49%)

193,234
(51.7%)
◁ 34.15%p
강서구
59,119
(28.18%)
126,548
(60.32%)

211,567
(49.2%)
◁ 32.14%p
구로구
47,384
(29.09%)
96,508
(59.25%)

164,398
(50.1%)
◁ 30.16%p
금천구
28,326
(29.24%)
54,833
(56.62%)

97,796
(48.9%)
◁ 27.38%p

영등포구

45,339
(27.91%)
98,766
(60.81%)

163,818
(50.4%)
◁ 32.90%p
동작구
48,416
(29.33%)
95,686
(57.97%)

166,416
(50.7%)
◁ 28.64%p
관악구
66,667
(31.85%)

110,710
(52.90%)

210,854
(48.8%)
◁ 21.05%p
서초구
33,010
(20.18%)
117,293
(71.70%)

164,426
(51.9%)
◁ 51.52%p
강남구
39,314
(18.22%)
160,646
(74.45%)

216,768
(50.0%)
◁ 56.23%p
송파구
57,435
(24.35%)
155,062
(65.76%)

237,313
(50.8%)
◁ 41.41%p
강동구
43,062
(24.68%)
112,747
(64.64%)

175,779
(49.3%)
◁ 39.96%p


당시 열린우리당은 참여정부의 낮은 지지율 + 잇따른 재보궐선거 패배로 조직력이 아작난 상황이였고,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오세훈 후보가 25개구 522개 동 전역에서 강금실 후보를 눌렀다. 이로써 3당 합당 이후 치른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에서 60%p 넘게 득표한 유일한 후보가 되었다.

5.1.2. 부산광역시장[편집]


{+1 [[파일:부산광역시 휘장(1995-2023)_White.svg}}} 부산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오거돈(吳巨敦)
329,470
2위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4.12%
낙선
2
허남식(許南植)
895,214
1위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65.54%
당선
4
김석준(金錫俊)
141,061
3위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10.32%
낙선

선거인 수
2,845,104
투표율
48.45%
투표 수
1,378,618
무효표 수
12,873

5.1.3. 대구광역시장[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이재용(李在庸)
191,131
2위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1.08%
낙선
2
김범일(金範鎰)
636,057
1위

70.15%
당선
4
이연재(李演宰)
35,497
3위

3.91%
낙선
5
박승국(朴承國)
8,764
5위

0.96%
낙선
6
백승홍(白承弘)
35,232
4위

3.88%
낙선

선거인 수
1,885,043
투표율
48.54%
투표 수
915,060
무효표 수
8,379

5.1.4. 인천광역시장[편집]


{+1 [[파일:인천광역시 휘장_White.svg}}} 인천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최기선(崔箕善)
200,650
2위

23.58%
낙선
2
안상수(安相洙)
526,932
1위

61.93%
당선
3
신경철(申景澈)
44,339
4위

5.21%
낙선
4
김성진(金聖珍)
78,898
3위

9.27%
낙선

선거인 수
1,940,403
투표율
44.29%
투표 수
859,506
무효표 수
8,687

현역이었던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정 평가가 좋았지만 인천광역시의 재정을 파탄내어 민심이 안 좋았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낙선했다.

5.1.5. 광주광역시장[편집]


{+1 [[파일:광주광역시 휘장_White.svg}}} 광주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조영택(趙永澤)
157,756
2위

33.94%
낙선
2
한영(韓映)
18,461
4위

3.97%
낙선
3
박광태(朴光泰)
239,884
1위

51.61%
당선
4
오병윤(吳秉潤)
48,617
3위

10.46%
낙선

선거인 수
1,014,620
투표율
46.25%
투표 수
469,316
무효표 수
4,598

[광주광역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주광역시장 구별 개표 결과
정당


투표 수
(투표율)

후보
조영택
박광태
[[광주광역시|

전체
]]
157,756
(33.94%)

239,884
(51.61%)

469,316
(46.25%)

표차 +82,128
◁ 17.67%p
[[동구(광주광역시)|

동구
]]
16,085
(37.64%)

21,204
(49.62%)

43,236[1]
(47.63%)
표차 +5,119
◁ 11.98%p
[[서구(광주광역시)|

서구
]]
34,849
(34.26%)
51,556
(50.69%)

102,566
(46.40%)
표차 +16,707
◁ 16.43%p
[[남구(광주광역시)|

남구
]]
26,536
(34.24%)
42,078
(54.30%)

78,309
(48.51%)[2]
표차 +15,542
◁ 20.06%p
[[북구(광주광역시)|

북구
]]
53,265
(36.38%)
72,580
(49.58%)

147,702[3]
(44.30%)[4]
표차 +19,315
◁ 13.20%p
[[광산구|

광산구
]]
27,021
(28.02%)
52,466
(54.41%)

97,503
(46.87%)
표차 +25,445[5]
26.39%p[6]


5.1.6. 대전광역시장[편집]


{+1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대전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염홍철(廉弘喆)
217,273
2위

41.14%
낙선
2
박성효(朴城孝)
231,489
1위

43.83%
당선
3
최기복(崔基福)
6,442
5위

1.21%
낙선
4
박춘호(朴春鎬)
14,899
4위

2.82%
낙선
5
남충희(南忠熙)
55,231
3위

10.45%
낙선
7
고낙정(高樂正)
2,707
6위

0.51%
낙선

선거인 수
1,077,468
투표율
49.42%
투표 수
532,568
무효표 수
4,527

초반에는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가 앞섰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서울특별시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과정에서 커터칼 피습 테러를 당하는, 박근혜 커터칼 피습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병원으로 실려갔던 박근혜 전 대표가 깨어나 한 말이 대전광역시는요?였고, 이 말 한 마디에 분위기가 반전되고 초접전 끝에 현역이었던 열린우리당 염홍철[19] 후보가 낙선하고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로써 열린우리당은 여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전라북도지사 단 1석만 얻는 대참패를 하게 된다.[20]

5.1.7. 울산광역시장[편집]


{+1 [[파일:울산광역시 휘장_White.svg}}} 울산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심규명(沈揆明)
47,579
3위

11.51%
낙선
2
박맹우(朴孟雨)
261,361
1위

63.23%
당선
4
노옥희(盧玉姬)
104,384
2위

25.25%
낙선

선거인 수
790,289
투표율
52.79%
투표 수
417,200
무효표 수
3,876

현역이었던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반면 민주노동당2002년 송철호 후보가 43.61%를 얻었던 울산광역시에서 25.25%에 그치면서 1석도 얻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출구조사가 나오자마자 떡실신되었다.

5.1.8. 경기도지사[편집]


파일:경기도 휘장(2005-2021)_White.svg 경기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진대제(陳大濟)
1,124,317
2위

30.75%
낙선
2
김문수(金文洙)
2,181,677
1위

59.68%
당선
3
박정일(朴正一)
148,409
4위

4.05%
낙선
4
김용한(金容漢)
201,106
3위

5.50%
낙선

선거인 수
7,918,828
투표율
46.66%
투표 수
3,695,552
무효표 수
40,043

5.1.9. 강원도지사[편집]


{+1 [[파일:강원도 휘장_White.svg}}} 강원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이창복(李昌馥)
148,302
2위

22.20%
낙선
2
김진선(金振兟)
471,613
1위

70.60%
당선
3
유재규(柳在珪)
29,028
3위

4.30%
낙선
5
류승규(柳昇珪)
19,383
4위

2.90%
낙선

선거인 수
1,160,977
투표율
58.71%
투표 수
681,633
무효표 수
13,307

현역이었던 한나라당 김진선 후보가 70.60%의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이창복 후보는 출구조사가 나오자마자 떡실신되었다. 그래도 22.20%로 선전했다.

5.1.10. 충청북도지사[편집]


{+1 [[파일:충청북도 휘장(1998-2023)_White.svg}}} 충청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한범덕(韓凡悳)
185,426
2위

30.60%
낙선
2
정우택(鄭宇澤)
361,157
1위

59.70%
당선
4
배창호(裵昶晧)
39,095
3위

6.50%
낙선
5
조병세(趙炳世)
19,646
4위

3.20%
낙선

선거인 수
1,126,282
투표율
54.69%
투표 수
616,053
무효표 수
10,729

5.1.11. 충청남도지사[편집]


{+1 [[파일:충청남도 휘장(1998-2012)_white.svg}}} 충청남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오영교(吳盈敎)
178,169
3위

21.75%
낙선
2
이완구(李完九)
379,420
1위

46.31%
당선
4
이용길(李鏞吉)
52,417
4위

6.40%
낙선
5
이명수(李明洙)
209,254
2위

25.54%
낙선

선거인 수
1,503,240
투표율
55.78%
투표 수
838,462
무효표 수
19,202

5.1.12. 전라북도지사[편집]


{+1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전라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완주(金完柱)
389,436
1위

48.08%
당선
2
문용주(文庸柱)
62,922
3위

7.76%
낙선
3
정균환(鄭均桓)
295,891
2위

36.53%
낙선
4
염경석(廉京石)
61,672
4위

7.61%
낙선

선거인 수
1,429,632
투표율
57.87%
투표 수
827,387
무효표 수
17,466

1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유일하게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된 곳이다. 반면 민주당은 전라북도지사 탈환에 실패해 한화갑 전 대표가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 그래도 정균환 후보가 나름 선방했지만.

5.1.13. 전라남도지사[편집]


{+1 [[파일:전라남도 휘장(2000-2016)_White.svg}}} 전라남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서범석(徐凡錫)
181,756
2위

19.19%
낙선
2
박재순(朴載淳)
55,444
4위

5.85%
낙선
3
박준영(朴晙瑩)
640,894
1위

67.69%
당선
4
박웅두(朴雄斗)
68,702
3위

7.25%
낙선

선거인 수
1,513,912
투표율
64.32%
투표 수
973,820
무효표 수
27,024

5.1.14. 경상북도지사[편집]


{+1 [[파일:경상북도 휘장_White.svg}}} 경상북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명재(朴明在)
290,358
2위

23.20%
낙선
2
김관용(金寬容)
961,363
1위

76.80%
당선

선거인 수
2,087,709
투표율
61.51%
투표 수
1,284,342
무효표 수
32,621

5.1.15. 경상남도지사[편집]


{+1 [[파일:경상남도 휘장_White.svg}}} 경상남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두관(金斗官)
343,137
2위

25.40%
낙선
2
김태호(金台鎬)
852,377
1위

63.10%
당선
4
문성현(文成賢)
135,823
3위

10.10%
낙선
5
김재주(金在珠)
18,906
4위

1.40%
낙선

선거인 수
2,375,265
투표율
57.83%
투표 수
1,373,815
무효표 수
23,572

5.1.16. 제주특별자치도지사[편집]


파일:제주도기(1966-2009).svg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진철훈(秦哲薰)
44,334
3위

16.15%
낙선
2
현명관(玄明官)
112,774
2위

41.10%
낙선
6
김태환(金泰煥)
117,244
1위

42.73%
당선

선거인 수
411,862
투표율
67.26%
투표 수
277,003
무효표 수
2,651

5.2. 기초자치단체장[편집]




5.3. 광역의회의원[편집]




5.4. 정당별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득표율[편집]


정당별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득표율
정당
득표수
당선인
득표율

10,418,021
12명
55.25%

5,106,984
1명
27.08%

1,709,452
2명
9.07%

1,099,592
-
5.83%

345,295
-
1.83%

166,284
1명
0.88%

7,188
-
0.04%

4,790
-
0.03%
선거인 수
37,064,282
투표율
51.58%
투표 수
19,118,177
무효표 수
260,571

5.5. 비례대표 광역의회의원 합산 전국 득표율[편집]


정당별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 합산은 다음과 같았다.
정당
득표수
득표율
비고

한나라당
10,086,354표
53.76%
전 지역 출마.

열린우리당
4,056,340표
21.62%
전 지역 출마.

민주노동당
2,263,051표
12.06%[21]
전 지역 출마.

민주당
1,863,239표
9.93%
9개 지역 출마.[22]

국민중심당
436,774표
2.33%
7개 지역[23] 출마.

희망사회당
44,598표
0.24%
4개 지역[24] 출마.

시민당
7,583표
0.04%
서울에서만 출마해 0.19% 득표.

한미준[25]
5,112표
0.03%
서울에서만 출마해 0.13% 득표.


5.6. 접전지[편집]


  • 대전시장 유성구: 열린우리당 염홍철 28표차 승
  • 대전시장 동구: 열린우리당 염홍철 333표차 승
  • 대전시장 대덕구: 열린우리당 염홍철 665표차 승
  • 전북지사 고창군: 민주당 정균환 836표차 승

6. 분석[편집]



6.1. 광역자치단체[편집]


범민주 호남 3석(민주당2+열린우리당1) vs 범보수 13석(한나라당12+친야 무소속1)[26][27]

한나라당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인천광역시, 대전광역시, 울산광역시,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12곳을 휩쓸며 압승했다. 열린우리당전라북도 한 곳만을 겨우 건졌고 민주당전라남도광주광역시 2곳을 가져가며 약진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무소속 김태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야말로 야권(보수진영)이 압승했다. 청와대의 차출격이던 장관 출신 강금실 후보(서울시장)와 진대제 후보(경기지사)는 열린우리당 색을 탈피하려고 노력하였는데, 강금실 후보는 자신의 색인 보라색을 내세웠으며 진대제 후보는 "진파랑"을 내세웠는데 이것이 한나라당과 색이 겹쳤으며 한나라당의 오세훈 후보는 당색인 파란색 대신 환경을 상징하는 초록색을 표방하기도 했다.

강금실은 초반 한나라당 후보 상대로 우위를 보이는가 싶었더만 오세훈이 출마하면서 결국 27% 대 61%라는 엄청난 표차로 광탈. 진대제도 30% 대 59%로 광탈했다. 또한 가상의 아이 보람이[28]를 행복하게 하겠다는 강금실 후보의 "보람이가 행복한 서울"은 전설적인 실패한 캠페인으로 잘 알려져있다.[29]

더불어 일종의 전략공천(경선은 있었으나 요식행위에 가까웠다) 식으로 진행된지라 미리 준비하던 당내 후보들이 빛을 못보게 된 것도 있다. 가위바위보로 치면 맹형규, 홍준표 등의 후보군을 예상하고 내보낸 강금실 후보가 보자기를 이기는 "가위"였다면, 한나라당은 오세훈이라는 바위를 내보낸 셈이었다. 선거 초반까지는 강금실 후보가 오세훈 후보를 43.1대 41.3으로 누르는 조사#도 있었지만, 선거기간에 들어가면서 여당 역시 참패의 대세를 확인하고야 말았다.

한편 국회의원이 당시 9명에 불과했던 민주당(구 새천년민주당)은 전라남도광주광역시 두 곳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를 너끈하게 누르며 당선되었다. 지역기반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겠다.[30] 서울 시장에서도 박주선 후보가 무려 7.71%를 얻으며 나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31] 단, 전라북도지사 탈환에 실패해 한화갑이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래도 정균환 후보가 나름 선방했다.[32]

국민중심당충청도 정당을 표방했지만, 충청남도지사에 출마한 이명수[33] 후보가 27%로 2위에 그치면서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성악가 출신의 임웅균 후보는 토론에도 출연했지만 고작 0.35%를 득표했다.

민주노동당 역시 2002년 송철호 후보가 44%를 얻었던 울산광역시에서 25%에 그치면서 한 석도 얻지 못했다. 특히 서울시장으로 경선에서 김혜경 전 대표를 꺾은 김종철 후보[34]가 고작 2.97%를 얻은 것은 큰 치명타였다.

여담이지만, 1여 다야 구도로 치러졌음에도 야권 분열 효과가 미미했다. 반(反) 열린우리당 표심이 호남에서는 민주당, 호남 바깥에서는 한나라당으로 각각 결집했기 때문이다.[35]

6.2. 기초자치단체[편집]


기초자치단체는 더욱 쏠림 현상이 심했다. 한나라당이 230곳 중 155곳을 쓸어가는 대승을 거뒀다. 무소속이 29곳, 민주당 20곳, 열린우리당 19곳, 국민중심당이 7곳을 차지했다. 민주노동당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던 울산광역시 동구북구에서도 참패하면서 한 석도 얻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를 모두 싹쓸이하였고, 경기도에서도 무소속 3곳과 열린우리당 1곳(구리시)를 제외한 27곳을 쓸어갔으며, 인천광역시에서도 한 석(강화군안덕수[36])을 제외한 9석을 가져가는 등 대승을 하였다. 또한 대전광역시강원도에서도 모든 기초자치단체를 쓸어가는데 성공했다. 열린우리당은 광역자치단체장을 배출한 전라북도에서도 민주당의 5석에 못 미치는 4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열린우리당이 경남 밀양시함양군에서 승리했는데, 이는 이변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밀양시장 엄용수는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을 거쳐 한나라당으로 입당하여 2010년 다시 당선되었다. 천사령 함양군수도 역시 통합민주당을 탈당하고 역시 한나라당에 입당했으며 2010년 임기를 마쳤다. 그외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계세가 강한 충청북도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의 남부 3군[37]충청남도서산시, 서천군, 당진군[38]에서 단체장을 건졌다.

한편 호남에서도 열린우리당 심판론이 꽤 먹혔는지 무소속이나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이 많이 당선되었다. 광주 5개 구청장을 민주당이 싹쓸이한건 덤. 열린우리당이 도지사를 건진 전북에서도 기초단체장은 4곳밖에 못 건졌다.

6.3. 지방의회의원[편집]



6.3.1. 광역의회의원[편집]


파일:4회지선광역의원.png
733명을 뽑는 광역의원에서는 76%인 557명을 한나라당이 쓸어갔고, 민주당이 80명, 열린우리당이 52명, 민주노동당과 국민중심당이 15명씩, 무소속이 14명을 차지하였다. 원래 한나라당 세력이 약한 전라도 지역을 제외하면 광역의원 625명 중 약 90% 가량인 무려 557명을 한나라당이 쓸어갔다.

서울의 자치구 25개를 한나라당이 싹쓸이했던 것처럼 서울특별시 광역의원 지역구 96석(국회의원 48*2)을 홀로 싹쓸이했으며, 열린우리당은 비례 의석 2석(21.3%), 민주당과 민주노동당(각각 득표 10.4%, 9.97%)은 비례대표 의석 1석 씩을 얻는데 그쳤다. 한나라당은 여기에 추가로 비례 대표의석 6석(57.2%)을 확보했다. 이로서 한나라당이 차지한 의석은 무려 106석 중 102석.[39][40][41][42]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 여당이 의석의 10% 이상을 얻은 곳은 전라북도와 제주도 밖에 없었으며[43], 반대로 한나라당은 무려 7개 지역에서[44] 의석의 90% 이상을 쓸어갔다.

경기, 인천의 광역의원 지역구 의석도 모두 한나라당이 확보했다. 그러니까 경기도의회 108석 중에서 108석 모두를 한나라당이 싹 가져갔다는 이야기. 이는 12년 후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도 해내지 못한 엄청난 기록으로,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서울 강남구 1, 5, 6선거구, 인천 강화군 선거구, 경기 여주시 2선거구에서는 자유한국당이 승리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이 얼마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는지 알 수 있다.

6.3.2. 기초의회의원[편집]


2,888명을 뽑는 기초의원은 이 선거부터 정당 공천 제도와 비례대표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절반이 넘는 1,621명을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열린우리당은 중선거구제 덕분에 간신히 1/4도 못되는 630석이라도 가져갈 수 있었다. 소선거구제가 시행된 광역의원에서 얻은 참패를 고려하면, 기초의원도 소선거구제를 했었다면 한나라당만 득을 보았을 것이다.

민주당은 276명, 국민중심당이 67명, 민주노동당이 66명을 차지하였다. 무소속은 228명이 당선되었다.

기초의원 중 부산 금정구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일명 '시체 당선'. 금정구 마 선거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박상규 후보는 3위로 당선되었는데 선거가 끝난 후인 6월 10일에 스스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이 후보는 후보 등록일로부터 4일 전에 실종되어서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한 뒤 후보직을 대리 등록했다는게 밝혀졌다. 게다가 시신을 부검해보니 선거일보다 한참 전인 5월 12일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즉, 처음부터 이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은 사망한 사람에게 투표한 것이었다. 이후 4위로 낙선한 후보자가 당선인 자격을 승계받기 위하여 당선무효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하였고 결론적으로 2007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다시 선출하게 되었다.[45]

경기도 용인시의회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김민기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이후 국회의원까지 되었다.

7. 접전지[편집]



7.1. 대전광역시[편집]


현직 시장이었던 염홍철 전 시장은 원래 한나라당 소속이었고 여당이 낼 수 있는 후보는 중구의 권선택 전 의원이나 유성구의 이상민 의원 정도가 점쳐지고 있었다. 이렇게 현직 시장이던 염홍철 전 시장과 여권 후보군들 간의 선거전이 예상되던 상황이었는데 뜬금없이 염홍철 전 시장이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열린우리당에 입당한다.[46]

인기 좋은 현직 시장의 당적변경은 열린우리당 입장에서는 불안한 선거판에 그나마 희망이 되었고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눈뜨고 코베인 격이었으며 이에 한나라당은 마땅한 후보를 물색하던 중 염홍철 밑에서 정무부시장[47]을 지내고 있던 박성효 전 정무부시장을 설득해서 배신자 처단이라는 명목으로 공천했다.

선거전 초반에는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염홍철 시장이 1위를 달리고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염홍철 밑에서 부시장)는 크게 뒤진 상태였다. 그러나 선거전 막판으로 갈수록 다른 지역들처럼 열린우리당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한나라당 후보가 지지율이 올라가는 상태에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서울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과정에서 커터칼 피습 테러를 당하는, 박근혜 커터칼 피습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병원으로 실려갔던 박 전 대표가 깨어나 한 말이 '대전은요?'였고[48], 이 말 한 마디에 분위기가 반전되고 박성효 후보가 근소한 표차로 염홍철 후보를 누르게 된다. 말 한 마디에 선거 결과가 바뀌었는 지는 논란이 있으나, 대전은요?라는 말 자체는 선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에는 크게 성공했다. 실제로 염홍철 전 시장은 2006년 선거에서 낙선한 이유로 대전은요? 발언을 지목하였다. 박근혜 피습 전까지는 그래도 해볼만하다고 염홍철이 유세를 다녔는데, 박근혜 피습사건이 터지고 나서 염홍철이 대전의 각 시장에 찾아가자 상인들이 느그 열우당은 실력이 없어서 야당 대표를 테러하냐?라고 비난을 했다고 한다. 박근혜한테 테러를 한 인물이 어떤 정당 지지자인지는 아직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당시에 야당 대표를 테러한 것은 여당이 사주한 테러범이라고 시민들이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튼 높은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염홍철 전 시장은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며 정치신인에 불과했던 박성효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의 후광을 받아 염홍철 전 시장을 누르고 대전지역의 대표적인 거물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임기 중에 로봇랜드 같은 대전시의 대표 사업들을 빼앗기는 등 무력한 모습을 보였고 이는 18대 총선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충청권에서 부진하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한편 염홍철 전 시장은 자유선진당을 거쳐 시장직을 다시 탈환한 뒤 다시 새누리당 소속이 되었고 박성효 전 시장 역시 낙선 후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지내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결과적으로는 둘 다 윈윈한 셈이 되었었지만, 박성효는 다시 2년 뒤인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의원직을 사퇴하고, 다시 대전시장선거에 나섰다가 당시 권선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접전패를 당했으며[49], 4년 뒤인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허태정 전 유성구청장에게 자유한국당 디버프를 받아서 완패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일 지역구 3연속 낙선자 공천 배제로 컷오프 당하였다.

7.2. 제주특별자치도[편집]


이 선거를 통해 제주도에서 제주특별자치도로 개편되는 제주도 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에서 진철훈 후보, 한나라당에서 현명관 후보를 내세웠고, 당의 전략공천에 반발하며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김태환 지사가 무소속으로 나왔다. 진철훈 후보는 후보 등록이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듣보잡 취급받았고[50], 현명관 - 김태환 두 후보의 접전으로 선거전 초반부터 흘러갔다. 실제로 제주도의 투표율 상승에도 두 후보의 접전이 영향을 미쳤다.

개표 시작부터 투표함 하나마다 현명관 - 김태환 두 후보가 1위가 바뀌어 가며 접전이었으나, 개표 막판에 무소속 김태환 후보의 몰표가 나오면서 4,000표 차로 간신히 김태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8. 화젯거리[편집]


  • 4년 전에 1표 차이로 낙선했던 곽호종 후보가 이번에는 한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

  • 경상북도의회 포항시 북구 한 선거구에서 한자이름까지 같은 동명이인 백남도(白南道) 후보가 출마하기로 해 선관위에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심지어 둘은 수원 백씨로 팔촌 사이라고 한다. 결국 문중이 개입해서 아우뻘 후보가 출마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 다만 결과는 낙선.

  •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강금실, 오세훈, 박주선의 경우 각각 노무현, 이회창, 김대중의 수제자들의 경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또한 강금실은 자녀가 없고, 오세훈의 경우 딸만 2명, 박주선의 경우 아들만 3명이다.
    • 이 외에도 오세훈박주선야권 단일화가 거론되기도 했으나 박주선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 수도권의 반(反) 열린우리당 표심이 한나라당으로 결집해서 야권 분열로 패배하는 일은 없었다.

  •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인 안희옥은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서울시의원으로 하향지원하여 당선되었다. 다만 이 사람은 제16대 국회의원을 전국구로 지냈는데 승계가 늦어져서 17대 총선이 끝난 이후에 승계를 받아 겨우 16일 동안 국회의원직을 지냈기에 말이 좋아 전직 국회의원이었지, 실질적으로 한 것은 거의 없었다.

9. 선거 이후[편집]


선거에서 승리한 한나라당은 본격적으로 지지율이 고공비행을 하기 시작한다. 이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했던 이명박서울시장이 대선 도전을 선언하며 박근혜 전 대표와 경쟁을 하였다. 당내 경선이 대선 본선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당시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의 지지율은 높았으며 이후 경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후보가 2007년 대선도 쉽게 따내며 정권교체에 성공한다. 결과적으로 이 선거의 결과가 다음해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거의 결정한 셈이다.

반면, 안 그래도 차츰 내리막을 걷고 있던 열린우리당은 이 선거 이후 그나마 유지하던 20%대의 지지율도 추락하며 완전히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지선을 책임졌던 정동영 대표는 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사퇴하고 김근태 비대위 체제가 출범했으며[51], 이후 탈당 러시를 통해 당세가 위축된 뒤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되며 소멸하였다.

서울특별시오세훈 시장의 경우는 드라마틱하다. '디자인 서울'이란 구호 아래 재선에도 성공하며 차기 대권주자로 승승장구하나 싶었는데, 고작 임기 1년이 지난 2011년에 본인이 내건 무료급식에 관한 주민찬반투표가 무산되면서 약속한 시장 사퇴를 시행했고[52], 결국 직후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야권단일화 후보로 나선 박원순 전 시장이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누르고 다시 서울을 탈환하게 된다. 그러나 2020년 박원순 전 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하면서 1년 뒤 서울시장이 재보궐선거가 열렸고 여기에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오세훈은 시장 후보로 선출되어 다시 서울특별시장에 10년 만에 당선되면서 결자해지를 하게 된다.

또한 당이 대참패하는 바람에 힘도 제대로 못 써 보고 쓴잔을 마셨지만, 도리어 이를 계기로 절치부심하여 지역구를 다지며 차후 선거에서 설욕에 성공한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 후보들도 다수 있었다.

서울특별시
- 김영종(종로구/구청장 3선)
- 문석진(서대문구/구청장 3선)
- 김미경(은평구/2006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원에 낙선했으나 그 다음해 대선과 동시에 실시된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참패한 와중에 은평구의원에 당선되었고, 서울시의원 재선에 성공한 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은평구청장에 초선으로 당선되었다.)
※ 경기도
- 염태영(수원시/시장 3선)
- 이재명(성남시/시장 재선) - 이후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당선되고, 2022 대선 후보, 그리고 당대표를 지내고 있더.
- 오세창(동두천시/시장 3선)
- 곽상욱(오산시/시장 3선)
- 김윤식(시흥시/시장 3선)
- 이우현(용인시/2012 & 2016년 국회의원 재선) - 현재 친박(!) 강경파에 공천 헌금 수수로 인해 구속되고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교도소에 수감된 그 이우현 맞다.
- 유영록(김포시/시장 재선)
- 신동헌(광주시/2018년 시장 초선)
※ 인천광역시
- 박우섭(남구/구청장 3선)
- 박형우(계양구/구청장 3선)
- 허인환(동구/2010년 시의원 & 2018년 구청장 초선)
강원도
- 원창묵(원주시/시장 3선)
충청남도
- 구본영(천안시/2014년 당선 후 재선)
- 황명선(논산시/시장 3선)
광주광역시
- 임택(동구/2014년 시의원 & 2018년 동구청장 초선)
전라북도
- 김생기(정읍시/시장 재선) - 재선 임기중이던 2017년 선거법 위반으로 시장직 상실.
※ 부산광역시
- 오거돈(시장/2018년 시장 초선) - 원래 2014년에도 서병수 후보와 접전을 벌였으나 낙선했다. 그리고 4년 후에 설욕에 성공. 그러나 오거돈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했다.
- 전재수(북구/2016년 국회의원 초선) - 당시 만 35세였는데, 이후로도 2008년, 2012년 총선에서 고배를 마시고 총 4수 끝에 2016년 국회에 입성했다.
- 홍순헌(해운대구/2018년 구청장 초선)
경상남도
- 김두관(도지사/지사 초선) - 야권연대 무소속으로 당선. 이후 2012년 초 민주통합당에 입당했으나, 임기 절반이 안 되었던 2012년 7월 6일 대통령 선거 경선 참여를 이유로 느닷없이 경상남도지사직을 사퇴해 버리면서 큰 비판을 받았고, 경선에서도 패배했다. 그 뒤를 이어 당선된 홍준표경남지사였다.
- 변광용(거제시/2018년 시장 초선)
- 백두현(고성군/2018년 군수 초선)
[1]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17대 대통령 선거, 제18대 국회의원 선거[2] 여담으로 이 지방선거는 민선으로 따지면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이 제1당인 상태로 치러진 선거이다. 1~3회 지방선거 모두 보수정당이 제1당이였다.[3] 여당은 아니었지만 거대정당 중 하나인 정당이 참패를 당한 역사는 12년 뒤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반대로 반복되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보수정당계 역사상 최악의 참패라고 기록할만할 정도로 처절하게 깨졌다고도 보고있다. 여권이라는 범위를 열린우리당 하나로만 본다면 그래도 지역기반을 어느 정도 지켰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과는 다르게 민주계열 정당의 본진이라고 여겨졌던 광주전남권에서도 민주당에게 깨졌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당한 참패는 역대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7회 지방선거 때에는 제2야당이자 보수계 정당이었던 바른미래당이 있긴 했으나 TK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4]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와 같이 노무현 정부를 상징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전여옥의 불꽃같은 드립이 나온 것도 바로 이 무렵. 해당 분위기는 이어지는 대선에서도 유지된다.[5] 더욱 웃기는 것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다만 그 대상이 보수정당에서 민주당계 정당으로 바뀌었을 뿐. 그렇다고 정말 개가 나와도 당선되지는 않았다. 서울특별시 기초단체장 전승을 한 낙하산 때문에 날렸기 때문이다.[6] 이 선거 이후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서로 갈등의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선거 직전만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현직 각료들을 지자체장 후보에 투입하는 등 여당을 적극 지원하였다.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긴 했지만, 적어도 지방선거 전까지는 여당과 대통령 모두 3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양쪽 다 선거에서 큰 참패를 당할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7] 노무현 전 대통령열린우리당과 결별한 후 20% 후반대의 지지율로 대통령 임기를 마무리 했는데, 이건 오히려 당청갈등과 별도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 지지율이 연동한다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8] 이는 이른바 탄돌이라고 불리던 386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하면서 당 내에 초선의원 비중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인데 초선의원들이 국회 내에서 쇄신의 목소리를 내리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서로 자기 주장만을 반복하며 사분오열하자 4~5선급 중진들의 비중이 낮았던 당내 상황과 맞물려서 중심을 잃고 사분오열하는 결과로 나타나버렸다. 당시 열린우리당 내에는 총리였던 이해찬과 전반기 국회의장이었던 김원기를 제외하면 5선급이 아예 없었을 정도로 중진의원들의 비중이 거의 없었다.[9] 이미 안상영부산광역시장의 자살로 치러진 2004년 재보궐선거에서 허남식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우세에도 불구하고 크게 졌다(37.70%). 그래서 보답 차원에서 해양수산부장관 경력을 추가해 준 건데, 이번 선거에선 고작 24.12%를 득표하며 더 벌어졌다. 참고로 선거 한번 거르고 다다음 선거인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49.34%를 받고 석패했다. 그리고 비로소 2018년에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산광역시장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오거돈은 부산광역시장 취임 1년 9개월만인 2020년 4월 23일, 성추문으로 인해 자진 사퇴했다.[10] 대표적으로 여당에선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일찌감치 강금실을 투입했는데 한나라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 맹형규, 홍준표 등을 포함한 여러 후보군 가운데 단 1명을 제외한 전원이 강금실에게 진다는 결과가 있었다. 이에 따라 유일하게 강금실에게 이기는 1명을 공천했는데 그게 바로 오세훈. 그리고 실제 선거 결과는 뭐 거의 35% 차이가 날 정도로 오세훈이 압승했다.[11] 당시 대전광역시장 선거의 열린우리당 후보는 현역이었던 염홍철이었는데 원래 염홍철은 당적이 한나라당이었지만 2005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12] 울산은 민주노동당에(노옥희 25.25%>심규명 11.51%), 충남은 국민중심당에 밀렸다(이명수 25.50%>오영교 21.70%). 제주는 아래 참고. 사실 울산은 그래도 후보 자체를 못 냈던 4년 전보다는 나아진건데, 그래서인지 4년 후 2010년 지선에서도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25.25%를 득표한 민주노동당 노옥희 후보는 이후 분당국면에서 진보신당에 입당하여 4년 후 재출마했으나 민주노동당에 밀려 9.48%를 득표했다. 이후로는 교육계쪽으로 발길을 돌려서 2018년 지방선거때 울산교육감 선거에 출마했고 그대로 당선되었다.[13] 민주노동당도 독자출마했으나 여기서 득표율이 늘어 임수태 8.60%에서 문성현 10.10%로 증가했다.[14] 12년 뒤의 자유한국당보다 더 참담한 결과인데 한국당은 야당+2위+두 자릿수 비율, 우리당은 여당+3위+한 자릿수 비율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심지어 광역, 기초단체장 둘다 해당된다.[15] 사실 그 전에도 2004~2005년 재보궐선거 참패와 과반 상실 등으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곤 했다.[16]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분위기는 정확히 10년 뒤인 2016년 역대급 사건이 터짐으로 인해 정반대로 보수정당이 그대로 재현하게 된다.[17] 1998년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52.7%로 비슷했고, 다음 차례인 2010년제5회 지방선거는 투표율 54.4%였다. 2002년 지선에서 투표율이 절반을 밑돈 것은 지방선거 날짜가 월드컵 기간 중에 끼어있었기 때문이다.[18] 출구조사에서는 현명관이 앞서는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실제 개표 결과는 김태환이 승리했다.[19] 원래 염홍철은 당적이 한나라당이었지만 2005년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20] 즉 텃밭이라고 여겨지던 호남권에서조차 대참패한 것인데, 하물며 광주광역시장, 전라남도지사 자리도 당시 군소 정당급으로 작아져 오늘 내일하던 민주당(구 새천년민주당)에게 내줬을 정도로 대패한 선거였다.[21] 이 득표는 2년 전 선거인 17대 총선의 13.0%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득표로, 이를 통해 17대 대선18대 총선에서도 의미있는 성과를 기대해 볼만 했지만 노선 갈등과 분당으로 이어지면서 12%의 반토막인 6%도 못 건지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22] 강원, 대전, 충북, 충남, 대구, 울산, 경남에서 비례 불출마. 경북과 부산에서 출마했으나 2% 득표를 얻었다.[23] 서울, 경기, 대전, 충북, 충남, 대구, 경북[24] 서울, 인천, 경기, 광주[25] 정식 명칭은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당. 사실상 당시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였던 고건 전 총리 추대 모임이었으나, 고 전 총리는 거절하였다. 한마디로 '짝사랑'. 정치낭인답게 이용휘 대표의 경우 이후 희망한나라당까지 이어지는 신당 창당/재창당 행보를 계속했다.[26] 범민주로 분류는 됐지만 열린우리당하고 민주당 간의 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민주당은 대북송금 특검과, 이른바 난닝구 사건으로 처참하게 분당한 후, 노무현 탄핵을 주도한 핵심세력이어서 여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지방선거 이후에 열린 2006년 재보궐선거(상반기), 2006년 재보궐선거(하반기), 2007년 재보궐선거(상반기) 세 번 모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독자 출마했으며, 서로를 배신자라며 욕하면서 싸우기 바빴다. 실제로 2006년 하반기 재보선 해남진도 선거구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 측 캠프 인원과 민주당 후보 측 캠프 인원 간 상호 폭행사건까지 벌어졌다.[27] 열린우리당은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때까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0석을 기록했으며, 민주당은 2006년 재보궐선거,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 나름대로 당선자를 건지는 데 성공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구 새천년민주당)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쳤다가 대선과 총선을 나란히 말아먹었고, 당내 내분이 지속되다가 결국 2016년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민주평화당-민생당으로 사실상 반영구적으로 갈라섰다.[28] 광고 카피리스트 정철씨의 아이디어로, 미국식 캠페인을 들여 온 것. 여기서 보람이는 '서민의 자녀'를 상징한다.[29] 2021년 재보궐선거가 여권의 무리한 네거티브 선거에도 박영선 39% 대 오세훈 57%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끝나자 네거티브 없는 정책선거를 이어간 강금실의 캠페인을 조심스럽게 재평가하는 의견도 나오긴 했다. 실지로 강금실 캠프는 선거기간 부터는 컨셉 자체를 '품위 있게 잘 지는 것'으로 잡았으며, 특유의 흑백 현수막과 보라색의 사용도 의도적이었다.[30] 사실 새천년민주당은 분당된 이후에도 호남(특히 광주/전남권)에서의 지지기반이 생각보다 강고했다.[31] 다만 전략공천에 따라 당시 출마를 노리던 김영환 전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 두 정치인은 모두 2008년 민주당(2008년) 합당에 참여해 박주선 후보가 19대 총선에서 모바일 투표 사고 건으로 낙천 되어 무소속 당선되고, 김영환 후보는 2009년 재보궐선거 이래 민주당에 줄곧 당선 중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후 2015년 연말 경에 터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때 다시 탈당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과 신설합당한 바른미래당을 거쳤지만 바른미래당 분당 과정에서 박주선 전 의원은 잔류를 선택해 민생당 소속이고, 김영환 전 의원은 미래통합당에 합류하면서 현재는 미래통합당에서 당명을 바꾼 국민의힘 소속의 정치인으로 활동중이다. 이후 정치 기반을 기존 경기도에서 충북으로 옮긴 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충청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32] 굳이 변명을 해주자면 교섭단체도 안되는 군소정당이 광역단체장을 2곳씩이나 먹은것도 기적이었다.[33]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재선 국회의원이 되는데 성공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남도지사에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재산이 적은 국회의원 순위권이란게 흥미롭다.[34] 2006년 당시 김종철 후보가 36세의 젊은 나이로 당내 경선에서 김혜경 전 대표를 2651:2428로 이긴 것은 PD계의 파란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그 동력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이 경선은 당시 서울시장 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경선을 치른 사례였다.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경우는 모두 전략공천. 여담으로, 김혜경 대표 역시 진보신당으로 이적하여 통진당 합류 문제로 분당 될 때도 탈당하지 않고 비대위 대표 대행을 지냈다. 이 시점이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시점이었다.[35] 애초에 야권 분열이라 하기에도 묘한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계 정당으로 사실상 민주당과 지지층을 공유하는 정당이었다. 두 정당 간의 사이가 몰론 안 좋긴 했지만 지지층으로 볼때 당시 상황은 야권 분열이라기보다 여권 분열 쪽으로 보는 편이 좀 더 가깝다. 몰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득표율을 합쳐봤자 한나라당의 득표율이 압도적이라 무의미했지만.[36] 2006년 한나라당에서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강화군수에 2006년, 2010년 두 차례 당선됐다가 2012년 새누리당에 복당하여 국회의원을 역임했다.[37] 원래는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하지만, 당시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던 이용희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18대 대선 이후로는 보수정당 지지도가 강해지게 된다.[38] 당시에는 군이였다.[39] 사실 4년 전 스코어도 한나라당 87 : 새천년민주당 14였다.[40] 그런데 2008년 재보궐선거(6월 - 상반기 선거)에서 2008년 촛불집회의 바람으로 서울 광진구 4번 선거구와 강동구 3번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민주당 의석은 5석으로 불어났다. 물론 의미는 없었지만, 재보궐을 거치면서 한나라당 의석이 정확히 100석이 되었다.[41] 거꾸로 4년 뒤의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79석을 확보하면서 2/3를 장악하고 한나라당은 27석으로 크게 쫓겨나게 된다.[42] 7대 지선에서 민주당이 102석을 차지한다. 이때는 110석으로 정원이 늘었고 자유한국당은 6석을 차지한다.[43] 광주와 전남은 민주당이 싹쓸이했다.[44] 서울, 인천, 경기, 강원, 부산, 대구, 경북[45] 이마저도 후보가 1명이라 무투표 당선.[46] 나중에 쾌도난마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세종시 관련 법안들을 놓고 당시 박근혜 지도부와 갈등이 있었고 생각이 같은 열린우리당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때마침 탄핵 역풍으로 인해 정부 여당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반등했기 때문에 심리적 요인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47] 말이 부시장이지 실제로는 당에서 보내주는 당직자에 가까운 입장이다. 다만 박성효 전 부시장은 염홍철 전 시장 밑에서 기혹조정실장 등을 거친 관료 출신으로 한나라당과는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되면서 관계를 맺은듯 보인다.[48] 일정상 대전 유세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49] 이때는 박성효가 선거 전 여론조사 내에서 우위를 보였고, 권선택 후보는 박성효 후보에게 크게 밀리는 여론조사였다. 그러나 선거 당일 출구조사에서 접전이 나왔는데, 막판 권선택 후보의 지지율이 막판에 올라가서 그런듯 하다. 그러나 권선택은 3년 뒤 가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시장직을 잃게 된다.[50] 득표율은 16.1%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아주 낮은건 아니지만 여하간 묻힐만한 득표였으며 다음 지선에서 탈당한 우근민 지사 대신 버리는 카드격으로 출마한 한겨레 출신의 고희범 후보도 18.0%를 득표하면서 민주당계 흑역사를 이어갔다.[51] 역설적이게도 김근태 대행의 임기는 열린당 역사에서 가장 길었다.[52]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전 대표가 언제 사퇴한다고 기간은 말해둔게 아니니 버티라고 그렇게 말렸지만 오세훈 시장은 그냥 자진 사퇴한다. 이에 대해 쿨하다고 인정해준 지지자도 있는 반면, 한동안 오세훈 전 시장을 '역적' 취급하는 보수 유권자들도 꽤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