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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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리그 3차전 슬로바키아에게 패배한 후, 좌절하는 콸리아렐라이아퀸타

1. 소개
2. 남아공 월드컵 이전
2.1.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복귀
2.2. 천운의 조편성
2.3. 너무 늙은 대표팀
3. 남아공 월드컵
3.1. 32강 조별리그 파라과이전 - 1 : 1 무
3.2. 32강 조별리그 뉴질랜드전 - 1 : 1 무 (음봄벨라의 비극)
3.3. 32강 조별리그 슬로바키아전 - 2 : 3 패 (엘리스 파크의 비극)
3.4. 남아공 월드컵 F조 최종 순위
3.5. 이탈리아의 17번의 월드컵 중 최악의 월드컵
4. 참사의 원인
4.1.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선수 선발
5. 각계의 반응과 후폭풍
6. 계속되는 카테나치오의 추락
7.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겪은 역대 최악의 월드컵 조별리그 성적과 이후의 암흑기에 대한 문서다.


2. 남아공 월드컵 이전[편집]



2.1.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복귀[편집]


이탈리아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통산 4번째 우승을 일군 강호 중의 강호였다[1]. 그러나 해당 대회 우승 이후로는 슬슬 삐걱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먼저 UEFA 유로 2008에서는 네덜란드, 루마니아, 프랑스와 같은 조에 편성되어 1차전에서는 네덜란드에게 0:3으로 떡실신을 당하고, 2차전에서는 몇 수 아래인 루마니아와도 1:1로 비기고, 3차전에서는 2년 전 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프랑스를 2:0으로 꺾고 1승 1무 1패로 간신히 8강에 올랐다. 그리고 8강에서는 스페인과 0 : 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8강에 그치는 등 독일 월드컵 이후로는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로베르토 도나도니 감독이 경질되고 다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복귀했고, 리피 체제의 이탈리아는 2010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는 7승 3무의 성적으로 비교적 준수한 성적을 거두어 어렵지 않게 조 1위로 무패 통과를 했다.

그러나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서서히 문제점이 노출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이탈리아는 브라질, 미국, 이집트와 함께 B조에 속했다. 이탈리아는 1차전에는 미국을 상대로 3 : 1 승리를 거두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2차전에서 이집트에 0 : 1로 덜미를 잡히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순식간에 탈락 위기에 몰렸는데, 2차전까지 B조의 결과는 브라질이 2승으로 조 1위, 이탈리아와 이집트가 1승 1패로 동률을 이뤘으나 득실 차에서 이탈리아가 +1, 이집트가 0을 기록해 이탈리아가 2위, 이집트가 3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2패를 기록한 미국이 조 최하위에 있었다. 즉 3차전 결과에 따라 브라질이 탈락할 수도 있고 미국이 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브라질을 상대로 좀처럼 고전을 면치 못하며 전반 37분과 43분에 루이스 파비아누에게 잇달아 실점하며 0 : 2로 끌려갔고, 설상가상으로 안드레아 피를로가 전반 45분에 자책골까지 넣어버리면서 전반전을 0 : 3으로 마쳤다. 브라질은 후반전 들어 주전 선수들 체력 안배를 위해 설렁설렁 뛰었으나 이탈리아의 무딘 창은 브라질을 공략하지 못했고 결국 0 : 3으로 대패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에 루스텐버그에서 열린 미국과 이집트의 경기는 미국이 3 : 0 대승을 거두었다. 그 결과 3승을 거둔 브라질이 조 1위로 4강 진출에 성공했고 나머지 3팀이 모두 1승 2패로 동률이 되었는데, 이집트는 득실 차 -3으로 가장 낮아서 조 4위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이탈리아는 모두 득실 차 -2였으나 미국이 4득점 6실점, 이탈리아가 3득점 5실점을 기록해 미국이 다득점에서 앞서며 4강 진출에 성공했고, 반면에 이탈리아는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때부터 내년 월드컵에 대한 불안감이 슬슬 고조되기 시작했다.


2.2. 천운의 조편성[편집]


하지만 이탈리아는 천운의 조편성을 받았는데, 파라과이, 뉴질랜드, 슬로바키아와 함께 F조에 편성된 것이다. 뉴질랜드야 28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한 팀인 것은 둘째치고 오대양 육대주를 통틀어 가장 전력이 약한 오세아니아 팀이었으므로[2] 사실상 조 최약체이자 승점자판기인 팀이었고, 슬로바키아 역시 체코슬로바키아가 분리된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에 나서는 팀에다가 체코보다도 더 전력이 약한 팀이라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3] 굳이 많이 경계해야 할 상대는 파라과이였으나, 파라과이 역시 이탈리아의 명성에 비하면 별 것 아닌 팀이었고, 또한 남미에서도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조 추첨이 끝나자마자 당연히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두 이탈리아의 가벼운 3전 전승을 예상했다. 심지어 F조는 이탈리아가 3승을 하여 조 1위로 16강에 가고, 나머지 팀들이 서로 몰려 1승 2패 또는 2무 1패를 해서 골득실을 따져 간신히 16강에 갈 수 있는 경우를 생각했을 정도였다.

거기에 조편성 뿐만 아니라 토너먼트 대진운도 참 환상적이었는데, 이탈리아가 조 1위를 찍기만 하면 E조 최강 네덜란드를 100% 피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E조의 나머지 팀들도 덴마크, 카메룬, 일본이었기에 네덜란드가 이런 나라들 사이에서 조 2위를 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만일 이탈리아가 조 1위를 찍었다는 전제하에 상대팀들은 현 성적과 다름없다는 것에 비교하면 16강에서 일본, 8강에서 스페인,[4] 그리고 4강에서는 독일을 만나 4년 전, 그리고 2년 후와 마찬가지로 준결승전에서 아주리 징크스로 독일을 관광태워 3위 결정전으로 보내고 이탈리아는 아무리 못해도 결승까지는 순탄하게 갈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되면 대망의 결승전 상대는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2라운드 조별리그 A조에서 처음 만난 이후 월드컵에서 오랜만에 만난 네덜란드가 된다.

그리고 네덜란드가 이제까지 늘 그래왔듯이[5] 여기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면 이탈리아는 1934년/1938년까지 2연속 우승을 함으로써 월드컵 최초로 2연승이라는 72년 전의 진기록을 다시 한번 완벽하게 재현하며[6] 1958년/1962년 2연속 우승을 한 브라질 이후 48년 만에 월드컵 2연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최고의 대진을 선물 받은 것이다[7][8].


2.3. 너무 늙은 대표팀[편집]


이탈리아에 위험 신호가 발견된 것은 대표팀 명단이 발표된 직후였다.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8.3세로, 잉글랜드(28.7세), 브라질(28.6세), 호주(28.4세)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9] 그리고 이 23명의 엔트리 중 9명이 2006년 월드컵 우승 멤버들이었다. 즉 늙은 선수들이 그대로 중용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주장이자 주전 센터백인 파비오 칸나바로는 만 36세였다. 그나마도 생일이 안 지나서 36세였을 뿐 실상 만 37세나 다름없었다. 또 라이트백 잔루카 잠브로타 역시 만 33세였고,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젠나로 가투소 역시 만 32세였다. 그뿐 아니라 최전방 공격진의 빈첸초 이아퀸타도 만 31세였고, 안토니오 디 나탈레 역시 만 33세였다. 이렇게 30줄이 넘은 늙은 선수들이 대거 선발된 이유는 리피 감독이 직접 언급한대로 나이가 많다는 것이 큰 경기 경험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늙은 선수들이 중용되다 보니 체력과 기동력 면에서는 밀리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계속해서 나왔다.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은 가뜩이나 4년 전에도 이미 노장 소리를 듣던 선수들이었는데, 그 늙은 선수들이 또 나왔으니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 선수들이 늙고 체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워낙 조별리그 상대팀들이 상대적으로 약체들이다 보니 조별리그 정도는 쉽게 통과하지 않겠느냐고 할 정도로 어느 누구도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탈락을 예측하지 못했다. 리피 감독 역시 꿀조에 편성되었는걸 알았는지 이러한 약점들을 간과한 듯 했는데...


3. 남아공 월드컵[편집]



3.1. 32강 조별리그 파라과이전 - 1 : 1 무[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F조 제1경기
2010년 6월 14일 20:30(UTC+2)

그린 포인트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주심: 베니토 아르춘디아 (멕시코)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 : 1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이탈리아

파라과이

63′ 다니엘레 데 로시
득점자
39′ 안톨린 알카라스
관중: 62,869명
Man of the Match: [[안톨린 알카라스|{{{#000000 안톨린 알카라스}}}]] (파라과이)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첫 번째 상대는 남미의 파라과이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1950 브라질 월드컵 이후 무려 60년 만의 일이다. 그 당시에 맞대결 했을 땐 이탈리아가 2 : 0으로 승리했지만 1차전에서 스웨덴에 2 : 3으로 패배한 탓에 스웨덴에 승점 1점이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바 있었다. 어떻게 보면 피로스의 승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조에 편성된 팀들 모두가 이탈리아보다 몇 수 아래의 팀들이었지만 그나마 조심해야 할 상대가 바로 이 파라과이였다. 왜냐하면 당시 파라과이는 그 빡센 남미 지역 예산에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3위로 통과한 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말이 3위이지 2위 칠레와 승점은 33점으로 동일했으며 1위 브라질과도 승점 차이는 고작 1점밖에 안 났다. 단지 골 득실에서 칠레에 2골이 밀리는 바람에 3위를 한 것뿐이다. 그리고 지역예선에서 파라과이는 총 10승을 거두어 9승을 거둔 브라질보다 승수가 더 많았다. 그렇기에 아주 만만하게 볼 만한 팀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이 경기에서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도메니코 크리시토 - 조르조 키엘리니 - 파비오 칸나바로 - 잔루카 참브로타 포백이 수비 라인에 서고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리카르도 몬톨리보 - 다니엘레 데 로시가 섰으며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빈첸초 이아퀸타 -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 시모네 페페가 섰으며 원톱에 알베르토 질라르디노가 섰다. 한편, 파라과이의 헤라르도 마르티노 감독은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는데 수비형 미드필더 빅토르 카세레스가 포백 라인 바로 앞쪽에 위치하여 공격시엔 4-4-2, 수비시엔 5-3-2 형태가 되는 라인업을 세웠다. 경기 전부터 흐린 날씨가 지속되던 케이프타운엔 경기가 시작하자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해 이 경기는 결국 수중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10]

경기가 시작되자 양 팀은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였다. 대체로 이탈리아가 공격적으로 나섰고 파라과이가 끈끈한 수비로 버텨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공격력은 파라과이의 끈적한 수비벽을 뚫기엔 뭔가가 화력이 부족해 보였다. 공격수들의 노쇠화가 분명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지던 중 전반 39분, 파라과이가 골문 우측 밖 35m 지점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 아우렐리아노 토레스가 볼을 문전으로 붙여주었고 이걸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안톨린 알카라스가 다니엘레 데 로시의 공중볼 마크를 이겨내고 기어이 헤더로 우겨넣어 선제골을 터뜨려 예상을 깨고 파라과이가 1 : 0으로 앞서갔다. 지난 대회 야신상을 수상했던 이탈리아의 명물 잔루이지 부폰은 방향 예측에 실패하여 역동작에 걸려 그대로 실점하고 말았다. 골이 들어가자 파라과이 관중들은 신나게 부부젤라를 불어대며 환호했고 이탈리아 응원석은 적막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전반전은 파라과이가 1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그런데다 이탈리아는 또 하나의 악재를 맞았다. 사실 이 경기를 앞두고 수문장 부폰은 허리에 부상을 당했으나 뛰겠다고 자청해서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도저히 허리 통증을 참을 수 없었고 결국 하프타임 때 못 뛸 것 같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하프타임 때 부폰을 빼고 후보 골키퍼 페데리코 마르케티를 투입했다.[11]

후반전에도 이탈리아는 조금씩 파라과이에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파라과이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도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간신히 실점만 면했을 뿐이었다. 교체투입으로 들어온 그 골키퍼가 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비 라인이 썩 믿음직스러운 것도 아닌데 순전히 상대 선수들이 개발이어서 간신히 실점만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라과이로서도 골을 넣어야 할 때 추가골을 못 넣은 게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후반 18분에 이탈리아가 코너킥 찬스를 얻었다. 시모네 페페가 찬 코너킥은 문전으로 곧장 날아갔고 파라과이의 후스토 비야르 골키퍼가 펀칭을 시도했으나 헛손질에 그쳤다. 그리고 볼은 아래로 떨어졌고 이걸 지면에 닿기 전에 재빨리 다니엘레 데 로시가 미끄러지면서 오른발을 갖다대 동점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1 : 1 원점으로 되돌렸다. 참으로 천금같은 동점골이 아닐 수 없었다.

승부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이탈리아는 계속해서 공격의 고삐를 당겼고 파라과이는 무승부도 나쁘지 않다는 듯 잠그기에 들어갔다. 경기 종료 직전에 몬톨리보가 강한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후스토 비야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결국 경기는 그렇게 1 : 1로 종료되며 양 팀은 사이좋게 1점씩 나눠가졌다. 그러나 다음 날 오후 3시 반에 열린 뉴질랜드 vs 슬로바키아의 경기에선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비텍이 후반 5분에 선제골을 넣어 1 : 0으로 앞서갔지만 경기 종료 직전에 세트피스 상황에서 윈스턴 리드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며 1 : 1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A조와 마찬가지로 4팀 모두 1차전에서 승점 1점씩 나눠갖는 혼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F조의 판세도 점점 꼬여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탈리아로서는 조 1위로 치고 올라가기 위해선 반드시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겨야만 한다. 그래도 이탈리아의 바로 다음 상대 즉, 2차전 상대는 최약체로 보이는 뉴질랜드이기에 그 2차전에서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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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강 조별리그 뉴질랜드전 - 1 : 1 무 (음봄벨라의 비극)[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F조 제4경기
2010년 6월 20일 16:00(UTC+2)

음봄벨라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넬스프루이트)
주심: 카를로스 바트레스 (과테말라)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 : 1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이탈리아
뉴질랜드
29′ 빈첸초 이아퀸타 (PK)
득점자
7′ 셰인 스멜츠
관중: 38,229명
Man of the Match: [[다니엘레 데 로시|{{{#000000 다니엘레 데 로시}}}]] (이탈리아)

그야말로 "음봄벨라의 비극"이라고 할 수있다.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조 최약체로 꼽힌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축구 강국이었지만 뉴질랜드는 본래가 축구보다 럭비가 더 인기가 많은 나라였고 축구는 철저한 비인기 종목이라 변변한 프로 리그조차 없던 나라였다. 월드컵도 1982 스페인 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올라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당연히 이탈리아의 압승을 기정사실로 여겼고 이 경기는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이탈리아가 몇 골 차로 이기느냐가 관심사였다. 이탈리아로서도 편안하게 토너먼트를 치르기 위해선 반드시 뉴질랜드를 이겨야 한다. 한편, 뉴질랜드의 리키 허버트 감독은 이 경기를 앞두고 이탈리아를 향해 엄청난 도발을 감행했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허버트 감독은 "우리가 제 2의 한국이 되겠다!"며 이탈리아인들이 그토록 잊고 싶어하던 2002년의 악몽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만큼 한국이 8년 전 이탈리아를 2 : 1로 격침시킨 것은 약팀이 강팀을 꺾어버린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과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끔 했다.[12]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이 경기에서 포메이션에 변화를 주었다. 오늘 경기에선 4-4-2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1차전에서 중앙에 섰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를 왼쪽으로 돌리고 레프트윙을 섰던 빈첸초 이아퀸타를 전방으로 올린 것이다. 즉, 전방 공격수 숫자를 늘려서 다득점을 노리겠다는 의도였다. 반면, 뉴질랜드는 1차전과 마찬가지로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고 선발 라인업도 동일하게 그대로 들고 나왔다. 그렇게 다윗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리는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가 시작되자 초반 몇 분 간은 탐색전이 오고 갔다. 그러나 전반 7분 만에 경기는 모든 이들의 예상과 크게 빗나가버렸다. 뉴질랜드가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킥커 사이먼 엘리엇이 길게 전방으로 볼을 띄웠다. 그런데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가 볼을 제대로 클리어링하지 못했고 흐른 볼을 재빨리 문전으로 침투한 셰인 스멜츠가 잽싸게 밀어넣어 선제골을 터뜨린 것이다! 그렇게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뉴질랜드가 1 : 0으로 앞서갔다.[13]

워낙 기습적인 골이었던지라 이탈리아 관중석은 스턴건을 얻어맞은 듯 적막감에 휩싸였고 페데리코 마르케티 골키퍼와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도 모두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을 지었다. 뜻밖에 기습적인 선제골을 허용한 이탈리아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골 결정력이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이탈리아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은 정말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그렇게 월드컵 우승만 4번 한 축구 강국이 럭비 강국에게 0 : 1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반 29분, 공격에 가담한 조르조 키엘리니가 뉴질랜드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는데 공중볼 경합 도중 뉴질랜드의 레프트백 토니 스미스가 다니엘레 데 로시의 유니폼을 잡아 넘어뜨리는 반칙을 범했다. 주심은 즉시 페널티 킥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로서는 동점골을 넣을 절호의 기회였다. 킥커로 빈첸초 이아퀸타가 나섰고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스코어를 1 : 1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렇게 전반전은 1 : 1로 마쳤다.

하프타임 때 리피 감독은 시모네 페페와 부진했던 최전방 공격수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를 빼고 마우로 카모라네시안토니오 디 나탈레를 동시에 교체투입했다. 하지만 이 교체 카드는 패착으로 다가왔다. 카모라네시는 볼 키핑 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선수여서 옆에 시모네 페페가 붙어 있어야만 플레이가 살아나는 선수였다. 그러나 페페와 카모라네시를 맞교대 해버렸으니 카모라네시의 부족한 볼 키핑 능력을 도와줄 선수가 없어져버렸던 것이다. 그러자 뉴질랜드 수비수들은 편안하게 카모라네시만 집중 마크해도 이탈리아의 공격의 혈을 막아버릴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이탈리아 공격수들은 마음만 급해서 자꾸 부정확한 슈팅들만 난사하기에 바빴다. 뉴질랜드의 마크 패스턴 골키퍼는 여러 차례 슈퍼 세이브로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더욱 좌절감을 안겼다. 후반 16분에 리피 감독은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를 빼고 잠파올로 파치니까지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더욱 늘렸으나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뉴질랜드의 크리스 우드가 주장 칸나바로의 마크를 이겨내고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멋진 왼발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아주 약간 골대를 벗어나며 아쉬움을 삼켰다. 만약 이게 들어갔다면 이탈리아로서는 8년 전 한국에 1 : 2로 패배했을 때보다 더 큰 치욕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뉴질랜드의 허버트 감독은 경기 종료 직전 은행원 출신의 아마추어 선수 앤디 배런을 투입해 이탈리아를 향해 능욕 아닌 능욕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경기는 또 1 : 1 무승부로 끝나버렸다.

1차전 파라과이전 무승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파라과이 역시 이탈리아의 발 끝에도 못 미치는 팀이었지만 그래도 남미의 축구 강국 중 하나인 팀이라 아주 무시할 만한 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14]. 그러나 뉴질랜드전 무승부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월드컵 우승 4회에 빛나는 축구 강국이 저 핫바리 오세아니아 팀에게 비겼다는 건 전세계적인 웃음거리에 불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서서히 리피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싹트기 시작했다. 앞서 열린 슬로바키아 VS 파라과이의 경기는 파라과이의 2 : 0 승리로 끝나면서 판세는 3차 방정식 수준으로 꼬여버렸다. 우선 1승 1무(승점 4점)를 기록한 파라과이가 조 1위로 올라섰고 그 뒤를 이어 2무(승점 2점)를 기록한 이탈리아와 뉴질랜드가 공동으로 조 2위를 했으며 1무 1패(승점 1점)를 기록한 슬로바키아가 조 최하위로 떨어졌다. 이탈리아는 이렇게 젖과 꿀이 흐르는 쉬운 조에서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뉴질랜드가 이 조의 판세를 꼬아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점자판기인 줄 알았는데 2경기 연속 무재배로 쳐내버린 것이다. 즉, 고장난 승점자판기였던 셈이다. 한편, 리키 허버트 감독은 난적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귀중한 1 : 1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기자회견에서 했던 "우리가 제 2의 한국이 되겠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첫 번째로 출전했던 1982 스페인 월드컵 때엔 3전 전패로 무기력하게 물러났던 뉴질랜드였지만 이 경기에선 2무를 기록하여 무패를 기록했다. 감독이 "우리가 제 2의 한국이 되겠다."고 말한 것에 힘이라도 싣듯 뉴질랜드 응원단들도 태극기를 흔들며 심리전에 동조했다. 이를 볼 때 한국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은 약팀들의 상징이 된 듯하다.[15]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탈리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당장 지난 대회에서도 프랑스가 조별리그 2경기에서 스위스와 한국에게 비기고 2무를 기록하며 자빠질 뻔했지만 토고전 승리로 인해 토너먼트로 진출, 결국에는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까지 내로라 하는 강팀들을 잡고 결승에 올랐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이탈리아 팬들은 이탈리아도 그 프랑스의 저력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으리라 여기기도 했다. 심지어 비겨서 3무가 된다고 해도 이탈리아가 더 많은 득점을 하고 비기면서 뉴질랜드가 진다든지 아니면 뉴질랜드가 비긴다고 해도 이탈리아보다 적은 득점으로 비긴다면 그 뉴질랜드를 다득점 차로 제치고 조 2위로 16강에 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3차전에서 아주 제대로 사달이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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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강 조별리그 슬로바키아전 - 2 : 3 패 (엘리스 파크의 비극)[편집]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F조 제5-1경기
2010년 6월 24일 16:00(UTC+2)

엘리스 파크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주심: 하워드 웹 (잉글랜드)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2 : 3
파일:슬로바키아 국기.svg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81′ 안토니오 디 나탈레
90+2′ 파비오 콸리아렐라

득점자
25′, 73′ 로베르트 비텍
89′ 카밀 코푸네크

관중: 53,412명
Man Of the Match: 로베르트 비텍 (슬로바키아)

그야말로 "엘리스 파크의 비극, 슬로바키아에게는 요하네스버그 대첩이라 불리는 위대한 승리"라고 할 수 있는 경기였다. 반면 이탈리아에게는 사상 최초로 월드컵 조별리그 무승 탈락이라는 매우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사실 이전에도 이탈리아는 무려 5번이나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일이 있었지만 그 5번 모두 1승은 꼭 달성했었다. 그렇기에 무승 탈락은 더욱 충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서 1골이라도 더 넣어 비겼더라면 뉴질랜드를 다득점으로 제치고 조 2위로 16강에 오를 수도 있었기에 더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F조/슬로바키아 vs 이탈리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4. 남아공 월드컵 F조 최종 순위[편집]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파일:파라과이 국기.svg
파라과이
3
1
2
0
3
1
+2
5
2
파일:슬로바키아 국기.svg
슬로바키아
3
1
1
1
4
5
-1
4
3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뉴질랜드
3
0
3
0
2
2
0
3
4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3
0
2
1
4
5
-1
2
  • 파라과이 F조 1위로 16강 진출.
  • 슬로바키아 F조 2위로 16강 진출.


3.5. 이탈리아의 17번의 월드컵 중 최악의 월드컵[편집]


파라과이가 1승 2무(승점 5점)로 조 1위를 차지했고 대어 이탈리아를 낚은 슬로바키아는 1승 1무 1패(승점 4점)의 전적으로 단숨에 조 2위로 껑충 뛰어올라 둘이 나란히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3무(승점 3점)를 기록한 뉴질랜드는 매우 선전했지만 조 3위에 그쳐 탈락했고 이탈리아는 2무 1패(승점 2점)에 그쳐 뉴질랜드에도 밀리며 조 꼴찌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탈리아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1974 서독 월드컵 이후 36년 만의 일이었다.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건 1950 브라질 월드컵 때 이탈리아 본인들,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 브라질, 2002 한일 월드컵 때 프랑스에 이어 4번째였다. 공교롭게도 이탈리아는 그 치욕을 2번이나 겪었다.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2무 1패, 4득점 5실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탈리아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탈락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꼽히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도 조별리그 탈락은 했을지언정 칠레를 2 : 0으로 이겨서 1승은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단 1승도 못했다. 또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32개국 중 26위에 그쳤는데 이것 역시 월드컵에서 기록한 최저 등수이다. 더 특기할 사항은 그래도 1950년 대회는 전년도의 수페르가 참사로 인해 토리노 FC 선수 18명을 위시 국대 선수 상당수가 몰살 당한 사안도 있고, 1966년 대회의 경우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이 특수 훈련을 받은 선수들로 구성된 케이스였기에 참작할 만한 사안이라도 있었지만 2010년 대회에선 특기할 만한 이슈가 없었음에도 이같은 성적이 나왔다는 점에서 아주리 군단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계기였는 점이다


4. 참사의 원인[편집]



4.1.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선수 선발[편집]


우선 첫 번째 요인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선수 선발에 있었다. 이번 대회 이탈리아 선수단 전체 평균 연령은 만 28.3세로 잉글랜드(28.7세), 브라질(28.6세), 호주(28.4세)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 이 23명의 엔트리 중 9명이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 멤버들이었다. 그런데다 더 심각한 건 최후방 수비진과 최전방 공격진의 노쇠화였다. 우선 이탈리아의 선발 라인업을 살펴보면 이탈리아의 주장이자 주전 센터백인 파비오 칸나바로는 당시 만 36세였다. 그나마도 생일이 안 지나서 36세였을 뿐 실상 만 37세나 다름없었다. 또 라이트백 잔루카 잠브로타 역시 만 33세였고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젠나로 가투소 역시 만 32세였다. 그 뿐 아니라 최전방 공격진의 빈첸초 이아퀸타도 만 31세였고 안토니오 디 나탈레 역시 만 33세였다.

즉, 엔트리의 절반이 만 30세 이상의 노장들로 구성된 셈이다. 이렇게 늙은 선수들이 대거 선발된 이유는 리피 감독의 "나이가 많다는 것은 큰 경기 경험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분명히 나이가 많은 것이 큰 경기 경험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나이 많은 선수들이 엔트리의 절반에 이르다보니 이탈리아는 체력과 기동력에서 저하를 보이며 매 경기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즉, 이 선수들은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다 그림이 그려지는데 몸이 안 따라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리피 감독은 그 사실을 간과했고, 그 결과 이탈리아는 이번 대회에서 공격과 수비에 심각한 문제점을 보였다.

지난 독일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는 7경기에서 단 2실점만을 기록해 카테나치오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16]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3경기에서 무려 5실점이나 기록하며 녹슨 빗장으로 전락했다. 또 매 경기마다 실점을 하며 단 1경기도 무실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4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선수들이 노쇠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이번 대회 아주리 군단의 수비진은 무기력하고 허술했다. 그렇다고 젊은 선수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파비오 칸나바로에겐 분명히 레오나르도 보누치라는 훌륭한 대체자가 있었다.[17] 그리고 라이트백 잔루카 잠브로타에게도 크리스티안 마지오라는 젊은 대체자가 있었다. 그러나 리피 감독은 선수 선발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이었고 과감하게 젊은 선수들을 발탁하기보다는 자신이 잘 알고 이미 능력이 검증된 베테랑 선수들만을 기용했다. 결국 리피 감독의 그 판단은 큰 패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공격진의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중앙 공격수 빈첸초 이아퀸타는 190cm의 장신에 활동량이 왕성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의 장점은 정말 딱 그것 하나 뿐이었다. 스트라이커의 최고 덕목은 뭐니뭐니해도 득점인데 이아퀸타는 골 결정력이 형편없는 공격수로 악명높았다. 이번 대회에서 이아퀸타는 리피 감독의 신임을 얻어 3경기 내내 선발 출전을 했지만 기록한 골이라고는 뉴질랜드전 페널티킥 골 딱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개떡 같은 활약을 보였다. 안토니오 디 나탈레도 문제였다. 그는 세리에 A의 득점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아주리 군단 유니폼을 입고서는 2년째 득점을 하지 못한 선수였다.

또 이번 대회 이탈리아에는 소위 말하는 크랙과 플레이메이커가 없었다. '악마의 재능'이라고 불리는 안토니오 카사노는 비록 멘탈에 문제가 있는 선수였지만 재능은 정말 뛰어난 선수로 이탈리아의 막힌 공격력을 풀어줄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리피 감독은 카사노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 이유만으로 카사노를 발탁하지 않았다. 파브리치오 미콜리는 칼치오폴리 스캔들이 터졌을 때 前 유벤투스 단장이었던 루치아노 모지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은망덕한 선수 취급을 하며 또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반면, 젠나로 가투소 같이 한물 간 늙은 선수들은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로 발탁했다. 한마디로 축구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는 낙인이 찍힌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과 유사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어쨌든 이런 리피 감독의 노장 중용은 결국 처참하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매 경기마다 상대 팀에 선제골을 내주고 시작하는 불리한 경기를 해야 했다. 이 대회에 출전한 이탈리아 공격수들 가운데 제대로 밥값이라도 한 선수는 냉정하게 말해서 슬로바키아전 후반전 45분만 뛰었던 파비오 콸리아렐라밖에 없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공격수들은 모두 형편없었다. 이아퀸타는 그저 쓸데없이 활동량만 높았을 뿐이었고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는 끝까지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개인기만 연발했다. 잠파올로 파치니 역시 그를 뒷받쳐줘야 할 안토니오 카사노가 없었기에 제한된 활약을 했을 뿐이었다. 안토니오 디 나탈레 역시 슬로바키아전에서 기록한 줏어먹기 골을 제외하면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슬로바키아전 45분만 뛰었던 콸리아렐라가 이탈리아 공격수들 가운데 최고의 활약을 보였다. 운이 조금만 따라주었다면 콸리아렐라는 이 경기에서 단 45분만 뛰고도 해트트릭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 콸리아렐라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왜 리피 감독이 콸리아렐라를 선발로 내보내지 않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러한 리피 감독의 보수적인 선수 선발은 막힌 이탈리아의 경기력을 풀어주지 못했고 이는 결국 조별리그 무승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18]


4.2. 잔루이지 부폰의 부상[편집]


두 번째 치명적인 요인은 바로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의 부상으로 인한 이탈이었다. 부폰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골키퍼였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이탈리아에는 그를 대체할 만한 인재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탈리아의 수비 라인은 대부분 노장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심각한 노쇠화 문제로 인해 매 경기마다 꼬박꼬박 실점을 했을 정도로 부실했다. 이런 부실한 수비수들 뒤에 든든한 골키퍼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결과는 좀 더 나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든든한 골키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왔던 부폰이 파라과이전 전반전에서 부상을 입은 것은 아주리 군단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

파라과이전 후반전부터 계속해서 골문을 지킨 골키퍼는 페데리코 마르케티였는데 마르케티는 부폰에 비해 기량이 너무나 형편없었다. 뉴질랜드전에서 뉴질랜드가 기록한 유효슈팅은 단 1개였고 슬로바키아전에서 슬로바키아가 기록한 유효슈팅은 4개였다. 이 유효슈팅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결국 슬로바키아전 유효슈팅 단 1개를 제외하고 모두 실점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19] 4년 전 부폰의 활약이 단 1개의 필드골도 내주지 않을 정도였던 것에 비해 마르케티의 활약은 매우 형편없었다는 것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물론 부폰의 부상 이탈은 마르첼로 리피 감독조차도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폰도 마찬가지로 사람이고 그 역시 얼마든지 부상이나 다른 이유 등으로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즉, 부폰의 대체자를 마련하지 못한 것은 리피 감독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된다. 결국 부폰의 부상과 그로 인한 공백은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탈락으로까지 이어졌다.


5. 각계의 반응과 후폭풍[편집]


당사자인 이탈리아는 당연히 대폭발했다. 이탈리아의 언론들은 "북한보다도 못했다!"[20] 라고 날을 세웠다. 1974년 서독 월드컵 이후 36년 만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분노도 컸지만, 그보다 월드컵 사상 최초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에게 0:1로 패배하는 굴욕을 당했던 그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에도 칠레는 2:0으로 이겨서 1승을 기록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뉴질랜드조차도 못 이기고 2무 1패라는 성적으로 조 꼴등으로 탈락한데다가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월드컵 무승 탈락은 이것이 최초이기에 자신들이 원조 축구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이탈리아 축구팬들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던 것이다[21]. 그 때문인지 대표팀을 비난하는 각 기사에는 “썩은 토마토를 준비해 공항으로 가겠다!”, “이번에도 1966년처럼 밤에 몰래 들어오나 보자!”, “전용 제트기를 타고 도망갈려고?”라는 반응들이 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마르첼로 리피 감독도 말년에 커리어가 대차게 꼬이게 되었다. 이탈리아를 바닥까지 말아먹은 죄목으로 사실상 그는 이때를 계기로 유럽 축구계에서 반쯤 추방되다시피 했다. 이때까지 리피 감독은 선수 시절에나 지도자 시절에나 이탈리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는데, 이번 월드컵에서 대실패를 겪은 탓에 명예회복을 위해 아시아 무대를 두드리게 되었고, 결국 중국으로 가서 광저우 헝다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리피 감독으로서는 괜히 대표팀 감독을 한 번 더 했다가 험한 꼴만 당하게 된 셈이다.[22]


6. 계속되는 카테나치오의 추락[편집]


더 큰 문제는 이 남아공에서의 참사가 끝이 아니라 진짜 이탈리아 축구 2차 암흑기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23]. 리피 감독이 사임한 이후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이 이탈리아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그가 치른 첫 번째 국제 대회인 UEFA 유로 2012에서 이탈리아는 매 경기마다 답답하고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며 고전했지만, 탈락할 듯 하면서도 꾸역꾸역 올라가는 좀비 같은 생명력으로 결국은 준결승까지 올랐다. 그리고 준결승전에서 한창 상승세를 타던 독일을 2:1로 격파하는 이변 아닌 이변을 일으키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지만, 결승전에서는 스페인에게 0:4로 대패했다. 지금까지 패배한 적이 없던 스페인에게 그것도 0:4로 대패를 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지금까지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결승전에서 브라질에게 1:4로 패배할 때 4점을 실점한 것 외에는 어느 A매치에서도 4실점이 없었다. 그야말로 카테나치오/빗장 수비의 명성을 떨치던 이탈리아가 무너진 것이다. 물론 성적 자체로는 준우승을 하면서 2년 전의 망신은 만회했지만, 이탈리아의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카테나치오가 무너지면서 2년 후에 있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도 이탈리아의 월드컵은 꼬일 것이라는 복선과도 같았다[24].

그리고 다음 해인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에서 브라질에게 2:4로 패배했다. 또 4실점이나 했으며, 카테나치오가 정말로 무너졌다는 게 이젠 기정사실일 정도였다. 그러나 멕시코와 일본을 연파하며 2승 1패의 성적으로 4강에 진출했다. 4강전에선 스페인을 상대로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석패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다행히 3위 결정전에서는 우루과이와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승리하여 3위를 차지했다.

그렇게 이탈리아는 컨페드컵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잔여 예선들을 치렀고, 당연하다시피 월드컵에는 갔지만 4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불운의 조편성을 겪고 말았다. 우루과이, 잉글랜드, 코스타리카와 함께 죽음의 조D조에 속해버린 것이다. 일단 코스타리카를 제외한 나머지 3팀은 모두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팀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탈리아는 우루과이와 함께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다.[25]

먼저 이탈리아는 1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2006년 독일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독일을 2:0으로 이긴 뒤 4경기 연속 무승 기록을 끊어내면서 일단 출발은 좋았다. 하지만 2차전에서는 돌풍의 팀 코스타리카가 일으킨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0:1로 패배해 자칫하면 탈락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렸다. 우루과이와 잉글랜드의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이겨 잉글랜드는 탈락이 확정되었고, 3차전 우루과이와의 경기는 그야말로 단두대 매치였다. 물론 이탈리아는 비기기만 해도 골득실차가 우루과이보다 1이 앞서 있어서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으나 후반 13분,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의 다이렉트 퇴장으로 인해 수적 열세를 짊어지는 불운을 겪었고 결국 후반 36분, 우루과이의 코너킥 찬스에서 디에고 고딘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배해 1승 2패에 그치며 또다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탈리아가 2개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1962년 칠레 월드컵 -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2연속 조별리그 탈락 이후 48년 만의 일이었으며, 그 전에 있었던 1950년 브라질 월드컵 - 1954년 스위스 월드컵 2연속 조별리그 탈락을 포함하여 이번이 3번째가 되었다.

그나마 프란델리의 후임으로 임명된 안토니오 콘테가 안정적으로 팀을 잘 수습한 덕분에 UEFA 유로 2016에서는 비록 독일과 승부차기를 가는 끝에 8강에서 멈췄으나 여기까지는 콘테 덕분에 그나마 잘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감독을 잘못 선임하는 바람에 러시아에 아예 가지 못하게 되는 끔찍한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차라리 남아공 때와 브라질 때는 월드컵 본선에라도 가서 골이라도 넣고 승점이라도 얻었지만, 이번 대회 예선에서는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에서 골도 못 넣고 본선에 진출도 못하는 더욱 끔찍한 비극이 터져버렸으니 결과적으로 앞선 두 대회들에서의 비극은 잊혀지게 되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 이탈리아는 G조에 속했는데, FIFA 랭킹이 17위에 그쳤던 탓에 톱시드에서 잘렸고, 하필 같은 조의 톱시드 팀이 스페인이었다. 결국 이탈리아는 스페인의 벽을 넘지 못하며 7승 2무 1패(승점 23점)의 전적으로 조 2위에 그쳐 본선 직행에 실패[26]하고 플레이오프로 가야 했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바로 북유럽의 다크호스 스웨덴이었다. 이탈리아는 1차전 스웨덴 원정 경기에서 후반 15분에 야콥 요한손에게 결승골을 내주어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는 자국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는 반드시 2점 차 이상의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 불리한 입장에 놓이고 말았다. 그러나 정작 2차전 홈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스웨덴의 늪 축구에 시종일관 골탕을 먹으며 0:0 무승부에 그쳐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는 대참사를 겪고 말았고, 결과적으로 이탈리아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런 비극을 만든 잔 피에로 벤투라반성은커녕 오히려 깽판이나 치며 버티다가 결국 경질되어서 일단 급한 불은 껐고,[27] 벤투라의 후임으로 선임된 로베르토 만치니는 이탈리아의 부활을 알리며 UEFA 유로 2020 지역 예선을 10경기 10승 0무 0패 37득점 4실점이라는 깔끔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본선에 올라왔다. 그리고 A매치 34경기 무패와 함께 결승에서 잉글랜드를 승부차기로 꺾고 53년만에 유로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탈리아의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도 계속해서 잘 나가던 이탈리아는 막판 최종전에서 북아일랜드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본선 직행에 또 실패해 이번에도 지난 대회처럼 플레이오프로 떨어졌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 속한 팀들이 터키, 포르투갈, 북마케도니아로써 하나같이 어려운 상대들[28]과 맞대결하게 되어서 재수없으면 2연속 예선 탈락 일보 직전인 상황이다. 더군다나 네 팀 중 카타르에 갈 수 있는 팀은 단 한 팀 뿐이다. 만약 또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면 UEFA 유로 2020 우승은 이탈리아의 부활이 아닌 그저 회광반조(回光返照)에 그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포르투갈과는 맞붙어 보지도 못하고 북마케도니아의 일격을 맞아 결국 탈락하면서 유로컵 우승은 이탈리아의 입장에서는 약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또, 이 예선 탈락으로 인해 이탈리아는 진짜로 2연속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이라는 치욕적인 기록까지 쓰고 말았다.


7. 관련 문서[편집]








[1] 이 2006년 대회의 통산 4번째 우승으로 브라질에 이은 최다 우승국 단독 2위에 올랐었다. 그러나 8년 후, 어느 호구역시 4번째 우승으로 단독 2위의 위치를 반납해야했다.[2] 호주아시아 축구 연맹으로 옮겨간 이후론 사실상 본의 아니게 유일한 제대로 된 국가대표팀이자 최강자가 되었다.[3] 게다가 지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FIFA 랭킹 2위였던 체코를 2:0으로 뭉개버렸다.[4] 스페인은 독일과 비슷하게 이제까지 국제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이탈리아를 이겨본 적이 없는 아주리 징크스를 가지고 있었다.[5] 참고로 당시의 네덜란드는 1974년 서독 월드컵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친 이력이 있다.[6] 이탈리아만 갖고 있는 월드컵 2연승을 전부 같은 감독이 달성했다는 타이틀까지 완벽하게 재현한다. 1934, 1938년의 이탈리아를 우승한 감독은 비토리오 포초 감독이었고, 남아공 때 이탈리아의 감독은 전 대회를 우승으로 이끈 리피 감독이니까 말이다.[7] 이탈리아는 사실 2002년에도 토너먼트 대진은 좋았다. 만약 당시 G조 1위를 이탈리아가 했었다면 16강은 미국, 8강은 독일, 4강은 스페인(혹은 한국), 결승전은 브라질이라는 최상의 대진이었다. 그리고 설령 조 2위를 했어도 16강은 한국, 8강은 스페인, 4강은 독일, 결승은 브라질로 사실상 별 차이도 없는 대진이었다. 물론 한국한테 역전패를 당해서 말짱 도루묵이 되었지만...[8] 만일 이 대진과 다음 월드컵인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과의 대진을 비교해 보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조별리그에서는 우루과이(남미 팀이라 사실상 홈), 잉글랜드, 코스타리카를 만났다. 만약 조 1위로 16강에 간다면 16강은 그리스, 8강은 네덜란드, 4강은 아르헨티나(남미 팀이라 사실상 홈), 결승은 독일이 된다. 독일은 원래 이탈리아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고, 더군다나 결승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그리스 외에는 전부 강팀들이라서 대진이 힘들다. 조 2위를 했다면 16강은 콜롬비아(남미 팀이라 역시 사실상 홈), 8강은 2억 인구로부터 64년 전의 비극의 한을 풀으라고 응원이 아닌 협박을 하고 있는 개최국 브라질, 4강은 독일, 결승은 아르헨티나(사실상 홈)라는 훨씬 더 극악무도한 대진과 비교해보면 이번 대회의 대진이 얼마나 좋은 대진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9] 여담으로 당시 대표팀 평균 연령이 가장 낮았던 나라는 독일로, 24.4세였다.[10] 이게 어떻게 보면 이탈리아를 더 괴롭게 만든 이유가 된 것이기도 하겠는데 비가 오니 당연히 잔디가 물을 머금고 그만큼 선수들의 움직임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셈이다. 더구나 언급한바와 같이 가뜩이나 노쇠화 한 이탈리아 선수들이었고 보면...[11] 페데리코 마르케티가 투입된 이후 이탈리아의 조기 탈락 징조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페데리코 마르케티는 이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었을 때는 별다른 점이 없었으나 그 다음 경기부터 상대의 유효슈팅이 대부분 골로 이어지는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12] 사실 이보다 6년 전인 UEFA 유로 2004 때에도 덴마크 응원단들이 이탈리아전 때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해 심리적 도발을 감행한 사실이 있었다.[13] 사실 스멜츠의 골은 오프사이드였다. 프리킥이 한 번에 깔끔하게 스멜츠에게 간 게 아니라 윈스턴 리드의 머리에 맞고 스멜츠의 발 앞에 갔기 때문이다. 리드의 헤더 패스가 가는 시점에 스멜츠는 이탈리아의 골키퍼 포함 2번째 수비수인 칸나바로보다 한 발자국 앞에 있었다. 그러므로 원칙대로라면 오프사이드인데 부심은 프리킥이 한 번에 넘어왔다고 판단하고 오프사이드 선언을 안했다.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참으로 땅을 칠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14] 이미 언급했다시피 남미 대륙 지역예선을 3위로 마치고 올라온 팀이었다. 남미는 유럽과 같이 세계축구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엄청난 세력을 과시하는 지역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그리고 칠레가 지역을 양분하고 있는 이 엄청난 세도가 집안에서 3위를, 그것도 거의 2위나 다름없는 실력을 갖고 오른 팀이니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15] 그리고 그 한국은 8년 뒤, 세계를 놀라게 한 대사건을 만들어 다시 한번 약팀들의 희망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세계축구의 최약체인 아시아팀이 디펜딩 챔피언을, 그것도 2연패를 할 유력한 강호로 뽑힌 팀을 조별리그, 그것도 최하위로 탈락시킨 최초라는 명예로운 타이틀까지 가져다줬다.[16] 그 2실점도 1개는 자책골이었고 나머지 1개는 페널티 킥이어서 단 하나의 필드골 실점도 없었다.[17] 실제로 보누치는 칸나바로가 은퇴한 이후 아주리 군단의 주전 센터백으로 도약해 2018년 현재도 활약하고 있다.[18] 이후 2014년 스페인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과 2018년 독일요아힘 뢰프 감독도 이와 비슷하게 보수적인 선수 선발을 하다가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봤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이 두 팀은 그래도 1승은 거뒀다는 점이다.[19] 이탈리아의 상대 팀 전체 유효슈팅 및 이탈리아의 전체 실점(5실점)을 모두 포함한 기준으로 계산해봐도 잔루이지 부폰이 있었을 때의 실점은 파라과이전의 1실점 하나 뿐이며, 나머지 4실점은 모두 페데리코 마르케티가 있었을 때의 실점이다.[20] 북한은 비록 포르투갈에게 0:7로 대패한 탓에 남아공 월드컵의 최종 순위에서 꼴찌를 했지만, 브라질에게 1:2라는 얼마 안 되는 스코어로 석패하는 이변을 연출했다.[21] 게다가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 전 경기를 선제골을 허용한 최초의 대회라는 기록을 남겼다.[22]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브라질을 5번째 우승으로 이끌었던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도 자국의 월드컵에서 또 한번 자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가 정말 월드컵 역사에 길이남을 정도의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다.[23] 남아공 월드컵에서 똑같이 참사를 겪었던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달리 완벽한 세대교체 성공 + 나쁘지 않은 감독 선임의 힘으로 UEFA 유로 2016 준우승 -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우승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준우승이라는 호성적을 이어가며 현재 세계 최강의 팀이 되었다.[24] 이 역시 어떤 의미로 본다면 차후 이탈리아 축구를 이끌고 나갈 신진 유망주들의 발굴이 없었던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는데, 칼초폴리 이후 이탈리아 축구계가 쇠퇴기를 겪으며 경제적으로도 시달렸던 까닭에 선수 육성이 제대로 되지 못한 탓도 크다. 그나마 유벤투스인터 밀란 같은 이탈리아 프로축구 명가들이 재기에 성공하면서 숨통이 트여지긴 했으나, 아직까지 자국 출신 유망주의 육성은 더딘 편이다. 현재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 출신 유명 선수들이라고 하면 잔루이지 돈나룸마니콜로 바렐라 뿐일 정도다.[25] 당시 조 편성 결과를 두고 오히려 많은 축빠들이 코스타리카가 너무 불쌍하다고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하다못해 1승이라도 할 수 있겠냐란 우려도 많았던데다 조에 들어온 팀들 하나하나가 모두 괴수급들이라 조별리그 통과는 고사하고 전패만 당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라고 여긴 팬들이 대다수였다.[26] 그나마 G조 내의 경기들도 경기력이 별로 좋지 않았다.[27] 한편 벤투라의 이런 짓거리 때문에 전임자 콘테는 평판이 더욱 올라갔다.[28] 이탈리아와 다른 두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북마케도니아가 그나마 넷 중 가장 전력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역예선에서 독일까지 잡는 파란을 선보인 걸 보면 마냥 약체라고 깔볼 수가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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