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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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수학적 성질
2. 날짜
3. 교통
4.1. KIA 타이거즈 암흑기의 기록
4.1.1. 588의 원조?
4.1.2. 관련 문서
6. 문화재
7. 기타

588 = 22×3×72
  • 읽는 법: 오백팔십팔
  • 세는 법: 오백여든여덟
  • 한자: 五百八十八
  • 로마 숫자: DLXXXVIII

1. 자연수[편집]


587보다 크고 589보다 작은 자연수. 합성수로, 소인수분해하면 22×3×72이다.


1.1. 수학적 성질[편집]


  • 약수는 총 18개[1]며, 이들의 합은 1596(>1176=2×588)이므로 588은 과잉수다.
  • 145번째 하샤드 수로, 앞 수는 576, 뒷 수는 592이다.


2. 날짜[편집]




3. 교통[편집]


  • 588번 버스
    • 인천 버스 588
    • 서울 버스 604 : 구 588번. 이 버스의 기점이 화곡동의 랜드마크이다.[2] 까치산역 인근에서 588이라 하면 다 알아듣는다.


4. 야구 관련 기담[편집]



4.1. KIA 타이거즈 암흑기의 기록[편집]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이어졌던 기록. 원래 문서명은 588이었다가 2015년에 7위를 하면서 5887으로 연장됐다. 그 뒤 2016년 와일드카드에 올라가면서 청산했고 2017년에 우승, 2018년에도 와일드카드에 올라가면서 확실하게 암흑기를 탈출하나 싶었지만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769를 찍는 등 다시 암흑기에 진입하고 있다. 다행히도 2022년에 5위를 했지만 와일드카드에서 광탈하고 말았다.[3] KIA 타이거즈/역사 문서 참조.


4.1.1. 588의 원조?[편집]


롯데 자이언츠의 1996~1998시즌 성적도 588이다.

김용희 감독 시절 찍은 비밀번호인데, 이 시절 롯데 구단은 지원도 제대로 안 해줬던 막장인걸 생각해보자. 이 시절 롯데 구단은 염종석에게 안식년을 주자던 강병철 전 감독의 말을 무시하고 염종석을 신인시절을 빼면 10승은 평생 못하던 선수로 전락시킨 원흉이었으며, 마해영선수협 주동자란 이유로 삼성으로 쫓아낸 짓을 저지른 걸 감안해야 한다.

또한 염종석윤학길,박동희가 줄부상을 당해서 투수진이 망한 데다, 펠릭스 호세라는 특급타자가 없었고, 마해영임수혁은 이 시기만 해도 공갈포였기에 좋은 성적을 내기는 힘들었다.[4]

그리고 선동열 체제에선 58억 원을 써서 김주찬도 영입하고 선 감독이 원하는 코칭스태프 다 맞추어 주고 심지어 심판에게 돈을 주었는데도, 진해수, 김희걸 등의 젊은 불펜 투수들이 팀을 나가서 재능이 폭발하는 것과 최희섭, 이종범, 안치홍과의 갈등, 또한 투수를 겨우겨우 사와서 말년에 혹사시킨 것, 그리고 외야진의 줄부상을 대비 못하고 성적을 못 낸 케이스라, 김용희 감독보다도 선동열 감독의 능력이 더 나쁘다.

그 외에 8888577의 시작도, 2000년 5위가 있으니 정확하게 보면 58888577이지만 양대 리그 때문에 한쪽 리그가 너무 강해지는 일이 일어나서 5위가 가을야구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긴 했어도 포스트시즌 진출을 했으니 제외.


4.1.2. 관련 문서[편집]


롯데 자이언츠 : 1996~1998년 588, 2001~2007년 8888577, 2013년~2016년 5788
LG 트윈스 : 2003~2012년 6668587667
한화 이글스 : 2008~2017년 5886899678
넥센 히어로즈 : 2008~2012년 76786


5. 청량리 588[편집]


해당 문서 참조.


6. 문화재[편집]




7.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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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2, 3, 4, 6, 7, 12, 14, 21, 28, 42, 49, 84, 98, 147, 196, 294, 588.[2] 단 차고지는 양천구 신월1동 소재이며, 현재도 588 종점이라는 지명으로 유명하다.[3] 즉 2012~2022년의 11년 동안 58875157695, 즉 2017년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5위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4] 다만 임수혁은 95, 96년 2할 9푼과 3할 1푼을 치며 중장거리 형 타자 중에서 가장 정교하다는 평을 얻었다. 97, 98년의 경우 부상으로 장타력만 살아 있었지만 공갈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