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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처참한 역사 1(6366677 시절)
2.1. 1982년: 슈퍼스타 없는 슈퍼스타즈, 최악의 승률 0.188.
2.2. 1983년: 슈퍼 괴물 너구리를 앞세운 인천의 봄.
2.3. 1984년: 퍼져버린 너구리, 다시 추락한 삼미
2.4. 1985년: 치욕의 18연패, 눈물의 구단 매각
2.5. 1986년: 신생팀 덕에 탈꼴찌
2.6. 1987년: 막내에게도 밀리는 만년 꼴찌
2.7. 1988년: 간판이 바뀌어도 또 꼴찌 신세
2.8. 1989년: 돌풍의 돌핀스, 비밀번호를 끊어내다
3. 처참한 역사 2(5568 시절)
3.1. 1990년: 포스트시즌의 기쁨도 잠시...
3.2. 1991년: 올해도 아쉽게 5위를 하다
3.3. 1992년: 올해도 탈락했다 내년에도 탈락할까
3.3.1. 1992년: 프로야구 수립 10년 동안 삼청태와 다른 팀과의 비교
3.3.1.1. 삼청태와 다른 팀들의 포스트시즌 진출 횟수
3.4. 1993년: 5년 만에 꼴찌로 돌아가다
3.5. 1994년: 첫 한국시리즈
4. 1995년~2007년: 태평양의 말로와 현대의 전성기의 시작, 그리고 비운의 해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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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KBO 리그인천광역시 연고팀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이하 삼청태)가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찍은 KBO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꼴찌 빈도가 높은 최악의 비밀번호이다. 롯데의 4/7(8888577), LG의 1/5 (6668587667), 한화의 1/2(5886899678)을 뛰어넘는 5/7(6366677)의 빈도 높은 꼴찌율을 자랑한다... 올드 삼청태 팬들의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비밀번호 중 6366은 삼미가, 6[A]67은 청보가, 7355682는 태평양 시절 찍은 비밀번호다.


2. 처참한 역사 1(6366677 시절)[편집]



2.1. 1982년: 슈퍼스타 없는 슈퍼스타즈, 최악의 승률 0.188.[편집]


6366677/3/5568/2. 승률 0.188, 팀 평균자책점 6.23[1]

야구가 처음 전래된 도시 인천의 명예를 걸고 야심차게 출범한 삼미 슈퍼스타즈는 창단 첫 해부터 망신을 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팀 이름만 슈퍼스타즈였고 정작 야구팬들이 알만한 슈퍼스타는 양승관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슈퍼스타 없는 슈퍼스타즈가 된 셈. 시즌 통합 성적이 15승 65패, 승률 0.188이었는데 당시 5위였던 롯데 자이언츠의 승률이 0.388이었다. 기별 리그 성적은 더 처참한데 전기리그에서 10승 30패, 승률 0.250였고 후기리그에서 5승 35패, 승률 0.125(...)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 OB 베어스에게 시즌 16경기 전패를 당했다는 것은 덤.

자세한 내용은 한국프로야구/1982년 참고.


2.2. 1983년: 슈퍼 괴물 너구리를 앞세운 인천의 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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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의 짧은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부흥기. KBO가 재일교포 선수 영입을 허용하면서 일본에서 뛰던 장명부이영구를 데려왔고 인천고 출신 국가대표 투타 주역이던 임호균-김진우가 입단하면서 팀의 전력이 상승했다. 특히 에이스 장명부가 시즌 30승이라는 괴력을 발휘한 덕에 전기 2위, 후기 2위, 통합 성적 3위를 차지했다. 21세기의 규정대로라면 가을야구 진출은 따놓은 당상이었겠으나 당시는 전기·후기리그 1위팀만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던 시절이라 가을야구에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러나 1983년 인천의 영웅이었던 장명부는 이 해의 혹사 탓에 이듬해부터 비밀번호를 늘리는 원흉이 되고 말았다. 한국프로야구/1983년 참고.


2.3. 1984년: 퍼져버린 너구리, 다시 추락한 삼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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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해 무려 60경기 427.1이닝[2] 마운드에서 굴렀던 장명부가 직전해의 혹사 영향으로 부진에 빠졌고 덩달아 팀도 원년의 모습으로 회귀하면서 다시 꼴찌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즈음부터 모기업 삼미그룹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한국프로야구/1984년 참고.


2.4. 1985년: 치욕의 18연패, 눈물의 구단 매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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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서 무려 디펜딩 챔피언의 에이스 최동원을 무너뜨렸지만 거기까지였다. 다음 날인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 무려 한 달 가까이 내리 패하는 바람에 39년이 지나도록 깨지지 않는 단일 시즌 최다연패 (18연패)라는[3] 치욕의 기록을 세웠다. 팀 성적은 당연히 부동의 꼴찌.

구단의 성적이 이처럼 급전직하 했던 것에는 모기업 삼미그룹의 경영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초 제2차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삼미그룹의 주력 업종이던 해운업이 불황을 겪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룹의 상징과도 같던 삼일빌딩과 삼미해운을 제3자에 매각해야 했고 이에 그치지 않고 야구단마저 청보식품에 매각했다.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구단 매각 사례. 당시 김현철 구단주는 야구단 매각 도장을 찍은 날 밤 아쉬움을 못 이겨 대성통곡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청보식품으로 매각이 됐다고 해도 이름만 청보 핀토스로 바뀌었을 뿐 전기리그 꼴찌를 만든 사람은 그대로여서(...) 후기리그에서도 이렇다 할 반전 없이 또 꼴찌를 하고 말았다. 한국프로야구/1985년 참고.


2.5. 1986년: 신생팀 덕에 탈꼴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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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최초의 확장 구단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면서 청보와 꼴찌 다툼을 했으나 도긴개긴 수준. 결국 청보보다 경험치가 적었던 빙그레가 꼴찌를 하면서 청보는 6위가 되었지만 내용만 놓고 보면 1985년보다 더 형편없어졌다. 기별 리그로 따져도 전기리그 꼴찌는 빙그레였지만 후기리그 꼴찌는 청보의 차지였다. 한국프로야구/1986년 참고.


2.6. 1987년: 막내에게도 밀리는 만년 꼴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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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가 6위를 하고, 청보가 꼴찌를 하면서 굴욕적인 꼴찌를 하였다. 신생팀에게 뒤지는 게 얼마나 굴욕적이냐면 1991년의 OB 베어스, 2013년의 KIA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를 생각해보면 빠르다.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전년도 우승팀인 LG 트윈스와 공동 6위를 했고, 2013년 NC는 7위를 기록함으로써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OB, KIA와 한화는 신생팀에게마저 뒤지는 팀이라는 굴욕을 겪었다.

그리고 슬픈 역사가 반복되는 바람에 이 시즌 중부터 그룹 모기업인 풍한방직과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못 만들던 청보식품이 경영난을 겪는 바람에 팀 안팎이 어수선했다. 결국 1987년 시즌 종료 후 태평양화학으로 구단이 또 매각됐다. 이로써 삼청태는 모기업이 두 번 이상 바뀐 유일한 구단이 되어버렸다.[4] 한국프로야구/1987년 참고.


2.7. 1988년: 간판이 바뀌어도 또 꼴찌 신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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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와 청보보다는 인지도도 높고 재무 상태도 훨씬 탄탄한 태평양화학이 야구단의 새 주인이 됐지만 꼴찌 근처를 맴돌던 팀의 전력은 변화가 없었다. 결국 이 해 태평양은 0.319의 승률을 기록하며 2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한국프로야구/1988년 참고.


2.8. 1989년: 돌풍의 돌핀스, 비밀번호를 끊어내다[편집]


6366677/3/5568/2.

1983년 이후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인천야구의 부활기. 새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의 용병술과 박정현-정명원-최창호 등 신예 투수 3총사가 돌풍을 일으키며 페넌트레이스 최종 성적 3위를 기록해 인천야구 역사상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동시에 비밀번호도 끊었다. 자세한 건 한국프로야구/1989년 참고.


3. 처참한 역사 2(5568 시절)[편집]


참고로 5568은 비밀번호 조건에 해당하지 않지만 번외로 기록하였다.

3.1. 1990년: 포스트시즌의 기쁨도 잠시...[편집]


6366677/3/5568/2, 1990년, 태평양은 전년도 순위인 3위에서 두 계단 내려간 5위를 함으로써 제2의 흑역사로 남게 될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해부터 1993년까지는 태평양이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실패해 또 다시 고통스런 4년을 보내게 된다. 한국프로야구/1990년 참고.

3.2. 1991년: 올해도 아쉽게 5위를 하다[편집]


6366677/3/5568/2, 작년과 같이 또 5위를 하며 2연속 목메달(당시는 4위까지 포스트시즌을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5위)을 찍고야 말았다.한국프로야구/1991년 참고.

3.3. 1992년: 올해도 탈락했다 내년에도 탈락할까[편집]


6366677/3/5568/2, 1992년, 태평양은 동네북의 면모를 보여주며 6위를 했다. 한국프로야구/1992년 참고.

3.3.1. 1992년: 프로야구 수립 10년 동안 삼청태와 다른 팀과의 비교[편집]



3.3.1.1. 삼청태와 다른 팀들의 포스트시즌 진출 횟수[편집]

  • 우승한 해는 굵게 표시한다.
그 동안 OB는 3번(1982, 1986, 1987), 삼성은 10번(1982, 1984, 1985[5],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2)[6] 빙그레는 5번(1988, 1989, 1990, 1991, 1992)[7], MBC(LG)는 2번(1983, 1990), 해태는 8번(1983,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2), 롯데는 3번(1984, 1991, 1992), 태평양은 10년 동안 겨우 1번(1989) 진출했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1992년 당시의 창단 2년차 쌍방울(포스트시즌 기록 없음)이 삼청태를 능가하는 동네북이었다는 점이다.

3.4. 1993년: 5년 만에 꼴찌로 돌아가다[편집]


6366677/3/5568/2, 1993년, 계속 순위가 떨어진 태평양은 5년 만에 꼴찌로 추락했다. 한국프로야구/1993년 참고.

3.5. 1994년: 첫 한국시리즈[편집]


6366677/3/5568/2,1994년, 태평양은 2위를 하며 인천야구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준우승을 했다. 이 기록은 현대 유니콘스가 세워진 첫 해인 1996년, 준우승을 하며 타이기록을 세웠고 1998년 인천야구 사상 첫 우승을 했다. 한국프로야구/1994년 참고.

4. 1995년~2007년: 태평양의 말로와 현대의 전성기의 시작, 그리고 비운의 해체[편집]


1995년, 태평양은 .401의 승률을 기록하며 7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태평양 돌핀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6년부터는 현대 유니콘스가 들어오며 현대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위 항목에서도 언급했듯이 현대는 1998년 인천야구 사상 첫 우승을 하였다. 그 후 2000년, 2003년, 2004년 우승함으로써 현대는 당대 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하였으나 현대그룹 왕자의 난으로 인한 계열사 분리와 정몽헌 회장의 별세로 인해 결국 2007년 해체되며 호흡기를 떼고야 말았다. 6366(삼미)/6[*A ]67(청보)/73556827(태평양)/261513411736(현대)을 기록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5. 관련 문서[편집]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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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6이 한 번 더 들어간 이유는 1985년 중 전기리그는 삼미, 후기리그는 청보가 했기 때문이다.[1] 이 기록은 30년 넘게 지나서 2013년 한화 이글스가 팀 평균자책점 6.35를 기록하며 깨졌다. 그래도 6점대의 팀 평균자책점은 당시 삼미의 투수진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끝없이 고통 받는 한화 투수진[2] 당시 한 시즌 팀당 경기 수는 100경기였다.[3] 2020년 한화 이글스가 이 기록을 깰 뻔 했으나 타이 기록을 세우는 것에서 멈췄다.[4] 비슷한 예로 2008년부터의 우리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키움 히어로즈를 둘 수가 있겠으나 여기는 구단을 통째로 소유하는 모기업이 아니라 명명권만 구입한 경우이기 때문에 삼청태현과 동일시할 순 없다. 그러한 연유로 2021년 현재까지도 KBO 역사상 모기업이 두 번 이상 바뀐 유일한 구단이다. 다른 구단들은 모기업이 바뀌지 않았거나 한 번만 바뀌었으며, 쌍방울 레이더스-SK 와이번스-SSG 랜더스, 현대 유니콘스-우리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키움 히어로즈의 경우에는 구단의 지분을 그대로 인수인계하는 방식이 아닌 해체 후 재창단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해당할 수 없다.[5] 단, 이 당시엔 삼성이 전/후기 통합우승을 한 해이다.[6] 참고로 이땐 삼성만 1983년을 제외하고 1992년까지 계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7] 심지어 빙그레는 원년 창단팀도 아닌 1986년에 창단한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