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B48/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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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편집]


神7

AKB48총선거에서 상위 1~7위를 차지한 멤버들을 지칭하는 단어.

카미7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설은 제1회 총선거와 제2회 총선거의 1~7위 멤버들이 순위만 다를 뿐 그대로였는데, 이 7명의 인기가 넘사벽으로 많은 것을 지칭하기위해 당시 일본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카미(神)[1]를 붙여 카미7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AKB48의 첫 극장공연에서 관객이 7명이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スカート、ひらり(스카히라)를 부른 7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퍼졌는데 스카히라7은 일본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스카히라가 카미7을 상징하는 곡이 된 것은 제1회 총선 이후 2009년 8월 무도관 콘서트, 2010년 리퀘아워 등에서 원조 카미7(구카미)가 스카히라를 불렀기 때문이다.

제3회 총선거부터 카미7의 멤버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후에도 '총선거 7위 이내 멤버 = 카미7'이라고 부르며, 카미7에 든다는 것은 AKB그룹의 중심에 서는 진정한 인기 멤버라고 여기게 되었다. 참고로 노기자카46복신은 이 카미7을 오마주한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대중들과 미디어가 말하는 카미7은 원조 카미7 마에다 아츠코, 오오시마 유코, 시노다 마리코, 와타나베 마유, 코지마 하루나, 타카하시 미나미, 이타노 토모미 7명을 지칭한다. 미야와키 사쿠라도 HKT48 7주년 기념 라디오 방송에서 첫 공연을 회상하며 "마에다 상도 있었고, 카미7도 있던 시대"라는 표현을 썼고, 대중매체에서 AKB48의 전성기를 '카미7시대'(神7時代)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총선거 제도는 사실상 폐지되었으며, 목록의 대부분의 멤버들은 이미 졸업을 하였고 마지막 남은 한명의 현역 멤버도 졸업을 발표할 시점이라 카미라는 단어도 구시대의 산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2. 멤버 변화[편집]


상위권 멤버의 총선거 성적.
- 졸업 발표, 불출마 등으로 해당 연도가 마지막 총선거
카미7 첫 진입 멤버는 굵은 글씨로 표시



2.1. 제1회 총선거(2009) - 제2회 총선거(2010)[편집]



2009년 6월 첫 번째로 실시한 1회 총선거에서 1~7위를 차지한 멤버들은 타 멤버들에 비해 압도적인 인기를 가졌고, 이후 모든 콘서트와 미디어 활동의 중심축이 되며 AKB48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다만 이 시기에는 카미7이란 표현은 쓰이지 않았다.

2010년에 두번재로 치러진 2회 총선거, 7위 안에서의 순위 변동만 있었을 뿐 멤버 자체의 이탈은 없었다. 이는 여타 AKB48 멤버들에 비해 이들 7인이 가지는 인기와 인지도가 뚜렷한 우위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 결과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의 각 미디어에 서는 절대로 깨지지 않을거라 예상한 이 7인의 조합을 '카미7(神7)'이라는 칭호로 부르기 시작했다. 팬들은 지네들끼리 다해먹고 짤릴일 없다고 철밥통 7으로 불리기도 했다

보통 AKB의 카미7이라고 하면 이때의 카미7을 말한다. 그야말로 AKB의 최전성기에서 중심에 서있었던 핵심 멤버들.

원조 카미7(구카미)는 2012년 8월 27일 마에다 아츠코를 시작으로 졸업하기 시작했으며 2017년 12월 31일 와타나베 마유를 마지막으로 전원 졸업했다.


2.2. 제3회 총선거(2011)[편집]



이타노 쇼크

파일:201148.jpg

IN

카시와기 유키(첫 진입/3위)

OUT

이타노 토모미(8위)

결코, 7위까지는 깨지지 않을거라 생각해 미디어에서는 이들을 카미7(神7)이라 부르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2011년 3회 총선거에서 작년 8위 었던 카시와기 유키가 많은 사람의 예상과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3위라는 무시무시한 이변을 낳고야 말았다.[2]

2011년 초의 싱글 Dear J로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한 이타노 토모미는 엄청난 인지도를 쌓고 라이트 팬층을 확보하여 예상 순위를 2~3위로 거론하였지만 이변의 8위로 대하락, 즉 카미7에서 광탈당하는 충격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이렇게 3회 총선거 결과로 카미7의 멤버가 바뀌게 되었지만 그 이후로 이 7인의 조합이 카미7의 상징인 스커트 히라리(スカート、ひらり)를 공연하는 일은 없었고, 더욱이 8위인 이타노 토모미는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를 무시할 수 없는 것과 더불어 호리프로 라는 거대 소속사의 영향 어른의 사정으로 운영진으로부터 전과 다름없는, 오히려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3]

따라서 총선거 상위 8명이 AKB48의 중심이 되어 카미7의 +1 개념인 카미8(神8)이 된 것이 아니냐 라는 말도 있었고,[4] 8인의 조합으로 콘서트에서 夕陽を見ているか?를 공연한적도 있지만 항목을 석양 8으로 바꿔야 할 기세 여전히 '카미7'을 AKB48의 인기멤버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것은 변함없었다.

2.3. 제4회 총선거(2012)[편집]



여왕의 독주

파일:201248.jpg

IN

사시하라 리노(첫 진입/4위)

OUT

마에다 아츠코(졸업)

2012년 6월 6일에 4회 총선거가 치러지기 전 자신의 졸업을 예고한 마에다 아츠코가 총선거 불출마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윽고 치러진 4회 총선거 결과로 작년 2위였던 오오시마 유코가 그대로 1위로 안착했다. 실제로 2위인 와타나베와 3위인 카시와기가 7만표 초반대의 표수를 냈고, 오오시마 유코는 혼자 10만 8천이라는 엄청난 격차를 벌이면서 가볍게 1위를 거머쥐었다. 영원한 라이벌 마에다가 빠져서인지 4회 총선거는 3회 총선거에 비해 열기가 사그라들기도 했다. 실제로 유코 표수가 12만 2천에서 큰 폭으로 감소하기도 했는데, 라이벌 페어 시너지 효과가 수익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로 남았다. 이는 오오시마가 빠진 6회 총선거에서도 되풀이됐다.

또,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의 광푸쉬와, 헤타레 캐릭터로 인기가 급상승한 사시하라 리노가 총선거 4위에 랭크되어 새로운 카미7의 멤버가 될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한달 채 되지도 않아 주간문춘에서 과거 남자 팬과의 스캔들이 밝혀졌고 심야 라디오방송인 AKB48のANN(All Night Nippon)에서 2012년 6월 15일부로 HKT48로 사실상 좌천됐다.사시하라 리노 해명과 아키모토 야스시의 HKT48 이적 발언. 이로써 떡잉여 생존왕모드 발동. 때문에 마에다 아츠코의 졸업으로 인한 카미7의 공석은 한때 카미7 멤버였던... 이타노 토모미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새롭게 결성된 카미7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의 커버 촬영을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사진

카미7이 AKB48의 상징이자 얼굴이 되어 정상급의 인기 아이돌 그룹이 된것에 큰 공헌을 하였지만, 반대로 이들을 중심으로 각종 미디어의 스포트 라이트와 여러 활동등이 집중된 탓에 여타 AKB48 멤버에 비해 인기와 인지도의 차이가 넘사벽 급으로 커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점이 현재 AKB48 수명 연장의 수단인 세대교체를 가로 막는 벽이 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때문에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와 운영진측은 2012년 8월에 신내각 조성안을 발표하였고, 이를 계기로 카미7의 최연소 멤버인 와타나베 마유를 필두로 SKE48의 에이스 마츠이 쥬리나, NMB48 에이스 또는 조련꾼 와타나베 미유키, 그리고 9기 시마자키 하루카 등을 내세운 차세대 에이스를 밀고자 하는 의지를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카미7의 주축 멤버이자 최연장자이신 이 분은 "자리를 양보해줘야지 비로소 위로 올라가는 멤버는 AKB48에 있을 자격이 없다"며 결국 강력한 차세대 라인이 힘을 합쳐 쫓아낼 때까지는 30살 까지 졸업하지 않을 생각인듯 하고하지만 1년뒤에 졸업했지.., 다른 멤버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을 표명한바 있다. 그 이유는 현 AKB48안에서 활동하는 것이 자신의 인기 유지와 인지도 향상에 있어서 졸업으로 홀로서기 할 때보다 큰 메리트가 있다는 인기 멤버 자신과 기획사의 판단 때문. 참고로 AKB48은 멤버마다 제각기 다른 기획사에 소속되었다.

게다가 역대 아이돌 그룹의 세대교체와 관련한 팬들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이미지가 올드해 지더라도 인기멤버가 계속 활동하길 바라는 마음이 큰 경향이 있고, 지나친 세대교체 시도는 결국 그룹 이미지 저하라는 옆동네뼈아픈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AKB48 세대교체가 완전히 이루어 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2.4. 제5회 총선거(2013)[편집]



정체와 변화

파일:201348.jpg
좌측부터 마츠이 쥬리나 시노다 마리코 와타나베 마유
사시하라 리노 오오시마 유코 카시와기 유키 마츠이 레나

IN

마츠이 쥬리나(첫 진입/6위), 마츠이 레나(첫 진입/7위)

OUT
[5]
타카하시 미나미(8위), 코지마 하루나(9위)

이후 개최된 5회 총선거에서 다시 변화의 흐름이 보였다. 4회 총선거에서 4위에 랭크되었으나 스캔들로 인해 HKT48로 좌천당한 사시하라 리노가 경악의 속보결과에 힘입어 결국 최종 1위 자리에 등극하였다. 2위인 오오시마 유코에 비해 1만표 이상 차이나는 결과라 뭐라 더 할 말이 없을 지경. 누구는 진격의 사시하라라 카더라.

그 동안 AKB의 주된 라이벌 구도였던 마에다 vs 오오시마 에이스 경쟁 체제에서 마에다가 졸업한 이후 오오시마 독주 체제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고, 이 독주에 대항할 멤버는 차세대 센터로 밀려고 하는 와타나베 혹은 카시와기 정도라고 예상되었지만 결국 오오시마를 밀어낸 것은 사시하라. 물론 삿시 자신도 푸쉬를 어느 정도 받은 데다가 본인의 예능감을 겸비한 노력도 물론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압도적으로 치고 올라갈 줄은 몰랐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시하라 본인은 돗키리(몰카)인줄 알고 울지도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시노다 마리코가 5위에 랭크되었고, 이후 졸업할 것을 발표하였다. 또한 기타 다른 카미7 멤버인 코지마 하루나, 타카하시 미나미의 하락세 및 이타노 토모미의 졸업에 발맞추어 AKB48이 아닌 SKE48의 두 에이스, 마츠이 쥬리나마츠이 레나가 굳건하게만 보였던 카미7의 벽을 박살내고 각각 6,7위에 랭크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기 오리멘들이 이제 거의 대부분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가며, 이에 따라 그들이 중심에 서 있던 철밥통 카미7 체제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라는 이야기.

그러나 타카하시 미나미코지마 하루나의 그야말로 신급 절대적 인지도나 푸시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닌데다가 이타노 토모미시노다 마리코가 졸업하는 마당이라 공석이 두 자리가 생겨 타카하시와 코지마는 어찌되었던 카미7에 다시 포함될 예정이기 때문에, 토모찡 때가 떠오르는 카미들의 생존본능 이들이 카미에서 내려왔다고 하기에는 곤란한 감이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네티즌은 "카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늘어날 뿐이다"라는 평을 했다.#

여기에 시마자키 하루카의 아쉬운 뒷심부족 역시 카미7 체제의 변화를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부분. 그 동안의 광푸쉬에 힘입어 속보에서 7위를 차지하자 설마 파루루가 카미7에 입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설레발말도 나왔지만, 결국 최종 결과는 12위로 마감. 물론 차세대 멤버로서 미디어 선발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 동안 운영진에서 세대교체 명목으로 에이스로서 밀어준 것을 생각하면 그 이상의 결과도 기대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부족했다는 평이다.

결국 현재의 카미7 체제는 카미가 좀 더 늘어난 채로 혹시나 했던 거대한 지각변동 없이 앞으로도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이번 총선거에서 운영진이 기대했던 세대교체는 일말의 가능성만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총선거를 거친 이후 일본의 미디어에서는 '카미7', 또는 '카미'라는 표현이 쓰이는 빈도가 줄고 있다.

2.5. 제6회 총선거(2014)[편집]



오오시마 유코, 시노다 마리코, 이타노 토모미 등 주요 멤버들의 잇단 졸업 이후, 16위권 이내의 표 수가 줄어드는 등 전체적으로 선거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코지마 하루나와 타카하시 미나미는 결국 7위권 복귀를 이루지 못했고, 시마자키 하루카, 야마모토 사야카가 새롭게 7위권에 들었다. 하지만 이제 '카미'란 총선 상위권 인기멤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고, 여전히 꽤 사용되고는 있으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는 일상어(?)가 되었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카미7 철밥통은 깨질 것인가?'보다는 '누가 카미7에 새롭게 들어올까?'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각 언론계에서는 역대로 심심했던 총선거라는 제목으로 언플을 하기도 했다.

2.6. 제7회 총선거(2015)[편집]


기존 카미7였던 타카하시 미나미가 4위로 복귀했다.

코지마 하루나가 총선에 불출마하고 마츠이 레나도 금년 8월 졸업으로 인해 총선거에 불참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카미7의 공석이 한 자리가 비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 타카하시 미나미미야와키 사쿠라 중 한 명이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회 7위였던 시마자키 하루카가 9위로 떨어지는 바람에[6] 타카미나, 사쿠라 두 사람 다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총선 사회자 두분께서는 올해도 그놈의 카미7 드립을 기어코 하게 됐다. 그런데, 아무리 5회, 6회 총선거에서부터 카미7의 의미가 점점 약화되어간다한들 오래 전부터 쓰여온 용어라 사어가 되긴 쉽지 않을뿐더러 아직까지도 상위 멤버들끼리는 카미7이라는 슬로건을 많이 의식하고 있는듯 하다. 총선에 불참한 코지마 하루나는 총선 생중계 방송인 후지TV에서 한 순위 차로 8위를 한 미야자와 사에에 대해 반사적인 아쉬움을 드러냈고, 미야와키 사쿠라는 7위가 확정되자마자 크게 감격하였다.

세대 교대의 바람은 3년 전부터 작위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최근에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3년 전에 세대 교대에 반열에 올라 있던 차세대 멤버들도 그대로 3년이라는 나이를 먹게 되어 지금은 차세대 멤버로 분류할 수 없게 되는 상황까지 초래했다. 예를 들어 93년생인 야마모토 사야카가 나이때문에 그러한 케이스였고, 비슷한 나이대인 와타나베 마유도 39th 싱글부터 차세대 멤버에서 독립시켜버렸다. 그러나 같은 94년생인 시마자키 하루카는 아직도 차세대인 모양?

그리고 현재 카미7에 도약한 차세대 분류 멤버들이 아직까지 왕언니 3인방을 넘지 못한 채 오히려 더 큰 벽에 치닫게 되었다. 같은 카미7 멤버인데도 어찌나 벅찼는지 야마모토 사야카는 상위 3인이라는 말을 따로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사시하라 리노(1위), 카시와기 유키(2위), 와타나베 마유(3위)가 속한다. 이들은 무려 4년 동안 자기들끼리 4위 안에서 순위를 돌려먹기 하고 있다.

상위 3인 멤버들의 순위 변화
멤버
2012
2013
2014
2015
와타나베 마유
(3기생)
2
3
1
3
카시와기 유키
(3기생)
3
4
3
2
사시하라 리노
(5기생)
4
1
2
1
사실 철밥통 7인, 카미7이라는 용어의 기원 자체가 1, 2회 총선에서 그들끼리 자리가 바뀌지 않아서 생긴 용어인데, 단 2년 만인 3회 총선에서 무너졌다. 이를 감안하면 4년 돌려먹기라는 공세는 엄청난 수준. 실상 졸업 멤버 오오시마 유코를 제외하면 이들은 4년 동안 4위 안에서 서로의 순위를 바꿔치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벽은 나날이 더욱 두터워지고 내년 총선 언플 떡밥 졸업을 요구하기엔 이 셋이 빠지면 약 540,000이라는 표수가 공중 분해 돼 버리기 때문에 운영진 입장에서도 수익 문제로 순탄치 않을 것이다.[7]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제2의 AKB드립을 치고 있는데, 여러모로 세대 교체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와타나베 마유와 카시와기 유키는 이를 고민 삼아 '여행 소녀'라는 프로그램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2012년에 졸업한 마에다 아츠코(1위, 2위 경험자)도 비슷한 문제로 오오시마 유코가 아닌[8] 타카하시 미나미와 의논한 적 있다. 실제로 졸업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고 한다.

2.7. 제8회 총선거(2016)[편집]



타카하시 미나미가 졸업함에 따라 카미7에 공석이 한자리 생겼는데, 결과적으로 가장 유력한 카미7 후보로 촉망받고 있던 시마자키 하루카, 요코야마 유이 둘 다 카미 진입은 실패하였다. 시마자키의 계속되는 사진회 태도 논란과 지나치게 긴 휴연, 요코야마 유이의 실질적인 성적 부진 등에 따라 제3의 뜬금포가 공석을 차지할 확률도 배제할 수 없었는데, 결국 스다 아카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당시 사시하라 리노 VS 와타나베 마유 구도와 야마모토 사야카 VS 마츠이 쥬리나 구도가 팽배했으나 결과적으로 사시하라(1위)의 압도적인 승리, 마지막을 선언하던 야마모토(4위)는 결국 마츠이(3위)와 근소한 차이로 패하였다. 일본을 뒤덮었던 열애설로 2015년을 핫하게 한 카시와기 유키는 결국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었는데, 전년도 2위로 총 167,183표를 획득했으나, 결국 이듬해 7만 5천여표 하락한 92,110표를 얻으며 5위로 떨어져 버렸다. 참고로 저 7만 5천표로도 충분히 카미에 진입이 가능한 표수이다.

사시하라 리노는 7회 총선거에서 194,049표를 얻으며 총선거 최고 득표수를 갱신했는데 8회 총선거에서 243,011표를 얻으면서 AKB48 역사상 없었던 20만표의 벽을 훌쩍 넘어버렸으며(24만표), 마에다 아츠코오오시마 유코도 하지못한 2연패와 3번 1위를 얻는 전무한 기록을 세웠다. 여담으로 2위인 와타나베 마유와는 약 7만의 표 차이가 난다. 즉, 와타나베와 미야와키의 표를 합쳐야 삿시를 이길 수 있다.

야마모토 사야카제8회 총선거(2016)이 마지막 총선거임을 예고하였다.

2.8. 제9회 총선거(2017)[편집]



제8회 총선거에서 1, 2, 5위를 차지한 사시하라, 와타나베, 카시와기가 올 나이트 닛폰이라는 라디오 방송에서 불출마를 암시하였는데 사시하라와 와타나베가 입후보를 하였고 카시와기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외에도 이미 8회 총선이 마지막임음을 강력하게 못박았던 전년도 4위 야마모토 사야카불출마 의사를 밝혔으며, 그나마 카미7급 멤버로 꼽히는 시마자키 하루카(2016/8위)마저 8회 총선 이후 졸업을 발표하면서 강제로 세대교체가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요코야마 유이가 긴 시간 끝에 드디어 7위에 진입하고 속보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오기노 유카가 5위를 차지하면서 빈 자리를 채웠다. 1,2위는 여전히 사시하라와 와타나베가 사수. 그리고 와타나베 마유가 졸업을 발표하면서 초대 카미7이 모두 졸업하게 되었다.


2.9. 제10회 총선거(2018)[편집]



최후의 카미

파일:IMG_20181012_191227.jpg
상단 좌측부터 요코야마 유이 오기노 유카 오카다 나나 무토 토무
하단 좌측부터 스다 아카리 마츠이 쥬리나 미야와키 사쿠라

IN

오카다 나나(첫 진입/5위), 무토 토무(첫 진입/7위)

OUT

사시하라 리노(불출마), 와타나베 마유(졸업)
마츠이 쥬리나미야와키 사쿠라가 1, 2위 대결을, 스다 아카리, 오기노 유카, 오카다 나나가 3, 4, 5위 대결을 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카미7에 진입하는 새로운 멤버가 많을 것으로 보였다.

제9회 총선거에서 1, 2위를 차지한 사시하라 리노(불출마), 와타나베 마유(졸업)의 빈 자리를 마츠이 쥬리나미야와키 사쿠라가 채울 것으로 보였지만, 스다 아카리가 2위를 차지하였고 미야와키 사쿠라는 3위로 예상보다 한 계단 내려오게 되었다. 오카다 나나(5위)와 무토 토무(7위)는 카미7에 처음으로 진입하였고 총감독 요코야마 유이는 6위로 한계단 올라섰다.

예상 외로 컸던 사카에 팬들의 화력으로 1,2위를 SKE48 멤버가 차지하였다. 사쿠라는 삿시에게 미안해하며 이번을 마지막으로 총선에 불출마하게된다.

2019년 3월 야마구치 마호 자택 습격 사건 여파로 총선거가 중단되었고, 2020년에도 코로나19 등의 여파으로 총선거가 불가능해지면서 제10회 총선거 카미7이 마지막 카미7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22년, 그룹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오카다 나나와 무토 토무가 연달아 졸업을 발표하며 최후의 카미7 멤버들까지 모두 졸업을 하였다.


3. 기타[편집]



3.1. 스카히라7[편집]


파일:akb48_skirt_hirari.jpg

왼쪽부터 코지마 하루나, 나리타 리사, 마에다 아츠코, 타카하시 미나미, 이타노 토모미, 나카니시 리나, 오오시마 마이

2006년 6월에 발매한 인디즈 싱글 '스커트 히라리(スカート、ひらり)'에서 자켓 사진에 들어간 오리지널 팀A의 7명을 뜻하는 말.

비록 팀A 20명이 모두 노래를 부르기는 했지만, 이 일곱 명에게는 솔로 파트를 부르는 특권이 주어졌다. 당시 뮤직 스테이션 출연 영상을 봐도 이 일곱 명만 가운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13명은 말 그대로 병풍(...)에 옷 색도 달랐다.



그러나 당시에는 스커트 히라리 싱글의 7인 메인 보컬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AKB48 자체가 팬층이 형성되기 전이라 멤버별 인기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고, 7명 중에서 나리타 리사는 팬들 사이의 인기가 많아서 선발에 들어갔다기보다는 당시 운영진의 푸시 라인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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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神ㅇㅇ'하면 한국어로 '갓띵ㅇㅇ' 같은 뉘앙스이다. AKB48의 앨범 神曲たち가 여기서 유래했다.[2] 물론 카시와기 유키의 탁월한 악수회 대응과 부모님께 소개시켜 줄 수있는 아이돌이라는 좋은 이미지 포지셔닝으로 그간 카미7 진입이 유력시 되었으나 3위까지는 예상 밖이었다 라는 평.[3] 기존 카미7끼리 하던 스케줄을 이타노 토모미까지 총 8명이서 하는 경우도 많았다.[4] 언론에서 카미8이라는 단어를 따로 사용했을 정도.[5] 오리멘 오시들 입장에서는 이타노 이후로 처음 겪는 멘붕이라 그런지 거의 처음부터 AKB48를 팬질해 온 팬들이 많이 씁쓸해했던 모양이다. 시노다 마리코도 코지마가 9위로 불리자 통곡하는 모습이 클로즈업 되기도 했다.[6] 하필 그 시즌에 태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 평소에 악수회 대응이나 독자적인 방식을 추구해 반감을 샀다. 그밖에 파루루가 신규 팬 유입을 잘 못하고 있다는 말이 많다. 이대로라면 내년에는 두 자리수 밑으로 떨어질 수가 있는데, 본인도 위기를 의식했는지 그 이후에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7] 이들에게는 아이돌로서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명목 이전에 AKB48 자체가 비즈니스 사업이므로...[8] 당시 둘은 마에다가 4회 총선에서 불출마하기 전까진 그렇게 친하진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매스컴에서 라이벌로 언플하는데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러니 오오시마에겐 의논하지 않았다는 추측. 그런데 4회 총선을 기점으로 둘은 친자매처럼 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