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B48/문제점 및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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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문제점
2.1. 악수회의 문제점
2.2. 극장공연의 문제점
2.2.1. 의미가 없어진 팀
2.2.2. 신공연 문제
2.3. 스캔들의 문제점
2.3.1. 일본 사회의 측면
2.3.2. 규정의 허술함
2.4. 팬덤의 유입률 하락
2.5. 세대교체의 실패
2.5.1. 원인 고찰
2.6. 포화상태의 그룹
3. 현재는 해소된 문제점
3.1. 자매 그룹의 동원
4. 비판
4.1. 지나친 실력 부족
4.2. 끝없는 자기복제
4.3. AKS, DH의 함량 미달
4.3.1. 그룹 단위의 팬덤 형성 방해
4.3.2. 멤버들의 케어 부재
4.3.3. 멤버들의 성상품화
5. 결과


1. 소개[편집]


일본식 아이돌 엔터테인먼트의 극한

당신이 알아야 할 일본가수들에서의 소개 멘트.



2. 문제점[편집]



2.1. 악수회의 문제점[편집]


초창기 악수회는 단순히 이벤트였다. 누가 악수를 잘한다, 악수가 강하다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는 악수회 자체가 인기였고 전체적으로 악수회를 잘 팔던 시기였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자, 인기 멤버가 빠지고 팬들도 악수회에 질리고 라이벌 그룹들이 등장하는 문제로 악수회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졌다. 부수가 적은 비인기 멤버들은 1~2시간 동안 개인적인 할 일을 하다가 호텔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

이러한 악수회 인기하락 현상이 초래한 문제점은 아래와 같다.

  • ||1. 판매량에 목매여 인기 멤버들을 혹사시킨다.||
운영은 초동 100만 장이란 기록을 매 싱글마다 유지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인기 멤버는 스케줄 조정도 쉽지 않을 정도로 악수회에서 심하게 혹사당한다.[1] 이런 이유로 AKB 인기멤버는 예능계에서 쓰기 힘들다는 관계자들의 증언도 이어지긴 한다. 이 중에서도 심각한 것은 마츠이 쥬리나, 야마모토 사야카, 미야와키 사쿠라 같은 자매 그룹 멤버들이다. 자매 그룹은 본점이 1년 4싱글 체제였을 시기에도 1년에 싱글을 2~3회 발매했고 앨범까지 나오면 4회의 악수회를 추가로 해야 했다. 야마모토 사야카버락 오바마보다 악수를 많이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확실하게 많이 했을 수도 있다

  • ||2. 차세대에게 엄청난 압박일 뿐만 아니라 정작 연예인으로서 실력을 키우는 데 장애가 된다.||
초등학생 또는 중학생 때부터 AKB에 들어와서 악수회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수도 없이 듣는 어린 멤버들은 악수회 성적을 강박적으로 받아들인다. 블로그나 모바일 메일에서 "악수회에 손님이 없어서 울었다", "내일 악수회 힘낼게요! 많이 와주세요." 하는 멘트를 쉽게 볼 수 있다.[2] 물론 몇 년간 하다가 안 돼서 포기하는 멤버도 있지만, 많은 어린 멤버들은 성공하고 싶어하는데, AKB에서 성공의 지름길은 악수회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럴수록 어린 멤버들은 악수회에 집착하고 얽매인다. 자기발전을 할 시간에 '악수회에서 어떻게 하면 팬을 늘릴까?' 하는 생각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하지만 문제는 예능계에서 악수회 실력은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이다. 악수를 잘 한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실력이 없으면 방송에선 안 써준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48그룹 멤버로 존재하는 이상 악수회에 목맬 수밖에 없으니, 진정한 실력 향상을 등한시함은 여전하다.

  • ||3. 악수회 일정 및 보안 문제||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카와에이 리나, 이리야마 안나 악수회 피습 사건 때 이후로 멤버들의 심리적 고통이 남아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부터 일정이 꼬였다. 일단 피습사건 이후 당분간 악수회를 중단함으로써 모든 일정이 뒤로 밀렸다. 또한 피습 사건으로 인해 경비를 늘리고 보안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악수회 서비스의 제약 역시 증가했다.
무엇보다 경비의 증가가 심각한 수준이 되었다. 악수회에 참가하는 멤버는 330명 가까이 되는데, 여기서 이들의 교통비, 숙박비까지 더해진다. 멤버들 중 약 40%는 자신의 부수를 해치우지 못하고 있음에도 비용은 증가하고 있다.

  • ||4. 직접적인 반응에 노출되는 악수회 특성상의 문제||
1번 항목의 혹사 문제, 또는 3번 항목의 피습 사건과 겹치는 점이다.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의 특성상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게 되는데, 이때 오는 사람이 모두 팬이라는 법이 없다. 돈을 내고서라도 멤버에게 직접 폭언이나 안 좋은 소리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어리고 귀여운 여자와 악수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얻기 위해 가는 아저씨들도 있다고 한다. 현지의 AKB48 팬덤은 2020년대 와서도 60% 이상 남자다. 그것도 대부분 멤버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아저씨들이다. 어지간한 멘탈이 없다면 어린 아이돌 멤버들이 견디기 힘들다는 것. 학교 선생님뻘 되는 사람들과 하루 종일 악수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니, 그걸 떠나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도 언제나 미소를 유지하며 악수하기란 힘들다.

  • ||5. 악수회의 심각한 도핑 문제||
2016년부터 심각할 정도로 AKB싱글 도핑이 시작되었다. 과거엔 개별 악수회 일정이 3일이었는데 7일로 늘리고, 지점멤버를 대폭 참여시켰다. 2018년까지의 판매량은 '키마구레 스테이지', '동영상 촬영회' 같은 것으로 겨우 유지해갈 뿐이었다. 이는 실력과 완전히 결별하고 오타쿠 중심의 아이돌로 돌아간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그 많았던 AKB48의 팬들도 70% 이상이 이탈했다는 지표도 공개되었다. 지점멤버 또한 악수회에 과도하게 참여하다 보니 지점 판매량도 폭락하고 있었다.


2.2. 극장공연의 문제점[편집]


극장공연의 문제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봐야 한다.


2.2.1. 의미가 없어진 팀[편집]


AKB48 자체만으로 4개의 팀을 유지중이다. 《팀A, 팀K, 팀B, 팀4》

이런 식이다 보니, 정규 공연이 무척 줄어들게 된다. 산술적으로 생각해보면 악수회와 극장 휴무일을 제외하면 팀당 3일 밖에 공연을 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특별공연이 생기면서 실제론 한 달에 1번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2017년 팀A, 팀K는 그 빈도가 무지하게 올라갔다. 특별공연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생탄제, 졸업공연도 팀에서 마치지 못하고 졸업하는 케이스도 비일비재해졌다. 더이상 팀으로써 기능을 못하고 있다.

팀은 별것 아닌것 같아도 과거 AKB의 체제를 완성시킨 중요한 기능이었다. 개별 팀은 그 자체로써 '하코오시'를 만들었고 팀 자체를 좋아하는 오타들이 많았다. 하지만 AKB는 2012년 조각, 2014년 조각 등 심심하면 팀을 병폐합하면서 강제로 균형을 맞추는데 급급했다. 그 결과 팀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존재의의' 자체가 약해졌다.


2.2.2. 신공연 문제[편집]


극장공연을 최근에 만든 것은 2016년 팀A 공연이었고, 그나마도 이 팀A는 무려 6년만에 받은것이다. 이후에 다른 팀들도 전혀 곡을 못받고 있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커서, 극장 공연을 중심으로 커온 AKB멤버들은 '오리지날 세트리스트'를 받지 못하면서 진정한 공연으로써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 AKB에서는 오리지날 세트리스트의 중요성이 생각보다 큰데, 이걸 무려 7년째 방치하고 있으니 극장공연이 주업인 아이돌로썬 큰 문제이다.

'AKB48 공연을 만드는 데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변명이 있다. 실제로 돈은 많이 들어간다. 신의상, 공연곡 작곡비 등이 억단위가 깨지긴 한다. 또한 극장은 1000엔~4000엔 정도 표값이 저렴하고 한 공연당 관객도 300명 남짓이므로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다. 지하 아이돌과는 달리 극장 공연 이후 따로 물판/접촉을 하는 것도 아니므로 적자를 볼 가능성도 있다.

2010년 이후로 극장 공연 관람권 당첨은 매우 어려워졌고, 특히 외국 팬이 일본 방문 일정에 맞춰 극장 공연에 당첨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다. DMM 중계가 있으나 별도의 가입이 필요하며 해외에서는 이 역시도 장애물이 있다. 한국 48 팬덤에서는 극장 공연의 DMM LOD 녹화본을 공유하는 일이 많으나 이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수많은 그룹들이 유튜브를 통해 콘텐츠를 발신하는 시대에, AKB의 극장 공연은 구시대적인 콘텐츠가 되어었다.

2016년 개연한 M.T.に捧ぐ 공연은 투자를 고려하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당시 겸임 멤버, 미디어선발 멤버들이 극장에 거의 출연하지 않으면서 오리지널 멤버의 공연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팀의 정체성을 확립하지도 못하였고 곡들 중에 팬들로부터 인기를 얻은 곡도 없었다. 기껏 만든 M.T. 공연이 안 나오느니만 못한 실패를 겪은 이후 신공연이 나올 일은 없다.

HKT48 사시하라 리노가 2019년 졸업과 함께 HKT48의 오리지널 극장 공연 "지금 달이 차오른다"를 작사, 프로듀스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결국 무산되었다. 실제로 사시하라는 곡을 다 만들어서 HKT48 운영 측에 넘겼는데 HKT48 운영 측이 2년 넘도록 아무 것도 안 했고, 참다 못한 사시하라가 2021년 10월 트위터에 "신공연은 더이상 진척이 없을테니 넘겨드린 곡은 어디가 됐든 써주시면 좋겠어요"라고 까발린 것.

아키모토가 바빠서 신공연이 안 나온다는 것이 허무맹랑한 추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전히 그 이유라면, 사시하라가 다 만들어서 넘겨준 곡들을 굳이 방치할 이유가 없다. 새 오리지널 공연이 안 만들어지는 것은 그것보다는 돈 문제 등의 현실적인 요인이 더 크다.


2.3. 스캔들의 문제점[편집]


아이돌에게는 높은 프로의식이 요구된다. 그 중에서도 연애를 금지하는 기조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것이 인권에 대한 탄압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일본 아이돌에선 팬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비처녀 논란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 아이돌의 정조나 연애 경력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며 아무런 결점도 없었던 아이돌 한 명이 과거에 있는 연애 경력 한 번으로 인기가 급속도로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본 아이돌은 한국 아이돌보다 더 자신의 연애 경력에 대해 밝히는 것을 상당히 꺼리는 편이다.

사실 오타쿠 기반의 아이돌은 특유의 배타적인 성향으로 인해서 인권 탄압이 의심될 정도로 처녀성을 지나치게 요구받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아이돌들은 "저는 연애를 안 해요" 라던가 "아이돌은 연애 안 하는 게 당연하죠" 하는 마인드를 방송상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결국, AKB는 이러한 아이돌의 연애 금지를 상품화하는 데 앞장섰다.


2.3.1. 일본 사회의 측면[편집]


그나마 한국 팬덤의 경우는 아이돌 스스로가 상당히 부적절한 교제(ex. 불륜, 낙태 요구)를 하거나, 스토커마냥 찝적대는 극성 사생팬덤의 사례가 아니라면 년차가 있는 아이돌의 교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물론 신인 때 연애하는 건 금기시되지만 인기 아이돌이 되고 연차가 쌓인 후에는 어느 정도 용인된다.[3]

그러나 이는 단순히 연차 문제가 아니라 현재 아이돌로서의 그룹 활동이 얼마나 활발하고, 상대가 누군가에 따라 반응이 매번 다르다. AKB48은 일반적으로 탈퇴하는 게 아니라면 연차에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그룹 활동을 하지만, 한국은 가령 소녀시대처럼 연차가 일정 이상 지나면 그룹 차원의 공식적인 활동은 거의 없어지고 개인 활동만 하는, 사실상 그룹 이름만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단적으로 말하면 팬덤이 예전만큼 열성적이지는 않게 된다. 이런 상황에 발생하는 스캔들에서 그 대상이 정상적이면 용인된다는 것이다.

AKB48은 순환 체제라는 특성상 그룹 활동이 중지될 일도 없고 탈퇴할 때까지 극장, 악수회 등으로 계속 활동하는 편이기 때문에 단순히 일본팬의 마인드 문제라고 비하하기에는 좀 애매한 면이 있다. 또한 교제 상대가 만약 현역 아이돌(중견 아이돌 제외)인 경우에는 한국이라고 딱히 용인되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단 한국의 경우 걸그룹이라 해도 열성적인 팬은 대부분 여성팬이 많다는 특성으로 인해 AKB48의 사례보다는 조금 낫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NMB48의 연구생 주요 멤버로 활동하던 시마다 레나는 2011년 8월, 남자친구와 찍은 스티커 사진이 유출되어 근신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4개월이 지난 2011년 12월, 팬들의 투표를 통해 그녀의 근신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는데, 9,783명의 참여자 중 7,622명이 그녀의 컴백을 찬성하였다. 연애 금지 등에 목을 매는 것이 일부 오타들에 불과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2.3.2. 규정의 허술함[편집]


극장 공연 위주였던 초기에는 이러한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대부분 알고도 눈감아주었으나 키쿠치 아야카의 스캔들이 터지고 운영은 '멤버 탈퇴'와 '멤버 유지' 두 쪽에서 고민하게 된다. 결국, 사건을 저지르면 어떤 식으로든 탈퇴를 강요당하는 식으로 대가를 치루게 하는 쪽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항상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었고 오오시마 유코와 같은 인기멤버의 스캔들은 완전히 무시하는 반면에 비인기 멤버는 여지없이 해고해 버렸다.

결국 이런 기조는 미네기시 미나미의 삭발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2012년 당시 11년도 총선거 선발에는 들지 못하는 히라지마 나츠미, 요네자와 루미는 해고되었지만 12년도 총선거 4위 멤버인 사시하라 리노는 HKT48 이적이라는 가벼운 처분을 받았다.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것.

그러던 2013년 초 상황이 바뀌었다. 외부에서조차 심각하게 비판을 받은 미네기시 미나미의 스캔들 사건인데, 운영은 미네기시가 스캔들이 사실임을 인정하고 공개 삭발을 하며 사과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AKB48의 공식 채널에 공개되어 전세계의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노출되었다. 영국의 BBC, 대한민국의 KBSMBC, 중국의 환구시보 등의 전세계 주요 언론들에 소개되어 국제적인 비판 여론을 피하지 못했다. 사실상 이 시점부터 AKB48가 하락세를 타는 시발점이 되었다. AKB48 팬덤에선 이를 전혀 논란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모습에 대중들의 인식 역시 더 나빠졌다.

그래서 이 사건은 AKB48을 비롯한 일본 아이돌 업계가 급속도로 위상이 떨어지는 것에 결정적 영향을 준 사건이다. 일단 일본에서도 엄청나게 비판을 받았고 특히 '삭발사건을 공공의 전파인 유튜브에 올린 것은 큰 문제다' 라는 발언이 쏟아나왔다.

미네기시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한 것으로 말했으나 당연히 거짓말을 한다는 취급을 받았고 사건은 작아지지 않았다. 결국 '아이돌의 연애금지'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도 쏟아져나오게 된다. 이러한 사건 뒤에는 AKB의 인기 멤버들이 연달아 졸업하기 시작하면서[4] 그룹은 급속도로 인기가 하락한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서 전세계로 영상이 퍼진 것이 더 크게 문제가 되었다. 즉, '어째서 남자 아이돌은 책임을 물리지 않고 여자 아이돌한테만 너무 가혹한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가 아니라 '왜 쪽팔리게 유튜브에다 영상을 올려서 나라 망신을 당하게 했느냐?'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오타들이 너무 이기주의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미네기시 미나미 사건 이후 AKB 운영진은 공식적인 스캔들 해고를 없애버렸다. 이 후에는 스캔들에 걸리면 무시하는 게 일반화되고 비인기, 차세대 멤버라면 그냥 기회를 박탈하는 선에서 끝낸다. 하지만, 자체 징계 노선을 잃어버리고 이후에 스캔들이 범람하면서 과연 소속사로서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있겠느냐는 기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욕을 먹었음에도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표적인 것이 와타나베 미유키, 카시와기 유키 스캔들에 대한 운영의 차이점이다. 미루키는 스캔들을 이유로 사실상 AKB 선발을 빼버렸지만, 유키링은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결국, 팬덤은 스캔들에 질려버리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고 어떠한 스캔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면서 차세대들도 스캔들이 만연화되고 팬덤의 신뢰를 나날히 잃어가게 된다. 2017년 6월 총선거에서 스토 리리카가 무려 결혼을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버렸다. 유명 연예인들과 대형 방송에서도 이 사건을 언급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당연히, AKB 팬들은 엄청난 거부감을 나타냈지만, 일반인 중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축하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스토 리리카의 팬들은 대체로 상당수가 옹호했기 때문에 팬덤은 또 다시 분열되었다. 그래서 스토 리리카는 이후 결혼 발표에 대해서 사과했으나, 48그룹 팬덤은 NMB48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으로 변해버렸다. 특히 스토 리리카는 엄연히 그룹을 대표하는 센터를 해 봤던 멤버였기에 팬들의 충격은 사건 후 3개월이 지나도록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10회 총선거에서 NMB48이 엄청나게 하락하는 결과로 나타났다.[5]

사실, 운영진이 스캔들에 관한 태도는 초기 때부터 변한 것이 딱히 없다. 스캔들이 일어나면 비인기 멤버는 퇴출 혹은 자숙시킨다. 그렇지만 인기 멤버인 경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간다. 이런 기조는 AKB의 주 수익구조 중 하나인 악수회와 총선거 투표권 때문이 크다. 인기 멤버들이 AKB의 수익구조에 차지하는 비중은 하위 멤버들 몇십 명을 모아놓아도 대체할 수가 없다.

단적으로 사시하라 리노의 총선거 투표 수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그나마 총선거에 들기라도 했던 80위~67위의 멤버들 득표 수를 합쳐야 사시하라 리노 1인의 투표 수와 같다. 상위권하고 비교하면 4위~7위까지의 득표 수를 합쳐야 한다. 총선거 득표 수가 수익이나 다름없는 AKB의 구조상, 소위 말하는 상위권의 인기 멤버인 카미7 멤버들을 내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수익구조부터 바뀌지 않는 이상, 스캔들에 대한 운영진의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이돌들에게는 스캔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이 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2018년 12월에 있었던 야마구치 마호 자택 습격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 운영자들의 대처는 48그룹의 도덕적 문제를 세계 전체에 알렸고, 48그룹의 내리막은 가속화되었다.


2.4. 팬덤의 유입률 하락[편집]


최근 일본 아이돌계에서 최강 스펙이라고 볼 수 있는 '어린 나이'와는 어긋난다. [6] 비록 어린 멤버들이 꾸준히 가입하고 있지만 선배 멤버와 기존 인기 멤버들의 파워에 짓눌려 그 빛을 제대로 못 발하고 있으며, 빛을 발할 나이가 된다 하더라도 그들이 딱 현세대가 되는 시점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여기서도 성공하는 멤버 수가 매우 드물다. 인사팀은 매번 오디션을 개최할 때마다 스무 명이 넘는 신규 멤버를 뽑아놓고, 그 안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인재를 찾는 실정인데, 이 상태가 계속 축적되면서 나머지 멤버들이 그대로 나이 들고, 그들의 향후 미래마저 불투명해지는 실정이다. 간단히 말해서 AKB48는 나이 많은 선배 멤버가 나이 적은 후배 멤버들을 끌고 가는 느낌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원인은 세대교체에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AKB48뿐 아니라 SKE48, NMB48, HKT48 같은 자매그룹에서도 고령화된 멤버들의 상황은 꽤나 심각한 상황이다.

아이돌 그룹에서 가장 안정적인 '또래 연령대 체제'가 붕괴되었고, 주축이 되어야 할 나이조차 점점 고연령대로 올라가고 있다. 심지어 예전이었으면 요코야마 유이, 시마자키 하루카[7] 등 졸업 적령기로 묶어야 할 멤버들마저 최근엔 현세대로 묶이는 아이러니한 일이 연출되고 있다. 사실 AKB48를 나가면 연예인으로써의 등급이 1~2티어 떨어지게 된다. 흔히 말하는 'AKB48 버프'가 있기 때문인데, AKB를 나가면 일반 개인으로썬 너무나 미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AKB의 센터 마에다 아츠코조차도 인기가 급락했고, 시노다 마리코, 이타노 토모미등등 비슷한 예시는 넘쳐난다. 이를 보면 선발 멤버들이 나가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도전에 가깝다. 2016년 12월에 졸업한 시마자키 하루카는 'AKB 시절보다 월급이 너무 줄었다.'는 이야기를 라디오에서 언급했다. AKB는 16인 선발에 들어간 멤버들에게 최고급 대우를 해준다. 월세가 수십만 엔인 고급 빌라에서 살게 해주고 급료 이외의 굿즈나 인센티브도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AKB48을 벗어나 일반 배우로서의 시마자키 하루카(파루루)는 신인에 가깝기 때문에 당장은 버는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AKB 멤버들은 졸업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스다 아카리는 2017년에 왜 졸업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고 나가서 홀로서기할 자신이 없다.' 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AKB를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선택에 기로에 서는 것이다. 비단 선발 멤버뿐 아니라 비선발에 비인기 멤버라도 마찬가지인데, AKB에 있으면 그나마 고정적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고, 대형 콘서트 등에 매번 나갈 수 있지만 졸업을 선택하고 솔로가 되면 그런 기회는 사실상 제로나 마찬가지다. 일본의 그라돌, 비주류 연예인들의 임금 현실을 생각하면 그래도 AKB 시절이 따뜻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비인기 멤버였던 노로 카요는 통통한 몸매로 현역 당시 인기가 하락하였지만, 버라이어티성을 살려 개그맨으로 나름의 영역을 꾸려 선방하긴 했다.

최근에는 48그룹 간의 경쟁 심화로 오래 머무는 경향이 더욱 줄어들었다. 오히려 '더 나이들기 전에 AKB를 나가자.'는 분위기가 있다. 2017~18년 사이에는 역대 가장 많은 졸업자를 내기도 했고, 많아진 멤버들 때문에 경쟁을 못 이기고 졸업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상위급 멤버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멤버 고령화는 어려지는 라이벌 그룹들의 변화 속에서 시대를 쫒아가지 못하는 현실도 반영한다. 나름의 세대교체는 계속하지만 총선에서는 나이 많은 멤버들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구세대 선발체제가 고정화되었다. 2017년 봄 싱글「シュートサイン」만해도 7년차 이상의 멤버가 16명의 미디어 선발 중에 무려 10명이나 되었다. 이렇게 후배들은 선배들의 코어 팬덤을 이길 수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 상태로 시간이 상당히 지속되어 있었다.

본 문제의 또 다른 원인은 AKB48의 이미지 소모가 큰 상태에서 이미 AKB48로 이름을 알린 선배들이 연예계에 많다는 것이다. 반면에 무카이치 미온, 오구리 유이 같은 현재의 인기 멤버들은 일본 연예계에서 알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로의 세대교체는 점점 멀어졌다.


2.5. 세대교체의 실패[편집]


  • 2007~2010년: 3~7기
  • 2010~2013년: 9기~12기
  • 2013~2016년: 13기~15기
  • 2016~현재 : D1기, 16기~D3기

AKB48의 첫 차세대였던 3기는 꽤나 성공해서 와타나베 마유, 카시와기 유키같은 인기멤버를 만들었다.

2014년까지 AKB48의 전성기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4기부터 7기까지의 멤버들 중 선발급으로 오른 것은 쿠라모치 아스카, 사토 아미나, 사시하라 리노, 키타하라 리에, 타카죠 아키 등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의 이들 중에서 TOP10 이상의 활약을 보인것은 사시하라 리노키타하라 리에 뿐이었다.[8] 그외의 멤버들은 결국 초선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9기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요코야마 유이, 시마자키 하루카가 초인기멤버가 되었으나 그들이 받은 푸쉬에 비해선 결과가 다소 아쉬웠다. 무엇보다 다른 멤버들 시마다 하루카, 오오바 미나, 나가오 마리야처럼 기대받은 멤버들은 성장이 더뎠다.

본격적으로 인기멤버가 졸업한 2013년 부터 9기~10기가 버팀목이 되어야 했으나.. 이리야마 안나, 카토 레나같은 10기 푸쉬멤버의 인기는 선배들에 비해 빈약하였다. 11기에는 희망적 존재가 그나마 카와에이 리나 한 명뿐이었다. 타카하시 쥬리, 타노 유카, 무토 토무, 사사키 유카리 등 12기생 역시도 악수회에서 완매율이 저조한 편이라 2012년대에 운영은 골머리를 썩게된다.

무라야마 유이리, 오오시마 료카등이 있던 13기는 그 사이에서 버려지고, 이들의 한계를 느낀 운영은 14기 코지마 마코를 중심으로 팀4를 결성해 2013년부터 신세대의 바람을 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코지마 마코도 한 때 불성실한 태도로 한계를 맛보았다. 이후 2014년 부터 오카다 나나, 무카이치 미온 등의 인기멤버가 되어갔지만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들의 인지도는 전성기 AKB48의 인기멤버 치고는 낮은 편이다. 특히, 이들은 이렇다할 화제성이 없는게 최대 약점이다.

과거의 AKB48의 인기멤버라고 하면 연예인들도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동세대에게 엄청난 인기를 끄는것은 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AKB48의 인기멤버인 오구리 유이, 무카이치 미온 같은 멤버들은 연예인들조차 누구세요? 라는 느낌이라서 문제인 것. 그룹이 상승세에 있다면 팬덤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푸쉬를 주면서 밀어준다고 해도 이미 대세에서 벗어난 AKB48의 차세대이기에 인지도를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 AKB48의 자체칸무리, 음방 정도에 나와선 이름을 알 길이 없다. 일반인들이 알만한 방송에서 AKB 신인급 멤버들의 출연은 점점 적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이름팔이가 안되는 것이다. 근데 AKB48는 각 자매그룹의 쿼터까지 신경써야하니 오타쿠들에게 조차 제대로된 명성쌓기가 어려운것이다.

결국, AKB48 내부에서 수많은 기회를 받고도 치고 올라오지 못하는 멤버들 탓에 야마모토 사야카, 마츠이 쥬리나같은 자매그룹의 인기 멤버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위에 열거한 멤버들은 그나마 명성을 얻는데 성공한 편이고, 나머지는 팬덤 내에서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차세대가 쉽게 성장하지 못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코지마 마코, 무카이치 미온, 오오와다 나나처럼 AKB가 모든 것을 걸고 밀어줬던 멤버들의 한계는 씻을 길이 없어보인다. 결국, 코지마 마코는 2019년 1월 졸업을 발표한다.

아이돌 한 명에 투자한 기회비용으로 칸무리 방송, 싱글에서의 위치, 다채로운 의상, 스피치 진행, 메이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푸쉬 멤버의 한계는 AKB에게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케야키자카46히라테 유리나를 중심으로 총선거 시스템이 없어도 새로운 신세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것을 보면 AKB48의 인재비율은 너무 낮다.

결국, 이러한 세대교체의 실패는 팬덤의 증발을 야기했다. 마에다 아츠코, 오오시마 유코의 팬이었던 기존의 오타쿠들을 AKB48 차세대에서 붙잡아 줄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물론, 멤버들에게 모든 책임을 씌울 수는 없는 것이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2014년 이후부터 가입한 AKB48의 황금기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현역 멤버들은 인지도가 더욱 낮다. 이들은 노기자카46은 물론이고 여타 중상위권의 아이돌과 비교해봐도 큰 강점이 없다. 그리고, 2018년 2월 시점에서 48그룹 내에서 인기가 있다는 오구리 유이, 쿠라노오 나루미, 오카베 린같은 선발급 주류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팀8의 인기멤버도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니 16기, 드래프트3기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최저점이라고 봐야 할 듯 하다.

이제는 AKB48/총선거 시스템도 피로와 질림현상이 심화되면서 이를 타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느덧 2018년 시점에서는 '아직도 총선거를 해?' 하는 비판이 늘어났다.

2020년 12월 AKB48 그룹에 남아있는 멤버 중 2020년 닛케이 여자 아이돌 랭킹 TOP 20에 랭크인 한 멤버는 카시와기 유키, 요코야마 유이, 마츠이 쥬리나, 스다 아카리, 오카다 나나 (+ 미야와키 사쿠라) 뿐이다. 카시와기, 요코야마, 스다는 곧 30을 바라보는 나이이며 마츠이 쥬리나가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초등학생 때 부터 AKB48에 가입하여 10년차가 넘은 중견 멤버가 되었고 졸업 예정인 것을 생각하면 세대교체가 크게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닛케이 여자 아이돌 랭킹 TOP 20이 발표되었다. 랭크인 한 멤버는 카시와기 유키, 요코야마 유이, 마츠이 쥬리나, 미야와키 사쿠라, 스다 아카리 5명 뿐이다. 발표를 기점으로 5명 중 어린편인 마츠이(97)와 미야와키(98)는 이미 졸업한 상황. 남은 세명인 카시와기(91), 요코야마(92), 스다(91)는 당장 졸업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며, 2022년 11월 기준 카시와기를 제외한 2인이 그룹을 졸업한 상태다.

한 마디로, 스타 마케팅에 실패한 것이 현재 AKB48의 비운이다.


2.5.1. 원인 고찰[편집]


이 현상에 대해 주요 멤버들만이 메이저 매체에 출연하다보니 그 아래 기수 멤버들이 인기를 얻을 기회가 없었다는 의견과, 아래 기수 멤버들의 실력이나 팬 대응이 부족했다는 의견으로 갈리는데, 사실 둘 다 맞는 말이다.

이미지로 승부하는 특성상 여성 아이돌은 활동 기간이 짧다. 그래서 이미 20대 중반에 들어선 주요 멤버들이 앞으로도 활동을 계속하기는 어렵다. AKS 측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에, 2012년에 들어서 급하게 차세대 멤버를 육성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9기 이후의 멤버들을 중심으로 'AKB 제2장'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그 일환으로 9기생 시마자키 하루카를 비롯해서 여러 멤버들[9]을 방송에 많이 노출시키고 선발에도 넣어주는 등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선발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새 멤버를 밀어주다보니 자연히 기존 멤버들이 밀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팬들 사이의 갈등이 생긴다.


기존 멤버들의 팬들은 이렇게 말한다.

- 실력도 인기도 부족한 애들을 밀어주려고 인기가 훨씬 많은 애들을 빼는 것은 부당하다. 애초에 아래 기수 애들이 인기가 있었다면 자연히 선발에 들었을 것 아닌가? 차세대를 만든다면서 기존 멤버들을 빼면 결국 AKB48의 인기도 하락하고 말 것이다.


차세대 멤버들의 팬들은 이렇게 말한다.

- 멤버들이 인기를 얻으려면 선발에 들어가고 방송에도 많이 출연해서 이름을 알려야 한다. 지금의 선발 멤버들은 위 기수가 없던 시절에 인기를 얻어서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지만, 아래 기수 멤버들은 선발 멤버들 때문에 치어서 인기를 얻기 힘든 것이다. 기존 멤버들만으로 계속 꾸려나가도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언젠가는 차세대를 키워야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라 이 논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AKB48의 팬덤에는 그룹 전체의 팬보다는 멤버 몇몇을 좋아하는 소위 '개인 팬'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이 논쟁의 주역이 되는 기존 팬들도 차세대 팬들도, 그룹을 위해서 라는 명분을 차용할 뿐, 정작 그룹 자체의 인기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위의 논거는 "인기멤버 푸쉬 빼면 인기 떨어진다." vs "걔들만 믿고가면 어차피 인기 떨어진다"는 식을 취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오시 왜 안 밀어주냐가 그 근본이기 때문에...

현 일본 아이돌이 완전히 실력으로만 경쟁하는 구조도 아니고, 주전 선발 멤버로 선정되는 기준인 '실력', '인기'의 척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야구 같은 스포츠였으면 실력을 정확히 수치적으로 평가해서 1군에서 부진한 선수는 2군으로 내리고, 2군에서 뛰어난 선수는 1군으로 올리는 식으로 대처하면 되는데, AKB같은 경우는 이게 불가능하다는 것.

사실 그와는 별개로 48그룹화 되면서의 문제점도 슬슬 드러나고 있다. 자매그룹의 숫자가 증가하고 그들도 AKB선발에 들어오면서 AKB48는 자신들의 차세대를 희생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한것이다. 차세대는 점점더 설자리를 잃게될것이고 여기서 자매그룹이 더 추가되면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될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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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포화상태의 그룹[편집]


멤버 수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 초창기엔 멤버수가 40~50명였지만, 지금에 이르러서 50명은 귀여운 수준이 되어버렸다.

2021년 1월 기준 AKB48의 멤버는 99명이다. 극장공연에 나와야할 팀도 5팀이나 된다. 극장체제에서 한 멤버가 제아무리 많이 뛰어봤자 200공연 정도다. 그것도 무라야마 유이리처럼 극장에서 거의 살다시피해야 가능한 것이다.

SKE48엔 69명, NMB48엔 57명, HKT48엔 51명, NGT48엔 29명, STU48엔 44명. AKB48 그룹엔 총합 349명의 멤버가 존재하고 있다.

그룹에서 한 명의 멤버를 띄우는것도 쉽지 않은게 아이돌계의 특성인데, 매년 300명이 넘는 멤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멤버들이 제대로 된 기회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룹의 과도경쟁은 차세대를 괴롭히고 정신적인 부담감과 권외 성적을 받아 피폐해진 멤버들은 스스로 졸업해 나가게 된다. 실제 AKB는 지난 3년간 60명이 넘는 멤버가 이 지옥에서 졸업했다.

사시하라 리노, 타카하시 미나미는 "AKB48가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처우가 많이 좋아졌고 요즘 후배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라는 의미의 발언을 한 적이 있었지만, 이는 굉장히 잘못된 시각이다.

한번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그룹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상대적으로 팬덤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 보이그룹도 영원한 전성기가 오지 않는데, 과포화 상태로 경쟁하는 걸그룹에서 후배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한계가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아니, 노력을 한다고 쳐도 최소한 AKB곡에 들어가서 팬들에게 이름을 알려야 하는데 이미 AKB 선발은 3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배틀로얄로 경쟁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솔직하게 차세대, 비인기 멤버로써는 이미 헬게이트처럼 기울어진 운동장같은 환경이라 치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결국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그룹의 인기멤버가 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매니지먼트 시스템에서 가장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다. 방송의 서포팅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인기 멤버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미디어 출연과 개개인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중구난방식 운영으로 전체적인 멤버들의 성장은 실패했다. 대신 일부 선택된 멤버들에게만 기회가 쏠렸다. 결국, 이 일부멤버들이 졸업하면 나머지 멤버들은 점점 짐을 떠안게 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무거운 짐에 짓눌리게 된다.

거기다 300명도 넘는 멤버들의 개개인에 대한 인적사항(매니지먼트)의 관리도 쉽지 않다. 300명이 넘는 그룹은 사소한 일만해도 1주일에 한 번씩 터지고, 1년으로 보면 스캔들을 터뜨리고 졸업하는 일들도 발생한다. 합격 이후 전 소속사와 계약이 종료되지 않아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많아진 멤버로 인해 대형 콘서트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자매그룹까지 합치면 인기멤버들이 상당히 모이고, 차세대에게도 분량이 가서 2시간 남짓의 콘서트는 그야말로 빡빡한 내용으로 가득 찬다. 결국 중구난방으로 변해가고 자신이 잘 모르는 자매그룹의 공연도 봐야한다는 점이다. 결국 콘서트의 재미가 없어지게 된다.

당연히 콘서트 DVD의 매출은 급감하고 급기야 자매그룹의 콘서트 매출과 별 차이가 없게 되어버린다. 결과적으로 이게 반복되면서 집객률도 매년 떨어지게 된다. 말이 AKB48 콘서트지, 현실은 단체 콘서트니 어쩔 수가 없다. 당장에 카시와기 유키의 솔로 콘서트의 DVD 판매량이 AKB48 콘서트의 것보다 높다.

48그룹의 졸업 및 졸업 발표 멤버 변화
2014년
36명
2015년
39명
2016년
44명
2017년
50명
2018년
46명
2019년
72명

또한, 멤버들 개개인의 일이 너무 없어서 손가락을 빨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상술한 AKB의 악순환을 지켜보던 차세대는 포기하면 편해 식으로 희망을 버리고 고등학교 졸업시기에 스스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2015년 후반부터 시작된 대탈출은 2017년 가속화가 되었고 2019년 거의 대폭발 상태가 되었다.

아이돌이 너무 많아지니 다양성과 특이성이 생겼지만, 반대로 각각의 인기를 올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져서 내부적으로는 큰 골칫거리가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2019년 이후로 선발 경쟁은 더 심해져서 각 자매그룹에서 선발되는 멤버는 딱 1명으로 줄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멤버들의 고질적인 실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3. 현재는 해소된 문제점[편집]



3.1. 자매 그룹의 동원[편집]


AKB48은 멤버 숫자도 많지만 산하 그룹도 6개나 된다. 여기까진 그냥 평범해 보이지만 이들 그룹은 전부 AKB의 멤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서 자매그룹 인기멤버 = AKB선발 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사실 AKB 전성기 때는 AKB의 버프를 받은 자매그룹의 인기멤버들인 마츠이 레나, 마츠이 쥬리나, 야마모토 사야카, 와타나베 미유키, 미야와키 사쿠라 등이 AKB 선발이 되어 인지도 상승 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가령 2011년 발매된 싱글 風は吹いている의 선발 멤버를 보자.


AKB멤버가 15명이고 자매그룹 멤버는 3명이다. 이 때의 자매그룹 선발의 느낌은 어디까지나 AKB가 희생하는 느낌이었다. 당시 AKB에는 선발에 들어갈만한 대의 명분을 갖은 멤버가 굉장히 많았지만 자매그룹 멤버들을 홍보해주기 위해서 자리를 내준 것이다.

AKS와 아키모토 야스시의 복안은 '자매그룹이 인기를 올리고 AKB선발을 노리면서 총선거가 더욱 흥행을 한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2012년부터 자매그룹이 약진하여 AKB총선거는 한 단계 더 재미있어지긴 했다. 문제는 AKB 자체의 추진력이 떨어지면 이것은 공멸의 신호탄이 된다는 점이다.

2013년부터 AKB는 심각한 하락세에 직면하여 자체 이슈를 생산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결국 자매그룹의 악수회 동원과 인기에 더 목을 매었고, AKB48의 선발은 점점 자매그룹과 공동의 장이 되었다. 이것이 AKB48 팬덤이 공중분해 된 근본적인 이유다.

현재 자매그룹 멤버는 5개 SKE48 , NMB48 , HKT48, NGT48, STU48, 외전격인 팀8까지 총 6개나 된다.
AKB는 모든 악수회에 이들을 동원하기에 자매그룹 멤버를 계속 챙겨줘야 한다. 그들의 노동력으로 악수회 100만 장이 유지되기에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자리를 내주던 AKB는 2017년 총선거 결과,

팀 A
요코야마 유이(7위)
팀 B
와타나베 마유(2위)
팀 4
오카다 나나(9위, STU), 타카하시 쥬리(11위)
팀 S
마츠이 쥬리나(3위)
팀 KII
소다 사리나(8위), 후루하타 나오(14위), 타카야나기 아카네(15위)[A]
팀 E
스다 아카리(6위)
팀 M
시로마 미루(12위, A), 요시다 아카리(16위)
팀 H
사시하라 리노(1위, STU)
팀 KIV
미야와키 사쿠라(4위, A)
팀 NIII
오기노 유카(5위), 키타하라 리에(10위), 혼마 히나타(13위)

AKB48은 4명, 자매그룹은 12명이다. (AKB48 출신 멤버로 범위를 확장하면 6명, 자매그룹 10명)

이젠 역전이 된것이다. 말이 AKB48이지만 사실상 48그룹의 단일화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커플링 곡에서조차 AKB48 멤버들이 들어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50th 싱글을 보면 팀곡도 없기에, 권내에 들어가도 AKB싱글에 이름조차 못 올리는 멤버도 생겼다. 이와타테 사호, 사사키 유카리, 모기 시노부 같은 권내 멤버들도 탈락. 무라야마 유이리, 쵸 쿠레나, 하야사카 츠무기처럼 악수회에서 성과를 내는 멤버도 전부 탈락하였다.

당연히 AKB48의 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AKB멤버가 결과를 내는데도 AKB싱글에 들어갈 수 없다면 이는 얼마나 큰 비극이겠는가? 당연히 AKB팬들은 멤버가 졸업하면 그와 동시에 AKB팬을 그만둬 버린다. AKB 본점 멤버들의 설자리는 점점 없어져서, 70%가 극장에만 나오는 멤버들이고 이들은 사실상 멤버가 아니라 악수회 머신, 총선거 돈벌이용으로 전락한 현실은 비극적이다. 자매그룹의 멤버임에도 AKB48 싱글의 센터로 발탁된 경험이 있는 마츠이 쥬리나미야와키 사쿠라의 경우, 분명 기대에 부응하는 화력을 보여주었지만 그런 사이에 줄어들어 가고 있었던 본점 멤버의 기회에 대해 비판이 매우 컸다.

또한 자매그룹 입장에서도 48그룹화는 팬덤을 망친 주원인 하나로 꼽힌다. 싱글 판매량만 가지고 생각을 해도 자매그룹 멤버가 본점 악수회에 참여해서 본점 싱글 판매량을 늘려주니 당연히 자신들의 그룹 이름을 건 싱글 판매량이 올라가지 못하는 것.

일례를 들어보면 AKB는 2012년 UZA 때부터 하락세가 나타났다. 하지만 운영의 도핑 부수늘리기와 자매그룹 인기 멤버들의 희생으로 판매량을 억지로 막았다. 2013년엔 정말 자매그룹 멤버들의 희생은 눈을 뜨곤 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AKB 인기 멤버는 5번의 싱글에 참여하면 그만이었지만, 자매그룹은 그렇지 않았다. AKB 5개+ 3개가 기본이었다. 2015년에는 정말 웃지 못 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바로 야마모토 사야카의 혹사다. 야마모토는 4개의 AKB 싱글 모두를 완매시켰다. 그리고 2개의 AKB앨범 샤메회 완매. 3개의 NMB 싱글 완매로 총 9개의 악수회와 샤메회를 완매시켰다. 주말에는 거의 쉬지도 못할 사야네의 체력 저하는 꽤나 심각했다고 한다. 자매그룹 인기 멤버들은 이러한 AKB일정을 쫒아가야해서, 다른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일정상의 문제이다. AKB가 황금시간대의 이벤트나 연초, 연말의 이벤트를 독점한다. 자매 그룹의 멤버는 이러한 AKB의 스케줄을 쫒아가야해서 제대로 된 콘서트는 그 중간중간에 겨우 해야만 한다. 자매그룹 팬들이 "제발 일정을 생각해서 AKB끼리 싱글을 내던지 해주세요." 호소할 정도로 자매그룹은 제대로 된 일정을 짜기 어렵다.

일년에 7~8개 가까운 싱글의 악수회를 열기 때문에, 팬덤은 점점 소모되고 자신들의 이벤트도 계속되지 못하기에 결국 라이벌 그룹들에게 팬덤을 뺏기고 자매그룹은 공기화 되어간다. SKE48, NMB48 등 개별 그룹이 아니라 AKB48의 후속작이라는 이미지가 되어버려서,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극장공연도 AKB의 극장공연을 차용할 뿐 새로운 극장공연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결국 자매그룹은 인기멤버가 졸업하면 기반이 무너지게 되고, 남은 멤버들이 운영을 대신하여 열심히 메꾼다.

자매그룹의 팬덤을 갉아먹고, AKB48의 팬덤도 잃은 AKB는 더이상 제대로 된 그룹이 아닌, 모두가 고통받는 그룹이 되었다. 즉, AKB는 AKB대로 자신만의 색을 잃고, 자매그룹은 자매그룹대로 AKB에 대한 의존성만 키운 셈이다. 당장의 돈만 쫓아서 오늘만 사는 운영을 한 킹 레코드아키모토 야스시의 책임이 크다.

4. 비판[편집]



4.1. 지나친 실력 부족[편집]


AKB48 그룹 내에는 가창력과 춤 모두 부족한 멤버가 많다. 동시대의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심각하게 음악적, 예술적인 능력과 실력이 뒤쳐져 있다는 평가가 대다수이다. 오죽하면 AKB 멤버들을 뽑는 기준은 춤은 동작을 외울 수만 있으면 되고, 노래는 일본어를 할 수 있으면 된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
정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도저히 없으면 춤이나 예능이라도 매우 우수해야 할 텐데, 춤 실력도 돋보일 정도로 뛰어난 멤버가 드물고, 그렇다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활약할 만큼 예능감이나 입담, 혹은 다른 부분에서 뛰어난 멤버도 소수.[10]

실력이 부족하니, 개인 플레이에 성공하는 극소수의 멤버가 아닌 이상 졸업 후엔 춤도, 노래도, 예능도 미흡한 채 연예계에서 묻히곤 한다. 기본기가 부실한 AKB 계열 아이돌의 고질적인 단점이다. "부족한 실력을 유명세와 멤버 숫자로 메워서 가요시장을 독점한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AKB48의 최전성기였던 2011년에는 그들이 음반과 음원, 방송 등을 싹쓸이했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나올 만했지만, 2014년부터 점점 하락세에 접어든 후에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졌다.

멤버들이 고질적으로 실력이 부족한데 규모와 인원 수로 밀어붙이며 극악의 상술로써 음반 판매량을 올리기 때문에 다른 아이돌 그룹의 설 자리를 빼앗는다는 점 또한 비판받는다. 당연히 가창력도 부족한 아이돌 그룹이 팬들의 힘을 업은 상술로 정말 뛰어난 노래가 아닌데도 음반 판매량이 상위권에 있으니 다른 연예사도 AKB48를 벤치마킹하여 작품성이 아닌 상업성으로만 운영하는 것을 따라하는 데에 급급해진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도 JPOP의 암흑기를 더 장기화 및 가속화 시킨 원흉으로 몰리고 있다.

걸그룹 중에서는 Wink가 1989년 「愛が止まらない ~Turn It Into Love~(사랑이 멈추지 않아~Turn It Into Love~)」로 일본 유선방송상 그랑프리, 「 淋しい熱帯魚 」 (외로운 열대어)가 연간 방송상 그랑프리와 일본 레코드 대상을 차지하며 대히트를 쳤고, 이 곡으로 1989년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했다. 앨범상 등이 아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여성 아이돌 그룹이 받은 것은 전례가 없었다. 그리고 22년이 지나서야 AKB48이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했는데, 악랄하기 짝이 없는 상술에 힘입은 결과였다. 심사위원이 대놓고 시상현장에서 "이것이 현재 일본 가요계의 현실입니다." 라고 대놓고 넋두리를 했을 정도였다.

AKB48의 코러스를 넣어주던 고참 멤버들의 졸업으로 인해 사실상 48그룹의 전체적인 곡 수준도 매우 하향이 되어있고 현 기준 코러스를 넣어줄 만한 맴버들도 전무한 상황이다. 여기서 코러스라고 하면 곡부분에서 난이도가 있는 부분의 배경 AR을 넣어주는 작업인데 그 멤버들이 대부분 졸업하였다. 대표적으로 야마모토 사야카가 있는데, 2018년 가을에 졸업했다.

그룹 자체는 ‘국민적 아이돌’이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일본 대중들 사이에서 AKB48의 모든 멤버가 입지가 탄탄한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은 AKB48이라는 그룹 이름, 그리고 개인활동이 많은 일부 유명 멤버만 알 뿐이다.[11] AKB48에서 유명 멤버 이외의 연구생이나 비인기 멤버 이름은 AKB48의 팬들마저도 잘 모른다. 그나마 유명 멤버도 AKB48의 멤버로서 이미지만을 철저하게 확립시키는 경우가 많은지라, 졸업 후에는 인기가 급락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부분이 AKB48이 한국 시장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 한국을 연고지로 한 48팀이 세워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예능도 잘하는 자국 아이돌이 이미 많은데 굳이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는 외국인을 좋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48 그룹에 대해 조롱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성장하는' 아이돌이라면서 몇년이 지나도록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이다.

이렇게까지 실력이 부족해진 것은 AKB 그룹의 시스템 탓도 크다. 일단 멤버들의 숫자가 많으면 유지비가 많이 들고, 애초에 멤버들을 뽑을 때 음악적 재능이 있는 사람을 뽑은게 아닌데다 처음부터 멤버들에게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시키지 않는다. 그나마 AKB 그룹이 인기의 절정을 달릴 때는 지원을 해 줄 수 있었지만[12] 그룹이 하향세를 타기 시작하고,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가끔이나마 시키던 트레이닝도 안 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다보니 비인기 멤버들이나 최근 22년, 23년에 들어온 신입 멤버들의 실력은 그야말로 처참하고, 인기가 있다는 멤버들의 실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다.


한국에선 AKB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NCT라는 보이그룹[13]이 있는데 이쪽은 시스템만 비슷할 뿐 실력은 천지차이다.[14]


4.2. 끝없는 자기복제[편집]


AKB48의 총선 타이틀 곡은 크게 3가지 성향으로 나뉜다.

* 변명 maybe으로 대표되는 걸즈락풍 곡 (헤비 로테이션, 플라잉 겟, 깅엄 체크)

* 사랑하는 포춘쿠키로 대표되는 복고풍 곡 (마음의 플래카드, 할로윈 나이트)

* LOVE TRIP으로 대표되는 짝사랑 테마의 업템포 곡 (\#좋아해, 센티멘탈 트레인)

[15]


이러한 부류의 신곡들은 과거의 곡에서 큰 틀에서 달라진게 없다. 이렇다보니 곡들은 개성이 줄어 "AKB가 또 신곡을 냈네" 이상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365日の紙飛行機의 이례적인 성공으로 아키모토 야스시는 복고풍에 대한 성공에 희망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곡의 성공과 관계없이 AKB 팬층의 이탈은 멈추지 않고 있다.

물론, AKB48에는 괜찮은 곡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실제 무대의 하루이틀 맞추고 온듯한 통일성이 없는 안무 레벨과 뮤비의 약한 콘셉트로, 새로운 팬을 이끌 수 있을 만큼 임팩트가 강한 곡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렇다.

AKB48만 이미지를 소모하면 그나마 덜 했겠지만, 5개에 달하는 자매그룹이 돌아가면서 그만큼 이미지 소모는 가속화되었다. 재능있는 인물 조차 AKB48에 들어가면 병풍이 될 정도로 세부적인 관리에 무심하다.

STU48의 경우를 봐도 일단 만들어놓고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작금의 실태이다. 가령 STU의 개별 멤버들의 가창력은 역대 1기생 중에서도 좋은 편이지만 그걸 활용할 생각이 없다. 자매그룹은 그저 AKB48 시스템도 복제할 뿐이다. 복제만 하고 제대로 된 케어가 없기에 자매그룹은 갈수록 주목받는 것이 힘들어진다.

20년대에 들어서는 AKB 사단의 청시자였던 아키모토 마저도 AKB 보다는 자매 그룹들 운영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그나마 나오던 곡들마저도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4.3. AKS, DH의 함량 미달[편집]


48그룹을 관리했던 소속사의 수준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우선 신생 소속사로써의 약점을 인지하여 멤버들의 다른 소속사 이적을 허용하는 정책은 초기에 큰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으로 일관할 뿐 내부의 병폐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자체적인 매니지먼트 능력은 발암 수준이라서 대부분의 멤버는 일 없이 내가 아이돌인지 그냥 '극장 스탭'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매니지먼트라는 입장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멤버들에 대한 스케줄 관리 문제다. 스케줄 자체를 제대로 관리 못해서 일하기 하루 전, 이틀 전에 알려주는게 보통이다. 멤버도 사람이고 학교나 사생활도 있는법이지만 AKB 일이 언제올지 몰라서 먼곳으로 어딜 가지도 못한다. 극장 공연이야 기본적으로 7일전에는 고지가 오니 다행이지만...그라비아, 방송, 잡지 같은 건 어느날 갑자기 매니저한테 "OO시에 오세요."라는 문제 받으면 끝. 멤버숫자가 너무 많기에 이름이 헷갈려서 다른 멤버한테 보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멤버들은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일에 투입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콘서트, 이벤트도 별반 다르지 않는데 리허설도 제대로 못하고 전체 연습도 거의 못하지만 멤버에겐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자신들의 주먹구구식 운영은 생각하지를 않고 멤버들의 탓으로 돌리는것이 아키모토 야스시의 단골 멘트다.[16]
물론 소속사들이 아예 손을 놓고 있는건 아니다. 멤버들의 메니지먼트를 이어 받은 소속사에서 그룹을 살려보고자 오디션 방송을 진행했는데 문제는 그 방송의 수준이 처참하다.
참가하는 멤버들의 실력은 형편 없고, 멤버들을 선정하는 기준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수준인데다, 오디션을 위한 무대도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



4.3.1. 그룹 단위의 팬덤 형성 방해[편집]


하코오시(箱推し)라는 단어는 일본어로 '상자 채로 밀어준다.'는 뜻이다. 일본 아이돌계에서는 '자신이 응원하는 오시가 소속된 그룹 자체를 응원하는 팬'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몇 사람이 아니라 그룹을 통째로 좋아하는 것이다.[17] AKB48를 적용하자면 '나는 요코야마 유이도 좋아하지만 AKB 그룹 자체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하코오시의 성향이다.

그래서 하코오시는 이른바 아이돌리즘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한국에서 아이돌팬 대부분은 하코오시 성향이 있어 '그룹 자체가 잘 되어야 멤버도 잘 된다.'고 생각한다. 멤버 누구 하나를 차별하는 것이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는 '특정 멤버를 차별하는 팬'을 지칭하는 악성 개인팬이라는 멸칭이 있다.

AKB48는 시스템적으로 경쟁이 치열했고 총선거 등으로 인기 멤버가 다른 멤버의 인기를 파먹는 제로섬 구조다 보니 하코오시보다는 개인팬이 많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하코오시가 적지는 않았다. 과거의 마에다-오오시마 시대의 AKB는 하코오시가 상당히 많았고 DVD-AKB책-통합굿즈 등도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시절 팬덤은 '난 팀A를 좋아하니깐!', '우린 팀B를 응원하자!' 같은 팀 단위 하코오시가 많아 대항전 성향이 강했다. 팬수가 적어져도 전체 그룹을 응원하는 팬이 많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2010년부터 AKB가 빅히트를 하고 인기 멤버가 팀을 뛰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팀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늘 나오던 신공연도 스케줄을 핑계로 나오지 않게 되고 팀은 점차 유명무실이 된다. 팀단위 하코오시는 점점 사라지고 겸임이라던가 스타벤 제도등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로 『팀별 하코오시』는 급격히 숫자가 줄어든다.

팀 단위 하코오시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특히 AKB48를 모두의 AKB로 만들면서 SKE48, NMB48, HKT48등 다양한 그룹을 끌여들이면서 팀 하코오시가 질색할 만한 행동들을 계속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짬뽕밥 같은 행태 때문에 AKB의 거대한 팬덤은 자매그룹이라던가 노기자카라던가 기타 지하돌 등으로 흘러들어갔다.

단독 콘서트는 하지 않고 허구헌날 『자매그룹과 콜라보, 그룹 통합 콘서트』 등을 하면서 본점을 응원해야 할 이유가 줄어든 탓이었다. 팀 단위 전국투어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 결과 『AKB48 하코오시』는 상당히 붕괴되었고 2015년부터 DVD 판매량은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된다. 묘한 것은 AKB의 개별 멤버의 팬은 여전히 있는데도 이들이 DVD/BD를 구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본점 콘서트의 재미나 사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

2017년 연말 부랴부랴 자매그룹과 겸임을 해제하고 팀8과 통합하면서 해결책을 찾으려 했지만 5년이나 늦었기 때문에 떠난 하코오시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4.3.2. 멤버들의 케어 부재[편집]


AKB48의 인기 멤버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생활을 한다(☆로 처리한 것은 자매그룹을 겸임할 시 두세배로 늘어난다):
* 차량, 선박, 항공기를 통한 장소 이동(☆)
* 보컬/안무 연습(☆)
* 리허설(☆)
* 자기관리(비주얼, 건강, etc.)
* 악수회(☆)
* 콘서트(☆)
* 칸무리 프로그램(☆)
* 쇼룸
* 공식 블로그 갱신
* 모바메 갱신(☆)
* SNS(755, 구글 플러스, 트위터, 인스타그램) 갱신
* 음악방송 프로모션(☆)
* 극장 공연(☆)
소속사가 있는 멤버는 그라비아나 예능, 드라마, CF 촬영을 비롯한 개인 활동이 생기고, 당연히 신체적인 피로 외에도 사소한 표정 변화, 걸음걸이, 내뱉은 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강박 수준의 악플 공격이 심적인 고통으로 수반된다. 10년대까지 연례 행사로 총선거와 하루에 몇 곡씩 피로해야 하는 리퀘스트 아워가 있었다. 숙면 시간도 챙길까 말까한 스케줄에 활동 중, 혹은 졸업 후 얼마 안 가 건강에 문제가 생겨 활동 중단을 하게 되는 사례가 무척 많다.

또한 팬들은 꾸준히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런 팬들을 완전 돌아서게 만들 만큼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레슬링 드라마 두부 프로레슬링AKB 러브나이트 사랑공장이다. 팬들은 레슬링으로 멤버들이 다치는 꼴을 절대 보지 못하겠다는데도 이걸 강행해 버렸다. 무카이치 미온에게 어이없는 악역을 시키는 등 팬들이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기획 그 자체였고 이후 코다마 하루카가 부상으로 의심되는 활동휴지를 약 2개월하면서 팬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 시로마 미루도 SHOWROOM에서 "어떻게든 레슬링 안 할 방법 없을까?" 이야기할 정도로 멤버들도 공감을 못했다.

AKB 러브나이트 사랑공장 역시도 실제 연애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였는데, 팬들은 남자 배우와 연기하는 꼴을 죽어도 보기 싫다고 격한 반대를 했지만 결국 이런 의견을 무시하고 강행했다. 그러나 흥행도 되지 않고 그럭저럭하다가 끝나버렸다.

이것뿐만 아니고 극장 공연을 점수제로 한 페넌트레이스는 역대급 오점이었고, 드래프트 제도 역시 사실상 유명무실하고 연구생 제도보다 못한 제도라는 평가가 많다. 정규 기수 취급받지 못하는 드래프트 생들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으나 드래프트 2기생이 뽑히면서 그나마 완화되었다.

프로듀스 48 참가 당시에도 문제가 터졌는데, 한국 참가자들 중 현역 아이돌로 활동 중인 참가자들은 프로그램의 참가를 위해 당연히 본업의 활동은 일시적으로 중단한 상태로 출연했지만, 48그룹의 참가자들은 일본에서의 스케줄을 중단하지 않은 채 그대로 출연시켜 버린 것. 방송을 보면 몇몇 멤버들이 스케줄 때문에 자리를 비운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이며 한국 연습생들이 연습에 올인하는 동안 일본 스케줄을 병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습 기간이 더 짧을 수 밖에 없어 공평하지 못한 조건이 되었고 결국 모든게 돈에 눈이 먼 운영진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이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멤버들이 경연에서 실수 없이 무대를 마친게 대단할 다름. 게다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단기간 동안 수시로 새로운 안무와 잘 모르는 한국어로 노래를 배우고 연습해야하는 멤버들에게는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다. 촬영기간 내내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거리며 스케줄을 소화하는 바람에 멤버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혹사를 당했다. 프로그램 녹화 시간이 엄청 긴 탓에 한일 참가자 상관없이 수시로 졸았다고 하지만 48그룹 멤버들은 양국을 오가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 탓에 프로그램 녹화중 졸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유독 더 포착되었다.[18]

그룹의 이름을 걸고 방영하는 칸무리 예능에서 멤버들은 곤충을 먹고, 중년 남성 예능인과의 스킨십, 아르바이트 체험의 명분으로 캬바쿠라 접대를 종용받는다. #1 #2 과격한 몸개그가 많은 일본 예능 특성상 AKB48만의 문제점이라고만 할 수는 없으나 프로듀스 48 방영 시기, 일본 문화에 밝지 않은 대중들에게 있어선 상술된 문제점들 못지 않게 비난/비판을 받은 사항이다.

사실 이러한 소속사의 정책상 '이벤트'에 집착하게 되고 진정한 실력적 상승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렇게 팬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멤버들 케어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돈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한 결과 2019년 NGT48 내에서 대형사고가 터졌다. 이로 인해 안 그래도 이미 땅바닥이던 운영에 대한 신뢰도와 그룹 이미지가 지하 맨틀까지 파고 들어가게 된다.


4.3.3. 멤버들의 성상품화[편집]


일본 여자아이돌 업계는 성 상품화가 심하기로 정평이 나있지만 AKB사단은 그 중에서 최고를 달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라이벌 그룹 격인 사카미치 계열 조차도 최대한 노출과 성 상품화를 배제한 활동방향을 잡고 있음에도 정작 48사단은 아직까지 저급한 성 상품화를 이어오고 있다.

이 성 상품화라는 게 작게는 미성년 멤버의 수영복 사진이나 나체 사진을 공공연하게 매스컴에 내놓거나, 멤버들을 단체로 접대부(캬바쿠라) 소재 드라마 캬바스카 학원을 찍게 만드는 등 종류도 다양하다. 캬바스카의 경우 주연 멤버가 남성 손님을 유혹해 모텔까지 가고 본인의 다 벗은 모습이 그대로 방송에 나오거나 술집에서 손님에게 볼성사나운 애교를 부리는 등의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

오오호리 메구미는 솔로싱글 발매 기획으로 '달콤한 고관절'이라는 노래를 발매한 적이 있는데, 아키모토는 오오호리에게 거의 헐벗은 수준의 의상과 '고관절이 느슨하다'라는 등의 저질 가사를 선사하였다. 아무리 오오호리가 연장자이고 본인의 캐릭터가 있다고 해도 선을 넘은 것이었으며, 게다가 그룹 전체 방송인 AKBINGO!에서 이런 것을 다뤘다.

AKB가 톱 아이돌이 되고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항례의 수영복 뮤비도 없어졌고 일정 연령 이하의 멤버는 그라비아 활동을 하지 않는 등 어느 정도 변화하고는 있으나,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AKB 그룹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기에 충분하다.


5. 결과[편집]


이미지 소비와 히트곡 부재 때문에 2014년 이후에는 대중적인 영향력을 잃었다. 특히 음반 판매량과 음원 차트의 괴리감이 점점 심해지고, 음악의 질도 점점 떨어진다는 평이 나온다. 2015년 발매된 ハロウィン・ナイト의 가사는 그동안 아키모토 야스시가 쓴 가사들 중에서도 전례없는 혹평을 받았다. 365日の紙飛行機가 간만에 플래티넘 인증을 받으며 대중적인 히트곡이 나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후 느낌이 거의 비슷한 翼はいらない가 나오니, 히트곡 답습도 이젠 질린다는 반응이 나왔다.

악랄하기 짝이 없는 악수회 마케팅 등 일부 열성 팬의 매상력에만 극도로 의존하는 활동 형태로 인해 점점 한계를 보이고 있는 중이었는데 20년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악수회 마저도 못하게 되면서 앨범 판매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한마디로 이미 병들대로 병들어서 혼수 상태인 그룹을 악수회를 통해 그래도 호흡기는 달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호흡기마저도 떼진 것이다.)

2015년부터는 본격적인 하락세가 가시화되었다. 4분기 싱글 입술에 Be My Baby의 판매량 초동이 100만장 아래로 떨어진 일이 벌어졌으며[19], 악수회 판매부수도 계속해서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과거에는 어지간한 인기멤버라면 악수회 완매는 기본이었지만, 이제는 전체부수를 완매하는 멤버도 손에 꼽을 정도 밖에 없다. 자매그룹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그 자매그룹들조차 음반 판매량은 점점 하락세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하락세를 타는 원인은 간단하다. 대중들이 이제는 AKB48에 질렸기 때문이다. 일본 아이돌은 다음 차세대 아이돌이 나오면 그 쪽으로 팬덤이 쏠리는 경향이 있다.[20] 지난 14년간 AKB48에 열광했던 오타쿠들도 이러한 시스템에 재미를 잃어가는 중이다. 오히려 총선거가 없고 신선한 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 등에 오타쿠들이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AKB48라고 하면 아직도 마에다 아츠코오오시마 유코[21]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 단적으로 과거의 선발이나 카미7은 상당히 이슈가 됐지만, 지금 선발급 멤버들은 대중들에게 전혀 인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1. 꾸준한 인기멤버 배출
2. 히트곡 배출
3. 방송에서의 성공 (칸무리방송)


AKB는 이를 실패했고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다. CM 기용횟수에서 몰라보게 줄어들었는데, 이는 더이상 광고회사에서 48그룹이 대중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22] AKB48가 하던 CM을 노기자카46에게 넘겨줄 정도로 지금의 AKB는 오타파워도 대중파워도 약화되었다. 케야키자카46의 젊은이들 사이에 상승세가 대단해져서 사카미치 그룹이 AKB를 넘은 것도 벌써 2016년부터니깐 2년이 넘었다. 물론 AKB의 진정한 위기는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이다. 우선 인기 멤버를 많이 잃은 자매그룹이 지금보다 먼저 무너질 것이다. SKE, HKT의 유튜브 조회수가 하락하고 있는데 유튜브 주요 시청층인 10대~20대에 48그룹이 효과를 못 거두고 있다. 여자 아이돌판 전체가 피로도가 심해져서 아이돌 춘추전국시대가 2013년을 끝으로 종료된 것도 자매그룹에 불운한 소식이다. 이렇게 자매그룹이 하락세를 타면 자연스럽게 본점에도 판매량 하락이 찾아오게 된다. 지금이 그 과도기인데 운영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도핑'으로 불리는 악수회 상술에 이것저것을 더해서 어찌어찌 밀리언을 유지하고 있다.

2016년 총선거 미즈기 서프라이즈는 충격의 패배를 했는데, 바로 라이벌 그룹 노기자카의 두번째 사진집 [乃木坂46 セカンド写真集 1時間遅れのI love you]에게 초동에서 밀리게 된 것이다.[23]

1주차 AKB VS 노기자카 판매량乃木坂46「1時間遅れのI love you.」2016/8/5 [40,941]  @2000엔AKB48「水着サプライズ2016」2016/8/3 [38,447]  @1200엔2주차 AKB VS 노기자카 판매량乃木坂46「1時間遅れのI love you.」2016/8/5 [12,741부]
AKB48「水着サプライズ2016」2016/8/3 [11,305부]

노기자카 사진집이 더 비싸다. 무려 800엔(8,000원 정도)[24] 수영복이 너무 이상해서 병맛 그렇다고 팬들은 이야기 하지만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다. AKB 수영복 서프라이즈의 판매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이런 지표는 몇년째 이어지고 있다. 딱히 수영복이 이상해서 판매량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노기자카46는 인기멤버 후카가와 마이, 하시모토 나나미가 졸업했을 뿐 이제 최정점이다. 인기멤버가 빠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 AKB48랑 별반 차이는 없다. 쉽게 설명해서 AKB48과 일정 부분 팬층을 공유하는데다 AKB48에서 노기자카46로 넘어간 사람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AKB48을 왜 떠났는지를 생각해보면 노기자카46도 텀을 두고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격세지감이라고, 2011년 결성 당시만 해도 노기자카가 이렇게까지 잘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노기자카나 케야키자카에 이미 상당 부분 따라잡힌 것도 사실이다. 이젠 AKB가 싱글 판매량조차 따라잡힐 가능성도 있다.

오리콘 차트 연간 토탈세일즈 (싱글+앨범+DVD+BD)
AKB48
2011 162.8억 엔 1위
2012 190.9억 엔 1위
2013 132.5억 엔 2위
2014 130.8억 엔 2위
2015 112.9억 엔 2위
2016 *69.5억 엔 4위
2017 *72.6억 엔 5위
2018 *77.9억 엔 3위
노기자카46
2013 *17.7억 엔 17위
2014 *27.3억 엔 9위
2015 *44.9억 엔 6위
2016 *74.4억 엔 3위
2017 *80.6억 엔 4위
2018 103.3억 엔 2위
케야키자카46
2016 *16.3억 엔 26위
2017 *38.3억 엔 9위
2018 *41.0억 엔 10위

실제로 2016년부터는 실 판매량과 매출면에서는 이미 노기자카에게 따라잡혔고, 인기멤버가 전부 졸업해버려서 콘서트 집객 능력은 노기자카한테도 상대가 안된다. 그리고, 노기자카46이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2017년~2018년 2년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하는 2연패를 달성하면서 완전히 노기자카의 시대가 왔고 사실상 일본 아이돌계의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어쨌거나 지금의 48그룹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이러한 라이벌의 급성장도 무시 못할 상황이다. 악수회를 메인으로 하여 소득이 발생되는 만큼 케야키자카46, 노기자카46 같은 그룹은 파이를 쪼개 먹는 직접적인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48사단에 속한 멤버가 계속 바뀌더라도 어쨌든 AKB48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 AKB48 자체에 변화를 주고 히트곡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고 멤버들의 네임밸류를 유지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전히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여자 아이돌인 것은 분명하며, 2016년부터 여러 변화를 시도했지만 48그룹은 여전히 인기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 악수회에서의 동원력이 급감하였고, 콘서트에서 집객 능력도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아레나의 3만 석 콘서트도 못 채울 정도다. 유일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은 선발 총선거뿐이다. SHOWROOM이 시작되면서 어떻게 미디어에서의 활약을 조금 늘려보려고 하고 있지만, 지상파에서 AKB의 CM은 이미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그래서, 차세대 AKB가 예능에서 게스트로 나오는 일도 이제는 너무 줄어들었다.

자체 칸무리 방송 AKB TO XX, 아리요시 공화국, AKB 관광대사 같은 방송도 종결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시작되는 프로젝트는 너무 띄엄띄엄이라서 팬덤의 걱정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코지마 하루나, 시마자키 하루카 같은 멤버도 졸업하면서 떠나고 오오와다 나나, 니시노 미키같은 차세대를 이끌어 갈 기대주들도 스캔들같은 이유로 졸업하고 있는 실정이다. 악수회, 샤메회[25], 동화회[26], 마츠리[27] 같은 이러한 이벤트 도핑 상술로 어떻게든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의 48그룹 시스템은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상황이다. 그런데도, 새롭게 가입한 16기생이나 드래프트 2기, 3기에서도 특별한 재능이 보이는 인재들이 쉽게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상 AKB48의 최후의 전국 방송인 AKBingo도 폐지되었다.

결과적으로 팬들로써도 새로운 맴버를 알 수 있는 마지막 방송이 사라졌고 해외에 남은 팬들 조차 AKB48의 소식을 알 수 있었던 방송이 사라져 버렸다. 한 마디로 신입기수를 뽑는다고 해도 극장에 가는 고정팬들만 알 뿐이지 원거리 팬들이나 해외팬들은 모르고, 일부 방송은 이미 사카미치에게 넘겼으며 NHK에서 방송되던 AKB48 SHOW!도 2019년 3월 폐지되어 전국적으로 타는 칸무리 방송이 없는 그룹이 되었다.

[1] 이러한 혹사를 버티지 못하는 멤버는 졸업을 선택한다.[2] 실제로, 악수회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다른 멤버에게 줄을 서있는 옆 레인 사람들에게 울면서 손을 흔들고 눈물대응까지 하는 멤버도 있었는데 NGT48타카쿠라 모에카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옆자리의 멤버가 카시와기 유키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3] 물론 연애를 넘어 결혼, 속도위반 자녀 출산(...)은 한국 아이돌에서도 용인되지 않으며, 여자 아이돌이면 팀에서 사실상 탈퇴다. 남자 아이돌의 경우 본인이 아빠가 되었음에도 활동하는 경우는 딱 있다.[4] 언론에다 조그마한 거짓 스캔들을 부풀려서 기정사실화하고 명성을 나락으로 추락시키는 사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애와 관련된 스캔들로 오해를 사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었다.[5] 다만 이 사건은 결혼도 결혼이지만 문제는 총선거 소감 발표에서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었다. 쉽게 말해 "팬들이 돈을 써서 올라간 순위 발표 소감에서 결혼 발표" 이기 때문에 더 논란이었던 것이다. 본인은 이런저런 해명을 하긴 했으나 졸업 이후 발언 등을 보면 신뢰성은 없어 보인다. 한국으로 대입하자면 2019년 강다니엘이 첫 음반을 내고 역대급 초동을 낸 뒤에 지효와의 스캔들이 발표되었을 때의 강다니엘 팬들의 반응과 비슷하다.[6] 물론 걸그룹 중 더 나이가 높은 Perfume이 있긴 하지만, 그 그룹은 애초에 아티스트 그룹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논외로 평가받는다.[7] 1994년생으로, 2015년까지도 미야와키 사쿠라(1998년생), 마츠이 쥬리나(1997년생)과 차세대 조로 묶이기도 했다.[8] 사토 아미나 역시 1회 총선거에서 8위를 달성한 이력이 있지만, 운영은 그녀를 내쳤다. 해당 문서 참조.[9] 이리야마 안나, 카토 레나, 카와에이 리나, 나가오 마리야가 있다. 중견 기수 중에서도 나이가 많지 않은 키쿠치 아야카, 후지에 레이나를 밀어주고 있다.[A] 졸업 전 마지막 AKB48 싱글 선발이다.[10] 2023년 9월 기준 AKB48 내 인기 멤버 중 ‘라이브를 안정감 있게 한다’고 평가를 받는 멤버는 현재 한 손에 꼽힐 만큼 적은데, 카시와기 유키, 무라야마 유이리 정도. 프로듀스 48의 영향으로 야부키 나코, 혼다 히토미, NMB48시로마 미루, 무라세 사에 정도의 멤버들이 실력이 향상 되었으나, 2023년 현재 시로마 미루와 무라세 사에, 야부키 나코는 졸업을 해버린 상태이며 혼다 히토미마저 졸업을 발표한 상황. 타노 유카마스다 유카처럼 실력파로 뛰어난 멤버들도 있었지만, 푸쉬를 소화하지 못했거나 스캔들이 터지는 일이 잇따라 실패했다. [11] 일본 내에서 연예인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조사하는 가장 공신력 있는 지표 중 하나인 닛케이 파워랭킹에서 AKB48는 2011~12년에 1위를 한 이후 줄곧 3위이다. 1위는 6년 연속 Perfume이고, 2위는 모모이로 클로버 Z. 심지어 Perfume을 제외한 나머지 두 그룹은 해마다 점수가 떨어지고 있다.[12] 물론 이때도 실력을 향상시키기엔 터무니 없는 지원이었다.[13] 똑같이 완전체보다는 유닛으로 더 많이 활동한다.[14] 그러나 NCT도 한계를 느꼈는지 무한확장 체제를 종료하고 앞으로는 신규 보이그룹을 따로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15] 다만 이 음악적 변화는 나름 AKB의 세대별 이미지를 상징하는 요소이기도 해서, 꼭 문제점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16] 이것과 비슷한 운영을 하는 곳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요시모토 흥업이다. 각종 방송에서 요시모토 소속 개그맨들이 회사의 운영(+매니저)을 까는 내용을 거침없이 말하고, 아예 그것을 특집방송으로 꾸밀 정도로 말이 많으며 팬들도 해당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정도. 문제는 그럼에도 요시모토에는 매년 실력있는 신인들이 몰려들고, 실력이 있으면 확실하게 굴려서 인지도를 쌓아주는데다 오사카라는 확고한 기반이 있기때문에 전국구 인기인은 못 되더라도 각 지역에서 인기를 얻어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해 주는데다, 일본 개그계의 병패로 불리우는 군대식 선후배 관계의 몇 안되는 순기능인 '선배가 후배를 챙겨주고, 후배는 선배를 받쳐준다.' 역시 확실하게 기능하기 때문에 실력만 있다면 확실하게 방송 노출을 확보하게 된다. 무었보다 위에 적었듯이 소속 개그맨들이 방송에서 대놓고 회사 욕을 한다. 결과만 낸다면 회사가 욕먹는 것도 감수를 한다는 뜻으로 AKS와는 대응 자체가 다른 셈이다.[17] DD와는 약간 다른데, DD는 그룹 멤버 개개인을 모두 좋아하는 것인 반면, 하코오시는 그 그룹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18] 그러나 이 부분은 담당PD의 편집이 악명 높기로 유명해서 악마의 편집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19] 이후 운영이 온갖 도핑, 악수회 재판을 돌리게 되었고 봄 싱글의 경우는 사카미치 AKB 프로젝트까지 동원한 결과 현재는 어찌어찌 간신히 초동 밀리언 유지는 근근히 하는 중이다.[20] 스피드→ 모무스→ AKB→ 노기자카 같은 식이다.[21] 마에다가 2012년 졸업, 오오시마가 2014년 졸업으로 졸업한지도 꽤 된 상황이다.[22] 당연하지만 잘 나가는 그룹일수록 더 많은 CM을 찍기 마련이다.[23] 아무리 노기자카46의 두번째 사진집이라지만 전그룹 인기멤버가 총출동한 미즈기 서프라이즈에서 패배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담당 잡지사에서도 충격이었던 모양. "리벤지 하겠습니다!"라고 언급했지만 AKB팬들한테 "똥같은 수영복 입혀놓고 뚫린 입이라고!!"라며 욕을 쌈박하게 먹었다. 확실히 2016년 수영복이 구리긴 했다.[24] 물론 가격이 대부분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잡지를 사는 것은 팬인데, '노기자카 사진집이 800엔이나 비싸니까 AKB의 사진집을 사겠다' 라고 생각하는 팬은 소수이기 때문이다.[25] 폰카 또는 폴라로이드로 팬과 멤버의 투샷을 찍어준다. 폴라로이드의 경우 멤버가 직접 장식까지 해준다.[26] 팬이 폰카로 멤버의 미리 정해진 짧은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27] 멤버들이 부스를 열고 이벤트를 진행하며, 굿즈 또는 음식을 팔거나 소규모 공연, 토크를 진행한다. 마츠리에서 촬영된 소규모 공연 영상을 보면 규모가 1,000명이 채 안될 정도로 정말 소규모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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