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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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파일:Asia.jpg

발매일
1982년 3월 18일
녹음일
1981년 6월 - 1981년 11월
장르
프로그레시브 록, 팝 록, 하드 록, AOR
곡 수
9곡
재생 시간
44:22
프로듀서
마이크 스톤
레이블
게펜 레코드
1. 개요
2. 상세
3. 트랙리스트
3.1. Side A
3.1.2. Only Time Will Tell - 4:44
3.1.3. Sole Survivor - 4:48
3.1.4. One Step Closer - 4:16
3.1.5. Time Again - 4:45
3.2. Side B
3.2.1. Wildest Dreams - 5:10
3.2.2. Without You - 5:04
3.2.3. Cutting It Fine - 5:35
3.2.4. Here Comes the Feeling
3.3. 참여자



1. 개요[편집]




파일:빌보드 로고.svg
빌보드 200 역대 1위 앨범

Chariots of Fire
Vangelis

Asia
Asia
(2주 연속)


Tug of War
Paul McCartney
Tug of War
Paul McCartney

Asia
Asia
(7주 연속, 누적 9주)


Mirage
Fleetwood Mac
영국프로그레시브 록 슈퍼 밴드인 아시아가 발매한 데뷔 1집이다.


2. 상세[편집]


프로그레시브 록 역사상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음반중 하나로, 1982년 연말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플리트우드 맥Mirage, 포리너4, 폴 매카트니Tug of War 등의 히트 작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현재까지 빌보드 연말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프로그레시브 록 성향의 음반은 이 음반과 The Wall 밖에 없다. 판매고 역시 매우 높아서 세계적으로 500만장 가량 팔렸다. 다만 본고장인 영국보다는 미국에서 더 성공한 편(400만장 판매)이다. 영국에서의 상업적 성과는 중박 수준.

음악적으로는 당시 유행하던 AOR, 팝 록과 그들의 고유한 장르였던 프로그레시브 록을 접목시켰다. 즉 어느정도 대중성을 의식하고 만든 앨범이다. 이 당시 프로그레시브 록을 비롯한 정통 록밴드들은 디스코 광풍으로 인해 더이상 정통 프로그레시브 록을 추구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음악적 성향을 바꿨는데 아시아는 그중에서 저니, 포리너와 같이 AOR을 선택한 쪽이다.[1]

평론가들과 동료 음악가들의 평은 엇갈렸는데, 프로그레시브 록의 팬들에게서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배신했다며 나쁜 평을 받았다. 로버트 크리스트가우 역시 가사가 깊이가 없다며 비판했다. 반면 빌보드와 올뮤직의 경우 이 앨범을 호평하였다.

웅장한 특유의 앨범 커버는 예스의 앨범 커버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로저 딘이 맡았다. 이는 당시 아시아의 멤버로 예스 출신이었던 제프 다운스[2]와 스티브 하우가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트랙리스트[편집]



3.1. Side A[편집]



3.1.1. Heat of the Moment - 3:48[편집]



  • 앨범에서 가장 히트한 싱글로, 빌보드 핫 100에서 4위에 오르고 연말 차트에서는 40위를 차지했다. 밴드의 시그니처 송.


3.1.2. Only Time Will Tell - 4:44[편집]





3.1.3. Sole Survivor - 4:48[편집]





3.1.4. One Step Closer - 4:16[편집]





3.1.5. Time Again - 4:45[편집]





3.2. Side B[편집]



3.2.1. Wildest Dreams - 5:10[편집]





3.2.2. Without You - 5:04[편집]





3.2.3. Cutting It Fine - 5:35[편집]





3.2.4. Here Comes the Feeling[편집]





3.3. 참여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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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그레시브 록이 원래 키보드 음을 강조하는 장르인 만큼 제쓰로 툴, 킹 크림슨, 필 콜린스 등 다른 프로그레시브 음악가들은 대부분 뉴웨이브 쪽으로 가서 도리어 팝으로 노선을 바꾼 아시아의 노선 전환은 상당히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2] 릭 웨이크먼이 탈퇴한 후 1980년부터 1981년까지 잠깐 키보디스트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