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to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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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음악가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1975년 8월 25일에 발매한 3번째 정규 앨범. 미국 국내에서 700만장, 전세계적으로 1000만장 이상을 판매하는 대성공을 거두며 그를 동부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가에서 1970~1980년대의 대표적인 록스타로 떠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은 앨범이다.
2. 상세[편집]
브루스 스프링스틴에 대해 언급할때 절대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대표작이며, 대부분의 평론지, 평론가들에게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들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Born to Run 앨범이 성공한 이후 그는 컬럼비아 레코드의 문제아에서 주류 록스타로 올라섰으며, 이후 1975년 10월 27일, 최초로 타임, 뉴스위크의 표지에 록스타로서 동시에 실리며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2]
브루스 스프링스틴 가사의 주제와 음악적인 특징인 청소년, 노동자들의 관한 내용과 고전적인 로큰롤에 영향을 받은듯한 음악은 Born to Run 앨범이 완성했다.
앨범 커버도 상당히 유명해져서 롤링 스톤이 선정한 위대한 앨범 커버에서 8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흑백 사진 한 장[3] 으로 구성된 앨범 커버는 현재 기준으로봐도 상당히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이 앨범 커버는 세서미 스트리트가 패러디 한 적도 있다.
3. 녹음[편집]
Born to Run의 세션은 1974년 1월 8일에 Born to Run, Jungleland의 시연으로 시작해 8월 둘째주에 Tenth Avenue Freeze-Out의 녹음을 끝낼때까지 지속됐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머릿 속의 소리를 형상화하려 했고, 그 과정 중에서 필 스펙터의 소리의 벽에 영감을 얻어 악기 연주들을 층층히 쌓아가며 녹음한 것 때문에 많은 돈이 깨져나갔다. 또한 당시에 최고의 로큰롤 앨범을 만들어보이겠단 그의 야심 때문에 앨범의 구성이 바뀌거나 곡 자체가 갈아엎어지는 일도 많았다. 이는 Born to Run 곡의 최종적인 완성에만 6개월이 소모되었을 정도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세션들은 대부분의 곡을 914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지만, 1975년 4월 13일에 정식으로 공동 프로듀서로 추대된 존 랜도는, 914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그런 소리를 구현해내는데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서 뉴욕 래코드 플랜트로 녹음 장소를 옮겼다.
4. 평가[편집]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경력 중 최고의 앨범이자 하트랜드 록 장르내에서 가장 위대한 앨범, 1970년대 미국 록 음악의 정수로 평가 받는다.
앨범이 발매된 1975년 8월 25일은 베트남 전쟁이 종전된지 4개월째 되는 날짜이자, 1970년대의 미국은 오일 쇼크, 워터게이트 사건을 겪으며 암흑기에 접어들면서 미국 국민들은 미래를 불안과 절망으로 가득찬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PTSD, 마약과 같은 사회적 문제도 1970년대에 대두되며, 제2차 세계 대전의 미국의 영광은 베트남 전쟁에서 처음으로 패전하면서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를 뉴저지의 청소년, 노동자들의 시점을 무대로 이러한 삶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을거란 믿음에 가득찬채 마을을 떠나는 모험을 다룬 찬송가에서, 증오와 폭력으로 물든 거리의 비극, 갱단들의 총격전을 그려나가는 서사시로 이루어진 앨범은 1970년대의 미국의 상황을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다.
음악적으로도 훌륭하다고 평가받는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필 스펙터의 "소리의 벽"을 구현하고 싶어했고, 원초적인 로큰롤 음악에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기본적인 록 음악 악기 구성에서 피아노, 색소폰를 도입한 소형 빅 밴드와 같은 구성인 E 스트리트 밴드를 이용하면서 웅장하고 화려한 소리를 만들어냈고, 이는 Jungleland의 색소폰 솔로에서 결실을 보인다. 또한 루츠 록의 하위 장르인 하트랜드 록의 소리도 선구적으로 만들어냈다.
미국의 음악시장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이 앨범을 통해 상업적인 실익으로 이루어진 구속을 해방하며 완전한 음악적인 독창성을 확립했고, 컬럼비아 레코드의 '로큰롤의 미래'라는 타이틀의 대대적인 홍보도 성공하면서 타임지, 뉴스위크의 표지에 최초로 같은 주간에 선정되는 결과가 되면서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이는 상업적인 실패만 기록하던 브루스 스프링스틴에게 '돌파구'[4] 와 같은 앨범으로서 남았다. 또한 1970년대의 록은 펑크 록, 프로그레시브 록, 헤비 메탈이 유행하면서 록 음악은 어렵거나 퇴폐적인 색채를 띄기 시작하더니 록 음악의 문제점이 되어 1991년의 Nevermind가 나올때까지 지속되었는데, 그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우며 로큰롤의 순수한 저항정신과 전통성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고평가를 받는다.
어클레임드 뮤직에 따르면 이 앨범은 미국 록 음악 앨범 중에서 6번째로 순위가 높은 앨범이다.[5]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리스트 2010년 판에선 18위, 2020년 판에선 21위에 올랐는데, 2020년 판에서 록 앨범 평가의 하락이 크게 돋보인 와중에 이 앨범은 순위가 거의 그대로 유지된 것도 특기할 만한 요소이다. 영국 인디 록을 편애하는 것으로 유명한 NME의 500대 명반 리스트에서도 86위에 올라 나름 높은 순위를 차지하였다.
5. 흥행[편집]
앞서 언급한 타임지와 뉴스위크에 동시에 실린 여파로 이 앨범은 큰 흥행을 기록하였으며, 빌보드 200 차트에서 18위로 처음 차트에 올랐으며, 최종적으로 3위까지 올라 당시까지 발매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 중에서 단연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였다. 이후 4집 앨범 The River가 발매되고 다시 차트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제일 성공한 앨범인 7집 Born in the U.S.A.가 발매되면서 다시 차트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앨범의 리드 싱글인 Born to Run은 빌보드 핫 100차트 23위까지 오르면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싱글 중에서 최초로 빌보드 차트 40위 안에 든 싱글이 되었다.
1982년에 3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 RIAA에서 트리플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총 6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6. 트랙 리스트[편집]
6.1. Side A[편집]
6.1.1. Thunder Road[편집]
-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에서 86위에 선정되었다
6.1.2. Tenth Avenue Freeze-Out[편집]
- 두 번째로 싱글컷 된 곡. 빌보드 핫 100에 83위에 올랐다.
6.1.3. Night[편집]
6.1.4. Backstreets[편집]
6.2. Side B[편집]
6.2.1. Born to Run[편집]
- 항목 참조.
6.2.2. She's the One[편집]
6.2.3. Meeting Across the River[편집]
6.2.4. Jungleland[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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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초기 프로듀서이다. Born to Run 앨범 작업에 저축한 돈을 모두 사용해 지원해달라고 컬럼비아 레코드 관계자와 언쟁을 벌이거나,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방해한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 석탄을 보내는 과격한 행동으로 당시 이슈가 됐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존 랜도로 프로듀서를 교체하려 하자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법적 분쟁까지 했다.[2] Revisiting Bruce Springsteen’s ‘Time’ and ‘Newsweek’ Covers[3] 참고로 사진 속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기대고 있는 사람은, 그의 백밴드 E Street Band의 색소포니스트였던 클라렌스 클레먼스이다.[4] 영어로서 breakthrough 단어로 표현된다. 이는 어떤 난관의 돌파구나 특정 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을 표현할때 사용한다.[5] 참고로 1번째는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 2번째는 너바나의 Nevermind, 3번째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4번째는 밥 딜런의 Blonde on Blonde, 5번째는 밥 딜런의 Highway 61 Revisited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