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 펑크/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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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데뷔 및 초기활동 (1999~2000)
3. IWA: Mid-South (2000~2005)
4. ROHTNA (2002~2005)
5. WWE에 입성하다
5.1. ECW에서의 활동 (2006~2008)
5.2. RAW로의 이적 (2008~2009)
5.3. 제프 하디와의 대립, 완전히 악역으로 자리를 잡다 (2009)
5.5. 다시 돌아온 RAW 그리고 NEW NEXUS (2010~2011)
5.7. Best In The World (2011 ~ 2012)
5.8. 434 Days WWE Champion (2012 ~ 2013)
5.10. 폴 헤이먼과의 대립 (2013)
5.11. Authority와의 대립 (2013 ~ 2014)
6. 갑작스런 탈단과 은퇴 (2014)
6.1. 탈단의 이유
7. 은퇴 이후
9. I Changed The Culture
10.1. 데뷔, 7년만의 프로레슬링 복귀
10.2. vs MJF
10.3. 손에 넣은 챔피언 벨트를 스스로 걷어차다.
11. AEW로부터 방출 이후
11.1. WWE로의 복귀 시도, 그러나 좌절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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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 펑크의 커리어를 다룬 문서.

2. 데뷔 및 초기활동 (1999~2000)[편집]


WWF 시절 로디 파이퍼가 자신의 토크 쇼인 파이퍼스 핏에서 지미 스누카에게 코코넛으로 공격하는 장면을 봤을 때부터 프로레슬러를 꿈꾸었다. 1990년대 중후반 백야드 프로레슬링 단체인 Lunatic Wrestling Federation에 입문하였는데 CM 베놈이란 링네임을 가진 친구(펑크와 달리 이 친구는 얼마안가 곧 그만두었다.)와 함께 결성했던 Chick Magnet이란 태그팀에서 CM을 따왔고 여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인 펑크를 더하여 CM Punk란 링네임을 만들어 사용했다.[1]

1999년에 시카고에 위치한 레슬링 도장인 '스틸 도미니언'에서 정규 훈련을 받았는데 관장이었던 에이스 스틸에 따르면 관중들과의 커넥션은 뛰어나도 운동 신경이 정말 둔한 반면 비슷한 시기에 도장에 들어와 절친이 된 콜트 카바나는 대학 풋볼 선수로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갖추고 있어 둘이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3. IWA: Mid-South (2000~2005)[편집]


IWA(Independent Wrestling Association): Mid-South란 단체에서 콜트 카바나, 크리스 히어로, AJ 스타일스, 에디 게레로 등과 대립하면서 탑랭커로 성장해나갔고 이 단체의 라이트헤비급 챔피언과 헤비급 챔피언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IWA-MS에서는 자신도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단체내에서 유일하게 데스 매치를 가지지 않은 선수 중 한명이다. IWA-MS는 CZW 못지않게 데스 매치로 유명한 단체인데, 이런 단체에서 CM 펑크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결국 IWA-MS에서도 노멀 매치를 볼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나 다름없다. 이때 크리스 히어로와의 55분 TLC 경기, 93분 3판2선승제 경기, 그리고 무승부로 끝난 60분 철인 경기 등을 소화했다.

한 때 이안 루튼이 히어로 등을 푸대접하는 것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IWA 활동을 중단하고 2003년 2월부터 2004년 5월까지 ROH에서 활동했지만 6월 복귀하여 2005년 WWE와 계약하기 전까지 활동했다. 그의 마지막 등장은 2005년 7월 2일 무승부로 끝난 딜리어스와 60분 철인경기였다.


4. ROHTNA (2002~2005)[편집]


처음에는 선역으로 ROH에 입성했으나 이내 빠르게 턴힐하여 레이븐과 여러차례 NO DQ 매치를 치른다. 메이저 리그 레슬링 등 타단체에서도 이어간 이 대립은 2003년까지 지속되며 올해의 탑 대립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때 CM 펑크는 레이븐에게 약물중독자인 아버지의 이미지를 투영하여 대립하였다. 한편 거의 동시에 TNA와도 계약하여 활동하였는데 이때는 레이븐의 스테이블인 더 게더링의 멤버로 활동했다.

한편 ROH에서 콜트 카바나와 세컨드 시티 세인츠[2]라는 스테이블을 만들어 태그팀 챔피언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당시 챔피언이었던 사모아 조에게 도전하면서 본격적인 메인급으로 올라서는데 특히 2004년 사모아 조와 치뤘던 60분 철인매치는 각종 프로레슬링 관련 사이트에서 별점 5개를 아끼지 않은 명경기였으나, 정작 현지 ROH 팬들의 평가 자체는 극과 극이다. 과대 평가 되었다는 반응 vs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경기. 사실 경기 자체는 화려함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프로 레슬링의 정석에 맞쳐져있기에 괜히 기대했다고 보다가 '이게 무슨 명경기냐 !!!'라며 분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안좋은 반응은 나중에 이 경기의 명성을 듣고 결과를 알고 재시청한 탓으로 벌어지는 오해일 가능성이 더 크다. 중요한 것은 당시 경기장 내의 관중들이 60분간 펼쳐진 정석적인 경기흐름에도 끊임없이 열광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나중에 보는 우리들이야 이 경기가 60분 무승부라는 것을 알고 보기 때문에 중간부분은 제끼고 본다든지 하겠지만 그때는 언제 어떤 식으로 경기가 끝날지가 불확실했고 바로 그런 긴장을 두 선수가 장내의 관객들에게 별다른 기슬없이도 60분 내내 멋지게 설득해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이에 힙입어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4년 올해의 경기 부문 3위에 선정되었다.

CM 펑크 vs 사모아 죠 2차전은, 데이브 멜쳐가 숀 마이클스 vs 언더테이커 헬 인 어 셀 경기에 별점 다섯 개를 준 이후로 7년 만에 처음으로 북미 프로레슬링 경기에 5성을 준 시합이다. 그리고 7년 뒤에 CM 펑크는 또 다른 5성 경기를 하게 되는데, 이는 숀 마이클스 vs 언더테이커 헬 인 어 셀 이후로 14년 만에 처음으로 WWE에서 나온 5성 경기다.

사모아 조와의 대립은 당시 기울여져가던 ROH를 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당시 ROH는 前 사장이였던 랍 페인스테인의 성추행 사건과 이것을 계기로 TNA가 매의 눈빛으로 ROH의 메인 스타들 중 TNA를 병행하던 선수들을 TNA 전속으로 묶어버렸다. 당시 ROH의 각본진이였던 게이브 사폴스키마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회자했을 정도. 그리고 게이브 사폴스키는 당시 본인이 ROH의 에이스로 낙점지어놨던 AJ 스타일스의 대체자를 찾아야만 했고, 그렇게 당첨된게 브라이언 다니엘슨, 호미사이드와 당시 챔피언이던 사모아 조, 그리고 CM 펑크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사모아 조 vs CM 펑크의 경기가 열렸는데[3] 이 경기는 60분 시간초과 무승부로 끝났다. 게이브 사폴스키는 이 경기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흥분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대립을 하게 되었고,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60분 철인매치까지 가졌으나 여기서도 승부를 보지 못하여 결국 All Star Extravaganza II에서 노 타임 리밋으로 경기를 가졌는데, 여기서 사모아 조가 31분만에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이 흥행에서 열린 경기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05년 TNA 영국 투어에서는 사모아 조[4]와 근 30분에 달하는 시간의 엄청난 명경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다만 TNA의 영국투어라기 보다는 당시 흥행은 TNA가 영국 단체와 합동 흥행을 가진 것이고, 흥행 명 자체도 TWC였다. 또한, CM 펑크가 TNA와 관계를 끝낸 것은 테디 하트와의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이였는데, 그 전부터 테디 하트는 남의 기술을 마음대로 쓰거나(대표적으로 AJ 스타일스의 스파이럴 탭을 허락없이 자기가 쓰기 시작했다.) 각본에 없는 기술을 사용하여[5] 다른 인디 레슬러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그 중 CM 펑크와 사이가 안좋았다. 2003년경 이 둘은 TNA와 계약하게 되었고, 어느 날 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던 CM 펑크는 테디 하트가 들어오자 미리 자리를 뜨던 중 테디 하트가 들어와 시비를 걸었다. 밖에 나가서도 테디가 계속 이죽거리자 펑크는 싸닥션과 니 리프트를 갈겼다. 이때 테디는 울면서 매달렸다고. 근처에 잠깐 나와있던 ECW 출신의 사부가 둘을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테디는 거의 죽었을 거라고 한다. 여기서 사부가 말리자 그때부터 테디는 펑크의 머리를 잡고 주먹을 날렸다고하며 나중에 징계가 내려지자 자기는 머리칼 잡은거 밖에 없다며 찌질함의 甲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 이후 둘 다 TNA를 나오게 되었다. 근데 당시 TNA에서 근무했던 빌 베른스라는 직원의 말로는 오히려 테디 하트가 펑크를 발랐다고 한다. 누가 맞는지 알 수 없는 부분. TNA는 두 사람을 징계해버렸고, 이것을 빌미로 펑크는 TNA에 다시는 출연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TNA에서 펑크의 ROH 출연을 막으려고 했기에 TNA를 그만뒀다고 한다.

메이저 단체로의 이적을 노리던 중 결국 2005년 6월 초에 WWE와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6월 18일 오스틴 에리즈와 ROH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경기를 가졌을 때 모두가 CM 펑크의 WWE행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별전이나 다름없는 줄 알았는데 이겨버렸다. 때문에 WWE에 계약한 다음에 ROH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버렸다.(당시 에리스도 TNA와 계약.) 거기다가 한술 더 떠 경기 종료직후 타이틀을 들고 WWE로 가겠다, ROH 엿먹으라는 식의 프로모를 함으로써[6] 완전히 악역전환하며 CM 펑크는 또 한번 초찌질악역으로(머리도 보라색으로 염색) 활동했다.[7] 한편 제이 리썰과의 ROH 월드 챔피언쉽 경기에서 카키나 클러치를 쓰며 사모아 조를 도발하거나, 크리스토퍼 다니엘스와 60분 무승부 경기를 가지기도 했다. 이후 브라이언 다니엘스, 사모아 조, 제임스 깁슨[8]과의 4자간 경기에서 깁슨에게 타이틀을 빼앗긴 후 태그팀 파트너 콜트 카바나에게 져주면서 ROH를 떠났다.[9]


5. WWE에 입성하다[편집]



5.1. ECW에서의 활동 (2006~2008)[편집]


2005년 WWE 산하단체인 OVW에 입성, 2006년 OVW TV(텔레비전) 챔피언 및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며 활약을 보여주던 펑크는 8월 1일 해머스테인 볼룸에서 열린 ECW를 통해 WWE에 공식 데뷔한다.[10][11] 데뷔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인디 단체에서의 활동을 봐서 실력을 알고 있던 ECW 광팬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경기를 치뤘고, 저스틴 크레더블을 아나콘다 바이스로 탭아웃시키면서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이후 서바이버 시리즈 2006에선 팀 DX의 멤버로 출전해 5:0 승리에 기여하기도 했다.

ECW 디셈버 투 디스멤버(2006)에선 빅 쇼를 아나콘다 바이스로 첫번째로 탈락시키는 활약을 하게 할 예정이었지만 빈스가 바비 래쉴리를 밀어주는 바람에 별 인상도 못 남기고 랍 밴 댐에게 탈락한다. 또 CM 펑크에게 푸쉬를 주려던 폴 헤이먼이 퇴사한 후 WWE 데뷔 이래의 무패 행진이 하드코어 할리의 손에 종결된다.

선역 이미지를 고수해오고 있던 CM 펑크는 뉴 브리드라는 신생 스테이블에 가입해 ECW 원로들과 대립하며 악역이 되나 싶었지만 이는 사실 훼이크였고 선역으로 뉴 브리드의 레슬러들과 대립한다. 그러다가 상승세를 타면서 ECW 월드 챔피언쉽을 노리는 위치까지 상승을 하게 되며 당시 ECW 월드 챔피언 존 모리슨과 대립하게 된다.[12] 번번히 기회를 잡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챔피언쉽 매치에서 패하며 중요한 순간을 넘지 못하던 펑크는 마침내 2007년 9월 ECW TV쇼에서 존 모리슨에게서 ECW 챔피언십을 따내며 WWE에서의 첫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13]

하지만 2008년 1월 역시 ECW TV쇼에서 차보 게레로를 상대로 No DQ 매치로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던 중 에지가 난입하여 스피어를 시전하는 바람에 ECW 타이틀을 내주게 된다.[14] 이후 차보 게레로에게 챔피언 벨트를 되찾기 위해서 WWE 노 웨이 아웃(2008)를 포함하여 3번이나 경기를 가지지만 타이틀 탈환에는 실패하여 좌절하고 만다..... 하지만 2달 후인 2008년 3월 개최된 레슬매니아 24머니 인 더 뱅크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언제든지 원하는 때 메인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고, 2008년 6월 드래프트 로터리에 의해 RAW로 이적하게 된다.[15]


5.2. RAW로의 이적 (2008~2009)[편집]


2008년 6월 30일 RAW에서는 스맥다운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RAW에 잠깐 들린 에지가 링에서 마이크로 관중들에게 자신이 속한 스맥다운이 최고의 쇼이며 두 월드 챔피언십을 모두 스맥다운 선수가 소유하고 있으니 RAW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관중들을 조롱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튀어나온 바티스타가 에지를 습격하고 마지막에는 바티스타 밤을 날려 떡실신시킨다.[16]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펑크가 즉시 심판과 함께 등장해 머니 인 더 뱅크 권한을 사용해 GTS로 에지를 확인사살하면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결국 3개월만에 크리스 제리코에게 타이틀을 넘겨주는데, 경기를 가지지도 못하고 벨트를 내줬다.[17]

이후 랜디 오턴이 이끄는 레거시와 대립하며 코피 킹스턴과 함께 팀을 이뤄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차지하거나 윌리엄 리갈을 꺾고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에 오르는 등의 크고 작은 행보를 이어나갔다. 레슬매니아 25에서 또 다시 머니 인 더 뱅크를 따낸 뒤[18] 로스터 드래프트를 통해 1년만에 스맥다운으로 이적한다.


5.3. 제프 하디와의 대립, 완전히 악역으로 자리를 잡다 (2009)[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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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당시 영광에 빛나는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시절

스맥다운으로 이적한 펑크는 얼마 안 있어 방출당할 운명이었던 우마가의 잡질을 받으면서 성장했다.[19] 그리고 당시 선역임에도 불구하고 2009년 6월의 PPV인 WWE 익스트림 룰즈(2009)의 메인이벤트 경기인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경기가 끝난 상황에서 에지와의 래더 매치를 통해 힘겹게 타이틀을 따내고 기진맥진한 제프 하디에게 머니 인 더 뱅크를 사용하게 된다. CM 펑크는 GTS를 작렬해 경기를 끝내려고 했으나 제프가 2에서 벗어나자 분노한 표정으로 다시 GTS를 작렬해 3카운트를 따내면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주워먹기로 통산 2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프와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스맥다운에서 태그팀으로 경기를 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등 선의의 대립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1개월 후에 열린 PPV WWE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2009)에서 제프 하디에게 타이틀을 내주자 슬슬 악역전환의 조짐을 보이던[20] 펑크는 7월 31일 스맥다운에서 존 모리슨과의 방어전을 치뤄낸 제프 하디를 축하해주는 척하다가 무자비하게 공격하면서 본격적으로 턴힐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 WWE 섬머슬램(2009)TLC 매치에서 제프 하디를 꺾고 통산 3번째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따냈다. 경기 직후, 쓰러진 제프의 위에서 타이틀을 들어올리는 퍼포먼스를 취했는데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종이 울리며 펑크를 깜짝 놀라게 한다. 조명이 다시 켜졌을 때는 엔트랜스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아 펑크가 안심했으나 제프가 쓰러진 자리에 제프는 사라지고 언더테이커가 나타났고[21] 그제야 언더테이커를 본 펑크는 당황해하다 초크슬램을 맞고 쓰러지며 PPV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실패했다.

섬머슬램 직후 열린 8월 28일 스맥다운에서 제프와 철창 경기로 방어전을 치뤘는데 이 경기에서 패자는 WWE를 떠난다는 조건까지 거는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제프의 눈을 찌르는 반칙성 공격 끝에 먼저 철창을 빠져나오면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다. 결국 대립도 이기고 대립 상대였던 제프를 WWE를 떠나게 만들었다. 경기가 끝난 뒤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제프를 펑크가 뒤에서 벨트샷으로 기습하는 등 악질적인 모습을 보여 야유를 한몸에 받은 건 덤. 이것도 모자라 그 다음주 스맥다운에서 제프의 옷과 페이스 페인팅, 등장씬을 그대로 들고 나와 팬들을 낚은 뒤[22] 특유의 능글맞은 마이크웍으로 관중들을 조롱한다. 이때의 야유는 정말 역대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

제프와의 대립을 끝낸 뒤 섬머슬램 2009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언더테이커와 타이틀을 놓고 대립하게 되는데, 9월 PPV WWE 브레이킹 포인트에서 가진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경기에서는 아나콘다 바이스를 걸었을 때 언더테이커가 탭을 치지않았음에도 서브미션 승을 거둬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연상되는 장면을 통해 간신히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WWE 헬 인 어 셀(2009) 오프닝 헬 인 어 셀 매치에서 언더테이커에게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를 맞고 패하며 타이틀을 내줬다.

5.4. 스트레이트 에지 소사이어티 (2010)[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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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 펑크 팬들에게는 CM 펑크의 WWE 커리어 최고의 흑역사. 머리를 잃은 대신에 수염을 얻었다[23]

자신의 Straight Edge 정신을 관중들에게 점점 더 강조하기 시작하더니 아예 시범 케이스까지 보여주게 된다. 예전 제시와 함께 태그팀을 이뤄 얼빠진 캐릭터로 활동하던 페스터스를 마약에서 구원했단 명목 아래 데려와 루크 갤로우스로 개명시켜 자신의 보디가드로 삼게 되었고 이후 자신의 열렬한 팬이라며 삭발까지 하는 투혼을 보인 세레나라는 여성까지 매니저로 동원한 스트레이트 에지 소사이어티(S.E.S)라는 스테이블을 결성하게 된다.

WWE에서 출시한 CM 펑크의 DVD인 'Best In The World'에 따르면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이 언더테이커에게로 넘어가자 수뇌부들 및 각본진들이 체급이 작은 펑크가 테이커에게 도전한다는 그림을 영 탐탁치 않게 여기고 펑크를 위한 어떤 각본이나 계획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펑크가 직접 S.E.S 스테이블을 고안해냈고 흑역사라고는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나름 즐거웠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S.E.S를 이끌면서 펑크는 감춰왔던 어그로 본능을 완전히 폭발시킨다. 펑크는 사악함이 절정에 달해 관중들에게 정말 미움 받는 그런 스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수염을 길러 예수와 같은 모습을 하였다. 루크 갤로우스의 이름은 루카 복음서에서 따오고, 조이 머큐리의 링네임을 일부러 풀네임인 조셉 머큐리[24]로 사용하게 한 것도 신성 모독을 통해 최대한 어그로를 끌려는 장치였던 것이다. 방송 상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S.E.S는 당시 WWE에서 가장 미움 받던 스테이블이었고 하우스쇼 현장에서는 링 위로 물통과 쓰레기가 날아 들어오고 관중석 곳곳에서 '넌 악마야!(You're the devil!)'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한 번은 어느 하우스 쇼에서 어떤 할머니가 펑크에게 '넌 예수 그리스도가 아냐! 그 분이 될 수 없어!'라고 소리치자, 펑크는 그 관중에게 '당신을 용서하겠소'라고 대응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Straight Edge 정신을 따르겠다는 관중을 잡아다가 삭발시키는 행위만 반복해 사이비 교주 S.E.S. 리더로서의 모습을 과시하며 2009년을 마무리했다. WWE 로얄럼블(2010) 30인 로얄럼블 경기에 출전해 경기 초반 마이크를 잡고 일장연설을 해대며 상대를 제거시키는 MC 펑크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뛰어난 예능감을 과시했으나 트리플 H에게 맥없이 탈락당했다. WWE 엘리미네이션 챔버(2010)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 걸린 엘리미네이션 챔버 경기에 출전했으나 탈락한 이후 바른 정신을 강조함에도 욕만 얻어먹는 자신과 달리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레이 미스테리오와 대립을 가지게 된다.

2010년 3월 12일 스맥다운에선 레이가 본인의 가족들과 함께 딸의 생일 파티를 가지는 순간 S.E.S 멤버들과 난입해 공포의 생일파티 축하곡을 부르며 분위기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레이의 뺨을 때리며 생일 파티를 망치는 만행을 벌이면서[25] 레이에게 신경전으로 도발을 걸게 되고, 결국 레슬매니아 26에서 레이 미스테리오와 경기를 가지게 된다. 이 경기에선 펑크가 승리할 경우 레이는 S.E.S에 가입하게 되는 조항이 걸렸는데 레이가 이기면서 일단 펑크의 계략은 무산되었다.

이에 레이 미스테리오에게 다시 재경기를 신청하면서 만일 이번에도 펑크가 패할 경우 본인이 삭발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레이로선 잃을 것이 없던 입장이라 당연히 경기를 받아들였고, WWE 익스트림 룰즈(2010)에서는 조이 머큐리가 등장해 레이를 방해하며 펑크가 승리를 거뒀다. 이후 CM 펑크는 레이와 다시 경기를 가질 것을 제안하고 지난 경기에서 자신이 이긴 걸 감안해 이번 경기에서 자신이 이길 경우 레이는 S.E.S.에 가입하는 조건을 넣자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나, 레이도 레슬매니아 26에서 승리한 점을 들어 만일 펑크가 패할 경우엔 펑크가 삭발한단 조건도 같이 포함시킨다. 결국 WWE 오버 더 리미트(2010)에서 CM 펑크 vs 레이 미스테리오의 3차전에서 패한 후 되려 레이를 공격하다가 케인에게 떡실신당하고 양 손은 링 로프에 수갑에 묶여 강제로 삭발당했다.[26]

어쨌든 경기 도중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미용실 의자에 앉혀진 채로 삭발을 당했다.[27] 2010년 5월 28일 스맥다운에서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 레이와 비슷한 디자인의 검은 마스크를 쓰고 나오지만 이마저도 빅 쇼와의 짧은 대립 끝에 벗겨지는 굴욕을 겪었다. 이를 복수하기 위해 S.E.S 멤버들을 총출동시켜 WWE 섬머슬램(2010)에서 빅 쇼와 3:1 핸디캡 매치를 가지게 되었으나 경기 막판 경기를 포기하고 링 밖으로 나온 사이 다른 두 명의 멤버가 빅 쇼에게 피니쉬를 얻어맞고 핀을 내줘 패했다.

이후, S.E.S.의 멤버이던 세레나의 해고와 조이 머큐리의 부상 등으로 하향세를 타버렸고, 루크 갤로우스는 자꾸 막나가는 펑크를 보다 못해 아예 그룹 탈퇴를 선언해버렸다. 자신의 고향인 시카고에서 열린 WWE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2010)에서는 혼자 등장해 빅 쇼와 4분 남짓한 경기를 가졌는데 경기 내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나 했더니 숄더 블록과 WMD콤보로 광속 패하고 만다.

빅 쇼한테 연패한 이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뜬금없이 NXT 시즌 3에 특별 해설자로 등장해 막장 해설을 보이고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스맥다운에서 2009년에는 대등하게 싸웠던 상대 언더테이커에게 허무하게 2연패를 당했고, WWE 헬 인 어 셀(2010)에 결장하며 2010년 처음으로 PPV에 출연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하향세를 막지 못했다. S.E.S.의 침체로 펑크는 위상이 곤두박질쳤으며, WWE는 펑크의 어두웠던 가정사에서 나온 감동적인 기믹인 Straight Edge 정신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5.5. 다시 돌아온 RAW 그리고 NEW NEXUS (2010~2011)[편집]


2010년 10월 11일, RAW에서 스맥다운으로 이적한 에지와 1 대 1 트레이드되어 러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적하자마자 가진 에반 본과의 "브래깅 라이츠 팀 RAW 선수 결정전 경기"에서 오랜만에 승리를 거둔 후에도 에반 본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WWE 브래깅 라이츠(2010)에서 열리는 7 대 7 태그팀 경기에서 팀 RAW 소속으로 출전했다. 그후 엉덩이 부상으로 연말까지는 경기를 하지 못하자 RAW의 해설 팀에 합류했다. 2010 슬래미 어워드에서 DESPICABLE ME AWARD(가장 비열한 사람)를 수상했는데, 아주 해맑게 웃으며 기쁘게 받았다.

WWE TLC(2010) 직후 RAW와 스맥다운 그리고 2010년 12월 27일 RAW에서도 존 시나를 공격 후 자신을 그렇게 구타하던 넥서스에 가입한다.

그리고 리더인 웨이드 바렛과 대립하다가 바렛을 엿먹이고 축출하며 자신이 넥서스의 리더로 취임하게 된다. 다음주 RAW에서 넥서스 멤버들의 정신력을 기른답시고 BDSM플레이몇가지 테스트를 시켰는데 저스틴 가브리엘히스 슬레이터는 못해먹겠다고 때려치고 스맥다운으로 가서 웨이드 바렛에게 붙어버렸다. CM펑크 이자식 이런식으로 자기 당한거를 복수하는거였나

WWE 로얄럼블(2011)에서 WWE 챔피언쉽 경기에 뉴 넥서스 멤버들과 난입해 랜디 오턴을 방해하며 미즈의 챔피언 방어를 돕는다. 랜디 오턴을 공격한 이유는 2008년 당시 오턴의 습격으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상실했던 원한으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본인이 출전하는 로얄럼블 경기에서도 등장번호 1번으로 출전하여 넥서스의 특기인 다굴을 사용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링 위에 남으면서 중반전을 가히 슈퍼 넥서스 타임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지배력을 발휘하여 7명이나 제거시키는 쾌거를 거두었으나, 22번으로 등장한 존 시나에 의해 부하들과 함께 순식간에 제거당하는 수모를 당했다.[28]

WWE 엘리미네이션 챔버(2011)에서는 원래 4번째 순서였는데 문에 걸려서 제대로 못나오는 사이 랜디 오턴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첫번째로 탈락했다. 하지만 여전히익명의 RAW 단장이 이러한 경기결과는 불공평하다며 다시 기회를 줘 마지막 순서까지 체력을 보존했다. 그 뒤 끝내주는 예능감과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으나 결국 마지막에 시나의 AA를 얻어맞고 탈락했다. WWE 레슬매니아 27에선 랜디 오턴과 1:1 경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 직전까지 넥서스 멤버들이 랜디의 펀트킥에 하나둘씩 나가떨어지며 진짜 1:1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레매 직전 로우에서 랜디의 다리를 부상입힌 것을 이용해 랜디의 다리를 집중공격하며 선전했지만 스프링보드 클로스라인을 시전하다가 역으로 RKO에 반격당해 패배했다.

WWE 익스트림 룰즈(2011)에서 랜디 오턴과 라스트맨 스탠딩 매치로 재대결했는데 또 패하고 말았다.[29] 이후 오버 더 리미트에서 짭티스타메이슨 라이언을 데리고 빅 쇼&케인 콤비가 가지고 있던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이번에도 패배한다. 2010년 이후 출전한 PPV에서 WWE 익스트림 룰즈(2010)를 제외하면 모조리 지고 있던 상황이지만 WWE 캐피톨 퍼니쉬먼트에서 레이 미스테리오에게 승리하면서 PPV 연패 행진을 끊긴 했다.

5.6. Voice of the Voiceless (2011)[편집]


CM 펑크를 WWE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은 희대의 명각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레이 미스테리오, 알베르토 델 리오와의 3자간 경기를 통해 2011 머니 인 더 뱅크에서 존 시나WWE 챔피언십 도전자 자격을 따냈는데, 대놓고 자신의 계약 만료가 가까워진다며 WWE 챔피언이 된 채로 이 회사를 나가겠다고 어필해왔다.세그먼트 번역본 그리고 6월 27일자 RAW에서 급기야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6월 27일자 RAW의 메인 이벤트 경기였던 존 시나와 R 트루스의 테이블 매치에 난입한 펑크는 시나가 테이블에 처박혀 패배하게끔 트루스에게 도움을 줬고, 경기가 끝난 뒤 엔트런스쪽에 마이크를 잡고 앉아 일장연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빈스 일가를 모조리 까고, 신일본에 ROH 이야기까지 꺼내는 등 상당히 파격적인 마이크웍이었다.[30] 막바지에 마이크가 갑자기 꺼지면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RAW는 급마무리됐고, 바로 빈스 맥마흔이 CM 펑크에게 무기한 정직 처분을 내렸다는 소식이 떴다.파이프밤 세그먼트 번역본

하지만 미리 녹화된 다음주 RAW에서 시나가 CM 펑크와 경기를 치르고 싶다고 고집하자 빈스가 등장하여 "펑크가 타이틀을 들고 다른 단체로 가는게 두려워서 미리 제거했다. 그럼 펑크를 복직시켜줄테니 예정대로 펑크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뤄봐라. 대신 지면 넌 해고다."라고 밝혔다. 번역본(1/2), 번역본(2/2)


세그먼트 FULL번역본(1/3), 번역본(2/3), 번역본(3/3)

머니 인 더 뱅크 전에 펼쳐진 RAW에서 빈스 맥마흔은 펑크와의 재계약을 시도한다. 그러나 펑크는 빈스가 제시한 계약서에는 사인하지 않고, 자신이 작성해 온 계약서를 내밀며 빈스에게 이때까지 참아왔던 모든 불만을 하나하나 말하며 빈스를 몰아붙인다.[31] 이 과정에서 허무하게 방출되었던 콜트 카바나, 루크 갤로우스를 언급하는 등[32] 끝없이 빈스를 자극한다. 짜증이 난 빈스도 몇 차례 반박을 하지만, 펑크는 단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 치면서 본인에게 사과하라고 윽박 지른다. 결국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 빈스는 마지못해 대충 사과를 하다, 나중엔 욕설을 섞어가며 사과 아닌 사과를 했고, 재계약서에 사인하기 직전까지 간다. 하지만 그 때, 존 시나가 등장하여 머니 인 더 뱅크에서 챔피언이 되고 WWE를 떠날 거라면서 이것저것 요구하기만 하는 펑크의 모순된 모습을 지적한다. 그러자 펑크는 이미 10회 WWE 챔피언 경력과 함께 탑독의 위치에 있으면서 계속 언더독을 자처하는 모습을 보이는 시나야말로 모순되었다고 반박한다. 계속해서 시나의 고향이 보스턴이고 보스턴 레드삭스뉴욕 양키스앙숙관계라는 점을 이용해 시나야말로 통치자이자 왕조이며, 이제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탑독 뉴욕 양키스가 되었다고 일갈하고 결국 분노가 폭발한 시나의 주먹에 한방 맞고 링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펑크는 퇴장하면서도 존 시나데릭 지터빈스 맥마흔조지 스타인브레너라고 비꼬았고, 완전히 퇴장하기전 엔트런스 근처에 앉아 또 마이크를 잡는다. 그리고 시나에게 한방 맞은 덕분에 자신이 왜 WWE를 떠나려 했는지를 깨달았는데, 그 이유는 시나가 너무나도 지겨워서라며 WWE 팬들, 시나, 빈스에게 "머니 인 더 뱅크가 열리는 일요일 밤, WWE 챔피언 벨트에게 작별 인사를 해라. (경기에 져서 해고될) 존 시나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고. 그리고 나, CM 펑크와도 안녕이다."라고 한 뒤 일어서서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존 시나의 U Can't See Me 제스쳐까지 선보이며 그를 조롱한다.

이 세그먼트는 파이프밤 세그먼트 못지 않게 입체적이고 훌륭한 세그먼트로 평가받고 있다. 각본과 현실의 경계를 잘 줄타기한 것을 넘어서 이제 명실상부한 회사의 간판이고 탑독이면서도 대립을 할 때마다 언더독 위치에 있었던 시나가 이 세그먼트 이후로 다른 선수들과 대립할 때 자신의 높은 위치를 적극적으로 어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세그먼트 역시 파이프밤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대본없이 펑크와 빈스, 시나의 애드립만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즉, 이 때 이 때 밝힌 빈스의 속내도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단 얘기.


시카고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CM펑크의 등장
머니 인 더 뱅크 WWE챔피언쉽 번역본(1/2), 번역본(2/2)

결국 7월 17일 고향 시카고의 WWE 머니 인 더 뱅크(2011)에서 시나와 WWE 벨트를 걸고 메인 이벤트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이때 펑크는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수준의 환호를 받았으며, 반면 선역인 시나는 야유만 줄창 받았다. 이때 경기장 분위기가 어느정도였냐 하면 전설의 폭동 피켓이 한 장도 아니고 여러장이나 등장했을 정도였다. <시나가 이기면 우리 폭동 일으킴> <펑크가 지면 우리 폭동 일으킴>(...)이 폭동 피켓이 포착된 장면은 심지어 WWE 공홈에까지 올라왔다.

경기 막바지, 펑크의 GTS에 맞은 시나가 링 밖으로 나가떨어지고 이런 시나를 다시 링 안으로 들여보내려던 찰나 빈스가 존 로리나이티스(쟈니 에이스)를 대동하고 등장한다. 펑크는 빈스에게 신경을 쓰다가 되살아난 시나의 STF에 걸려버리고 빈스와 로리나이티스는 레프리에게 경기를 종료시킬 것을 강요하며 시카고 스크류잡을 시도하려 하지만 시나가 되려 STF를 풀고 링 밖으로 내려가 링벨을 울리기 위해 달려오던 로리나이티스를 때려눕히고 빈스에게 경기를 방해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그 사이 회복한 펑크가 링 위로 돌아온 시나에게 기습적인 GTS를 날리며 충격의 WWE 챔피언 등극.[33]

잠시 넋이 나간 듯했던 빈스는 화를 내면서 당일 머니 인 더 뱅크 경기에서 우승한 알베르토 델 리오를 급히 링으로 불러왔지만, 델 리오가 링에 들어오자마자 펑크가 머리에 킥을 날려 때려눕혀버린 뒤 그 틈을 타서 WWE 타이틀을 들고 관중석을 통해 잽싸게 도망가버렸다. PPV가 끝난 뒤 펑크는 트위터에 WWE챔피언 벨트를 냉장고에 쳐박아 놓은(...)사진을 올렸다.[34]

다음날 RAW에서 펑크는 모습을 비추지 않았으며, 빈스 맥마흔은 새로운 WWE 챔피언을 가리기 위해 토너먼트를 열었다. 한 편 그 시각 펑크는 WWE 타이틀 벨트를 들고 시카고 컵스[35]의 경기를 응원하러 갔는데 트위터를 통해 'WWE 챔피언이 여기 있는데 무슨 새 챔피언을 뽑아?'라는 글[36]을 올리고 야구장에서 타이틀 벨트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그리고 RAW가 끝난 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코믹콘의 마텔 WWE 부스에 난입해서 트리플 H가 보는 앞에서 일장 연설로 약을 올리거나 인디 단체의 흥행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의 활동을 보여주다가 7월 25일자 RAW에서 미즈와 레이 미스테리오의 챔피언 결정전 토너먼트 결승전이 확정되자 '둘 중 하나가 종이 챔피언이라고?'라는 등 실시간으로 트윗을 올렸다.코믹콘 난입 번역본


5.7. Best In The World (2011 ~ 2012)[편집]




명실상부한 CM 펑크의 최전성기가 바로 이때이다. 2011년 한 해만큼은 존 시나의 상품가치마저 뛰어넘었을 정도. [37]CM 펑크는 결국 WWE에 출연하지 않게 되었고, RAW에서 벌어진 WWE 챔피언 토너먼트에서 레이 미스테리오가 우승을 차지하고 WWE 챔피언에 등극하게 된다. 그런데 당일 메인이벤트에서 존 시나가 레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다시 WWE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런데 그 순간 ROH 시절 테마곡인 'Cult of Personality'가 울려퍼지고, 어리둥절한 관객들 앞에 CM 펑크가 WWE 챔피언 타이틀을 들고 나타난다. 링 위에서 존 시나와 함께 WWE 타이틀을 들어올리며 말없이 대면했고 재계약에도 성공한다. #CM펑크 RAW 복귀 엔딩 번역본



이때 통합 챔피언십 매치 계약 세그먼트에서 또 한번 존 시나와 현실의 벽을 넘나드는 설전으로 명품에 걸맞는 마이크웍 대전을 벌였는데 이 둘의 팬이라면 필견을 추천한다.

시나와 펑크가 각각 WWE 챔피언을 가지고 있는 상황, 이를 통합하기 위해 WWE 섬머슬램(2011)에서 통합 WWE 챔피언십 경기가 열린다. 그리고 끝끝내 존 시나에게 GTS를 날리며 통합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러나 난입한 케빈 내시가 펑크에게 잭나이프 파워밤을 날렸고,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캐싱인한 알베르토 델 리오에게 WWE 챔피언 벨트를 빼앗기고 만다. 분노한 펑크는 해명을 요구했고, 케빈 내시는 펑크를 공격한건 트리플 H의 사주였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펑크와 대립을 시작한다. 이후 벌어진 시나와의 넘버원 컨텐더 경기에서도 내시에게 시선을 뺏겨 AA를 맞고 패배하고 만다.

끝내 트리플 H가 펑크와 내시의 경기를 부킹해버렸고, 발끈한 펑크는 트리플 H에 대한 불신과 조롱의 뜻[38]을 내비치며 그를 비난한다. 이에 자극받은 트리플 H는 펑크의 상대를 내시에서 자신으로 바꿔버린다.[39]

이후 WWE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2011)에서 트리플 H와의 NO DQ 대결을 펼치고 미즈알 트루스, 케빈 내쉬의 난입 등 매우 혼란스러운 경기가 펼처지던 중 페디그리를 허용하고 패배하고 만다. 사실 페디그리만 해도 3번을 맞았고, 내쉬의 잭나이프 파워 밤까지 맞았으며 그 전에 난입한 R 트루스와 미즈에게도 합체 피니시를 얻어맞았다. 피니시만 총 5번을 맞고 진 셈.

그러나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1)에서 알베르토 델 리오와 접전 끝에 아나콘다 바이스로 탭을 받아내며 WWE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40] 이러한 하반기의 활약에 힘입어 2011년 슬래미 어워드에서 "Pipe Bomb" of the Year과 올해의 슈퍼스타상을 수상했다. 단 올해의 슈퍼스타상 전 경기에서 WWE TLC(2011)에서 열릴 타이틀 매치의 도전자인 미즈와 알베르토 델 리오의 습격을 받으며 직접 수상하러 나오지는 못했다. TLC 2011에서는 델 리오의 링 아나운서인 리카르도 로드리게스가 수갑을 채워버려 한번은 사다리, 두번째는 링 코너에 매달리는 꼴을 당했으나 두번 모두 기지를 발휘해 탈출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이전부터 RAW 단장 존 로리나이티스와 사이가 나빴는데, 2011년 마지막 RAW에서 건틀렛 매치 도중에 훼방을 받아 돌프 지글러에게 패하고, 그 다음 RAW의 타이틀 매치에서 또 방해 때문에 카운트 아웃으로 패해 속을 썩이는 중. WWE 로얄럼블(2012)에서 로리나이티스가 특별 심판인 타이틀 매치를 가지게 되었다.

로얄럼블 당일, 로리나이티스는 자신 대신 그냥 심판을 링 위에 올려보냈다. 펑크는 돌프와의 공방 끝에 제압하는데 성공했는데 핀이나 서브미션을 성공했는데도 심판은 링 밖으로 나가떨어졌고 존로리는 계속 딴청을 피웠으나 결국은 승리했다. 그런데 막판에 카운트할 때 펑크의 승리를 확신한듯 존로리도 심판과 함께 3카운트를 세며 심판으로서의 임무를 다했다는듯의 태도를 보였다.[41] 엘리미네이션 챔버에서도 챔피언 자격으로 방어전을 치루게 되었으나 역시나 승리해 벨트를 지켜 챔피언 자격으로 레슬매니아에 가게 되었다.

레슬매니아 28부터 크리스 제리코와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베스트 인 더 월드" 캐치프레이즈를 두고 대립하는 듯하더니 제리코는 펑크의 스트레이트 엣지 스타일이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 마약중독자였던 여동생로부터 트라우마를 얻은 결과라며 정신공격을 진행했다. 결국 레슬매니아에서 펑크가 실격을 당하면 타이틀을 잃는다는 추가조항이 붙었으나 펑크는 도발을 끝까지 참아내고 아나콘다 바이스로 승리했다. 경기 당시 크리스 제리코가 경기 도중에도 패드립을 여러 번 날리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는 제리코가 펑크의 머리를 훈훈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 뒤 펑크의 고향 시카고에서 열린 WWE 익스트림 룰즈(2012)[42]까지 깔끔하게 제리코를 꺾어버린 뒤에, 이제는 '비트 더 클락'매치로 타이틀 도전자가 된 대니얼 브라이언, 케인에게서 7월의 WWE 머니 인 더 뱅크(2012) PPV까지 타이틀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5.8. 434 Days WWE Champion (2012 ~ 2013)[편집]


7월 23일자 1000회 특집 RAW에서 정정당당히 머니 인 더 뱅크를 캐싱인한 존 시나와의 타이틀 매치 도중 시나를 습격한 빅 쇼 덕에 DQ패로 타이틀을 지킨다. 이후 피플스 엘보우를 준비하던 더 락에게 GTS를 날리고 대립을 예고하며 턴힐의 복선을 깔았다![43]

결국 8월 27일 RAW를 기점으로 턴힐해 1000회 특집 RAW때 제리 롤러가 "펑크가 WWE 유니버스에게 등을 돌렸다"라고 한 것을 트집잡아 집요하게 시비를 걸며 철창매치에 블러드잡에 USB 엘보까지 선보이면서[44] 노인학대 두들겨패더니 9월 3일 RAW의 오프닝에서 제리 롤러를 다시 기습해서 끝내 들것 신세를 지게 만든다.[45][46] 그날 챔피언 vs 챔피언 컨셉으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셰이머스와의 경기가 예정되어있었지만 평상복을 입고 나와서, 오늘은 노동절이니까 개인시간을 갖겠다는 이유로 경기를 거부하고는 자기 차를 타고 경기장을 나간다. 하지만 메인 이벤트 경기였던 알베르토 델 리오 vs 존 시나의 폴스 카운트 애니웨어 매치에 난입해 존 시나에게 GTS를 먹여 자기 차 보닛에 내던지고 알베르토 델 리오의 승리를 돕는다. 그 때 펑크의 차 조수석에 폴 헤이먼이 타고 있는 것이 카메라에 비친다.

9월 10일 RAW에서는 캐나다, 그것도 몬트리올에서 브렛 하트를 면전에서 대놓고 디스했다. 만약 1997년 몬트리올 스크류잡 때 브렛의 상대가 숀 마이클스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자신은 브렛을 완벽하게 발랐을 것이고, 그러면 그 후에 펼쳐질 애티튜드 시대도 없었을 것이며 자신은 스티브 오스틴, 더 락, 숀 마이클스보다 훨씬 위대하기에 결과적으로 지금의 WWE 역사 또한 전부 자신이 갈아치웠을 것이라고 말하는 배짱을 보여줬다. 쇼 말미의 세그먼트에서도 브렛과 시나한테 계속 으르렁대다가 결국 브렛에게 맞고 퇴장하는 쇼맨십을 보여주긴 했지만 CM 펑크가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로 근 1년 간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던 어마어마한 야유가 튀어나왔다.

2012년 10월 9일 RAW에서는 빈스 맥마흔과의 경기 이후 관중을 폭행했다. 관중석에 들어간 사이 주변에서 해코지가 계속되자 참지 못한 펑크가 뒤에 있던 남자에게 폭력을 가한 것인데, 그는 실제로 펑크를 찝적거리진 않았다.[47] WWE에서는 안전요원을 배치해 이 사태를 미연에 방지했을 책임을 통감하며 CM 펑크가 이 사태에 대해 사과를 전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피해자는 형사 고소는 하지 않고 변호사를 통해 해결을 보려하였으나 이후 펑크가 그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면서 사태는 결국 수습되었다.

2012년 10월의 WWE 헬 인 어 셀(2012)과 11월의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2)에서 잇달아 타이틀을 수성했다. 전자는 심판을, 후자는 쉴드를 매수한 비열한 승리였지만 경기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WWE TLC(2012)에는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결장했으며 라이백과의 타이틀전은 회복 이후 RAW에서 쉴드의 도움으로 방어한다. WWE 로얄럼블(2013)에서 더 락을 상대로 WWE 챔피언쉽 경기가 부킹되는데, 빈스 맥마흔 회장이 "쉴드가 난입한다면 펑크의 타이틀은 박탈된다"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당일 조명을 끄고 난입한 쉴드의 도움으로 타이틀을 방어하는데 성공하나했으나 빈스 맥마흔이 나와 타이틀을 박탈하겠다고 선언한다. 허나 더 락의 요청으로 즉시 재경기가 시작되어 스파인 버스터피플즈 엘보우를 맞고 결국 타이틀을 뺏기며 434일간의 기나긴 WWE 챔피언 재위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48]


5.9. I am THE ONE in TWENTY and ONE (2013)[편집]


WWE 엘리미네이션 챔버(2013)에서도 더 락에게 지고, 2월 25일 RAW에서 시나를 상대로 WWE 챔피언쉽 넘버원 컨텐더 매치를 가져 레슬매니아급 명경기를 뽑아낸다![49] 하지만 존 시나에게 패배 후 3월 4일 RAW에서 언더테이커의 연승을 끊겠다고 선언하고 셰이머스, 랜디 오턴, 빅 쇼와의 4자간 경기에서 승리해 레슬매니아 29에서 언더테이커와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3월 5일 폴 베어러가 사망하자 WWE는 유족들에게 허락을 받고 이를 각본에 이용하였다. 3월 11일 RAW에서 언더테이커가 폴을 추모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것을 시작으로 매주 납골단지를 가지고 놀면서 고인드립을 시전하고 이에 각본상 폴의 아들인 케인까지 끼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4월 1일 RAW에서는 폴 헤이먼이 폴 베어러로 변장하고 가짜 드루이드를 대동한채 언더테이커 앞에 나타났다. 분노한 테이커는 성큼성큼 다가오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드루이드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가짜 드루이드 틈에 섞여있던 CM 펑크가 뒤에서 언더테이커를 기습해 쓰러뜨리고 납골단지의 골분까지 뿌려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대립각본은 재밌지만 이들이 2009년에 보여줬던 경기는 기대보다 낮았다는 평이 많아서 서로 합을 얼마나 잘 맞추냐가 관건이 되었는데, PPV 당일 좋은 경기를 만들었다. 다만 펑크가 언더테이커에게 아나운서 테이블위로 플라잉 엘보 드롭을 날렸으나 무너져야할 아나운서 테이블이 무너지지 않은 사고가 발생해 기술을 당하는 언더테이커도 상당한 고통이었겠으나 시전한 펑크는 링안으로 들어가서 무릎을 부여잡고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50]


5.10. 폴 헤이먼과의 대립 (2013)[편집]


WWE 레슬매니아 29 이후 한주 거르고 그 다음주 RAW에서의 세그먼트를 끝으로 한동안 여러 스포츠 경기장과 각종 행사에 연인 리타와 함께 나타나는 모습을 트위터로 인증하면서 휴식기간을 갖던 중 6월의 PPV WWE 페이백(2013)에서 크리스 제리코와의 경기를 통해 컴백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당일 고향팬들의 환호 속에 휴 잭맨을 연상시키는 외모로 등장해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그리고 컴백 후에는 폴 헤이먼에게 고객이 아닌 친구가 되고 싶다고 제안하는 등 선역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다음 날 RAW에서 지글러를 무참히 짓밟고 턴힐한 알베르토 델 리오와 붙고 싶다고 말하여 결국 메인이벤트로 델 리오와의 경기를 가지게 되고, 경기는 펑크의 카운트아웃 승리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곧이어 브록 레스너가 등장, 링을 배회하다 들어와 펑크와 대화를 하려는 듯하더니 갑자기 F-5를 날려 펑크를 공격했다.

다음주 RAW에서 폴 헤이먼은 자신도 몰랐다고 부인했고, CM 펑크도 일단 믿는 듯 했지만 WWE 챔피언쉽 머니 인 더 뱅크 래더매치에서 폴 헤이먼이 펑크를 배신하면서 모두 폴 헤이먼의 계략이었음이 드러났다. 다음 날 RAW에서 폴 헤이먼은 CM 펑크는 자신과 함께였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차지했지만 건방지게도 그 점을 몰랐고, 더 큰 이유는 CM 펑크는 브록 레스너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펑크를 배신했다고 밝혔다. 펑크는 복수를 선언하고 WWE 섬머슬램(2013)에서 브록 레스너랑 맞붙고 싶다고 제안하는데, 폴 헤이먼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섬머슬램에서 두 폴 헤이먼 가이가 맞붙게 되었다. 당일 펑크는 체격과 힘의 열세 속에서도 NO DQ라는 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사력을 다해 브록 레스너를 궁지로 몰아넣고 아나콘다 바이스를 걸어 헤이먼의 팔을 부러뜨리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아쉽게 패하고 만다.[51]

섬머슬램 이후에도 폴 헤이먼과의 대립이 계속되어 WWE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2013)에서는 폴 헤이먼과 커티스 액슬을 상대로 2대1 노 DQ 엘리미네이션 경기를 치뤘다. 커티스 액슬을 제거하고 폴 헤이먼을 한창 손봐주던 중 갑자기 난입한 라이백에 의해 폴 헤이먼에게 핀폴을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결국 폴 헤이먼 사단에 합류한 라이백과 1년만에 선악이 뒤바뀌어 다시 대립하게 됐다. WWE 배틀그라운드(2013)에서는 라이백을 로우 블로로 꺾고, WWE 헬 인 어 셀(2013)에서 폴 헤이먼과 라이백을 상대로 최종전을 가졌다. 폴 헤이먼은 2대1 경기임에도 경기 시작 전 헬 인 어 셀 위로 올라가서 경기를 구경만 했는데 펑크는 라이백을 손봐준 뒤 헬 인 어 셀 위로 올라가 폴 헤이먼을 개박살내며 복수를 성공했다.


5.11. Authority와의 대립 (2013 ~ 2014)[편집]


헬 인 어 셀 다음날 난데없이 와이어트 패밀리의 습격을 받으며 와이어트 패밀리와의 대립을 시작. 대니얼 브라이언과 팀을 이뤄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3)에서 와이어트 패밀리를 상대해 승리를 거뒀다. 다음날 로우에서 2대3 핸디캡 매치를 가지게 돼서 경기 전 Authority들을 참 창의적이라고 비꼬았는데 이게 Authority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경기 후 쉴드의 습격을 받았다. 결국 쉴드와 WWE TLC(2013)에서 3대1 핸디캡 매치를 하게 되었는데, 경기 중 로만 레인즈딘 앰브로스에게 실수로 스피어를 날리는 바람에 간신히 승리하였다.

그렇게 쉴드와 대립을 이어나가던 도중 구원군으로 깜짝 등장한 뉴 에이지 아웃로즈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고, 그 뉴 에이지 아웃로즈를 바로 다음주에 응징하지만 응징이 끝나고 등장한 케인WWE 로얄럼블(2014) 매치 1번 출전자는 펑크가 될것임을 발표했다. 그리고 로얄럼블 당일 1번으로 등장해 초반에 케인을 탈락시키고 파이널 4까지 살아남는 저력을 보였으나 돌아간줄 알았던 케인의 방해로 우승의 꿈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후 펑크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 예정과는 달리 경기 막바지에 심판이 갑작스럽게 '넌 이제 좀 있으면 케인에 의해 탈락될 거다'라고 알렸고 펑크는 '케인이 나를 탈락시키면 난 이 회사를 그만 둘 거라고 전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심판들은 빈스 맥맨과 통신 장비를 통해 직접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말한 것. 펑크는 '이 얘기를 듣고 내가 케인을 싫어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봐 덧붙이는데, 나 케인이랑 일하는 거 좋아해. 케인이랑 일하는 건 너무 간단하거든'라는 말도 남겼다. 하지만 케인의 초크슬램을 아나운서 테이블에 접수한 다음에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다음 주 뤄에서 진료를 요구했는데 의료진이 여러 개의 뇌진탕 검사를 거쳤는데도 확답을 주지 않고 계속 다른 검사를 시키다가 소변 검사까지 요구하면서 해외투어 계약서에 사인이나 해달라 하자 참던 스트레스가 폭발해서 빈스 맥마흔의 사무실에 찾아가서 논쟁을 벌이고 탈단한 것.


6. 갑작스런 탈단과 은퇴 (2014)[편집]


그런데 로얄럼블 다음날 RAW가 방송되기 직전 갑작스럽게 빈스 맥마흔에게 "집으로 돌아가겠다."라고 통보하고, 그 주의 로우와 스맥다운, 하우스 쇼까지 몽땅 불참해버렸다. 앞으로도 있을 이벤트에서도 펑크의 이름은 다 삭제가 된 상태에다가 평소부터 잔부상을 몸에 달고 있는 데다가 올해 7월달에 3년 계약이 끝이 나는 상황이었다. WWE는 펑크의 탈단을 공론화를 하지않았는데, 빈스 맥마흔 회장이 펑크를 굳게 신뢰하고 있고 원만하게 해결되리라 믿고 있는 것과, 펑크의 상품 판매율이 존 시나 다음가는 수입을 올리고 있어서이다. WWE의 2013년 4분기 주주총회때 빈스 맥맨 회장이 직접 펑크는 현재 휴가를 즐기고 있다고 발언을 했다.

그리고 2014년 3월 3일 고향 시카고에서 열리는 RAW에서는 펑크의 테마로 폴 헤이먼이 나타나서 어그로를 끌었을 뿐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WWE 측에서도 이 탈단 사건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얼티밋 워리어가 회사와 화해하고 빈스 맥마흔의 방에 찾아가 대화를 나눈 장면에서, 벽에 걸린 WWE 로얄럼블(2014)포스터에 펑크 얼굴에 노란색 포스트잇을 붙인 것이나, WWE 레슬매니아 XXX에 쓰인 언더테이커의 연승 관련 영상에서도 CM 펑크의 이름과 얼굴은 교묘히 편집되어 화면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폴 헤이먼이 펑크에 대해 언급을 한 이후 바로 다음 주부터 펑크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기도 한데 3월 10일자 RAW에서 엄청난 규모의 팬이 동원된 대니얼 브라이언의 링 점령(#OccupyRAW) 세그먼트 역시 "이 자리는 이제 네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언급함과 동시에 시카고 팬들의 #HijackRAW 운동을 조롱하기 위한 WWE의 의도적인 연출이라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콜트 카바나와의 팟캐스트 이후로 탈단 그자체로 펑크를 까는글들은 상당수 줄어들었다. 오히려 그 상태까지 선수의 건강을 악화시킨 WWE 수뇌진이 잔뜩 욕을 먹고있다. 까는글들은 주로 트위터로 트인낭을 입증할 때.


6.1. 탈단의 이유[편집]


펑크 자신이 밝힌 탈단의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의 건강 때문이다. 펑크와 콜트 카바나의 팟캐스트를 요약하면 이렇다.

1. 라이백과 대립하다가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무릎 부상. 수술을 마치고 3주 뒤에 PPV 강행.

2. 다친 몸을 이끌고 계속 하우스 쇼 강행. 이때 관두려 했으나 본인이 챔피언이라서 책임감으로 겨우 참음.

3. 죽음을 바라는 마음으로 레슬매니아에 나가서 언더테이커와 빡세게 경기 소화. 무릎 인대가 찢어지고 다른 쪽 무릎까지 부상. 이외에도 수많은 부위에 부상을 입고 두 달 휴식 받음.[52]

4. 본인은 복귀를 거부했지만 빈스 맥맨이 직접 연락해 PPV 안 팔린다면서 복귀 종용. 결국 복귀하고 브록 레스너에게 패배.

5. 기껏 복귀했지만 WWE 각본진은 브록 레스너와의 대립 후의 스토리는 생각해두지 않았음. 그리고 자신을 부상입힌 라이백과 다시 대립.[53]

6. 자기보다 신인인 라이백도 띄워줄 겸 멋진 대립을 펼쳐보려 의욕적으로 나섬. 그런데 대립 첫날부터 라이백이 고릴라 프레스로 펑크를 테이블이 아닌 콘크리트 바닥에 떨구는 실수를 함. 등이 아니라 골반으로 떨어져 낙법도 못치고 부상. 후유증이 4주간 지속. 이때부터 등쪽에 의문의 혹이 나기 시작.

7. 얼마 뒤 대니얼 브라이언과 태그를 이뤄 라이백슬과 경기를 가짐. 이때 라이백이 복부를 있는 힘껏 걷어차는 바람에 갈비뼈 골절. 이후 로만 레인즈한테 스피어까지 맞으면서 갈비뼈 부상 심화. 이때부터 갈비뼈 상태가 너무 안좋아져서 호흡도 힘들어졌고 재활 운동은 커녕 잠도 제대로 못자는 수준이 됐다고 함.

8. 루크 하퍼한테 기술 잘못 맞고 뇌진탕. 그 상태로 유럽 투어 강행.

9. 뇌진탕 후유증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내내 몽롱한 상태가 됨. 경기 끝날 때마다 구토 및 헛구역질 호소. 스맥다운 녹화 도중에 실례를 하기도 하는 등 몸 상태가 최악이 됨.[54]

10. 본인 몸에 문제가 있는 걸 알고 MRICT를 찍었지만 이상 소견 없음. 펑크는 등에 난 혹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절개를 요구했지만 번번히 거절 당하고 일반 항생제 처방만 받음.

11. 등의 혹은 보랏빛을 띄게 됐고 크기도 야구공처럼 커짐. 혹에 대한 치료 재차 요구했으나 거부당함.

12. 로얄 럼블에서 코피 킹스턴의 플라잉 클로스라인을 맞고 또 뇌진탕 증세.[55]

탈락 후 백스테이지에서 다시 한번 혹에 대한 절개 수술 요구. 의료진은 뇌진탕에 대한 말만 하며 혹 절개 수술은 역시 거부함.

13. 그 다음날 RAW 촬영장에서 의료진이 펑크가 요구한 혹 절개 수술은 무시하고 뇌진탕 검사만 요구함. 동시에 본인에게 웰니스 프로그램용 소변 검사[56]

를 요구. 펑크는 공공연히 스트레이트 에지 스타일이라는게 알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변 검사를 요구한 것 때문에 매우 화가 남. 거기에 다른 직원이 와서 해외 투어에 펑크를 참가시킬 예정이니 계약서에 싸인을 요구함. 결국 폭발한 펑크는 직원들과 말싸움을 하다 빈스의 사무실로 쳐들어갔고, 빈스와 말싸움 끝에 탈단함.

14. 아내인 AJ 리가 추천해준 다른 의사에게 진단받음. 진단 결과, 등에 난 혹은 일반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포도상구균 감염에 의한 것임이 밝혀짐. 의사는 안죽고 3개월이나 버틴게 용하다며 혀를 내두름.


경기때마다 수십번은 몸을 던지는 프로레슬러이며 그것도 쇼의 중심인 메인 이벤터였던 펑크조차도 이런 말도 안되는 수준의 의료관리를 받았다. 메인 이벤터가 아닌 다른 선수들, 특히 자버들에 대한 대접이 어땠을지는 상상도 못할 정도다. 아무리 같은 레슬러라도 특히 WWE 정도되는 단체라면 메인 이벤터들에 대한 대접은 다른 선수들, 특히 자버들과는 차원이 다른데도 이 정도였으니 선수들이 줄초상 안난게 미스테리일 지경이다. 이 의료관련의 경우, 사실 프로레슬링 업계 특유의 고질적인 악습도 한몫하는데, 현재도 신참 레슬러들은 경기직후 백스테이지에서 얼음찜질 하는것 조차도 선배 레슬러들의 눈치를 봐야한다고 한다. 까딱하면 부상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사람 목숨이 날아갈수 있는 업종인데도 아픈 부위에 얼음찜질 하는것 조차 신참들은 선배들 눈치를 봐야할 정도니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을만도 하다. 안그래도 북미 특유의 비싼 의료비와 그리고 수술 및 회복으로 인해 생계에 지장이 생기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57] 고질적인 부상이 있어도 어지간하면 고작 진통제로 버티며 수술도 못받은채 경기를 뛰어야하는 현실에 처한게 프로레슬러들인데 이 상황에서 얼음찜질 조차 제한된다는 말도 안되는 부조리가 존재한다.

또 다른 탈단의 이유중 하나는 레슬매니아 같은 거대 PPV에서 매일 잔부상에 시달리며 스케줄 소화하는 일반 레슬러들 보다 1회성으로 나오는 이른바 알바 선수들에게 메인 이벤트를 넙죽넙죽 내준다는 점이다.[58] 펑크는 그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어째서 당신들은 매주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쉬지 않고 나와서 일하는 선수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파트 타이머한테 지게 하냐는 거야? 당신들은 그 파트 타이머들이 진정한 스타라고 말해주는 셈이고, 사람들은 진짜 슈퍼 스타들이 출연하는 레슬매니아만 보게 될 테고, 그러면 평소에 당신들을 위해서 뼈빠지게 일하는 우리가 받을 봉급은 줄어드는 거지."

펑크는 팟캐스트 첫 부분에서 '난 챔피언이기 때문에 할리 레이스 같은 위대한 선배들의 전통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파도 붕대를 감은 채 모든 쇼를 뛰면서 최고의 경기를 해야 한다고'라고 말했다. 괴롭지만 "난 챔피언이야! 챔피언은 아픈 것쯤은 버텨야지" 하는 생각으로 스케줄을 겨우 소화했다. 그런데 일 년에 열 번이나 나올까 말까한 파트 타이머한테 챔피언을 홀랑 뺏겨버리고, 한 해 가장 큰 무대의 메인 이벤트마저 뺏겼으니 그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이곳에서 볼 수 있다.

7. 은퇴 이후[편집]


탈단 후 2014년 3월 16일에 평소 엄청난 팬임을 자처했던 워킹 데드와 관련된 토크쇼인 토킹 데드에 출연했지만 WWE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또 링 네임인 CM 펑크가 아닌 본명인 필 브룩스로 출연했다. 거기다 3월 17일자 RAW에서 트리플 H대니얼 브라이언과의 세그먼트에서 "도중에 모든 걸 포기하고 집으로 가 버린 녀석"이라며 펑크를 대놓고 조롱했고,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연승 행진 영상에서도 펑크와 맞붙은 WWE 레슬매니아 29의 영상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고향 시카고 주위를 벗어나지 않고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홈경기를 보러 가거나 시카고 인근 지역의 밴드 콘서트를 보러가는 등 프로레슬링과 인연을 끊었다.

탈단 이후에도 CM 펑크는 로얄티 지급을 받지 못해서 이를 갖고 소송까지 했다. 애초에 그 탈단이라는 게 빈스 맥맨과 대판 싸우고 나온 다음에 WWE 측에서 '출장 정지' 기한을 걸었고, 그 이후에도 펑크를 부르지 않다가 결국에 결혼식 날에 해고를 하는 등 모호한 처분을 해서 이뤄진 것이라 결국 승소해서 로얄티는 모두 받았다. 탈단한 뒤에도 가끔씩 경기가 재미없거나 팬들이 정말 싫어하는 선수가 나오거나, 혹은 그냥 분위기를 타거나(...) 하면 CM 펑크 챈트가 나온다.

2014년 5월 17일 시카고 컵스밀워키 브루어스의 경기에서 중계진에 합류해 해설하던 중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중계석 부스 옆에는 AJ 리도 동행하고 있었다.

2014년 7월 14일 RAW에서 WWE 네트워크를 통해 2012년에 출시가 된 다큐멘터리 '베스트 인 더 월드'가 방영된다는 광고가 나가며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게 하였으나 15일자로 WWE 공식 홈페이지에 있었던 그의 프로필이 슈퍼스타에서 동창생으로 옮겨지며 공식적으로 WWE와 결별을 하게 되었다. 그 직후 팬들의 주도하에 트위터 상에 #ThankYouPunk라는 해쉬태그가 월드와이드 트렌드에 올라왔다. 이에 대해 펑크도 트위터에 그간의 성원과 지지에 대한 감사인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남들에게 굴하며 살지 말라는 글을 남겼다.#[59]

2014년 7월 21일 열리는 AP(얼터너티브 프레스) 뮤직 어워드의 레드 카펫 프리쇼에서 MC를 맡게 됐다.

2014년 9월 3일 그의 변호사가 WWE 측에 비디오게임 WWE 2K15의 로스터 출연과 관련해 이에 대한 초상권의 로얄티를 요구하는 22페이지의 장문편지를 보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펑크 측은 그가 계약위반이나 타사 이적이 아닌 공식은퇴를 했기 때문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4년 10월 10일, 마블 코믹스와 손을 잡고 2015년 2월에 발매될 <토르>의 스토리를 집필하면서 코믹스 작가로 데뷔했는데, 예상외로 작품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2015년 10월에 발매될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의 일원인 <드랙스>의 단독 타이틀의 작가를 맡게 되었다고 마블 코믹스가 발표했다.[60] 이 소식을 들은 데이브 바티스타는 당황했다고 한다.안 당황할리가

2014년 11월 27일, 자신의 절친인 콜트 카바나의 팟캐스트인 아트 오브 레슬링에 출연해서 10개월만에 처음으로 탈단 사건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여기서 여러가지 논쟁 거리가 생겼는데, 우선 본인은 해고당한 상태라고 한다.[61] 그것도 자기 결혼식 당일에 해고 통보가 왔다고. 이외에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빼앗긴 부조리와, 몸이 심각하게 안좋았는데 항생제만 주고 투어를 감행시킨 열악한 복지에 대해서 불만을 토해냈다. 특히 트리플 H를 공격했으며[62] 빈스 맥마흔의 경우도 말을 번복하는 경우가 잦다며 비판했다. 그 외에도 라이백[63]과 크리스 제리코[64] 등을 디스했다.

2015년 2월 19일, 콜트 카바나의 팟캐스트에 나와서 한 말의 영향인지 WWE 의료진에게 고소를 당했다. 그것도 콜트 카바나와 함께.

펑크가 팟캐스트에 말한 의료 문제 및 소송 상황 전말에 대한 글.

2017년 2월 20일 LA Staples Center에서 열린 RAW 생방송 때 관중의 환호 속에서 더 락이 CM 펑크에게 화상전화를 시도했는데 회장님그 사위의 심기가 불편했는지 직원을 통해 그만두라고 요청하는 일이 있었다. 락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나 CM 펑크가 그때 개와 산책을 하고 있어서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락은 보이스메일을 남기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WWE Shockingly Not Happy That The Rock Called CM Punk From The Ring Last Night[65]

다만 완전히 흑역사로 덮지는 않았는지 RAW 25주년 기념 방송에서 RAW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으로 짤막하게 등장했다. 그런데 사용된 사진이 하필 빈스 일가를 까는 세그먼트를 할 당시의 사진이 사용됐다(...).

그리고 결국, 2018년 5월 WWE 닥터 크리스 에이먼의 명예훼손 재판에서 승소한다. 승소도 승소지만, 이 과정에서 2014년 로얄럼블, 그러니까 CM펑크가 WWE를 탈단하게 된 그 마지막 30인 럼블매치에서 이미 뇌진탕이 의심되는 펑크를 경기에서 빼내기 위해 케인을 투입해 펑크를 제거하고 심지어 의료진 부르려고 케인이 펑크를 바리케이트에 쳐박고 아나운서 테이블에 초크슬램으로 박아버리는 짓을 하고, 펑크를 강제로 빼냈다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고 밝혀졌다. 당시 상황 번역.


2019년 4월 20일 인디 프로레슬링 단체 MKE 레슬링 흥행에 가면을 쓰고 깜짝 등장해 경기 중이던 선수에게 GTS를 선사하고 퇴장했다. [66]


올 엘리트 레슬링올 아웃 2019 개최지가 펑크의 거주지인 시카고라는 점에서, 올 아웃에 펑크가 등장한다는 루머가 나오던 차였다. 그러던 중 2019년 9월 스타캐스트 3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떴고, 정말 루머가 현실이 되는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CM 펑크가 5년 만에 링 위에 오르다 - 스타캐스트 3 프로모, 스타캐스트 공식 트윗, 포브스 인터뷰 결과(영문)

파일:01-cm-punk-best-in-the-world-starrcast-III.jpg
그러나 오히려 스타캐스트 3에 나온 펑크는 프로레슬러로 복귀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이 문제라고. 언더테이커더 락과 있던 불화설을 직접 잠재우는 한편, 코피 킹스턴케니 오메가를 칭찬하기도 했다. 휴가가 생기고 복지가 조금 나아진 정도지만 그래도 개선된 현재의 선수 복지 여건은 자신 세대와는 다르다며 제법 흥미를 보였다. 이외에도 얼마 전 사망한 고 할리 레이스를 추억하는 발언을 했다.

올 아웃 2019 당일에는 결국 등장하지 않았고, 엉뚱하게도 조이 자넬라의 올 아웃 애프터 파티인 자넬라팔루자에 깜짝 등장했다고 한다.


8. 종합격투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CM 펑크/종합격투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I Changed The Culture[편집]




It's simple as this just they think they got the answers,

"I Change The Culture".


2019년 11월 12일, WWE의 새 프로그램 'WWE 백스테이지'의 방송 종료 직전 호스트 르네 영의 깜짝 발표와 함께 등장, 5년만에 WWE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펑크의 출연은 WWE와의 계약이 아닌 해당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방송사 FOX와의 계약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WWE 복귀를 한건 아니다.

펑크는 WWE 백스테이지 프로그램 내에서 특별 기고자 (special contributor) 및 분석가 (analyst) 역할로 출연을 할 예정이다.

이 시기, 펑크도 WWE 복귀를 은근슬쩍 원했고 방송사 FOX 역시 CM펑크의 복귀를 WWE측에 요청하였으나 이에 빈스가 강력하게 거절하며 "Anyone But Punk"[67]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10. AEW[편집]


2020년에 천문학적 금액 요청으로 계약이 잘 안되어 무산됐다고 소식이 전해졌는데, 2021년 7월 21일 다시 링 복귀를 생각 중이며 AEW와 계약 협상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7월 24일 AEW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7월 28일 다이너마이트를 통해 8월 20일 AEW 램페이지의 첫번째 특집 에피소드인 더 퍼스트 댄스가 시카고에 위치한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다고 발표가 되어 점점 펑크의 AEW행이 확실해졌고 백스테이지에서는 다비 알린이 베스트 인 더 월드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메인이벤트 직후 MJF가 펑크의 10년전 파이프 밤 세그먼트 시작 부분을 패러디하면서 더 퍼스트 댄스 특집에서 펑크의 데뷔가 유력시되고 있다.


10.1. 데뷔, 7년만의 프로레슬링 복귀[편집]




캡션


그리고 8월 20일, 고향 시카고에서 열린 AEW 램페이지 더 퍼스트 댄스 특집의 오프닝을 장식하며 로얄럼블 2014를 끝으로 떠났었던 프로레슬링 링에 7년, 2776일만에 시카고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다.

파일:CMPunkisAllElite.jpg



캡션


이후 무려 9분을 넘어가는 프로모를 통해 그동안의 회포를 풀어낸다. 제일 먼저 브릿 베이커피츠버그에서 받는 반응에 버금가는 걸 느끼게 해준 시카고 관중을 언급하고, 비록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 순 없지만 앞으로 수요일, 금요일, 그리고 1년에 4번 열릴 PPV 등등 시간은 많다며, 자기는 계속 여기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인의 개인적 선택으로 실망한 팬들이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하지만, 애초에 WWE에 남아있었다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부탁한다.

한 가지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재킷을 벗고[68] 자신의 첫 AEW 티셔츠를 공개한 펑크는 그대로 자리에 앉고, 떠나기 싫었지만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곳을 언급하며 그곳은 링 오브 아너였다고 한다. 또한 2005년 8월 13일 그곳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른 그날 본인은 프로레슬링을 떠났고, 2021년 8월 20일 프로레슬링으로 돌아왔다고 선포한다.[69]

10년 전 같이 활동했으면 좋았을 재능있는 선수들이 가득한 단체이기에 돌아왔다고 하는 펑크는 그 라커룸에 아직 해결해야할 인연 또한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10년 전 자신이 느꼈던 열정을 가지고 있는 젊은 선수들과 경기를 치르기 위해 돌아왔다고 한다. 그렇게 첫 번째 주자로 다비 알린을 지목하고, 위험한 걸 즐기는 다비지만 시카고에서 CM 펑크와 붙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며 올 아웃에서 다비 알린과 경기가 확정된다.

그리고 7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 쇼가 끝난 후 공짜 아이스크림 바 하나씩 쏜다고 하며 프로모를 마무리한다.[70] 해당 아이스크림

이후 쇼 말미에 8월 25일 다이너마이트 데뷔가 발표된다.

쇼가 끝난 후 토니 칸 AEW 사장과 진행된 기자회견에선 본인의 데뷔가 비밀 아닌 비밀이었던 것이 의도되었던 것이라 밝혔고, 몇 년 계약인지 밝히진 않았지만 단기 계약도 파트타임 계약도 아니라고 발표했다. 또한, 브로디 리가 위독할 당시 언론에 한마디도 흘리지 않았던 선수들을 보며 AEW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떠났던 세월만큼 현재 AEW에 있는 젊은 선수들에게 지금까지 받은 것을 돌려줄 차례라고 한다.

올 아웃에서 다비 알린을 꺾으며 데뷔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9월 24일 AEW 램페이지 그랜드 슬램에서 파워하우스 홉스와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거둔다.

계속해서 연승을 이어가면서 풀 기어 2021에서 에디 킹스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경기가 생각보다 짧았고 경기 후 엄청나게 지친 모습을 보여줘서 구설수가 있었지만 에디 킹스턴의 어깨가 좋지 않은 상태였음이 알려지면서 스테미너의 문제가 아닌 단순 셀링이었다는 쪽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애초에 중량급인 파워하우스 홉스와도 거의 15분 가까이 경기를 했었으니.


10.2. vs MJF[편집]


풀 기어 이후의 11월 17일자 다이너마이트, 역시 풀 기어에서 다비 알린을 비겁한 수법으로 꺾었던 MJF가 정장을 빼입고 링에 올라 '내가 최고의 프로레슬러이고 지금 라커룸에 있는 누구보다도 낫다'며 거드름을 피우던 순간 등장하여 말없이 MJF를 쳐다본다. MJF는 살짝 당황한 듯 하다가 악수를 청하지만 펑크는 악수를 거절하고 웃으며 링을 떠난다.



캡션


11월 24일 CM 펑크의 고향 시카고에서 열린 다이너마이트 오프닝 세그먼트로 MJF와 말다툼을 벌이는데 CM 펑크의 UFC 커리어, MJF와 미즈의 비교, '니가 1인자가 되려면 토니 칸의 딸과 결혼하는 방법밖에 없다' 등등 수위를 넘나드는 살벌한 말싸움을 보여준다. 이 때 MJF도 존 시나, 트리플 H[71]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펑크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 장면이 송출된 이후 팬들 사이에서 이 세그먼트는 파이프밤 이후 10년만에 나온 최고의 세그먼트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캡션


그리고 12월 8일 MJF의 고향 롱 아일랜드에서 열린 다이너마이트의 오프닝에서 MJF의 테마를 틀고 관중이 열광을 하는 순간에 등장해서 한순간에 야유를 먹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MJF와 관중들을 시카고와 비교하면서 도발하는 세그먼트를 했고 여기에 더해 다이아몬드 배틀로얄 때 등장한 MJF는 엄청난 환호를 받는다. 이는 고향팬들의 반응을 제대로 활용한 프로모라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1월 12일에 MJF의 보디가드인 워들로우와의 경기가 벌어지면서 워들로우의 파워에 밀리다가 롤업으로 승리를 거둔다.[72] 2월 2일에 MJF와의 경기가 확정되면서 워들로우가 심판의 시선을 끌며 CM 펑크를 방해하고, 그사이에 MJF가 반지로 CM 펑크를 가격하고 핀하면서 CM 펑크가 패하게되고 연승이 끊긴다. 이후로도 MJF와 대립을 이어나가면서 레볼루션 2022에서 독 콜러 매치로 맞붙어 승리를 거둔다.

이후 인터뷰에서 메인 챔피언쉽 전선 참가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MJF와의 대립이 종결 된 이후로는 펜타 오스쿠로와의 경기가 확정되면서 그를 꺾는다.

이후 4월 20일 AEW 다이너마이트에서는 더스틴 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마침 AEW 월드 챔피언인 애덤 페이지가 등장하면서 그와 대면을 하였는데 인터뷰대로 메인 챔피언쉽 전선에 참가할 듯하다.


10.3. 손에 넣은 챔피언 벨트를 스스로 걷어차다.[편집]


4월 27일 AEW 다이너마이트에서 오피셜이 떴다. 더블 오어 나씽 2022에서 행맨과 AEW 월드 챔피언십 매치가 잡혔다.

비록 대립의 노출된 TV 방영시간은 적었으나 PPV 직전 페투페로 한껏 분위기를 올리더니 명경기 끝에 AEW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다. 서로가 턴힐 각을 보면서도 끝내 선역 vs 선역으로 마무리한 경기운영이 일품인 경기였다. 옥의 티가 있었다면 행맨의 벅 샷 레리어트를 펑크가 경기 중에 두 번 사용했는데, 경기 입장중 관객석으로 뛰어드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가드레일에 니킥을 날리는 대참사가 일어나면서 무릎 부상을 당한 채 경기에 임하면서 두 번 다 실패한 것 실제로 벅샷 레리어트의 실수 장면을 보면 다친 무릎 쪽으로 중심이 무너지며 쓰러진다. 물론 자기 무릎 상태를 뻔히 알고 한 번 실패하기까지 했는데 굳이 두 번이나 시도한 건 명백한 과욕. 관객들도 첫번째 실수는 아쉽다는 반응이였지만 두번째 실수는 얄짤없이 야유로 반응했다. 펑크 본인도 경기 후 세그먼트에서 자기가 은퇴하기 전까지 벅 샷 레리어트 못 쓰게 막아달라고 할 정도였다. 본인 왈 연습 땐 잘 되었다고.[73]

이후, 6월 1일 다이너마이트에서 포비든 도어 2022의 경기 상대를 불러내는데, 타나하시 히로시가 나와 둘의 경기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6월 3일 램페이지에서 부상으로 잠정 휴식을 선언했다. 다만 마이크웤 마지막에 남긴 말로 보아 잠정 챔피언을 뽑고 통합 챔피언전 각본을 할 여지를 남겼고 오피셜이 떴다. 존 목슬리와 다음주 다이너마이트 배틀로얄에서 승리한 선수가 당일 다이너마이트의 메인이벤트에서 경기를 치루고 그 경기의 승자가 포비든 도어에서 열릴 챔피언전 타이틀샷을 가진다고 한다.

이후 밝혀지기로는, 직전의 다이너마이트에서 태그팀 경기를 치루러 입장할 때 펑크가 관중석을 향해 몸을 날렸었는데, 그 과정에서 골절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74] 그야말로 무리한 팬 서비스가 최악의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8월 10일에 복귀하면서 블랙풀 컴뱃 클럽 & 에디 킹스턴제리코 어프리시에이션 소사이어티간의 난투극 사이에 등장해 제리코 어프리시에이션 소사이어티를 몰아내는데 돕다가 잠정 챔피언 존 목슬리와 마주치며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하였고, 이내 존 목슬리가 CM 펑크를 향해 중지를 날리며 도발하면서 대립을 암시하며 끝이나게 된다.

8월 24일 AEW 방송날 드디어 모두가 기다려온 잠정 챔피언과, 현 챔피언간의 챔피언 결정전이 이루어지고 맞붙게 되나 갑작스러운 부상인지, 이전 부상의 여파인지 혹은 방송 사고인지 모를 전개를 통해 모두가 기다려온 챔피언 결정전은 CM펑크가 존 목슬리와 부딪히고 몇분이 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다리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이며 너무나도 쉽게 패배해버린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AEW 방송 내내 CM 펑크와 존 목슬리는 대립을 이어가며, 두 사람 간의 대립과 신경전을 통해서 챔피언 결정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내보였고, 다시금 둘은 결국 올 아웃 2022에서 AEW의 챔피언 벨트를 걸고 진정한 챔피언을 가르기 위해 맞붙기로 한다.[75]

CM펑크의 고향인 시카고에서 열린 올 아웃 2022에서 CM펑크는 존 목슬리를 상대로 피투성이가 되어가면서도 처절히 싸우는 모습을 보이며, 이전의 어이없는 패배를 설욕하는데 성공하여, 존 목슬리를 쓰러트리고 챔피언 벨트 탈환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직후 경기장이 암전되더니 이윽고, MJF가 CM펑크의 챔피언 벨트를 노리는 모습을 내보이고 두 사람 간의 새로운 대립을 암시하며 이날의 PPV를 끝맺음 한다.

그러나 올 아웃 2022에서의 난투극 사건과 실제로 입은 부상 때문에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징계를 받게 되었다. 올 아웃 2022 경기에서 입은 삼두근 부상으로 6~8개월 이상 결장이 확정되었는데, 부상에서 회복한다고 해도 난투극 사건 때문에 AEW에서 계속 활동할지는 알 수 없고, 더 나아가 앞으로의 프로레슬링 커리어 또한 굉장히 불투명하게 되었다.

프로레슬링 커뮤니티 등지의 썰에 따르면 펑크가 올 아웃 포스트 인터뷰에서 각본이 아닌 실제로 막말 섞인 발언들을 한 것을 보고 케니 오메가를 위시한 스테이블 엘리트가 분개해 직접 펑크의 락커룸에 찾아갔는데, CM 펑크와 그의 스승인 에이스 스틸이 다짜고짜 엘리트 측을 먼저 공격하면서 양쪽의 난투극이 펼쳐졌고, 소식을 들은 여러 사람이 급히 달려와 뜯어말렸고, 당사자들은 모조리 징계를 받게 됐다고 한다.

또, 펑크가 문제의 인터뷰를 하던 당시 옆 자리에 동석한 토니 칸은 CM 펑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진심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팬들도 토니의 말까지 끊어 가며 날선 악담을 내뱉는 CM 펑크의 모습에 저게 슛인지 정교한 워크인지 굉장히 헷갈려했는데[76], 결국 100% 슛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당일날만 해도 내부 분위기는 친 펑크 반 펑크 중립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조사가 이뤄지면서 로스터 대부분이 펑크에게 등을 돌렸고, 결국 10월 18일 에이스 스틸은 바로 해고되고 펑크 본인은 바이아웃 협상[77] 이야기가 나오는 등 커리어가 매우 불투명해졌다.

또한 유크스에서 개발중인 AEW를 소재로 한 게임인 'AEW 파이트 포에버'의 커버아트와 새로운 트레일러 영상에서 CM 펑크를 삭제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10월 28일 조사 결과 펑크와 에이스 스틸의 과실로 판명이 났고 에이스 스틸은 해고, 펑크는 수뇌부와 바이아웃 협상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몇달 뒤 펑크의 복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몇가지 썰들이 나돌았다. 대표적인 것으로 ROH 복귀[78], WWE 리턴[79][80], AEW 새로운 주간 쇼 데뷔[81] 등이 있었다.

10.4. 두 번째 기회... 그러나[편집]


AEW가 2023년 5월 31일 다이너마이트 방송에서 AEW 콜리전 이라는 새로운 TV 쇼를 런칭한다는 것을 발표했고, 해당 쇼에 CM 펑크가 복귀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6월 17일 콜리전을 통해 복귀히면서 절친들인 FTR과 팀을 이뤄 사모아 조 & 제이 화이트 & 쥬스 로빈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오웬 하트 컵 토너먼트에 참가한 CM 펑크는 포비든 도어 2023에서 코지마 사토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로데릭 스트롱을 꺾고 준결승전에 진출한 사모아 조와 맞붙어 승리를 거두면서 결승전에서 리키 스탁스를 상대하게 되지만 스탁스가 심판 몰래 로프를 잡는 반칙성 핀폴을 사용하면서 CM 펑크가 패해 우승하는데 실패한다.

악역전환한 스탁스와 대립하며 8월 5일에 스탁스와의 경기의 특별심판으로 리키 스팀보트가 맡게되면서 승리를 거두자 경기 후 스탁스는 스팀보트를 공격하고는 스팀보트의 허리띠를 빼서는 마구 공격하자 CM 펑크가 링 안으로 들어오자 도망간다. 여전히 CM 펑크에게 패한 것에 분이 안풀린 사모아 조는 계속해서 CM 펑크를 노리며 경기까지 난입해 CM 펑크에게 코키나 클러치를 걸자 올 인 2023에서 CM 펑크가 가지고있는 리얼 월드 챔피언십 벨트를 걸고 둘간의 경기가 확정되면서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경기 직전 고릴라 포지션에서 잭 페리와의 몸싸움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토니 칸에게 AEW를 관두겠다고 협박성 발언까지 날렸다가 결국 잭 페리와 함께 정직 처분을 받았고 이후 미국 시간으로 2023년 9월 2일부로 AEW에서 해고를 당했다.

AEW와 토니 칸의 성명서 원문
※ 의역으로 원문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올 엘리트 레슬링(AEW)는 필립 브룩스(CM 펑크)와 AEW 간의 레슬링 선수 및 고용 계약을 즉시 종료했습니다.
AEW의 CEO이자 총괄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인 토니 칸이 오늘 해고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해고는 8월 27일 일요일 AEW- All in London의 백스테이지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일주일간의 내부 조사에 따른 것입니다.
조사 후 AEW 징계위원회는 외부 변호사와 만났고 칸에게 만장일치로 해고를 권고 했습니다.
칸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필 브룩스는 AEW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의 기여에 감사드립니다.
그의 AEW 계약 종료는 저의 결정입니다.
물론 이 소식을 공유할 필요가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많은 팬여러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매주 AEW를 가능하게 하는 많은 사람들 즉 우리 스태프와 운영자 및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결정을 내렸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팬들에게 전 세계 경기장에서 멋진 경기를 선사할것입니다.


11. AEW로부터 방출 이후[편집]



11.1. WWE로의 복귀 시도, 그러나 좌절[편집]


AEW와의 방출 이후,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펑크는 AEW에게 소송을 걸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아무래도 펑크의 측근이나 그 외 반펑크 측 선수들 뿐 아니라 당시 중립적인 입장에 있었던 수많은 목격자들도 있었고 CCTV에 펑크가 토니 칸을 위협하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찍혀 그대로 해고까지 이어진 사례다보니 펑크 입장에서도 굳이 더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괜히 건드려봤자 손해가 더 클 것이 뻔하기 때문.

이후 펑크는 지속적으로 WWE로의 복귀를 시도하고 있으며 펑크 측근들의 말에 따르면 2023년 11월, 시카고에서 열릴 예정인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컴백하길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펑크 측근의 말에 의하면 WWE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 그러나 파이트풀에서 정리한 기사에 따르면 현재 로만 레인즈를 포함한 수 많은 '영향력 있는 슈퍼스타들'이 펑크의 복귀를 반대하고 있으며 인터뷰에 응한 한 익명의 선수는 펑크가 복귀하고 싶다면 많은 선수들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할 것이며 혹시라도 돌아온다 한들 AEW에서처럼 내부 정치질을 통해 마음껏 활개치지 못할 뿐더러 그렇게 한다면 WWE내에서 입지를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뉘앙스로 말하기까지 하였다.파이트풀 기사 요약 번역본

또한 이런 소식이 퍼지고 있는 시점에서 펑크 측근들의 긍정적인 전망과는 달리 WWE 내부에선 그 누구도 펑크가 돌아온다는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하며 위클리쇼에서 코디 로즈를 포함한 몇 번씩 언급되었던 'BEST IN THE WORLD' 멘트 역시 펑크의 복귀를 염두에 둔 발언들이 전혀 아니라고 전해졌다. 또한 펑크의 복귀는 전적으로 WWE 고위직들의 손에 달려있기에 펑크가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뉘앙스로 이야기가 전해졌으며 펑크는 WWE가 제안만 한다면 바로 재계약을 할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82]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WWE 고위직이 펑크 복귀의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WWE 내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의 복귀를 반대하더라도 그의 복귀가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펑크의 WWE복귀 시도 소식이 전해지자 펑크의 팬들을 제외한 나머지 팬들의 경우 현재 WWE의 젊은 인재들 풀이 두텁고 트리플 H 체제 전환 이후 모든 객관적 지표가 우상향을 찍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너무 큰 펑크를 굳이 데려올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뿐만 아니라 AEW 복귀 당시 2005년 이후로 레슬링판에 오랜만에 복귀했다는 식으로 WWE커리어를 완전히 부정한 그가 AEW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게 되자 조용히 WWE로 복귀할 의사를 비추는 모습에 학을 떼는 중. 애초에 네버 세이 네버가 기본 베이스인 이 레슬링 비즈니스[83]에서 과거 방송사 FOX의 펑크 복귀 요구마저 WWE가 극도로 반대했을 정도로 펑크는 WWE와 그야말로 척을 진 상태.[84] 애초에 WWE 메디컬 시스템에 엄청난 이미지 타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누구 한 쪽이 끝장날 때까지 끝내지 않겠다는 기세로 WWE와의 장기 소송을 이어갔던 펑크이기 때문에 탈단 직후까지만 해도 펑크가 나간다고 하자 눈물을 흘렸을 정도였던 빈스마저 완전히 질려버린 셈. 그야말로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신 WWE로 돌아오지 않을 기세로 WWE를 공격했던 펑크였기에 자업자득이라는 평이 우세한 상황이다.

여러모로 실제로는 CM 펑크라는 프로레슬러가 얼마나 이 될 것인지가 관건일 듯하다. 이미 WWE는 과거 7할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빈스 체제가 아닌 엔데버51 : WWE49 비율의 TKO 그룹 홀딩스 소속의 기업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빈스의 의사만으로 펑크의 복귀를 거절하기 쉽지 않아졌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펑크가 워낙 좌충우돌하는 인간이기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혹은 다른 선수들과 분쟁을 일으켜서 AEW에 있었던 악몽을 다시 불러온다면 골치가 아파질 테니 아예 불러오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만약 모험을 하게 될 경우 가급적이면 펑크에게 큰 돈을 주고 불러는 오되 프로레슬링 이외의 행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통제하는 방식을 취해서 리스크를 줄이려 들 수 있다.[85] 애초에 AEW의 경우엔 본인이 호구 잡기 쉬운 토니 칸의 든든한 빽이 있었기에 ROH시절부터 내려오던 유구한 내부 정치질을 시도하다가 완전히 풍비박살이 난 것이지만 WWE의 경우엔 애초에 CM펑크가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나온 긍정적인 전망. 여기에 2023년 10월9일자 WWE RAW에서 나카무라 신스케리코셰에게 GTS를 날리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다시 한 번 CM 펑크의 WWE 복귀설에 힘을 싣게 되었다.[86]

그러나 펑크 복귀 가능성이 다시 대두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WWE의 고위직들은 '탑스타급 선수들'에게 현재 회사는 CM펑크의 복귀에 대해 펑크 측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으며 WWE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한 사실이 파이트풀에 의해 공개되었다. 회사의 밥줄인 '탑급 슈퍼스타들'에게 굳이 거짓말 하면서까지 데려올 이유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CM펑크의 복귀는 현재로썬 아예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 뿐만 아니라 레슬링 옵저버 라디오의 데이브 멜처 역시 앞으로도 영원히 복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선 WWE가 펑크의 복귀 요청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기에 더해 이와같은 결정은 빈스 맥마흔의 결정, 정확히는 빈스[87], 닉 칸[88], 트리플 H[89] 셋이서 내린 결정이라고 전했다. CM펑크를 데려옴으로써 얻을 긍정적인 효과보단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는 판단하에 복귀를 거절한 것이라고. UFC 팬들의 증언처럼 과거 엔데버 산하에 있었을 때 알아서 잘만 굴러가면 크게 터치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그 기조가 그대로 합병 이후로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즉, 합병 이전처럼 그냥 빈스가 싫으면 CM펑크는 돌아올 수 없는 것(...)(???: 이 회사는 빈스가 뒈져야 굴러갈 것 같아...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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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지만 그 이후로 CM이 무엇의 약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Chicago Made, "Cookie Master", "Crooked Moonsault", "Chuck Mosley", "Charles Montgomery", "Charles Manson", "Crazy Mariachi" 등 다양한 대답을 하고 있다. 요즘은 거의 시카고 메이드로 통용되는 듯.[2] 시카고의 성자들이라는 뜻. 세컨드 시티는 시카고의 별칭이다.[3]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두 사람의 첫 경기인줄 알지만, 사모아 조 vs CM 펑크는 그 전에 ROH에서 열렸었다. ROH 챔피언쉽으로. 사모아 조의 무시무시한 드래곤 스크류 남발로 CM 펑크의 패배로 끝났었다.[4] ROH 시절 최고의 라이벌 관계를 보여줬던 사모아 조와는 절친한 친구라고 한다. 실제로 같이 룸메이트로 지낼 정도.[5] ROH에서 철창 위에서 슈팅스타 프레스를 날린 전적이 있는데, 이는 각본에 없는 사항이었고, 받아주는 선수도 상당히 고생했으며, 자신도 경기가 끝난 후 구토를 하였다.[6] 여기서 옛날 이야기를 비유했는데 한 노인이 얼어있던 뱀을 구해주고 기르는데 그 뱀이 노인을 물어버리자 노인이 어째서 구해줬는데 은혜를 배신으로 갚느냐고 묻자 뱀이 했던 말이 참으로 압권이다. "이 바보같은 늙은이, 난 뱀이거든? (You Stupid Old Man, I`m a Sneak.)"[7] 이때의 기믹이 사실 선악만 바뀌었을 뿐 2011-12년 CM 펑크가 WWE에서 형성한 기믹의 원조이다. 타이틀을 들고 이적하겠다고 설치는 것도,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도 비슷하다. 또 바로 이 시즌에 펑크의 등장음악이 Living Colour의 Cult of Personality인데 이것도 WWE에서 그대로 사용하였다.[8] 과거 WWE에서 활약했던 제이미 노블, 2009년 은퇴 후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9] 카바나와의 마지막 경기는 두 사람의 고향인 시카고에서 펼쳐졌는데 입장신에서부터 눈물을 터뜨리며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실로 감동적인 장면.[10] 사실 TV상으로는 2006년 레슬매니아 22존 시나 등장 때 엑스트라로 잠깐 출연한 적이 있었다. 파일:external/onlineworldofwrestling.com/19.jpg 실제로 2011년 시나와 대립했을 당시에도 본인 대사로 활용하기도 했다.[11] 2005년과 2006년에 개최된 흥행인 ECW 원 나잇 스탠드가 이곳에서 열렸다. 시나, 오턴, 그리고 바티스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장소일 듯.여러 가지로 시나랑 참 비교되는 점이 많다[12] 본래 WWE 벤전스(2007)(부제: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크리스 벤와와 경기를 치르며 그와 대립할 예정이었으나 벤와가 엄청난 병크를 저지르고 PP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에 대타로 존 모리슨이 뛰게 되었다.[13] 당시 모리슨이 웰니스 프로그램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기 때문에 한 달 출장 정지가 확정이 되어 PPV가 아닌 TV쇼에서 챔피언쉽을 치뤘다.[14] 당시 에지는 스토리상 비키 게레로와 연인관계로 스맥다운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비키가 가족인 차보 게레로를 도와주라는 부탁을 하게 되면서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게 되었다.[15] 그리고 이 때 당시 ECW 챔피언이던 케인 역시 RAW로 이적하게 되며 후에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ECW 소속이 된 마크 헨리에게 빼앗겼다.[16] 전날 PPV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매치를 가졌는데, 바티스타가 사실상 승리가 확정적인 상황에서 에지 일당이 나타나서는 일부러 반칙을 저지르면서 경기를 방해했고 심판이 쓰러지자 차보 게레로를 심판으로 내세워 에지의 승리로 챔피언쉽 탈환을 실패하였다. 챔피언이 확정적이었던 상황에서 놓친 것도 아쉬운 점인데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RAW 이적이 결정되면서 에지에게 다시 도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분풀이로 실컷 패버렸다.[17] WWE 언포기븐(2008)에서 챔피언쉽 경기를 가지기 전 백스테이지에서 랜디 오턴과 레거시의 기습 공격을 당했다. 코피 킹스턴이 도와주러 왔으나 수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라 큰 도움이 되긴 힘들었고, 결국 펑크는 오턴에게 사커킥까지 맞으면서 월드 챔피언쉽 경기를 치룰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18] 이미 지난 해 머니 인 더 뱅크를 따서 월드 챔피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잡지 못했던 터라 관중석에서 야유가 섞여 나왔다.[19] 이때 우마가의 거의 유일한 영어 마이크웍이 있다![20] 당일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쓰러진 제프를 뒤로하고 타이틀만 챙긴 채 퇴장하려 했지만 뒤따라온 제프에게 공격당한 뒤 스완턴 밤을 얻어맞고 패배,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21] 언더테이커는 레슬매니아 25 이후, 계속 휴식을 취한 상태였다. 해당 영상 40초 부근을 보면 조명이 잠시 꺼졌다 켜졌다 하며 펑크가 당황해 하는 장면이 있는데 방송 사고가 아니라 언더테이커의 컴백을 알리는 복선이었는 듯. 영상을 자세히 보면 엎드리고 있던 제프가 옆으로 굴러서 누워버리는데 이 역시 언더테이커의 싯업 퍼포먼스를 위해 위치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22] 어마어마한 환호가 채 1분도 안되어 정말 엄청난 야유로 변한다.[23] 사실 스트레이트 에지 소사이어티가 처음부터 가망이 없던 스토리는 결코 아니었다. 당시 스맥다운을 대표하는 악역 스테이블로서 꽤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레이 미스테리오와의 대립까지만 해도 언더테이커와의 대립 후 침체에 빠질 뻔한 펑크가 다시 스맥다운의 메인급 악역으로 기사회생할 기회를 만들어 놓았었다. 펑크의 모멘텀이 박살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은 빅 쇼와의 대립 때 부터였다.[24] 예수의 아버지인 나자렛의 요셉과 같다.[25] 이 세그먼트에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정말 오싹했다는 평이 많다. 방송 직후 이 세그먼트는 수많은 찬사를 받았고 펑크는 이 연기에 힘입어 2010 슬래미 어워드에서 DESPICABLE ME AWARD를 수상한다.[26] 이때 케인은 언더테이커 식물인간 각본 때문에 이성을 잃고 테이커와 관련된 레슬러들 중 아무나 눈에 띄이기만 하면 닥치는대로 공격하는 상태였다.[27] 경기중 예상치 못한 출혈이 있어서 경기가 중단되고 의료진 여럿이 지혈을 계속했지만 피가 멈추지 않고 얼굴을 다 덮을 지경이 되자 펑크 스스로 의료진을 뿌리치고 레이에게 공격을 해서 경기를 속행했다. [28] 허스키 해리스는 한 발 앞서 그레이트 칼리에게 탈락.[29] 게다가 RAW 노트북단장이 조쉬 매튜스를 통해 경기 시작 전 넥서스는 CM 펑크 빼고 다 퇴장시켰다.[30] 이걸 "파이프밤"이라고 부른다. 이 세그먼트 전에 각본진은 펑크에게 대본이나 가이드 라인 같은 거 없이 자유롭게 마이크웍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즉, 마이크웍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펑크의 애드립이었고 그걸 토대로 분석해보면 이미 회사에 어느정도 불만이 있던 상태였다는 이야기가 성립한다. 그리고 그것은 2014년 탈단 이후 콜트 카바나의 팟캐스트에 나와서 이야기 한 결과 간접적으로 이야기 하긴 했지만 모두 진심이었음이 밝혀졌다.[31] 이 때 펑크가 내놓은 요구조건들을 대략 살펴보면 자신의 전용기를 지급할 것, 쇼 오프닝과 턴 버클을 비롯한 모든 소품에 자신의 얼굴을 넣어줄 것, 예전에 WWE에서 판매하던 아이스크림 바를 부활시킬 것, 마지막으로 빈스가 자신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할 것등등 이었다.[32] 콜트 카바나는 데뷔 이전부터 친구 사이였고 ROH에서 세컨드 시티 세인츠라는 스테이블로 활동한 적이 있을 정도로 친하며, 스카티 골드맨이라는 이름으로 WWE와 계약해 활동했다가 찬밥대우만 받고 방출당한 전력이 있다. 2020년 현재는 AEW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루크 갤로우스의 경우에도 같이 활동을 하며 열심히 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았다는 코멘트를 한적이 있다.[33] 레슬링 옵저버의 편집장이자 미국의 베테랑 평론가 데이브 멜처는 이 경기를 별점 5점의 최고의 경기로 평가했다. WWE에서는 97년 WWF 인 유어 하우스 18: 배드 블러드에서 벌어진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의 헬 인 어 셀이후 14년 만에 받은 5성 경기이며, 펑크 본인에게는 2004년 ROH에서 사모아 조와 가졌던 60분 아이언맨 매치 이후 2번째 5성 경기였다. 또한 평점 전체로 보면 2006년 ROH 슈퍼 카드 오브 아너에서 치뤄진 사이토 료&드래곤 키드&호리구치 겐키 VS. CIMA&도이 나루키&요시노 마사토 전 이후 5년만에 나온 5성 경기이며,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11년 올해의 경기 1위를 차지하였다. 사실 경기 자체는 5성급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편이었지만, 파이프밤을 비롯한 일련의 대립 전개과정들이 너무나도 훌륭했고 결말 또한 흠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에 5성을 줬다고 한다.[34] 원본 링크는 소실되어 사진은 번역본에 첨부된 사진 참조[35] 이 외에도 NHL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홈경기에서 경기 시작 전 오프닝 세레머니에 등장한 적이 있다.[36] 원문은 New champ? How can that be, when the champ is...here. 아시다시피 맨 끝은 존 시나의 캐치프레이즈.[37] 2011년의 CM 펑크 이후 WWE에는 아직도 존 시나의 상품가치를 뛰어넘는 선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38] 꽤 강도 높은 가족, 성적 모욕을 계속했다.[39] 원래 내시를 꺾은 뒤 트리플 H와 대면할 예정이었지만 내쉬의 몸상태로 경기를 소화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 변경되었다고 한다.[40] 이 날 펑크는 델 리오의 리카르도에 대응해 명예의 전당 헌액자 "하워드 핑클"을 대동하고 나왔다(!!!).[41] 경기 시작 전 비키 게레로도 퇴장시켰다.[42] 이때 관중에 펑크의 여동생이 있었다.[43] 존 시나는 머인뱅을 써서 캐싱인했는데도 타이틀 획득에 실패한 첫 번째 선수로 기록되었다.[44] PG등급에서 블러드잡은 금지다. 그런데 이 날 펑크의 결정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해당 내용이 방송된 8월 27일 RAW 직후 WWE는 펑크와 그의 블러드잡을 방치한 심판에게 벌금을 때렸는데, 심판 몫의 벌금까지 펑크가 쿨하게 다 내버렸다.[45] 이 날 제리 롤러의 자리에는 더 미즈가 긴급투입되었는데, 중계라고 읽고 자기자랑이라고 쓰는 뻔뻔스러운 개드립 멘트들을 쉴새없이 날리며 깨알같은 예능감을 보여줬다. 가뜩이나 미즈빠인 마이클 콜과 미즈가 3시간 내내 중계석에 붙어있으니 그 결과는 혼돈의 카오스...[46] 그런데 다음주에 제리 롤러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바람에 가장 최근까지 제리 롤러를 두들겨팼던 펑크는 잘못한 거 없이도 찝찝한 입장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롤러가 심장마비로 쓰러지기 직전 가졌던 매치도 다름아닌 펑크 & 돌프 지글러와의 태그매치였다.[47] 관중석에서 찍은 영상을 보면 펑크 바로 옆에 있던 퍼니셔 티셔츠의 소년이 먼저 그를 강하게 밀어 펑크를 계단에서 떨어뜨리려고 했다. 이후 펑크의 주먹을 맞게 되는 관중 뒤의 남자가 계속적으로 슬며시 펑크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렸고 결국 그 방향에 있던 피해자가 펑크의 공격을 맞게 된 것. 게다가 이 피해자...사실 펑크의 팬이었다. 폭행당한 직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펑크에게 화가 나냐고 물어보자 속상하다며 씁쓸하게 답변을 하였다. 특정 관중의 계속되는 공격에 대응한 것이지만 펑크의 잘못이 작다고 보기는 힘들다.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하다고는 해도 프로레슬링은 어디까지나 스포츠 그것도 격투기다. 워크시합을 뛴다고는하지만 프로레슬러의 신체능력은 일반인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며 그런 육체를 가진 레슬러가 자신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 일반인에게(그것도 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펑크는 격투기 선수인만큼 일반 프로레슬러들보다도 강력하니 더욱...[48] 434일 집권은 1963년부터 이어져온 WWE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6번째로 긴 집권기간이다. 7위는 380일 집권한 존 시나.[49] CM 펑크는 WWE에서 봉인된 파일 드라이버까지 시전했다. 그리고 시나의 허리케인라나까지... 이는 사전에 정해진 것이 아닌 펑크와 시나의 애드립이었고, 따라서 빈스가 노발대발했지만 시나가 자신의 의사전달 실수로 발생한 일이라며 펑크를 감쌌다고 한다.[50] 펑크가 이후에 밝힌 바에 따르면 무릎의 내측 인대가 찢어졌었다고 한다.[51] gts를 레스너에게 명중시키며 커버까지 갔지만 폴 헤이먼이 방해하였다 만약 방해하지 않았다면 best가 beast를 꺾었다는 그의 커리어에서 손꼽을 경기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52] 이때 콜트 카바나는 처음으로 펑크가 복귀를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증언. 이때 펑크는 프로레슬러라는 직업에 대해 제대로 염증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53] 펑크는 자신에게 부상을 입혔던 라이백과의 재대립을 꺼렸지만 결국 받아들였다고 한다.[54] 이때 펑크는 트위터에 애써 농담섞인 말로 "얘들아, 이번 스맥 꼭 봐, 나 이때 똥 지렸음 ㅋㅋ" 하는 트윗을 올렸다. 그런데 WWE가 공인인데 트윗에 Shit이란 표현을 쓰면 안된다며 태클을 걸어 트윗을 지워야 했다.[55] 이때 펑크는 뇌진탕이 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코너로 굴러가 의료진을 불렀고 뇌진탕이 온것 같다고 말했다. 이때 의료진과의 대답이 걸작인게, "그래서, 제가 뭘 해드리면 되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무능한 의료진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펑크는 "와, 넌 진짜 내가 살면서 본 인간 중에 가장 쓸모 없는 쓰레기야."라고 응수했다.[56] 이 소변 검사는 올림픽에서의 방식과 동일하게 제 3자가 보는 앞에서 성기를 완전히 노출시키고 채변하는 방식이라 선수들이 수치스럽다는 항의가 잦다.[57] 발 비너스빌리 건이 차기 메인이벤터로 부류될 만큼 유망주였다가 미들급으로 추락한 이유가 부상으로 이탈하는 일이 잦아서였고, 역시 리키쉬가 차기 메인이벤터로 부류될 정도였으나 추락한 이유 또한 부상 및 수술 등으로 이탈하는 일이 잦아서였다.[58] 이 부분은 파이프 밤 세그먼트에서도 한번 언급되었다.[59] 마지막 문장을 두고 '헛소문에 휘둘리지 말라'는 해석이 돌아다니는데 남들에게 굴하지 말라는 쪽이 맞다.[60] 단, CM 펑크 혼자 스토리를 쓰는 건 아니고 다른 작가(컬렌 번)와 함께 집필.[61] 자신이 러를 떠나버린 다음에 빈스 맥맨은 출장 정지를 내렸고, 출장 정지 기간이 끝난 다음에도 전혀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펑크가 먼저 연락을 몇 번 취했지만 제대로 된 응답을 받지 못했고, 결혼식을 앞두고 트리플 H가 '얘기할 준비가 됐느냐'는 문자를 보내서 펑크는 '난 언제든지 얘기할 준비가 돼 있다. 신혼 여행 갔다 온 다음에 얘기하고 싶다. 근데 내 로얄티는 언제 줄 거냐?'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트리플 H는 CM 펑크의 결혼식날에 해고 통보를 내렸고, 해고되었기 때문에 로얄티를 지급받지 못할 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물론 펑크 입장에서 해고 당했기 때문에 이전에 받아야 할 금액을 받지 못한다는 건 어처구니 없는 얘기였고, 결국에 소송전에서 승리하면서 그 돈을 받았다고 한다.[62] 일례로 쉴드는 본래 자신의 아이디어였는데 이를 빼앗아갔다고 한다. 또한 2011년에 자신에게 트리플 H가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도 이 각본은 뜬금없고 개연성이 없다는 평이 대다수며 펑크의 커리어를 망쳤다는 평이다.[63] 펑크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고. 문제의 장면 펑크는 라이백의 행동에 고의성(delibertly)이 엿보인다고 비판했다.[64] 제리코가 한 인터뷰에서 '펑크가 요즘 연락을 해도 받질 않는다. 난 그가 WWE를 떠났든 말든 여전히 친구로 생각한다'고 발언했는데, 펑크가 팟캐스트에서 자신은 WWE 관련 인물들과 아예 인연을 끊은 게 아니라 자신의 얘기를 갖고 팟캐스트나 블로그에서 화제를 이끌어보려는 사람하고만 연락을 끊었다고 말했다. 제리코는 이후에 펑크가 자신을 비판한 것이 아닐 거라고 해명했다. 이후에 2015년 4월 쯤에 2012년 WWE 익스트림 룰즈에서의 펑크와의 경기에 대해 훌륭한 경기였다고 밝힌 제리코와 달리 이 트위터 내용을 리트윗한 펑크가 "그 매치는 '진짜'였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정말로 싫어했다."고 응수했다.[65] 사실 더 락이 WWE의 전설이자 할리우드 탑스타니까 무사한거지 다른 레슬러였으면 오너 일가의 보복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66] 원래는 마스크를 하지 않고 등장할 예정이었다고.[67] 그 누구도 괜찮지만 펑크만은 안된다.[68] 좀 덥다며 옷을 벗고 드러낸 티셔츠 디자인을 본 관객의 반응은 당연히 열광.[69] 이 말을 통해 펑크는 WWE 시절은 본인의 프로레슬링 커리어의 일부가 아니라며 완전히 부정한 셈이며, WWE에 대해 내 건강을 해쳤던 곳이라고 돌려 표현한 것을 보면 WWE에 대한 적대심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WWE는 본인들을 프로레슬링이 아닌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단체로 자칭하며, AEW는 자신들을 이와 차별화된 진짜 프로레슬링 단체라고 미는 것을 보면 여러모로 인상적인 표현이다. 2019년 공개된 Starrcast와의 인터뷰 영상 등을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CM 펑크와 WWE의 앙금은 어느 정도는 풀린 것으로 추측되었지만 어찌됐던 펑크가 WWE에 적대심을 느낄 이유는 충분하고 본인도 이러한 본인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WWE 경력을 아예 부정해버린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지나쳤다고 느낄 수 있지만 프로모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평하고 있다. 본인의 스토리와 엮어서 AEW를 한껏 띄워주기 위한 장치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70] 펑크는 파이프밤 이후 재계약식 새그먼트에서 빈스에게 과거 WWE에서 팔았던 아이스크림을 다시 팔라며 조롱한 적이 있다. 아마 이 새그먼트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으로 보인다.[71] 허슬·로열티·리스펙트, 유캔시미, 킹 오브 더 킹[72] 경기 후에 MJF가 워들로우를 향해 꾸중을 하자 열받은 워들로우가 MJF의 손가락을 꽉 잡아 비틀자 숀 스피어스가 나와 둘을 말리는데, 워들로우는 MJF를 뒤로한채 화난 채로 퇴장한다.[73] 이건 당연한게, 애초에 프로레슬링 업계는 기술 시전/접수가 제대로 될 거라는 전제 하에 위험한 기술을 쓰는 것이므로 연습할 때 성공을 못했으면 당연히 경기 때 사용허가가 안 났을 것이기 때문이다.[74] 램프에서 바로 뛰어내려서 철제 바리케이드와 팬들의 품 속에(..) 착지하는 그야말로 본인에게나 타인에게나 위험천만한 짓거리였다. 펑크 빠나 까나 입을 모아 '저날 저 새끼 나올 때부터 눈빛이 영 이상하더라니 결국 일 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75] 이 당시 세그먼트를 한 지역이 고향인 시카고였고 당연하게도 CM 펑크에게 환호를 보냈지만 다른 지역과 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많았다. 그 이유는 펑크가 존 시나도 아닌데 뜬금없이 본인의 시카고 영웅 프로모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애초에 펑크의 이미지가 그런 영웅 이미지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그전부터 인성과 ROH 시절의 정치질 문제로 팬들도 많지만 안티도 많았기 때문이다.[76] 레슬링 팬들이 워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간단하다. 단체의 대표 앞에서 단체의 핵심 구성원들을 여럿 까내리고, 기자들 앞에서 화풀이를 해 대며 망신살을 뻗치고, 자기의 말 또한 끊어대며 날뛰는 꼴을 가만히 놔둘 CEO가 상식적으로 없기 때문. 하지만 이 모든 게 각본이 아닌 슛으로 밝혀지고 나서는 토니 칸의 로스터 통제력과 편애 행각이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으며, 이후에도 펑크 하나를 놓지 못해 질질 끌려다니는 꼴을 보인 탓에 토니 칸의 이미지는 사람은 좋은 레슬링 덕후에서 호구 그 자체로 전락해버렸다.[77] 봉급은 주겠지만 쇼에는 내보내지 않겠다는 말. 일반 기업으로 치면 책상을 치우는 거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커리어 관리가 중요한 프로레슬러에게 있어서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일 안 하고 봉급만 받는다고 좋아라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78] 이 부분은 콜트 카바나 문제가 겹쳐있어서 실현 가능성이 낮은것이 중론이였다.[79] 본인은 이때 SNS에 WWE 사진을 올려놓는 등 WWE의 복귀 가능성도 내비쳤다. 2023년 4월 23일 WWE 백스테이지에 무단으로 들어왔다가 쫓겨났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80] 정황상 정말로 WWE로 복귀한다기보다는 AEW에 경고를 보내는 거라는 게 더 맞을 듯하다. 한마디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안 해주면 WWE로 갈 수도 있다며 협박하는 것.[81] 이 부분은 크리스 제리코가 공공연하게 반대의사를 냈고 또 에이스 스틸의 복직문제 등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유력한 썰이였다. 토니 칸의 팬심이 너무 강한 건지, 대깨펑(..)들을 너무 의식하는 건지 몰라도 절대로 펑크를 내보내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82] 즉 철저히 재계약과 관련된 갑의 위치는 WWE이며 펑크는 오히려 WWE와의 계약을 간절히 바라는 철저히 을의 위치라는 이야기.[83] 심지어 아예 접근 금지 명령까지 떨어졌었던 스캇 스타이너와도 관계를 회복했었다.[84] 빈스 맥마흔은 이러한 FOX의 요구에 "Anyone but Punk"라고 답변했다고 전해졌다. 즉, 그 누굴 데려와도 다 좋지만 CM 펑크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선을 그은 셈.[85] 네버 세이 네버란 말이 생기게 된 것도 결국은 다 돈 때문이다. 과거 분쟁을 일으킨 인물도 돈이 된다면 불러오는 것이 WWE의 정책이기 때문.(대표적으로 제프 하디. 약물 문제를 일으킨 적 있음에도 WWE 레슬매니아 33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원래라면 펑크가 WWE에 오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그럼에도 애시당초 이런 소문이 돈다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86] 이에 WWE 한국어 해설을 맡고 있는 정찬우 캐스터는 "진짜 그 분이 돌아온다구요? 진짜로요? 조경호 해설위원 사전에 없는 그 분?"이라며 간접적으로 디스하였다.[87] 현 TKO 최고 의장[88] WWE 사장[89] 현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