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T/비올림픽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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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은 스포츠들의 GOAT에 해당하는 선수들이다. 국제적이지는 않지만 럭비크리켓, 야구처럼 특정 지역에서 큰 인기를 자랑하거나, 미식축구모터 레이싱처럼 시장 규모가 매우 큰 스포츠들도 수록되어 있다.


2. 일반 스포츠[편집]



2.1. 다트[편집]



필립 더글라스 테일러
(Philip Douglas Taylor)

줄여서 필 테일러(Phil Taylor) 라고 불린다. 별명은 "The power" 이다. 테일러는 선수 생활 30년 이상 동안 그야말로 다트 세계를 지배 하였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14번이나 우승했으며 이는 역대 최다 우승이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8회 연속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또한 1994년부터 2007년 까지 14회 연속 결승에 진출하였으며 총 21회 결승전에 진출하였는데 이 역시 역대 최다 기록이다. 세계 랭킹은 2006년부터 2013년까지 8년 연속으로 세계 1위를 유지 헸으며 총 13년 동안 세계 랭킹 1위 였다.

그 외에도 월드 매치플레이 최다 우승(16회),월드 그랑프리 최다 우승(11회),그랜드슬램 최다 우승(6회),프리미어 리그 최다 우승(6회),챔피언십 리그 최다 우승(4회),데저트 클래식 최다 우승(5회),유럽 선수권 최다 우승(4회)[1],영국 오픈 최다 우승(5회),월드 시리즈 오브 다트 1회 우승,US 오픈 2회 우승,플레이어스 챔피언십 파이널 3회 우승,마스터스 1회 우승,챔피언스 리그 1회 우승,월드 마스터 1회 우승,세계 다트 트로피 1회 우승 등 권위가 가장 높은 대회인 세계 선수권에서 가장 많이 우승하고 대부분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하였고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다수 가지고 있다. PDC프로투어 같은 경우 마이클 반 거웬이 2019년 2월에 뛰어넘기 까지 까지 총 70회로 최다 우승 타이틀을 보유하였다. 중소 규모의 대회까지 합쳐서 프로 타이틀을 무려 214개나 가지고 있다. 다른 다트 선수는 물론이고 타 종목의 그 어느 스포츠 선수와 비교해도 더 많다. 준우승도 46번 하였다.

개인 수상은 PDC 올해의 선수 6회,PDC 팬이 뽑은 올해의 선수 5회,최고의 PDC 프로 투어 선수/플로어 선수 2회,PDPA 올해의 선수 2회 등을 수상하였다. 2011년에는 PDC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10년에는 BBC 올해의 스포츠 스타 2위에 선정 되었으며 2015년에는 BBC에서 선정한 35년 간 가장 위대한 영국 스포츠 선수 TOP10에 선정 되었다.

그에게도 라이벌은 있었지만 모두 테일러가 확실히 우위였다. 그나마 맞대결에서 테일러로부터 가장 많이 이겼던 마이클 반 거웬 마저 테일러의 승률이 56.6% 였다. 현역 시절에는 수많은 다트 선수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고 미디어에서도 항상 제일 화제 였으며 수익도 가장 많았다. 은퇴한 지금도 그의 아성을 따라잡은 선수는 그 누구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다트 역사상 최고의 스타 선수이자 이견이 없는 다트의 GOAT이다.[2]


2.2. 당구[편집]



2.2.1. 스누커[편집]


영국의 인기 종목이자 상금 규모가 가장 큰 종목으로 유명한 스누커의 GOAT은 로니 오설리번이 꼽힌다. 출처 (1) (2) (3) 매우 빠른 플레이로 로켓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2020년 기준으로 현대 스누커의 트리플 크라운[3]을 20개, 랭킹 타이틀을 37개 보유하며 양쪽 모두 역대 1위를 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연소 마스터스 우승, 맥시멈 브레이크의 최단 기록과 최다 기록, 최다 센츄리 브레이크 등 각종 기록들도 쓸어가고 있다.


2.2.2. 캐롬 당구[편집]


우리나라에서 친숙한 종목인 캐롬 당구의 GOAT은 3쿠션 세계선수권을 21차례나 우승한 레이몽 클루망이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선수다.


2.2.3. [편집]



에프렌 "바타" 마날랑 레예스
(Efren "Bata" Manalang Reyes)

가장 대중적인 종목인 풀(포켓 당구)의 GOAT은 에프렌 레예스가 꼽힌다. 출처 (1) (2) (3) 에잇볼, 나인볼, 원 포켓 세 가지의 세부 종목에서 골고루 활약했으며 획득한 타이틀은 70개가 넘는다고 전해진다. 레예스는 유명한 당구 영화 '컬러 오브 머니'의 이름을 딴 나인볼 매치에 초청되기도 했다. 상대 선수는 나인볼 최고의 선수라 평가 받은 얼 스트릭랜드였으며, 3일간 120게임을 먼저 따야 하는 이 세기의 맞대결에서 승리했다. 또한, 그는 기술적인 면 뿐만 아니라 뛰어난 판단력으로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여줬기 때문에 역대 최고의 당구 선수로 평가 받고 있다.


2.3. 럭비[편집]



2.3.1. 럭비 유니온[편집]



리차드 휴 맥코
(Richard Hugh McCaw)

주로 리치 맥코(Richie McCaw)라고 불린다. 뉴질랜드의 럭비 선수이다. 자신이 뛴 올블랙스[4]의 148번의 경기 중 110번을 주장을 맡았고 럭비 월드컵을 2번이나 우승했다. 맥코는 럭비 선수로서 받을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IRB 올해의 선수상을 8번 후보에 들어 총 3번 수상하였다.

럭비의 GOAT가 누구인가 라는 주제에는 역대 최고의 임팩트를 보여준 조나 로무나 2번의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의 주역이었던 댄 카터와 그의 팀 동료이자 올블랙스 역사상 최고의 주장이라 불리는 리치 맥코와 그외 마이클 존스,브라이언 오드리스콜,데이비드 캄페세,마틴 존스,조니 윌킨슨,가레스 에드워즈,필립 셀라 등 많은 선수들이 거론되지만 그 중에서도 맥코가 GOAT에 가장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맥코는 국가대표 경기를 148번이나 치뤘는데 이 기록은 2020년에 깨지기 전까지 역대 1위 기록이었다. 측면공격수로는 아직까지도 1위 이다. 올블랙스 선수로서 100경기 이상 치른것은 맥코가 최초이다. 놀랍게도 맥코가 출전한 횟수는 1903년 이후 지금까지 모든 뉴질랜드 국가대표 경기의 27%를 차지하며 148번의 경기 중 131번이나 승리를 했고 홈에서는 61번 중에 단 2번만 졌다.[5] 중요한점은 맥코는 이기록의 대부분을 올블랙스의 주장으로서 작성했다는 것이다. 올블랙스가 가지는 위상과 그 팀의 주장인 맥코의 위치를 생각했을때 그가 최정상 자리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알수 있다.[6] 맥코가 이끈 올블랙스는 맥코 말고도 댄 카터와 여러 역대급 기량의 선수들 덕분에 이견 없는 세계최강 팀이라 불렸으며 올블랙스 역사상 최고의 팀이라고도 불렸다.[7] 그 외에도 슈퍼럭비(클럽 대회) 4번 우승,트라이 네이션스컵(럭비 챔피언십) 7번 우승,블레디슬로컵 8번 우승 했다. 그랜드 슬램 투어도 꽤나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주장으로서 역량 뿐만이 아닌 개인 기량도 훌륭했다. 맥코의 포지션은 럭비에서 가장 까다로운 포지션이자 가장 중요한 포지션으로 맥코는 역대 최고의 오프사이드 플랭커로 평가 받으며 총 135점을 득점 했는데 이는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이다. 플레이 영상을 보면 골대와 40m 떨어진 상태에서도 킥을 차서 골을 넣을 때도 있다. 또한 IRB 올해의 선수상을 3번 수상했는데 2년 연속(2009,2010) 수상한건 맥코가 유일하다.

맥코보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나올 수 있지만 그의 기록들을 뛰어넘을 선수가 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뉴질랜드의 황금기를 이끌며 올블랙스의 오랜 숙원이었던 월드컵 우승을 이루고 그 누구보다 긴 전성기를 보낸 맥코가 럭비의 GOAT라 할 수 있다.[8]


2.3.2. 럭비 리그[편집]



캐머런 웨인 스미스
(Cameron Wayne Smith)

역대 최고의 럭비 리그 선수로 평가받는다. 럭비 리그 프로 리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호주뉴질랜드NRL(내셔널 럭비 리그)에서 400경기 이상(430경기) 치른 유일한 럭비 리그 선수이자 최다 골(2418점), 최다 킥(1295점), 최다 태클(16917), NRL 그랜드 파이널 최다 포인트(44점), 최다 승리(310승) 등 각종 역대급 기록을 세운 선수다.


2.4. 미식축구[편집]


흔히 톰 브래디란 이름으로 알려진 미식축구계의 전설. 포지션은 당연히[9] 쿼터백. 22년 간, 그리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중인 커리어 동안[10] 역대 슈퍼볼 최다 진출(10회) 및 역대 슈퍼볼 최다 우승(7회),[11][12] 슈퍼볼 MVP 최다 수상자(5회)이며[13] 정규 시즌 MVP도 3회 수상한 NFL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선수이다. NFL을 넘어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힌다.

2000년도 드래프트에서 막차로 아슬아슬하게 뽑힌 터라[14] 기대치는 0에 가까운 선수였지만, 2년차에 부상으로 빠진 주전 쿼터백 드류 블래드소를 밀어내고 슈퍼볼 우승을 달성하는 파란을 일으키더니, 이후로 2005년까지 2번의 슈퍼볼 우승을 더 달성하면서 패트리어츠 팬들과 연고지 보스턴 지역 언론들은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받던 조 몬태나를 넘는 거 아니냐는 설레발을 쳤고,[15] 이에 많은 미식축구 팬들도 "4년 만에 슈퍼볼 우승 3번에 슈퍼볼 MVP 2번이면 진짜 이러다가 브래디가 몬태나를 넘는거 아니야...?"라는 식의 진지한 비교를 시작했지만, 이후 브래디는 슈퍼볼 XLII에서 일라이 매닝이 이끄는 뉴욕 자이언츠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전승준으로 쳐박히는 등 이후 10년 간 더 이상 슈퍼볼 우승을 이력서에 추가하지 못하였다.[16] 결국 일라이의 형인 페이튼 매닝과 비교되며[17] 이 논쟁은 설레발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절치부심한 브래디는 10년 만인 2015년 슈퍼볼 XLIX을 우승하면서 본인의 어린 시절 영웅 조 몬태나와 함께 슈퍼볼 4회 우승의 역대 슈퍼볼 최다 우승 쿼터백과 슈퍼볼 MVP 3회의 최다 수상 타이 기록에 도달했다. 그 뿐만 아니라 2017년 슈퍼볼 LI[18]에서 5회 우승을 함으로써 역대 슈퍼볼 최다 우승 선수이자 역대 슈퍼볼 최다 우승 쿼터백이라는 타이틀과, 역대 슈퍼볼 MVP 최다 수상 기록인 4번째 슈퍼볼 MVP를 수상하며 타이 수상 기록인 조 몬태나의 기록을 넘어섰고, 마침내 2019년 슈퍼볼 LIII에서 한 번 더 우승하여 슈퍼볼 통산 6회 우승이라는 역대 슈퍼볼 최다 우승 타이틀을 얻어내었다.

그것도 모자라 빌 벨리칙 밑의 시스테믹 쿼터백으로 감독빨 커리어라는 소리를 듣던 그가 2021년 현역 최고령이라는 부담 속에 20년 동안 뛰던 팀에서 내쳐지고 처음으로 FA가 되어 새로운 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로 이적해서 12년 간[19] 플레이오프 못 가본 팀을 이끌고,[20] 당해 시즌 최고의 쿼터백들을[21] 차례로 격파하며 팀을 사상 최초로 홈에서 열린[22] 슈퍼볼 LV에 진출시키며 우승 트로피를 선사하고 본인은 슈퍼볼 MVP까지 등극, 슈퍼볼 통산 7회 우승[23] 및 5번째 슈퍼볼 MVP라는 업적을 이력서에 추가하며 GOAT 논쟁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었다. 심지어는 전임 GOAT였던 조 몬태나도 브래디가 현 시대의 GOAT라고 인정했다.[24]

결국 브래디는 커리어 중반의 10년이라는(2005년~2015년) 긴 슬럼프를 이겨내며 역사상 최고의 선수에 등극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슬럼프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게 세 번째 슈퍼볼을 우승한 2005년부터 네 번째 슈퍼볼을 우승한 2015년 사이의 10년 동안 브래디는 본인이 부상으로 결장한 2008 시즌을 제외하고는 매년 패트리어츠를 AFC 동부 지구 우승을 시키며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고(리그 역사상 유일무이), NFL 최상급의 쿼터백으로 늘 군림하였다. 2007년과 2010년에는 정규 시즌 MVP와 올해의 공격수 상을 거머쥐었고, 2008년을 제외하고 매해 프로볼에[25] 선발되었으며 부상 후 돌아온 2009년에는 올해의 재기상, 더불어 비록 전승준을 했지만 2007년 시즌에는 정규 시즌 16전 전승 및 50 터치다운 패스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비록 일라이 매닝에게 패해 또 준우승하기는 했지만 두 번의 슈퍼볼을 진출한 것이다.

당장 현 시대 최고의 쿼터백이라고 평가받는 선수들 또한 10년 동안 슈퍼볼을 두 번 이상 진출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역대 최고의 쿼터백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애런 로저스는 2005년 데뷔 후 15년 이상의 커리어 중 딱 한 번의 슈퍼볼 진출 및 우승만이 이력서에 있을 뿐이며, 2004년에 데뷔한 벤 로슬리스버거도 슈퍼볼 MVP가 없는 건 물론, 세 번밖에 슈퍼볼에 올라오지 못했다.(슈퍼볼 전적: 2승 1패.) 2012년 데뷔한 러셀 윌슨도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늘 꾸준했지만 어마무시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한 팀 전성기 때 딱 두 번 슈퍼볼에 진출했으며 (슈퍼볼 전적: 1승 1패), 은퇴한 페이튼 매닝 역시 17년 간의 커리어 동안 딱 네 번 슈퍼볼에 진출했다.(슈퍼볼 전적: 2승 2패) 더 나아가 엘리트 쿼터백으로 여겨지는 필립 리버스는 17년의 커리어 동안 단 한 번의 슈퍼볼 진출도 이뤄내지 못했다.(다만 이 경우는 팀이 못한 게 컸다.)

즉, 소위 상대적으로 슬럼프라고 여겨지는 그 10여년 동안에도 남들이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업적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슈퍼볼 우승만이 없었을 뿐이다.

톰 브래디가 리빙 레전드로 평가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20여 년에 걸쳐 쌓아온 업적도 있지만, 2022-23년 시즌에 만 44세의 나이로 현역 최고령 NFL 선수가 되었음에도[26] 자신보다 20살 가까이 젊고 앞날이 창창한 쿼터백들에게 밀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압도하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팀으로 이적 후 첫 해만에 팀을 슈퍼볼 55 우승까지 이끌면서 슈퍼볼 MVP에 선정되었고, 그 다음 21-22년 시즌에는 심지어 직전 시즌보다 더 나은 정규 시즌 성적을 기록하며(NFL 전 쿼터백 중 패싱 야드 1위, 터치다운 패스 1위) 애런 로저스와 더불어 강력한 MVP 후보로 경쟁할 정도이다.[27] 이전에는 '물론 전성기에 비하면 노쇠한 몸이지만'이라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2007년 시즌 이후로 커리어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최근 두 시즌이기에 오히려 40대 중반인 지금이 브래디의 최전성기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있었다. 브래디의 안티 팬들조차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에이징 커브라는 것을 전혀 보이지 않는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여담으로 브래디의 우승 7번 중 뉴잉글랜드에서 차지한 6번은 모두 뉴잉글랜드의 감독 겸 단장 빌 벨리칙과 함께 이뤄냈으며, 벨리칙은 NFL 감독으로서 최다 우승을 차지하며 감독계의 GOAT 후보로 올라 있다.[28]

또 하나의 여담으로 톰 브래디슈퍼볼에서 두 번 상대해서 두 번 모두 승리를 거둔 일라이 매닝이 우스갯소리로 역대 최고의 선수로 언급되기도 한다.[29]


2.5. 모터스포츠[편집]



2.5.1. BTCC[편집]



앤드류 라우즈
(Andrew Rouse)

앤디 라우즈는 4개의 BTCC 타이틀,9번의 클래스 우승,60번의 레이스 우승 등 역대 최고의 BTCC 선수이다. 콜린 터킹턴과 함께 그 누구보다도 많은 타이틀을 획득했다. 레이스 우승은 제이슨 플라토(98회)와 매트 닐(63회) 보다 부족하지만 중요한점은 저 둘의 절반도 안되는 출전횟수로 쌓은 기록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승률을 보면 앤디 라우즈는 25.75% 이지만 제이슨 플라토는 16.30%,매트 닐은 9.09% 밖에 안된다.[30] 무엇보다 가장 많이 타이틀을 획득한건 앤디 라우즈이다.

기록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유산도 대단하다. 특히 앤디 라우즈는 슈퍼 투어링 시대로 넘어가는데 큰 영향을 미친 2리터 혁명때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5.2. DTM[편집]



베른트 슈나이더
(Bernd Schneider)

DTM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이서로 평가받는다. 챔피언 5회[31]와 레이스 우승 22회,포디엄 65회,폴포지션 13회,패스티스트 랩 31회 등 기록과 커리어면에서 부족함이 없고[32] "Mister DTM"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DTM의 역사와 함께한 전설이자 아이콘이다.


2.5.3. INDYCAR[편집]



앤서니 조셉 포이트 주니어
(Anthony Joseph Foyt Jr)

미국 모터스포츠 역사상 역대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한명이자 미국 오픈휠 자동차 경주의 GOAT라 불린다. 인디애나폴리스 500에서 4번 우승한 최초의 드라이버이자 35년 연속으로 출전한 유일한 드라이버이다.[33] 또한 시리즈 우승 7번[34]과 레이스 우승 67회로 역대 2위인 안드레티보다 15회나 더 많다.


2.5.4. NASCAR[편집]


NBC 선정 역대 최고의 NASCAR 선수. 은퇴할때까지 총 7번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했고 최초로 5번 연속으로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앞으로 그누구도 깨기 힘든 기록이다. 또한 올해의 드라이버상을 5번 수상했고 2009년에는 드라이버 최초로 AP통신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2.5.5. WRC[편집]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랠리 대회인 WRC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인 9회 연속 우승을 이룬 선수이다. 세바스티앙 로브는 최다 챔피언십 우승(9회),최다 이벤트 우승(80회),최다 스테이지 우승(931회),최다 포디엄(120회),역대 포인트 2위(1770),최고령 우승(47세) 등 각종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2년에는 X games에 출전해 랠리크로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세바스티앙 로브는 WRC의 GOAT 뿐만아니라 모터스포츠의 GOAT로 다른 모터스포츠 레전드들과[35] 주로 언급되는 선수이다.


2.5.6. 드래그 레이스[편집]



존 해럴드 포스
(John Harold Forcejs)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 드래그 레이스 대회인 NHRA 시리즈에서 16번이나 우승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래그 레이서이다. 16번 중 무려 10번은 연속 우승 이었다. 1978년 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기록이 현재도 늘고 있다. 존 포스의 우승 횟수는 역대 3위 기록 보다 2배는 많고 역대 2위 보다도 6회나 더 많다. 또한 드래그 레이서 최초로 올해의 드라이버로 선정,최초로 파이널 라운드 100승 달성,최초로 1000번째 라운드 승리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2.5.7. 르망 24시[편집]


르망 24시에서 9번을 우승해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중 무려 6번은 연속 우승이다. 이때문에 톰 크리스텐슨은 역사상 최고의 르망 24시간 선수로 평가받는다.


2.5.8. 슈퍼카 챔피언십[편집]



제이미 윙컵
(Jamie Whincup)

슈퍼카 챔피언십의 절대적인 슈퍼스타이자 아이콘이다. 7번이나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으며 그 누구도 닿기 힘든 위업을 세웠다. 최다 우승 기록과 최다 레이스 우승 기록을 둘다 가지고 있다. 그의 기록이 대단한 점은 526번의 경주 중 124번을 우승,포디엄 226번,폴포지션이 92번이나 된다는 점이다. 전성기가 지난 2021년에 은퇴할때도 그의 순위는 2위였다. 슈퍼카 챔피언십 역사에서 제이미 윙컵 만큼의 지배력을 보여준 선수는 없다.


2.6. 서핑[편집]



로버트 켈리 슬레이터
(Robert Kelly Slater)

켈리 슬레이터는 월드 서핑 리그(World Surf League)에서 11번 우승한 전무후무한 레전드 서퍼이다. 켈리는 최연소(20) 우승과 최고령(39) 우승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다. 또한 5연속 우승[36]과 총 55회로 최다 챔피언십 투어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고 그 외에도 파이프라인 마스터즈에서도 7회 우승했고 엑스게임에서도 두번 연속으로 우승했다. 한마디로 커리어에 부족함이 없고 심지어 압도적이다. 그나마 올림픽에 서핑이 시범 종목으로 채택 되어서 어느정도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메이저 대회에서의 그의 기록을 따라 잡을 수 있는 선수는 한동안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영향력에서는 현대의 수많은 서핑 기술을 만들고 서핑이라는 스포츠를 세계적인 스포츠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듀크 카하나모쿠가 제일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켈리는 인공 파도 기술의 개척자이고 서핑을 바다를 넘어서 확장하려고 시도하는 만큼 켈리의 영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넘사벽의 커리어와 현시대에 서핑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점에서 켈리가 GOAT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는 상황.


2.7. 스모[편집]


통산성적 254승10패 승률 96.2%의 스모 역사상 최강의 선수이다. 역대 최고의 스모 선수들을 모은 요코즈나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역대 스모 팬들이 인정하는 최강의 스모 선수.


2.8. 씨름[편집]


천하장사를 총 10번이나 지낸 역대 최고의 씨름 장사. 원래 한라급인 경량급 출신이라, 화려한 기술 씨름을 구사한 데다가 나중에 백두급으로 올라가면서 화려한 기술 씨름에 힘이 붙으면서 장기 집권을 했다. 초창기 프로 씨름을 국민 스포츠 자리까지 올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205cm의 거인 씨름선수 '인간 기중기' 이봉걸과 이만기의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비유되며 장안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더불어 라이벌인 이준희와 숙명의 결승 대결도 매번 치를 때마다 지금의 야구나 축구 더비 못지않은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2.9. 야구[편집]


투수타자로서 모두 최고의 활약을 펼친 천재이자, 야구에 끼친 영향력 면에서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업적을 세운 야구의 신. 홈런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데드볼 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60개 가까운 홈런을 치며 데드볼 시대를 끝내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라이브볼 시대를 연 인물이다. 그의 활약과 스타성은 야구라는 종목을 미국의 국기, 국가적 스포츠이자 당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만들었다. 또한 1901년에 창단되어 1918년까지 5번이나 우승했던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후 보스턴은 거짓말같이 무너졌고, 양키스는 27번이나 우승하면서 MLB를 넘어 전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명문 구단이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행크 애런, 배리 본즈 등에게 홈런 기록을 내주기도 했지만, 통산 장타율 .690, 단일 시즌 WAR 15, 타자로서 700+ 홈런과 투수로서 90+ 승을 모두 달성 등 아직도 범접 불가의 기록들이 남아 있다. 특히 일개 선수 1명으로서 웬만한 팀보다 홈런을 많이 치며 데드볼 시대를 끝낸 영향력은 어떤 선수와도 비교가 불가능하다. 한때 투수 부문에선 로저 클레멘스, 타자 부문에선 배리 본즈가 엄청난 기록을 쌓으며 아성을 넘봤으나, 모두 약물 복용이 드러나 몰락하며 베이브 루스의 가치는 더 올라가 현재는 가히 신성불가침 수준이다.

그 외 청정 선수 중에서도 루스가 은퇴한 뒤부터 21세기에 이르러 테드 윌리엄스, 스탠 뮤지얼,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프랭크 로빈슨, 톰 시버, 마이크 슈미트, 리키 헨더슨, 그렉 매덕스, 마이크 트라웃 등 훌륭한 선수들이 등장했으나 루스를 앞선다고 하긴 어렵다.

그리고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하는 투타겸업은 루스 이후로 전무했기 때문에 이제는 만화 속 이야기라고나 취급받는 중이다.


2.10. 크리켓[편집]



도널드 조지 브래드먼 경
(Sir Donald George Bradman)

테스트 크리켓에서 통산 타율 99.94점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선수.[37] 60점 언저리로만 쳐도 역대급 기록이고 2위 애덤 보게스의 기록도 61.87점인 것을 볼 때 그가 어느 정도의 괴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1이닝에 100점을 얻어야 하는 '센츄리'도 80이닝 동안 29차례 기록했는데, 그의 센츄리 기록을 능가한 선수는 10여명 있지만 그보다 빠른 페이스를 보여준 선수는 없었다. 또 다른 크리켓의 레전드 사친 텐둘카르도 29센츄리에 도달하는데 148이닝이 걸렸다. 국제 경기가 아닌 퍼스트 클래스에서의 타율도 압도적인 역대 1위였으며, 당시 호주 팀의 주장 빌 우드풀에 의하면 그는 타자로서 3인분의 몫을 지속적으로 득점했다고 한다.

통계학자 찰스 데이비스는 특정 종목에서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스포츠 선수가 브래드먼이라고 평가했다. 브래드먼의 타율은 4.4의 표준편차를 기록했는데 이는 펠레와 마이클 조던의 경기당 득점 표준편차를 능가한다고 밝혔다. (펠레 3.7, 조던 3.4) 다른 종목으로 비유를 한다면 야구에서 0.392의 타율을, 농구에서 경기당 평균 43점을 기록한 셈이라고 한다.


2.11. 팔씨름[편집]


기네스북이 공인한 역대 최고의 팔씨름 선수. 18세의 나이에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무려 50대가 된 최근까지도 세계 정상급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팔씨름 공식 세계 랭킹을 참고하면 1위 자리를 가장 오랫동안 지킨 선수임을 알 수 있으며, 그 기간만 무려 13년을 넘었다.


3. 마인드 스포츠[편집]


육체적인 운동 보다는 보드게임 등 지성을 주로 사용하여 겨루는 스포츠들이다.

3.1. 매직 더 개더링[편집]


쇼기계 최초 영세 7관왕이라는 역사에 새겨질 위업을 달성하였으며 쇼기선수중에 최초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하였다.


4. e스포츠[편집]


e스포츠의 경우 해당 종목 내 타 선수에 비해 커리어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우위를 점하는 선수가 GOAT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기성 스포츠 종목에 비해 게임사의 패치[38] 등의 요인으로 메타가 바뀌는 주기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메타나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선수들이 많고 불판이 여러번 갈리듯이 세대교체가 빠르다는 의미가 있다. 즉, 여기서 GOAT로 꼽힌다는 것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다양한 메타에서 더 우월한 기량을 지녔기 때문에 월등한 커리어를 누적했다는 의미다.

때문에, GOAT에 논란이 있어 꼽히지 않은 종목들은 역대 모든 커리어를 누적했을 때 커리어 비교 우위를 따지기 힘든 케이스가 대부분이며, 특히 한국에서 대회가 있었던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피파 온라인 시리즈는 당대 기준으로 최고의 선수가 굉장히 많다.


4.1. beatmania IIDX[편집]


역대 최고의 beatmania IIDX 플레이어이자 투덱 역사의 산증인, 그리고 대마왕. KAC의 전신인 탑랭커전 1회, KAC 투덱 3회 우승을 포함한 4회, BPL 1회 우승 등 커리어에서도 다른 선수들을 압도하며 온라인 기록 또한 전성기 시절에는 12레벨 전일기록 보유 수 또한 다른 플레이어들을 압도했다.

실버가 물러나고 첫 우승을 차지한 2008년부터 KAC 은퇴를 선언했던 2016년까지 8년간은 투덱의 왕좌를 거머쥐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 TANMEN, MADOKA 등 수많은 경쟁자가 대회를 떠났고 MIKAMO, WELLOW, KKM*, U*TAKA 등 새로운 신예가 등장했음에도 2021년까지 그 누구도 KAC 3회 우승조차 달성하지 못했다. 전성기에서 물러난 현재에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BPL 2021에 현역 복귀를 선언하고 32살의 나이에 소속 팀을 BPL 초대 우승팀으로 만드는데 크게 공헌하면서 아직도 죽지 않았음을 알렸다. 특히, 스크래치곡은 현 시대 최강자인 U*TAKA를 포함한 그 누구도 DOLCE.에게 단 1곡도 따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패배할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커리어를 넘어서 그가 리듬게임계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탑랭커전의 흥행은 현행 KAC 체제를 이끌었고, 2017년 코나미와 전속 프로게이머 계약을 맺고 최초의 리듬게임 프로게이머가 되면서 리듬게임의 프로화를 앞당겼으며, BPL에서도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면서 매 경기 흥행을 주도하고 BPL을 연착륙시키는데 공헌했다. 또한, 코나미 각종 행사에도 특별 게스트나 해설자, 우승 트로피 전달 등 수많은 역할로 불려가는 등 투덱의 상징을 넘어 BEMANI 시리즈 전체의 선수 대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현재 DOLCE.이후 투덱 부문 첫 3회 우승자이자 온라인 전일기록을 주도하고 있는 U*TAKA조차 커리어로는 정규대회가 없던 시절에 시작해서 전성기때 일찍 은퇴를 결심한 DOLCE.를 앞지를 수 있을 지 몰라도 DOLCE.의 굳건한 위상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는다.

DOLCE.로 종결되는 싱글과는 달리 더블에서는 GOAT가 많이 갈리는데, 공식 대회가 거의 없어서 커리어 비교가 안되는 점이 가장 크다. 더블에서 GOAT를 노릴 만한 인물로는 유일한 KAC 더블 우승자 VIENNA(=VELVET), 싱글의 DOLCE./더블의 EXIT로 불리면서 스코어링 최강자 자리를 오랜 시간 지켜온 EXIT, 출구의 뒤를 이어서 세대교체를 주도했던 MILLA, 혜성처럼 나타나서 불가능으로 여겨진 각종 스코어링 기록들을 몽땅 뚫어버리고 2022년 4월 기준 88.2%(443/502) 라는 말이 안 나오는 수준의 12레벨 전일 기록을 가진 SILLYB 정도가 현재 후보군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투덱 더블 GOAT의 선두주자로 인지도와 영향력 등 여러 면에서 EXIT가 꼽히긴 하지만 EXIT도 커리어 등 반박할만한 이유가 존재하는데다 싱글의 DOLCE.만큼 영향력에서 압도적인 것도 아니라서 여기 언급된 인물들도 GOAT에 충분히 도전장을 내밀 수 있으며, SILLYB처럼 갑작스럽게 제 3의 인물이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도 아직까지는 남아있다. 다만, 현재는 대부분의 더블 탑랭커들이 BPL로 인해 싱글로 옮겨가면서 더블은 GOAT 논의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4.2. NES 테트리스[편집]


클래식 테트리스 월드 챔피언십 4연속 우승과 총합 7회 우승, 2회 준우승이라는 역대급 기록을 가진 NES 테트리스계의 전설적인 플레이어.

2006년에 세계 최초로 NES 테트리스에서 맥스아웃(999,999점)을 기록하였고, 2008년에는 처음으로 레벨 19 스타트 맥스아웃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조나스의 라이벌로 해리 홍이 거론되기는 하나, 막상 해리 홍에게 단 한번의 챔피언 자리를 내주었을 뿐[39] 이후 2015~2017 CTWC에서 3년 연속으로 우승하면서 1인자 자리를 공고히 하였다.

안타깝게도 2021년 1월에 불과 39세의 나이에 심장질환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커리어를 넘어서 테트리스계에서의 영향력은 상당했기에 많은 플레이어들은 그를 추모하며 닌텐도 테트리스계의 GOAT라고 못박고 있다.


4.3.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편집]



니콜라스 "Pengu" 모리첸
(Niclas "Pengu" Mouritzen)



4.4. 리그 오브 레전드[편집]


페이커는 역대 최고의 리그 오브 레전드 미드 라이너이자 프로게이머이면서 종목을 막론한 세계 최고의 글로벌 e스포츠 스타임과 동시에, 여러 측면에서 봤을 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선수이자 LoL e스포츠를 넘어 e스포츠의 GOAT로도 정의되고 있다.[40]

커리어만 보더라도 e스포츠 종목 중 독보적인 세계 1위 규모를 가지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 현역과 은퇴한 프로게이머를 합쳐도 리그 오브 레전드 최고 대회인 롤드컵 우승을 그간 3번 달성했던 선수에는 페이커와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벵기가 전부이다. 또한 롤드컵 뿐만 아니라 다음 가는 국제 대회인 MSI 2회 우승을 합해 라이엇 주관 메이저 국제대회 최다 우승자(5회)이며, 지역 리그 우승(10회)조차도 페이커와 우승 횟수가 동일한 선수는 4대 메이저리그에서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41][42] 그리고 2022 LCK 스프링까지를 기준으로, 그의 커리어를 반으로 접더라도 월즈 우승 1.5회, MSI 우승 1회, 지역리그 우승 5회인데, 이렇게 해도 역대 미드라이너들 중 독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43][44][45]

페이커 본인은 자신의 타이틀이 향후 10년간은 깨지지 않을 것 같다고 언급하였고, 그의 커리어가 워낙 압도적이라서 많은 이들이 페이커의 커리어를 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으로써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 외에 각종 기록 및 압도적 위상과 리그 오브 레전드 내에서의 어마어마한 영향력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고, 실제로 2019 롤드컵에서는 라이엇 게임즈와 롤 E스포츠에서 그냥 GOAT로 공인하는 장면을 송출한 바 있다.

꾸준함과 관련하여서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고, 이에 따라 논쟁을 넘어 격론 수준의 갑론을박이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선수 커리어와 우승 경력을 쌓아나갔던 족적 역시 굉장한 편이며, 사실상 커리어와 꾸준함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입장과 더불어 리빙 레전드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LoL e스포츠가 많은 관심 속, 메타에 따른 변화 및 상향평준화가 지속되는 과정 속에서도 도태되지 않고 e스포츠에서 베테랑에 해당하는 나이까지 상위권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을 뿐더러[46], 그가 등장한 초기 시대에서 사실상 미드라는 포지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선수로 인정받는데다가, 그 등장 이래로 적지 않은 기간동안 연속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며 전성기를 유지했고, 이것이 상술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약 5년의 시기이며, 이때가 전성기 페이커의 꾸준함의 족적을 상징하는 해이자 아직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는 기록으로써 남아 있는 상황이다.[47]


4.5. 로켓 리그[편집]



피에르 "Turbopolsa" 실브파
(Pierre "Turbopolsa" Silfver)



4.6. 모탈 컴뱃 시리즈[편집]


모탈 컴뱃이나 인저스티스를 필두로 한 대전 액션 게임의 천재이자 최강자. 특히 모탈 컴뱃 X에서는 ESL 1,2,3 시즌 EVO 2015, 2016 우승자로. 모탈 컴뱃 X 프로 중 독보적인 존재이다. EVO에서도 여러차례 입상을 하여 EVO 상금 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4.7.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편집]


대전 액션 게임 분야에 있어서 전설 그 자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전액션게임 프로게이머로 20여년동안 각종 대회에서 수많은 우승을 차지했으며 그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막강하다. Capcom Cup 2017에서 선수들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했을 때 다이고는 Legend라는 칭호를 받았다.


4.8. 워크래프트3[편집]


역대 최고의 워크래프트 3 플레이어. 전성기의 포스는 압도적으로 외계인, 제5종족, 안드로장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동시기 다른 프로게이머들과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2020년에도 전성기만큼은 아니라도 최정상급 플레이어로 활동 중이다. 국내에서 워3가 묻힌 감이 있어서 실력에 비해 유명세는 낮지만, 워3가 엄청난 인기를 끈 중국에서는 정말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에 참여함으로써 그 인기를 증명했다. 워크래프트 대회에서 가장 많은 누적 상금을 탄 선수이기도 하다.


4.9. 철권 시리즈[편집]


전 세계 철권 프로게이머들 중 가장 압도적인 커리어와 꾸준함을 보유하고 있다. 무릎을 이긴 프로게이머들은 몇 명 있지만, 늘 우승권을 유지하는 그의 꾸준함은 독보적으로, 역대 최고의 철권 프로게이머로 인정받고 있다.


4.10. 카트라이더[편집]


역대 최고의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이자 다른 누군가가 위상을 깰 기미도 보이지 않는 영원한 카트 황제. 무려 15년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정규 리그 우승만 14회에[48][49][50] 달하고, 심지어 양대 리그 우승을[51] 무려 2회나 달성했다.

최초로 프로게이머 헌정 카트바디를 카트라이더 측에서 만들 정도이며, 15년 동안 정상으로 군림하고 있고 카트 개인리그 유일한 3-peat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52] 개인전은 2020년 시즌 1 우승을 마지막으로, 팀전에서는 2020년 시즌 2 우승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감독으로 전향하였다.[53][54] 벌어들인 돈도 김택환,형독과 더불어 3위권안에 든다.

감독으로 전향한 첫 해에도 소속팀 한화생명 e스포츠 선수인 유창현을 개인전 우승하는데에 도움을 줬고, 팀전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며 감독으로써 좋은 시작을 알렸다. 그뒤 2021년 수퍼컵에서 감독 커리어 첫 우승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15년동안 한 종목에서 황제로 군림했고, 적수를 찾지 못해 은퇴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애초에 한 종목에서 프로리그가 15년 이상 가는 게 힘들기에 타 종목과 비교하는 것이 힘들기에, 한 종목에서 정상에 군림한 기간이 가장 긴 프로게이머를 고르라면 당연히 문호준일것이다.

카트리그가 2005년에 시작해서 현재진행형인데, 그 중 문호준은 2005년과 휴식기인 2014년을 제외한 모든 해에 참여했기에 카트리그의 90%는 문호준과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선수시절 가장 큰 라이벌은 유영혁인데, 이마저도 커리어상으로 두 배, 그 중 개인전은 문호준이 다섯 배 많은 트로피를 보유하고 있다.[55] 유영혁도 물론 뛰어난 선수이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사실상 유영혁도 만들어진 라이벌일 뿐이며 실제로는 라이벌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4.11. 퀘이크 시리즈[편집]


가장 유명한 퀘이커이자 FPS 역사상 최고로도 거론되는 선수. 본격적으로 스타 프로게이머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선수이기도 하다.


4.12. 팝픈뮤직[편집]


팝픈뮤직을 넘어 리듬게임 전체를 통틀어서도 단일 게임 기준 가장 높은 위상을 가진, 말 그대로 팝픈뮤직 시리즈 최고의 플레이어. 리듬게임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회인 KAC에서 팝픈뮤직 부문으로 초대 대회부터 가장 최근의 The 10th KAC까지 단 한차례도 우승을 놓치지 않고 무려 10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중간에 한번 생겼던 오쟈마 부문까지 우승하면서 V11을 달성하고 대회 우승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출전자 다섯명이 고른 곡중 4곡에서 1위를 차지하던 첫 KAC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무기곡이 될만한 곡도 잘 준비해오고, 대회가 벌어지는 곳에서 처음 공개되는 히든곡에서도 1위를 놓치더라도 1위와 크게 점수가 차이나지 않을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경이로운 처리력[56]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코나미에서 준비하는 신곡인 과제곡에도 크게 발목잡히지 않아서 여전히 우승컵을 들고 있다. [57] 당연히, KAC 역대 최다 우승자이기도 하다.

TATSU가 10연속 우승을 거머쥐는 동안 KAC 타 종목에서는 단일 종목 5회는 커녕 통합 5회 우승조차 단 하나에 불과하고[58], 단일 종목 3연승조차 9회차에서 유비트 부문, 그것도 팀전에서야 처음 등장했을 정도로 팝픈뮤직에서 그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그나마 해당 게임 위상으로 TATSU와 견줄 만했던 펌프/DDR 시리즈의 FEFEMZ*마저 군 복무로 인해 커리어가 잠시 끊겼고[59], 영원할 것 같았던 IIDX의 대마왕 DOLCE.조차 U*TAKA에게 사실상 세대교체가 된 상태인걸 감안하면 10년째 세대교체를 전혀 허락하지 않는 TATSU는 현 시점에선 비교 대상조차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지금 은퇴한다 하더라도 전혀 이견없이 팝픈뮤직의 역대 최강자로 지지받을 수 있을 정도. 당장에 첫 대회인 2011년부터 10회 대회인 2022년까지 12년 동안 TATSU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데에 성공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이외에도 10th KAC 이전까지는 팝픈뮤직은 KAC에서 유일하게 남/여 부문을 나눠서 시상했기 때문에 여성 팝픈 게이머도 GOAT 논의를 할 수 있을만큼 기록이 쌓였는데, 여성 선수로써 프리 부문에서 결선까지 진출하고[60] KAC 여성부 대회에서는 유일하게 전 대회 결승에 진출하고 그 중에 4회를 우승한 8322가 가장 먼저 여성부 GOAT로 꼽힌다.[61]


4.13.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편집]


현재는 히오스 공식리그 폐지로 인해 리그 오브 레전드로 종목을 전향하였지만 같은 젠지 이스포츠의 롤팀에서 데뷔하여 [62], 히오스 내에서의 명성은 히오스계의 페이커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 최고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프로게이머로 평가받았으며, HGC 폐지 전까지 2연속 글로벌 파이널 우승, HGC 글로벌 파이널 3회 우승, 국내 리그 쓰리핏, 2018년 시즌 통합 우승 등의 업적에 빛나는, 이제는 사라진 히오스 e스포츠계의 전설이었다.

여담으로 리치 이재원이 롤 프로리그에 뛰게 되면서, 그의 별명 중 하나는 '이세계 페이커'가 되었다. 그만큼 히오스에서의 리치의 위상이 높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별명.

5. 고대 스포츠[편집]


현대에는 시행되지 않고 고대에 활발하게 행해졌던 스포츠들이다.

5.1. 팡크라티온[편집]


문헌 상 1425승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당시 복싱과 팡크라티온 경기는 대부분 한 선수가 죽을 때까지 경기를 진행시켰는데, 경기 중 기권을 하면 사회적으로 온갖 비난을 받으며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기권승이나 기권패가 나왔을 확률이 낮다. 즉, 그의 상대방 대부분이 맞아 죽었다는 말이 된다.

약 천년 간 293회 열린 고대 올림피아에서 전설로 기록된 그는 복싱과 팡크라티온이라는 격투 종목에서 동시에 우승한 유일무이한 격투가였다. 커리어로 보면 올림피아 복싱 2연패,[63] 올림피아 팡크라티온 2연패,[64] 피디아 복싱 3연패,[65] 이스트미아 복싱 9연패,[66] 그리고 네메아 복싱 경기에서 9연패를 차지했다.[67] 복싱에서의 활약상이 더 눈에 띄는 느낌은 있지만 팡크라티온 역사상 최강의 선수로도 볼 수 있다.


6. 미정[편집]



6.1. 배틀그라운드[편집]


어느 한 선수는 커녕 한 팀, 한 리그조차 장시간 원탑을 차지하지 못하는 춘추전국시대가 오래 지속되면서 GOAT를 선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심지어, 변수가 많아서 한 명의 슈퍼플레이어가 전황을 뒤집는 것도 가능하고 팀 커리어 만큼이나 개인 커리어와 임팩트도 그만큼 영향을 많이 미치다 보니 더더욱 선정이 어렵다.

일단 국제대회 커리어는 2021 PGC까지도 2회 우승자가 Loki 박정영 단 한사람 뿐이고 개인 스탯이나 임팩트도 전성기 기준으로 상당히 훌륭했기에 국제대회 커리어를 중심으로 두면 로키가 GOAT의 선두주자다. 그런데, PUBG 팬들 중에서 "로키가 배틀그라운드의 GOAT다" 라고 하면 글쎄라는 대답이 나오기 일쑤다. 팬덤도 상대적으로 약하고[68] 2018 PGC에서 로키와 Gen.G GOLD가 우승한 건 현재 종목인 FPP가 아니라 TPP였다는 점도 있으며, 국제대회 바로 아래 권역별 대회에선 두각을 나타낸적이 별로 없다. 로키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GOAT로 내세울만한 선수로는 Pio 차승훈이 꼽혔는데, 젠지의 전성기를 이끌면서 국제대회 우승 1회 3위 1회와 지역, 권역, 국제대회를 가리지 않고 보여주는 뛰어난 퍼포먼스로 MVP를 포함한 개인 커리어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GOAT의 지지세도 강력한 팬덤을 등에 업고있기에 높은 편. 하지만 커리어 자체가 경쟁자들보다 앞서있다고 보기 어렵고, 대리라는 치명적인 주홍글씨가 있다보니 반대도 많으며, 결정적으로 커리어를 더 쌓기 전에 은퇴를 결정하면서 GOAT 경쟁에선 탈락했다.

해외로 가도 만만치 않다. 2018 FPP의 OMG 멤버들은 거의 사라졌다 쳐도 PGI.S Soniqs의 TGLTN, PGC 2021 NewHappy의 MMing은 국제대회 우승 커리어와 개인 기록도 피오에 전혀 밀리지 않고, MMing은 PGC 2021에서 처음 생긴 국제대회 MVP마저 가져가면서 개인 커리어는 더 앞선다. 권역별 대회 커리어도 TGLTN의 Soniqs가 Gen.G 못지 않게 화려하다. 다만, MMing은 커리어가 전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경기했기에 특혜 및 진위에 의심을 받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TGLTN은 국제대회에서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한 적 있는 등 기복이 심하다.

따라서, 2021년까지는 팀 커리어로는 Loki, 개인 커리어를 포함하면 MMing이 GOAT에서 약간 앞서있다고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PGC 2회 + 개인 커리어 수상 + 권역대회 활약이 압도적인 선수가 나오거나 PGC 3회 우승자가 나와야만 GOAT 논의라도 가능하며 이 정도 커리어로도 확고한 GOAT라기엔 경쟁자가 많아서 후보군에야 포함될 수준이라 아직까지는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6.2. 무에타이[편집]



"사마트 파야카룬" 사마트 팁타르마이
("Samart Payakaroon" Samart Tiptarmai)

디젤노이 코어 타나수카른
(Dieselnoi Chor Thanasukarn)


두 선수 다 무에타이 역대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선수들이다. 사마트는 화려한 기술들로 총전적 463승 12패 159KO에 룸피니 4체급을 석권한 선수이며 디젤노이는 경량급에서 190cm에 가까운 키로 총전적 154전 154승 무패를 보여주고 샤마트를 이기고 룸피니 5체급을 석권한 압도적인 선수였다.

샤마트는 무에타이외에도 프로 복싱에도 진출하여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을 석권하기도 했으며, 종합격투기 선수인 맥스 할로웨이의 타격 지도도 한 적 있으며 무에타이의 신이라는 말이 있을만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킬을 갖추고 있었다.

디젤노이는 188cm, 62kg이라는 어이없는 피지컬로 니킥 하나만으로 무패전적을 쌓으며 워낙 압도적인 전적으로 상대에게 돈을 거는 사람이 없어(...) 강제로 은퇴된 무에타이의 레전드이다.

이 외에도 남삭노이, 쌈코, 센차이, 쁘아까오등도 무에타이의 고트로 거론되기는 하는 편이다.


6.3. 스쿼시[편집]


파일:자한기르칸vs얀셰르칸.jpg
자한기르 칸
(Jahangir Khan)

얀셰르 칸
(Jansher Khan)

자한기르 칸과 얀셰르 칸은 시대가 약간 다르지만 같은 시기에 경쟁한적이 있다. 두 선수 모두 불멸의 기록을 남긴 선수들 이다. 자한기르는 1981년에 17살의 나이로 결승전에서 당대 최고였던 호주의 제프 헌트를 꺾고 최연소로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 하였는데 이후 5년 8개월 동안 500경기 넘게 무패였다.[69] 자한기르의 이 기록은 다른 종목의 스포츠 선수와도 비교할 수 없다. 얀셰르는 1988년 1월 부터 1998년 1월 까지 무려 10년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한 만큼 자한기르 못지않다. 자한기르는 얀세르를 1986년 말과 1987년 초의 몇 번의 경기에서 계속 승리하였다. 하지만 얀세르는 1987년 9월 홍콩 오픈 준결승에서 자한기르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 후 얀셰르는 계속하여 자한기르를 맞아 연속으로 8번을 이겼고 1987년 세게선수권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둘의 라이벌리는 시작하였다. 자한기르는 1988년 3월 얀셰르을 다시 한번 이기고 그후 얀셰르와의 15번의 대결에서 11번 승리하였다. 이 둘은 1988년 세계선수권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고 자한기르가 승리하였다. 이때부터 당시 스쿼시는 이 두명이서 지배하였다.

두 선수의 메이저 대회 기록을 비교하면 이러하다.

자한기르 칸

얀셰르 칸

세계선수권
우승 6회
준우승 3회
우승 8회
준우승 1회
브리티시 오픈
우승 10회[70]
준우승 1회
우승 6회
준우승 3회
홍콩 오픈
-
우승 8회[71]
준우승 1회
챔피언스 토너먼트
우승 2회
준우승 2회
우승 3회
US 오픈
우승 2회
우승 2회
준우승 1회
PSA 월드 투어 파이널[72]
-
우승 4회
파키스탄 오픈[73]
우승 10회[74]
준우승 3회
우승 5회
준우승 3회

권위가 가장 높은 대회인 세계선수권과 브리티시 오픈 같은 경우 세계선수권은 얀셰르가,브리티시 오픈은 자한기르가 우세이다. 다른 대회 같은 경우 파키스탄 오픈을 제외하면 모두 얀세르가 우위이다. 왜냐하면 자한기르는 1993년에 은퇴한 반면 얀셰르는 1986년에 데뷔하여 2018년에 은퇴 할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자한기르의 말년 시기부터 열린 대회들이기 때문에 비교적 얀셰르가 유리했다. 전반적으로는 자한기르가 부족해 보이지만 월드오픈 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된 브리티시 오픈에서 무려 10년 연속 으로 우승한것은 얀셰르 조차 그만한 임팩트는 보여주지 못했다. 세계선수권은 크게 차이나지 않고 브리티시 오픈은 자한기르가 우위인 점이다. 상대전적은 37전 중 얀셰르가 19승으로 우세이다.

여담으로 이 두명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 하다고 하는 선수가 한명 더 있기는 하다. 바로 앞에서 말한 자한기르에게 진 제프 헌트 이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 4회.준우승 1회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 8회,준우승 2회에다가 프로 토너먼트 대회에서 178회 우승 하였다. 타이틀로 보면 뒤지지 않을 수준 인거다. 하지만 자한기르와 얀세르의 시대는 제프 헌트의 시대 보다 메이저 대회도 늘었고 종목의 규모도 커졌다. 세부적으로 가면 확실히 자한기르와 얀셰른이 우위이고 저 둘이 보여준 라이벌리가 가지는 임팩트와 상징성 등을 감안했을때 제프 헌트는 저 두명에게 밀린다. 두명의 퍼포먼스가 워낙 괴랄했기에 아래로 평가 받는 것이다. 그래도 두명 이전의 최고의 선수이자 저 두명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의 선수 인점에는 이견이 없다. 자한기르는 미국식 변형인 하드볼 스쿼시[75]에서도 1983년부터 1986년까지 하드볼 스쿼시 선수로도 활동했다. 그러면서 자한기르는 메이저 수준의 하드볼 스쿼시 대회에서 12번 우승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자한기르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최고 스쿼시 선수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드볼 스쿼시의 GOAT는 샤리프 칸(Sharif Khan)이라는 선수로 가장 수준과 권위가 높은 대회인 북미 오픈에서 우승 12회,준우승 3회라는 기록을 가지고있다. 두명 모두 파키스탄 선수 인것에서 알수 있듯이 파키스탄은 스쿼시 강대국이다. 실제로 다른 레전드 스쿼시 선수도 파키스탄 선수가 많다. 그리고 저 두명이 활동하던 특히 같이 활동하던 시기는 파키스탄이 스쿼시를 완전히 재패했다.[76]


6.4. F1[편집]


다른 모터스포츠와는 달리, 최고의 모터스포츠로 꼽히는 F1의 GOAT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갈린다. 70년 이상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 팀당 2명씩, 총 20명에게만 주어지는 드라이버의 숫자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시대별로 굵직한 개성의 선수가 항상 존재했음은 물론이거니와, 드라이버 이외에도 시대에 따라 급격히 올라간 차량의 성능과 컨스트럭터의 역량, 시대별로 달라진 규정이라는 큰 변수가 존재하는 점도 "F1 최고의 선수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단 한 명으로 떠올리기 어렵게 만든다. 비록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나, 역사상 최고의 F1 선수로 꼽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월드 챔피언 7회, 통산 91승. 2000년대 이후로 F1을 보게 된 사람들에게 가장 강한 드라이버를 꼽으라면 대부분 슈마허를 꼽을 수 있을 정도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연속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 슈마허의 퍼포먼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2002년의 전 경기 포디엄은 아직까지 어느 드라이버도 다다르지 못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오죽하면 이 인물 때문에 F1이 재미없어진다는 소리를 듣거나, 슈마허의 은퇴 이후로 F1의 인기가 휘청거렸을 정도. 또한, 단순히 한 개인으로서 성공적이었을 뿐 아니라, 순위권에 들기 위해 애를 쓰던 페라리를 최고의 팀으로 만들 정도의 리더십과 팀 메이킹 능력을 갖추기도 하였다.

월드 챔피언 7회, (현재 기준) 통산 103승. 월드 챔피언 횟수로는 슈마허와 동급이지만, 그 이외의 기록으로 따지면 루이스 해밀턴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드라이버로 꼽힌다. 비록 강팀에서 출발하기는 하였으나, 커리어 초반 9연속 포디움 피니쉬를 기록하는 등의 임팩트를 남겼고, 이후 굴곡은 있었지만 메르세데스에 입단한 이후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2010년대의 F1을 해밀턴의 시대로 기억되도록 만들었다. 다만, 이러한 퍼포먼스가 저평가받는 까닭은, 해밀턴이 자신의 전성기 커리어 내내 F1을 씹어먹은 메르세데스의 강력한 머신 빨을 받았다는 평가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리스트에 오른 인물 중 아직까지 유일한 현역이므로, 메르세데스와 계약된 2023년까지의 활약, 그리고 혹시 모를 그 이후의 퍼포먼스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해밀턴과 슈마허의 연차별 포인트]
출전
루이스 해밀턴
미하엘 슈마허
1년차
해밀턴 17레이스 267포인트 (2위)
슈마허 6레이스 26포인트 (13위)
2년차
해밀턴 18레이스 244포인트 (1위)
슈마허 16레이스 183포인트 (2위)
3년차
해밀턴 17레이스 123포인트 (6위)
슈마허 16레이스 165포인트 (4위)
4년차
해밀턴 19레이스 244포인트 (4위)
슈마허 14레이스 243포인트 (2위)
5년차
해밀턴 19레이스 230포인트 (5위)
슈마허 17레이스 276포인트 (1위)
6년차
해밀턴 20레이스 190포인트 (4위)
슈마허 15레이스 175포인트 (3위)
7년차
해밀턴 19레이스 190포인트 (4위)
슈마허 17레이스 231 0포인트[1]
8년차
해밀턴 19레이스 366포인트 (1위)
슈마허 16레이스 246포인트 (2위)
9년차
해밀턴 19레이스 389포인트 (1위)
슈마허 9레이스 138포인트 (6위)
10년차
해밀턴 21레이스 383포인트 (2위)
슈마허 17레이스 288포인트 (1위)
11년차
해밀턴 20레이스 370포인트 (1위)
슈마허 17레이스 330포인트 (1위)
12년차
해밀턴 21레이스 411포인트 (1위)
슈마허 17레이스 387포인트 (1위)
13년차
해밀턴 21레이스 413포인트 (1위)
슈마허 16레이스 241포인트 (1위)
14년차
해밀턴 16레이스 347포인트 (1위)
슈마허 18레이스 375포인트 (1위)
15년차
해밀턴 23레이스 387.5포인트 (2위)
슈마허 19레이스 156포인트 (3위)
16년차

슈마허 18레이스 303포인트 (2위)
17년차

슈마허 19레이스 72포인트 (9위)
18년차

슈마허 19레이스 76포인트 (8위)
19년차

슈마허 20레이스 50포인트 (13위)
총합
289레이스 4554.5포인트 (1위)
306레이스 3730포인트 (2위)[2]

현 시대 점수 규정인 2019시즌부터 시행된 룰을 적용해 연차별 포인트로 환산해 비교해 보면, 루키 때부터 최고의 머신을 장착한 해밀턴은 2년차부터 정상을 찍은 반면, 슈마허는 5년차 되어서야 정상을 찍었다. 그러나 해밀턴이 정상을 찍고 난 뒤, 3~7년차까지 버벅인 반면, 슈마허는 적어도 3~6년차에는 확실히 해밀턴의 3~6년차보다 더 좋은 시즌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최전성기 시절엔 두 드라이버 모두 비슷했다고 볼 수 있지만, 해밀턴이 조금 더 빨리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7년차에 해밀턴의 메르세데스 이적이 이뤄지면서 규정 막바지였던 2013년을 1년 동안 버리다시피 했지만, 메르세데스 2년차에 접어들었던 2014년 터보-하이브리드 규정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던 메르세데스의 차량 덕분에 10년차인 2016년, 15년차인 2021년을 제외하고 챔피언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반면 슈마허는 부상에서 쾌유한 10년차에 비로소 전성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전성기 기간에서도 슈마허는 10~14년차 5년인 반면에, 해밀턴은 8년차부터 지금까지 8년이나 이어지고 있다.
물론, 한 시즌만 보면 슈마허의 12년차가 해밀턴의 모든 시즌을 압도한 건 사실이다. 지금 시대로 보자면 슈마허는 레이스당 22.8 포인트를 기록하는데, 해밀턴은 레이스당 22포인트를 기록한 적이 없다. 15년차인 2021 시즌도 레이스당 16.8포인트로 완료해야 했다. 한편으로 2005년 규정 변경으로 성적에 타격을 입기 전 페라리에서 2000-2004년까지 5회 연속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 슈마허는 퍼스트 드라이버로 확고한 입지를 가졌던 반면, 해밀턴은 2014년부터 2021년까지 8년 연속으로 컨스트럭터 챔피언에 등극한 메르세데스의 차를 타면서 팀메이트 니코 로즈버그와 경쟁하다가 2016년 월드 챔피언을 놓쳤다. 이후 해밀턴은 2017 시즌부터 발테리 보타스와 함께하며 팀메이트 간 경쟁 없이 우승을 가져가다가 2021년 시즌 에이징 커브와 코로나19 후유증 등의 여파로 막스 베르스타펜에게 월드 챔피언의 자리를 내줘야 했다. 2022년에는 규정이 다시 대폭 변화했으므로 메르세데스가 어떤 차를 개발하느냐에 따라 규정 변경 시기를 딛고 재기할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보자면 초반에는 해밀턴이 앞서갔다. 실제로 첫 10레이스까지 지금 시대의 룰로 보자면 170-86 으로 거의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그러나 슈마허는 78번째 레이스까지 970포인트로 해밀턴을 6포인트 차이로 추월한 이후, 246번째 레이스까지 슈마허가 리드를 했지만, 247번째 레이스부터 해밀턴이 추월한 이후 격차를 벌이고 있다. 메르세데스 6년차[77]부터는 해밀턴이 완벽하게 리드를 한 상황.

월드 챔피언 3회, 통산 41승, 역대 최다 모나코 그랑프리 우승자(6승), 역대 최대 연속 폴 포지션(8연속).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의 F1은 알랭 프로스트, 나이젤 만셀, 넬슨 피케 등 쟁쟁한 드라이버들이 경쟁하던 시대이지만, 그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바로 아일톤 세나이다. 특히, 그가 현재까지도 드라이버들 사이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고, 조국인 브라질에서는 펠레와 존경의 격을 겨룰 수 있을 정도의 존재라는 것은, 그가 짧은 생애 동안 보여주었던 강렬한 퍼포먼스와 더불어, 그가 가지고 있던 프로의식과 서킷 밖에서의 모범적인 삶, 그리고 어려운 조국을 향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모습까지 합쳐져, 그 어떤 선수보다도 많은 공헌과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F1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여러 요소를 계산해 보았을 때 미하엘 슈마허를 제치고 역사상 가장 빠른 드라이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

월드 챔피언 5회, 통산 24승. 50년대가 지금과는 달리 그랑프리의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 24승은 51회의 그랑프리에서 거둔 기록이어서, 비율로 따지면 46%에 해당하는 경이적인 기록이며, 이는 한 시즌 그랑프리의 횟수가 크게 늘어난 현재는 더 이상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가장 기록적으로도 좋은 루이스 해밀턴조차도 비율 넘버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깨기 어려운 드라이버가 된다. 현재 해밀턴이 2019 시즌 룰로 그랑프리당 포인트는 15.784 지만, 후안 마누엘 판지오는 16.23이며, 그랑프리당 포디움 횟수는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51회중 39회로 0.692인 반면, 해밀턴은 270회중 169회로 0.626인 상황. 해밀턴이 이 기록을 넘기려면 올해 포함해서 2023년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포디움을 기록해야 이 기록을 넘게 된다. 아울러 앞서 나온 승률 또한, 해밀턴이 추월하려면 55레이스 연속 1위를 해야지 비로소 넘는다. 이는 지금의 F1 일정이나 경쟁 선수들의 수준을 살펴보면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초기 F1에서 처음으로 압도적인 선수로서 그가 자리매김한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80년대 이전 F1의 슈퍼스타로는 60년대의 짐 클락, 70년대의 재키 스튜어트니키 라우다가 있겠지만, 기록 면에서 판지오만큼의 임팩트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



6.5. 스타크래프트[편집]


대체로 임이최 라인 중에서 임요환을 최고로 많이 뽑지만, 그 이후 이영호 중에서 누가 최고인 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많이 갈린다. 임이최 라인에서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된 마재윤이 있듯, 스타크래프트의 GOAT 평가에는 영향력과 게임 외적인 측면도 고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임요환이영호 중 어느 쪽이 더 위라는 것도 의견이 많이 갈린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경우 커리어를 논할 때에, 시기에 따른 대회의 갯수나 위상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동시대 선수를 놓고 비교하는 경우는 몰라도, 역대를 비교하는 경우에는 시각차이가 많이 나기도 한다.

대략적인 정리를 해보자면, 게임의 외적인 영향력을 모두 포함한다면, 게임 내적 커리어는 확실하게 밀리지만 임요환이 후보가 될 수 있으며, 프로씬 토탈 역대 개인리그 커리어 1위인 이윤열과 개인리그 우승 횟수가 똑같으며 팀단위 리그 커리어가 더 높고 국제대회 커리어와 프로씬 종료 이후까지 게임 내적으로 GOAT에 가장 가까운 역대 최강의 선수인 이영호가 존재하며, 경기 내적 패러다임에 끼친 영향력과 더불어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연성도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저 중에 실력적으로 GOAT에 가장 가까운 선수는 이영호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군입대 후 생긴 논란 중 코인 관련으로 생긴 논란으로 많은 스타 팬들의 지지를 잃은 편이다. 그와 별개로 스타리그, MSL와 같은 개인 리그는 물론이고 프로리그 우승, 국제대회 성적, 은퇴 이후 돌아온 ASL과 같은 스타리그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모습과 성적을 거두며, 커리어 타이틀, 실력에서 독보적이고 압도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6.6. 스타크래프트 2[편집]


스타크래프트 2는 오랫동안 어느 선수를 확실하게 GOAT로 논할 수 있을지 의견이 통합되지 않았다. 한국인 선수들이 오랫동안 강세를 보이긴 했지만, 1티어 대회(GSL, WCS, WCS 글로벌 파이널, IEM 카토비체 등)만 따져도 한 선수의 독점 없이 언제 어느 선수가 우승할 지 모르는 복마전 양상을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에 걸친 시즌, 즉 당대의 최고 선수를 뽑는 데에도 생각보다 의견이 많이 엇갈렸다.

그나마 2018년에 모든 대회를 우승하며 그랜드 슬램을 이루었고 평균 성적이 꾸준하게 중간 이상을 기록하는 세랄[78][79]이 GOAT에 가장 가깝다는 의견이 2022년부터 한국과 해외 양 쪽 모두에서 나오고 있다. 세랄이 2022 IEM 카토비체를 우승하면서 그의 GOAT론이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 하지만 세랄은 뒤에 언급할 선수들에 비해서 프로리그가 있던 자유의 날개, 군단의 심장 시절의 커리어가 없다는 점때문에 GOAT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프로리그가 한창이던 시절에 비하면 현재 선수들의 경기력이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고 개념과 이해도는 높아졌더라도 기본적인 피지컬과 경쟁력이 프로리그 해체 이후 많이 부족해졌기 때문에 2017년 부터의 커리어는 이전의 커리어와 비교했을 때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어렵다.

이병렬은 커리어 상으로는 역대 최강자 중 한명이므로[80] 한 때 사상 최고라는 타이틀에 가장 가까운 선수였다. 하지만 대회마다 성적의 기복이 지나치게 심했고(대회 우승 직후의 시즌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거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편차가 심한 때가 있었다거나 하는 등) 세랄이 IEM 카토비체 2022를 우승하면서 상금 랭킹 및 누적 상금 액수 측면에서 밀리게 되었기 때문에 그 역시 명확하게 GOAT로 꼽히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커리어만으로는 현재까지 스타2 사상 최고를 자랑하는 선수 중 한명이기 때문에 앞으로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낸다면 GOAT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선수이다.

조성주는 2018년의 GSL 3개 시즌을 석권하고 이듬해 시즌 1까지 거머쥐며 4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나, 세랄에 비하면 대회 성적에 부침이 심하고 한 해의 결산 대회에서 매 번 성적을 못 냈기에 상대적으로 평가가 밀리고 있다. 결정적으로 앞서 말한 이병렬이 한국 선수 중에서는 GOAT로서의 조건에 더 가까우며, 2022년 시점부터는 세랄과 이병렬 두 선수 모두에게 뒤처지고 있다. 이병렬에게는 커리어와 상금 랭킹 모두 상당히 밀리고 있으며(GSL 우승 횟수도 4회로 동일하다) 세랄과 비교하면 누적 상금의 격차와 결산 대회 우승의 유무가 큰 차이로 작용하기 때문. 역대 최고 및 현존 최고의 테란이라는 평가로는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GOAT 경쟁에서는 많이 밀려났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는 세랄과 이병렬이 GOAT 경쟁을 하고 있지만 일단 블리자드와 ESL의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2023년까지의 결과로 GOAT가 결정될 예정. 현재 두 저그 선수가 GOAT 후보로 오른 구도인데 빠르면 2022~2023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결론이 나온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병렬의 군입대로 이병렬이 더 이상 커리어를 추가하기 어려워졌고 따라서 프로리그 해체 이후의 커리어와 이전의 커리어를 동일 선상에 둔다면 세랄, 이전의 커리어를 더 높게 친다면 조성주가 GOAT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로리그 시절의 경기력과 피지컬이 훨씬 수준 높았기 때문에 어윤수, 김유진, 이신형 등도 GOAT 후보로 거론되고 무엇보다 GOAT라 함은 논쟁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누구나 인정할 사람을 GOAT라 하기 때문에 스타2 종목의 GOAT는 세랄이 2022~2023 시즌의 남은 대회들에서 모두 우승하지 않는 이상 GOAT는 없을 것으로 보이고, 스타2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히기 전까지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6.7. 오버워치 시리즈[편집]


오버워치는 오버워치 리그 출범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의 단절로 인해 커리어를 정량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GOAT 선정이 어렵다. 오버워치 리그 이전 GOAT 후보였던 류제홍이나 이펙트, 타이무, 준바처럼 과거에는 압도적이었지만 리그 출범 이후로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 은퇴한 경우도 많고, 카르페처럼 개인 실력은 압도적이지만 5년 넘게 우승이 없는 무관이라 GOAT 선정이 애매한 경우도 있고, 학살처럼 특정 영웅에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포지션상으로는 최고라고 단정짓기 애매한 경우 등이 있다. 현재로서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은 플레타[81]나 카르페[82] 정도.


6.8. 종합격투기[편집]


왼쪽부터 UFC 플라이급, 웰터급, 미들급, 라이트헤비급의 각 최강자인 드미트리우스 존슨,[83] 조르주 생 피에르,[84] 앤더슨 실바[85]존 존스[86]이다.

누가 종합격투기 GOAT인지에 대해서는 현재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각자 기준이 달라 정답이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2020년 6월경 선수가 남긴 업적에 따라 점수를 부여해 본 'MMA GOAT Rankings by the Numbers'에서 조르주 생 피에르드미트리우스 존슨이 공동 1위를 차지한 것을 참고해 볼 수 있다.출처 다만 해당 기사에서는 약물이 적발된 경우 6점을 감점했기 때문에, 만일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존 존스가 1위를 차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존 존스앤더슨 실바는 약물이 두 번 내지 세 번이나 적발되었기 때문에, GOAT가 될 수 없다는 다수의 견해도 있다. 예를 들어 UFC 헤비급 최강자들 중 한 명이자 두 체급(라이트헤비급,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다니엘 코미어MLB배리 본즈의 예를 들며, "무엇보다도 이 점만큼은 명확히 해야 한다.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에 걸린 적이 있다면 그 사람은 탈락이다. (격투기뿐 아니라) 많은 스포츠가 그렇게 하고 있다.", "실바와 존스는 뽑고 싶지 않다. (파이터로서) 둘 재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걔네는 도핑 테스트에서 미끄러졌다. 그러면 GOAT 테스트서도 탈락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출처 다만 두 선수의 기량과 업적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두 선수를 GOAT 후보에 포함시키는 견해도 다수 있는데, 예를 들어 UFC의 사장인 데이나 화이트존 존스를 GOAT로 언급하였고,출처 조르주 생 피에르를 2위로 두고 존 존스를 GOAT 1위로 보는 견해도 찾아볼 수 있다.출처[87]

위 기사에서 다니엘 코미어는 자신과 드미트리우스 존슨, 조르주 생 피에르하빕 누르마고메도프를 GOAT 명단으로 언급하였다. 하빕 누르마고메도프도 강렬한 임팩트 때문에 GOAT 후보에 포함시키는 몇몇 견해들이 있으나, 다른 후보들에 비해 타이틀 방어 성공이 3회로 매우 부족하고, 여러 번의 감량 실패 및 계체 이슈에도 불구하고 라이트급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간 점과 부상이 잦았다는 점 등 때문에 GOAT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견해가 많다. 거기에 코미어와 하빕은 같은 aka 사단 선수면서 절친한 사이기 때문에 약간의 편파적인 견해가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해외 기사들을 두루 살펴볼 때 GOAT 내지 GOAT 후보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는 조르주 생 피에르이고, 그 다음으로 많이 언급되는 선수는 존 존스이다. 존 존스는 약물 적발로 인해 제외하는 경우가 있어 조르주 생 피에르보다 약간 밀리는 상황이다. 참고로 2020년 4월경 15명의 종합격투기 선수들에게 물어본 결과에서는, 7명이 조르주 생 피에르, 5명이 존 존스, 2명이 표도르 예멜리아넨코, 1명이 비토 벨포트?? 비토 벨포트한테 물었나?를 언급하여, 종합격투기 GOAT를 조르주 생 피에르로 합의한 바 있다.출처

여자 종합격투기 쪽에서는 아만다 누네즈[88] 론다 로우지,[89] 발렌티나 셰브첸코[90] 등이 가장 자주 거론되는 편이다.


6.9. 체스[편집]



체스계엔 십수년 이상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킨 전설적인 선수가 많으며 이들 중 최고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보통 위의 세 선수와 더불어 챔피언 시스템이 자리잡기 이전의 비공식 세계 챔피언 폴 모피와 '체스 기계'라 불릴 만큼 뛰어났던 호세 라울 카파블랑카, 카파블랑카를 끌어내리고 17년간 챔피언으로 집권한 알렉산더 알레킨, 역대 최장기간 세계 챔피언 집권 기록을 가지고 있는 엠마누엘 라스커 등이 역대 최고의 선수로 자주 거론된다.


6.10.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리즈[편집]


선정에서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 시리즈 중 카운터 스트라이크(CS1.6), 카운터 스트라이크: 소스(CS:S),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CS:GO) 모두 대형 이스포츠 종목으로 진행되었었고, 그 중 영향력이 오래 유지되지 못한 CS:S를 제외하고도 CS1.6과 CS:GO로 시기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제시되는 선수들 숫자가 너무 많으며 그 중 단독으로 올릴 1~2명이 정해지지 못하고 난립하므로 어쩌면 영원히 결정되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 CS1.6
게임의 역사가 워낙 긴 데다가 이스포츠 태동기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전설적인 인물 중에서도 시대에 따라 전체를 아우르는 선수를 딱 잘라 집어내기 어렵다. 극초창기의 Johnny.R, XeqtR, elemeNt가 본좌로 인정받기도 했고 이후 세대에는 lurppis, HeatoN이라는 현재도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을 만큼 네임밸류가 높았던 선수가 등장하기도 했다. 중기부터는 어느정도 현재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립이 되었으며, 선술된 이들과 데뷔 초 시절에 세대를 약간이라도 공유했거나 시기의 차이가 크지 않은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보통은 이 때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 현재는 당연하게 레전드 대우를 받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신인이었던 cArn, Robban 등은 아무래도 조건에 약간 못미쳐서 잘 거론되진 않는다.

시리즈를 통틀어 GOAT로 볼 수 있는 선수는 후술된 '전체'에서 설명한다. 여기에 CS1.6에 한정해서는 올타임레전드라고 볼 수 있는 인물도 있으나 CS:GO에서는 활동하지 않거나 큰 성적을 내지 못한 경우에 한정하여 적을 수 있겠으며 이에 해당하는 선수는 zet, walle, sixeR 등이 있다. 하지만 시대적인 배경 상 지금처럼 전 세계가 겨룰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고 그 만큼 실제 선수의 기량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해서 소속 팀이나 지역에 따른 유불리가 존재하기도 했다. 지금의 LoL같은 게임에 비해 상위권 팀들이 더 풍부했던 이유도 있어서 어느 누군가가 압도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어디에서도 어느 시기로 구별하지 않고 이견없이 제시할 수 있는 극소수의 올타임레전드라고 한다면 SpwaN, cogu, fRoD 등이 있다. 세계 최고의 팀에 소속돼있었으며, 그 팀의 수준 자체를 혼자의 힘으로도 한 단계 상승시켰다고 할 정도로 매우 뛰어난 실력을 보유했었던 선수들이다. 그 만큼 대회에서 성적 또한 잘 냈고 오래 활약했다.

동양인 중에도 이들과 견줄 수 있는 성적을 내기도 했던 선수들이 있으나 그들만큼 오랫동안 커리어를 유지하지 못해서 이에 오르는 선수는 나오지는 못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solo와 mal, 중국의 alex와 savage와 mo 정도를 언급할 수 있다. 이 중 mal, alex를 제외하면 CS:GO에서도 짧지 않은 기간을 활동했다.

  • CS:GO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device는 메이저 4회 우승에 빛나는 Astralis의 왕조의 핵심 멤버였다. 우승,mvp 등 커리어만 따지면 device에게 비빌 선수들은 Astralis 시절 동료들 외에는 없다.

하지만 Astralis가 워낙 팀으로의 활약이 뛰어났지만, 개인 순수 실력으로는 s1mple이 카운터 스트라이크 역대 최강의 선수로 꼽힌다. 원래 device한테 커리어로는 많이 밀렸지만, 소속팀인 Na`Vi의 성적과는 별개로 게임 전체에서는 감히 1인자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다른 모든 선수들을 따돌릴 정도로 압도적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2021년 하반기부터 Na`Vi가 최강팀으로 떠오른 후 그 커리어도 차근차근 따라잡고 있는 중이다.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은 메이저 우승이 없다는 것.

이 둘은 정말 대조되는 모습이 많은데, 플레이 스타일부터 s1mple이 화려한 최고의 공격형 오퍼라면, device는 안정적인 수비형 오퍼의 정점이라고 볼수 있다. 순수 메카닉만 따지면 s1mple이 더 잘한다고 평가받지만, device는 꾸준함과 우승 경력이 돋보인다고 할수 있다. 이 둘의 비교는 카스 팬들 사이의 가장 뜨거운 논쟁 중 하나다. 외모도 완전 반대

하지만 드디어 CS:GO 최고의 선수 논쟁을 끝낼 기회가 두명 모두한테 주어졌는데, 바로 PGL Major Stockholm 2021.

커리어 대부분을 보낸 Astralis를 떠나 NiP로 이적한 device가 만약 이 메이저를 우승한다면, 메이저 우승 5회라는 금자탑을 쌓을 뿐더러, 어느 팀보다도 메이저를 더 많이 우승한 선수가 된다. 또한 Astralis의 성공의 주역은 자신이라는 걸 증명할 기회다.

s1mple 역시 현재 파워랭킹 1위 팀인 Navi와 함께 드디어 메이저 트로피를 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있다. 만약 이번 메이저를 우승한다면, 본인이 가장 크고 위대한 무대에서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수 있다는 걸 증명할수 있다.

  • 전체
이 정도가 되면 그 긴 기간동안 활동하는 것 만으로도 일반적인 선수들을 상회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예나 후나 모두 뛰어난 성적과 퍼포먼스를 보유한 선수들로 좁히면 아무리 카스가 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라고 해도 범위가 급격히 줄어든다. 단순히 두 게임을 넘나들며 오래 활동했다고 GOAT라고 부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조건에 부합하면서도 가장 특별한 대우를 받는 인물들을 꼽는다면 f0rest, GeT_RiGhT, NEO, Zeus가 있다. CS1.6에서도, CS:GO에서도 장기간 최고의 자리를 지켰으며 자신의 소속팀에서도 이 들은 실력은 물론이고 실력 외적인 부분에서 한 차원이 높은 명성을 쌓았다. 또한 개개인의 팬도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제일 많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어느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최고라고 인정받는 최고의 선수들이다. 만약 다른 선수가 트래쉬토크라도 시전한다면, 보통의 다른 선수에게는 신경전 내지는 흥행을 위한 의도적인 어그로 등으로 대충 넘어갈 만한 수준에도 이 선수들한테만큼은 금기시된다. 실제로 함부로 이 선수들에게 부정적인 인터뷰를 했다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욕 먹고 오해를 사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홍역에 시달리기도 한다.

물론 팀플레이 게임이란 것을 감안해도, 다른 게임과는 달리 1~2명으로 결정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도 논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각자 소속 팀도 f0rest, GeT_RiGhT를 제외하면 전부 다른 곳이었다. 지금은 이들 모두 은퇴 선언을 했거나 사실상 은퇴 상태이기 때문에 정리가 되지 못하는 점도 작용한다. 그런 모든 요소를 모두 감안해도, CS1.6이든 CS:GO이든 이들만큼 카스 역사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수는 없었고 그만큼 지지하는 팬도 많다. 경기에서 보이는 실력 뿐 아니라 인성적인 부분에서도[91] 모범을 보여왔고 그 만큼 신사적인 무대매너와 팬서비스도 몸에 배어있는 뛰어난 선수들이기에, 소속 팀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이 갈릴 수는 있어도 이 선수들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존중받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팬 뿐 아니라 업계인과 선수들 모두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는 사람들이다.


6.11. 킥복싱[편집]


킥복싱의 GOAT은 대부분 K-1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 거론되는데, K-1 무제한급의 어네스트 후스트, 레미 본야스키, 세미 슐트, 피터 아츠. 글로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량급의 리코 베르후번, 그 이외는 경량급의 조르지오 페트로시안, 쁘아까오, 고바야시 마사토, 앤디 사워도 논쟁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논쟁이 심한 종목이지만, 그럼에도 이 중에서 최종 후보를 추리자면 후스트와 슐트 두 선수로 줄일 수 있다. 사실 경량급의 쁘아카오, 사워, 마사토는 크라우스까지 포함해서 복싱의 F4를 보는 듯 한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압도적 강자가 없었으며, 그나마 쁘아카오가 이들 중 최강자로 불리긴 했으나 슐트나 호스트같은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이후에 등장한 페트로시안이 경량급을 정복하며 경량급의 최강자가 되었지만 킥복싱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K-1의 가세가 기울어 이전 세대의 선수들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다. 베르후번은 현 세대 최강자이지만 마찬가지로 킥복싱 전성기였던 K-1 부흥기가 지나 등장했기에 인기가 떨어지고, 헤비급임에도 판정승이 많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호스트나 슐트가 K-1 최전성기에 체중 제한이 없는 K-1 월드 그랑프리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쌓았기에, 전체급을 아우르는 강자로 볼 수 있다.

피터 아츠가 유일하게 두 선수와 견줄 수 있지만, 90년대 최강자로 후스트보다 더 높은 평가와 인기를 자랑하던 아츠임에도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상 등의 이유로 예전같은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세미 슐트 집권기에 부활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 했고, 슐트를 여러 차례 잡아내는 활약을 했으나 바다 하리, 알리스타 오브레임 등 젊고 뛰어난 피지컬을 가진 선수들의 벽이 컸기에, 타이틀까진 거머쥐지 못했다. 결국, 이 부분에서 데뷔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최강자로 군림했던 슐트, 후스트와의 격차가 발생하였다.

세미 슐트는 K-1이 망한 이후에 GLORY에서도 토너먼트 챔피언과 초대 헤비급 챔피언을 했으며, K-1이 다양한 룰 개정을 하며 그를 막으려 하기도 했다.[92] 위상에서 후스트와 차이는 없지만 이러한 근거로 순수 실력에서 슐트가 위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사실 경기력만 놓고 보자면 그 어떤 선수를 만나도 압도하는 슐트의 기량에 비해 후스트는 밥 샵과의 경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기도 했고, 전성기엔 피터 아츠와 챔피언 타이틀을 번갈아 가져가며 킥복싱계를 양분했기에, 슐트처럼 독보적 1인자는 결코 아니었다. 반면, 슐트는 지나치게 재미없는 운영으로 인기가 없어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는데, 후스트는 킥복싱 최고의 전략가답게 뛰어난 경기운영으로 매니아들에겐 아직도 기술적인 평가가 높다는 점에서 두 선수의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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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이클 반 거웬과 공동 1위다. 마이클 반 거웬이 빠르게 커리어를 쌓고 있기 때문에 이 기록은 조만간 깨질 수도 있다.[2] 최근에 마이클 반 거웬이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기는 하지만 테일러와 동률을 이루거나 뛰어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대다수다.[3] 세계선수권, 영국선수권, 마스터스 3개의 메이저 대회를 의미한다.[4]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5] 맥코는 18개국 중 14개국을 상대로 100%의 승률을 기록했는데 맥코를 이긴 팀은 호주(6회),남아프리카 공화국(6회),잉글랜드(2회),프랑스(1회)뿐이다. 가장 승률이 적었던 팀은 남아공으로 77%이다.[6] 맥코의 큰 강점이자 강점은 30대에 은퇴할 때까지 최정상 자리를 유지하게한 꾸준함과 성실함이다. 맥코의 자기관리는 유명한대 한때는 영국의 윌리엄스 왕자가 자기 결혼식에 초대 했었지만 월드컵 준비를 이유로 참가하지 않은 일화가 있다. 이런점은 르브론이나 호날두와 비슷하다.[7] 축구로 따지면 수십년전의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펠레 말고도 가린샤와 많은 괴물같은 선수들이 있었던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8] 정확히는 럭비 유니온의 GOAT라 할 수 있다. 럭비 리그에도 올타임 선수들은 따로 있다. 다만 보통 럭비 GOAT라 하면 럭비 유니온 선수들이 많이 거론된다. 실제로 구글에 Who rugby goat?라 검색하면 주로 나오는건 럭비 유니온 선수들이다. 애초부터 럭비(럭비 유니온)에서 갈라져서 파생된 종목이 럭비 리그다.[9] 미식축구 포지션에서 쿼터백은 사령관 내지는 지휘관이라는 독보적인 위치라서 가장 중요한 만큼 다른 포지션이 GOAT가 될 수는 없다. 제리 라이스 같은 선수들은 그 포지션에 한정하여 GOAT라고 불리는 데 그친다.[10] 2021-22 시즌 직후 은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6주 만에 은퇴를 번복하고 필드로 돌아왔다.[11] NFL슈퍼볼이 생긴 이후 역대 최다 우승 팀들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피츠버그 스틸러스(6회)인데, 한 선수의 슈퍼볼 우승 횟수가 최다 우승 팀의 우승 횟수보다 많은 것이다. 특히 패트리어츠가 거둔 6번의 우승은 전부 브래디와 합작한 것이다.[12] 2위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댈러스 카우보이스에서 라인배커와 디펜시브 엔드로 활약한 찰스 헤일리(5회).[13] AFC 4회, NFC 1회, 총 5회 수상.[14] 드래프트는 7라운드까지 하는데 6라운드 전체 199위로 뽑혔다.[15] 참고로 캘리포니아 산 마테오 출신인 브래디는 유년 시절 조 몬태나의 팬으로 자라왔다.[16] 만약 여기서 이겼으면 똑같이 4승 0패 슈퍼볼 성적으로 조 몬태나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이라 평가받았을 것이다. 단 8년차에, 224명 중 199번째로 드래프트되어 2년에 한 번 꼴로 무패 시즌까지 찍고 슈퍼볼 2연패도 했으니...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슈퍼볼 XLII를 이겼을 때의 얘기였다.[17] 2013-14시즌 슈퍼볼 XLVIII에서의 패배로 매닝의 준우승을 기준으로 매닝이 정규 시즌 개인 기록(MVP 5회 수상, 패싱 터치다운 등)에선 우세, 슈퍼볼 1승 2패에 브래디는 정규 시즌 팀 성적이 더 좋았으며(팀 승률, 플레이오프 연속 진출 등) 슈퍼볼 3승 2패였고 플옵 맞대결은 매닝이 우세라서 거의 막상막하였고 이는 2년 뒤 매닝이 슈퍼볼 50 우승과 함께 은퇴할 때까지도 그랬다.[18] 슈퍼볼 역대 최다 점수차 역전승. 3-28로 뒤지다가 34-28로 역전승. 준우승한 애틀랜타 팰컨스는 아직까지도 고통받는 중. 심지어 역전패가 팀 컬러마냥 자리잡고 있다…[19] 2019 시즌 기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18년 다음으로 최근 플레이오프 무대를 못 밟은 지 오래된 팀이었다. 그리고 NFL 통산 승률이 꼴찌였다.[20] 겨우 몇 시즌 플레이오프 턱 밑까지 간 거 말곤 가까이 가 본 적도 없었다.[21] 드류 브리스, 애런 로저스, 패트릭 마홈스가 대표적. 다만 드류 브리스는 은퇴 직전이라 폼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로저스는 챔피언십 게임에서는 새가슴인 편이다. 반대로 패트릭 마홈스는 본인의 뒤를 이을 선수라고 평을 받고 있었는데 슈퍼볼 LV 이후 평가가 싹 바뀌었다. GOAT가 되긴 어려울 거란 쪽으로.[22] 슈퍼볼은 항상 중립 구장에서 치러진다. 매년 2월 첫째 주 일요일에 하기 때문에 따뜻한 남부나 지붕이 있는 실내 경기장에서 열리는 게 일반적이다.[23] 이로써 최다 우승팀인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자기가 다 올려놓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보다 우승을 많이 한 선수가 되었다.[24] 다만 역대 순위에 있어서 조 몬태나보다 제리 라이스를 더 높게 평가하는 매체가 많으며, 실제로 브래디가 슈퍼볼을 6회째 우승한 2019년에도 브래디가 조 몬태나는 넘었지만, 제리 라이스에 이은 역대 2위로 평가하는 매체도 있었다.# 그리고 브래디가 슈퍼볼 7회 우승을 차지한 이후의 최근 역대 순위 평가를 보면 브래디를 역대 1위로 평가하고 있다.#[25] Pro Bowl, NFL 올스타전[26] 이전 시즌 현역 최고령 선수였던 애덤 비너티어리가 2020-21년 시즌에 새 팀을 구하지 못했다.[27] 결국 21-22시즌 MVP는 애런 로저스가 차지하였으며, 브래디는 2위를 차지했다.[28] 5회 우승으로 2위인, 전직 그린베이 패커스의 명장 빈스 롬바르디는 슈퍼볼 우승 트로피의 이름으로 쓰일 정도로 상징성 면에서는 벨리칙이 따라가기 힘들겠지만, 커리어로는 롬바르디의 기록마저 넘어섰다.[29] 재미있는 사실은 일라이 매닝은 한 번도 동시대의 엘리트 쿼터백으로 꼽힌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정규 시즌 개인 기록상으로도 뛰어난 적이 없었고, 팀의 정규 시즌 성적도 친형인 페이튼 매닝을 비롯하여 애런 로저스, 벤 로슬리스버거, 필립 리버스 등에 비하면 항상 널뛰기를 했으며, 플레이오프도 사실 이 선수들만큼 많이 진출하지 못했고, 올라가더라도 톰 브래디를 무너뜨린 2007년과 2011년 시즌을 제외하면 디비저널 라운드조차 통과하기 힘들어했다. 즉, 평균 정도의 선수가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선수에게 최고의 무대에서 항상 강했었던 것이다.[30] 앤디 라우즈가 활동한 시대보다 플라토와 매트 닐이 활동하는 지금 더 많은 경기를 치루기 때문이다. 실제로 앤디 라우즈는 총 233경기를 출전한 반면에 두명은 500경기 이상 출전했고 매트 닐은 무려 3배 이상 출전했다.[31] 국제 투어링카 챔피언십과의 통합 이전 시절 우승 1회 포함[32] 슈나이더는 통합 이전 시절부터 활동했기에 옜날 기록까지 합치면 기록은 더 올라간다. 한마디로 압도적이다.[33] 포이트는 35회로 인디 500 최다 출전자이다. 30회 이상 출전한 사람은 포이트가 유일하다.[34] 인디카 시리즈 이전의 USAC 시절의 타이틀이지만 당시 오픈휠 자동차 경주의 최고대회는 USAC 이었다. USAC에서 인디카 시리즈로 바뀐것.[35] F1의 슈마허 등[36] 1994,1995,1996,1997,1998[37] 크리켓의 타율은 득점 수를 아웃 수로 나눈 값이며 안타 수를 타수로 나누는 야구의 타율과는 다른 개념이다.[38] 게임 내에서 메타에 영향을 주는 패치 뿐만이 아닌, 신규 시리즈 출시 등도 넓게 보면 패치의 한 영역이라 볼 수 있다.[39] 2014 CTWC 결승전[40]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e스포츠 종목 중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바로 LoL e스포츠이기 때문이다.[41] 퍽즈LEC에서 8회, LCS에서 1회 우승으로 9회 우승자가 확실하긴 하다만은, 냉정하게 말해서 롤드컵 6회 우승 지역인 LCK와 각각 롤드컵 1회와 0회 우승을 기록했던 지역인 LEC와 LCS 사이에는 거대한 위상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2018년에서 2020 중순까지 국제전 성적 하에 당시 퍽즈가 뛰었던 LEC의 위상이 LCK를 추월한 적도 있었지만, 이외 대부분의 기간에선 LCK가 앞서 있었다.[42] 다른 메이저 지역 출신인 북미에서의 원로 선수인 더블리프트도 8회, 중국클리어러브도 지역 리그 우승이 6회다. 또한 마이너 지역까지 둘러보면 11회 우승의 일본세로스가 있지만, 4대 메이저 지역 리그와 마이너 지역 리그와의 위상 차이와 주목도면에서 크게 떨어진다.[43] 타 스포츠처럼 롤 역시 특히 국제 대회 커리어가 중요시되는데, 절반으로 접은 성적인 롤드컵 우승 1회와 MSI 우승 1회를 만족하는 미드라이너가 한때 그의 라이벌로 불렸던 한 명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조건을 상향조정하면 미드라이너 중에서는 만족하는 선수가 아예 없다.[44] 롤드컵MSI 2회 우승을 동시에 만족하는 선수는 타 포지션에서도 극소수로, 선수로만 한정하면 총 3명(페이커, , 울프), 코칭스태프는 단 2명(김정균, 최병훈) 뿐이다. 그리고 앞서 거론된 다섯 명은 2015년2016년, 그리고 2017년까지 많은 우승을 거두었고, 메이저 대회를 기준으로 논-켈린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범접못할 기록을 SK텔레콤 T1이라는 팀에서 이뤄냈다.[45] 2022년을 기준으로 페이커의 MSI 우승을 능가한 선수로는 3회 우승자인 RNG의 샤오후(미드 2회, 탑 1회)와 밍(서포터 3회)이 전부이다.[46] 2019.2021년 두 번의 롤드컵 4강진출과 2022년 스프링시즌 전승 우승 등의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추가했다.[47] 예를 들어 2021년 당시에 담원 기아가 2020 월즈 우승 이후 세계 최강급의 전력을 유지했음에도 다른 강팀들에 의해 2연속 롤드컵 우승을 비롯한 국제대회 우승이 막히는 사례가 발생하게 됨에 따라, 오히려 팀과 함께 2015~2017년까지 당대의 강팀들을 모두 뚫어내고 리그, MSI, 월드 챔피언십을 포함한 라이엇 주관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듭했던 전성기 페이커에 대한 고평가가 역으로 상승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48] 우승횟수 7회로 2위인 유영혁, 김승태와 2배나 차이가 난다. 그리고 또 대단한 건 개인전 우승 10회인데 2위 이재혁이 개인전 통산 4회 우승으로 문호준이 2배 이상의 차이를 냈다는 점이다. 또한 e스포츠에서 인정하는 공식대회인 케스파컵에서도 2회 우승을 해서 공식대회 우승이 16회로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여담으로 이 문서의 E스포츠 부분에서 세번째로 우승이 빠르다. (첫번째는 2003년의 장재호 두번째는 04년의 다이고) [49] 문호준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넥슨 측에서 16차 리그, 17차 리그를 2인제로 변경하였는데, 오존 게이밍의 규칙 악용으로 문호준은 17차 리그 후 잠정 은퇴를 선언하였고, 16차, 17차 리그는 카트리그의 암흑기로 평가되며 공인리그에서 제외되었던 수모를 겪는다.(실제로 17차 리그 이후 시즌 제로 개최까지 거의 1년 간 리그 공백기가 있었다.) 이후로는 팀전이 카트리그의 메인 스트림이 되기는 했으나 개인전 리그 역시 듀얼레이스 때부터 정식으로 추가되어 이후로는 개인전-팀전의 양대리그화가 되었다.[50] 3차리그(오프예선에 참가한 경력이 있음) ~ 2020 시즌 1까지 개인전이 총 19회가 열렸는데 문호준의 개인전 우승은 10회이다. 즉 우승률(우승 수/출전 수)이 50%가 넘는다. 카트라이더라는 게임 자체가 GOAT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종목들에 비해 인기가 많이 적어서 그렇지 커리어로는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름 리그는 국내 2위를 다툴 정도이다.[51] 개인전, 팀전 동시 우승, 문호준을 제외하고 양대우승한 선수는 현재까지 없다[52] 9차 ~ 11차, 13차 ~ 15차 우승으로 두 차례 3-peat을 달성했다.[53] 은퇴 이유 중에는 라이벌 없어 동기부여가 부족한 것 과 하나는 결승전 전 날에 모바일 카러플을 하고 연습을 안하고 팀전을 우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54] 다만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게 좋다. 문호준은 카러플 출시 그 이전에도 은퇴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55] 개인전은 현재 문호준을 제외하면 이재혁이 최다 우승자이다.(4회) 이재혁과 비교해도 2배 이상차이가 나는 것이기에 문호준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명하는 셈이 되지만.[56] 당장에 팝퍼즈 크로니클 UPPER를 처음 보고 풀피버-1를 찍는 것으로 다시 한번 증명한 안정성.[57] 그러다 보니 커리어로는 TATSU의 라이벌이라 할 사람조차 없다. 그나마 TATSU의 우승을 한 차례라도 저지할 수 있나 없나로 평가했을 때는 다이나소 정도가 라이벌로 꼽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7연속 준우승에 그치면서 갈 길이 먼 상태. 참고로, 다이나소는 3th KAC를 제외하면 전부 TATSU에게만 졌으며, 권역별 예선 시절에는 매번 예선 전국 2등이었음에도 TATSU와 같은 권역이라 매우 억울하게 떨어졌다. 그 당시에는 TATSU와 다이나소가 맞붙는 관동 예선이 사실상의 결승으로 취급되곤 했으며, KAC 2013에서 다이나소의 4위는 10th KAC가 종료된 2022년까지도 팝픈뮤직 부문의 최고 이변으로 꼽힌다.[58] FEFEMZ* - DDR 시리즈 4회, 유비트 시리즈 1회[59] 이 때문에 ORIU가 1949 최초 클리어를 가져갔고, Zafrada가 S25 전곡 S를 거져갔고, RSS가 D26 최초 올콤보 S를 가져갔다.[60] KAC 2012에서 권역 예선 큐슈/시코쿠/오키나와 에리어 2위, KAC 2013에서 조별 예선 C조 1위를 기록하고 결선에 진출했다.[61] 한 가지 아쉬운 점은 8322는 TATSU와는 달리 3-peat 문턱에서 10kai에게 번번히 떨어지면서 달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62] 팀 다이나믹스로 이적하여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동하다가 2022년부터 V5에서 뛰게 되었다.[63] 기원전 480, 476년[64] 기원전 480, 476년[65] 기원전 482, 478, 474년[66] 기원전 490, 488, 486, 484, 482, 480, 478, 476, 474[67] 기원전 489, 487, 485, 483, 481, 479, 477, 475, 473년[68] 어디까지나 최고 인기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일 뿐이지 로키도 젠지의 최전성기를 함께한 멤버이고 이적한 팀인 담원 기아도 한국에서 손꼽히는 인기 팀이라 팬덤이 꽤 있는 인기 선수다. 다만 로키는 젠지 시절엔 화려한 플레이와 최근까지 좋은 폼을 보여준 피오-이노닉스와는 달리 2020년부터 PGI.S까지 썩 폼이 안좋아서 욕받이를 많이 한데다 담원으로 이적하면서 젠지 팬이 떨어졌고, 담원에서도 최전성기인 OGN 엔투스와 연관이 없는데다 담원 성적이 하락세로 접어들 때 이적하면서 팬층이 꽤 얇아진건 맞다.[69] 정확히는 555경기 연속 승리이다. 이 무패 행진은 1986년에 뉴질랜드의 로스 노르만에게 가로막히면서 자한기르의 무패 행진은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러고도 9개월간 무패였다. [70] 1982부터 1991년 까지 무려 10년 연속 우승이다.[71] 최다 연속 우승(5연속)[72] 당시에는 월드 슈퍼 시리즈라 불렸다.[73] 메이저라고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꽤나 수준 높은 대회이고 파키스탄 선수인 두명에게는 중요한 대회이다.[74] 최다 연속 우승(7회)[75] 더 작은 코트에서 더 빠른 공을 사용하여 경기한다. 그와 반대인 국제식 스쿼시는 소프트 스쿼시라 부른다.[76] 사실상 파키스탄이 스쿼시를 50년동안 지배했다.[77] 슈마허가 실격을 안했다고 가정한 시즌 기준.[78] 2018 시즌의 WCS 서킷 및 WCS 글로벌 파이널을 모두 우승하였고, 그 외에 출전한 대회들도 대부분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또한 2018년 기준으로 vs 한국인 매치 승률이 무려 85.71%(24승 4패)이고 세트 승률은 69.32%(61승 27패)로, 이는 2018년에 GSL 3회를 모두 우승한 조성주보다도 양 쪽 모두 앞서는 기록이다.[79] 세랄 이외의 글로벌 파이널 우승자 중 소속 디비전의 1티어 리그 우승을 기록한 사례는 2016년 변현우, 2019년 박령우 외에는 없었으며, 그마저도 각각 1회 우승에 그쳤다. 물론 한국 디비전과 해외 디비전의 차이를 거론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앞서 각주에 언급한 2018년 vs 한국인 매치 승률을 따져 보면 세랄이 한국 디비전에 있었어도 충분히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반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애초에 세랄은 GSL vs. the WORLD를 2회 연속으로 우승했고 동급의 한국인 선수들을 상대로도 승률이 굉장히 높은 선수여서 한국 지역에서 활동했어도 충분히 우승을 할 만한 인물이다.[80] WCS 글로벌 파이널, IEM 카토비체, GSL을 모두 우승했으며, IEM은 2회 우승, GSL은 4회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다.[81] 에이펙스 시절부터 리그 초창기까지 하위팀을 캐리하는 원맨쇼를 보여줬고, 상하이 이적 이후에는 리그 최고 딜러 반열에 올랐으며 2021시즌 드디어 우승컵까지 차지했다.[82] 이쪽은 우승 못하면 가망이 없어 보인다.[83] 전 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11회 성공.[84] 6대 웰터급 타이틀을 획득했으나 이후 바로 맷 세라에게 타이틀을 빼앗기고, 연이어 벌어진 맷 세라와의 타이틀전 승리로 타이틀을 도로 되찾아 온 뒤로 전 웰터급 타이틀 방어 9회 성공. 미들급 타이틀도 1번 차지한 적 있으나, 무리한 증량으로 인한 대장염으로 방어전 없이 얼마 안 가 자진 반납했다.[85] 전 미들급 타이틀 방어 10회 성공.[86] 전 라이트헤비급 타이틀 방어 8회 성공, 이후 약물 적발로 타이틀 박탈 뒤 타이틀에 재도전해 다시 획득한 후, 타이틀 방어 3회 성공으로 도합 타이틀 방어 11회 성공.[87] 다만 해당 영상에서 종합 순위는 1위 조르주 생 피에르, 2위 존 존스, 3위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4위 드미트리우스 존슨, 5위 앤더슨 실바로 선정하였다.[88] 전 밴텀급 타이틀 방어 5회 성공에, 현 페더급 타이틀 방어 2회째 성공중. 거기에 2체급을 동시 석권하기도 했었다.[89] 전 밴텀급 타이틀 방어 6회 성공.[90] 현 플라이급 타이틀 방어 6회째 성공중.[91] GeT_RiGhT가 어릴 적 몇 번 사고를 치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성숙해진 언행으로 현재는 까방권을 얻었다.[92] 프론트 킥 제한과 클린치 니킥 제한. 이것은 세미 슐트 뿐만 아니라 위에서 말한 쁘아까오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