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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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
CEO
버지니아 로메티 (2012년 1월 1일–)
본사
미국 뉴욕 아몽크
창립자
찰스 랜릿 플린트
자회사
레드햇, IBM India Private Limited, 아스페라, 트러스티어 등
1. 개요
2. 상세
3. IBM PC, 전설의 시작
4. IBM의 기술 개발
5. 딥블루에 이은 두번째 도전, Watson
6. 논란
6.1. 나치 협조
6.2. 반도체 생산공정의 유해성 논란
7. 관련 항목
8. 기타




1. 개요[편집]


THINK

생각해라


All of the problems of the world could be settled easily if men were only willing to THINK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할 의지만 가진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토마스 J. 왓슨[1]

[2]

일명 빅 블루(Big blue).[3] 한국에서는 아범[4]이라고도 불린다. 윈텔로 대표되는 거대 컴퓨터 시장중 한 일면을 대표하는 회사.

1911년 6월 16일 CTR(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으로 시작하여 1924년 현재의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으로 변경. 2011년 6월 16일에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HQ(Headquarters)는 뉴욕주 Armonk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지사는 여의도 IFC 서울에 위치해 있다.


2. 상세[편집]




IBM 100주년 기념영상 - 100x100

원래는 상점용 금전출납기를 제조하는 회사로 출발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때에는 M1 카빈도 생산했다. 컴퓨터가 출현한 이후, 업무용 중대형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주력으로 하고 있었다. 위에도 써있듯이 회사명부터가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의 약자.

업무용 메인프레임이 주력이긴 하나 사업 초기의 생산품목인 상점용 금전출납기, 즉 POS기를 2012년까지 생산하고 있었다[5]. 높은 신뢰성과 적절한(?) 가격으로 아직까지도 인기가 있다. IBM은 고비용 제조사다 제품 및 기술 지원 하나하나가 다 비싸다.

이후 천공카드를 이용한 통계/계산장치를 연이어 내놓았으며, 정보처리에 대한 경력을 쌓아간다. 이들의 기계는 인구 센서스, 공장 자동화, 사회 보장 제도에까지 쓰이면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 과정에서 OMR카드의 원형이 되는 시험 채점기도 만든다.

이후 1964년, 당시 사장인 Thomas J. Watson Jr.[6]는 IBM의 사운을 걸고 최초의 현대적인 메인프레임이라 불리는 IBM System 360을 발표한다. 50억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으며, 지금까지 IBM을 먹여살린 메인프레임 시스템의 제공과 컴퓨팅 서비스 제공 사업의 토대가 되게 된다. 이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IT기업으로서의 IBM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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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정식 도입된 날

참고로 우리 대한민국 최초의 컴퓨터는 1967년 경제기획원에서 도입한 IBM 1401 메인프레임이었다.[7] 이 당시 정부는 이 컴퓨터의 도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며 지금도 국가기록원에 가면 '컴퓨터의 활용'이라는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때를 대한민국 전자정부의 시작이라고 한다. IBM 1401을 인구통계업무에 도입하면서 전자정부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모든 행정을 전산화하는 시작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은 전자정부 50년사 페이지에 자세히 나와있다. 대한민국 행정의 본격적인 발전을 체감해볼수 있으니 관심있다면 참고해도 좋다[8]

System/360이 발표된 2년 후인 1966년, DRAM을 최초로 개발한다. 또한 다양한 굵기의 직선을 평행하게 배치한 모양의 UPC 바코드 역시도 IBM에서 1974년 발표한 것이다. 1980년에는 현대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대부분을 점유[9]하고 있는 RISC 아키텍처를 발표한다.

IBM은 설립 시점부터 1980년대 중후반까지 컴퓨터 분야의 기술을 선도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며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규모의 비대화로 인한 비효율이 커지며 성장 활력이 크게 둔화되었고, 신규 사업 분야 진출, 연구 개발비 삭감 등의 문제가 발생하며, 일각에선 IBM이 망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미국에선 1980년대 PC사업이 무분별하게 확장되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조정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컴퓨터 관련 회사들이 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IBM 역시 PC 시장을 선도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 과실은 모두 하청업체나 다름없던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돌아가는 상황이었으며 완제품 시장에서 차별화에 실패한 IBM은 결국 DELL, 컴팩 등의 타 제조회사에 밀려 1990년대 초반 대규모 적자를 맞이하게 되었다.[10]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회사 외부에서 영입되어 1993년 IBM CEO에 취임한 루이스 거스너는 IBM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사업 분야와, 사업 중점을 재설계했다.

루이스 거스너는 솔루션이라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한 번에 묶은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컴퓨터와 관련된 사람 이외의 모든 사람을 IBM의 고객화하자는 의미로, 생활 속에 IBM의 기술이 침투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 개념은 1997년 e-비지니스 솔루션으로 확장되며, 인간 친화적 서비스를 표방하였다. 루이스 거스너의 혁신은 IBM을 제품 공급 업체에서 서비스 공급 업체로 재탄생시켰단 의미가 있다. 고객의 요구에 맞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전문적인 기술자문을 제공하며 지속적인 유지 보수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루이스 거스너의 혁신으로 IBM은 1990년대 말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나며, 다시 한 번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회사가 되었다.

IBM의 역사를 보면 진정한 기술 선도 기업임을 알 수 있다. 초기에 고부가가치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고비용 제품을 출시해 기술 개발 비용 이상을 벌어들이면, 특허를 적절히 공개해 해당 분야를 레드 오션으로 만든다. 이 때에는 원천 기술이나 핵심 특허 등은 여전히 IBM이 쥐고 있으므로 IBM의 수익은 유지된다. 하지만 그 분야의 기술 수준이 원천 기술이 출현할 당시보다 높아지고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IBM이 더 이상 수익을 얻을 수 없을 경우 그 사업부를 과감히 매각해 버린다[11]. 이러한 패턴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IBM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을 지속하여 경쟁력을 유지해 나간다.

하지만 IBM 만이 할 수 있는 분야, 즉, 대규모 컴퓨팅 장치, 메인프레임, 슈퍼컴퓨터 분야에 대해서는 철저한 기득권을 유지하고 각종 특허로 타 기업의 진입을 방해하며 자신만의 아성을 구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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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공업종합대학의 IBM

IBM의 메인프레임은 북한에도 도입된 적이 있었다. 저것이 김책공업종합대학에 설치된 IBM의 메인프레임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미지가 싫었는지 IBM이라고 써진 상표를 전부 떼여진 채로 도입한 듯하다. 미국은 싫지만 미국 기술은 좋다고욧!


3. IBM PC, 전설의 시작[편집]


애플에서 1977년 큰 성공을 거둔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 II를 내놓고 이게 무지막지하게 팔리면서 PC 시장이 돈이 된다는걸 보여주자, PC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1981년, IBM PC(모델명 5150)을 출시했다.

IBM PC는 출시 초기만 해도 이름만 '개인용 컴퓨터'였지, 실제로는 업무용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그래서 16비트였음에도 동시기의 가정용 8비트 기종들(MSX 등)과 비교해도 그래픽이나 사운드 수준이 빈약했다. 당시 일반적인 사무실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는 경우는 워드프로세서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 등의 텍스트 기반 작업이 거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래픽은 글자만 나오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개방 아키텍처를 적용하여 다른 회사들도 호환기종들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고, XT, AT 등의 후속 기종에서는 비디오 카드, 사운드 카드 등으로 부족한 기본 사양을 확장할 수 있게 되면서 멀티미디어 성능 면에서도 다른 규격의 개인용 컴퓨터를 압도할 수준까지 이르렀다. PC 시장의 대세가 16비트로 넘어갈 무렵이 되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IBM PC 및 호환기종들과 애플 매킨토시로 양분되기에 이르렀다. 예외적으로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초에도 PC98같은 독자 모델이 주류였고, 오히려 IBM에서 개발한 기종들이 마이너한 취급을 받았다.

한국의 경우 PC가 중산층에게 보급될 무렵부터 IBM PC와 호환기종이 주류였다. 교육용 PC 사업 이전까지는 소득 문제 탓에 가정집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12] 일찍부터 한메 한글 등 소프트웨어적인 방법[13]으로 IBM PC 호환기종에서 한글을 구현해서 썼다.

정작 IBM은 초기에는 상당히 이익을 보았으나 나중에는 별로 득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IBM PC의 하드웨어 중에 독자 기술은 BIOS 밖에 없었고, 개발비 절감을 위해 다른 회사의 부품들을 이용하여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컴팩이 합법적으로 BIOS를 복제하는 데 성공하면서 하드웨어 아키텍쳐는 공개나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14] 이를 계기로 다른 회사에서 자유롭게 호환 복제품을 만들어서 팔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다른 경쟁 기종들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을 주었지만 곧 IBM 호환 PC가 더 싸고 성능도 별로 꿀릴게 없는 상황이 되어서 역으로 IBM에서 만든 오리지널 PC들이 열세에 놓이고 말았다. 실제로 386 PC를 처음으로 내 놓은 곳은 IBM이 아닌 컴팩이었다.

이에 PS/2를 내면서 폐쇄구조와 독자구조를 도입하여 이 현상을 막으려 했지만, 비싼 가격과 호환성 문제로 결과적으로 실패하였고 이후 시장에 채택된 구조를 적용하게 된다. 그래도 PS/2에 적용된 기술 중 일부는 다른 PC에도 적용되었다. 키보드 및 마우스 포트[15], D-SUB 커넥터, VGA 등이 그것이다. 물론 MCA 버스같이 철저하게 외면당한 것도 있다. (경쟁 상대인 EISA도 망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하여튼 시장 지배권은 IBM에서 공식 OS로 지정한 마이크로소프트MS-DOS와 공식 CPU로 지정한 인텔로 넘어가게 되었다. "어느 회사에서 만든 PC"가 중요한 시대는 지나고, "어떤 OS, 어떤 CPU를 쓰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되어서 결과적으로 IBM은 마소와 인텔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줬다. OS/2라는 독자OS를 출시하며 버티려고 해 봤지만 이마저도 처참히 실패했다.

그래도 이름값은 있어서 NetVista와 ThinkPad로 꽤 오래 버텼지만 결국 2005년, 아예 PC 사업부 전체를 중국 레노버에 팔아버렸다. 레노버에 매각된 ThinkPad는 초반에 정체성 논란이 있었지만 ThinkPad를 개발한 IBM 야마토 연구소까지 같이 매각되어 지금도 개발자는 아직 IBM 시절 그대로다.(그래도 매각 당시 IBM이 아니면 안 된다고 반발해서 퇴사한 직원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은 레노버가 잘 이어가는 편이지만 IBM 시절만큼의 포스는 많이 약화된 편.


4. IBM의 기술 개발[편집]


트랜지스터 기반의 기존 메인프레임을, 마이크로프로세서 채용 시스템으로 대체하고자 RISC 아키텍처[16]POWER를 개발하여 1990년 발표하였다. 그런데 최초로 개발된 POWER는 마이크로프로세서[17]는 아니었고, 이의 마이크로프로세서화를 위해 모토로라, 애플과 AIM 동맹을 맺어 PowerPC[18]를 개발한다.

PowerPC를 기반으로 IBM은 POWER기반 고성능 마이크로프로세서인 POWER 시리즈를 만들어나가는데 IBM이 POWER를 마이크로프로세서화 하기 위해 모토로라와 애플로부터 단물만 빨아먹은 다음, 정작 PowerPC의 개발은 내팽겨쳤다는 관점도 있긴 하다.

하지만 소니, 도시바와 협력하여 PowerPC 기반의 Cell을 개발하여 플레이스테이션3에 탑재, 엑스박스360에는 PowerPC를 커스텀 한 CPU를 탑재, Wii의 CPU인 브로드웨이도 PowerPC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이로서 차세대 콘솔의 CPU 시장은 전부 IBM이 처먹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누가 이기건 승자는 IBM.

이렇게 되어 버린 원인은 구 엑스박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예나 지금이나 게임기 시장은 PC시장에 비하면 훨씬 작기 때문에 개발사들이 콘솔 시장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끽해야 몇천만대나 팔리는 콘솔마다 애프터 서비스나 CPU 커스텀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가진 CPU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PS2, PSP에 쓰이던 MIPS 계열은 이미 성능이 한계점에 도달해 버렸고, 예전에는 나름대로 널리 쓰이던 모토로라계 CPU도 모토로라가 개발을 포기한 탓에 구할 수 없게 되어 버렸고, 임베디드 시스템에서 널리 쓰이는 ARM 계열은 콘솔로 쓰기에는 성능이 너무 떨어지는 편이었다. 지금이야 닌텐도 스위치가 ARM 아키텍쳐를 채택했지만, 이는 스위치의 독단적인 특징 때문이지 성능 자체는 당연히 x86 계열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결과적으로 IBM의 PowerPC가 PC계 CPU에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가지고, CPU 개발 회사에서 충분한 애프터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된 셈이다

실제 콘솔용 POWER PC CPU 납품 단가는 XBOX360에서 약 $100정도였고 PS3에 쓰인 커스텀 칩은 약 $160로 예상되었는데 인텔이 XBOX에 파격적이긴 했지만 적자도 보지 않고 $50대로 CPU를 납품한 걸 상기 해볼 때 이것은 콘솔계에선 이례적으로 비싼 편이었다. x86 진영은 당시 인텔은 펜티엄 4로 고전 중이었고 AMD는 AMD64 시리즈를 앞세워 PC 시장 공격에 집중을 했기 때문에 PC와 서버시장에 비하면 용돈 벌이 수준에 지나지 않아 관심이 없었고 SONYMS도 X86 도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는 초기 XBOX시절 성능이 PS2를 능가 했음에도 불구하고 x86 기반을 했다는 이유로 PC 취급 받으며 PS2보다 낮은 성능일거란 착각과 차별을 받았기 때문. 고로 애초부터 차세대기 개발 발향은 오버 스펙을 가진 우월해 보이는 게임기였고 이 선택은 MSSONY 에게 대규모 적자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그래도 MS는 3년만에 흑자로 돌아섰지만 소니는 초기 모델의 삽질이 심각했던데다 XBOX360보다 단가가 더 비싸서 역대급 적자를 안았는데 PS3가 판매되는 기간동안 계속 적자가 났다.

2014년 적자가 지속되는 IBM 반도체 제조부문을 글로벌 파운드리에 15억 달러를 주면서 매각하기로 했다. 연간 적자가 15억 달러인 반도체 제조부문을 털어 내면서 글로벌 파운드리에게 칩을 공급 받을 예정이다.

콘솔 외에는 군사용 컴퓨터, 대형 서버 시장의 절대강자. 슈퍼컴퓨터도 만든다. 세계 상위 5위권 슈퍼컴에는 언제나 IBM의 컴퓨터가 2~3대 포함되어있다. 또한 기업 IT 컨설팅도 IBM의 중요한 밥줄이다.

현재 미국 서부연구소에는 웹파운틴이라는 괴물 컴퓨터가 있는데,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해 패턴을 입력하는 게 아닌 검색을 통해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연구를 하고있다. 하루 트래픽이 테라를 넘어가고 인터넷 전체를 스캔하는데 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고침을 하기 때문에, 몇 년 뒤면 초보적인 지능을 지니게 될 듯하다고 한다.

고양이의 뇌를 스캔해서 시뮬레이션에 성공 했다는 소식이 얼마전(2009년 11월) 들려왔다.

개인용 기기 관련을 제외한다면, IT에서 제일 큰 손이다. 휴렛팩커드가 단순매출로는 더 크나, IBM이 PC와 프린터 사업부를 팔아치웠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고로 IBM은 프린터 사업부를 두 번 팔아치웠다. 한 번은 소형 프린터(현재는 렉스마크)이고, 또 한 번은 대형 프린터(프린터 한 대에 가볍게 1억이 넘는다!) 사업을 리코에 넘겼다. 이미 IT서비스 매출이 전세계적으로 50조원이 넘는다. 사실상 IT서비스를 팔면서 서비스 구동용으로 서버를 팔고, 서버 위에 올릴 SW를 판다는 것이 맞을지도.

게다가 요새는 메인프레임 한 대를 가상으로 여러 대의 서버로 쓸 수 있는 가상화 기술에 주력하여, 메인프레임도 잘 팔아치우고 있다. 인텔 서버에 리눅스 올려 100대 쓰느니 메인프레임 2대 쓰는게 전체 비용으로는 싸다나?

이 점은 기업용 환경과 개인용 환경의 차이점을 이해해야 된다. 개인용 환경에서라면 리눅스 머신으로 돌려도 별 탈이 없고 비용도 저렴하다. 그리고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리셋해 버리더라도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비용은 매우 적으며 복구도 빠르다. 그러나 기업환경에서는 서비스의 속도 못지않게 지속성과 안정적인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각종 상황에 대응하고 동시에 안정적인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차원에서의 비용이 소모되며 서비스가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나 내부적인 결함으로 인해 중지되면 이를 복구하기 위한 비용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다수의 저레벨 시스템보다 적은 수의 고성능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유지보수의 비용절감에 유리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지난 10여년 간 한 번도 특허와 출원 전세계 1위를 놓친 적이 없고, 상용화 여부를 떠나서 기술력 하나만 놓고 본다면 세계 최강이다. 즉, 이 회사도 외계인 고문 특허 괴물이다. 어이없는 특허도 있지만(...) 유명한 것이 '누가 먼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인데 선착순으로 대기표를 준다는것. 예상시간이나 예약 취소같은 기능도 같이 포함되어있지만 이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특허를 냈다. 결국 욕먹고 특허권한을 포기하였다. 회사내에 노벨상 수상자만 무려 7명으로 아마 세계의 여러 회사 중에서 벨 연구소의 13명 다음으로 노벨상을 많이 탄 기업. 그래서 덩달아 IBM의 연구소인 토머스 J. 왓슨 연구소가 뜨게 되었다.

덧붙이자면 양자컴퓨터도 이미 테스트 중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현재 컴퓨터 기술력류 종결자 라고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삼성전자와 꽤나 친한 편이다. 특허도 공유하고 연구도 협력하고 있다.

또한 항공우주전자분야의 최강자이기도 하다. 우주환경에 사용되는 모든 CPU, RAM , SSD 를 IBM 에서 제작한다. 왜냐, 방사능 방호 처리 기술을 가진 몇 안되는 회사다.(다른곳은 허니웰, 네셔널 세미컨덕터, 스페이스 마이크로.)게다가 성능도 나름 만족스러운 편으로, 펜티엄3 정도의 연산능력이 나온다. 다른 회사에서 난 20Mhz 니 33Mhz 니 할 때 혼자서 400Mhz 를 찍어버린다. 다른 회사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승자는 IBM(...).


파일:external/www.travelsinorbit.com/KennedySpaceCenter_027.jpg

옛 케네디 우주센터의 컨트롤 룸[19]

2011년 9월 22일부터 한국 IBM은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성소수자에게 입사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입사원서에는 해당 항목이 없으나 따로 이메일로 통보하면 가산점이 주어진다. 위의 100주년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IBM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전통에서 비롯된 정책으로 보인다.

2015년, 소프트웨어 제품의 디자인 강화를 위해 IBM디자인 부서를 신설하고 사내 제품 개발 프로세스와 기업문화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맡기고 있다. 1000명 이상의 디자이너를 채용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디자인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


5. 딥블루에 이은 두번째 도전, Watson[편집]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자세한 것은 왓슨 항목 참고.


6. 논란[편집]



6.1. 나치 협조[편집]


IBM사가 집시단체에게 소송이 걸린 일이 있었다. 혐의는 유대인집시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서 나치에게 기술을 제공한 것. 제공된 기술로 나치유대인집시를 손쉽게 추적 및 관리 할수 있었고 그 결과는 홀로코스트였다. 사장 왓슨은 그 공로도 표창도 받았다고 한다.[20] 그 당시 IBM사는 미국 정부와도 사이가 잠시 틀어졌다. # 엄청난 수준의 흑역사다보니 현재 IBM은 이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IBM은 전범기업의 이미지까지 뒤집어쓰고 말았다.

6.2. 반도체 생산공정의 유해성 논란[편집]


한편, 미국 IBM 반도체 사업부와 관련하여 생산공정 과정에서의 유해 화학물질(염화메틸렌, 글리콜 에테르 등) 사용에 따른 재해가 문제가 되었다. 이는 수백명의 근로자들이 다른 직업군 대비 평균이상으로 백혈병, 림프종 등의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그들이 낳은 2세들의 유전적 질환 등의 피해로 나타나게 된 사건이었다. 이에 따라 위해사업장에 대한 사측의 관리소홀 책임이 문제가 되었는데, 대규모 집단소송(2003)으로 이어진 이 문제는 근로환경과 질병발생간의 입증의 곤란으로 회사측의 책임은 끝내 인정되지는 않고, 대신 산업재해보험제도를 통해 산업재해로써 보상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생산라인 근로자들이 집단 백혈병 발병에 따라 사망하는 일이 잇따르자, 이들 피해와 관련하여 산업재해 인정 및 사측의 불법행위 책임과 관련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IBM과 삼성반도체의 근로자 산재문제와 관련해서는 비교해놓은 국내 한 주간지 기사 참고 바람.


7. 관련 항목[편집]



8. 기타[편집]


  • IBM를 디자인한 사람은 폴 랜드. IBM의 로고 디자인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탔다. 그리고 IBM도 이 로고가 마음에 든 모양인지 수십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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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BM의 최고 경영자(CEO)로 활동한 적이 있다.[2] 이 문구는 IBM 2대 CEO였던 토머스 J. 왓슨이 한 말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는 본인도 니콜라스 머레이 버틀러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정확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 "And we must study through reading, listening, discussing, observing and thinking. We must not neglect any one of those ways of study. The trouble with most of us is that we fall down on the latter thinking because it's hard work for people to think, And, as Dr. Nicholas Murray Butler said recently, 'all of the problems of the world could be settled easily if men were only willing to think.' " (”...또한 우리는 읽고, 듣고, 토론하고, 관찰하며 생각하는 것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배움에 있어 이것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문제는 우리 중 많은 수가 마지막 한 가지에서 (생각하는 것)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니콜라스 머레이 버틀러 박사가 최근 한 말을 빌리자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할 의지만 가진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3] 옛날 컴퓨터 회사에서는 초 거대기업으로 꼽혀 IBM의 색깔인 블루를 따 빅 블루라고 이름지어짐. 또는 IBM의 직원이 파란색 정장을 입는 것에 비롯해서 빅 블루라고 이름지어지기도 했다.[4] 한때 앱등이들이 많이 쓰는 표현이었다. 아이비엠 범용의 약자. IBM의 특허를 피해서 PC나 기타 IT제품을 만들기는 불가능할 정도로 특허를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IT계의 아범, 묘하게 IBM의 발음과도 비슷하다.[5] 2012년 도시바에 매각[6] IBM 초대 사장이자 프로젝트 Watson의 모델인 Thomas J. Watson의 아들이다. 이름이 같아서 헷갈리곤 하는데 나치에 협력 의혹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다.[7] 비공식적으로는 후지쯔의 FACOM 222가 IBM 1401 보다 살짝 먼저 국내에 도착하였고, 가동도 FACOM 222가 더 빨라서 이쪽이 대한민국 최초의 컴퓨터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지만, 통관일자가 IBM 1401보다 살짝 늦어서 어디까지나 비공식 기록이 되었다. 사실 국내에 도입된 FACOM 222는 대일청구권 자금에 해당되는 현물 성격인데다가, 일본산 제품을 국내 최초의 컴퓨터로 인정하기도 좀 그렇다는 민족감정도 어느정도 작용했다고 한다.[8]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때를 전자정부 시작으로 보는것에 대해서는 일부 의견이 나뉘긴 하나, 이 당시 모든 행정업무가 수작업으로 이뤄진 것을 생각하면 꽤나 앞선 것이기도 했다. 이 때를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을 가지는 쪽에서는 보통 국민의 정부때 세계 최초로 제정된 "전자정부법"을 실질적인 전자정부의 시작이라고 본다.[9]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ARM 아키텍처부터가 RISC 기반이다. 사실 대부분의 x86계통 CPU들도 인텔 펜티엄 프로 이후부터 내부적으로는 RISC 아키텍처를 응용하여 설계하고 있다.[10] 빌 게이츠는 이 당시 IBM은 7년 이내에 회사가 사라질 것이다고 예측하기도 했다.[11] 가장 대표적인 것이 레노버에 매각해버린 PC 사업부[12] 사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PC는 피아노와 대등한 수준의 고가품으로 대접받았다. 대다수 서민들에게까지 제대로 PC가 보급된 것은 국민PC 사업이 이루어졌던 1999년~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였다.[13] 폰트 등은 '도깨비'나 '태백한글' 등 확장 카드로 구현하기도 했다.[14] 일단 BIOS를 해석하는 엔지니어가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레퍼런스북을 만든다. 그리고 IBM의 BIOS를 평생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엔지니어를 BIOS를 제작하는 엔지니어로 고용한다. 이제 이들에게 복제 엔지니어가 만든 자료를 우연히 접하게 해서 BIOS를 만들도록 시킨다. 참 쉽죠? BIOS를 제작하는 엔지니어는 실물 BIOS를 보고 만든 것이 아니므로 명목상으로는 '복제'가 아니라 '개발'이 되는 셈.[15] 지금도 이 포트를 PS/2 포트라고 부른다. USB가 아닌 동그란 녹색/자주색 포트가 바로 이것.[16] RISC 아키텍처 역시도 IBM에서 만들었다.[17] 칩 하나로 CPU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마이크로프로세서. 즉, 여러 개의 칩이나 트랜지스터로 구성된 CPU도 존재할 수 있다.[18] 여기에서의 PC는 Personal Computer가 아니라 Performance Computing[19] 의자에 주목 바람. 참고로 나머지 회사들은 항공우주 관련 기업들로, 길쭉한 글자는 맥도넬 더글라스이고 삼각형 로고는 노스 아메리칸이다. 현재는 이 두 회사 모두 보잉에 합병되어 사라졌다.[20] 위에 메인프레임 개발자 watson은 표창 받은 사람 아들.[21] 프랙털 이론의 창시자인 브누아 망델브로(Benoit Mandelbrot)가 IBM Thomas J. Watson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연구의 진행에도 IBM의 컴퓨터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