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OL(한국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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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이세성, 최혁준

1. 개요
2. 활동 내역
3. 근황
4. 여담


1. 개요[편집]


국내 최초의 10대 저연령 아이돌로 DSP미디어(당시는 대성기획)가 소속이었던 댄스 아이돌 그룹. 그룹 이름이 그대로 '아이돌'이다. 1981년생 재미교포 출신으로 보컬을 담당하는 최혁준과 1982년생 브라질 교포 출신으로 랩을 담당하는 이세성 2인조로 구성된 국내 최초 하이틴 댄스 아이돌이다.


2. 활동 내역[편집]


1996년에 'Bow Wow'라는 댄스곡으로 데뷔했다.

DSP미디어가 SM 따라쟁이 노릇하기 이전에 나온 그룹으로,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듀스의 성공으로 댄스그룹은 3인조 or 2인조로 내는 1990년대 초중반의 관습(?)에 맞춘 흔한 2인조 댄스그룹이었으며 당시 파격적으로 중학생이라는 저연령의 멤버로 구성된 로우 틴 그룹이라는 점과, 멤버 모두 재외 교포 출신이라는 점이[1] 신선함을 줘서 반짝 히트해 10대 여학생 팬을 다수 모았다. 하지만 반년 뒤 1세대 아이돌인 SM엔터테인먼트H.O.T.에 밀리면서 1997년 2월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DSP미디어는 SM 따라쟁이 기획사로 노선(?)을 정했고,[2] H.O.T.를 모방한 젝스키스를 데뷔시킨다. 은지원의 증언으로는 젝스키스도 사실은 자신과 강성훈이 2인조로 데뷔할 예정이었는데 H.O.T.의 성공에 자극받은 이호연 사장이 황급히 4명의 멤버를 더 영입해서 6인조 그룹이 되었다고 한다. NRG의 전신인 하모하모와 비슷한 케이스인 듯

멤버 최혁준은 작사 작곡이나 앨범 자켓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나름대로는 노력을 했던 것 같지만, 실력적으로 평가하면 댄스는 몰라도 나이가 어렸던 점을 감안해도 랩과 노래는 일반인 기준으로도 민망할 정도이다. 라이브는 기대할 수도 없었고, 립싱크 무대로도 못 들어줄 수준이었으니... 사실 이 당시에는 라이브보단 립싱크 무대를 하는 가수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바우와우는 인기가 있어서 SBS TV가요 20에서는 1위를 수상했고 다른 방송사에서는 10위 권 안에 드는 등 선전했으며 크라운산도 광고에도 출연했다. 이후 1996년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現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 뒤 '꿈 속의 그녀'로 짤막하게 후속곡 활동을 한 다음[3] 2집 때 '환상체험'이라는 타이틀 곡으로 소소한 인기를 끈 다음 별다른 후속곡 활동없이[4] 1997년 2월 고별 콘서트를 끝으로 갑작스럽게 해체,[5] 그 후 멤버들은 어린 나이에 큰 인기와 실패를 모두 겪은 혼란 때문에 많이 방황했던 것 같다. 1999년에는 최혁준이 살인미수 사건으로 입건된 사건[6]이 뉴스에 등장해서 한때 IDOL을 좋아했던 추억 속의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3. 근황[편집]


현재 이세성은 보스턴에서 경영학과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으며, 최혁준은 위의 살인미수 외에는 큰 사건사고를 일으키지 않고살인미수가 큰 사건이 아니면 뭘까 현재 미국에서 Glen Choi라는 이름의 힙합 음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에 국내 무대에도 잠깐 모습을 보인 바 있고,#관련기사 2013년에는 20세기 미소년에서 근황을 알렸다. #프로듀서로서 활동하는 그의 최근 인터뷰 영상 2016년 6월 14일자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최혁준이 방청객으로 참여했다.#


4. 여담[편집]


  • 가수 장나라가 연예인이 되기 전에 좋아했던 아이돌이 최혁준이라고 하며, 한 때 아이돌의 팬클럽 활동을 하다가 너무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와 아버지에게 맞은 일도 있다고 한다. 이후에도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상형을 IDOL의 최혁준으로 꼽았다.[7]

  • 최혁준의 형인 최유진은 C2K[8], 이세성의 형 이세영은 킵식스에서 각각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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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멤버가 모두 한국말이 상당히 서툴러서 그 당시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와 쇼 뮤직탱크를 진행할 당시 시청자들이나 출연자들 본인들 모두 소통이 무지 힘들었으니 차라리 통역을 데려오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여학생들은 그것도 귀엽다고 좋아했다.[2] SM에서 그룹을 데뷔시키면 DSP는 거기다가 1명을 더 붙여서 데뷔시켰다. H.O.T. 5명 - 젝스키스 6명, S.E.S 3명 - 핑클 4명, 신화 6명 - 클릭비 7명 이런식. 1999년 SM에서 2인조 발라드 그룹인 플라이 투 더 스카이가 데뷔한 후 DSP에서도 3명으로 구성된 발라드 그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DSP의 재정 문제로 끝내 무산되었고, (대신 플투와 같은 2인조의 투샤이가 데뷔하였다) 동방신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SS501의 멤버 구성이 동방신기와 동일한 5명으로 구성되면서 +1 공식은 끝나게 되었다.[3] 이 당시 이세성이 축구를 하다가 다리 부상을 입어 댄스가 불가하여 의자에 앉거나 목발을 짚은 채로 랩을 했다.[4] 애초 후속곡으로는 "Love Story"를 계획하고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마쳤던 상황이었다.[5] 당시 해체의 이유를 멤버들의 학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표면적인 이유는 데뷔를 앞두고 있던 젝스키스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해체시켰다는 소문도 있다.[6] 익명으로 처리되긴 했으나 누가 봐도 최혁준이다.[7] 아이돌의 해체소식을 들었을 때 펑펑 울었었다고 한다.[8] 드렁큰타이거의 멤버였던 DJ 샤인, 코요태 전 멤버 차승민과 스페이스 에이 멤버 제이슨이 속해있던 그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