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플레이오프/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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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KBO 플레이오프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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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오프 미시행 (1982~19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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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BO 플레이오프는 1985년에 조건부로 도입되었다(전후기 종합 승률 1위 팀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플레이오프에 출전).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가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실질적으로는 1986년에 시작되었다.






1. 개요
2. 일정표
2.1. 경기 내용
2.1.1. 1차전
2.1.1.1. 스코어보드
2.1.1.2. 상세
2.1.2. 2차전
2.1.2.1. 스코어보드
2.1.2.2. 상세
2.1.3. 3차전
2.1.3.1. 스코어보드
2.1.3.2. 상세
2.2. 결과


1. 개요[편집]


삼성증권배 2003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파일:SK 와이번스 심볼(2000~2005).svg
파일:KIA 타이거즈 화이트 심볼(2001~2003).svg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2위 KIA와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한 SK의 맞대결로 이루어졌다.

전년도에 이어 정규리그 콩라인 2위를 기록한 KIA와 삼성을 2연승으로 누르고 올라온 정규리그 4위 새내기 SK의 대결이였다. 당시, 스포츠사에서도 KIA가 스윕을 한다는 기사가 꽤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뚜껑은 따야 아는법. 뚜껑을 열어보니 승자는 SK였다.

2. 일정표[편집]


2003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SK 와이번스 VS KIA 타이거즈

경기
경기 시간
경기장
AWAY
결과
HOME
방송사
1차전
10월 9일 18:00
무등 야구장
SK 와이번스
4
1
KIA 타이거즈
파일:KBS N SPORTS 로고(2006~2014).svg
2차전
10월 10일 18:00
SK 와이번스
2
0
KIA 타이거즈
파일:SBS 로고.svg
3차전
10월 12일 14:00
문학 야구장
KIA 타이거즈
4
10
SK 와이번스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2.1. 경기 내용[편집]



2.1.1. 1차전[편집]



2.1.1.1. 스코어보드[편집]

플레이오프 1차전, 10월 9일 목요일, 무등 야구장 14,0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SK
채병용
1
1
0
2
0
0
0
0
0
4
-
-
-
KIA
김진우
0
0
0
0
0
0
1
0
0
1
-
-
-
중계 방송사 : 파일:KBS N SPORTS 로고(2006~2014).svg | 캐스터 : 권성욱 | 해설위원 : 하일성
▲ MVP : 채병용
▲ 승리투수 : 채병용(SK)
▲ 패전투수 : 김진우
▲ 세이브 투수 : 김원형
▲ 홈런: 안재만 (4회 2점) 이상 SK

2.1.1.2. 상세[편집]

20대 초반의 신예 투수진이었던 채병용과 김진우의 맞대결이었다.
하지만 SK가 김진우를 상대로 선취점을 내며 김진우를 끌어내렸고, 채병용의 호투와 마무리 등판을 한 김원형의 호투로 가볍게 승리했다.

2.1.2. 2차전[편집]



2.1.2.1. 스코어보드[편집]

플레이오프 2차전, 10월 10일 금요일, 무등 야구장 10,171명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SK
스미스
0
0
0
0
2
0
0
0
0
2
-
-
-
KIA
존슨
0
0
0
0
0
0
0
0
0
0
-
-
-
중계방송사: 파일:SBS 로고.svg | 캐스터: 배기완 | 해설: 박노준
▲ MVP : 조원우
▲ 승리투수 : 트래비스 스미스[1]
▲ 패전투수 : 마이크 존슨[2]
▲ 세이브 투수 : 조웅천
▲ 홈런: 조원우(5회 2점) 이상 SK

2.1.2.2. 상세[편집]

그야말로 양 팀 타선이 모두 물빠따 빈타로 허덕이던 경기였는데 당일 SK 조원우의 2점 홈런이 결승점이 되었다. 단기간 싸움답게 집중력을 선보였던 경기.

2.1.3. 3차전[편집]



2.1.3.1. 스코어보드[편집]

플레이오프 3차전, 10월 12일 일요일, 문학 야구장 30,4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KIA
리오스
0
2
1
0
1
0
0
0
0
4
-
-
-
SK
조진호
2
0
4
4
0
0
0
0
-
10
-
-
-
중계방송사: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 캐스터: 표영준 | 해설: 하일성
▲ MVP : 박경완
▲ 승리투수 : 김원형
▲ 패전투수 : 이강철
▲ 홈런: 이진영(1회 2점), 이재주(2회 2점), 박경완(4회 3점)

2.1.3.2. 상세[편집]

벼랑에 궁지에 몰린 KIA는 다니엘 리오스를, 이미 2승 고지에 오른 SK는 조진호를 선발로 냈다.

1회 말 SK 이진영다니엘 리오스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2점 홈런을 쳤고, KIA는 2회 이재주가 동점 2점 홈런으로 추격하고 3회 초에는 역전을 했지만, 다시 3회 말 두 번째 투수 이강철이 이진영의 타구에 발목을 맞는 부상을 입고, SK는 김기태, 이호준의 연속 안타로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포일-볼넷으로 무사 만루를 만든 SK는 정경배의 희생플라이로 역전에 성공했고, 2사 2-3루 찬스에서 대타 양현석이 2타점 우전 적시타를 쳐 순식간에 6-3이라는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4회 말에는 김기태의 적시타, 박경완의 쐐기 3점포가 터져 경기는 이미 SK로 흘러갔다. 그리고 만원관중이던 SK 팬들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였는데 인천을 버린 그 팀제대로 한판 붙을 수 있었기 때문. SK 선수들도 큰 대회에서도 지지 않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이제 배신자들을 잡으러 가겠습니다.

참고로 이 경기는 문학 야구장 개장 이후 처음으로 만원사례를 이룬 SK 홈경기였다.[3]

2.2. 결과[편집]


▲ 플레이오프 MVP : 이진영 10타수 8안타 타율 0.800 1홈런 2타점

SK가 3승 무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2.2.1. SK 와이번스[편집]



2.2.2. KIA 타이거즈[편집]


KIA는 전년도와 똑같이 공격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 김성한 전 감독의 삽질로 광탈했다.[4] 이번 3연패로 KIA는 해태시절보다 더 못해졌다고 까였다. 덤으로 투수코치였던 김봉근 전 코치를 신뢰하지 않았던 점 역시 KIA의 광탈에 한 몫 했다. 2003년 초까지만 해도 김봉근은 KIA의 투수코치였으나 김성한 전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시즌 중 팀을 나왔고, 이에 SK가 김봉근 전 코치를 영입했는데, 이미 KIA의 분석을 파악하고 김정준 전 분석원에게 전달을 했다.[5]

결론은 김성한 전 KIA 감독의 미숙한 단기전 운용 능력과 쓸놈쓸이 더해지며 광탈하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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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외로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 시즌 내내 안경을 착용하고 등판한 선수였다.[2] 6년 뒤 한국 야구에 다시 노크를 하지만, 시즌 초반에 털려서 방출 당한다.[3] 개장 이후 첫 만원사례는 2002년 올스타전이었고 정규시즌 홈경기 첫 만원사례는 2005년 홈 개막전이었는데 이 경기의 상대도 KIA였다. 해당 경기 이후 다음 매진은 그로부터 2년 뒤인 2007년 5월 이만수 전 수석코치의 팬티 퍼포먼스 발언 경기도 KIA전.[4] 결국 2002년~2003년 2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신 김성한 전 감독은 KIA 구단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고 이듬해 시즌 중 경질되고 만다. 그리고 후임감독들에 의해 KIA는 두 차례나 꼴찌까지 곤두박질친다. 김기아.[5] 우리가 알고있는 그 김성근의 아들 맞다. 현역시절 일찍이 은퇴하고 바로 전력분석원으로 뛰었다. 흔히 김정준이 아버지 김성근이 부임한 2007년부터 SK 전력분석팀에 들어온 줄 아는 사람들이 많으나, 바로 전년도까지만 해도 아버지 김성근이 있던 LG의 전력분석팀에 있었다가 김성근이 경질당한 후 곧바로 SK로 이적, 2003년부터 SK 전력분석팀으로 재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