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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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上最悪(し じょうさいあく乱入者(らんにゅうしゃ>
KE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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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上最悪の乱入者" KE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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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네임
코바야시 켄타
Hideo Itami(ヒデオ・イタミ;伊丹(いた み 英雄(ひで お)[1]
KENTA
본명
코바야시 켄타
小林 健太(こ ばやし けん た
생년월일
1981. 3. 12 (43세)
신장
174cm
체중
85kg
혈액형
O형
출생지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사이타마현 소카시
유형
하드 히팅 + 슈터쇼맨 + 슈터
시그니쳐 무브[2]
하리테((()
샷건 킥[3]
사커볼 킥[4]
꼬치식(串刺(くし ざし) 드롭킥
다이빙 래리어트
피셔맨즈 버스터
팔콘 애로우
턴버클 파워밤
추남에게 무릎차기(ブサイクへの膝蹴(ひざ げり)[5]
피니쉬 무브
우라(裏) Go 2 Sleep[6]
다이빙 더블 풋 스톰프
GAME OVER[7]
_Go 2 Sleep_[8]
별명
축격 솔져(蹴撃(しゅうげきソルジャー)
검은 축살왕((くろ蹴殺王(しゅうさつおう)
BLACK SUN(ブラック・サン[9]
Japanese Sensation[10]
사상최악의 난입자(史上最悪(し じょうさいあく乱入者(らんにゅうしゃ)[11]
테마곡
FOR ONE'S LIFE - BRAHMAN ( - 2002)
NO LIGHT THEORY - BRAHMAN (2002 - 2004)
Art & Life (Chi-Roc) - Twista (2004 - 2006)
What You Know (Instrumental) - T.I. (2007.1 - 2011.2)
Hard in Da Paint - Waka Flocka Flame (2011.2 - 2012.7)
Enio - SebastiAn (2012.7 - 2014.5)[12]
Tokiwakita (Time Has Come) (2014.9 - 2019.1)[13]
Overture(2019.7 - 2019.8)[14]
Cicatriz - Kamixlo (2019.8 - )[15]
데뷔
2000년 5월 24일 (19세)
아오모리현 아오모리시
아오모리현종합운동공원 체육관
전일본 2000 슈퍼 파워 시리즈 4일차
vs 마루후지 나오미치[16]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파일:X Corp 아이콘(화이트).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주요 커리어
GHC 헤비급 챔피언 1회
GHC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3회
GHC 태그팀 챔피언 1회
GHC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 3회[17]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 1회
NJPW 스트롱 오픈웨이트 챔피언 2회
뉴 재팬 컵 2020 USA 우승
IWGP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1. 개요
2. 커리어
2.1.1. 마루KEN
2.1.2.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2.1.3. 주니어 헤비급과 헤비급을 넘나들다
2.1.4. NO MERCY
2.1.5. 헤비급 전향
3. 사용 기술
4. 여담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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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레슬러.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무도가' 정신과 실전 격투기를 프로레슬링에 접목하고, 하드 히팅을 주로 삼는 스트롱 스타일이 일본 내 주류였는데, KENTA는 죽일 기세로 걷어차는 킥과 순수한 타격기 등 다소 이질적인 경기를 선보였다. 여기에 트위너 성향의 캐릭터를 내세우고 큰 인기를 끌어, 기존의 일본 프로레슬러와는 차별화되는 그만의 캐릭터를 보여서 일본 프로레슬링계 반골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었다.

이 스타일은 당시 체격이 안 되면 무조건 특출난 공중기를 쓸 신체능력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북미 인디 레슬링계에서 신체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도 소화가 가능하면서 매력적인 캐릭터도 같이 장착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로 크게 각광받아, CM 펑크, 브라이언 다니엘슨 등 수많은 북미의 인디 레슬러들이 그의 스타일을 응용하며 스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고, KENTA가 북미 인디레슬링계의 아버지 중 하나이자 레슬러들의 레슬러로 꼽히는 이유가 되었다.[18]

40을 넘기고 몸에 온갖 부상이 쌓인 후에 신일본으로 건너와 기량이 떨어졌다는 악평을 받다가, 불릿 클럽 가입과 사상 최악의 난입으로 한순간 신일본 최대의 탑힐로 등극하였다. 몸 문제로 실력은 예전보다 떨어졌으나 어그로성 마이크웤이 일취월장하며 완성 단계에 이르러 신일본 최대의 탑힐 쇼맨으로 등극하며, 항상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2. 커리어[편집]



2.1. 프로레슬링 NOAH[편집]


초등학교 시절 패미컴으로 프로레슬링 게임을 하다가 자기 이름과 한 글자 차이 나는 '절대왕자' 코바시 켄타를 알게 되고,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후에 TV나 잡지 등을 보며 코바시 켄타의 팬이 되고, 프로레슬링에 빠지게 된다.

1999년,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개최한 오디션에 합격하고 연습생이 된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기 전에 당시 트레이닝하던 곳의 관계자가 코바시 켄타와 아는 사이였는데, 이로 인해 오디션 당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코바시 켄타가 추천서를 써줬다고 한다. 2000년 3월 11일에 코라쿠엔 홀에서 데뷔한 후 5월에 본명인 코바야시 켄타로 싱글 경기 데뷔전을 치르는데, 이때의 상대는 훗날 숙명의 라이벌이 될 마루후지 나오미치였다. 데뷔 직후 1차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벌어지자 코바시 켄타를 따라 프로레슬링 NOAH로 이적하게 된다.

원래 미사와 미츠하루는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KENTA 정도만 데리고 나가 사사키 켄스케의 켄스케 오피스 같이 작은 단체를 꾸리려고 했는데, 코바시 켄타가 적극 동조해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이던 대부분의 선수들[19]을 끌어들여 판이 커진다. 그만큼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함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차세대 유망주로 키우던 선수 중 하나고, 코바시 라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미사와 라인인 마루후지와 대비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메이저 단체로 부상하게 되는 프로레슬링 NOAH의 초창기부터 강력한 라이벌 구도가 성립된 동시에 인상적인 모습을 남긴다.

신인 때는 주니어 헤비급답게 공중기와 스피드를 겸비한 경기 스타일을 보여주었으나, 이러한 스타일은 라이벌인 마루후지 나오미치나 당시 연습생이었던 스즈키 코타로에게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킥복싱을 배우며 발차기를 위주로 운영하는 킥커형 경기 스타일로 변화한다. 또 이 시기에 부상을 자주 당하자 친구가 액땜의 의미로 권유한 KENTA라는 링네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2.1.1. 마루KEN[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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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태그팀을 결성해 일명 마루KEN 태그가 만들어졌다. 이 둘은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현란한 공중기를 선보이고, KENTA가 과격한 공격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조합으로 초대 GHC 주니어 헤비급 태그 팀챔피언에 군림했다. '이케멘 태그'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여성팬들을 끌어오는 외모뿐만 아니라 경기력 또한 훌륭한 둘이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이 둘을 주축으로 프로레슬링 NOAH에서 주니어 헤비급이 점차 두각을 보인다.

이들은 당시 도쿄 스포츠 선정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최우수 태그상을 수상한다. 이때는 마루후지, KENTA 외에도 이시모리 타이지, 스즈키 코타로, 아오키 아츠시, 카네마루 요시노부, 스기우라 타카시[20] 등 뛰어난 선수들이 NOAH 주니어에 있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 마루후지의 NOAH의 주니어는 일본 최강이라는 마이크웍으로 알 수 있듯, 주니어 헤비급 디비전에 대한 선수들과 업계의 자부심은 굉장했다.

마루KEN은 2년 가까이의 기간 동안 총 9번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주니어판 절대왕자"라는 극찬까지 받았으나, 2005년 6월 5일에 카네마루 요시노부 & 스기우라 타카시에게 패하며 왕좌에서 내려왔으며 팀은 분열, 둘은 라이벌이 되었다. 이후 마루후지 나오미치스즈키 미노루와 팀으로 영국 모어캠에서 열린 'FWA 라이브 인 모어캠 - NOAH Limit'에서 스콜피오 & 덕 윌리엄스 팀에 승리하며 GHC 태그팀 챔피언을 차지한다. 그러면서 KENTA는 마루후지와 완전히 갈라선 라이벌이 된다.


2.1.2.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편집]


2005년 3월 드래곤 게이트 출신의 SUWA를 상대했고, 상대편이 주심을 폭행 한 것으로 실격 되는 경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대립이 연장되었다. 7월 카네마루 요시노부에게 승리하며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차지했고, 9월 18일 SUWA를 상대로 첫 방어전을[21], ROH에서는 로우 키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렀다.[22] 동시에 시바타 카츠요리와 태그팀을 맺고 GHC 태그팀 챔피언십에도 눈독을 들였다. 2006년에도 마루후지 나오미치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루어 명경기를 보여주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방어에도 성공한다.

코바시가 이타미 얼마나 강하게 키웠는지 알아보자.jpg
개념글 간 켄타 vs 켄타 경기 움짤 1 2 3 4

2006년 3월 5일, 자신의 스승 코바시 켄타에게 도전했다. 경기는 서로 죽일 듯한 난타전과 서로 사제사이라고 해도 봐주지 않는 하드 히팅에 고각 접수로 구성되었다. 경기 후반 코바시 켄타의 봉인기 중 하나인 리스트 클러치식 버닝 해머에 맞고 패배한다.[23] 원본 버닝 해머도 봉인기인 주제에 더욱 고각으로 접수되는 리스트 클러치식을 맞은 건 코바시의 커리어 내내 타우에 아키라와 KENTA 둘 뿐.

이윽고 6월 스기우라 타카시를 상대로 GHC 주니어 헤비급 벨트 방어전에서 패하면서, 1년 가까이 지켜오던 벨트를 잃었다.


2.1.3. 주니어 헤비급과 헤비급을 넘나들다[편집]


GHC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라이벌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벨트에 도전하면서, 주니어 헤비급 선수 두 명이 프로레슬링 NOAH의 메인급이자 헤비급 타이틀을 걸고 대결하는 최초의 경기가 대진으로 잡힌다. 2006년 10월 29일의 경기는 일본에서 2006년 프로레슬링 대상 베스트 바웃에 선정될 정도로, 둘이 살벌한 살인기를 주고받은 끝에 패했다.[24] 2006년 9월 16일엔 미국에서 브라이언 대니얼슨의 ROH 월드 타이틀에 도전했으나 패배했고,[25] 12월에 프로레슬링 NOAH로 원정을 온 다니엘슨과 재대결을 벌여 승리한다. 선배 코바시 켄타가 ROH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KENTA 역시 ROH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KENTA와 대립하던 ROH의 미국 선수들 중 다수는 훗날 WWE, TNA에서 스타가 되었다.


2007년에는 희대의 사기 캐릭터 모리시마 타케시와 경기를 가졌다. 3월에는 무도관 메인이벤트로 모리시마 타케시가 가진 ROH 월드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으나 패배했고, 이후 주니어 헤비급과 헤비급을 넘나들며 활약한다. 여름엔 이시모리 타이지와 태그팀을 결성, 이시모리와 첫 NTV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토너먼트에 참가해, 결승에서 마루후지 나오미치이부시 코타를 꺾으면서 우승했다. 2008년 3월에 드래곤 게이트로 유출된 GHC 주니어 태그팀 챔피언 벨트를 다시 프로레슬링 NOAH로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2008년 10월에는 브라이언 다니엘슨이 가지고 있던 GHC 주니어 헤비급 벨트를 가져왔고, 전일본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이 된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경기를 가졌으나 60분 시간 초과 무승부로 벨트를 지켜낸다. 2009년 10월에 브리스코 브라더스, 브라이언 대니얼슨과 데이비 리처드를 상대하던 KENTA는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GHC 주니어 헤비급 벨트를 반납하게 된다.

2010년 6월 6일 부상에서 복귀해 돌아온 KENTA였지만, GHC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십 도전자 결정전에서 마루후지에게 패했다. 가까스로 도전권을 얻어 카네마루 요시노부에게 다시 도전한 KENTA는 부상 전 본인의 집권 시기와 카네마루 시기의 저조한 주니어 헤비급 디비전 인기를 두고 벨트를 가지고 있기만 한 챔피언이라는 말과 함께 대립을 이어갔다. 그러나 9월 26일에 카네마루 요시노부의 6차 방어전에서 패했다.

2010년 일본 TV 컵 주니어 헤비급 태그 리그에 아오키 아츠시와 팀을 맺어 결승에서 로데릭 스트롱에디 에드워즈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그러나 11월 23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대표였던 카네모토 코지타이거 마스크에게 패배. 재도전했지만 다시 패배를 겪었다. 2011년 1월 23일에는 갑작스레 숙적 카네마루에게 태그팀 결성을 제의하는 행보를 보였는데, KENTA는 카네마루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고 카네마루는 "알았다"고 말한 후 그대로 퇴장했다.

그리고 1월 투어 최종전 제 4경기. 시오자키 고, 오가와 요시나리, KENTA vs 모하메드 요네, 카네마루, 히라야나기의 경기 도중 KENTA는 시오자키와 오가와를 급습하며 DIS OBEY에 가입했다. 경기 후 KENTA가 '조건은 성립됐다'라고 말했지만, 카네마루에게 한 귓속말의 내용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2.1.4. NO MERCY[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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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던 중, 3월 5일에 DIS OBEY vs 켄스케 오피스의 8인 태그매치 도중 갑자기 카네마루와 KENTA가 모하메드 요네에게 체어샷을 날리고, 머뭇거리던 히라야나기마저 끌어들여 체어샷을 강요하며 모하메드를 쫓아내고 3인 체제 선언을 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며, 이윽고 마이크웤에서 KENTA가 카네마루에게 제시한 '조건'이 바로 모하메드 요네의 축출임이 밝혀졌다. 3월 11일에는 새로운 3명의 군단의 이름이 'NO MERCY'임을 공표했다.

그 즉시 모하메드가 요청한 NO MERCY 3인 각자와의 싱글매치에서 3경기 모두 모하메드를 린치한 후 KENTA는 카네마루와 함께 마루후지 나오미치를 목표로 설정하고 마루후지 & 아오키 아츠시가 가지고 있던 GHC 주니어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에 도전선언을 한다. 마루후지가 경추 부상을 당해 타이틀을 반납하자 과거 카네마루에게 배신당했던 스즈키 코타로가 아오키 아츠시와 태그팀을 맺고 'ANTI NO MERCY UNION(ANMU)'를 자청하며 그들에게 맞섰다.

ANMU 태그팀을 상대로 5월 25일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 승리를 거두고 제 14대 GHC 주니어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에 오르며 노 머시 결성 이후 첫 번째 타이틀을 획득한다. 10월 16일 그들에게 주니어 헤비급 태그팀 타이틀을 잃었다. 11월에는 스기우라 타카시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GHC 헤비급 챔피언 도전권을 획득한다. 글로벌 리그에도 출전하였으나 모리시마 타케시에게 패배하여 준우승한다. 12월에 GHC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였으나 글로벌 리그에서의 KENTA 본인의 무릎 부상이 겹쳐 패배하였고, 이후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휴식기를 가졌다.

2011년 말에 프로레슬링 대상 부문에서 KENTA는 기능상을 수상했지만, 2012년 초 NOAH 경영진 내부의 심각한 비리와 부패 경영 등 NOAH의 내부 문제가 폭로되었고, 파벌 갈등에서 밀려난 아키야마 쥰 파벌[26]의 소속이었던 카네마루가 12월에 퇴단을 발표하고 12월 24일 아리아케 대회를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NO MERCY는 해체되었다.


2.1.5. 헤비급 전향[편집]


2012년 7월에 복귀한 후 완전히 헤비급으로 전향했고, 9월에 모리시마 타케시의 GHC 헤비급 챔피언쉽 벨트에 도전했으나 패배한다. 10월에는 마이바흐 타니구치와의 태그로 사모아 조와 매그너스를 꺾고 GHC 태그팀 챔피언에 올라 사상 첫 헤비급 벨트를 따낸다. 그러나 첫 방어전에서 허무하게 벨트를 뺏기고 만다. 그래도 11월에 열린 글로벌 리그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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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7일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모리시마 타케시에게 도전해서, GAME OVER로 탭 아웃을 받아내며 마침내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했다.[27] 챔피언으로써 마이바흐 타니구치를 첫 방어전 상대로 승리하고, 남미 투어 역시 참가하여 우승했으며 2013년 글로벌 태그 리그 또한 우승했다. 5월 11일에는 무도관 파이널 버닝 흥행에서 스승 코바시 켄타의 고별전인 4인 태그 매치에 상대로써 참가했으며, 이후에는 스기우라 타카시에게서도 벨트를 방어해내며 순조로운 집권기를 쌓았다.

KENTA는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타이틀을 9회 동안 방어해내며, 아키야마 쥰을 포함한 여러 선수들이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빠져나가고 야쿠자와 관련된 사기 사건이 터져 프로레슬링 NOAH가 붕괴설이 돌던 당시를 지켜내던 단체의 탑 스타였다. 1년 가까이 벨트를 지켜오다 2014년 1월에 모리시마 타케시에게 패배하고 벨트를 빼앗겼으며, 2014년 4월 30일에 프로레슬링 NOAH를 탈단하게 되면서 5월 17일에 라이벌인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다시 한 번 마루KEN을 결성해 스기우라 타카시 & 나카지마 카츠히코를 상대하며 고별전을 치렀다.


2.2. WWE[편집]



2.2.1. NXT[편집]



프로레슬링 NOAH에서의 15년 가량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2014년 7월 12일 WWE 오사카 투어 때 헐크 호건과 WWE 입단 계약식을 가지면서, 그간 WWE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프로레슬러 중 유례없는 대우를 받으며 화려하게 북미 커리어를 시작했다.

NXT 테이크오버 2: 페이털 포 웨이에서 윌리엄 리걸의 소개로 데뷔하면서, 자신의 링 네임을 이타미 히데오(Hideo Itami)로 바꾼 것을 발표하였다. 난입한 디 어센션을 몰아내며 데뷔 세그먼트를 마쳤는데, 정작 바뀐 이름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는 미묘한 반응. 기존에 사용하던 Go2Sleep 대신 탑로프 더블 풋 스톰프를 피니쉬 무브로 선보였으며 이후부터는 통역가로 푸나키를 데리고 다녔다.

이미 북미 인디 프로레슬링계는 KENTA의 ROH 참전 등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선수들이 많았고, 이것은 오히려 그와 기술이 겹치는 등 이타미 히데오로써의 커리어에 악수가 되었다.[28] 또 WWE의 특성상 스텝 킥, 측두부 킥 등 살벌한 킥 기술들과 하드 히팅을 일본이나 북미 인디 단체에서 하듯 쓸 수 없게 된다. WWE 스타일을 많이 수용하려는 시도는 본인 경기 스타일을 이도저도 아니게 바꿔버렸고, 본인의 이미지를 살리지 못하게 된다.

디 어센션과 대립하던 히데오는 이윽고 미스테리 파트너로 핀 밸러라는 링네임으로 NXT에 데뷔한 프린스 데빗을 데려왔고, NXT 테이크오버: R 에볼루션에서 2대2 태그팀 매치를 가져 승리한다. NXT 테이크오버: 라이벌에선 타일러 브리즈와 맞붙게 되는데 호응 챈트도 받는 등 선전하다가 러닝 싱글 레그 드롭킥인 샷건 킥으로 승리한다. 이때부터 샷건 킥을 피니쉬 무브로 밀었는데, 2015년 3월 28일 NXT 라이브 이벤트에선 그간 시도만 하고 시전하는 데 실패하기만 하던 GTS를 성공시켰다.


레슬매니아 액세스의 NXT 토너먼트 결승에서 핀 밸러를 꺾고 우승하면서 제2회 앙드레 더 자이언트 추모 배틀로얄에 참가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레슬매니아 31에서의 앙드레 더 자이언트 추모 배틀로얄에서는 보 댈러스를 제거했으나 바로 빅 쇼에게 제거되었다.[29] 2015년 5월 7일, 어깨 부상으로 인하여 6개월에서 8개월 간의 장기 결장을 하게 되었다. 2015년 7월 4일에 더 비스트 인 디 이스트에서 챔피언 케빈 오웬스를 이기고 NXT 챔피언이 될 예정이었으나, 부상 때문에 그 기회를 핀 밸러에게 내준다. 게다가 2016년 1월에 나카무라 신스케가 WWE와 계약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완전히 뺏긴다.[30] 거기다 합병증이 오는 바람에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2016년 7월 1일, 윈터 헤이븐에서 열린 NXT 라이브 이벤트에서 1년 2개월만에 복귀했다. 당시 WWE에서 출시된 티셔츠에 욱일기가 사용되었으나, WWE 레슬매니아 카페 회원 유저가 WWE SHOP에 직접 항의를 한 후 욱일기가 아닌 일반 일장기 디자인이 삽입된 티셔츠가 새로 출시되었다. NXT 위클리쇼에서 부사이쿠 니 킥을 피니시 무브로 썼고, 8월 20일 NXT 테이크오버: 브루클린 II에서 오스틴 에리즈노 웨이 호세의 경기 이후 등장해서, 에리즈에게 go 2 sleep을 시전한다. 라이브 이벤트가 아닌 쇼에서는 처음으로 사용한 것. 하지만 2016년 10월 1일 NXT 라이브 이벤트에서 나카무라 신스케와 팀을 이뤄 리딕 모스 & 티노 사바텔리를 상대로 태그팀 매치를 치르던 도중 상대방의 스쿱 파워슬램이 잘못 들어갔고, 이 때문에 목 부상을 당하며 또다시 전력에서 이탈했다


바비 루드 vs 이타미 히데오 대립 프로모[31]

2017년 4월 19일 NXT에서 컴백하여 NXT 챔피언 바비 루드에게 GTS를 시전한다. 그리고 NXT 테이크오버: 시카고 당일 NXT 타이틀 매치에서 바비 루드에게 패배한다.[32] 경기 후, 백스테이지에서 분노를 표출하다가 자신을 말리는 캐시어스 오노에게 욕설을 내뱉는다. 캐시어스 오노와 화해하는 듯했지만 결국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여 2017년 7월 26일 NXT에서 오노와 경기를 가지게 되자 로블로로 DQ패를 당한 후 두 번의 GTS + 철제계단에 GTS를 시전하는 뒤풀이를 한다.

그리고 관중들이 자신을 리스펙트하지 않는 것에 지쳤다며 이제부터 나답게 행동할 것이라 선언하며 턴힐하지만, 다음 경기를 위해 입장한 알레이스터 블랙에게 블랙 매스로 KO 당한다. 그리고 NXT 테이크오버: 브룩클린 III에서 알레이스터 블랙과 경기를 치르지만 패배한다. 게다가 2017년 9월 6일 NXT에서 NO DQ매치로 격돌한 캐시어스 오노에게 패했다.


2.2.2. WWE 205 라이브[편집]



2017년 12월 18일 RAW에 출연해서, 핀 밸러와 함께 미즈투라지 멤버인 보 댈러스 & 커티스 액슬을 상대로 메인 쇼에 데뷔해 승리한다. 이는 WWE 205 라이브에서 활동하게 된 이타미 히데오를 홍보하기 위한 연출이었다. 이후 연승행진을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go 2 sleep으로 브라이언 켄드릭의 코뼈를 부러뜨리면서 WWE 내에서 go 2 sleep이 봉인되고, 페이스브레이커 계열의 기술 및 변형 링스 오브 새턴을 새 피니쉬 무브로 민다.

엔조 아모레의 방출로 공석이 된 WWE 크루져웨이트 챔피언십의 주인을 가리는 토너먼트에 참가하게 되어 2018년 2월 6일 WWE 205 라이브에서 NXT 소속인 로데릭 스트롱과 경기를 가지지만 패해 1라운드에서 탈락한다. 토자와 아키라와 태그팀을 맺은 후 루차 하우스 파티(칼리스토, 린세 도라도, 그란 메탈릭) 멤버들에게 시비를 걸면서 이들과 대립을 시작했고, 2018년 4월 17일 WWE 205 라이브에서 린세 도라도 & 그란 메탈릭을 상대했다가 패한다.

이에 토자와 아키라와 분열해서 5월 22일 205 라이브 메인 이벤트 경기에서 토자와를 박살낸다. 6월 5일 WWE 205 라이브에서 경기 중인 버디 머피무스타파 알리를 습격했다. 이에 무스타파 알리의 제안으로, 6월 19일 WWE 205 라이브에서 트리플 쓰렛 경기를 가져 버디 머피와 무스타파 알리를 이기면서 챔피언인 세드릭 알렉산더와 WWE 크루저웨이트 타이틀전을 가지게 됐지만 패한다. 엔조의 방출 이후 WWE 205 라이브가 선수들의 경기력을 어필하는 환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WWE 내에서 경기 스타일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계속 그저 그런 모습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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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의 허락을 받고 2018년 9월 1일에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데뷔 20주년 기념 흥행인 '비상(飛翔)'에 WWE에서의 링 네임인 '히데오 이타미'로 참전하며 메인이벤트에서 라이벌인 마루후지 나오미치를 상대한다. WWE에선 봉인당한 go 2 sleep과 추남에게 무릎차기, GAME OVER 등을 선보이는 한편 KENTA 시절의 스타일을 보여주며 좋은 경기 끝에 패한다.

이후 아리야 디바리와 함께 다니다 로얄럼블 2019에서 페이탈 포웨이 경기로 버디 머피WWE 크루저웨이트 타이틀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2019년 1월 29일 205 라이브에서 토자와 아키라와의 싱글 매치에서 패배한데다가 경기 후 아리야 디바리에게 숏 레인지 래리어트를 맞았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WWE 경기로 끝났다. 데이브 멜처는 AEW 출범 이후 제대로 활용 안 하는 선수조차 페이를 높여가며 억지로 붙잡고 있는 WWE가 이타미 히데오는 순순히 방출해준 것에 대하여, 아마도 그가 미국 내 단체로는 이적하지 않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조건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WWE 퇴사를 마친 그는 6월 1일 열릴 GCW 토너먼트 오브 서바이벌 4에 특별출연했으며, 함께 원래 링네임 KENTA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전성기 시절 북미 인디 선수들의 제 1순위 카피 대상이었던 점이 오히려 KENTA 본인이 북미에 진출할 때 자신의 스타일이 강제로 봉인당하는 원인이 되었고, 잦은 부상 등 악운도 겹치면서 KENTA의 북미 커리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2.3. 신일본 프로레슬링[편집]



2.3.1. G1 클라이맥스 29[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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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9일, 오사카에서 열린 신일본 프로레슬링 도미니언에서 시바타 카츠요리와 함께 등장해 G1 클라이맥스 참전을 선언했다.[33]



Road to G1 Climax 29:
다시금 KENTA 자신이 믿는 프로레슬링을 하기 위해
G1 클라이맥스 29 PV

미국에서 치룬 G1 클라이맥스 29 개막전에서 이부시 코타를 상대로 승리했지만, 일본 복귀 후 첫 경기에서도 히데오 이타미 시절 동안 떨어졌던 폼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진 경기들에서도 틈만 나면 대형 보치[34]를 내고 있다. 팬들은 'KENTA는 미국에서 실종되고 히데오가 왔다'고 한탄하는 중. 결국 초반 4연승 이후 5연패를 기록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

G1 참전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해도 'KENTA가 왜 프리 신분이냐 당장 전속 계약하라'거나 '명실상부한 오카다 카즈치카 원탑 시대에 타나하시 히로시, 나이토 테츠야, 이부시 코타, 제이 화이트 같은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넘치는 마당에 KENTA를 어떻게 써먹을 생각이냐' 등 행복회로를 돌리던 팬들은 부진한 내용에 실망해 팬심이 싸하게 식어버렸다. 데이브 멜처는 "KENTA는 여전히 뛰어난 선수지만, 다른 선수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상대적으로 평가가 낮아졌다"고 설명했다.[35]

KENTA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데뷔한 6월 9일은 과거 KENTA의 홈그라운드였던 프로레슬링 NOAH의 초대 사장이자 간판 스타였던 미사와 미츠하루를 추모하는 흥행이 열리는 날이었다고 한다. 그런 날 흥행에 참여하는 대신 다른 단체의 리그전에 데뷔한 것을 두고 씁쓸한 심정을 토로하는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트윗이 올라왔다. 대신, 도쿄 스포츠 신문에 그의 신일본으로의 커리어를 응원한다는 스승 코바시 켄타의 코멘트 또한 올라왔다.


2.3.2. GO2SLEEP CLUB[편집]




G1 마지막 날 CHAOS와 연맹해서 불릿 클럽과 태그팀 매치를 가지던 KENTA였지만, 경기 후반 CHAOS를 배신하고 그 멤버인 이시이 토모히로에게 Go 2 Sleep을 날리면서 턴힐, 불릿 클럽에 가입했다. 그러자 그를 일본에 불러들인 시바타 카츠요리가 분노하여 난입했지만 불릿 클럽과 힘을 합쳐 시바타를 역으로 린치해버렸다. 고전적인 선악대립 방식의 턴힐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잘나갔던 인물이 초라하게 몰락할 형편이 되자, 몸도 성하지 않은 절친을 그의 피니쉬 무브를 먹이고 배신했다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출된 것.[36]

G1 리그전도 아닌 전초전 격으로 넣은 태그팀 경기, 더구나 대회 마지막 일정인만큼 승자의 윤곽이 대략 나오기 때문에 관중들의 긴장감이 많이 가신 분위기에서 뜬금없이 대형 턴힐 사건이 터지면서 팬들이 열광했다. 데이브 멜처 역시 근 30년 이래 자신이 본 최고의 턴힐 무대였다며 극찬했다. 리더가 4대째 제이 화이트로 내려오면서 위용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던 불릿 클럽 역시[37] KENTA라는 빅네임을 포섭하고 제이 화이트가 G1 결승에 진출하는 겹경사(?)를 맞이하며[38] 다시 한 번 악명을 떨쳤다.

그리고 8월 31일에 열리는 영국 투어 로얄 퀘스트에서 이시이 토모히로가 보유 중인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십에 도전하게 됐다. 치열한 공방 도중 수직낙하식 브레인버스터를 맞고 패배할 위기에 처했지만, 불릿 클럽이 방해하면서 위기를 넘기고 그대로 기세를 가져와 Go 2 Sleep을 적중시키는데 성공해 NEVER 무차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시합 종료 후 인터뷰에서 이부시 코타를 도발하며 이부시가 소유 중인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도전권 쟁탈전을 요구했고, 디스트럭션 2019 카고시마에서 권리 쟁탈전이 확정됐다. 이부시가 링에 오르자마자 공격하고 도전권리증이 들어있는 가방을 무참히 부수고 게릴라즈 오브 데스티니의 난입까지 악랄함의 극치를 보여줬지만, 고향 버프를 받은 이부시에게 패배하며 권리증을 따는데 실패했다.

월드 태그 리그에서는 카메라를 상대로 얀데레 남자친구 역을 맡으며 드라마를 찍고 있다. 파트너인 타카하시 유지로도 껴서 콩트식으로 만드는중. 결국 월드 태그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고토 히로오키와의 NEVER 타이틀전이 레슬킹덤 14에서 열리게 됐다. 고토 히로오키를 히로고토라면서 조롱하고 시도때도 없이 싸우는 모습을 보였는데 결국 레슬킹덤 14 2일차에서의 맞대결에서 패배해 타이틀을 잃게 됐다. 이후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아무도 상상못한 엄청난 일을 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이때까진 아무도 그의 말에 주목하지 않았지만...


2.3.3. 사상최악의 난입자[편집]



나이토가 메인 이벤트에서 승리해 2관 챔피언에 오르고 데하폰을 외치려는 순간 기습을 건다는 전대미문의 행동을 보이며 수많은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신일본 공식 트위터의 팬들의 반응만 봐도 KENTA가 잘했다는 의견은 있지만 대체로 도쿄돔 피날레를 망쳤다면서 안좋은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당사자인 KENTA는 자신에게 욕을 더해달라고 열심히 어그로를 끌었다.[39] 심지어 자신의 SNS로 비난하는 팬들의 타임라인에 일일이 들어가 악플로 맞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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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열린 뉴 이어 대쉬에서 등장하자마자 엄청난 야유를 받았다.[41] 챈트에 소극적인 일본 관중들조차 경기장이 떠나갈듯한 야유를 할 정도로 명실상부 신일본 최악의 탑힐로 자리매김한 것. 심지어 그런 야유를 음악삼아 춤을 추거나, 관객들을 비웃는 등 밉상 짓으로 응수했다. 경기에선 제이 화이트와 팀을 맺어 SANADA, 나이토에게 경기 종료 이후에도 뒷풀이식 린치를 가하며 악역으로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굳혔다.

역대급 턴힐로 불릿 클럽에 가입해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걸로 모자라, 연초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으로 수많은 팬들에게 엿을 먹이고는, 심지어 이를 갖고 시종일관 깐족대는, 즉 기믹을 떠나 팬들의 진짜 분노를 일게하는 신일본의 탑힐로 부상했다.[42] 결국 더 뉴 비기닝 in 오사카 2020에서 나이토 테츠야와의 IWGP 헤비웨이트 & IWGP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더블 타이틀 매치가 성사되었다.

경기당일 불릿 클럽 멤버 전원을 끌고 나왔으나, 레드 슈즈 운노 심판의 심기를 거스른 탓에 전원 아웃 당했다. 이후 경기가 시작됐으나 나이토를 피해 링 밖을 어슬렁거리며 무려 5분이 넘도록 신경전만 펼치는 진상짓을 선보였다. 본격적으로 시합이 진행되자 악랄한 반칙성 공격과 도발로 야유를 불렀다. 중간에 제이 화이트가 난입했으나, BUSHI타카하시 히로무의 도움으로 퇴치당했고 종반부엔 턴버클을 풀은 코너에 나이토를 쳐박아 기어코 피를 보고 말았다. 그러나 GTS를 데스티노로 반격 당한 후 이어진 데스티노에 결국 패배하고 만다.

팬들은 역대급 대사건을 일으킨 것에 비해 쉽게, 그것도 썩 훌륭하진 않은 경기로 마무리된 것을 아쉬워했다. 이렇게 끝날거면 굳이 레슬킹덤에서 그런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해야만했냐는 평.


2.3.4. IWGP US 헤비급 챔피언[편집]


코로나 사태로 대부분의 외국인 선수들이 일본에 오지 못했고,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던 KENTA도 그 여파로 활동을 못했었다.

그러나다 신일본 미국 지부에서 개최되는 뉴 재팬 컵 2020 USA 에 참가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8월 8일에 벌어진 1회전에서 GTS로 칼 프레드릭스를 꺾었다. 2회전에서 제프 콥, 결승전에서 데이비드 핀레이에게 승리를 거두며 IWGP US 챔피언십에 도전할 수 있는 권리증[43]을 얻었지만 제프 콥이 난입해 KENTA를 쓰러뜨리고 권리증 쟁탈전을 요구했다.

9월 12일에 제프 콥과의 권리증 쟁탈전에서 체이스 오웬스의 도움으로 방어전에서 승리한다.

9월 19일에 개막하는 G1 클라이맥스 30에 B블록에 편성되어 2월 뉴 비기닝 오사카 대회 이후 약 7개월만에 일본에서 경기를 가지게 된다.

G1 결승에 진출하는데 실패했고, 공식전 도중에 타나하시 히로시를 권리증 가방으로 공격하다가 가방에 금이 간다.[44] 그러나 결국 타나하시에게 패배하였고, 그 인연(?)으로 타나하시가 권리증의 도전자가 된다. 그리고 파워 스트러글 2020에서 타나하시를 상대로 방어해냈고, 가방 뒷면에도 금이 갔다면서 변상을 요구했다...

이후 월드 태그 리그 &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기간 동안 종적을 감추며, 미국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그리고 이후, 월드 태그 리그 2020의 메인 이벤트에서 깜짝 난입해, 가방으로 쥬스 로빈슨을 가격하며, 타마 통가 & 탕가 로아의 우승을 도왔고, 이후 쥬스 로빈슨이 켄타의 IWGP US 헤비급 타이틀 도전 가방에 도전하게 된다. 그런데, 쥬스 로빈슨이 안와골절로 결장하게 되었고, 그를 대타해서 로드 투 도쿄 돔 일정에 참가한 코지마 사토시가 도전하게 되었다. 레슬킹덤 15에서 존 목슬리가 메세지를 보내게 되고, KENTA는 코지마를 상대로 방어해낸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후 방영 된 NJPW STRONG에서[45] 존 목슬리가 깜짝 등장하여 KENTA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뉴 비기닝 USA' 특집에서 IWGP US 헤비급 타이틀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2월 3일 AEW에 등장해 KENTA가 6인 태그팀 매치로 목슬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케니 오메가를 공격하는 목슬리를 습격했다. 이후 퇴장하는 KENTA를 케니가 아는 척하며 환영한다고 했지만, KENTA는 오히려 욕설과 함께 자신은 케니의 친구가 아니라고 답했다. 이후 다음주 AEW 다이너마이트 메인이벤트로 '폴스 카운트 애니웨어 매치 케니 오메가 & KENTA VS 존 목슬리 & 랜스 아처'가 예고되었다.

양 단체 협업의 신호탄을 알리며 긴 빌드업을 쌓았지만, 결국 2월 26일 목슬리와의 US 타이틀 전에서 패배했다. 피니쉬를 맞기 직전까지 쌍뻐큐로 도발하고 패배 후에도 타이틀에 미련을 못버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향후 대립을 이어갈진 미지수.

2021년 POWER STRUGGLE에서 타나하시 히로시를 꺾고 결국 IWGP U.S. 챔피언에 오르게 되었다. 다만 현재 존 목슬리는 알코올 중독증 치료를 위해 잠시 쉬는 중이라 재경기는 당분간 없을 듯. 그 대신 CM 펑크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레슬킹덤 16에서 타나하시 히로시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른다. 그리고 프로레슬링 NOAH와 합동 흥행을 하는 1월 8일 NOAH 소속으로 3인 태그매치에 참가한다. NO DQ로 치뤄진 방어전에서 패배해 타이틀을 2달만에 잃었는데 이 경기에서 코뼈 골절, 좌측 고관절 후방 탈구 골절 등의 부상을 입어 NOAH 합동 흥행까지 결장하게 됐다.

6월 3일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29에서 복귀하는데 불릿 클럽 멤버들과 투 스윗을 하며 본인이 불릿 클럽에 잔류함을 나타내었다. 이후 다시 NOAH에도 출전하며 신일본과 NOAH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G1 클라이맥스 32에 참전했으나 인터뷰 단계부터 통역을 불러서 외국인 흉내를 내고 본인 자서전 홍보에만 열을 올리면서 우승에 욕심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좋은 경기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불릿클럽 일원으로서 정규군과 태그팀 경기를 하다가 전에 본인을 부상입힌 타나하시 히로시와 마찰이 형성되었다.

2023년에 임팩트 레슬링에서 열리는 노 서렌더 2023에 임팩트 레슬링에서 활동중인 다른 불릿 클럽 멤버인 에이스 오스틴 & 크리스 베이와 같이 KUSHIDA & 모터 시티 머신건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2월 11일 더 뉴 비기닝 in 오사카 2023에서 타나하시 히로시를 상대로 치열한 경기를 하나 결국 패배하고 복수는 실패한다.


2.3.5. NJPW 스트롱 오픈웨이트 챔피언, 옛 멤버 축출에 일조[편집]


배틀 오브 밸리 2023에서 프레드 로서를 꺾고 새로운 NJPW 스트롱 오픈웨이트 챔피언에 오른다. 멀티버스 유나이티드 2023에서 스즈키 미노루를 상대로 스트롱 오픈웨이트 챔피언십 매치로 격돌하면서 승리를 거둔다. 경기 후 스즈키가 무기를 들고 난입하려다 끌려갔기에 그대로 대립은 마무리 되었다.

3월 달부터 새로운 리더인 데이비드 핀레이를 엘 판타즈모가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리더없이 다 같이 친하게 지내자는 말을 하였던 때와 다르게 4월 8일 사쿠라 제네시스에서 판타즈모가 이시모리와 본인을 믿었던 신뢰를 저 버리고 판타즈모를 공격하여 축출하는데 일조한다.

이후 정규군과의 경기 이후 승패와 관계없이 핀레이는 타마를, 본인은 히쿠레오를 공격하여 제압 후 승리 모션을 취하였다. 5월 3일 레슬링 돈타쿠 2023 NJPW 스트롱 오픈웨이트 챔피언십에서 자신보다 체급이 큰 히쿠레오를 상대로 치열한 대결을 펼쳤으나 허를 찔러 들어간 갓 샌드를 버티지 못하고 패배하였다. 이후 핀레이를 기습하고 정규군으로 합류한 엘 판타즈모가 핀레이, 이시모리 타이지와 함께 본인을 언급하면서 판타즈모와 대립구도가 생기게 되었다.

NJPW 리서전스 2023에서 히쿠레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통산 2회 스트롱 오픈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고, 경기 후에 에디 킹스턴이 등장해서 KENTA의 스트롱 오픈웨이트 챔피언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7월 5일에 벌어진 신일본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에디 켕스턴과 맞붙지만 패하면서 챔피언 자리를 잃는다.

멀티버스 유나이티드 2에서 데이비드 핀레이 & 에이스 오스틴 & 크리스 베이 & KENTA & 알렉스 코글린 & 클락 코너스가 팀을 이뤄 조쉬 알렉산더 & PCO & 엘 판타즈모 & 타마 통가 & 탕가 로아 & THE DKC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G1 클라이맥스에 참가하면서 올해도 또 외국인 흉내를 냈다(...). 심지어 기껏 일본어로 말해놓고 통역사에게 다시 통역을 시키는건 덤.

바운드 포 글로리 XIX에서 크리스 세이빈를 상대로 X 디비전 챔피언 매치를 벌이지만 패하면서 챔피언 등극에 실패한다.

3. 사용 기술[편집]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슈터 스타일로는 시바타 카츠요리와 함께 대표로 꼽히는 선수다. 시바타 카츠요리는 격투기 스타일인 반면 KENTA는 정제된 프로레슬링 스타일과 직선적인 격투기 스타일의 경계에서 줄을 나름대로 잘 탄 타입의 킥파이팅을 일본에서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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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2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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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남에게 무릎차기 자체는 마지막에 나오는 기술인 런닝 프런트 하이 니 벗을 뜻하지만, 보통은 바디 블로우→하리테 2연타→롤링 케사기리 →하이킥의 콤비네이션까지 모두 합쳐서 추남에게 무릎차기라 부른다. 이 이상한 기술명의 유래는 같은 프로레슬링 NOAH 소속 스기우라 타카시의 얼굴을 까는 의미(...)인데, 스기우라가 엄청난 노안이기 때문이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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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렉스 자세로 든 상대를 돌려서 앞쪽으로 슬램하듯 떨어뜨리는 팔콘 애로우가 있다. 2006년 10월 29일에 마루후지 나오미치를 상대할 땐 에이프런에서 뛰어내리며 나락식 팔콘 애로우를 시전한다.


G2S와 러닝 사커볼 킥 콤보.

파워 밤파워슬램 등 상대를 들어 던지는 기술들도 쓰는데, 피셔맨 수플렉스는 거구인 캐시어스 오노에게 시전할 정도로 완력 또한 나쁘지 않다.


4.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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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스승은 '절대왕자' 코바시 켄타로, 프로레슬링 게임을 하던 KENTA가 이름 차이가 딱 한 글자 나서 코바시 켄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코바시가 은퇴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KENTA와는 여전히 좋은 사제 관계로 남아 있다고. 반대로 그의 라이벌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코바시의 전우이자 상대였던 미사와 미츠하루의 짐꾼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따라서 사내 파벌도 KENTA는 코바시 라인, 마루후지는 미사와 라인. 둘 모두 파벌 내에서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로 점찍어졌던 레슬러였다.

  • 별개로 스승인 코바시의 훈련량과 강도는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항상 훈련과 연습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이건 본인이 아닌 제자에게도 예외가 없었던 것. 2002년 하와이 투어 당시 훈련에 동참했던 KENTA가 훈련이 너무 고되고, 가족들 선물을 사가고 싶어 제발 오늘은 쉬게 해주십시오라고 애원했다는 일화가 있다.

  •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온 뒤로는 마이크웍이 굉장히 발전했다는 평가가 있다. 백스테이지에서 타카하시 유지로와 로맨스 드라마 상황극을 하거나, 매 프로모 끝마다 YOSHI-HASHI를 두고 노부오는 얼굴이 못생겼다고 디스하는 등 깨알같은 부분에서 호평. 다만 KENTA 본인은 인터뷰에서 최근 가장 백스테이지에서 재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인터뷰어의 말에 딱히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 소고기를 좋아하며, 그 중에서도 일본 소 혀 요리를 좋아한다. WWE가 일본 투어를 왔을 당시에는 초밥과 야키니쿠를 먹으러 가겠다고 말했을 정도.

  • 취미는 스모 관람으로, 급이 꽤 높은 스모 선수 출신인 리키오 타케시와 사이가 좋아서 같이 스모를 보러가곤 했다.

  • WWE 시절 사용하던 링네임인 '히데오 이타미'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인 듯. 당시 인터뷰에서는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게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답했고, 2019년 턴힐 이후에는 자신을 히데오 이타미라 부르는 팬의 트윗에 리트윗하고 그런 사람 모른다는 투의 트윗을 하기도 했다.[47]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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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파이널 배틀 메인이벤트[★]
2005.12.17
파이널 배틀 2005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로우 키 vs _KENTA_(C)

파일:Pwnoah.png 역대 N-1 빅토리 우승자
2011

2012

2013
모리시마 타케시

KENTA

나가타 유지

파일:Pwnoah.png 역대 글로벌 태그 리그 우승자
2012

2013

2014, 2015
BRAVE
마루후지 나오미치 & 모하메드 요네

NO MERCY
타카야마 요시히로 & KENTA


탄환(弾丸(だんがん) 양키즈
다나카 마사토 & 스기우라 타카시

파일:Pwnoah.png 역대 글로벌 주니어 태그 리그 우승자
창설

2007,2008

2009
-

KENTA & 이시모리 타이지

DIS OBEY
스즈키 코타로 & 카네마루 요시노부
2009

2010

2011
DIS OBEY
스즈키 코타로 & 카네마루 요시노부

아오키 아츠시 & KENTA

ANMU[48]
아오키 아츠시 & 스즈키 코타로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뉴 재팬 컵 USA 우승자
창설

2020

2021
-

KENTA

톰 롤러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태그팀
로스 게레로스
(에디 게레로 & 차보 게레로)
(2002)

마루KEN
(마루후지 나오미치 & KENTA)
(2003, 2004)


아메리카스 모스트 원티드
(크리스 해리스 & 제임스 스톰)
(2005)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최고의 레슬링 피니셔
피티 윌리엄스
캐네디언 디스트로이어
(2005)

KENTA
Go 2 Sleep
(2006, 2007)


에반 본
슈팅스타 프레스
(2008)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태그팀상
엠블럼(炎武連夢(えん ぶ れ む)
다나카 마사토 & 오오타니 신지로
(2002)

마루KEN
(마루후지 나오미치 & KENTA)
(2003)

외적 태그
스즈키 미노루 & 타카야마 요시히로
(2004)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연간 최고 시합상 (베스트 바웃) [★]
2006년
10월 29일
프로레슬링 NOAH
Autumn Navigation '06 -최종전-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매치
_마루후지 나오미치_(C) vs KE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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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WE 시절 사용한 링네임. 일본식으로는 '이타미 히데오'라고 읽는 것이 맞지만 영어식 이름 배치로 인해 '히데오 이타미'라고 불렸다. 이타미 부분은 나루토의 페인에서 따왔고('아픔'이란 뜻의 '痛み'가 일본 성씨인 伊丹와 음이 동일) 히데오는 노모 히데오에서 따왔다.[2] 매 경기마다 1회 이상씩 중요한 순간이면 거의 반드시 나오는 주요 기술들. KENTA는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고 다소 마이너한 무브도 곧잘 소화해내고 응용해내서 수많은 인디 레슬러들이 그의 무브셋을 모방한 사례가 많다. 당장 시그니처 무브의 목록만 봐도 인디 출신 레슬러들이 주력기나 시그니처 무브로 장착한 동형기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3] 러닝 싱글 레그 프론트 드롭킥. 드류 맥킨타이어의 클레이모어와 동형기다.[4] 쓰러지거나 엎드린, 또는 앉은 상대의 후두부에 가격하는 킥. KENTA의 하드 히팅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술. 스승 코바시 켄타에게 찹이 있다면 정신없는 상대에게 자비없이 꽂아넣는 각종 킥이야말로 KENTA의 시그니처 무브다.[5] 러닝 프론트 니킥. 전성기 때는 바디 블로우→하리테 2연타→롤링 케사기리 →추남에게 무릎차기의 콤비네이션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명의 유래는 프로레슬링 NOAH 시절 동료였던 스기우라 타카시의 얼굴을 까는 의미(...)인데, 스기우라가 엄청난 노안이기 때문이다.[6] 후면 GTS. 아르헨티나 백브레이커 자세에서 들어가는 니 리프트 드롭.[7] 오모플라타 크로스페이스.[8] 파이어맨즈 캐리 니 리프트 드롭. 영미권에서는 Go To Sleep의 약자로 GTS라 불린다. KENTA는 이 기술의 개발자이자 원 사용자로, 그의 영향을 받아 이 기술을 장착한 인디 레슬러들이 많았다. 북미 메이저 단체에서 이 기술을 피니쉬 무브로 사용한 사례는 CM 펑크가 대표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펑크의 상징으로 굳어서 원조인 KENTA가 WWE에 데뷔했을 때 한동안 이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기껏 봉인이 풀렸더니 브라이언 켄드릭의 코뼈를 부러트리는 사고를 치고 또다시 봉인되는 바람에 WWE를 퇴단하고 일본으로 돌아와서야 겨우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9] NO MERCY 시절 때는 이 별명을 사용했다.[10] NXT와 계약했을 때 사용했던 별명.[11] 레슬킹덤 14에서 메인이벤트를 마무리하려던 나이토 테츠야를 습격하고 탑힐이 되었던 시점에서 얻은 별명. 다음날 뉴 이어 대쉬에서 챈트에 소극적인 일본 관중들조차도 경기장에 야유로 가득 채울 정도로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최고이자 최악의 악역으로 자리잡았다.[12] 2012년 7월 복귀전부터 WWE 입성 전까지 사용했던 테마곡.[13] WWE시절 사용하던 테마곡. 일본어로 하면 時は来た. 뜻은 "때는 왔다"로 일본 시대극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14] G1 29때부터 신일본에 참전하면서 사용했던 테마곡으로, KENTA 일본 커리어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만들어 준 테마곡. 턴힐하면서 테마곡도 같이 버렸기 때문에 사용 기간은 불과 두 달이 되었다.[15] G1 29 마지막날 불릿 클럽에 가입하고 나서부터 사용하는 테마곡.[16] 정식 싱글 매치 데뷔. 단순히 프로레슬러로써의 데뷔는 같은 해 3월 24일 고라쿠엔 홀의 배틀로얄에서였다.[17] 초대 챔피언[18] 똑같이 '레슬러들의 레슬러'로 각광받던 받던 동료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경우, 마루후지의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링 워크와 천재적인 기술 응용력 자체의 카피가 불가능하여 기술 일부, 혹은 링워크 일부만 카피되는 경우가 많았을 뿐 마루후지의 경기 스타일 자체가 카피될 수는 없었다.[19] 카와다 토시아키, 후치 마사노부, 타이요 케아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프로레슬링 NOAH로 합류했다.[20] 원래 주니어에서 시작해서 헤비급으로 옮겼다.[21]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5년 올해의 경기 10위[22]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6년(2005년 12월부터~2006년 11월까지의 경기가 산정 기준) 올해의 경기 6위[23] 오리지널 버닝 해머와 달리 펌프핸들 자세에서 들어올려 한 팔을 잡고 시전하는 버닝 해머.[24]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6년 올해의 경기 2위에 이름을 올린다.[25]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6년 올해의 경기 3위[26] 멤버는 아키야마, 카네마루, 시오자키 고, 스즈키 코타로, 아오키 아츠시.[27] 이때 챔피언이 된 KENTA 전용 티셔츠로 THE CHAMP IS HERE 티셔츠가 발매되기도 했었다. 상단의 이미지에서 입고 있는 것이 그것.[28] 당장 피니쉬 무브인 Go 2 Sleep부터 CM 펑크가 GTS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었고, 추남에게 무릎차기는 대니얼 브라이언의 러닝 니, 오모플라타 크로스페이스인 GAME OVER 역시 브라이언의 예스 락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둘 모두 과거에는 KENTA와 무브셋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은 레슬러들이었던 것. WWE는 선수 존중 차원에서 시그니처 무브나 피니쉬 무브가 겹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29] 원래 다른 NXT 선수가 레슬매니아 31에서의 앙드레 더 자이언트 추모 배틀로얄에 올라갈 예정이었으나 후지나미 타츠미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일본 기자단이 온 상황이라 이타미 히데오로 변경했다고 한다. 당일 앙드레 더 자이언트 배틀로얄을 본 데이브 멜처는 기껏 NXT에서 토너먼트를 개최해서 우승자를 참가시켰으면서, 그런 이타미 히데오를 자버마냥 허무하게 탈락당하게 했다며 비판했다.[30] 2010년대에 WWE 다음가는 단체가 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대표 선수였던 나카무라 신스케는 세계적인 스타인데다가 빅맨이고, KENTA 시절의 스타일을 잃은 이타미 히데오와 달리 신스케는 본인의 스트롱 스타일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큰 인기를 끄는 일본인 WWE 슈퍼스타가 된다.[31] 당시 NXT 동기들은 다들 한번씩 NXT 챔피언십을 획득해보고, 메인으로 콜업된 것에 비해 부상으로 공백기를 가져야만 했던 본인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32] NXT 테이크오버: 라이벌에서 타일러 브리즈를 상대한 이후 처음으로 NXT에서 좋은 경기를 만들었다고 데이브 멜처가 평하며, 나카무라 신스케와는 달리 이타미 히데오는 자기 스타일을 버리고 WWE 스타일을 받아들이려다가 경기 스타일까지 애매모호해졌다고 평했다.[33] 이 때 시바타의 상징과도 같은 takeover 티셔츠를 노란색 로고 버전으로 입고 등장했다.[34] botch. 레슬링 기술이나 각본 등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것. 흔한 말로 삑싸리. 특히 배드 럭 팔레 전은 러닝 빅붓을 날리다가 엉덩방아, 염력 미사일 드롭킥, 다이빙 엉덩이 스톰프로 이어지는 역대급 보치들이 총출동 한데다가 난입 깽판 또한 빠지지 않았고, 심지어 엔딩은 빅맨인 팔레의 롤업 승리라는 점까지 더해지면서 G1 클라이맥스 29 최악의 경기로 평가받고 있다.[35] 단순한 실드가 아니라 멜처는 2010년대 프로레슬링계가 특이점을 돌파했다고 평가한다. 20세기 전설적인 선수들을 데려와도 현재 탑 플레이어들에게 한수 뒤진다는 것.[36] KENTA와 시바타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이 머리를 걷어차는 러닝 사커볼 킥인데, 시바타는 몇년 전 시합 도중 부상으로 두개골을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고 은퇴한 인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출되었다.[37] 제이 화이트는 AEW로 이적한 케니 오메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게도가 급하게 푸쉬를 주었다. 그렇다보니 나름 오래 활동한 프린스 데빗이나 북미에서도 명성높은 AJ 스타일스, 케니 오메가에 비하면 경력이 많이 초라하고 경기력도 아직 불안정한 편이다. 겨우겨우 비열한 악역 경기 스타일을 장착하면서 평가가 좋아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38] 하지만 결국 제이 화이트는 이부시 코타에게 결승전에서 패배함으로써 준우승에 머무르고 만다.[39] KENTA의 난입으로 인해 호불호는 갈릴지 몰라도 이야기 자체는 좋다는 감상도 있다. 당연히 나이토와 KENTA가 싸우게 될것인데, 동시에 벨트를 노리고 있을 제이 화이트의 반응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궁금해진다는 것.[40] 죄다 아저씨들뿐이라고 한심하다며 깠다.[41] 자막에서조차 그를 사상최악의 난입자로 소개했다.[42] 최근 견줄만한 히트를 쌓았던 선수로는 토마소 치암파MJF 정도뿐.[43] G1 클라이맥스 우승 시 주는 권리증처럼, 방어전을 펼치면서 나중에 존 목슬리의 IWGP US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다.[44] 테이프로 붙여놓고, 펜으로 금간 부분에 화살표와 함께 타나하시라고 써두었다.#[45] 다만 녹화 방송이기에, 실제로는 KENTA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한참 전에 미리 찍어둔 녹화본이다.[46] 사실 노안이기도 하지만 원래 스기우라가 NOAH 내에서도 나이가 좀 많은 편이다.[47] 2ch 사이트에 일본 현지 네티즌이 WWE 진출 당시 부여받은 히데오 이타미를 가리켜 前 신일본 소속 선수 히라사와 미츠히데가 활동한 실패한 기믹인 히데오 사이토의 재림이 되는게 아닌가라고 글을 올린적이 있었다.[★] A B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48] ANTI NO MERCY UN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