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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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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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 포스트시즌 진출
* 2003 시즌 문서 이후부터 문서 존재





KIA 타이거즈 2012년 페넌트레이스 월별 일정
4월
5월
6월
7월
8월
9~10월

KIA 타이거즈 2012 시즌 성적
순위



승률
1위와의 승차
5 / 8
62
6
65
0.488
15.5

1. 개요
8. 총평
9. 둘러보기 틀




1. 개요[편집]


KIA 타이거즈의 2012 시즌을 정리한 문서.

2. 4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2012년/4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5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2012년/5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6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2012년/6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7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2012년/7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8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2012년/8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9~10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2012년/9~10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총평[편집]


전체적으로 기대 이하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사실 삼성 라이온즈와 자웅을 겨룰 우승 후보로 점쳐졌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4강권은 커녕 하위권에서 계속 허우적대며 실망스러운 성적만을 남겼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동열 감독이 부임하면서 2011년 KIA의 유일한 약점이라 불리던 불펜진의 개선으로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리라 본 사람들이 많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불펜은 고사하고 철벽을 자랑하던 수비마저 구멍이 뻥뻥 뚫리며[1] 팀 전체가 흔들리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종범을 선수단 장악을 이유로 은퇴시켰다는 사실 때문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롯데에 이어 팀홈런-득점 2위를 기록한 2011년에 비해 타선이 크게 부진했다. 그 이유로는 LCK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의 부재가 큰 몫을 했다. 이범호는 시즌 초중반 잠깐 나오고 다치는 게 겁난다며 출장을 거부하였으며, 최희섭은 장염, 치질 등으로 제대로 뛰지 못했다. 김상현이 그나마 간간이 나와서 활약해주긴 했지만 역시 유리몸 때문에 고생하였다. 또한 신종길은 시즌 초 기대를 모으긴 했으나 오히려 작년보다도 못한 성적을 내고 말았다. 그러자 안 그래도 타선에 대한 신뢰가 약했던 선동열 감독은 잦은 희생번트 지시로 타자들을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남은 타자들마저 부진하는 역시너지 효과를 낳고 말았다.

투수진에서도 잡음이 많았다. 에이스 윤석민은 10승도 거두지 못하였으며, 양현종은 여전히 영점이 잡히지 못했다. 한기주는 구속이 돌아오지 못하며 부진[2], 박경태는 좋은 공을 가지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손영민이 사생활 문제로 팀에서 쫓겨나면서, 그나마 박지훈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불펜마저 다 무너질 뻔하였다.[3]

코치진도 단체로 철밥통 소리를 들었다. 타격코치 이건열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건열이 유배된 이후 타격코치를 겸한 이순철도 제 몫을 하지 못했다. 수비코치였던 마츠야마 히데아키는 일제불량품, 일본송산[4]이란 꼬리표만 붙었다.

하지만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타선 쪽에서는 외야수 이준호, 내야수 윤완주, 1루수 황정립 등의 신예들이 발굴되었으며, 내야수 홍재호나 포수 한성구 등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역시 1군 경험을 쌓으며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했다. 투수진에서는 에이스 김진우가 돌아오고 앤서니 르루헨리 소사 두 용병 원투펀치가 쏠쏠히 활약해 주었다. 불펜에서는 박지훈, 홍성민 등이 새로이 떠올랐으며, 진해수한승혁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역시 앞으로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로 꼽혔다.

정리해 보면 기존 전력들이 이탈하거나 부진하였지만, 그 대가로 이들을 메워줄 새 전력들을 발굴하게 된 시즌. 조범현 감독의 철저한 소수정예 전력 관리를 통해 강팀을 만드는 스타일에서 선동열 감독의 두터운 선수층을 기반으로 강팀을 만드는 스타일로 변화하는 과도기라 할 수 있겠다.[5] 로마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팀의 고질적 문제인 마무리 투수를 포함한 불펜진과 장타력이 실종된 타선, 잦은 실책 개선 등을 앞으로 어떻게 보완해나가느냐에 따라 KIA가 강팀으로 거듭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신구장 공식 첫경기를 시즌 개막전으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6]

어쨌든 이때만 해도 KIA팬들은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이 올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리고 두시즌들에 비하면 이때는 양반이다.

9. 둘러보기 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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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2년 시즌 기록된 팀 실책만 88개로 96개인 LG에 이어서 수비 실책 2위다.[2] 일각에서는 선발 욕심으로 땡깡부린다는 설도 있지만, 속단하기는 이르다.[3] 불펜은 어느 한 투수가 빠지면 나머지에게 부담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2011년 두산만 봐도 임태훈이 빠져서 어떤 꼴이 났는지는...[4] 이름의 한자 표기가 松山秀明. 올 시즌 부진했던 기아의 포수인 송산에 빗댄 것으로 보인다.[5] 선감독 부임 이후로 2군 운영이 변화했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기아 2군은 4강 진출 실패한 1군과는 달리 남부리그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남부리그를 휩쓴 NC 다이노스에 이은 성적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6]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2010시즌부터 2년전 성적을 기준으로 그 해의 일정을 짠다. 그러므로 2014년 시즌 개막전을 광주에서 하는것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개막전이 3월 29~3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원정으로 잡히면서 확인사살. 참고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막전은 4월 1~3일 NC 다이노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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