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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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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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 | :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LG 트윈스 2004 시즌
4월
5월
6월
7월
8월
9~10월

페넌트레이스 성적
순위



승률
6
59
4
70
0.457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1.2. 선수 이동
1.2.1. FA
1.2.2. 트레이드
1.3. 신인 선수
1.4. 외국인 선수
1.5. 기타
2. 정규시즌
2.1. 시즌 전 전망
2.8. 상대 전적
2.9. 수상 및 기록
2.10. 선수별 개인기록
3. 총평


1. 스토브리그[편집]



1.1. 코칭스태프 이동[편집]


선동열 영입전에 뛰어들었지만 선동열은 삼성의 투수코치가 되었다. 전년도 프런트와 마찰을 맺은 이광환감독은 2군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 인해 주루코치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이순철이 1군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 6668587667이 서막을 열게 되었다.

2003년 1군 타격코치였던 황병일이 수석코치가 되었다.

한편 양상문 1군 투수코치는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공석이 된 투수코치에 상군매직 이상군이 부임했다. 1군 불펜코치 및 2군 투수코치로는 2001년 현역 은퇴 후 MBC ESPN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차명석이 부임했다. 타격에 김영직, 작전에 노찬엽, 수비 및 주루에 송구홍 코치가 임명됐다. LG에서 백업포수로 활동했던 장재중이 은퇴 후 곧바로 1군 배터리코치가 됐다. 1군 코칭스태프(이순철, 황병일, 김영직, 노찬엽, 이상군, 차명석, 송구홍, 장재중은 모두 프로선수 출신으로 이루어졌고, 8개 구단 중 가장 젊은 코칭스태프가 됐다.

2군은 이광환 전 1군감독을 사령탑으로, 투수코치에 김용수, 타격코치에 이건열, 수비코치에 김용국, 재활담당 코치에 박철영을 각각 임명했다.

2003시즌 재활코치 정삼흠과 타격코치 김상훈은 재계약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김정민 플레잉코치는 선수로만 활동한다.

1.2. 선수 이동[편집]



1.2.1. FA[편집]


2003년 11월 26일 FA 자격을 얻은 KIA의 진필중을 4년 30억원의 조건으로 영입하였다.

FA 미아가 됐던 유지현은 1년 4억3천만원(옵션 1억원)의 금액에 계약했다.

1.2.2. 트레이드[편집]


당초 이상훈과 더블스토퍼 구상이 있었으나 이상훈이 스프링캠프 도중 기타 관련 문제로 이순철과 갈등을 빚어 트레이드 대상자가 됐고, 결국 2004년 1월 14일 SK 와이번스의 양현석, 오승준을 상대로 전격 트레이드됐다.

1.3. 신인 선수[편집]




1.4. 외국인 선수[편집]


이지 알칸트라, 매니 마르티네스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현역 메이저리거인 알 마틴을 영입했다.

1.5. 기타[편집]


이병규가 주장이 됐다.

김재현이 고관절 관련 각서를 파기할 것을 구단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 정규시즌[편집]



2.1. 시즌 전 전망[편집]



2.2. 4월[편집]



2.3. 5월[편집]



2.4. 6월[편집]



2.5. 7월[편집]



2.6. 8월[편집]



2.7. 9~10월[편집]



2.8. 상대 전적[편집]


LG 트윈스 2004년 팀별 상대 전적
상대 팀
승 - 무 - 패
승률
승패마진
우열
현대 유니콘스
7 - 0 - 12
0.368
-5
열세
SK 와이번스
8 - 0 - 11
0.421
-3
열세
KIA 타이거즈
8 - 0 - 11
0.421
-3
열세
삼성 라이온즈
7 - 1 - 11
0.389
-4
열세
한화 이글스
10 - 1 - 8
0.556
+2
우세
두산 베어스
6 - 0 - 13
0.316
-7
절대열세
롯데 자이언츠
13 - 2 - 4
0.764
+9
절대우세
총합
59 - 4 - 70
0.457
-11
순위: 6 / 8

  • 분류 기준
    • 남색은 압도(승률 ≥ .800)를 뜻한다.
    • 청색은 절대우세(.650 ≤ 승률<.800)를 뜻한다.
    • 하늘색은 우세(.550 ≤ 승률 <.650)를 뜻한다.
    • 녹색은 백중세(.450 ≤ 승률 <.550)를 뜻한다.
    • 오렌지색은 열세(.350≤승률 <.450)를 뜻한다.
    • 적색은 절대열세(.200≤승률 <.350)를 뜻한다.
    • 갈색은 압살(승률 <.200)를 뜻한다.

LG보다 순위가 낮았던 한화와 롯데를 제외하고 모두 상대전적 열세를 당했다. 한화를 상대로는 2003 시즌 단 1승에 그쳤던 대전에서만 6승째를 올리며 2000년 이후 4년만의 우세 전적을 기록했다. 롯데를 상대로 13승2무4패로 절대우세를 기록했다. 이는 세 팀(두산, SK, 한화)을 상대로 우세를 기록한 롯데가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1]

두산을 상대로는 한때 두 번의 스윕패 포함 7연패로 2승11패까지 밀린 끝에 뒤늦게 2000년 이후 4년만의 잠실시리즈 스윕승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결국 6승13패로 절대열세로 밀리며 2003시즌까지 정확히 동률이었던 통산전적도 두산이 앞서가게 됐다. 5월까지 2위로 순항하는듯 했던 LG가 추락하기 시작한 시점도 6월 초 서승화의 다리걸기 퇴장이 있었던 두산과의 시리즈였다.

순위경쟁팀이었던 SK 및 KIA를 상대로는 백중세로 맞서는듯 했지만 시즌 농사를 좌우하는 9월에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상대전적 열세를 당했다.

삼성을 상대로 초반에는 5승1무2패를 기록하며 앞서갔지만 이후 11경기에서 단 2승9패에 그치며 1995년 이후 우세 없음 및 5년 연속 열세로 마감했다. 우승팀 현대를 상대로는 무난하게 7승12패로 밀렸다.

2.9. 수상 및 기록[편집]



2.10. 선수별 개인기록[편집]



3. 총평[편집]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한 LG, 원인은?(스포츠서울)
구단결산, LG 2% 부족한 엇박자 시즌

이광환 대신 이순철을 감독으로 선임하며 제2창단을 부르짖었지만 실제로는 본격적인 암흑기를 시작했다. 이상훈은 기타 파동 끝에 SK로 트레이드되었고, 유지현은 전력외로 분류된 뒤 1군에서 배팅볼을 던지다가 은퇴, 각서 파동을 겪었던 김재현은 고관절 부상에서 자유함을 알린 뒤 시즌 후 FA를 통해 SK로 이적했다. 그렇다고 이들 대신 새롭게 안착한 전력은 거의 없었으며, 외국인 선수 선발은 실패였다. 야심차게 30억원과 손지환을 주고 FA로 영입한 진필중은 34경기 15세이브 4패 ERA 5.24의 방화범으로 전락하며 홍현우에 이은 새로운 먹튀가 되었다.

새롭게 부임한 이순철은 선수단 장악을 위해 무리수를 뒀다. 외부인사의 영입과 내부인사의 퇴출이었다. 한화 코치였던 이상군과 MBC 해설위원이었던 차명석 코치를 투수코치에 임명했고, FA로 진필중을 영입했다. 반면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훈은 기타 파동 끝에 SK로 트레이드되었고, 유지현은 전력외로 분류된 뒤 1군에서 배팅볼을 던지다가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두 프랜차이즈 스타의 경기력이 떨어지고 있음은 분명해보였으나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슈퍼스타 이상훈을 내보내고 데려온 투수는 프로통산 1승의 오승준이었고, FA 미아 후 간신히 현역생활을 계속하게 된 유지현에게는 불과 34번의 타격기회만이 주어졌을 뿐이었다. 오래동안 팀의 핵심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두 선수가 팽 당하는 모습은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떨어뜨리고 팀워크를 저하시켰다. 6월 이후 월례행사가 되어버린 긴 연패 및 최대 승부처였던 9월의 부진은 선수단 장악을 위한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선수단 개편이 결과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시작은 좋았다. 시즌 초반 박용택, 박경수, 알 마틴 등의 맹타를 발판삼아 1위를 질주하며 돌풍을 일으키는 듯 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이 채 가기도 전에 삐그덕 거리더니 6월부터 4연패-8연패-5연패와 함께 중하위권으로 추락했고 6월 이후부터는 내내 KIA-SK-한화와 4강 턱걸이를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8월에는 8연승을 거두며 4위 싸움에 뛰어드는듯 했지만 8월말부터는 이승호, 박용택, 박경수 등 주축선수들이 부상으로 쓰러지며 잇몸으로 버티다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팀 ERA는 4.31로 중위권인 5위에 머무른 가운데 2003 시즌 최악의 모습을 보였던 공격력은 박용택의 부활 및 이병규-김재현의 가세에도 불구하고 답답했다. 팀타율은 0.259에 불과해 롯데 다음으로 낮았고, 팀득점도 588점으로 롯데에 이은 뒤에서 2위였다. 특히 기동력이 심각하게 실종되었는데 2003시즌 135개의 팀 도루로 전체 2위였던 수치가 단 1년만에 69개로 감소하여 홈런이나 연속 안타 아니면 점수가 잘 나지 않는 답답한 야구의 연속이었다. 도루성공률도 59%로 전체 5위였고, 리그 평균인 63.5%보다 낮아 뛰면 손해였다.

공격에서는 김재현이병규 등이 초반 제 몫을 못해 줬고 이들이 부활하니 다른 선수들이 부진했다. 한 선수가 잘하면 다른 선수가 못하는 엇박자가 계속됐다. 마운드도 이승호, 장문석, 김광삼으로 이어지는 토종 선발진의 호투와 신윤호, 서승화, 이동현으로 이어지는 중간계투진의 물량작전으로 버텼지만 이기는데 필요한 마지막 2%가 부족해 사투를 벌이고도 번번이 무릎을 꿇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우승에 애가 탄 프런트의 1·2군 코칭스태프 교체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승호는 시즌 초반까지만해도 토종 에이스답게 호투를 거듭했고 방어율과 탈삼진 부문 1위를 달리며 충분히 제몫을 해줬다. 그러나 6월말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공을 던지다 미끄러지면서 허벅지 가래톳과 어깨에 부상이 찾아왔고 결국 전반기를 마감해야했다. 후반기에 들어서도 부상에 발목이 잡혀 에이스다운 활약을 못하다가 8월말에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9승7패에 방어율 2.71의 빼어난 성적을 남겼지만 부상으로 인해 팀의 기대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그의 공백이 팀을 짓누르며 4강탈락의 빌미가 됐다.

형편없는 성적만을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간 투수 에드윈 후타도의 대체 외국인선수로 오른손 거포를 데려왔다면 시즌 성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당초 코칭스태프는 파워있는 타자를 영입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타자보다는 투수가 필요하다는 스카우트팀의 조언에 따라 브라이언 쿠퍼를 데려왔다. 그러나 쿠퍼는 5월 22일 입국한 뒤 한달 여동안 허벅지 통증을 핑계로 개점휴업 상태로 있다가 6월말에야 첫 등판한 뒤 4승4패 방어율 4.75의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는 동안 LG는 에이스 이승호의 부상과 득점력 빈곤으로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개인기록 순위에서 처참하기 그지없었는데 타격 부문에서 10걸에 든 선수는 이병규(타율, 안타, 득점)와 김재현(출루율)이 전부였다. 박용택은 16홈런으로 커리어 최다 홈런 및 첫 3할 타율을 쳤으나 9월 초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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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면 LG에 탈탈 털렸던 롯데는 두산에 10승9패로 우세를 기록했다. 그리고 두산은 LG에 한때 11승2패로 앞선 끝에 LG에 13승6패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