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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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역대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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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 | :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LG 트윈스 2007 시즌
4월
5월
6월
7월
8월
9~10월

페넌트레이스 성적
순위



승률
5
58
6
62
0.483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1.2. 선수 이동
1.3. 신인 선수
1.4. 기타
2. 정규시즌
2.1. 시즌 전 전망
2.8. 상대 전적
2.9. 수상 및 기록
2.10. 선수별 개인기록
3. 총평


1. 스토브리그[편집]



1.1. 코칭스태프 이동[편집]


김재박현대 유니콘스에서 이적해 1군감독으로 부임하였다.

1군 수석코치와 타격코치에는 김 감독과 현대 시절부터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정진호, 김용달 코치가 선임됐다. 롯데 감독 출신인 양상문 코치가 투수코치를, 윤덕규, 전종화 코치가 새롭게 1군 주루와 배터리 코치를 맡는다. 이순철 감독 중도 퇴진 후 팀을 이끌어 온 양승호 감독대행은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다.

◇LG 트윈스 코칭스태프 보직
△1군
▲감독 김재박 ▲수석 및 수비 정진호 ▲투수 양상문 ▲타격 김용달 ▲1루 주루 및 외야수비 윤덕규 ▲작전 노찬엽 ▲배터리 전종화 ▲불펜 차명석
△2군
▲감독 양승호 ▲투수 김용수 ▲타격 김영직 ▲1루 주루 및 외야 수비 이정훈 ▲수비 및 주루 송구홍 ▲배터리 서효인 ▲잔류군 성영재

1.2. 선수 이동[편집]


OB 베어스 시절부터 탈삼진 능력을 더불어 이닝이터의 모습과 완급조절까지 보여주던 국내 최고의 선발투수 두산 베어스의 박명환을 FA로 영입하였다.

1.3. 신인 선수[편집]



1.4. 기타[편집]




2. 정규시즌[편집]



2.1. 시즌 전 전망[편집]


작년 시즌에 최하위를 기록한데다 이병규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 진출한 만큼 여전히 하위권에 머무르며 2007 시즌도 비밀번호를 연장할 것이라는 전문가도 있었고 반대로 FA박명환을 영입하고 메이저리그 출신 봉중근삼성 라이온즈에서 12승을 기록한 팀 하리칼라도 영입하는 등 투수진에서 많은 상승을 이뤄냈으므로 4강 진출을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었다.[1] 전년도 정재복심수창이 안정적인 로테이션 피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셋의 유입이 플러스가 되리라는 전망이 있었다.[2]

2.2. 4월[편집]


새로 유입된 박명환봉중근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6연승의 상승세를 기록했으나 삼성전 오심논란이후 계속 루징시리즈를 기록하면서 승패마진 +1로 마쳤다. 마무리에선 우규민이 7세이브를 올리며 지난해의 호성적을 이어갔다. 하지만 선발요원으로 준비했던 심수창을 불펜으로 돌릴 정도로 중간계투 사정은 좋지 않다. 김민기가 노예처럼 등판했다. 삼성에서 재계약이 불발되자 영입한 외국인 투수 하리칼라도 퐁당퐁당 피칭으로 기대 이하의 모습.

톱타자가 고민이었으나 새롭게 이대형이 자리잡았다. 김상현, 조인성과 권용관이 기대 이상의 타격을 보여주며 하위타순은 나름 괜찮았다. 그러나 이병규의 일본 진출로 중심타선은 빈약해졌는데 외국인 타자 발데스가 고타율로 분전했으나 마해영이 7푼이로 전락하는 끝없는 부진 끝에 2군으로 가고 박용택의 타격감이 아직 올라오지 않으며 답답한 흐름의 경기가 많았다.

2.3. 5월[편집]


불펜이 총체적으로 무너지며 첫 주에는 현대에 루징시리즈, 봉중근안경현의 벤치클리어링이 있었던 어린이날 시리즈 두산전 스윕패로 최하위까지 떨어졌었다. 하지만 무패행진의 에이스 박명환을 앞세워 이후에는 루징시리즈가 없이 반등에 성공하며 불안정한 전력 속에서도 다시 5할대 승률과 상위권으로 올라오는데 성공했다.

선발에서는 박명환이 에이스 노릇을 해주고 최원호가 좋은 모습을 보였나 4월 호투하던 봉중근이 5월 들어 급격하게 부진하고 하리칼라는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이며 고민이 됐다. 롱릴리프에서 5선발이 된 정재복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불펜에서는 중간계투진도 불안하고 5월까지 시즌 14세이브로 세이브 공동1위를 기록중인 마무리 우규민이 아직 본인이 기록한 패전은 없으나 네 차례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불안한 모습. 마운드가 전체적으로 불안정한데 치열하게 순위경쟁하는 것이 기적일 정도다.

타선은 테이블세터인 이대형이종열이 잠시 슬럼프에 빠졌다가 5월 중순을 기점으로 다시 맹타를 휘둘렀고, 한때 극심한 부진에 빠졌던 박용택도 2할 후반대의 타율로 끌어올렸다. 최동수김상현, 조인성의 활약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타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심타선의 애매한 장타력. 외국인 타자 페드로 발데스는 선구안이 좋지만 5월까지 단 2홈런에 그쳤고 타율도 2할대 후반으로 내려왔다.[3] 지명타자에서는 황선일이성열, 김용우 등을 돌려쓰고 있지만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

월간 팀득점-실점은 97-130으로 득실차가 -33, 기대승률은 0.369으로 월간 최하위 KIA(0.365)와 4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월간 팀 성적은 11승2무10패로 한화-두산에 이어 3위다. 누적 기대승률도 0.408로 7위밖에 안되는데 실제 승률은 0.525로 4위인 기적적인 시즌 행보를 이어갔다.

2.4. 6월[편집]


롤러코스터를 제대로 탄 한 달이었다. 첫 경기였던 두산전에서 에이스 박명환의 친정팀 상대 호투로 기분 좋은 승리로 출발하며 선두와 1경기차 밖에 나지 않았으나 곧바로 4연패 두 번에 4연속 루징시리즈로 승패마진은 -3에 7위까지 추락했다. 이후 투타 조화를 이루며 KIA전 스윕 등 5연승 하면서 선두 SK와 2.5경기차인 4위가 됐으나 선두 SK를 만나 스윕패를 당하면서[4] 더 이상의 선두권 추격은 불가능해졌다. 그래도 마지막 주 5경기에서 4승1패를 기록하면서 누적 승패마진 +1에 4위로 마치는데 성공했고 두산, 한화, 삼성과 치열한 상위권 순위 다툼을 이어갔다.

봉중근이 5월부터 이어진 극심한 부진으로 6월 초 2군에 내려갔는데 복귀한 뒤 그럭저럭 던졌다. 그러나 8연승을 달리던 에이스 박명환이 6월 중순부터 3연패 부진에 빠진 것은 아쉬웠다. 하리칼라는 개막 두 달이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기대치에 못 미치는 모습으로 인해 퇴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6월에 가장 안정적인 선발 투수는 꾸준히 5~6이닝 정도 소화하며 3점대 평균자책점을 이어간 최원호였다. 불펜투수 쪽에서는 우규민이 6월 무실점으로 6세이브를 올리며 가장 먼저 20세이브에 도달한 투수가 됐다. 김민기도 월간 2점대 ERA를 기록하며 5점대였던 ERA를 3점대로 낮췄다.

타선에서는 장타력은 부족하지만 팀 타율 2위로 나름 괜찮았다. 그러나 5월까지 2할 후반대로 괜찮았던 김상현이 26타수 무안타 등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권용관은 월간 0.373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자신의 타율을 2할 7~8푼대로 끌어올렸다.

2.5. 7월[편집]



2.6. 8월[편집]



2.7. 9~10월[편집]



2.8. 상대 전적[편집]


LG 트윈스 2007년 팀별 상대 전적
상대 팀
승 - 무 - 패
승률
승패마진
우열
삼성 라이온즈
7 - 1 - 10
0.412
-3
열세
한화 이글스
6 - 0 - 12
0.333
-6
절대열세
현대 유니콘스
10 - 1 - 7
0.588
+3
우세
KIA 타이거즈
12 - 0 - 6
0.667
+6
절대우세
두산 베어스
7 - 1 - 10
0.412
-3
열세
SK 와이번스
6 - 0 - 12
0.333
-6
절대열세
롯데 자이언츠
10 - 3 - 5
0.667
+5
절대우세
총합
58 - 6 - 62
0.483
-4
순위: 5 / 8

  • 분류 기준
    • 남색은 압도(승률 ≥ .800)를 뜻한다.
    • 청색은 절대우세(.650 ≤ 승률 <.800)를 뜻한다.
    • 하늘색은 우세(.550 ≤ 승률 <.650)를 뜻한다.
    • 녹색은 백중세(.450 ≤ 승률 <.550)를 뜻한다.
    • 오렌지색은 열세(.350≤승률 <.450)를 뜻한다.
    • 적색은 절대열세(.200≤승률 <.350)를 뜻한다.
    • 갈색은 압살(승률 <.200)를 뜻한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상대전적이다. 4강팀과의 상대전적 맞대결에서 모두 열세를 기록했고, 탈락팀과의 상대전적은 모두 우세했다. 특히 한화를 상대로는 천적 류현진을 많이 상대하며 크게 밀렸다.[5]

2.9. 수상 및 기록[편집]


KBO 골든글러브:이대형(CF)

2.10. 선수별 개인기록[편집]


KBO 도루왕:이대형

3. 총평[편집]


6668587667의 암흑기 중 성적이 가장 좋았던 시즌이다.[6] 막판까지 치열한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을 펼쳤고, 암흑기 중 유일하게 70패를 당하지 않은 시즌이다. 그러나 실제승률보다 턱없이 낮은 피타고리안 승률, 상대팀에 리드를 내주지 않고 이긴 경기가 28승으로 최하위 등 전력의 약점이 너무나도 뚜렷하여 당시에도 전문가나 골수 팬덤으로부터도 운이 좋은 시즌으로 평가되기도 했고 그 우려는 이듬해 현실이 되고 말았다.

프랜차이즈 스타 이병규가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는 이탈이 있었지만 현대왕조의 수장이자 MBC 청룡의 간판 스타였던 김재박 감독의 부임과 함께 두산의 에이스 박명환의 FA 영입, 메이저리거 봉중근의 국내 복귀, 삼성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하리칼라와의 계약으로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시즌 초반 6연승으로 2위에 오르며 비슷한 시기 상위권에서 선전하던 8888577의 롯데와 함께 치열한 순위싸움으로 프로야구의 흥행을 주도했다. 이후 전력의 한계를 노출하며 수 차례 고비를 맞았지만[7] FA 첫 시즌 에이스로 활약한 박명환의 호투에 더해 때에 따라 집중력 있게 터져준 타선, 7월까지 ERA 1.30에 무패였던 마무리 우규민의 활약에 힘입어 5할 -3과 +3 사이에서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9월을 맞이하기 전까진 4연패를 7번 당하기는 했지만 5연패만은 당하지 않는 행보를 보였고, 중간에 5연승 두 차례, 4연승 두 차례를 기록하며 치열한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을 했다.

가을야구를 눈앞에 뒀지만 8월 마지막 날부터 9월 첫째주까지 무승부 1개를 포함하여 시즌 첫 5연패에 빠지고, 5연패를 할동안 무려 4경기를 불펜진의 방화와 수비진들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클러치 에러로 다 잡은 경기를 놓쳤으며 6경기 동안 1무 5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8] 결국 마지막까지 이를 수습하지 못한채 4위와 3게임차로 가을야구에 탈락하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결국 5년연속 가을야구 탈락으로 고배를 마셨고 비밀번호는 연장되었다. 삼성, 한화와 시즌 내내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했는데 후반기 들어 이 두 팀과의 승부에서 단 한 번도 위닝시리즈를 기록하지 못하면서 경쟁에서 밀려나고 말았다.[9] 특히 한화는 류현진을 표적등판까지 시키면서까지 LG와의 승부에 나서며 큰 이득을 봤다.[10]

선발 파트에서는 에이스 박명환이 3점대 초반의 ERA와 10승으로 중심을 잡으면서 시즌을 꾸려나갔다. 메이저리그 출신으로 기대를 모았던 봉중근이 어린이날 시리즈 벤치클리어링을 기점으로 부진에 빠지고, 삼성의 에이스였던 하리칼라가 LG에서는 자주 난타당하는 기대 이하의 피칭으로 인해 두산전 완봉승에도 불구하고 퇴출되었다. 베테랑 최원호는 전반기까진 '5무원' 혹은 '퀄무원'의 피칭으로 괜찮았지만 후반기 들어 잔부상에 시달리며 페이스가 꺾이며 ERA가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고 애매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이승호는 3~4년 전 '토종 에이스'의 위용은 온데간데 없어진 평범한 좌완 투수로 전락했다. 그나마 대체 용병 옥스프링이 잔여 두 달 동안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재계약에 성공했다. 전년도 팀이 최하위를 기록하면서도 나란히 규정이닝을 소화하며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던 심수창정재복은 팀의 포스트시즌 복귀를 위해 애매한 보직에서 굴려졌다. 정재복은 시즌 내내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규정이닝까지 넘겼다.

불펜에서는 좌완 원포인트 류택현이 23홀드로 생애 첫 홀드왕에 오르고 전년도 마무리투수로 떠오른 우규민이 30세이브를 기록하며 구원 2위에 올랐으나 전반적으론 매우 불안했다. 오죽하면 김재박 감독이 지난 해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던 심수창과 정재복을 불펜으로 뛰게 할 정도. 우규민은 전반기 세이브 1위에 7월까지 ERA 1.30으로 좋았지만 언더핸드 투수의 특성에 더해 툭하면 8회부터 불을 끄기 위해 등판하고 연장전 긴 이닝을 소화하는 등 과한 이닝수로 인한 체력 문제로 8월부터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역대 한 시즌 최다 블론세이브인 13블론을 기록하며 방화범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민기는 주로 셋업맨으로 나서며 17홀드를 기록했으나 ERA는 4.28에 달할 정도로 기복이 심하고 불안했다. 급한데로 선발에서 구원으로 돌린 심수창은 10홀드를 기록했지만 ERA는 4점대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구위로 찍어누르는 불펜투수가 없다시피했으며 오죽하면 김재박 감독이 조웅천이라도 사달라고 했을 정도이다. 결국 이듬해 약한 마운드 뎁스가 제대로 터져버리면서 2년만의 최하위의 원인이 됐다.

타선에서는 팀 타율 0.268로 3위에 올랐으나 득점력은 532점으로 5위에 그쳤는데 이는 팀 출루율과 장타율에서 0.338, 0.374으로 각각 7위, 6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대형과 박용택을 앞세워 팀 도루가 130개로 3위로 기동력이 준수했음을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장타력의 열세는 시즌 내내 팀의 고민거리였다.

이대형오태근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리드오프를 맡으며 3할 타율과 53도루로 생애 첫 도루왕과 함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11] 주장인 이종열은 2할 후반대의 고타율과 뛰어난 클러치와 작전수행능력으로 활약했고 오랜 시간 무명이었던 최동수는 데뷔 14년차를 맞아 첫 3할 타율과 100안타를 달성하며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 됐다. 또한 조인성은 FA로이드를 맞아 2010년 이전 타격 커리어하이를 세웠고, '수비형 유격수'로 꼽히던 권용관은 후반기 타격감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7월까지는 2할 후반대의 고타율로 선전했다.

2007 시즌 LG의 테이블세터와 하위타선은 훌륭했지만 가장 큰 고민은 중심타선의 장타력 및 클러치 능력 부족이었다. 주로 용병 발데스-최동수-박용택으로 클린업이 꾸려졌는데 김동주, 양준혁, 심정수, 크루즈, 김태균, 이범호, 이대호, 브룸바 등 거포들이 즐비했던 타 팀의 클린업에 비해 LG의 클린업은 홈구장이 잠실구장임을 감안해도 장타력과 클러치 능력에서 심각하게 빈약했다. 일본프로야구 경험으로 기대를 모았던 발데스는 선구안이 좋았지만 전반기에 단 3홈런에 그치는 등 부족한 장타력과 느린 발에 좁은 수비범위로 '발Death'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애매한 모습을 보였다. 박용택은 여전히 알을 깨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며[12] 최동수가 4번을 맡는다는 점은 오히려 타선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실이었다. 오죽하면 이해 팀내 타점 최다를 기록한 선수가 주로 6~7번에서 나왔던 73타점(리그 전체 9위)의 조인성일 정도.

그렇다고 팀내 핵심 유망주들이 잘 컸던 것은 아니다. 풀타임 주전 3루수로 기회를 받았던 거포 유망주 김상현은 5월까지의 호타를 이어가지 못하고 끝없는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실망스러운 시즌을 마쳤으며 정의윤이성열, 박경수는 대타와 플래툰을 전전하며 이도저도 아닌 시즌을 보냈다. 무엇보다도 이해 커리어하이급 성적을 냈던 이종열과 최동수는 언제 은퇴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고, 조인성 역시 30대를 훌쩍 넘긴 상황이었다. 더딘 유망주의 성장, 중심타선의 장타력와 클러치 능력 부재, 주전의 고령화라는 문제점은 이듬해의 최하위로 이어지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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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년 KIA가 재작년 사상 첫 꼴찌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전에 성공, 4강 진출을 이뤘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시나리오는 아니었다.[2] 그러나 심수창은 2007 시즌 줄곧 불펜으로 나왔고 정재복은 마당쇠로 굴러져 아쉬운 운영이 되었다.[3] 한화의 제이콥 크루즈, 현대의 클리프 브룸바와 비교했을 때 실망스럽다.[4] SK는 구단 최다 연승인 11연승을 하면서 독주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5] 한화전에서 처음에는 스윕승으로 시작했으나 3연속 1승2패 후 후반기에는 6전 전패로 완벽하게 호구가 됐다.[6] LG가 암흑기를 탈출한 2013년 기준으로 이 시기의 LG와 유사하게 암흑기를 겪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삼성 라이온즈도 중간에 각각 1번은 가을야구에 진출해서 비밀번호가 생성되지는 않았다. 만일 LG가 이때 가을야구에 진출을 했었으면 비밀번호 생성조건 미달로 적어도 6668587667이라는 항목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7] 어린이날 두산과의 시리즈 스윕패 때는 비록 한 경기에 이틀 뿐이지만 잠시 최하위를 기록했었다.[8] 그 중 회자되는 것이 9월 7일 SK전에 나온 김우석히 드랍 더 볼이 나온 경기다.[9] 마무리 우규민의 방화쇼가 시작된 경기도 대타 채태인의 데뷔 첫 홈런이 나왔던 8월 2일 대구 삼성전이었다.[10] 2007 시즌 류현진은 LG에 첫 경기 패배 이후 6연승을 거두며 LG 킬러로 맹위를 떨쳤다.[11] 애석하게도 LG에서의 유일한 3할 타율 시즌이었다.[12] 투고타저 탓이라기엔 역시나 투고타저였던 12~13시즌 대비 타격 면에서 무언가 아쉬움이 있던 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