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린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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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린 힐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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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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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비디오상
24회
(1998년)


25회
(1999년)


26회
(2000년)

Ray of Light
마돈나

Doo Wop (That Thing)
로린 힐

The Real Slim Shady
에미넴








로린 힐
Lauryn Hill


파일:로린힐.jpg

본명
로린 노엘 힐
Lauryn Noel Hill
출생
1975년 5월 25일 (48세)
미국 뉴저지주 사우스 오렌지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직업
싱어송라이터, 배우
장르
힙합, 소울, 레게
악기
보컬, 기타
데뷔
그룹 | 1994년 The Fugees
솔로 | 1998년
활동
1989년 – 현재
신장
161cm
학력
컬럼비아 고등학교 (졸업, 1989–93)
컬럼비아 대학교 (중퇴, 1993–94)
파트너
로한 말리 (1996년 – 2009년)[1]
자녀
4남 2녀[2]
종교
기독교 (비주류 교파)[3]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생애
2.1. 데뷔 이전
2.3. 솔로활동
2.4. 현재
3. 디스코그래피
3.1. 앨범
3.1.1. 싱글
4. 실력과 영향력
5. 로린 힐에게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6. 기타



1. 개요[편집]


미국배우가수.


2. 생애[편집]



2.1. 데뷔 이전[편집]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소울 음악에 관심을 가진 로린 힐은 탁월한 재능과 끼를 가진 소녀였다. 13살이었던 1988년 TV쇼 It's Showtime at the Apollo에 출연해 뛰어난 가창력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1993년에 첫 배우 데뷔작 시스터 액트 2에 불량학생 리타 왓슨 역으로 출연하게 되는데 영화 속의 예쁜 외모와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가 영화에서 부른 곡인 'Joyful Joyful'은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2.2. Fugees[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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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막내가 된 로린 힐은 고등학교 친구인 Pras, Wyclef jean과 트리오를 결성한다. 이후 그룹의 이름을 Fugees로 바꾼뒤 1994년 1집 앨범 Blunted on reality로 정식 가수 데뷔를 하게 된다. 그러나 1집 앨범은 예상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은 실패를 교훈삼아 1996년 2집 앨범 The Score를 발매하는데, 단숨에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앨범의 수록곡이자 "Killing Me Softly"는 빌보드 핫 100의 2위에 올랐고, R&B/Hiphop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로버타 플랙의 원곡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재해석한 Killing Me Softly는 국내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곡이자, 이들의 대표곡. Fugees는 몰라도 이 곡을 아는 사람들은 많을 정도다. 이외에도 Ready or Not , Fu-Gee-La[4] 등도 차트를 휩쓸었다. 앨범 역시 미국내에서 600만장 이상, 전세계적으로는 2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초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이러한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997년 해체한다. 갑작스런 해체에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그들은 각자 다른 노선을 걷기위함임을 밝혔다. 이후 2004년, 7년만에 재결합하여 2006년까지 활동하기도 했다. MTV에서는 Fugees를 가장 위대한 힙합그룹 9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2.3. 솔로활동[편집]


1집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파일:images fjxjwk.jpg

Fugees의 해체 이후 1998년 솔로 앨범 1집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을 발매한다. 힙합부터 시작해서 R&B , 소울 음악 , 레게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을 수록한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첫 싱글인 Doo wop은 2주 연속 1위에 머물렀다. 여성 래퍼가 빌보드 싱글 차트서 1위를 차지한것은 팝 역사상 로린 힐이 최초였으며, 이후에도 여성 래퍼가 피쳐링없이 솔로음원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한 경우는 한동안 없었다. 이후 한참이 지난 2017년 카디비Bodak Yellow가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그 기록이 깨졌다.

파일:lauryn-hill-grammy.jpg

이 앨범으로 힙합의 판도를 뒤엎은 로린 힐은 1999년에 열린 제4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 '최고의 신인' 등 주요 부문을 포함, 무려 5개의 부문을 수상한다. 힙합 장르 앨범이 그래미상의 주요 부문을 수상한 것은 음악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다만 이 앨범이 힙합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장르가 혼합되었기에 훗날 나온 Speakerboxxx/The Love Below가 최초의 힙합 앨범으로서 그래미를 석권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 앨범 역시 힙합만 있는 앨범은 아니다.

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800만장, 전 세계적으로는 1,300만장 이상 팔렸다.

이후 로린 힐은 북미, 일본, 유럽 등지에서 월드 투어를 진행했다.

4년의 공백 후, MTV 언플러그드에 출연해 어쿠스틱 기타로 대부분 솔로 연주를 한 라이브 앨범 《MTV Unplugged No. 2.0》을 발매하였다. 또한 2000년대 중반에 재결성하여 짧게 활동한 《Fugees》에 참여하기도 했다.

위에서 볼 수 있듯 개정 롤링 스톤 리스트에서 10위에 선정되어 힙합 앨범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를 받았다.


2.4. 현재[편집]


라이브 앨범 발매이후 현재까지 솔로앨범을 내지 않고 있다. 간간이 공연도 하는 듯.

2018년 서울재즈페스티벌로 첫 내한했다. 데뷔 후 첫 내한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도 전성기 기량을 뽐내며 히트곡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Nas의 King's Disease II에 피처링으로 참여하였다. 곡 이름은 Nobody.


3. 디스코그래피[편집]



3.1. 앨범[편집]




3.1.1. 싱글[편집]




  • Ex-Factor (1998)[5]


  • Everything Is Everything (1999)



4. 실력과 영향력[편집]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릴 킴, 미시 엘리엇, 다 브랫과 함께 여성 래퍼의 대표주자로 꼽혔다. 가창력 또한 뛰어난 보컬리스트로 1990년대 최고의 음악가들 중 한 명이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래퍼들 중 한 명이다. 성별을 불문하고 모든 래퍼들 중 올타임 레전드를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되는 거의 유일한 여성 래퍼이며, 전체 장르의 평론가들에게는 칸예 웨스트켄드릭 라마처럼 힙합 씬에서 유독 호평받는 음악가 중 하나다.

에리카 바두가 로린 힐과 음악으로 대결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나는 분쇄당할 것(I'll be pulverized)"이라고 답을 하고, 그 니키 미나즈가 처음 만나자마자 "Queen"이라 부르며 무릎 꿇고 절을 한 뒤 구구절절 존경을 표하는 영상이 있는 인물이다. 압도적인 영향력의 아티스트라는 것이다.

뛰어난 랩 실력과 소울풀한 음색 및 가창력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힙합을 기본으로 R&B, 소울 음악, 레게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특히 라이브 실력도 엄청난데 전성기 시절 라이브 영상을 보면 뛰어난 랩에 가창력까지 혼자 소화해 낼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로린 힐의 대표곡인 Doo Wop.

랩, 보컬 뿐만 아니라 작곡, 작사도 정점에 달한 수준의 싱어송라이터이다. 솔로 데뷔 앨범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의 전곡의 작곡 작사에 참여했으며, 프로듀싱도 직접 지휘한 이 앨범은 개별 곡들의 높은 퀄리티, 다양한 장르,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발매 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여성 래퍼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이다. 특히 윤미래가 특유의 나즈막히 정박으로 때리는 래핑 스타일 등 로린 힐의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벤치마킹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둘은 보컬리스트로서도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둘의 차이점은 윤미래는 작사 작곡을 직접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거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본인 명의의 정식 음반은 전술된 1집 뿐으로, 이후에는 육아에 집중하며 공연, 피처링 정도의 활동만 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동갑내기 레전드 래퍼인 안드레 3000 마냥 공연을 하거나 피처링을 할 때마다 입이 떡 벌어질 수준의 엄청난 벌스를 뽑아내 많은 리스너들이 앨범을 내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5. 로린 힐에게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편집]




6. 기타[편집]


  • 니키 미나즈가 가장 존경하는 래퍼로, 데뷔 초부터 로린 힐을 항상 동경해왔다고 밝혀왔다. 이후 니키가 크게 성공한 뒤, 로린 힐을 직접 만났을 때 감동하며 바닥에 주저앉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

  • 2013년 거액의 탈세 혐의로 징역 3개월을 구형 받았고 복역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누린 래퍼 릴 킴, 다 브랫도 각각 2005년에 위증 혐의, 2007년에 폭행 혐의로 복역한 바 있다.

  •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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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게의 제왕 밥 말리의 친아들이다. 로한은 1972년생으로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식축구를 하고 1995년 캐나다에서 데뷔했으나 부상으로 프로 데뷔시즌 은퇴하고 말리 커피와 더하우스오브말리라는 브랜드를 만든 사업가다. 둘의 관계는 1996년부터 2009년까지 이어졌다.[2] 막내아들을 제외한 다섯의 아버지는 로한 말리이고, 2011년 태어난 막내아들의 아버지의 신원은 드러나지 않았다.[3] "The Mystery of Lauryn Hill", 「롤링 스톤」, 2003.10.30.[4] 티나 마리의 Ooo La La La를 차용한 곡이다.[5] 드레이크Nice For What이라는 곡에 샘플링했다. 비욘세가 콘서트에서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