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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디젤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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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철도청이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도입하여 2010년까지 20여년 간 운용한 열차였다.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새마을호에서 도중 격하'된 DEC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통근형에서 일부가 도중 승격'된 RDC와는 달리, 처음부터 무궁화호 등급으로 도입, 쭉 무궁화호로만 운용되다가 퇴역했다. 그래서인지 위키백과에는 무궁화호 디젤 동차라는 표제어로 등록되어 있다.
1984년 11월 26일 운행개시 이래 26년 만인 2010년 2월 16일 고별 운행을 끝으로 특동차 및 귀빈용의 1개 편성을 제외하고 모두 퇴역하여 더이상 본선 운행에서는 볼 수 없다. 철도청장용으로 남아있던 특동차는 2009년에 비즈니스 동차로 개조되어 일반 열차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한국철도공사 무궁화호 표준 도색을[3] 적용하여 한국철도공사 사장 전용열차로 전환하여 운행했으나[4] 2015년 2월 11일 서울발 의왕행 편도 운행을 한 후 퇴역, 철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화장실은 중간차량이든 선두차량이든 대개 있으나, 일부 선두차량은 화장실이 없는 경우도 있다. 외관상 쪽창의 유무로 구별이 가능했다. 다만, 2량짜리 편성이 운행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7] 화장실이 없는 선두차량의 경우 반드시 화장실이 있는 선두차량과 짝지어서 편성되었다.
다만 화장실의 경우도 초반은 비산식을 쓰다가 정화조 탑재 개조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EEC의 뒤를 이어 이 차량에도 정차 시 사용 금지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1980년대 중후반에 도입이 되었으나, 처음부터 경상도에서 운행하지는 않았다. 운행 극 초창기엔 장항선, 경춘선, 충북선에서도 운행된 사례가 있다. 이 중 경춘선은 명절에 한해서, 꽤 오랫동안 6량 편성으로 투입된 전력도 있다. 1994년 이후에는 경춘선에서도 모두 빠져나갔다.[8]
그러다가 90년대부터, 상대적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난 수도권[9] 과 수요가 도저히 나오지 않던 충북선에서 열차들을 빼서, 전부 경상도로 내려보내고 폐차시까지 유지되었다.
전성기 시절은 대구-부산 단거리 무궁화로도 꽤 많이 운행하였으며, 부산-마산, 마산-대구, 부산-경주, 부산-울산에서도 터줏대감 역할을 해오던 열차였다. 사실상 중/단거리 운행 위주였던 셈. 다만, 1994년 미전역 근처에서 정면충돌 사고를 겪어 많은 사상자를 내는 흑역사도 있다.
참고로 NDC의 전성기 시절 대구역에서는 어느 때나 항상 NDC가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10]
2004년, KTX가 개통되면서 이 차량의 운용에도 큰 변화가 생기게 됐다. 제일 큰 변화로는, 대구-부산에 다니던 4량짜리가 사라지고, 대구-마산으로 변경되었고, 진주-대구 운행계통이 신설된 것 등이 있다. 진주행은 사실상 진주행 새마을호가 없어지면서 땜빵으로 생긴 것이었는데 이후 진주행 새마을호가 부활하고도 병존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차량의 폐차 같은 문제 때문에 다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당시, 대다수 차량들은 노후화가 심각했고[11] , 게다가 디젤 원가의 상승으로 인해서[12] 운송원가도 굉장히 높았던 상태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간수요도 많이 줄었다. 이 때문에, 환승장사로 승객을 쓸어담던 마산-대구를[13] 제외한 나머지들은 거의 쩌리급으로 전락했다.
2005년 2월, 건널목에서 마산 - 부전 간 2량 열차와 트럭이 충돌하는 사고가 났는데, 이 사고로 2량 열차가 사라지게 되었다. 사고로 퇴역된 NDC 2량 편성의 공백은, 당분간 4400호대에 무궁화호 객차 2량과 발전차 1량을 연결해 운행시키면서 대체했다. 이후 통근열차로 전환되었으나, 2006년 11월 시간표 개정 때에 다시 무궁화호로 환원되었다. 통근열차 격하 당시에도 시간표 변경 없이 그대로 운행했던 덕에 무궁화호보다 소요시간이 더 적은 상황이 되었고, 값싼 운임과 맞물려 한 때나마 시외버스 부산서부-창원·마산 노선의 훌륭한 경쟁자 역할도 했다.
추가로, 예비차로 남아있는 4량 1편성 열차는 과거에는 철도청장 전용기로 사용되었다가, 공사화 이후로는 철도공사 사장용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빌려주는 전세 형식으로의, VIP 접대 및 비지니스용으로 용도가 바뀌었었다.
2015년 2월, 비즈니스 동차로 운행되던 NDC 3량이 본선 운행을 종료하고 철도박물관에 동태보존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간간히 기동하여 열차를 조금씩 움직인다고는 하나 시운전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진 않고 있다.
전산상에서 폐차는 되지 않았다.[15]
나도싸라는 별명이 있었다.[16] 신세대 철도 동호인 중 이 열차를 아는 사람은 ㄴㄷㅆ(...)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자인이 초대 케이세이 AE형 전동차를 참고해서 만든건지는 몰라도 비교해보면 정말 흡사하게 생겼는데 차이점이라고는 NDC가 앞부분이 좀 더 뭉특하게 생겼고 헤드램프가 아래쪽으로 내려온 정도의 차이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NDC가 정식으로 운행하기 8개월 전에 나온 기사에는 아직 NDC 동차가 완성되지 않아서 초대 케이세이 AE형 전동차의 사진을 대신 실은 적도 있었다.#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철도청이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도입하여 2010년까지 20여년 간 운용한 열차였다.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새마을호에서 도중 격하'된 DEC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통근형에서 일부가 도중 승격'된 RDC와는 달리, 처음부터 무궁화호 등급으로 도입, 쭉 무궁화호로만 운용되다가 퇴역했다. 그래서인지 위키백과에는 무궁화호 디젤 동차라는 표제어로 등록되어 있다.
1984년 11월 26일 운행개시 이래 26년 만인 2010년 2월 16일 고별 운행을 끝으로 특동차 및 귀빈용의 1개 편성을 제외하고 모두 퇴역하여 더이상 본선 운행에서는 볼 수 없다. 철도청장용으로 남아있던 특동차는 2009년에 비즈니스 동차로 개조되어 일반 열차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한국철도공사 무궁화호 표준 도색을[3] 적용하여 한국철도공사 사장 전용열차로 전환하여 운행했으나[4] 2015년 2월 11일 서울발 의왕행 편도 운행을 한 후 퇴역, 철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2. 실내 구조[편집]
최초 도입 당시엔 통일호와 동일한 시트였다.[5] 이후 통일호에 에어컨이 장착되면서 무궁화호의 시트가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무궁화호의 일반적인 시트배열이던 2*3 시트배열을 적용했다. 소위 말하는 폭탄객차와 엇비슷한 구조였던 셈. 그러다 보니 당시 급증한 철도 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지만, 이후 이용객들의 눈이 높아지면서 1996~1998년경은 지금처럼 2*2 구조로 개조되었다.[6]
화장실은 중간차량이든 선두차량이든 대개 있으나, 일부 선두차량은 화장실이 없는 경우도 있다. 외관상 쪽창의 유무로 구별이 가능했다. 다만, 2량짜리 편성이 운행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7] 화장실이 없는 선두차량의 경우 반드시 화장실이 있는 선두차량과 짝지어서 편성되었다.
다만 화장실의 경우도 초반은 비산식을 쓰다가 정화조 탑재 개조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EEC의 뒤를 이어 이 차량에도 정차 시 사용 금지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3. 도입과 리즈시절[편집]
1980년대 중후반에 도입이 되었으나, 처음부터 경상도에서 운행하지는 않았다. 운행 극 초창기엔 장항선, 경춘선, 충북선에서도 운행된 사례가 있다. 이 중 경춘선은 명절에 한해서, 꽤 오랫동안 6량 편성으로 투입된 전력도 있다. 1994년 이후에는 경춘선에서도 모두 빠져나갔다.[8]
그러다가 90년대부터, 상대적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난 수도권[9] 과 수요가 도저히 나오지 않던 충북선에서 열차들을 빼서, 전부 경상도로 내려보내고 폐차시까지 유지되었다.
전성기 시절은 대구-부산 단거리 무궁화로도 꽤 많이 운행하였으며, 부산-마산, 마산-대구, 부산-경주, 부산-울산에서도 터줏대감 역할을 해오던 열차였다. 사실상 중/단거리 운행 위주였던 셈. 다만, 1994년 미전역 근처에서 정면충돌 사고를 겪어 많은 사상자를 내는 흑역사도 있다.
참고로 NDC의 전성기 시절 대구역에서는 어느 때나 항상 NDC가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10]
4. KTX 개통 그 이후[편집]
2004년, KTX가 개통되면서 이 차량의 운용에도 큰 변화가 생기게 됐다. 제일 큰 변화로는, 대구-부산에 다니던 4량짜리가 사라지고, 대구-마산으로 변경되었고, 진주-대구 운행계통이 신설된 것 등이 있다. 진주행은 사실상 진주행 새마을호가 없어지면서 땜빵으로 생긴 것이었는데 이후 진주행 새마을호가 부활하고도 병존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차량의 폐차 같은 문제 때문에 다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당시, 대다수 차량들은 노후화가 심각했고[11] , 게다가 디젤 원가의 상승으로 인해서[12] 운송원가도 굉장히 높았던 상태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간수요도 많이 줄었다. 이 때문에, 환승장사로 승객을 쓸어담던 마산-대구를[13] 제외한 나머지들은 거의 쩌리급으로 전락했다.
2005년 2월, 건널목에서 마산 - 부전 간 2량 열차와 트럭이 충돌하는 사고가 났는데, 이 사고로 2량 열차가 사라지게 되었다. 사고로 퇴역된 NDC 2량 편성의 공백은, 당분간 4400호대에 무궁화호 객차 2량과 발전차 1량을 연결해 운행시키면서 대체했다. 이후 통근열차로 전환되었으나, 2006년 11월 시간표 개정 때에 다시 무궁화호로 환원되었다. 통근열차 격하 당시에도 시간표 변경 없이 그대로 운행했던 덕에 무궁화호보다 소요시간이 더 적은 상황이 되었고, 값싼 운임과 맞물려 한 때나마 시외버스 부산서부-창원·마산 노선의 훌륭한 경쟁자 역할도 했다.
5. 퇴역과 보존[편집]
2007년 시간표 개정으로 진주 - 대구를 오가던 NDC 디젤동차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차량들이 전부 퇴역하면서 남은 1편성[14] 을 4량 1편성으로 재조성하여 대구선 동대구 - 포항 구간을 운행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고 2009년부터 마지막 운행 날인 2010년 2월 16일 까지는 대구 - 마산 구간을 운행하였다. 종운 후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에 몇 달간 방치되어 있다가 그대로 폐차되었다.
추가로, 예비차로 남아있는 4량 1편성 열차는 과거에는 철도청장 전용기로 사용되었다가, 공사화 이후로는 철도공사 사장용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빌려주는 전세 형식으로의, VIP 접대 및 비지니스용으로 용도가 바뀌었었다.
2015년 2월, 비즈니스 동차로 운행되던 NDC 3량이 본선 운행을 종료하고 철도박물관에 동태보존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간간히 기동하여 열차를 조금씩 움직인다고는 하나 시운전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진 않고 있다.
전산상에서 폐차는 되지 않았다.[15]
6. 여담[편집]
나도싸라는 별명이 있었다.[16] 신세대 철도 동호인 중 이 열차를 아는 사람은 ㄴㄷㅆ(...)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자인이 초대 케이세이 AE형 전동차를 참고해서 만든건지는 몰라도 비교해보면 정말 흡사하게 생겼는데 차이점이라고는 NDC가 앞부분이 좀 더 뭉특하게 생겼고 헤드램프가 아래쪽으로 내려온 정도의 차이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NDC가 정식으로 운행하기 8개월 전에 나온 기사에는 아직 NDC 동차가 완성되지 않아서 초대 케이세이 AE형 전동차의 사진을 대신 실은 적도 있었다.#
[1] 1973년부터 니가타 디젤동차 엔진 교체에 사용되었던 커민스 N855R 엔진에 터보차저와 인터쿨러를 장착한 개량형으로, 이미 니가타 디젤동차 엔진 교체에서 성능과 신뢰성을 인정받아서 개량을 거친 뒤에 NDC 디젤동차에도 사용되었으며, 이후 한번 더 소폭 개량을 거친 뒤 CDC 디젤동차에도 이용되었다. 무려 20년 넘는 세월동안 우려먹기를 한 셈이다.[2] 비즈니스 동차 기준. 정규 여객영업 운전은 2010년 2월 16일에 종료했다.[3] 다른 장대형 무궁화호 객차나 RDC 디젤동차와 동일 패턴[4] 그 마저도 운행횟수가 많지 않았다. 사실 철도공사 사장 정도 되는 고위급의 사람이면 KTX를 타지 차량 최고속도가 느리고 연비도 최악을 달리는 이런 구닥다리 동차를 타지는 않는다.[5] 당시 탕엥객차와 EEC도 시트는 통일호와 같았다.[6] 이때 외부 출입문도 수동문에서 자동문으로 개조됐다. 무궁화호 객차는 클래식, 나뭇결 객차부터 2X2 배열이었다.[7] KTX 개통 전은 마산-대구도 2량짜리였다.[8] 사실 경춘선에 투입하는 것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이 춘천역에 전차대가 있기 때문에 기관차 견인형을 넣어도 운행은 문제가 없다.[9] 동차형은 객차형과 달리 차량을 늘리거나 줄이려면 편성을 해체한 후 작업을 해야하니 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웠다.[10] 201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동대구역에 가면 거의 항상 RDC가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던 것과 비슷하다.[11] 1984년 도입분은 KTX 개통 무렵 이미 영업운행을 중단하고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용산역)으로 끌려온 상황이었다.[12] 당시 디젤 1리터가 천원 초반대에 형성되었으며, 이미 통근열차의 경우 기본운임과 디젤 1리터 값이 비슷해졌을 지경이었다.[13] 경전선 고속철도 개통 전까지 마산, 창원, 진영역에서 승객을 태운 후 밀양역 또는 동대구역에서 환승하도록 유도했다. 다만 고속열차 대다수가 밀양역에서 연계되도록 시각표가 짜여졌기에, 동대구까지 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덕분에 마산-밀양 구간은 평일에도 미리 예약을 안 하면 입석으로 가야하는 일이 종종 있다.[14] 철도청장 - 철도공사 사장 전용기로 빠진 1편성은 여기서 논외.[15] 상기하였듯이 동태보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16] 물론 그냥 언어유희일 뿐, 도입 시기 순서상으로는 이 열차가 훨씬 더 빨랐고 싸다싸가 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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