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O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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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P-MODEL의 전신 맨드레이크(1973 ~ 1978)
2.2. 초기 P-MODEL(1979.1 ~ 1988.12)
2.3. P-MODEL 동결기
2.4. 해동 P-MODEL(1991.9 ~ 1993.10)
2.5. 개정 P-MODEL(1994.12 ~ 2000.12)
2.6. 해체
2.7. 핵(核)P-MODEL(2004~)
4. 멤버 변천사
4.1. 맨드레이크 시대(1973 ~ 1978)
4.2. 초기P 시대(1979.1 ~ 1988.12)
4.3. 해동P 시대(1991.9 ~ 1993.10)
4.4. 개정P 시대(1994.12 ~ 2000.12)
5. 멤버 목록
5.1. 히라사와 스스무 (平沢進)
5.2. 아키야마 카츠히코 (秋山勝彦)
5.3. 타나카 야스미 (田中靖美)
5.4. 타이나카 사다토시 (田井中貞利)
5.5. 키쿠치 타츠야 (菊池達也)
5.6. 미우라 슌이치 (三浦俊一)
5.7. 요코가와 타다히코 (横川タダヒコ) [1]
5.8. 아라키 야스히로 (荒木康弘)
5.9. 나카노 테루오 (中野テルヲ[2])
5.10. 타카하시 요시카즈(高橋芳一)
5.11. 코토부키 히카루 (ことぶき光)
5.12. 후지이 야스치카 (藤井ヤスチカ)
5.13. 카미료 와타루 (上領亘)
5.15. 코니시 켄지 (小西健司)


1. 개요[편집]


1979년~2000년까지 활동했던 일본포스트 펑크[3]/뉴웨이브(80년대), 일렉트로닉/신스팝(해동 이후) 밴드. 리더는 히라사와 스스무. 당시에는 테크노 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프릭션, 플라스틱스, Sheena and the Rokkets. 히카슈등 당대의 일본 펑크 록/뉴웨이브 시대를 주름잡은 밴드.
비록 이들은 1970년대 초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뮤지션들이지만, 뉴웨이브 시대에 빛을 발했다.

특이한 사실로는 1980년대 한국, 특히 경남지역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이 때는 일본 대중문화 수입 금지시기였지만, 부산을 비롯한 경남지역에서는 일본의 라디오나 TV신호[4]가 잡혀서 시청이 가능했었다. 그 시기에 나름 핫하던 여러 가수들과 함께 P-MODEL도 라디오에서 간간히 나오던 시기였기에 콘도 마사히코와 함께 유명세를 탔다. 때문에 이러한 음악이 퍼지고 퍼져 이태원동의 다방가까지 퍼지기까지 했다. 당시 일본 음악 좀 즐겨 들었다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 중 P-MODEL을 아는 사람이 제법 있을 정도. 문서 참고.

2. 역사[편집]



2.1. P-MODEL의 전신 맨드레이크(1973 ~ 1978)[편집]



파일:맨드레이크히라사와.jpg
맨드레이크 시절의 히라사와

1973년 히라사와 스스무와 아베 후미야스, 그리고 그의 섭외로 온 타나카 야스미, 타이나카 사다토시가 모임으로서 하드 /헤비메탈 록 밴드 맨드레이크가 결성되었다. 결성 당시엔 타이나카를 제외한 전원이 기타를 원해 기타 연주배틀을 통해 포지션을 결정했다고 한다.

결성 초기엔 블랙 사바스의 곡들을 커버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춘 하드 록 밴드였으나 나중에 아베 후미야스가 바이올린을 가지고 오면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전향하고 착란의 문(錯乱の扉)[5]을 시작으로 오리지널 곡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베 후미야스가 갑자기 잠수를 타 공석이 생겨버린 탓에 히라사와 스스무가 억지로 보컬을 맡게 되었고, 타나카 야스미가 키보드를, 공석이 된 베이시스트는 히라사와의 절친이었던 세키 히로미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이후 적극적으로 라이브를 해왔지만 대부분 다른 밴드와 같이 공연을 한 경우였고 단독 공연을 열 땐 관객이 3명 남짓 오는 등 인지도가 한참 부족했다. 당시의 어려움을 대표하는 사건으로 모 대학 캠퍼스에서 착란의 문을 연주하니까 어떤 구경꾼이 "Smoke On The Water나 불러!" 라고 소리치며 쓰레기통을 내다던진 사건이 있었다. 이 시기 가장 적극적으로 공연에 따라다니며 호응해준 관객이 아키야마 카츠히코였다.
세키 히로미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 니가타로 내려갔고, 리허설이나 라이브 때마다 돌아오긴 했지만 나중엔 탈퇴한다.

세키의 후임으로 프로그레시브 밴드 破天荒의 베이스였고 新●月의 멤버들과도 친분이 있었던 아쿠츠 토오루가 들어온다.
히라사와 스스무의 형 히라사와 유이치(平沢裕一)는 맨드레이크의 연출팀 디바이스・맨드라고라를 이끌며 비싼 연주장비를 싼 값에 구해오는 등 수완이 좋아 맨드레이크가 돈이 많은 밴드처럼 보이게 해줬다고 한다.

1978년경부터 히라사와는 여러 사람과 인연을 쌓았는데, 신디사이저 세션 알바에 응모를 한 날에 카미오 메이로(神尾明朗)[6]를 알게 되었고, 그의 권유로 주간 플레이보이의 신디사이저 다중녹음 콘테스트에 『필요한 벌의 유혹(いりよう蜂の誘惑)』을 출품하여 심사위원 토미타 이사오의 호평을 받아 입상하게 되었다. 이 대회의 수상작들은 앨범 「SYNTHETIC SPACE 무서운 두뇌집단」에 수록되었다. #

같은 시기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에서 강사를 하면서 나중에 P-MODEL의 베이시스트가 되는 키쿠치 타츠야, 나중에 히라사와가 처음으로 프로듀서를 맡게 되는 밴드 Shampoo의 멤버인 오리모 마사미(折茂昌美)[7] 와 만나게 되고 옆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미우라 슌이치와도 아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멤버들은 섹스 피스톨즈를 위시로 한 펑크록 붐을 바라보면서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고 기존의 대작주의에서 벗어난, 이후 P-MODEL로 완전히 자리잡는 뉴웨이브펑크 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후일 히라사와는 인터뷰에서 전자기기의 보급으로 인하여 삶의 속도가 빨라지는 세상을 보고 프록이 갖는 서정성과 대곡지향성에서 위화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때마침 서양에서 태동하던 뉴웨이브를 받아들여 전자기기에서 날법한 짧은 전자음과 심플하고 빠른 템포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

결국 78년 맨드레이크는 해체를 맞았다. 마지막 라이브에서는 초반엔 프로그레시브 음악 위주로 후반엔 뉴웨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새로 결성될 밴드의 스타일을 암시하는 세트리스트를 짰고 맨드레이크의 오랜 팬이었던 아키야마도 참가했다.

그 후 프로그레시브 록에 미련이 남아있던 아쿠츠 토오루가 떠나고 아키야마 카츠히코를 새 멤버로 맞아 1979년 1월 1일 P-MODEL이 결성되었다.


2.2. 초기 P-MODEL(1979.1 ~ 1988.12)[편집]


1979년 1월 1일, 도쿄 카메아리에서 히라사와 스스무를 중심으로 맨드레이크의 前멤버였던 타나카 야스미와 타이나카 사다토시, 그들의 팬이었던 아키야마 카츠히코가 모인 밴드 P-MODEL이 탄생했다.

밴드의 이름을 알린 건 같은 해 XTC밴 헤일런의 일본 투어에서 오프닝 밴드를 맡은 것이었다. 이들을 따라다니면서 부도칸 등지에서 공연을 했으며 이 공연이 반응이 좋아 당시 플라스틱스의 키보디스트였던 사쿠마 마사히데(佐久間正英)[8]와의 공동 프로듀싱으로[9] 7월에 싱글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이지 (美術館であった人だろ)』를 발매, 8월에 앨범 IN A MODEL ROOM을 발매하면서 동시대 히카슈, 플라스틱스와 함께 YMO로 인해 촉발된 일본 테크노 열풍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밴드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각종 방송이나 대학 축제에서 활약했으며 1980년부터는 처음으로 자체적인 라이브 투어를 시작했다. 밴드의 인기와는 별개로 멤버들의 생계는 여전히 좋지 못해 다들 본업을 유지하며 살아야 했다고 한다.

그때의 빈곤함이나 밴드를 깎아내리려는 갖가지 루머에 시달린 탓에 MC 도중 울분을 토한 적도 있다. #

데이비드 보위가 방일했을 당시 이들의 공연을 몰래 관람하고 이후 기자회견에서 크게 호평한 적이 있다. 공연 후 대기실에 불쑥 찾아와 깜짝 놀란 멤버들 모두가 어쩔줄 몰라하다가 황급히 기타에 사인을 부탁했다고 한다.

1980년 5월 일본 내 테크노 음악이 양산회되고 과열됐다고 판단한 히라사와와 타나카는 탈 테크노를 선언하고 P-MODEL의 음악 스타일이나 공연 컨셉을 대대적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키야마 카츠히코와 밴드의 방향을 놓고 갈등이 생겨버렸고 결국 퇴출당한다.

1981년 3월 P-MODEL은 기존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앨범인 Potpourri를 발매하였다. 앨범 녹음은 히라사와가 베이스까지 담당하였고, 라이브에서는 히라사와가 일하던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의 수강생인 키쿠치 타츠야가 객원으로 참가해 나중엔 정식 멤버가 된다.

스타일의 전격적인 변화와 P-MODEL의 인기 멤버였던 아키야마의 탈퇴의 여파로 팬들이 잔뜩 떨어져 나가는 사태가 발생한다. 묵묵히 새 앨범과 라이브, 방송활동을 이어나가면서 조금씩 회복하긴 하지만 히라사와의 중요한 파트너였던 타나카 야스미의 탈퇴까지 겹치면서 버블로 대표되는 일본의 문화적, 경제적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밴드도 히라사와 개인적으로도 큰 변화와 고뇌를 겪게 된다.[10]

1983년엔 타나카가 아이디어 고갈을 이유로 탈퇴하면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우라 슌이치가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84년 8월엔 베이시스트인 키쿠치가 탈퇴하고 요코가와 타다히코(横川理彦)가 가입. 10월엔 드러머 타이나카가 탈퇴하고 밴드 "알레르기"의 아라키 야스히로가 가입한다.

85년엔 KARKADOR를 발매하였지만 발매 2개월만에 키보디스트 미우라와 베이시스트 요코가와가 동시에 탈퇴했다. [11] 그리고 그 빈자리는 베이시스트 나카노 테루오[12], 키보디스트 타카하시 요시카즈가 자리잡는다.

87년엔 차기 P-MODEL 앨범인 '몬스터'의 레코딩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속 레이블의 행패로 난항을 겪어 무산되었고, 4월에는 아라키 야스히로가 탈퇴하고 초기 멤버인 타이나카가 복귀한다. 타카하시도 P-MODEL을 나가고 그 자리를 코토부키 히카루가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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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 시부야 CLUB QUATTRO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동결을 선언하고 P-MODEL은 잠정 활동중지에 들어갔다. 이듬해 밴드의 리더 히라사와 스스무는 시공의 물을 발매해 솔로활동에 들어갔다.
#

탈 테크노 선언 이후~동결까지의 라이브 자료들이 유튜브, 니코니코 동화 등지에 부틀렉 형태로 모여있다.

2.3. P-MODEL 동결기[편집]


이후 히라사와 스스무는 음반 제작과 솔로 투어를 위한 세션 밴드를 만들고 솔로 활동에 전념하면서 타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OST를 제작하는 등 활동범위를 넓혀나갔다.

코토부키 히카루는 새로운 밴드에 합류함과 동시에 히라사와 솔로 공연에도 참여한다. 80년대 초 P-MODEL을 나와 따로 음악활동을 하던 아키야마 카츠히코가 89~90년까지 베이스 세션을 맡게 되었다. 나카노 테루오는 이후 KERA, 근육소녀대의 미노스케와 함께 유닛 LONG VACATION을 결성해 독자적으로 음악활동을 이어나갔다.

1990년에 팬 서비스 차원에서 P-MODEL을 임시로 재결성해 공연한 적이 있다. 멤버는 히라사와 스스무, 아키야마 카츠히코, 코토부키 히카루, 타이나카 사다토시. 그리고 이 멤버들 중 일부가..

2.4. 해동 P-MODEL(1991.9 ~ 1993.10)[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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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P-MODEL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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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코토부키 히카루, 히라사와 스스무, 아키야마 카츠히코, 후지이 야스치카.

1991년 버츄얼 래빗 투어 마지막날, 공연장에 P-MODEL의 재결합을 예고하는 전단지가 살포되었고 1991년 9월 히비야 야외음악당에서 첫 라이브를 열었다. 구성원은 히라사와 스스무와 P-MODEL 창설 멤버였던 아키야마 카츠히코(베이스, 키보드), 잠정해체 직전 멤버이자 히라사와 솔로 세션이었던 코토부키 히카루(키보드, 신디사이저) R&B 밴드 The GROOVERS의 드러머 후지이 야스치카.

탈 테크노 선언 이후로 11년만의 테크노 성향이 짙어졌으며 이전 P-MODEL의 곡들도 그 분위기에 맞게 새로 편곡되었다.

P-MODEL, big body 새 체재로 두개의 정규앨범을 내놓은 밴드는 1993년 10월을 마지막으로 다시 활동을 정지하고 1년간 새단장에 들어가게 된다.


2.5. 개정 P-MODEL(1994.12 ~ 2000.12)[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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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초기 P-MODEL 로고.

1994년 12월. P-MODEL은 히라사와를 제외한 멤버를 전원 교체한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멤버는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시스템-1 후쿠마 하지메, 시스템-2 코니시 켄지, 드러머 카미료 와타루.

1995년 12월 개정 P-MODEL의 첫 앨범 가 발매되었다. 인터넷이 민간에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에 발맞추어 P-MODEL의 활동 컨셉을 새로잡고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함과 동시에 조악하게나마 인터넷으로 공연을 중계하는 등 기술적으로 선구적인 행보를 보인다.

1996년 10월에는 Unfix라는 이름으로 멤버들이 잠시 따로 음악활동을 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11월 15일 도쿄 신주쿠 리퀴드 룸에 멤버들이 다시 모여 각자의 음악을 선보이는 공연에 히라사와가 불참하는 일이 벌어졌다. 스탭 측은 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나중에 히라사와가 직접 인터넷에 "나는 감기 따위로 쉴 인간이 아니다. 쉰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13]이라는 글을 남겼고, 이듬해 1997년, 기존 소속사인 I3 프로모션(アイスリープロモーション)을 탈퇴하고 개인 소속사인 케이오스 유니온(ケイオス・ユニオン)을 설립하게 되었다.

같은 해 카미료는 솔로 활동을 위해 P-MODEL을 탈퇴하고 빈자리는 오와쿠 마사루(大和久マサル)[14] 作 버츄얼 드러머 TAINACO가 대체하게 되었다. P-MODEL의 라이브 배치 스타일도 밴드의 모습이 크게 희석되고 각종 신디사이저 기기로 채우는 등 YMO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1999년에는 MP3의 가능성을 보고 음반 레이블인 컬럼비아를 계약기간 중도에 결별하고 P-PLANT을 출범시키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MP3 음원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본 내 프로 뮤지션 중에선 흔치 않은 일이라 큰 주목을 받았다. 히라사와 스스무는 인터넷과 MP3의 보급과 발전을 통해 아티스트가 음반 레이블의 간섭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믿고 프로그래밍까지 배워가면서 MP3 판매 사이트를 개설하는 등의 과감한 시도를 이어나갔다.

2.6. 해체[편집]


2000년 12월 P-MODEL은 인터넷을 통해 배양선언, 다시 활동을 중지한다. 사실상의 해체선언. P-MODEL의 전 멤버들은 대체로 P-MODEL의 재결성에 호의적인 반응이지만 정작 리더는 P-MODEL을 재결성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현재는 멤버들이 각자 인디뮤지션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멤버들간의 교류나 작품 참여도 활발히 이뤄지는 중.

2004년엔 P-MODEL의 역대 정규앨범과 싱글, 데모와 미공개곡 등을 수록한 박스셋 태양계아슈온을 발매해 현재까지 판매중이다.

2009년엔 P-MODEL 결성 30주년을 맞아 일부 곡들이 환현악 풍으로 리믹스된다.

2.7. 핵(核)P-MODEL(2004~)[편집]


하나의 스토리를 가진 원맨 밴드 형태로 부활. 엄밀히 말하면 P-MODEL을 계승했다기보단 솔로 프로젝트에 가깝다.

2004년 예고도 없이 비스트론(ビストロン)이 발매된다. 2000년대 초반 히라사와를 대표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앨범으로 히라사와 스스무답게 컨셉이 기괴한데, 라이브에 원자로가 설치된다. 물론 모형일 뿐이다.

1집 비스트론은 Big Brother 등 초기 P-MODEL 이후 오랜만에 적나라하게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는 곡들이 대거 수록된다. 이후 9년간 소식이 없다가 2013년 여름에 2번째 앨범 발매를 예고하고 11월에 2집 Гипноза를 발매한다. 그리고 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P-MODEL의 카피 밴드 PEVO의 멤버인 PEVO 1호가 이 앨범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거의 준공식 멤버로 떠오른다.

2014년 1월에는 라이브 패러렐·코자크가 개최되었고, 9월엔 히라사와 스스무의 솔로곡도 같이 연주하는 라이브인 HYBRID PHONON이 개최되었다. 이후에 딱히 활동은 없으나 향후 이 앨범의 스토리가 그의 새 솔로 앨범의 스토리와 연결된다.

2018년 9월과 11월 각각 도쿄, 오사카에서 라이브를 할 예정이며 2018년 9월 2일 새로운 정규 앨범 回=回를 발매. 앞으로도 현악기 사운드가 돋보이는 히라사와 솔로와 전자음악에 집중한 核P-MODEL을 번갈아가며 앨범을 제작할 것으로 보인다.



3. 디스코그래피[편집]


P-MODEL/음반 목록 항목 참조.


4. 멤버 변천사[편집]


  • 멤버 지속 시기 단위로 서술.
  • 교체/재입단한 멤버는 볼드 처리.

4.1. 맨드레이크 시대(1973 ~ 1978)[편집]


초기

중기
  • 보컬/기타: 히라사와 스스무
  • 키보드/신디사이저: 타나카 야스미
  • 베이스: 세키 히로미[15]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

후기
  • 보컬/기타: 히라사와 스스무
  • 키보드/신디사이저: 타나카 야스미
  • 베이스: 아쿠츠 토오루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


4.2. 초기P 시대(1979.1 ~ 1988.12)[편집]


파일:attachment/P-MODEL/1st_P-MODEL.jpg
1. 1979.1 ~ 1980.11[16]
  • 보컬/기타/신디사이저: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신디사이저: 아키야마 카츠히코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
  • 키보드/신디사이저: 타나카 야스미

2. 1980.11 ~ 1983.3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 키쿠치 타츠야[17]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
  • 키보드/신디사이저: 타나카 야스미[18]

3. 1983.3 ~ 1984.8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 키쿠치 타츠야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
  • 키보드/신디사이저: 미우라 슌이치

4. 1984.8 ~ 1984.12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 요코가와 타다히코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
  • 키보드/신디사이저: 미우라 슌이치

5. 1985.1 ~ 1985.12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바이올린: 요코가와 타다히코
  • 드럼: 아라키 야스히로
  • 키보드/신디사이저: 미우라 슌이치

6. 1986.1 ~ 1987.3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키보드: 나카노 테루오
  • 드럼: 아라키 야스히로
  • 시스템(키보드/신디사이저): 타카하시 요시카즈

7. 1987.3 ~ 1987.9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 나카노 테루오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2년만에 재입단)[19]
  • 시스템(키보드/신디사이저): 타카하시 요시카즈

8. 1987.9 ~ 1988.12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 나카노 테루오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
  • 키보드/신디사이저: 코토부키 히카루

4.3. 해동P 시대(1991.9 ~ 1993.10)[편집]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키보드/신디사이저: 코토부키 히카루[20]
  • 키보드/베이스[21]/마라카스/댄서: 아키야마 카츠히코(11년만에 재입단)
  • 드럼: 후지이 야스치카


4.4. 개정P 시대(1994.12 ~ 2000.12)[편집]


1. 1994.12 ~ 1997.4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시스템-1(키보드/신디사이저): 후쿠마 하지메
  • 시스템-2(키보드/베이스): 코니시 켄지
  • 알고리즘(드럼): 카미료 와타루

2. 1997.5 ~ 2000.12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시스템-1: 후쿠마 하지메
  • 시스템-2: 코니시 켄지
  • 드럼 : 버츄얼 드러머 TAINACO (TAINACO-Ⅱ/TAINACO-E[22])


5. 멤버 목록[편집]



5.1. 히라사와 스스무 (平沢進)[편집]


P-MODEL의 리더, 메인 보컬, 기타리스트. 히라사와 스스무 항목 참조

5.2. 아키야마 카츠히코 (秋山勝彦)[편집]


P-MODEL 초대 멤버. 1959년 4월 11일 도쿄도 출생. 베이시스트, 키보디스트, 송라이터. 트위터

P-MODEL의 전신이 되는 맨드레이크의 유일한 열성팬이었으며 이후 맨드레이크의 스태프까지 맡게 된다. 이후 펑크록으로 완전히 전향한 P-MODEL의 정식 멤버가 되어 베이스를 맡는다. 이때 베이스를 거의 처음 잡아본 탓에 연주가 심하게 단조롭지만 멤버 중에선 인기가 제일 많았다. 히라사와가 말하길, 아이돌같은 존재가 필요해서 섭외했다고 한다.

원래 신디사이저를 배워왔지만 타나카 야스미가 키보드/신디사이저 자리를 완고하게 고집한 탓에 익숙치 않은 베이스를 치게 되었다. 오히려 타나카가 원래 베이시스트였다는 게 정말 아이러니. 2집 LANDSALE부턴 작곡에도 도전하여 터치 미(タッチ ミー), NA・KA・YO・SHI (ナ・カ・ヨ・シ), 지구의(地球儀) 3곡을 수록하게 된다. 이후 히라사와가 테크노 열풍의 과열에 기존의 컨셉을 최대한 뒤엎기로 하면서 갈등이 생긴다. 후일 해명하길 곡의 성향을 바꾸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진 않았지만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탈퇴 후에는 1982년에 니혼대학 치대에 진학하기도 했으나, 85년에 중퇴했다.

이후 Here is Eden이라는 밴드에서 보컬&기타로 활동하면서 히라사와와 화해하고 솔로 투어 멤버로 같이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92년 해동 P-MODEL의 정식 멤버로 돌아왔다. 활동 기간을 재결합 시점에 확정시켜놓은, 재탈퇴가 예정되어있는 합류였지만 중도에 밴드에서 쫒겨났었으니 P-MODEL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때의 포지션은 키보디스트..겸 마라카스를 흔들며 격렬한 댄스를 추거나 상탈까지 마다않는 P-MODEL의 씬스틸러가 되었다. 이런 퍼포먼스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팬들도 많았다고. 몇몇 팬들이 엽서로 퇴출을 요구하기도..

P-MODEL(8번째 정규앨범)에선 CLEAR(본인 보컬), GO AMIGO를, Big Body에선 JOURNEY THROUGH YOUR BODY, BURNING BRAIN(본인 보컬)을 작곡하였다.

P-MODEL의 리비젼과 함께 다시 탈퇴. 따로 하던 밴드도 활동을 정리하고 소소하게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

5.3. 타나카 야스미 (田中靖美)[편집]


P-MODEL 초대 멤버. 1953년 12월 5일 도쿄도 히가시쿠루메시 출생. 메인 키보디스트, 백 보컬, 메인 송라이터.

초기 P-MODEL의 사운드에 테크노 스타일을 부여하는 키보디스트이자 히라사와와 함께 초기 P-MODEL을 이끈 작곡 투톱.

맨드레이크 시절에 아베 후미야스가 섭외해왔다. P-MODEL 이후엔 핑크/옐로로 직접 튜닝한 신디사이저로 광기넘치는 속타와 함께 제자리뛰기를 하거나 점프를 하는 등 격한 연주를 선보인다. 컨셉이 변화한 이후엔 그만두었지만.

헬스 엔젤(ヘルス・エンジェル) 룸 러너(ルームランナー) 선샤인 시티(サンシャイン・シティー, 가사는 히라사와 유이치 작사) 같은 P-MODEL의 대표곡을 만들어냈다.

4번째 정규앨범인 Perspective를 마지막으로 아이디어 부족을 이유로 탈퇴. P-MODEL은 활동을 계속했지만 그의 탈퇴 후 P-MODEL은 한동안 밴드의 성격을 잃고 레이블과의 갈등이나 히라사와의 정신불안, 멤버들의 연속적인 교체 등 혼란기가 이어진다. 1989년 히라사와가 배포한 CG연하장에선 그의 탈퇴를 한쪽 팔을 잃어버렸다고 말할 정도.

현재는 음악에서 완전히 손을 뗀 상태. 현재 시부야 에비스역 근처에 아시아 전통의상이나 장신구 장식품을 판매하는 수입잡화점을 하고 있다. 유튜브채널에 본인이 제작한 음악을 몇가지 업로드해놓았다. 웬만해선 타 뮤지션과의 친분을 공개하지 않는 히라사와가 직접 트위터로 그가 취미로 만든 음악을 홍보하거나 핵P-MODEL의 2집에 술을 동원하면서까지 참여를 종용할 정도로 상당히 끈끈한 우정임을 유추할 수 있다.

5.4. 타이나카 사다토시 (田井中貞利)[편집]


P-MODEL 초대 멤버. 1953년 10월 29일 후쿠오카현 치쿠조 군 출생. 드러머이자 P-MODEL의 영구결번이다.

맨드레이크 시절부터 드럼만 담당해왔다. 선글라스가 트레이드 마크로 80년대 초반 테크노 고산케로 묶이던 히카슈, 플라스틱스가 드럼을 리듬박스로 대체한 것과 달리 드럼을 고수해 빠른 박자와 박력으로 사운드를 차별화하는데 기여. 박자 맞추는 실력은 애매하지만 펑크록에 딱 맞는 드럼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본업은 측량기사. 1984년을 마지막으로 탈퇴했다가 87년 3월 타이나카 파트2라는 이름으로 복귀.

이때의 연주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으로 템포가 빠른 곡이나 본인이 녹음을 맡았었던 곡에선 좋은 평을 받지만 템포가 낮거나 본인이 녹음에 참가하지 않았던 곡에서 많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 분위기에 따른 강약조절이 없거나 새로운 박자를 창조하는 등.

P-MODEL 동결 후 열린 1번의 임시 재결성 라이브 이후엔 자취를 감추고 본업에 종사하는 중이다.

97년 개정P-MODEL의 드러머였던 카미료 와타루가 탈퇴한 이후 새 드러머를 뽑지 않고 TAINACO라는 버츄얼 드러머가 제작된다. 타이나카 얼굴의 로봇이 코드나 PC에 연결된 신디사이저 연주에 따라 전자드럼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으로 99년엔 로봇을 본인의 실제 사진으로 대체한 버전이 나왔다.

현재는 삿포로에서 측량기사 일을 하면서 평범하게 지내는 중. 히라사와도 자주 만나며 절친으로 잘 지내는 중이라고 밝혔고 게스트로 굳이 불러낼 의향은 없다고 밝혔다.

5.5. 키쿠치 타츠야 (菊池達也)[편집]


1963년 7월 30일 도쿄도 미나토구 출생. 트위터 인스타그램
1980년 아키야마를 대신해 라이브에서 베이스 세션을 담당해 고교졸업 직후 P-MODEL에 입단.
탈퇴 후 데릴사위로 결혼하여 사쿠마 타츠야(佐久間達也)로 개명하고 레코드 샵을 운영하다, 2018년부터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5.6. 미우라 슌이치 (三浦俊一)[편집]


메인 키보디스트. 1964년 8월 18일 도쿄도 에도가와구 출생.
타나카를 대신해 고교 졸업 직후인 1983년 3월 입단해 1985년 12월 탈퇴. KARKADOR 이후 P-MODEL이 박자 하나하나에 민감해지는 등 기존의 분위기가 희석되면서 밴드활동에 흥미를 잃어버려서 탈퇴했다고 밝혔다.
ダンス素凡夫를 히라사와와 공동작곡하였다.

5.7. 요코가와 타다히코 (横川タダヒコ) [23][편집]


베이시스트, 바이올린, 송라이터. 1957년 1월 29일 돗토리현 돗토리시 출생.
P-MODEL 입단 이전엔 4-D[24]라는 테크노 펑크 밴드의 멤버였으며 P-MODEL 매니저에게 섭외된다. 기본적인 포지션은 베이스지만 바이올린 연주가 가능하고 보컬과 작곡 능력도 출중한 멀티 플레이어.
1985년 앨범 KARKADOR의 바이올린 사운드의 주인공. 그러나 미우라와 같이 밴드 활동이 힘에 부쳐서 앨범 출시 2개월만에 탈퇴하고 말았다.

1986년 탈퇴한 이후로도 4-D나 솔로 음반, 영화 OST 제작 등 음악활동을 이어나가는 중.

5.8. 아라키 야스히로 (荒木康弘)[편집]


1959년 1월 22일 니가타현 카시와자키시 출생.
1985년 1월 타이나카를 대신해 들어온 드러머. 본래 '알레르기'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1984년 서포트&퍼커션 담당으로 들어왔는데, 알레르기가 해체하고 타이나카가 탈퇴하자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밴드 내에선 아-쨩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부모님에겐 직장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활동해왔다. 대충 취미로 직장인 밴드나 하는 줄 알고 계셨다고.. 결국 들켜서 음악 활동을 접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밴드활동만은 접지 않고 계속 하고 있으며 2012년 히라사와 솔로 라이브 PHONON2555 VISION 라이브에 게스트로 참가해 팀파니를 맡았다.

5.9. 나카노 테루오 (中野テルヲ[25])[편집]


베이시스트, 키보디스트, 송라이터. 1963년 8월 12일 도쿄도 출생. 개인 트위터 공식 트위터 페이스북 홈페이지

P-MODEL의 동결 직전까지 베이시스트이자 송라이터. 원래 P-MODEL의 로디였는데 히라사와가 그의 연주 실력을 눈여겨보고 캐스팅. 작사와 작곡까지 다수 해내게 된다. 히라사와 덕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P-MODEL 동결 이후 LONG VACATION이라는 시부야계 밴드를 결성하여 1995년까지 활동하다 밴드 해체 후 中野テルヲ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솔로 활동중.

P-MODEL 7번째 정규앨범 ONE PATTERN에서 LICORICE LEAF, 뫼비우스의 띠(メビウスの帯), サンパリーツ를 작곡했으며 앞에 두 곡은 본인이 보컬을 담당. 레이블과의 갈등으로 발매되진 못했지만 본래 8번째로 나올 예정이었던 정규앨범을 위해 CRUEL SEA, CALL UP HERE 등을 작곡하였다.

5.10. 타카하시 요시카즈(高橋芳一)[편집]


키보디스트. 1961년 8월 2일 도쿄도 출생. 트위터 페이스북 홈페이지
입단 당시 키보드는 칠 줄 알았지만, 스테이지에서는 베이스만 쳐 봤던 상태였다. P-MODEL 이전에는 'ROOM'이라는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를 맡고 있었다고 한다. 1991년부터 'UTS(Under Techno System)'이라는 솔로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나카노 테루오나 아키야마 카츠히코 등등의 前 P-MODEL 멤버들과 협업하고 있다. 사실 키보디스트보다는 사운드 엔지니어에 가까웠다고 한다.

5.11. 코토부키 히카루 (ことぶき光)[편집]


동결 직전까지의 키보디스트와 동시에 해동 P-MODEL의 메인 키보디스트. 1964년 3월 30일 홋카이도 소라치 종합진흥국 누마타정 출생. 트위터 홈페이지

가입 당시엔 별다른 활약은 없었지만 이후 히라사와 솔로 투어를 서면서 움직임이 많아지고 앵콜 피날레에 키보드 위에 올라서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광기를 드러낸다.

해동 P-MODEL에선 키보드와 신디사이저로 조형물을 만들어 점프해가면서 연주하는 기행의 달인이 되었다. 그 기괴함에 키보드 요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해동 P-MODEL 특유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공헌하였으며 2D OR NOT 2D, LAB=01, 幼形成熟BOX 등 전파송 성향의 곡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2D OR NOT 2D가 히라사와의 뮤비제작 센스와 환장의 콜라보 덕에 해동 P-MODEL 곡 중 최고로 꼽힌다.

P-MODEL이 개정 준비를 선언과 함께 다시 활동이 중지된 이후엔 P-MODEL의 카피 밴드 프놈펜모델(プノンペンモデル)에서 활동하거나 개인 명의로 앨범을 발매해 아마존 음반 판매 랭킹에 오르기도 하였다.

2012년 하츠네 미쿠를 클래식 콘서트에 등장시키는 프로젝트에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서 오케스트라와 화음을 맞추기 위한 엔지니어로 섭외되었다.

현재는 삿포로 시립대학과 홋카이도 정보대학에서 시간강사도 겸하고 있다.


5.12. 후지이 야스치카 (藤井ヤスチカ)[편집]


해동 P-MODEL의 드러머. 1967년 11월 21일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출생.
전자드럼과 어쿠스틱 드럼을 같이 세팅해놓는다. 현재는 The Groovers라는 밴드에서 꾸준히 음악 활동중.

5.13. 카미료 와타루 (上領亘)[편집]


알고리즘(드러머). 1964년 9월 3일 도쿄도 출생.
P-MODEL 합류 전에는 1990년까지 GRASS VALLEY의 멤버, 1990년부터 1991년까지 Soft Ballet의 서포트 멤버로 있었다. 히라사와 솔로 공연에서 드럼 세션을 자주 맡기도 했다.

5.14. 후쿠마 하지메 (福間創)[편집]


개정 P-MODEL에서 시스템1(키보드, 신디사이저, 백보컬)이자 현재 세상을 떠난 유일한 멤버.
후쿠마 하지메 항목 참조

5.15. 코니시 켄지 (小西健司)[편집]


개정 P-MODEL의 시스템2(키보드, 신디사이저, 보컬).1955년 10월 20일 오사카부 출생.

본래 4-D의 멤버로 80년대부터 히라사와와 친해 서로 음악의 견문을 넓혀주는 사이였다. 95년 개정 P-MODEL의 멤버로 참가. 인터넷으로 후쿠마를 새 멤버로 헌팅했다고 한다.
포스도 그렇고 공연에서 하는 퍼포먼스도 그렇고 마치 사이비 교주같다. VR이나 파워 글러브를 무대에서 사용하는 등. 보컬이 특이하여 히라사와와 듀엣으로 부르거나 단독으로 부른 곡도 꽤 있다.

99년엔 히라사와와 독일의 아티스트와 합작한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였다.

P-MODEL 해체 이후 4-D로 돌아가 계속 활동중. 히라사와가 종종 레코딩에 참여한다고 한다. 헤어스타일은 스킨헤드에서 모히칸으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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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0년대에 개명된 이름. 밴드활동 당시엔 横川理彦로 발음은 똑같다.[2] 개명 전 P-MODEL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이름은 中野照夫이며, 발음은 똑같다.[3] 일본어 위키백과에선 포스트 펑크로도 분류하고 있다.[4] 당시 후쿠오카송신소나 키타큐슈 송신소에서 발신한 신호가 잡힌 모양이다.[5] 이후 초반부를 재작업하여 IN A MODEL ROOM에 偉大なる頭脳라는 이름으로 수록된다.[6] 후일 히라사와 솔로 앨범 수록곡인 QUIT, UNDOをどうぞ에서 늙은 노인의 나레이션으로 참여하게 된다.[7] 2013년과 15년에 히라사와 솔로 공연에 목소리로 참여하기도 하였다.[8] 1952~2014. 일본의 연주자(키보드&베이스&기타)/작곡가/프로듀서. P-MODEL과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테크노 팝 밴드 플라스틱스의 키보디스트였으며, 이후 BOØWYJUDY AND MARY, GLAY 등등의 유명한 밴드와 아티스트들을 프로듀싱하며 'J-Rock의 대부'로 불리운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아키야마가 주로 사용했던 베이스인 'Epiphone 뉴포트 베이스'는 이 사람한테서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9] 사쿠마가 처음으로 프로듀싱한 아티스트가 P-MODEL이다.[10] 훗날 히라사와는 그냥 1,2집과 같은 앨범을 계속 냈으면 스타디움 공연을 할 만큼 잘나갔겠지만 현재와 같은 음악은 영원히 못했을 거라며 이 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11] 훗날 요코가와와 미우라는 밴드의 분위기가 너무 경직되어 활동에 지쳤었다고 밝혔다.[12] 원래 P-MODEL의 로디였다.[13] 이후 트위터를 통해 당시 살인적인 스케쥴 때문에 공황장애까지 왔었다고 밝혔다.[14] CG디자이너. 히라사와 스스무 솔로활동의 가장 큰 이벤트인 인터랙티브 라이브의 CG영상을 제작하고 있다.[15] 1987년 旬IV(슌IV)에도 참여하였다.[16] P-MODEL과 히라사와 스스무가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던 시기이지만 P-MODEL이 가장 빈곤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멤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얼굴이 알려져있는 탓에 알바를 하기가 곤란했던 히라사와는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에서 강사로 일했다고 한다.[17] 입단 당시 라이브 세션 멤버였으며(이 때가 고등학교 2학년.), 1982년부터 정식 멤버가 된다.[18] 이후 아이디어 부족을 이유로 탈퇴한다. 89년 히라사와가 공개했던 CG연하장에서도 한쪽 팔을 잃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P-MODEL에서 히라사와와 더불어 음악적인 투톱이었다.(갈수록 타나카의 작곡 비율이 줄어들긴 했지만)[19] 오랫동안 드럼스틱을 잡지 않아 실력이 미숙해진 탓에 드럼 연주 스타일이 호불호를 많이 타는 편이다. 비트가 강해 라이브 분위기를 잘 띄워준다는 쪽과 연주가 깔끔하지 못하고 가끔 새로운 박자를 창조하기도 해서 마음에 안든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20] 이 때부터 특이하게 키보드를 세워놓고 매우 현란한 연주를 선보인다. 이 특이한 연주 덕에 키보드 연주로 관객의 영혼을 가져가버린다는 키보드요괴(キーボード妖怪)라는 별명이 붙었다.[21] 이 시기부터 베이시스트가 키보드도 겸하면서(물론 메인 악기는 키보드) 트윈 키보드 체제로 변경되었다.[22] 1999년 P-MODEL 데뷔 20주년을 맞아 실사로 제작되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그의 근황은 여기까지가 한계.[23] 90년대에 개명된 이름. 밴드활동 당시엔 横川理彦로 발음은 똑같다.[24] 후일 개정P의 멤버가 되는 코니시 켄지도 원래 이 밴드의 멤버였다.[25] 개명 전 P-MODEL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이름은 中野照夫이며, 발음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