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HS 브리타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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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200px-HMHS_Britannic.jpg

HMHS 브리타닉

1. 개요
2. 제원
3. 함생
4. 특징
5. 침몰
6. 여담


HMHS[1] Britannic


1. 개요[편집]


파일:britannic_marshall_a_grecore.jpg

1914년 2월 26일 진수되어 1916년 11월 21일 침몰화이트 스타 라인의 올림픽급 여객선 3번함 대서양 정기 여객선/병원선.


2. 제원[편집]


  • 진수: 1914년 2월 26일
  • 용도변경: 1915년 12월 23일
  • 침몰: 1916년 11월 21일
  • 전장: 269m
  • 넓이: 19.7m
  • 배수량: 53,200tn
  • 콜사인: MUC
  • 용도: 여객선(1914년 2월 26일 ~ 1915년 12월 23일), 병원선(1915년 12월 23일~1916년 11월 21일)

3. 함생[편집]


대서양 횡단을 기반으로 할랜드&울프 사에서 만들어진, 올림픽급 1번함 올림픽, 2번함 타이타닉의 자매선이다.

올림픽과 타이타닉이 각각 올림푸스족과 타이탄족의 이름을 땄듯이 3번함의 이름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기간트족의 자이갠틱(Gigantic)이라 이름지어질거란 소문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덤으로 독일 꼽주기 위해 브리타닉(Britannic)이라 지어졌다.

자매선인 올림픽과 타이타닉보다 훨씬 늦게 진수되었는데, 타이타닉 침몰 사고로 인해 올림픽급 선박들에게 치명적인 결함[2]이 있단 게 밝혀지자 건조 중이던 브리타닉의 수밀격벽 및 다른 부분의 설계를 바꾸어야 했기에 진수는 더 늦어졌고 1914년 2월 진수 후 화이트 스타 해운에 인도되어 어찌저찌 여객선으로 활용되나...싶었으나, 약 1년 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병원선으로 징발되어 개조되었다.[3] 그 후 부상자들을 태우며 안정된 항해를 하였으나 독일군이 깔아놓은 기뢰를 건드려 에게 해에서 침몰하였다. 타이타닉 침몰 후 선박 안전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면서 이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후 브리타닉에 선박의 정원을 초과하는 인원을 태울 수 있도록 대빗이라는 크레인을 설치해서 구명보트를 한계치까지 늘렸는데, 이는 브리타닉이 침몰할 때 사망자 수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4. 특징[편집]


파일:2821ed661c76ae45e31401a935131720.jpg

앞서 말했다시피 선체 후방과 상부에 간트리 대빗(Gantry Davit)이라는 크레인으로 구명보트 수를 늘렸는데, 사진에서 보이듯 커다란 크레인에 구명보트를 줄줄이 매달아 놓은 모양이었다. 미관상으로는 배가 더럽고 난잡하게 보이는 문제가 있었으나 배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지더라도 기다란 대빗을 늘어뜨려서 양쪽 모두 구명보트를 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실제로 브리타닉이 기울어지며 침몰할 때 이 간트리 대빗 덕분에 신속한 탈출이 이루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또한 타이타닉 침몰 후에 올림픽호와 브리타닉의 격벽이 보완되었다. 15개의 격벽 중 6개의 격벽을 B데크까지 올렸으며 엔진과 보일러실은 2중 선각구조(Double-Hull)로 제작되었다. 이로 하여금 설계상 선수를 기점으로 6구획이 침수되어도 배의 부력을 유지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이렇게 배의 구조가 바뀌면서 브리타닉은 타이타닉보다 더 큰 배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배는 아니었다. 브리타닉이 진수됐을 때 가장 큰 여객선이라는 타이틀은 독일의 SS 임페라토어[4]가 가져갔다.


5. 침몰[편집]


첫 폭발로부터 침몰까지 브리타닉 침몰 사건을 실시간으로 자세하게 재현한 영상. 언리얼 엔진 4가 활용되었다고 한다.[5]
1916년 11월 21일 아침, 에게해를 항해하던 브리타닉 호의 우현 선수쪽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난다.[6] 폭발로 인해 우현(Starboard) 2구역과 3구역 사이에 구멍이 생기고 폭발의 충격으로 일부 방수격벽에 손상이 가 6구획이 침수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설계상 브리타닉은 선수를 기점으로 6구획이 침수되어도 부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선수가 가라앉으며 간호사들이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으로 물이 들어와 다른 구획이 침수되었고 이는 침몰로 이어졌다. 찰스 알프레드 바틀렛(Charles Alfred Bartlett) 선장은 가까운 섬으로 배를 전속력으로 몰아 좌초시켜 침몰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배가 심하게 기울어져 가망이 없었다. 이후 급히 퇴선하느라 구명정들이 다소 무질서하게 내려지긴 했어도, 타이타닉 참사의 교훈으로 승선원 정원보다 훨씬 많은 이를 태울 수 있도록 넉넉히 탑재된 구명정의 숫자 덕분에 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없었다. 단 구명정 하나가 전속력 추진 중인 배의 왼쪽 스크류에 갈려서 대략 30명이 사망한다.[7] 바틀렛 선장 또한 침몰하는 배에서 침착히 걸어내리는(!) 대담함을 보이곤 근처의 구명정으로 헤엄쳐가 구조 작업을 전두지휘했다고 한다.

배는 기울어진 채로 버티다가 유입된 해수가 점점 늘어가기 시작해 뱃머리 부분이 뒷쪽을 끌어당기는 현상이 일어나 매우 빠르게 가라앉으며 약 55분만에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물에 빠진 많은 사람들은 타이타닉이 침몰한 북대서양과는 달리 수온이 따뜻한 지중해여서 스크류에 갈려 죽은 30명을 제외하고 전부 사고 해역 인근을 지나던 HMS 스크루지에 의해 모두 구조되었다.

파일:Uㄹ홀호1.jpg
  • 브리타닉의 잔해

해저 146m의 그다지 깊지 않은 연안에 침몰해서인지 타이타닉보다는 멀쩡하게 형상이 남아있어 지금도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침몰선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

하지만 동남아 여행길에서 체험다이빙 하듯 처음 접하는 사람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다이빙포인트는 아니다. 비록 약 4,000m 수심의 대서양에 비하면 접시물 수준의 수심이지만 100미터가 넘는 수심에서 하는 다이빙은 테크니컬다이빙의 영역이고 그 테크니컬 다이빙에서도 트라이믹스, 어드밴스드 침몰선 다이버 등과 같은 상급교육과정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의 깊이이다. 링크의 영상은 재호흡기라는 장비를 착용하고 들어간 영상인데 이를 다루기 위한 교육과정은 테크니컬다이빙 교육과정에서도 끝판왕에 속한다. 대한민국 해군의 SSU의 40m 잠수 훈련만 해도 이걸 못 버티고 퇴교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절대 만만한 깊이가 아니다. 자세한 건 스쿠버다이빙 항목에 테크니컬다이빙, 스쿠버다이빙/장비 부분을 참조할 것. 만약 다이빙으로 난파선 잔해를 직접 구경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사이판이나 괌으로 가는 편이 훨씬 낫다.

영국 해군 예비역 장교였던 바틀렛 선장은 배를 잃은 뒤 해군에 소집되어, 대령 계급으로 조지 5세전속부관 등을 맡다 전후 1931년까지 다시 상선을 탔다. 은퇴 후 워털루에 정착해 1945년 2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보지 못하고 76살에 사망했다.


6. 여담[편집]


이 배의 침몰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인 브리타닉이 있다. 다만 스토리의 전개가 실제 침몰과는 상당히 다르다.

브리타닉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침몰한 가장 큰 상선이다. 이것 때문에 졸지에 U-73은 1차 대전에서 가장 큰 선박을 격침시킨 잠수함이 되었다. 기뢰에 의한 격침 전과는 그 기뢰를 부설한 함의 전과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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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is/Her Majesty's Hospital Ship. 당시는 조지 5세의 재위 기간이였으므로 His Majesty's Hospital Ship으로 부를 수 있다.[2] 방수격벽을 끝까지 올리지 않은 점, 구명보트가 부족했던 점이다.[3] 이 때 철거된 내장재들은 경매 등으로 팔려나가 아직까지도 일부를 주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4] 52,117톤급 여객선이다. 제1차 세계대전때 침몰한 큐나드 라인RMS 루시타니아에 대한 보상으로 큐나드 라인으로 넘어가 'RMS 베렝가리아'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1939년에 스크랩 되었다. 비슷하게 임페라토어의 자매선 SS 비스마르크 라는 여객선은 1차세계대전에서 침몰한 브리타닉에 대한 보상으로 화이트스타로 넘어가 'RMS 마제스틱'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1939년, 화재로 침몰하였고 이후 1943년 건저올려 스크랩 되었다. 또 임페라토어와 비스마르크의 자매선 SS 바터랜드 라는 여객선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넘어가 'SS 레비아탄'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1938년에 스크랩되었다. 참고로 임페라토어와 마제스틱, 바터랜드 이 세척의 여객선들은 '임페라토어급 여객선' 이라고 부른다.[5] 브리타닉 소재의 VR게임 홍보의 일환으로 제작됐다고 한다.[6] 원래는 잠수함의 소행이라 추정되었으나, 훗날 독일 제국 해군 잠수함 U-73이 깔아놓은 기뢰를 건드렸던 것이라고 판명난다.[7] 위 영상의 22분 25초쯤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