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창단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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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SSG 랜더스]]로서 첫 시즌. ||




1. 창단 초창기의 암흑기
2. 2003년 돌풍의 한국시리즈 준우승
3. 2004년
4. 2005년
5. 2006년
6. 2007년 - 전성기의 시작
7. 2008년


1. 창단 초창기의 암흑기[편집]


2000년도 ~ 2002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숭의야구장 / 2000년
66
84,563
1,281
7위
숭의야구장 / 2001년
67
178,645
2,666
7위
문학 야구장 / 2002년
66
402,732
6,102
3위

SK 와이번스 2000 시즌 ~ 2002 시즌
2000 시즌 최종 순위 (2000년 10월 13일 확정)
8




승률
44
3
86
23.0
0.338
2001 시즌 최종 순위 (2001년 10월 4일 확정)
7




승률
60
2
71
6.5
0.458
2002 시즌 최종 순위 (2002년 10월 20일 확정)
6




승률
61
3
69
21.5
0.469

해체된 상태로 인수받은 옛 쌍방울 선수단의 전력은 도무지 프로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상태였다.[1] SK로서는 KBO에 선수 지원책을 요구했고, KBO는 2002년 시즌까지 외국인선수 3명 계약(2명 출전)과, 팀별로 23인의 보호선수 외에 팀별로 1명씩 지명 트레이드를 약속한다.

전자야 그렇다치더라도, 후자의 경우는 SK의 전력 강화 목적이 아닌, 기존 7개 구단이 신생 구단을 길들이는 행위에 가까웠다. 가입금 250억원 중 7개 구단이 10억씩 가져가는 대신 보호선수 외의 선수를 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트레이드된 선수들은 아래와 같다.

이 중 10억짜리 선수가 보이는가? 아마 1억짜리 선수도 안 보일 것이다.[2] 아무리 선수가 급한 SK라고 해도 이런 선수들을 70억에 데려오고 싶을 리 만무하다.[3] "차라리 우리가 알아서 선수들을 데려올테니 70억을 돌려줘라"라는 SK의 항의에, KBO는 SK에게도 10억을 주는 것으로 달랜다.

99년 쌍방울보다는 조금은 나아졌다지만, 이 정도 지원책으로는 당초 SK가 기대했던 4할 승률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나마도 팀 전력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었던 외국인 선수 2명(헨슬리 뮬렌, 타이론 혼즈)은 함량 미달 선수로 판명됐고[4] 5월에 전원 교체 카드를 꺼냈다.[5] 그럼에도 여전히 리그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자 2000년 시즌 중 SK는 7개 구단에 이와 같은 요구사항을 신생팀 긴급 지원 방안으로 제시한다.

* 2002년 신인 2차지명 우선권 3명[6]

* 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에서 보호선수 20명 외 1명을 현금 트레이드

* 2000년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에서 보호선수 21명 외 1명을 현금 트레이드

이에 연고권 때문에 몇 차례 얼굴을 붉힌 적이 있던 LG두산은 강력하게 반대한다. 다행히 SK 덕분에 꼴찌를 면하고 있던 한화해태의 중재 끝에, 이 요구는 8월 29일 이사회 간담회에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SK는 2001년과 2002년 2차지명에서 이대호 거르고 김희걸, 김동건, 조형식(이상 2001년), 제춘모, 윤길현, 박창근(이상 2002년)을 지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 한국시리즈의 준우승팀인 두산으로부터는 6.5억원에 강혁을, 우승팀인 현대로부터는 15억에 조규제조웅천을 현금 트레이드로 받아온다.[7]

2000 시즌에는 시범경기에 참가하지 않았고 정규시즌부터 참가했다. 흥미롭게도 정규시즌 개막전(4월 5일 대구 삼성전)과 홈 개막전(4월 8일 인천 한화전)은 모두 이겼지만 거기까지였다. SK는 4월 14일 두산전부터 4월 23일 현대전까지 9경기를 내리 진 것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경기에서 패배하며 시즌 초부터 독보적 꼴찌로 떨어졌다. 다만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 이승호가 선발과 중간, 마무리를 가리지 않는 무리한 등판을 이어가 10승 12패 9세이브의 성적으로 KBO 신인상 타이틀을 따냈고[8]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따내면서 팀의 영건으로 떠오르며 희망을 키웠다. 또한 해태에 성영재를 내주는 대신 유망주 이호준을 받아오는데 성공했고, 타선에서는 외국인 브리또가 팀 타격을 이끌면서 이진영채종범 등 유망주들이 기회를 받았다. 아울러 인천 연고지에 빠르게 정착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고 이 노력의 일환으로 연고지 이전 이후 현대 유니콘스에서 겉돌고 있던 '미스터 인천' 김경기를 현금 트레이드 형식으로 데려왔다.[9]

창단년도인 2000년부터 2002년까지의 당시 SK의 전력은 근래에 SK의 팬이 된 사람들이 알면 충공깽인 수준이었다. 2000년에는 주력 선수들을 몽땅 팔아치운 쌍방울의 막장 전력을 기반으로 했던만큼 물론, 신생팀 혜택을 받아서 기존 7구단으로부터 신생팀 창단지원선수 7명을 현금 트레이드로 받아왔고 또 3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했음에도 막장으로 스타트, 2000년 44승 3무 86패인 성적으로 양대 리그를 통틀어 압도적인 꼴찌였으며[10] 5-7-6을 찍으며 망해가던 해태 타이거즈한테도 밥수준인 6승 13패를 헌납할 정도로 동네북 신세였다. 인천을 버리고 간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승팀 현대 유니콘스에겐 6승을 뽑으며 어느정도는 선전했지만 두산 베어스에겐 14차전까지 14전 전패를 당하면서[11] 전패 가능성이 나오다가 8월 1일에야 두산을 상대로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고 2승 17패로 마무리했다. 그나마 디펜딩 챔피언이자 3할대 승률로 전력이 약화된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9승1무9패로 동률을 기록했고 LG 트윈스를 상대로는 LG 천적 오상민을 앞세워 8승을 거뒀다.

거기다가 6점대 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847실점은 2013년까지 역대 최다기록이었으며 195피홈런은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게다가 홈 총 관중수는 8만4563명으로 한 경기 평균 2000명도 못 채웠다.[12] 흥행 문제는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1999년까지 인천 연고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돌연 인천 연고지를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바람에 다수의 인천 팬들이 멘붕에 빠져 야구를 끊어버린 것이 흥행 대실패의 첫째 이유고 1990년대 말부터 IMF 외환위기로 인해 관중이 줄기 시작했고 2002 월드컵 개최 등으로 인해서 프로축구가 급성장하게 되며 프로야구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그 다음 사유다.

2년차인 2001년엔 기존 외국인이었던 빅터 콜하비 풀리엄을 내보내고 페르난도 에르난데스호세 에레라를 새로이 영입하고 신생팀 지원책으로 우승팀 현대로부터 조웅천조규제를 현금트레이드해왔다. 그리고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 획득에 기여한 정대현이 입단하며 전력이 대폭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빈약한 투수 뎁스로 인해 특정 투수에 대한 의존도가 심했고, 이해 강병철 감독이 전년도 신인왕 이승호페르난도 에르난데스라는 원투펀치에게 무려 450이닝을 합작하게 만드는 정신나간 운용을 한 끝에 김명성 감독이 시즌 도중 세상을 떠난 롯데를 간신히 따돌리고 7위로 마쳤다. 그나마 4위 한화와의 게임차는 3게임도 되지 않았다.

2002년부터 새로 완공된 문학 야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겼고 새 구장 개장 효과와 그동안 눈물겹게 추진한 인천 연고지 정착 활동의 성과 덕에 40만명에 가까운 흥행몰이에도 성공했다.[13] 시즌 전 롯데의 주전 유격수 김민재를 FA 영입했고, 삼성과는 초유의 6:2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선수 풀을 넓혔다. 외국인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가 45홈런을 기록한 가운데 이진영이호준, 채종범의 포텐이 터지고 투수에서는 신예 채병용제춘모가 두각을 보이고 윤길현과 오승준이 1군에 등장하며 선수단도 4강 진출을 목표로 부지런히 노력했으나 결국 시즌 최종 성적은 전년보다 한 계단 상승한 6위였다. 에르난데스는 전년도 200이닝 이상을 소화한 여파로 일찌감치 부상으로 이탈했으며, 이승호는 6승12패의 성적에도 평균자책점 5위로 활약했으나 이닝 소화가 줄어들었다. 에르난데스 대신 시즌 포기를 선언한 롯데로부터 트레이드로 데려온 대니얼 매기는 기대 이하의 모습만을 보이며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초창기 암흑기 시절의 그나마 위안이었다면 이승호의 2000년 신인왕 수상과 틸슨 브리또호세 에레라, 호세 페르난데스 등 성공한 용병타자, 쌍방울의 마지막 유산이자 국가대표 우익수로 성장한 이진영과 해태에서 성영재를 주고 데려온 이호준의 성장,[14]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게 되는 포수 박경완의 영입, 조범현 감독 시절에 가서 어느 정도 수확을 거두기 시작한 상위지명 신인들 정도.[15]

2. 2003년 돌풍의 한국시리즈 준우승[편집]


2003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7
438,966
6,552
2위

SK 와이번스 2003 시즌
최종 순위 (2003년 10월 25일 확정)
2[16]




승률
66
3
64
13.5
0.508

SK 구단은 2002년 정규시즌 종료 후 강병철 감독과 결별키로 하고 삼성 라이온즈에서 배터리코치로 있었던 조범현을 2대 감독으로 영입했다. 그리고 FA가 된 특급 포수 박경완을 영입하면서[17] 팀의 기틀을 조금씩 갖춰간다. 외국인 선수로는 만능 내야수인 에디 디아즈와 선발투수 트래비스 스미스를 영입했다.

SK는 시즌 초부터 심상찮게 이기는 경기를 보여주더니 5월 말에는 선두로 치고 나갈 정도의 메가톤급 돌풍을 일으켰다. 여름에 냅다 퍼지는 와이번스 팀의 종특 탓에 악몽 같은 7~8월을 보내면서 시즌 최종반 한화한테 4위 자리를 내줘 가을야구 탈락 위기까지 다다랐지만, 한화가 두산에 고춧가루를 맞고, 한화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면서 페넌트레이스 4위를 확정짓고 창단 3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성과를 이루게 된다.

조범현 감독은 감독 경력 첫 시즌에 보란듯이 삼성과 KIA를 포스트시즌에서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는데 이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창단한지 3년밖에 안된 팀이 한국시리즈까지 올랐으니.[18] 페넌트레이스에서 4위를 한 SK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디펜딩 챔피언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2승 0패로 플레이오프에 나갔고[19] 플레이오프에서도 우승 후보로 꼽히던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3승 0패로 격침시키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다만 파죽의 5연승으로 올라간 한국시리즈에서는 에이스정민태를 앞세운 현대 유니콘스에게 깨졌지만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이었다.[20] 한국시리즈 종료 후 한동안 SK 와이번스는 '행복한 2위' 마케팅을 해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쏠쏠한 효과를 봤다.

3. 2004년[편집]


2004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6
337,674
5,116
3위

SK 와이번스 2004 시즌
최종 순위 (2004년 10월 5일 확정)
5




승률
61
8
64
12.5
0.488

2004년에 LG 트윈스에서 그 유명한 "야생마" 이상훈을 영입하여 지난 시즌 마무리를 담당한 조웅천과 더불어 이른바 "더블 스토퍼"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그러나 초반부터 좋지 않은 성적이 이어지자 자신의 플레이에 용납을 못한다는 이유로 결국 이상훈은 스스로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21]

조웅천 역시 작년과 달리 잔부상 등으로 예전의 구위를 회복치 못하고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선발로 영입한 용병 호세 카브레라를 시즌 후반에 마무리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다.

선발진에서는 이승호가 15승을 거두었지만 나머지 선발들은 부진했다. 다만 엄정욱이 당시 기아 리오스와의 선발대결에서 1피안타 14탈삼진 완봉승을 거두는 등 7승을 올리는 성과도 있었다. 또한 무명투수 김경태가 후반기에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깜짝 활약을 하기도 했다.

부진한 투수진과는 달리 타자들의 성적은 눈부셨다. 이진영은 시즌막판까지 브룸바와 수위타자 경쟁을 했지만 병역비리에 걸리며 결국 3할4푼2리로 타율 2위를 기록했다. 이호준이 112타점으로 타점왕, 박경완이 홈런 34개로 홈런왕을 차지했는데 이후로도 아직 와이번스 소속 타점왕은 나오질 않고 있으며 홈런왕도 2016년 최정의 공동홈런왕 이전까지 맥이 끊기게 된다. 그러나 팀 최종성적은 61승 64패 8무로 전체5위. 지금까지도 와이번스 역사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타격타이틀을 배출한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4강에 실패했다. 결국 타율2위, 타점왕, 홈런왕이 있어도 4강 진출에 실패한 것은 마무리와 선발의 부실 때문이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팀 내에서 골든글러브는 이진영(외야수)와 김기태(지명타자)가 수상했다.[22]

4. 2005년[편집]


2005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3
458,121
7,272
4위

SK 와이번스 2005 시즌
최종 순위 (2005년 10월 6일 확정)
3[23]




승률
70
1
50
3.0
0.583

2005년은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시즌이었다.

FA를 통해 LG 트윈스김재현을, 트레이드를 통해 KIA 타이거즈박재홍을,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된[24] 위재영을 영입했다. 애당초 병역비리 사건으로 생길 공백으로 김재현박재홍을 영입한 것이었으나 행정소송으로 이러한 문제점이 해결되어 대폭적인 전력증강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시즌 초에는 부상으로 인한 투수진의 붕괴와 타선의 집중력 부족으로 계속적으로 하위권으로 내려가더니 5월말에 기어이 꼴찌까지 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투수진에서 지난 시즌에 기껏해야 패전 처리조에 지나지 않은 신승현(12승)의 포텐 폭발과 김원형(14승)의 부활, 승부처마다 투입되어 2이닝 정도 중간에이스 역할을 한 위재영이 활약하고 그동안 부진했던 이호준이 여름부터 홈런포를 연이어 터트리면서 상황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거기한 교체영입한 용병 넬슨 크루즈[25]가 선발진에 가세하고 중간계투에 정대현이 부상에서 돌아오면서 8월말에는 단독 2위까지 치고올랐다. 그 때 벌어진 문학에서의 삼성 라이온즈와의 3연전은 미리보는 한국시리즈라고 제법 떠들썩하게 치뤄졌는데 지금도 간간이 틀어주는 박재홍의 홈스틸 장면도 이 3연전때 나온 것이었다. 결과는 1승1무1패.

이대로 쭉 가면 1위는 몰라도 2위는 매우 높은 확률로 정규시즌을 끝마치고 플레이오프 직행을 할 것이라고 와이번스 팬들은 전망했다. 그러나 3위 두산 베어스도 만만찮게 한두게임차로 시즌 막판까지 추격하고 있었다. 결국 시즌 최종전에서 그 결말이 나는데..., 와이번스는 LG 트윈스와 베어스는 KIA 타이거즈와 맞붙었는데 공교롭게 4강과 이미 멀어진 두팀을 상대로 홈에서 치뤄지는지라 누가 유불리한지 따질 수도 없었다. 결과는 베어스가 이기고 와이번스는 져서 한끝차 3위(70승 6무 50패)로 시즌 종료. 더욱이 LG 트윈스가 그동안 부진했던 선수들이 대활약[26]을 하면서 이겼는지 더욱 속이 쓰렸던 상황.[27] 하지만 15년이 지난 후 이를 완전히 설욕하였다.

포스트시즌에서 한화 이글스와(!) 맞붙어서 2승 3패로 탈락. 여담으로 2005년 포스트시즌에서는 가장 재밌던 시리즈였다.[28]

마지막으로 팀 내에서 김재현이 지명타자 부문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5. 2006년[편집]


2006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3
331,143
5,256
4위

SK 와이번스 2006 시즌
최종 순위 (2006년 10월 5일 확정)
6




승률
60
1
65
14.0
0.480

소속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지난 시즌에 비해 스탯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여 덩달아 팀 성적도 떨어진 시즌이었다. 용병들도 타자로 영입한 일본인 타자 시오타니 가즈히코가 시즌 초에 맹활약했으나 기아와의 경기에서 장문석을 상대로 몸에 맞는 볼로 인한 손가락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거구인 캘빈 피커링 또한 홈런을 쳐주긴 했으나 향수병 때문에 퇴출되었다. 후속 영입한 투수 용병들인 호세 카브레라와 댄 세라노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재계약에 실패. 특히 삼성 라이온즈에게 매우 약했는데 이는 지난 시즌에 선수생활을 한 강성우가 삼성 코치로 가면서 작전을 읽혔다는 분석이 있기도 했다. 결국 60승 1무 65패로 6위에 그쳤다.

그러나 소득이라면 후일에 와이번스의 기둥이 되는 자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정근우가 도루 2위를 하면서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김강민, 박재상, 최정[29] 등이 주전을 꿰차기 시작했다.

시즌 종료 후, 조범현 감독은 사의를 표하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구단은 신속하게 후임 감독을 물색했고 김성근을 감독으로 이만수를 수석코치로 기용하는 등 파격에 가까운 영입을 이뤄냈다.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참교육자 펠릭스 호세선생의 신승현 참교육 구타사건이 이 시즌에 일어났다.

6. 2007년 - 전성기의 시작[편집]


2007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3
656,426
10,419
4위

SK 와이번스 2007 시즌

파일:SK 와이번스 V1.svg

2007년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최종 순위 (2007년 10월 29일 확정)
1[30]




승률
73
5
48
0.0
0.603

와이번스-랜더스 프랜차이즈 최초의 우승시즌. 그러나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시즌 막판까지 두산 베어스와 1위 경쟁을 하였고 한국 시리즈도 레전드급 경기를 치뤄내어 이때부터 베어스와의 2000년대 후반 한국 프로야구의 라이벌 구도를 이뤄냈다. 와이번스는 김성근 특유의 스몰볼을 내세웠다면 베어스는 뛰는 야구에 기반한 선굵은 빅볼로써 대응하는 강렬한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면서 프로야구 흥행에 큰 기여를 했다.

선발진은 케니 레이번-마이크 로마노-채병용이 확고한 가운데 송은범이 뒷받침하고 막판에 신인 김광현이 한국시리즈에서 큰 역할을 했다. 타선이 전반적으로 스탯이 올라온 가운데 특히 최정은 수비가 많이 향상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완성형 3루수로써의 시작을 알렸고 베어스에서 트레이드된 나주환[31]이 유격수로 고정이 되면서 덩달아 내야수비까지 안정이 되었다. 결국 73승 48패 5무로 와이번스 최초의 정규 시즌 1위를 달성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 시리즈는 그야말로 명승부 중 하나였다. 1, 2차전 홈에서 모두 패배한 와이번스는 지금껏 2승을 먼저한 팀이 한국 시리즈를 우승한다는 징크스가 있었기 때문에 암울한 분위기 속에 잠실로의 원정을 가야만 했다. 그러나 3차전에서 로마노의 호투와 돌발적인 벤치 클리어링으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하더니 4차전에서는 김광현의 깜짝호투로 2승2패 동률을 만들었다. 5차전은 투수전속에 김재현과 이호준의 활약으로 승리. 결국 인천 홈에서의 6차전 승리로 한국 시리즈까지 우승했다. 3번의 우승 가운데 인천 홈에서의 우승 결정은 이 때가 유일하다. 2패후 4연승 한국 시리즈 우승도 KBO 최초. 한국 시리즈 MVP는 시즌 내내 부진했지만 승부처마다 홈런과 적시타를 때려낸 김재현이 차지했다.

한국 대표로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하여 준우승을 했다. 주니치 드래곤스와 1승 1패를 했지만 그 1패가 결승전이었다는 게 아쉬울 뿐.

마지막으로 박경완이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7. 2008년[편집]


2008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3
754,247
11,972
4위

SK 와이번스 2008 시즌

파일:SK 와이번스 V2.svg

2008년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최종 순위 (2008년 10월 31일 확정)
1[32]




승률
83
0
43
0.0
0.659

2008년 SK 와이번스는 83승 43패로 승률 0.659를 거두면서 KBO 리그의 역사를 새로 세우며 페넌트레이스 1위에 등극하였다. 83승은 126경기 체제의 최고기록이며, 당시 기준[33] 00현대(133경기, 91승)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승수이다. 4월 20일 이후로 시즌 종료일까지 1위를 유지하였다. 더불어 기존 해태가 1993년에 기록한 126게임체제 최고승률(.655)를 경신하는 기록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맞아 4승 1패로 2연패를 거두는데 성공하였다.

2007년의 에이스인 케니 레이번은 부진으로 17승 투수가 5승 투수로,[34] 4번타자인 이호준이 부상 및 수술로 8게임밖에 나서지 못하였다. 또한 나머지 외인인 다윈 쿠비얀[35]은 죽만 쑤다가 케니 레이로 교체되었는데, 케니 레이도 5경기만에 난타당하면서 빠르게 퇴출되었고, 에스테반 얀을 새로 영입하는 등 외인 교체도 잦았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는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를 국민우익수 이진영의 1루기용에서 드러나는 토탈베이스볼로 메꾸는데 성공하였다. 2년간의 동계훈련으로 누적해놓은 선수단 전체의 깊이와, 기존의 노장, 김재현이나 박재홍 등이 2008년에 대분투한 것이 이를 가능케 하였다.

투수 부문에서는 2007년 17승을 거두었던 레이번이 5승으로 부진하였고, 다윈 쿠비얀과 케니 레이의 연쇄부도, 채병용의 부상등으로 선발로테이션이 불안한데다가 마무리 정대현조웅천의 부진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극복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김광현은 2007년 가을의 활약을 정규 시즌에 보여주는데 성공하면서 다승 1위 - 탈삼진 1위 - 평균자책점 2위로서 투수 3관왕을 아쉽게 놓쳤지만, 정규 시즌 MVP와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전에 두 번 나와 금메달에 기여하면서 개인적으로도 군면제 혜택을 받게 되었다. 채병용은 눈에 띄지 않는 꾸준한 투구로서 팀의 2선발로서 제 역할을 해냈고, 승률 1위로서 첫 개인타이틀을 수상하였다. 정우람은 홀드왕이 되었고, 이승호는 오랜 재활 끝에 돌아와서 한국시리즈에서 1점만을 내주면서 두산의 타선을 틀어막는 데 성공하였다.

한마디로 4번 타자와 외국인 선수 하나 없이 126경기 체제 정규 시즌 최다승을 기록했다는 점. 한국시리즈에서도 후반기에 합류한 에스테반 얀을 제외시킨 채 두산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그럴만도 한 것이 2008년 승률을 보면 매월 승률이 6할을 웃돌았으며 가장 추락했던 것이 2008년 5월과 7월 6할 4푼대 승률이었는데 여름에는 뭐 다른 팀들도 다들 페이스 떨어질 때였고 2008년 6월에 KBO 역사상 월간 최다승 최고 승률을 갱신하며 벌어 놨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다.(월간 최다승 최고승률은 다음해 KIA 타이거즈에 의해 재갱신된다.)

이 때 SK팬들의 느낌은 5점차 6점차로 뒤지고 있어도 이길거 같고 어차피 경기는 이기는 거니까 스탯이나 챙겨보자

긍정적인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윤길현이 KIA의 최경환에게 욕설을 하면서 빚어진 욕설파문과 아시안 시리즈 예선에서 대만의 퉁이 라이온즈에게 지면서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또 창단멤버이자 시즌 내내 멀티플레이어로서 활약한 이진영이 LG로 이적하며 전력이 약화되었다.

[A] A B C D E F G 관중수 확인하는 곳: https://www.koreabaseball.com/History/Crowd/GraphTeam.aspx[1] 1999년 쌍방울은 28승 97패 7무의 성적을 올리는데, 144경기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30승 106패(!) 8무, 승률 0.221인 셈. 이보다 낮은 승률은 1982년 삼미의 기록 뿐이다. 그 막장으로 악명높은 02롯데보다 4푼이나 더 낮다.[2] 이중 강병규만 SK에서 1억 연봉을 받았고 7명의 선수 대부분이 2000년 한 시즌만 뛰었거나 길어봐야 2002년까지 SK에서 활동하고 퇴단했다. 그나마 오래 뛴 케이스라면 2006년까지 내야 백업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뛰었던 송재익.[3] 그나마 인천을 연고로 하는 구단임에도 선수단 내에 인천 출신 선수가 지극히 없었다는 점을 알고 다른 구단들이 인심을 쓴 것인지 동산고 출신의 장광호김충민, 인천고 출신의 권명철 등 인천 출신 선수 3명이 들어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구색 맞추기 수준에 불과했다.[4] 이들은 SK가 뽑은 것이 아니다. 해체되기 전 쌍방울 레이더스가 영입한 선수들이었다.[5] 당시 외국인 선수 T/O는 팀당 2명이었으나 2000년 SK는 신생팀 특별 지원 혜택으로 3명 보유 혜택을 받았다. 이때 데려온 선수가 내야수 틸슨 브리또, 투수 빅터 콜, 외야수 하비 풀리엄.[6] 쌍방울 창단시에는 2년동안 2차지명 우선권 10명을 주었다.[7] 그 당시부터 현대는 이미 자금난을 앓고 있었다.[8] 당시 야구관으로 고작 10승짜리 투수가 어떻게 신인왕이 됐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해 SK의 팀 전력을 감안한다면 이승호의 10승은 다른 팀 투수의 15승과 맞먹는 가치였다.[9] 김경기가 영입된 당시에는 SK 구단 차원에서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열었지만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던 강병철 감독의 선수단 운용 기조 탓에 김경기의 출전 기회는 현저하게 줄었고 결국 2001년 정규시즌이 끝난 후 은퇴하게 된다.[10] 전반기 23승2무64패였으나 후반기 21승1무22패로 5할대 승률 가까이 찍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11] 전 시즌 두산은 쌍방울을 상대로 16승 1무 1패라는 압도적 우위를 가져간 바 있다.[12] 충격적인 것은 SK의 2000년 흥행 기록이 꼴찌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해 해태 타이거즈의 홈구장인 무등 야구장의 관중 수는 6만9203명으로 경기당 평균 1049명에 그치며 관중 동원 순위 꼴찌를 기록했다.[13] 현재의 기준에서 시즌 관중 40만명은 우스운 숫자지만 이 당시의 환경을 감안하면 시즌 40만명 관중도 감지덕지해야 할 때였다. 2002년 시즌 관중 동원 1위 LG 트윈스의 관중 수는 LG의 역대 한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의 반토막 수준인 63만7878명이었다. 97패를 찍었던 롯데는 한 경기에 69명의 관중이 들어온 적도 있었다. 특히나 한일월드컵의 영향으로 매일 스포츠뉴스 톱뉴스는 축구 소식이 장식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매우 적었다.[14] 성영재는 해태로 가자마자 병역비리에 걸려 구속, 구치소에 수감됐으며(...) 어찌어찌 집행유예로 풀렸으나 얼마 못 가 방출, 이후에는 두산과 LG를 떠돌다가 얼마 못 가 은퇴했다. 이호준은 2001년부터 자리잡아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하였다.[15] 헛껍데기 수준이었던 쌍방울 출신 전력이 선수단 정리를 통해 빠르게 사라졌다는 점은 전력상으로 도움이 되었고, 이 자리를 신인지명과 트레이드, FA 영입을 통해 보강을 하면서 강화하게 되었다.[16] 정규시즌 4위.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에서 정규시즌 3위인 삼성 라이온즈와 2위 KIA 타이거즈를 꺾고 한국시리즈 진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으나 준우승으로 최종 순위는 2위.[17] 박경완의 영입 과정에서 적잖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 바로 조범현 당시 감독이었다. 조범현 감독과 박경완쌍방울 레이더스 시절부터 끈끈한 사제지간이었다. 무명의 미완 포수 박경완을 완성형 특급 포수로 만든 주역이 조범현 감독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18] 2003년 SK의 한국시리즈 진출은 신생팀의 역대 최단기간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 중 2위(1군 시즌 4년차)에 해당하는 것이다. 2013년부터 1군에 참가한 NC 다이노스201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2003년의 SK와 동률을 이루게 됐다. 신생팀 역대 최단기간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은 1986년에 창단된 빙그레 이글스1988년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 사실 LG 트윈스의 경우 창단 첫 해였던 1990년에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했긴 한데 그 쪽은 MBC 청룡을 인수한 뒤 재창단한 경우라서 얘기가 좀 다르다. 앞서 언급된 NC와 빙그레는 전신이 없는 순수 신생팀이었고 SK는 쌍방울 해체 후 재창단된 팀이기 때문이다.[19] 이 해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무려 삼중살이 나왔다. 타석에서 김한수가 삼진을 당했고 그 사이 1루에서 2루로 뛰던 양준혁이 협살에 걸려 아웃됐다. 거기까지는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플레이였는데 돌연 3루에 있던 마해영이 뇌주루를 시전하며 홈으로 뛰어들다가 태그아웃 당하면서 삼중살이 완성됐다.[20] 다만 2003년 한국시리즈의 경우 당시 프로야구가 전년도에 열렸던 월드컵으로 인해 축구에게 밀리는 등 역대급 흥행 침체기를 겪는 과정이었는 데다가 그 해 페넌트레이스마저 이승엽의 56호 홈런 신기록에 집중되어 있던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현대나 SK나 당시에는 팬덤이 적어서, 역대 한국시리즈 중 가장 흥행에 실패한 한국시리즈기도 하다.[21] 조범현 감독이 "상훈아, 이럴 거면 나와 같이 그만두자."라고 심각하게 설득했으나 결국 은퇴했고 10년간 야구계를 떠났다.[22] 막상 홈런왕에 OPS 1.0 이상을 찍은 박경완은 당시 홍성흔에게 밀려서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는데 이는 지금도 상당히 논란이 많은 수상 사례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당시 홍성흔은 거의 포수로 전 경기를 출장한 박경완과는 달리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기도 꽤 되었던지라 지금까지도 인기빨, 친목빨로 받았다는 말이 나오곤 한다.[23] 정규시즌 3위. 준플레이오프에서 정규시즌 4위 한화 이글스에 의해 탈락.[24] 부상과 불성실 등으로 몇 년간 기회를 받지 못하자 구단과의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2004년 말 자유계약선수로 방출되었고 고향팀 SK로 이적, 하필이면 이적한 구단이 당시 현대와 인천, 경기권 연고지 관련 문제를 가지고 있던 SK여서 현대 팬덤에서의 반응은 배신자(...)라고 까였다.[25] 2007년의 한화 이글스의 용병과는 다른 인물[26] 왈론드의 깔끔한 마무리와 한규식의 결승타.[27] 여기에 LG는 2005년 SK가 가장 상대전적에서 우세했던 팀이었다. 최종전 패배 전까지 LG전 9연승이었으니[28]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는 모두 승리팀이 스윕했다.[29] 특히 최정은 10대에 두자릿수 홈런을 치는 KBO 4번째 선수(김재현-이승엽-김태균에 이어)가 되었다.[30]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31] 이대수와 트레이드. 이대수가 송구동작을 사이드스로를 하는걸 김성근감독이 고치라고 했는데 말을 잘 안들어서 트레이드 시켰다는 카더라통신이 있었다.[32]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33] 2016년까지 범위를 넓히면 16두산(144경기, 93승)이 1위, 10SK(133경기, 84승)가 3위[34] 레이번 성적을 보면 평균자책점 순위권에 들 정도로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레이번 선발 등판이 SK 타자들은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많은 SK팬들은 레이번이 불쌍하다고 할 정도로 안타까워했다. 윤석민상 그리고 2016년 현재 같은 팀 외국인 후배 메릴 켈리가 레이번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35] SK에 오기 전에 한신 타이거스에서 3년간 뛰었다. 이때 보면 주로 2군에서 뛴 첫 해를 제외하면 꾸준히 셋업맨으로 뛰며 3년 동안 88경기에서 3승 5패 2세이브 18홀드에 ERA 3.76을 기록했다. 아무래도 불펜 스타일의 투수를 SK에서 무리하게 선발로 뛰게 하다가 탈이 난 듯. 그 후로 이탈리아 야구 리그로 진출하여 2016년까지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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