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LC(가수)

덤프버전 : r20210301


파일:0A96C9E7-E045-4341-8745-DB73ACFF67E7.jpg
TLC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펼치기 · 접기 ]


파일:0A96C9E7-E045-4341-8745-DB73ACFF67E7.jpg
결성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멤버
로존다 "칠리" 토마스
티오네 "티보즈" 왓킨스
리사 "레프트 아이" 로페스[1]
장르
R&B, , 소울, 힙합, 펑크(Funk)
활동기간
1991년 ~ 현재
데뷔
1992년 앨범 ‘Ooooooohhh... On the TLC Tip’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pn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1.1. 결성 역사
1.2.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
1.3. 데스티니스 차일드와의 관계
2. 멤버
3. 디스코그래피
3.1. 앨범
3.1.1. Ooooooohhh... On the TLC Tip (1992)
3.1.2. CrazySexyCool (1994)
3.1.3. Fanmail (1999)
3.1.4. 3D (2002)
3.1.5. TLC (2017)
3.2. 싱글
3.2.2. 빌보드 핫 100 2위
3.2.3. 빌보드 핫 100 3위~10위
4. 여담



1. 개요[편집]



폭포를 쫓아가지 말아요

그대가 원래 있던 곳, 강과 호수에 그대로 머물러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음대로 살고 싶다고 하겠지만

그댄 지금 너무 빠르게 떠내려가고 있어요

— Waterfalls


스파이스 걸스와 함께 전 세계 걸그룹의 끝판왕이자 양대산맥을 이루는 걸그룹.[2] TLC는 미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이고 스파이스 걸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이었다. 참고로 스파이스 걸스의 라이벌로는 올 세인츠(All Saints)[3]가 있었다.

미국컨템퍼러리 R&B 걸그룹. 멤버인 티 보즈, 레프트 아이, 칠리의 앞글자를 따서 TLC.

1991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결성되었으며, 그 당시 미국 최고 프로듀서/작곡가인 베이비페이스의 손을 거쳐 데뷔하였다.[4] 1991년 싱글 "Ain't 2 Proud 2 Beg"으로 데뷔하고 1994년에 발매한 2집 앨범 "CrazySexyCool"은 최우수 R&B앨범상을 수상하고, 미국에서만 1,000만 장 이상, 전 세계적으로는 1,600만장 이상 팔리는 등 상업적인 대성공을 거둔 걸그룹이다.


그룹을 상징하는 곡이자 빌보드 핫 100 7주 연속 1위곡인[5] 'Waterfalls'는 '폭포를 쫓아가다 추락하지 말고, 가족들이 있는 강과 호수에 머무르라'는 건전한 뜻의 가사. 당시 만연했던 마약 문제와 HIV 감염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감동적인 곡이다. 또한 에이즈를 다룬 최초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이기도. 실제로 이 곡은 '설교를 하지 않으면서도 메시지를 훌륭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으며[6] 미국 사회에서 실제로 불법 마약 거래와 HIV 감염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에는 정말 엄청난 인기를 구사했다. 영국에는 스파이스 걸스, 미국은 TLC였을 정도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스파이스 걸스가 좀 더 우위를 점했지만, 미국에서만큼은 TLC가 압도적인 우위였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잘 안 먹히는 틴 팝, 버블검 팝 노선을 걸었던 스파이스 걸스와 달리 1990년대 미국에서 제일 인기있던 장르인 컨템퍼러리 R&B를 위주로 한 음악적인 노선을 추구하며 저돌적인 컨셉과 독특한 음악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7][8]

정말로 내는 싱글마다 초대박을 쳤다. 1집의 싱글 <Baby-Baby-Baby>는 빌보드 핫 100 2위에다 1992년 빌보드 연말 차트 5위를 기록하며 1992년을 통틀어서 미국에서 5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이 되었으며, 1994년 2집 Crazysexycool의 두 싱글 <Waterfalls>와 <Creep>은 각각 1995년 빌보드 연말 차트 2, 3위를 기록하며 말 그대로 1995년 미국 음악 시장을 지배했다., 1999년 3집 Fanmail의 첫 싱글 <No Scrubs>까지 빌보드 핫 100 4주간 1위, 1999년 빌보드 연말차트 2위를 기록하며 그 해 그래미에서 Soul Train R&B 최우수상까지 받는 등 그야말로 1990년대 미국을 점령한 걸그룹이었다.

그러나 4집 발매 직전이었던 2002년 멤버 레프트 아이(리사 로페스)가 온두라스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활동에 큰 타격을 받고 공식 그룹 활동을 중단했다. 알리야가 2001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또 다른 R&B계 인재를 갑작스레 잃은 대중들의 충격은 매우 컸다. 두 사람 다 젊은 나이였고, 전성기에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그 여파로 한동안 활동을 쉬었던 티보즈와 칠리는 레프트 아이의 사후에도 투어를 돌거나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2014년 슈퍼볼 콘서트에도 출연했으며 호주 투어도 성공적으로 마친 가운데, 2014년에는 2013년에 새로 계약한 에픽 레코드와 약 12년 만에 5번째 정규 앨범을 내기로 예정되어 있다. 레이디 가가와의 콜라보도 있음이 알려졌다.

2013년 TLC의 일대기를 다룬 TV영화 <CrazySexyCool-The TLC Story>가 방영되었다.[9] 영화에서 여러 TLC의 명곡들이 사운드트랙으로 등장한다. 대역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이 멤버들과 외모도 닮았고, 굉장히 재연을 잘한편이다. 잘 몰랐던 사실들이 다뤄지는등 TLC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보는것도 괜찮을 듯 하다.


2017년 6월에 2002년 이후 무려 15년 만에 마지막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고 한다. TLC 팬들은 환호중. 2인조로 활동한다고 한다. 싱글들도 하나둘씩 공개중. 첫싱글 Way Back는 그동안 힘들었지만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을 향한 메시지로 레프트 아이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스눕 독이 피처링했다.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티보즈, 칠리는 무려 50 가까운 나이가 되었음에도 신기하게도 25년 전인 1992년에 발매한 데뷔 앨범과 목소리와 창법이 거의 비슷하다! 정규 앨범 발매후 본격적으로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참고로 싱글 발매 기념으로 런던 투어를 진행했는데 티켓 판매 시작과 동시에 좌석수가 전석 매진되었다. 이로써 TLC의 인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걸 실감하게 했다.


1.1. 결성 역사[편집]


1990년 크리스탈 존스라는 여성이 걸그룹을 기획하게 되고 이후 멤버 모집 광고를 내는데 , 여기에서 많은 지원자들중 티보즈[10]와 레프트아이가 먼저 선택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머지않아 음악활동을 접고 자신만의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으나 이 와중에 당시 인기 여가수 페블스와의 만남을 통해 유명 프로듀서 베이비페이스와 그의 동료 LA 리드가 이끌던 라페이스(LaFace)[11]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후 지금의 TLC를 만든 장본인인 프로듀서 댈라스 오스틴[12]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여기서 오스틴의 소개로 칠리가 영입된 뒤 1991년 공식적으로 TLC를 결성하게 된다.


1.2.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편집]


대한민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걸스힙합/뉴잭스윙 열풍을 주도했다. 뉴'잭'스윙에 대응되는 뉴'질'스윙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낼 정도.[13] 마침 'Waterfalls'와 'No Scrubs'로 인기를 끌던 1990년대 중후반 당시 1세대 걸 그룹으로 분류되는 에코[14], 디바[15], S.E.S.[16], 베이비복스[17], 핑클[18] 모두 한국판 TLC를 표방했으며, 곡의 흐름이나 비주얼 컨셉 등을 상당 부분 그대로 차용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컨셉과 스타일이 현재의 걸그룹에까지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아 TLC는 한국 걸그룹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TLC만의 악동적인 컨셉은 한국의 1세대 걸그룹은 물론이고 2,3세대 걸그룹에게도 숱한 영향을 끼쳤다. 한 마디로 걸크러쉬한 컨셉과 힙합으로 큰 인기를 끈 2NE1, 포미닛부터 블랙핑크까지 이들 모두 TLC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래퍼와 보컬 담당 멤버가 동시에 구성된 형식의 걸그룹은 TLC가 원조이기 때문에 비슷한 구성의 그룹들은 모두 TLC의 영향 휘하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19]

특히 국내 기획사 중에서는 특히 YG 엔터테인먼트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와이지 1세대 걸그룹이었던 스위티는 아예 대놓고 컨셉부터 뮤비까지 고대로 베껴(...) 당시 넷상에서도 너무 따라했다고 비난 받기도 하였다. 이 후 2NE1은 아예 래퍼 CL을 프론트우먼으로 내세우는 기믹을 비롯해 힙합스타일 등 전체적으로 TLC의 영향을 많이 받은 흔적이 눈에 띈다. 여담으로 CL은 미국활동 중 쎈언니멤버 T-Boz와 실제로 만나 이야기 나누는 영상을 올렸다.

1.3. 데스티니스 차일드와의 관계[편집]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라이벌 구도로 여겨지기도 하지만,[20], TLC의 실제 라이벌은 En Vogue였다. 일단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TLC를 비교하자면, 대부분의 음악 평론가들이 TLC 쪽의 영향이 더 크고, 음악적으로도 더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사실 전성기로 따지자면 TLC가 90년대 초반부터 전성기가 시작되어 90년대 중반 최고점을 찍은 후에 90년대 말 데스티니스 차일드가 나와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고 볼수도 있다. 그룹의 핵심 멤버 레프트 아이가 사망하면서 더 이상 그룹을 지속하기 어려워졌기 때문. TLC가 92년-2002년 활동했고 데스티니스 차일드가 97년-2004년 활동했다. TLC가 빌보드 연말 차트 5위 안에 드는 초대형 히트곡을 배출한 전성기가 TLC는 1992-1999년이고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1999-2001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두 그룹이 전성기로 맞부딪힌것은 고작 1~2년 남짓. 사실상 1999년 마주치긴 했지만 역시 TLC가 "No Scrubs"로 연말 차트 2위, "Unpretty"가 연말 차트 20위를 기록했는데 1999년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싱글 중 연말 차트에서 제일 높은 순위에 오른 노래는 "Bills, Bills, Bills"로 21위였다. 애초에 활동 기간이 겹쳤던 1999년에도 TLC는 데스티니스 차일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월등했던 것.

일단 앨범판매량은 약 3,400만 장으로, 역사상 걸그룹 3위이다.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3800만 장으로 역대 2위. 공교롭게도 두 그룹이 모두 정규앨범을 4장 발매했는데, TLC의 앨범이 빌보드 200 14위-3위-1위-6위로 67위-5위-1위-2위인 데스티니스 차일드보다 우위이다.[21] 싱글의 경우, TLC가 빌보드 핫 100 1위 싱글 4개[22]를 포함, 총 9곡의 빌보드 핫 100에서 10위 안에 든 싱글을 가지고 있다.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경우 빌보드 핫 100 1위 싱글 4개[23]를 비롯, 빌보드 핫 100에서 10위 안에 든 싱글 10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각각 비욘세, 니콜 셰르징거에 다른 멤버들이 묻히는 감이 있었던 데스티니스 차일드, 푸시캣돌스 등과는 달리 멤버 각각이 뚜렷한 개성과 존재감으로 대중들을 매료시킨 점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24]

사실 실제로 라이벌 취급을 받았던 그룹은 데스티니스 차일드 보다는 오히려 스파이스 걸스 쪽이라고 할 수 있다. 활동시기도 맞아 떨어지는 데다가 10대 소녀그룹, 음악성향의 차이라던가 비틀즈롤링 스톤즈 시절부터 유구하게 이어져온 미국 vs 영국 그룹 대결 구도 등 오히려 진정한 라이벌은 이 쪽이 더 가깝다. 실제로 90년대 대표 걸그룹은 누구냐는 질문에 두 그룹은 항상 묶여서 거론된다.

하지만 바로 위의 이 서술 역시 미국 외의 국가에서 바라 본 관점인데, 미국 밖에서 TLC의 라이벌이 스파이스 걸스인 건 사실이었지만 미국 내에서는 En Vogue가 라이벌이었다. 스파이스 걸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는 TLC의 "Crazysexycool"의 1995년 대성공 이후 1년이 지난 뒤였지만, 이 En Vogue는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최전성기를 누렸고 1992년 활동 기간이 겹쳤을 때 인기 차이가 얼마 안 났다. [25] 그리고 장르만 봐도 En Vogue와 TLC는 같은 미국 출신의 컨템퍼러리 R&B 그룹이지만, 스파이스 걸스는 R&B와의 접점을 찾기 힘든 영국 출신의 틴 팝 그룹이었다. 그리고 스파이스 걸스는 미국 빌보드 연말 차트 10위 권 안에 든 곡이 단 한 곡[26]뿐이었지만, TLC는 1992년 "Baby-Baby-Baby"(5위), 1995년 "Waterfalls"(2위), "Creep"(3위), 1999년 "No Scrubs"(2위)로 4개였으며 라이벌인 En Vogue 역시 1990년 "Hold On" (8위), 1992년 "My Lovin' (You're Never Gonna Get It) (7위), 1997년 Don't Let Go (Love) (7위)[27]3개였다.[28]


2. 멤버[편집]


파일:external/flashwounds.com/TLC2.png

1994년 전성기 시절의 모습이다.

(왼쪽부터)
  • 로존다 "칠리" 토마스(Rozonda "Chilli" Thomas) 1971년 2월 27일 ~[29]
  • 티오네 "티보즈" 왓킨스(Tionne "T-Boz" Watkins) 1970년 4월 26일 ~
  • 리사 "레프트 아이" 로페스(Lisa "Left Eye" Lopes) 1971년 5월 27일 ~ 2002년 4월 25일

파일:external/cybertlc.world/tlcnewalbum.jpg

2017년의 모습이다. 변함없으시다.


3. 디스코그래피[편집]



3.1. 앨범[편집]



3.1.1. Ooooooohhh... On the TLC Tip (1992)[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oooooohhh..._On_the_TLC_Tip_%28album_cover%29.png

1992년 정식 발매하였으며 미국 내 4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페미니즘 성향이 두드러지는 앨범이다. 특히 악동적 소녀 이미지와 당시에는 신선했던 힙합의 조화로 데뷔하자마자 큰 화제가 되었다. 앨범 활동 당시 콘돔을 이용한 패션이 또한 주목을 받았다.[30] 앨범 수록곡들 또한 당시 인기 있던 컨템퍼러리 R&B, 뉴 잭 스윙, 그리고 힙합을 베이스로 한 곡들인 데다가 뉴 잭 스윙/컨템퍼러리 R&B를 대표하는 작곡가/프로듀서인 베이비페이스 덕분에 신선하고 독특하다는 평을 받았다. 장르가 랩 위주여서 보컬보단 랩에 비중을 둔만큼 수록곡들중 랩 담당인 레프트 아이의 참여비중이 높다. 특히 당시에는 여자가수가 힙합 장르를 선택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31] 실제로 이 앨범이 히트를 치고 동시에 미국내 여성 힙합의 인식과 판도를 뒤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많은 여성 힙합 가수들이 줄줄이 등장하기도 했다.[32] 또한 이 앨범을 통해 TLC는 그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였다는 평을 받는다.


3.1.2. CrazySexyCool (1994)[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LC_-_CrazySexyCool_album_cover.png

기존의 악동 이미지를 벗어나 좀 더 세련되고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하였으며 컨템퍼러리 R&B 비중이 큰 앨범이다. TLC의 활동시기 중 최전성기였다. 멀티 플레티넘 앨범이기도 한 CrazySexyCool은 싱글컷 한 'Creep', 'Waterfalls' , 'Red light Special' , 'Diggin' on you' 중 2곡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석권했으며 나머지 곡들도 2위, 5위를 하며 탑텐에 안착했다.[33]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600만장이 팔렸다. 이는 걸그룹 역사상 스파이스 걸스와 함께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한 앨범 판매기록이다. 데뷔 앨범인 1집은 힙합뉴 잭 스윙을 바탕으로 둔 음악을 들고 나왔고 보컬보단 레프트아이의 비중이 높았다면 2집은 끈적끈적한 티보즈와 칠리의 보컬과 음악적인 색깔도 컨템퍼러리 R&B 쪽에 비중을 많이 두었다. 하지만 1집의 모든 색깔을 버리지 않고 여전히 그 당시 트렌디한 리듬을 기본 베이스로 깔아둔 상태에서 섹시한 분위기로 전환했다.[34]
특히 멤버 레프트아이는 이 시기에 바람 핀 남자친구의 수십억 원대의 저택에 방화를 해버리는 충공깽 짓을 저지르며 언론의 무수한 비판을 받는다. 이후 레프트 아이가 보호소로 보내지고,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Creep과 Waterfalls의 랩파트에 표현하였다. 2집은 이들에게 인지도적인 면에서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주었고, RIAA지에서 여성그룹 최초로 상을 수여받았을 정도로 이때 이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Waterfalls는 1995년을 통틀어서 미국에서 2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 Creep은 1995년을 통틀어서 미국에서 3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이다. [35]



3.1.3. Fanmail (1999)[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LC_-_FanMail.png

1999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R&B 보컬 그룹 퍼포먼스 상 수상

1999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R&B 앨범 상 수상



CrazySexyCool 이후 5년간의 긴 공백을 깨고 돌아왔다. 2집만큼 3집도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는데 앨범을 발표한 그해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R&B 보컬 그룹 퍼포먼스 상과 최우수 R&B 앨범 상, 최우수 R&B 노래 상을 받으며 3관왕을 차지한다. 대부분 1집이 성공하면 2집은 망한다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철저히 무시한채 3집까지 승승장구한 것이다. 거기에 빌보드 200 1위, 빌보드 핫 100 4주 연속 1위 까지 5년간의 공백을 무색하게 할 만큼 대중들은 이들을 기다려왔던것이다. 1집이 힙합과 그에 기반한 R&B , 2집이 컨템퍼러리 R&B 느낌이였다면 3집은 사이버틱한 사운드를 가진 느낌이다. 앨범수록곡인 No scrubs , Unpretty 등이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롱런하는등 대히트를 치게 되고, 이로인해 당시 scrub이라는 단어가 유행어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Unpretty는 '너 나 모두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No Scrubs는 1999년 빌보드 연말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하며 여전히 최고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으며[36] 같은 해 브리트니 스피어스Baby One More Time, 셰어의 Believe와 함께 온갖 상과 차트를 휩쓸었다. 이후 월드투어와 콘서트 등을 진행하였고 2001년에는 레프트아이가 솔로앨범 <SUPERNOVA>를 발매하는등 활발한활동을 이어나갔다.

여담으로,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에드 시런의 2017년 히트곡 Shape of You가 No Scrubs의 코러스 멜로디와 같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에드 시런은 즉시 공동 작곡가로 등재했다.[37] 링크 한국어 기사



3.1.4. 3D (2002)[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LC_3D_Cover.png

한창 새로운 앨범 준비중이었던 2002년 4월 25일 레프트아이의 사망 소식은 매우 충격적이였지만 남은 멤버들은 굴하지 않고 티보즈와 칠리는 성명을 밝힌다. "어느 누구도 리사를 대신 할수는 없다. 두명으로 계속 활동할 TLC를 기대해달라"는 성명을 밝히며 남은 신보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마침내 두 멤버는 더욱 다변화된 사운드를 한가득 담은 13곡을 들고 나왔다. 곡 퀄리티 자체는 이전 못지않게 높았고, TLC의 색깔도 강했던 앨범이었다. 그러나 레프트아이의 빈자리가 너무도 컸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남은 멤버들이 제대로 된 활동을 이어나가기 힘들어했다.

이전에 비해 낮은 성적과 판매량으로 아쉽게 활동을 마무리해야 했다. 이렇게 10년간의 이들의 여정은 이렇게 짧고 굵게 3장의 정규앨범과 레프트 아이가 빠진 3D의 앨범으로 마무리가 지어진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이 앨범은 전적으로 올해 4월 25일 교통사고로 숨진 Lisa Nicole Lopes aka "Left Eye"를 위한 것이며, 누구도 Lisa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으며, 우리는 그녀의 자리를 영원히 남겨 두겠다 라고 말한다.

3.1.5. TLC (2017)[편집]




3.2. 싱글[편집]



3.2.1. 빌보드 핫 100 1위[편집]


  • Creep (1994) 4주 연속

TLC - Creep
1995년 빌보드 연말 차트 3위, 즉 1995년 한 해 동안 미국 전체에서 3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

  • Waterfalls (1995) 7주 연속
1995년 빌보드 연말 차트 2위, 즉 1995년 한 해 동안 미국 전체에서 2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

  • No Scrubs (1999) 4주 연속

1999년 빌보드 연말 차트 2위, 즉 1999년 한 해 동안 미국 전체에서 2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

  • Unpretty (1999)
1999년 빌보드 연말 차트 20위

3.2.2. 빌보드 핫 100 2위[편집]


  • Baby-Baby-Baby (1992)
1992년 빌보드 연말 차트 5위, 즉 1992년 한 해 동안 미국 전 지역에서 5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
  • Red Light Special (1995)


3.2.3. 빌보드 핫 100 3위~10위[편집]


  • Ain't 2 Proud 2 Beg (1991)

TLC - Ain't 2 Proud 2 Beg

  • What About Your Friends (1992)
  • Diggin' on You (1995)

TLC - Diggin' on You

※여타의 M/V유튜브에 개설된 'TLC VEVO'에서 시청하자. TLC VEVO


4. 여담[편집]



  • 레프트 아이는 생전 TLC의 앨범 작곡 작사에도 참여하며 키와 건반을 다룰줄 알았으며, 특히 자신의 랩 파트는 꼭 직접 쓰는 등 음악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 TLC의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걸그룹이나 여타 그룹처럼 파트를 나누지 않고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파트라면 한곡 전체를 거의 혼자 부를 정도로 각자의 장점을 잘살려서 곡을 디렉팅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도입부와 후렴 부분 전까진 티보즈가 책임지는 느낌이고, 후렴은 칠리가 부르는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앨범을 들어보면 누구 파트가 딱히 많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장점을 곡에 잘 녹여내고있다.

  • 1집과 2집의 연이은 성공에 불구하고 소속사와 매니저의 잘못된 수익 분배와 횡포 때문에 2집 앨범 이후 파산을 선고하게 된다. 이로 인해 최전성기였음에도 다음 앨범이 발매되는데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다음 앨범인 Fanmail 역시 CrazySexyCool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둔다.

  • 리아나와 사소한 디스전이 있었다. 2014년 리아나가 유명 패션쇼인 CFDA에서 전신 시스루 의상을 입고 등장해 주목을 받자, 멤버 T-Boz가 한 방송에서 리아나가 관심을 끌기 위해 벗고있다고 비판한 것. 덤으로 TLC는 음반을 많이 판 그룹인데 항상 옷을 입고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리아나는 TLC 멤버들의 상의탈의 사진을 트위터 배경으로 설정한 뒤 “나는 나고, 그들은 그들이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메롱’을 외치는 듯한 장난기 넘치는 표정의 사진 한 장을 게시하며 비꼬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T-boz는 이를 비난하며 그런 일에 시간 낭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사건은 일단락된다.


[1] 2002년 온두라스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2] 그러나 시기부터가 다르다. 스파이스 걸스가 나오기 전 TLC는 이미 미국에서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TLC의 최전성기는 1992년부터 1999년, 스파이스 걸스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정도였다. 장르도 달라서 TLC는 컨템퍼러리 R&B 걸그룹이었지만 스파이스 걸스는 틴 팝 위주였다. 그리고 스파이스 걸스는 "Wannabe", "Say You'll Be There"를 제외하고 미국에서 내세울 곡이 없지만 TLC는 빌보드 핫 100 1위만 4개다. 게다가 그 4개의 1위곡은 그 해의 연말차트에서도 5위 안에 드는 등 초대형 히트를 했다. 스파이스 걸스는 Wannabe가 1997년 빌보드 연말차트 10위권 안에 든 것 말고는 그 해를 대표할 만한 히트곡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상 TLC의 라이벌은 같은 컨템퍼러리 R&B 그룹이자 전성기도 비슷했고 미국 내 인기도 일단 어느 정도 비슷했던 En Vogue였다.[3] 이 그룹도 힙합을 메인으로 내세웠다.[4] 물론 베이비페이스의 프로듀서 동료 LA 리드도 같이하였다.[5] 또한 1995년 빌보드 연말 차트 2위. 즉 이 곡이 바로 1995년을 통틀어서 미국 전체에서 2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 95년도 연말 차트 1위는 쿨리오Gangsta's Paradise이다.[6] 이곡의 작사 작곡에 참여한 멤버 레프트아이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뮤직비디오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말했다.[7] 다시 말하자면 컨템퍼러리 R&B가 미국에서 제일 인기있는 장르가 된 데에는 TLC의 영향도 크다. 머라이어 캐리, 자넷 잭슨, 휘트니 휴스턴, 보이즈 투 멘, TLC, Color Me Badd, En Vogue, 토니 브랙스턴, 브랜디, 모니카, 어셔 등이 1990년대 컨템퍼러리 R&B를 이끌었다.[8] 이 인기에는 베이비페이스의 영향 역시 컸다. 베이비페이스가 누구냐면, 바비 브라운, 보이즈 투 멘, TLC, 토니 브랙스턴의 히트곡의 대부분을 만든 사람이다. 이 외에도 Karyn White, Pebbles의 히트곡의 대부분을 만들었고 휘트니 휴스턴의 'I'm Your Baby Tonight도 베이비페이스의 작품. 다시 말하자면 1990년대 미국 최고의 프로듀서로 불리는 인물이다. 1980년대 말 뉴 잭 스윙 전성 시대부터 1990년대 후반의 컨템퍼러리 R&B 전성 시대까지 10여 년을 풍미한 프로듀서이자 성공한 R&B 가수이기도 하였다. 이 독특한 음악은 베이비페이스에서 나온 것. 물론 프로듀서 동료인 LA 리드도 빼놓을 수 없다.[9] TLC의 데뷔 전 부터 해체까지 일대기를 바탕으로 제작하였다.[10] 당시 애틀랜타의 헤어숍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손님들을 통해 멤버 모집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11]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LaFace= LA Reid + Babyface이다. [12] TLC의 명곡들은 대부분 이 사람의 손을 거쳤다. 90년대 초에는 멤버 칠리와 교제하기도 했다.[13] New Jack Swing에서 남자 이름인 Jack을 여자 이름인 Jill로 바꾼 것이다.[14] 2집 수록곡 ‘행복한 나를’로 히트를 친 바 있는 3인조 걸그룹. 2집과 달리 1집은 TLC를 표방한 느낌이 짙다.[15] 데뷔 당시부터 한국의 TLC를 대놓고 표방하고 등장했다. 팀의 리더였던 채리나 자체도 대한민국의 TLC를 만들고자 해서 디바를 제작했다고 하고 멤버 수도 3명으로 같았다. 음악 장르는 달랐지만 의상 스타일링이나 컨셉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은 그룹이다. 후반기부터는 TLC의 영향력에서 많이 벗어난 팀.[16] 이름 앞글자에서 따온 팀명에서부터 TLC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데뷔곡 'I'm Your Girl'도 TLC가 부흥시킨 뉴질스윙의 궤를 따르고 있다.[17] 베이비복스는 데뷔 초창기 스파이스 걸스를 모티브로 잡은 팀이지만 사실 컨셉으로 봤을 땐 1집의 페미니즘 컨셉과 힙합음악은 TLC의 1집의 전반적인 컨셉과 유사했고, 이후 섹시 컨셉으로 회귀한 3집에서도 TLC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앨범 발매 당시에도 TLC 언급을 종종했다. 1세대 아이돌 걸그룹 중 드물게 전담 랩퍼가 있는 팀이기도 한데, 당시 메인 스트림 걸그룹 중에서도 랩퍼가 있는 팀은 TLC가 으뜸이었다.[18] 핑클을 마지막에 둔 것은 상대적으로 이쪽 스트림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젝스키스도 그렇지만 당시 대성기획(현 DSP)은 힙합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핑클도 기획 초창기때는 한국의 TLC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며 당시 예정 멤버였던 김준희 역시도 한국의 TLC를 만들겠다고 핑클을 조직했던 비화를 밝혔다. 그러나 이후 김준희와 초창기 핑클 멤버 애니(이후 윤미래와 함께 타샤니로 데뷔)가 하차하면서 팀 컨셉을 대대적으로 바꿨다.[19] 사실 힙합 컨셉 걸그룹으로 따지자면 훨씬 먼저 데뷔한 솔트앤페파(Salt-N-Pepa)가 원조지만, 솔트앤페파는 2명의 멤버가 래퍼, 1명이 디제잉을 담당하는 등 현대적인 걸그룹과는 많이 다른 컨셉이었다. 현대적인 걸그룹, 즉 보컬과 래퍼 담당 멤버로 구성된 걸그룹은 TLC가 원조다.[20] 애초에 시기가 다르다. TLC는 1992년~1999년,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1998년~2000년대 초반.[21] 다만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컴필레이션(소위 베스트앨범)으로 빌보드 200 1위를 가지고 있다. TLC의 경우 20위.[22] Creep (1994), Waterfalls (1995), No Scrubs (1999), Unpretty (1999)[23] Bills, Bills, Bills (1999), Say My Name (2000), Independent Women Part I (2000), Bootylicious (2001)[24] 사실상 미국 걸그룹/보이 밴드의 전통이 멤버 중 한 사람만 몰아주고, 나중에 그 사람을 솔로 가수로 데뷔시키는 구조인데 왜냐하면 그 레코드사가 얻는 무지막지한 수익 때문이다. 다이애나 로스슈프림스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 최고의 여가수로 군림했으며, NSYNC 이후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10년이 넘게 최전성기를 누렸던 것을 생각해 보자. 데스티니스 차일드 이후 비욘세의 성공 역시 말 안해도 알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유지되는 이 전통을 이미 깨고 멤버 셋 모두가 공평한 인기를 얻었던 TLC는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25] TLC의 Baby-Baby-Baby가 1992년 연말 차트 5위, En Vogue의 "My Lovin' (You're Never Gonna Get It)이 1992년 연말 차트 7위[26] Wannabe가 1997년 빌보드 연말차트 10위 기록. 이 노래의 인기는 미국에서도 대단했다.[27] 보면 알겠지만 1997년을 통틀어서 미국 내에선 En Vogue의 히트곡의 성적이 스파이스 걸스의 미국 내 최고 히트곡(Wannabe)를 3곡 차로 뛰어넘었다. [28] 게다가 보면 알겠듯이 TLC의 곡 중 연말차트 10위 권 안에 든 곡은 모두 다 연말 차트 5위 안에 들었고, En Vogue는 연말 차트 5위 안에 들어간 적은 없었지만 8위, 7위, 7위로, 이 3곡 모두가 1997년 연말차트 10위를 기록했던 스파이스 걸스의 "Wannabe"보다 순위가 월등하게 높다. [29] 아프리카계 미국인, 뱅골계 인도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혈통을 지닌 다인종 혼혈이다.[30] 레프트 아이의 똘끼넘치는아이디어로 고안한 패션이다.[31] 이들 이전에는 Salt-N-Pepa가 사실상 유일했다.[32] 실제로 1992년 이 앨범의 성공 이후 1993년 여성 힙합 1세대였던 Salt-N-Pepa가 전성기를 맞았으며, 1994년 Da Brat, 1995년 Foxy Brown, 1996년 MC Lyte, 1997년 릴 킴미시 엘리엇, 1999년 Eve와 로린 힐이 큰 인기를 얻는 등, 내로라 하는 미국 여성 래퍼들은 Salt-N-Pepa를 제외하고는 죄다 이 앨범 이후 줄줄이 나왔다.[33] 실제로 90년대 이 기록을 넘어선 여자가수는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 자넷 잭슨 정도 밖에 없다. 실제로 아까 위에 각주에서 서술했듯이 이 3명과 TLC 정도가 1990년대 미국 음악 시장(컨템퍼러리 R&B)을 주도하던 아티스트였다.[34] 그런데 그 당시 트렌디한 리듬이 이 컨템퍼러리 R&B 아니면 G-Funk 류의 웨스트 코스트 힙합이었다. 1995년은 이 컨템퍼러리 R&B 음악의 최전성기 중 하나였으며, TLC가 1집에서 시도한 뉴 잭 스윙은 사실상 1994년쯤 되면 미국 내에선 거의 사장된 장르였다.[35] 1995년을 통틀어서 미국에서 제일 크게 히트한 곡은 래퍼 쿨리오Gangsta's Paradise였다.[36] 참고로 이 해 1위는 셰어의 Believe.[37] 실제로 들어보면 리듬부터 노래 구성까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