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엔터테인먼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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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문서
역사경영 | 자회사음반역대 아티스트논란 및 사건 사고
관련인물
양현석 (창업주)양민석 (대표이사)황보경 (대표이사)KRUNK (마스코트)


1. 개요
2. 1990년대 : 힙합 레이블로 시작
3. 2000년대 : 3대 기획사로의 성장
4. 2010년대 : 상승과 추락
5. 2020년대 : 재기
5.1. 2020년
5.2. 2021년
5.3. 2022년
5.4. 2023년
5.5. 2024년
6. 베이퍼웨어



1. 개요[편집]


YG엔터테인먼트의 역사를 정리한 문서이다.


2. 1990년대 : 힙합 레이블로 시작[편집]


초기 YG엔터테인먼트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1996년에 설립한 힙합 레이블이었다. 1996년 '현기획' 설립 후 데뷔한 킵식스는 아찔한 실패를 거두었지만, 이후 1997년 사명을 'MF기획'으로 변경한 후 데뷔한 지누션이 대박을 치며 메이저 레이블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이후 1998년 '양군기획'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다시 설립하였으며 1TYM을 데뷔시키며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3. 2000년대 : 3대 기획사로의 성장[편집]


2000년대 초반 들어 렉시M.Boat와의 제휴를 통한 휘성, 거미, 빅마마 등의 계속적인 성공과 함께 SE7EN, BIGBANG, 2NE1의 연타석 홈런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3대 기획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초창기에는 /힙합의 성향을 크게 보이다가, SE7EN의 데뷔와 M.Boat 소속 R&B 가수들의 데뷔를 통해 흑인 음악 전반으로 음악성이 확장되었다. 특히 BIGBANG2NE1은 아이돌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세계적 추세에 따라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혼합된 힙합이나 흑인 음악을 베이스로 활동하며 정체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4. 2010년대 : 상승과 추락[편집]


2010년 8월 23일, 싸이가 YG로 이적했다. 자기 기획사를 운영할 때 양현석이 많이 도와줬는데, 아예 그냥 밑으로 들어갔다. 또한 같이 작곡하던 언타이틀유건형도 같이 들어갔다. 이로 인해 YG는 음악적 폭과 더불어 무시무시한 공연 기획력도 함께 얻게 되었다. 이후 에픽하이에서 무소속 멤버였던 DJ 투컷미쓰라진을 영입하면서 다른 기획사보다 다소 약했던 가수의 라인업을 보강하였다. # 한마디로 지속적인 투자의 결과이다.[1]

2011년에는 BIGBANGREMEMBER 이후로 3년 만에 컴백하였고, GD&TOP을 결성해 활동하였다. 그러나 G-DRAGON이 그 해에 대마초 흡연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연이어 대성이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 휘말렸다.

2012년 3월 15일에는 YG USA 지사와 YG AISA 지사를 설립했고, 바로 4개월 뒤에 발표한 싸이강남스타일이 국내 외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YG의 위상 또한 상승하며 주가가 업계 1위인 SM을 추월하는 등 큰 약진을 거두었다.[2] 명심해야 할 것은 싸이를 성공으로 이끈 게 YG라는 점이다. 물론 싸이를 키운 건 YG가 아니지만, 싸이강남스타일의 성공엔 YG의 역할이 혁혁했다.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인 히트를 치게 된 결정적 요인은 곡보다는 뮤직비디오였고, 이 뮤직비디오를 양현석이 직접 감수하고 편집에 참여했다는 점, 그리고 이 뮤직비디오가 해외 K-POP 팬 조회수 1,2위를 다투는 YG의 유튜브와 각종 SNS 창구를 통해 입소문을 타게 됐다는 점 등을 고려해본다면 YG의 역할도 상당 분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3] BIGBANGALIVE로 복귀했는데 전곡을 타이틀 곡으로 내세워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KBS는 BIGBANG의 복귀를 부정적으로 방송하면서 YG와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G-DRAGON은 9월 15일 One Of A Kind를 발매하였다 당시 G-DRAGON은 아이돌이라는 평가가 강했으나 이 앨범을 기점으로 아이돌이 아니라 아티스트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특히 One Of A Kind는 힙합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3년 기준 YG에서 발표한 이하이의 <Rose>, 싸이의 <GENTLEMAN>[4], CL의 <나쁜 기집애>, 2NE1의 <Falling In Love>, 강승윤의 <비가 온다>는 무리한 타이밍에 뮤직비디오도, 홍보도 없이 나온 솔로곡이다. 그럼에도 지붕킥을 하는 등 뜨거운 반응으로 강승윤은 후속곡 <Wild and Young>을 뮤비와 함께 부랴부랴 내게 되었다. 그러나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 WIN: Who is Next?와 동시에 무리하게 진행된 일정으로 건강에 이상이 왔고, 그의 솔로는 고작 열흘도 안되는 활동으로 흐지부지 마무리하게 된다.

그러나 하반기에 G-DRAGON의 2집 <COUP D'ETAT>로 시작, 타이틀곡인 <삐딱하게> 뿐 아니라 <쿠데타>, <늴리리야>, <ROD>, <블랙> 등 다양한 수록곡 무대를 선보여 더 높은 관심을 얻었다. <니가 뭔데>로는 1천명의 팬들과 함께 찍은 영상으로 특별 뮤비를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지드래곤은 또한 무한 가요제에 출연, 정형돈과 귀여운 밀당을 하며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이와 동시에 2013년 초에 데뷔할 계획이던 걸그룹이 유나김 등 멤버 탈퇴 등으로 계획이 엎어지고 대신 새로운 보이그룹(현재 위너아이콘)의 데뷔를 놓고 경쟁하는 서바이벌 팀배틀 프로그램이 8-10월에 거쳐 방영된다.[5] 또한 연말에 동년 말에 발표된 2NE1의 신곡 <그리워해요>로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잡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이 디지털 싱글 한장으로 2주 1위를 차지하고, 활동 중간에 발매된 효린의 솔로 활동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여 재기에 성공하였다. 태양 역시 자신의 장점인 사기적인 댄스 스킬을 보여주는 원테이크의 안무 버전 <링가 링가> 뮤비로 강한 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예정했던 솔로 앨범은 다음해 중순으로 미뤄지게 된다.

그리고 2014년에는 각종 사건 사고와 구설에 연루됐지만 2NE1 정규 2집부터 시작해서 AKMU 정규 1집, 태양 정규 2집, WINNER 정규 1집, 에픽하이 정규 8집에 AKMU의 디지털싱글, 이하이이수현의 유닛인 HI SUHYUN까지 음원차트 상위권에서 롱런을 한다. 죄다 정규 앨범들인 게 특징적이며, 매번 화제를 몰고 왔다. 2NE1의 <Come Back Home>은 음원차트에서 올킬을 거뒀고, AKMU는 발매 직후 세월호 참사로 인해 대외 활동이 다소 위축되었으나 앨범 전곡이 차트 안에 머무르며 음원차트를 집권한다. 태양은 타블로와의 새로운 <눈, 코, 입> 커버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이 곡은 노래방 9주 1위의 업적을 달성하기도 한다. WINNER박봄 사건이 발생한 이후 최초로 런칭된 그룹으로 여론의 직격탄을 받지 않을까 우려됐지만 전곡 줄세우기로 차트 진입하여 최단기 음방 1위 기록[6]을 세워 아직까지 그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일본활동을 병행하면서도 <공허해> 뿐 아니라 수록곡 <끼부리지마>가 <공허해> 트리플 크라운 수상 기념으로 한 무대 이후 역주행을 하며 인기를 끌었다. 에픽하이는 선공개로 내놓은 <본헤이터>가 세로로 찍어 모바일에 규격에 맞는 독특한 뮤비와 다수의 외부 래퍼가 피쳐링을 한 것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마마에서 송민호, BOBBY, B.I와 <본헤이터> 피처링에 참여한 YG 신인들과의 역동적인 콜라보 무대는 훌륭했다.

이렇게 약 2개월 간격으로 컴백/데뷔한 팀들은 YG의 크게 넓어진 음악적 폭과 다양성을 발휘하며 연말 시상식을 빛낸다. 미국 음악지 Vice는 'YG는 어떻게 케이팝을 장악하고 2014년을 압살했는가'라는 제목의 특별기사를 낼 정도였다.

2015년에는 4월 중순 지누션의 11년만의 컴백으로 문을 열었고, 4월 초 콘서트 계획을 발표한 BIGBANG이 M, A, D, E를 통해서 3년 2개월만에 컴백했다. 5월부터 8월까지 한달마다 더블 싱글을 내는 유례가 없는 플랜인데 팬들의 우려에도 불구 4개월 전부 다 가온 월간 순위 1위를 차지하는 역대급 대성공을 거두었다.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은 물론 음악성을 중신에 놓고 보는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LOSER>와 <BAE BAE>가 각각 최우수 팝 노래부문과 올해의 노래로 영광스런 수상을 하게 된다. <BANG BANG BANG>은 연간 누적음원 1위에 뮤비 조회수까지 일찌감치 1억뷰를 찍어 대형히트. 그러나 9월에 메이드 정규가 나올 것이라는 계획은 무산되었고, 무한 가요제 파워와 더불어 빅뱅의 정규 컴백 예고로 많은 가수들이 컴백을 미뤄 9월은 역대급 춘추전국시대가 형성되었다. 이후에 iKON이 데뷔를 발표하고 절묘한 타이밍에 선공개된 <취향저격>은 4개월 연속 컴백[7]라는 YG의 역대급 푸시와 더불어 롱런에 성공한다. 그리고 12월에 싸이가 7집을 발매하면서 2015년 마지막까지 YG가 장식하게 되었다.

다만 2016년은 작년과 재작년에 비해 약간 주춤하였는데, WINNER가 1년 반의 공백기를 깨고 <EXIT : E>로 컴백했지만 이전 앨범에 비해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이하이가 4월에 <SEOULITE>로 컴백하였다. <한숨>은 꽤 히트를 하였지만, <MY STAR>는 히트에 실패하였다. 5월에는 AKMU가 2년만에 <사춘기 상>으로 컴백했다. 긴 공백기로 인한 기대감으로 초반화력은 역대급이었으나 타이틀곡이었던 <RE-BYE>가 새로운 시도를 한 곡이어서 롱런하지 못했다. 이어진 iKON의 <오늘모해>와 WINNER송민호iKONBOBBY가 뭉친 MOBB가 데뷔하였지만 역시 히트에 실패하였다. 그 후 BLACKPINK가 <SQUARE ONE>으로 7년만에 YG의 새 걸그룹으로 데뷔한다. 타이틀 곡이었던 <휘파람>이 국내 음원차트를 올킬하게 되었다. 그 후 <SQUARE TWO>의 <불장난>이 히트하였고[8] 8년만에 발매한 빅뱅의 정규 앨범인 <MADE>가 발매되면서 만회하였다.

과거 산하 레이블로 "YG 언더그라운드"를 설립해 45RPM[9], 스토니 스컹크 등의 언더 뮤지션들과 계약해 언더 힙합의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10] 스토니 스컹크는 계약 후 3장의 레게 앨범을 발매했으나 스컬의 입대로 휴지기를 가지다가 스컬이 전역한 후 독립하면서 해체되었다. 45RPM은 이하늘의 부다사운드와 제휴를 통해 양측 모두에 계약된 형태였으나 현재는 YG와의 계약이 종료되어 부다사운드로 온전히 넘어갔다.

2015년부터 YG는 다시 HIGHGRNDTHEBLACKLABEL]이라는 산하 레이블을 차례로 선보이게 된다. 타블로가 수장인 하이그라운드는 혁오가 무도 출연과 동시에 영입이 가시화 되어 화제을 끌었는데, 이후 코드 쿤스트, 검정치마 및 이미 소속사가 있는 DEAN을 제외한 대부분의 클럽에스키모 크루 멤버들을 영입하며 힙합 알앤비 락 등 인디기반의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작업중이다. 테디[11]가 수장이 되어 이끄는 더블랙레이블은 자이언티가 합류하며 화제가 되었다. KUSH와 자이언티는 현재 쇼미5에 출연 프로듀싱 능력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16년 5월 젝스키스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였다.

2017년은 YG의 하락세가 보인 해였는데, YG의 거의 모든 수익을 가져오던 BIGBANG의 공백기가 시작되었고, 길어지는 공백기로 가수들의 팬들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AKMU의 <오랜날 오랜밤>이 1월에[12], WINNER의 <REALLY REALLY>가 4월에 히트를 성공했고 2017 남자아이돌 최초로 차트인 1억 스트리밍이라는 대거 기록을 세웠다. 싸이의 8집인 <4×2=8>도 크게 반응을 얻었지만 iKON의 <NEW KIDS : BEGIN>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주춤했다. 6월에는 G-DRAGON의 <권지용>과 블랙핑크의 <마지막처럼>, 7월과 8월에는 각각 AKMU <SUMMER EPISODE>와 위너의 <OUR TWENTY FOR>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태양의 <WHITE NIGHT>와 BOBBY의 <LOVE AND FALL>은 크게 히트하지 못했다. 10월에는 3년만에 발매된 에픽하이의 정규 9집 앨범인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이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

하지만 제일 큰 실패의 원인은 T.O.P의 대마초 사건과 믹스나인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데뷔 10년차가 넘은 빅뱅은 계속해서 성장세였지만 T.O.P가 대마초를 4차례 흡입한 것이 확인되었고, YG의 이미지는 추락해버렸다. 게다가 믹스나인이 흑역사가 되면서 하락세가 빨라졌다.

2018년 1월에 첫 주자로 iKON이 <사랑을 했다>로 컴백했는데 멜론에서 주간 6주 연속 1위를 했다. 이어 BIGBANG의 미공개 곡인 <꽃 길>이 발매하고, 역시 주간 3주 연속 1위를 하면서 인기는 있었다. 4월 4일 WINNER가 <EVERYD4Y>라는 총 12개의 곡이 담긴 정규 앨범으로 컴백했고, 타이틀 곡 <EVERYDAY>는 국내 모든 차트 1위에 오르며 저력을 보여주었다. 앨범에 실린 12개의 곡 모두가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WINNER의 작사, 작곡 실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되었다.

2018년 6월 15일 BLACKPINK가 <SQUARE UP>으로 컴백했다. 컴백과 동시에 미니앨범 <SQUARE UP>은 스페인, 태국, 카타르, 일본, 독일, 캐나다 등 41개국 아이튠즈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타이틀곡 <뚜두뚜두>는 8개 음원차트를 올킬했다. 또한 <뚜두뚜두>는 수많은 가수들의 컴백러시에도 불구하고 24일 동안 실시간 차트 1위, 30일 연속 일간차트 1위를 차지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음악방송에서는 총 11관왕을 달성하는 위엄을 토했다. 블랙핑크는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인 '빌보드 200'에 40위, 'Hot 100'에 55위로 동시 진입하며 걸그룹 최초이자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리고 영국 ‘오피셜 싱글 톱100’에 대한민국 걸그룹 최초로 진입했다. <뚜두뚜두> 뮤직비디오 또한 공개 6시간 만에 1천만뷰, 13시간 만에 2천만뷰, 23시간 만에 3천만뷰, 27시간 만에 4천만뷰, 50시간 만에 5천만뷰에 이어 82시간 만에 6천만뷰, 120시간 만에 7천만뷰, 161시간 만에 8천만뷰, 199시간 만에 9천만뷰를 기록하며 K팝 걸그룹 최단 기록을 모두 경신했다. 1000만뷰부터 1억뷰까지 걸그룹 역대 최단 시간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었다. 특히 <뚜두뚜두> 뮤직비디오는 공개 24시간 만에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역대 전 세계 뮤직비디오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아델의 <Hello>를 제치고 역대 전 세계 유튜브 24시간 이용자수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와 함께 BLACKPINK는 데뷔 이래 제작된 뮤직비디오 7개의 억대 뷰를 기록하게 됐다.

이후 iKON은 8월, 10월에 걸친 두 차례 컴백으로 <사랑을 했다>의 대히트 기세를 이어갔고, 송민호제니가 각각 <아낙네>와 <SOLO>로 솔로 데뷔에 성공했고 연말에는 WINNER가 <MILLIONS>를 발매했다.

2019년은 전체적으로 YG엔터테인먼트의 최악의 해로 거론된다. 우선 '버닝썬 게이트'로 인해 YG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과거 BIGBANG의 전 멤버였었던 승리가 연예계에서 퇴출되며 그 동안 어떤 사건 사고에도 변동이 없었던 BIGBANG이 처음으로 4인조로 개편되었다. 또한 iKON의 리더 B.I가 대마초 흡연 혐의로 물의를 일으켜 iKON을 탈퇴하고 전속계약을 해지하였으며, 이와 관련하여 양현석양민석이 공동으로 사퇴하게 되었다. 또한 강성훈도 지속적인 논란을 일으키며 젝스키스에서 퇴출되었으며, CL, 이하이와 전속계약이 종료되었다.


5. 2020년대 : 재기[편집]



5.1. 2020년[편집]


  • 1월 28일
  • 2월 6일
    • iKON이 미니 3집 〈i DECIDE〉로 컴백했다.[13]
  • 3월 11일
  • 4월 9일
  • 6월 5일
  • 6월 26일
  • 8월 7일
  • 8월 28일
  • 9월 8일
  • 10월 2일
  • 10월 16일
  • 10월 30일
  • 11월 6일
  • 11월 16일


5.2. 2021년[편집]




5.3. 2022년[편집]


  • 2월 7일
    • T.O.P과의 전속계약이 종료되었다.
  • 2월 15일
  • 3월 14일
  • 4월 5일
  • 5월 3일
  • 7월 5일
    • WINNER가 미니 4집 〈HOLIDAY〉로 2년 만에 컴백했다.
  • 8월 19일
  • 9월 16일
  • 10월 4일
  • 10월 17일
  • 11월 8일
  • 12월 26일
    • 태양과의 전속계약이 종료되었다.
    • 대성과의 전속계약이 종료되었다.
    • G-DRAGON과의 전속계약이 종료되었다.[14]
  • 12월 30일
    • 강동원과의 전속계약이 종료되었다.
    • iKON과의 전속계약이 종료되었다.[15]


5.4. 2023년[편집]


  • 3월 15일
    • 대한항공과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MOU를 체결하였다.
  • 3월 10일
  • 3월 31일
    • 지수가 싱글 1집〈ME〉로 솔로 데뷔한다.
  • 6월 28일
    • T5가 디지털 싱글〈MOVE〉로 유닛 데뷔한다.
  • 7월 28일
  • 8월 14일
    • 배우 박유나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
  • 8월 21일
  • 10월 6일
  • 10월 20일
  • 11월
  • 미정
    • BLACKPINK와의 재계약 유무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 일본 현지화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2023년 말)
  • 평가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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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티스트 라인업 부족
    • 하반기 기준 사내에서 실질적으로 활동 가능한 아티스트는 AKMUTREASURE 뿐이며, 그 마저도 수익성이 보장되는 아티스트는 TREASURE 뿐이다. 현재 지누션BIGBANG은 사실상 활동 종료 상태이며, WINNER는 군백기에 접어들은 상태이다. 젝스키스는 사내 지원만 있으면 어느 때나 컴백이 가능하지만 수익성이 낮으며 팬들의 끝없는 활동 요구에도 사실상 YG에서 3년째 방치되고 있는 상태이다. 위버스에도 입점하지 않았으며 2020년 콘서트가 취소 된 이후로 아무런 활동이 없는상태.
    • 하반기 기준 BLACKPINK의 재계약 문제가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회사의 전망이 어두운 상태이다. 다만, 멤버 개인이 재계약을 포기하고 타 기획사로 이적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YG엔터테인먼트가 사내 이익을 위해 그룹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받고 있다.
    • 하반기 기준 G-DRAGON과의 재계약 문제가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현재로서 YG엔터테인먼트는 광고 등 기타 활동에 대한 별도 계약을 통해 협력 중이다. 음악 활동 재개 시 추가적인 계약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G-DRAGON워너 뮤직 그룹 방문으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 부족한 작업물
    • 하반기 기준 고작 싱글 4장과 정규 1장만이 발매되었으며,[1] 이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올해 발매된 약 40장의 음반보다 확연히 낮은 수치이다.[2]
    • 올해 초 아티스트 별 개별 전담 부서 신설을 통해 공백기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 무심하게, 사실상 20년대 들어 최저 활동을 이어나간 해가 되었다.
  • 불확실한 계획
    • BLACKPINK : 8월 이후 전속계약 기간이 종료된 상태이나, 10월 기준 정확한 입장 표명 없이 논의 중인 상태이다.
  • 오너 리스크
    • YG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양현석의 2심 선고일이 11월 18일로 확정되며, 2019년부터 약 4년 간 이어져온 오너 리스크가 해소될 예정이다.
    • 현재로서는 피해자 한서희의 지속적인 진술 변경과 증거 불충분으로 1심과 동일하게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으며, 한서희가 최종적으로 처벌 불원을 요청하며 3심을 진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인하우스 시스템 붕괴 징조
    • 최근 YG엔터테인먼트의 강점이자 약점으로 꼽히는 강력한 인하우스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현상이 포착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 메인 프로듀서 FUTURE BOUNCE2022년을 기점으로 DEE.PP.K가 따로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iKON의 전속계약 종료와[3] WINNER의 군백기로 강욱진, Diggy, AiRPLAY 등 관련 프로듀서들의 내부 활동이 급감했다.
    • 이전부터 독자 활동을 보여온 MILLENNIUMBIGTONE, iHwak, ROVIN 등도 외부 작업물이 더 많은 상황이다.[4]
    • 20년대 들어 원조 YG엔터테인먼트 소속 프로듀서들의 매너리즘 또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5.5. 2024년[편집]


  • 미정
    • 차기 걸그룹, 보이그룹 (2024년)

6. 베이퍼웨어[편집]


  • G-DRAGON × 태권 힙합 듀오 : 5인조 보이그룹 BIGBANG으로 데뷔.[16]
  • 장한나, 케이티의 솔로 데뷔 : 무산[17]
  • 걸그룹 '시스타' : 4인조 걸그룹 2NE1으로 데뷔.[18]
  • 걸그룹 '퓨처 투애니원' : 무산[19]
  • 2013년 걸그룹 프로젝트 : 무산[20][21]
  • 3인조 2NE1 : 무산[22]
  • 박봄 솔로 데뷔 : 무산[23][24]
  • DANNY 정규 2집 : 무산
  • TEDDY 솔로 앨범 : 무산
  • 이은주 솔로 앨범 : 무산
  • 소울스타 이승우, 이창근 솔로 앨범 : 무산
  • 지누션 신보 : 무산[25]
  • 1TYM 정규 6집 : 해체[26]
  • 강승윤 솔로 미니 앨범 : 무산[27][28]
  • CL의 'HELLO BITCHES' 뮤직 비디오 : 비공개[29][30]
  • CL의 각종 솔로곡 : 비공개[31]
  • WINNER EXIT 프로젝트 : 중단[33]
  • WINNER 새 맴버 ONE 영입 : 무산[34]
  • 2018년 YG 힙합 그룹 : 무산[35]
  • BIGBANG 군백기 싱글 : 무산[36]
  • 프로젝트 그룹 'MIXNINE' : 무산
  • 최래성을 중심으로 한 보이그룹 데뷔 : 무산[37]
  • 프로젝트 그룹 '트레저13'
    • 6인조 보이그룹 '매그넘' 데뷔 : 무산[38]
    • 7인조 보이그룹 '트레저' 데뷔 : 무산[39]
  • B.I × BOBBY 힙합 듀오 : 무산[40]

[1] 실제 YG엔터테인먼트의 사옥은 대한민국 기획사 중에서도 최상급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2] 시가 총액이 1조원을 돌파했었다. 다만 지속적으로 하락해서 2016년 1월에 SM의 주식 시가총액은 9,461억 원이고 YG는 6,683억 원이다.[3] 싸이는 외부 영입 아티스트라 YG에 직접적인 영업 이익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YG가 얻은 것은 직접 영업 이익보다 주가 상승 호재와 함께 추후 소속 가수들의 해외 진출 시에 강력한 교두보를 얻었다는 것을 크게 평가한다.[4] 젠틀맨의 국내 차트 성적은 상당히 높았으나 그 전보다 좋지 못한 평에 뮤직비디오 논란까지 겹쳐 싸이의 국내외 인기가 떨어지는 데 일조했다. 해외 인기야 원래 일시적인 것이었고 거품이 빠질 것이 예상되었지만 높아진 주가의 기반이 그 해외 열풍이었기 때문에 빠지니까 타격이 큰 것이다.[5] 엠넷에서 방영하는 'WIN: Who is Next?'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팀별로 나누고 이기는 팀만 데뷔)[6] 지상파 6일, 케이블 5일[7] 9월 15일 선공개곡 취향저격으로 데뷔 - 10월 1일 WELCOME BACK(하프앨범)발매 11월 16일 이리오너라 및 지못미 발매 - 12월 24일 정규앨범 발매[8] TWICETT가 경쟁곡이여서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고 3주간 2위를 차지했다.[9] 45RPM 멤버 이현배는 DJ D.O.C 리더 이하늘(본명:이근배)의 동생이다.[10] 이는 현재 조PD의 브랜뉴스타덤(대중지향)과 브랜뉴뮤직(언더지향)의 관계와 상당히 유사하다.[11] 원타임의 멤버이며, YG의 대표적인 프로듀서.[12] 이 곡으로 제 32회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디지털 음원 본상을, 제 7회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 디지털 음원 부문에서 1월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하였다.[13] 이 과정에서 B.I의 곡을 타이틀곡으로 한 것으로 모자라 수록곡 5곡 중 1곡을 제외한 4곡이 B.I의 곡이라서 논란이 되었다.[14] 다만 기타 활동에 대해서는 별도의 계약을 체결해 협력을 이어나간다고 한다.[15] 계약 종료 이후, 143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그룹 활동을 이어나간다.[16] 이후, BIGBANG의 두 번째 유닛으로 GD X TAEYANG으로 활동.[17] 케이티는 YG에서 데뷔를 하려고 했으나, 케이티의 모든 앨범 준비 작업을 처음부터 담당해왔고, 추후 프로모션 계획까지 전담하고 있던 YG의 임직원이 YG를 나가게 되어서, 케이티와 YG의 합의하에 케이티도 독립을 하여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데뷔 음원 유통과 뮤직비디오 공개 등은 모두 YG가 지원해주었다.[18] 원래 SISTAR에서 21 (To Anyone)으로 바꾸고 그 다음 2NE1으로 바꾼 뒤 데뷔.[19] 모든 멤버가 데뷔하지 못하고 YG를 나갔다.[20] 김은비가 포함된 6인조 그룹이었다고 하며, 멤버 개개인이 모두 솔로로 데뷔 한 후 2014년에 한 팀으로 뭉쳐 활동할 것이라고 했으나 무산되었다.[21] 유나킴은 탈퇴.[22] 3인조 개편 이후, 3집 앨범 녹음을 모두 마쳤으나 발매되지 못하고 결국 해체.[23] 박진영이 작곡한 허수아비라는 곡을 통해 솔로 아티스트로 데뷔하려고 했으나 무산.[24] 이 곡은 2012년, 이하이의 이름으로 발매된다.[25] 2007년 말, 3년만에 지누션의 신곡이 발매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이 이후로 무려 2015년까지 지누션은 신곡이 나오지 않았다.[26] 오진환이 군대를 다녀온 후, 2008년에 6집을 작업했으나 결국 발매되지 못하고 해체하였다.[27] 2013년 강승윤은 몇개의 선공개 싱글을 낸 뒤 6곡의 미니 앨범을 발매하려 했으나, 서바이벌 프로그램 WIN과 일정이 겹쳐서 결국 3개의 선공개 싱글만 공개된 채 미니앨범은 발매되지 못했다.[28] 이후 2021년 WINNER가 군백기인 때, 정규 1집 PAGE를 발매하면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다.[29] 촬영을 완료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지 않았고, 콘서트에서만 볼 수 있었다.[30] 이 외에도 태양의 '아름다워', 송민호의 '몸' 원본 뮤비 등 촬영을 끝마쳐 놓고도 공개되지 않은 뮤비가 꽤 있다.[31] 2017년 말, 'ALL IN'이라는 곡의 뮤비가 CL의 인스타그램에 잠시 올라왔던 적이 있다. 2016년에 촬영되어 2017년에 공개 예정이었다. 그 밖에 작업해둔 곡도 있지만 솔로 활동이 무산되면서 비공개.[32] EVERYD4Y 앨범에 수록된 LA LA라는 곡이 원래 EXIT : X의 타이틀 곡이었다고 한다.[33] BIGBANGM A D E처럼, E X I T 싱글을 발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했으나, 남태현의 탈퇴로 EXIT : E만 발매 된 채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32][34] 남태현의 탈퇴 이후 양현석은 ONE을 영입하려 했으나, 이미 솔로 데뷔 프로젝트가 거의 모두 진행되어서 무산되었다.[35] 송민호, BOBBY 등을 중심으로 한 YG FAMILY 스타일의 힙합 그룹을 만들 프로젝트.[36] 빅뱅의 군백기 동안, 미리 만들어둔 몇 개의 곡을 싱글로 발매하려 하였으나, '꽃 길' 한 곡만 발매되었다.[37] 최래성, 전웅, 이미담, 김승훈, 방예담[38] 멤버 하윤빈을 제외하고 12인조 TREASURE로 데뷔.[39] 전멤버 TREASURE로 데뷔[40] 앨범 준비까지 모든 과정을 마쳤었으나, B.I마약 투여 및 구매 의혹으로 YG와 계약을 해지하며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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