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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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타 국가에서의 사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One-drop rule. 줄여서 ODR. 과거 미국의 인종 구별 방법론으로, 부모가 백인일지라도 그들의 조상중에 비백인계의 혈통이 있으면 비백인으로 보는 것이다. 연방 대법원에서 위헌(Legal Definition of unconstitutional)판결을 내린 덕에 현재는 미국 그 어디에서도 공식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곳이 없다.

이 'One-drop rule'의 번역은 한 방울 '원칙'과 한 방울 '규칙'으로 갈리는 모양새다. 제도권 언론들의 사례로 보아도 동아일보한국일보, 그리고 언론 외에는 네이버 지식백과의 포스트에서 한 방울 원칙이란 번역을 사용한 반면 뉴스원한국어 위키백과의 경우 한 방울 규칙이라는 번역을 사용하였기 때문.

2. 역사[편집]


18세기~19세기 중엽 미국의 여러 주의 주법에서는 혼혈인일정 수준 이하의 흑인 피가 섞인 흑백혼혈만을 백인으로, 나머지는 흑인으로 간주했다. 마다 이 비율은 달랐는데 대체로 노예제가 오래 남아있던 남부로 갈수록 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가장 너그러운(?) 주들은 1/4가 기준이었고, 대부분의 주에서는 1/8 이상의 피가 섞이면 흑인으로 분류했으며, 루이지애나에서는 1/16, 앨라배마에서는 1/32였다.[1] 그 중 one-drop rule은 가장 순혈주의적인 주장으로 가까운 직계조상 중 단 한 명의 흑인 조상이 있다면 그 사람을 백인으로 인정해 줄 수 없다인종주의적 입장을 뜻하는 것인데, 버지니아 등지에서 실제로 채택했던 방식이다.

법적으로 백인인지 흑인인지 구별하는 것이 중요했던 이유는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평등하되 분리한다"는 취지의 '인종 분리주의'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혈인을 흑인이나 백인 한 쪽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기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없다거나, 같은 식당을 이용할 수 없다거나, 같은 벤치에 앉을 수 없다거나, 버스에서도 뒷쪽 자리에 앉아야 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는데, 흑인들의 시설은 백인들의 시설보다 열악했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는 '분리된 평등'이지만 실제로는 '인종차별'로 기능했다. 흑인들이 백인들과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지는 아직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았다.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그 당시 주법들에서 백인과 흑인을 가르는 경계가 50%, 즉 1/2이 아니라는 것. 1/8, 1/16, 1/32 또는 one-drop 같이 조금이라도 비백인(주로 흑인) 혈통이 있으면 백인 취급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보면 비백인의 혈통에 백인이 있다고 백인으로 취급하는 경우는 없었다는 의미도 된다. 이러한 점은 이 정책의 목적이 흑인과 백인이 동등하다는 가정 내에서 '인종차별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인종간 분리'가 아닌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유사신분제임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인류학자 패트릭 울프(Patrick Wolfe)에 따르면 이런 인종 규정은 흑백혼혈들이 백인으로 취급당하며 노예로 계속 일해 줄 '흑인'이 미국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노예무역은 끊겼는데 조상에 '백인'이 있는 사람을 다 "흑인이 아니다"라고 인정하기 시작하면 결국 여러 세대 뒤엔 '흑인'이 사라지고 지금처럼 싸구려로 부리지도 못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2]

반면 동시기에 노예로 미국에 끌려와 정착한 후발자 흑인에 비해 선주민으로써 이주민 주류 백인 사회에서 역시 불편하게 여겼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백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이젠 제대로 된 원주민이 아니다" 규칙을 적용해서 이중잣대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인종 규정이란 것엔 알게 모르게 다 사회공학이 작용한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절에는 이 법칙을 들먹이며 비백인계는 물론, 외모가 거의 백인 수준이 돼버린 혼혈인 계열도 불순물이라 욕먹으며 인종 차별을 당했다. 대통령이었던 워런 G. 하딩 역시 외모는 백인이지만 조상 중에 아프리카계가 있으므로 역시 흑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경쟁자들의 근거없는 루머로 밝혀졌지만 이러한 일화에서 흑인의 유전자를 더러운 것, 오염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에서 완벽한 방벽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유전자 연구결과에 따르면 스스로를 백인이라 생각하는 미국인들 중 최소 4%는 흑인 혈통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루이지애나에서는 이 비율이 12%까지 올라간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주의로 악명을 떨치는 백인이 자신은 순수 백인이라며 당당하게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니 먼 조상 중에 흑인 혈통이 있었더라...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종종 벌어진다(...)[3]


1940년까지는 one-drop rule이 법령에 들어간 주가 있었으나 1950년대부터는 이런 법령은 거의 폐지되었다. 마지막까지 이러한 법령을 가지고 있었던 주는 버지니아로, 1967년에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해당 법령이 위헌 결정을 받으면서 법적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 이후로 인종 분류 기준은 혈통이 아닌 외형이나 정체성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의 경우 사실 백인 피가 절반이나 섞였지만, 외형이 누가봐도 흑인 피가 섞인 것이 보이고, 본인이 흑인으로 정체성을 가지기 때문에 흑인이라고 불린다. 반면 머라이어 캐리는 약간 백인처럼 생겼지만 부계에 흑인이 있고 미국사회는 양자택일을 하길 원하기에 스스로 흑인이라고 선언해 흑인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흑인 혼혈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흑인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미국에서는 인종을 사실상 자신의 정체성으로만 판단하며, 조상이 어쨌는지는 신경 안쓰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미국인들은 전혀 흑인같아 보이지 않는 인종, 예를 들면 몽골로이드 한국인이 "나 흑인이에요!" 라고 해도 최소한 앞에서는 "아… 그러시군요;;;" 하고 넘어가주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을 미국에서는 color blindness(색맹)이라 한다. 하도 인종차별로 홍역을 앓다 보니 인종에 대해서는 뻔히 보이는 것도 애써 못본 척하면서 주장하는 대로 인정해주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진 현재는 One-drop rule 같은 것을 입에 올리면 극성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과 동시에 영 좋지 않은 소리를 듣는다. 미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과 인종 부분에 대해선 굉장히 민감하므로 미국에 가서는 농담 소재로라도 인종으로 개드립을 치면 모든 사람이 정색을 하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직장에서 이런 인종 드립을 함부로 쳤다가는 바로 당일 해고 통보에 법적 처벌을 받고 사회적으로 생매장까지 당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원드랍룰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까지 완전히 사라졌다고도 할 수는 없다. 인종 이슈가 심하지 않고 외부 변화에 둔감한 지방, 예를 들면 미국의 백인 인구가 많은 내륙 지방 같은 곳에선 악의는 없을지라도 마음 속에 원드랍 룰 비스무리한 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흑백 혼혈인과 백인의 자녀라면 사실 75%는 코카소이드 인종이지만, 이런 동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냥 흑인으로 취급한다. 얼굴에 흑인의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판별법을 '외모의 법칙'이라고 하며, 다른 방법으로는 흑인들과 어울려 다니면 흑인으로 취급해주는 '교류의 법칙' 등이 있다.


3. 타 국가에서의 사례[편집]


한 방울 원칙은 미국에서 행한 인종차별적인 왜곡이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도 미국의 한 방울 원칙과 비슷한 악폐습이 있었다.

  • 라틴아메리카의 '메스티소' 역시 특권층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원주민 피가 아주 약간이라도 섞여 있다면 아무리 백인처럼 생겨도 백인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다만 원주민에 대한 인식이 영 나뻤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지에서 원주민 혈통을 가진 혼혈인들도 백인이라고 자처하는 경우는 많았고, 20세기 후반부터는 이러한 관점을 배제하고 칠레의 사례처럼 이목구비가 백인이면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그냥 히스패닉 백인으로 인정하는 케이스가 늘어났다. 한편으로 브라질에서는 백인들이 이주해오면서 백인들에게 흑인과의 혼혈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 브라질인 대부분은 흑인의 혈통이 일부나마 흐르게 되었다.

  • 독일에서도 비슷한 기준을 들이대며 나치 독일 당시 인종 학살의 빌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치당은 이런 순혈주의를 매우 광신적으로 신봉했다. 심하면 조부유대인이라는 이유로 3대를 전부 강제수용소로 끌고 갔는데, 본래 전통적으로 유대인 여부가 인종보다는 종교(유대교 신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웃기는 뻘짓. 이런 제정신 아닌 룰 때문에 독일에 충성을 다하는 유대인마저 등을 돌렸다.

  • 북한백두혈통 따위의 개소리를 하며 순혈주의를 매우 적극적으로 따른다. 북한도 단일민족이니 소수민족이라고 해봐야 소수의 화교납북 일본인, 러시아인 정도에 불과하니 민족 문제로 골치를 썩힐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물론 북한에 귀화한 외국인들이 북한사람과 국제결혼하는것에 대해서는 대우해주면서 군말을 안 하기는 한다(...) 사실 어차피 북한에 귀화할 외국인들이 극소수에 불과해서 골치를 안 겪는 것에 가깝다. 남북관계가 한창 좋을 때던 2006년 5월 17일 남북 군 실무자끼리 열린 국방 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였던 한민구 당시 육군 대령이 한국 농촌사회의 다문화 바람을 이야기하자 북측 대표였던 김영철민족의 혈통이 더럽혀지고 단일성이 사라진다고 비판했다. 그 말에 한민구 대령이 어이가 없어 "한강물에 잉크 몇 방울 떨어트리는 수준일 뿐"이라고 응수했으나 김영철은 그 몇 방울의 잉크도 용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4] 또한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임신한 여성 탈북자가 잡혀오면 강제로 낙태를 당한다고 한다.[5]


  • 일본의 경우 혼혈에 대한 편견이 강한데다 일본 사회에서 우경화 풍조가 만연한 편인데 특히 부모 중 1명[6]한국계, 중국계라는 이유로 영 좋지 않은 대우가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백인 혼혈 정도가 겉으로는 선망받고 우대를 받는 편이지만 역시 일본 사회에서는 외래인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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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산해보면 쿼터는 조부모 중 한 사람, 1/8는 증조부모, 1/16은 고조부모, 1/32는 현조부모 중 한 사람이 흑인계인 경우에 해당한다.[2] 다만 흑백혼혈 중 모친이 백인이면 언제나 자유민 이었다. 그러나 흑인 여성은 너무나 비일비재하게 노예주에게 강간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이 낳은 흑백혼혈은 모조리 노예 취급을 당했다.[3] 이게 가능한 이유는 식민지 시절부터 모친이 백인이면 절대 노예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미국이 딱히 족보 챙기는 풍습이 만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분하는 기준도 자의적이라서, 유전자 검사 따위 없던 시절부터 10%내외의 흑인 유전자를 지녔어도 흑인 형질이 잘 눈에 띄지 않는 "백인"은 그냥 백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4] 김영철의 발언이 막장이라 그렇지 사실 한민구의 발언도 한국인을 '물', 외국계 혈통을 '잉크' 따위로 부른 시점에서 명백한 차별발언이었다.[5] 영화 크로싱에도 강제낙태 후 실성한 여성 탈북자가 나온다.[6] 모계와 부계 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