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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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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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코치)
2000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

1984
199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6번
창단

강병철
(1983~1986)


김성관
김성관

강병철
(1991~1993)


오대석
(1997~1998)
한화 이글스 등번호 70번
김영덕
(1988~1992)

강병철

다카시로 노부히로
(2010)
SK 와이번스 등번호 70번
창단

강병철
(2000~2002)


최태원
(2005~200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6번
권두조
(2000~2001)

강병철
(2006~2007)


주형광
(2009~2019)
우리 / 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80번
창단

강병철
(2008)


김동수
(2010~2014)



파일:강병철 감독 시구인사.jpg

강병철
姜秉徹

출생
1946년 8월 21일 (77세)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1]
(現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부산상고 - 우석대학교[2] 석사
신체
180cm, 85kg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크라운맥주 (1965)
해병대 야구단 (1966~1969)
한일은행 야구단 (1970~1977)
지도자
동아대학교 감독 (1978~1982)
롯데 자이언츠 타격코치 (1983)
롯데 자이언츠 감독대행 (1983)
롯데 자이언츠 감독 (1984~1986)
빙그레 이글스 수석코치 (1988~1990)
롯데 자이언츠 감독 (1991~1993)
한화 이글스 감독 (1994~1998)
SK 와이번스 감독 (2000~2002)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06~2007)
우리-서울 히어로즈 2군 감독 (2008)
상훈
체육훈장 백마장
병역
대한민국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종교
불교

1. 개요
2. 선수 경력
5. 그 후
6. 기타
7. 역대 감독 성적



1. 개요[편집]


롯데 자이언츠[3],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의 감독.

롯데가 기록한 1984년과 1992년 2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모두 이끈 감독으로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함께 팀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힌다. 명과 암이 분명한 감독이지만 리그의 감독 영구결번으로 꾸준히 거론되는 감독 중 하나이다.[4]

2. 선수 경력[편집]


파일:external/db.kookje.co.kr/20071217.22029210508i1.jpg
부산상고 시절 강병철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1965년에 실업팀 크라운맥주에 입단하였다. 이후 1966년부터 1969년까지 해병대 야구단에서 복무하고, 1977년까지 한일은행 야구단[5] 선수로 뛰었다. 실업야구 특성상 회사원 신분이어서, 크라운맥주 시절에는 식당들을 돌며 맥주 판촉을 했었던 적도 있고, 한일은행 시절에는 진짜로 은행원일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일은행 출신 야구 지도자들은 지폐를 잘 센다는 이야기도 있다.

박영길, 김응용[6]과 함께 국가대표팀 클린업 트리오로 이름을 날렸다. 실업야구가 인기를 끌던 1970년대를 휩쓴 3루수 중 하나였다.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병철/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병철/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그 후[편집]


2017년 10월 8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리는 2017년 KBO 준플레이오프 1차전의 시구자로 선정되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롯데의 2번 우승을 모두 함께한 유일한 감독이기 때문. 더구나 롯데의 당해 포스트시즌 캐치프레이즈가 "마! 함 해보입시다!"[7]인 데서 1차전 시구자로서의 의미부여는 충분하다 하겠다. 그러나 1차전의 결과는 롯데의 패배로 나왔다.

2018년 올스타전에서도 시구를 하였다. 시타는 이승엽

프로 원년인 1982년부터 6개구단 체제가 마지막해인 1985년까지, 감독을 거쳤던 생존한 인물중 4명중 1명인데, 그 4명은 김응용, 박영길, 백인천 그리고 강병철이다.


6. 기타[편집]


  • 해병대 선수 시절 군복무를 40개월이나 한 희귀한 기록을 가지기도 했다.

요즘 육군의 의무 복무기간은 24개월, 딱 2년이다. 하지만 강병철 전 SK 감독은 해병대에 입대, 햇수로 무려 4년을 복무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크라운맥주에서 강타자로 활약하던 강 감독은 66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당시 복무기간은 24개월 정도. 하지만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김신조 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바람에 군복무 기간도 36개월로 늘어났다. 68년 억지로 36개월 다 채웠지만 제대는 허락되지 않았다. 아직 중요한 대회가 남아 있다는 황당한 이유에서였다. 강 감독은 “또래들에 비해 상당히 군생활을 오래 했다. 나 말고도 제대를 연기당한 선수들이 몇몇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강 감독은 68년 시즌을 다 뛰고 69년이 돼서야 군복을 벗을 수 있었다. 출처


  • 롯데에서 유일하게 우승을 이끈 감독은 강병철이었고 우승을 이끈 선수가 둘 다 신인에 안경잡이 에이스였기 때문에 롯데가 우승하기 위해선 강병철 감독(그것도 취임 2년째에[8]), 혹사, 안경 우완 에이스 삼신기가 모여야 한다는 우스개도 있다.#[9]


7. 역대 감독 성적[편집]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1983
롯데 자이언츠
50
21
29
0
6위[10]
-
1984
100
50
48
2
4위[11]
우승
1985
110
59
51
0
2위
[12]
1986
108
50
52
6
5위[13]
-
1991
126
61
62
3
4위
준PO 탈락
1992
126
71
55
0
3위
우승
1993
126
62
63
1
6위
-
통산
746
374
360
12

연도
소속팀
경기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94
한화 이글스
126
65
59
2
3위
PO 탈락
1995
126
55
71
0
6위
-
1996
126
70
55
1
3위[14]
준PO 탈락
1997
126
51
73
2
7위
-
1998
64
29
33
2
7위[15]
-
통산
568
254
298
16
­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0
SK 와이번스
133
44
86
3
4위[16]
-
2001
133
60
71
2
7위
-
2002
133
61
69
3
6위
-
통산
399
165
226
8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6
롯데 자이언츠
126
50
73
3
7위
-
2007
126
55
68
3
7위
-
통산
252
105
141
6
­
총계
1965
914
1018
33
­
[1] 김해국제공항 인근의 평강마을 출신(지번 주소상으로는 대저1동이다.)이다.[2] 전북 완주군의 우석대가 아니라 고려대에 합병된 우석대이다. 해당 문서 참조.[3] 역대 유일무이하게 한팀에서 세번이나 감독이 되었다. 첫번째 감독 재임당시 1984년 롯데의 첫 우승을 차지했고, 두번째 감독 재임당시 1992년 두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세번째 감독 재임당시에는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8년간 2번의 우승을 이끔.[4] 대표적으로 타이거즈의 9번의 우승을 함께한 김응용(39, 70), SK 와이번스김성근(38), 베어스김인식(81)과 김태형(88), 삼성 라이온즈류중일(75)과 이글스김영덕(99), NC 다이노스김경문(74) 등이 있으며, 현대 유니콘스가 존재했다면 하는 가정하에 김재박(70)도 거론이 되었다.[5] 한일은행이 크라운맥주 야구단을 인수했기 때문이다.[6] 고등학교 선배이자 크라운맥주, 한일은행의 선배다. 후에 한일은행의 감독까지 했으며, 그러다가 프로야구가 생겨서 프로야구 감독이 된 것이다.[7]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 강병철이 최동원에게 '동원아. 우짜노. 이까지 왔는데'라고 한국시리즈 등판 지시권유를 하자 최동원이 답한 말이었다.[8] 첫 롯데 감독 시절인 1983년은 박영길 전 감독의 대행 자격이었다. 두번째 우승하기 전 해인 1991년은 비록 승률은 5할 밑이었지만 롯데는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었다.[9] 앞서 롯데의 우승을 이끌었던 최동원염종석은 나란히 부산 출신이었다.[10] 전기 4위, 후기 6위[11] 전후기 통합 순위, 후기 1위로 한국시리즈 진출.[12] 1985년에 삼성 라이온즈가 전후기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한국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13] 전기 3위, 후기 5위[14] 정규 시즌 4위 현대 유니콘스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최종성적은 4위로 밀렸다.[15] 시즌 도중 경질되었으며 남은 경기는 이희수가 감독대행으로 치뤘다.[16] 매직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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