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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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0 김태균 · 71 이강철 [[감독#s-1.1|

]] · 72 김강 · 75 장재중
· 76 박기혁 · 82 제춘모 · 84 최만호 · 87 전병두
· 92 유한준 · # 김호'''
《2군》
74 홍성용 · 77 김태한 · 79 이준수 · 80 박정환
· 86 김연훈 · 90 조중근

《육성/재활군》
85 이성열 · 89 백진우 · 91 배우열 · # 곽정철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입대선수등록선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김기태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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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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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코치)

2008

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감독

2017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1997 KBO 리그 타격왕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1994 KBO 리그 홈런왕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1994,1997 KBO 리그 장타율왕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1992, 1997 KBO 리그 출루율왕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1994 KBO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자








김기태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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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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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번
김영운
(1990)

김기태
(1991~1993)


박철우
(1994~1998)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0번
김호근
(1991~1993)

김기태
(1994~1998)


이진영
(199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번
양준혁
(1993~1998)

김기태
(1999)


김주찬
(200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전병호
(1996~1999)

김기태
(2000~2001)


이정호
(2002~2004)
SK 와이번스 등번호 10번
이진영
(2000~2001)

김기태
(2002~2005)


시오타니
(2006~2006.5.14.)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130번
결번

김기태
(2007)


김정훈
(2008)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84번
우치다 준조
(2006~2007)

김기태
(2008~2009)


기무라 타쿠야
(2010)
LG 트윈스 등번호 71번
김용수
(2007~2009)

김기태
(2010~2011)


조계현
(2012~2014)
LG 트윈스 등번호 91번
최계훈
(2011)

김기태
(2012~2014)


노찬엽
(2015~2016)
KIA 타이거즈 등번호 77번
김종국
(2013~2014)

김기태
(2015~2019)


위더마이어
(2020~2021)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78번
기사누키 히로시
(2019~2020)

김기태
(2021)


요코가와 후미노리
(2022~)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88번
고토 코지
(2021)

김기태
(2022)


오쿠보 히로모토
(2023~)
kt wiz 등번호 73번
이승호
(2019~2022)

김기태
(2023~)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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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t훈련김기태.jpg

kt wiz No.73
김기태
金杞泰 | Kim Ki-Tai

출생
1969년 7월 7일[조기입학][1] (54세)
전라남도 광산군 본량면 송치리 금치마을
(現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치동 금치마을)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광주서림초등학교 (졸업)
충장중학교 (졸업)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87[2] / 학사)
신체
180cm, 85kg, 오른손잡이
포지션
지명타자[3], 1루수[4], 좌익수[5], 우익수[6]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1년 신생팀 특별우선지명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8)
삼성 라이온즈 (1999~2001)
SK 와이번스 (2002~2005)
지도자
SK 와이번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06)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코치 (2007)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08~2009)
LG 트윈스 2군 감독 (2010~2011)[7]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11)[8]
LG 트윈스 감독 (2012~2014)[9]
KIA 타이거즈 감독 (2015~2019)[10]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수석코치 (2021)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22)
kt wiz 2군 감독 (2023~)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07~2008 / 2023~)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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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신세영(1971년생)[1]
가족
장남 김건형(1996년생)[2]
차남 김대형
종교
불교[3]

1. 개요
3. 은퇴 이후
5. 별명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kt wiz 2군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지명타자, 1루수, 외야수.

선수 시절에는 쌍방울 레이더스를 대표하는 간판타자이자 덕아웃 리더로서 명성을 쌓았고, 그 후 삼성 라이온즈SK 와이번스를 거쳤다. 선수 은퇴 후에는 SK에서 잠깐 코치를 하다가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를 거쳐 KBO 리그에 복귀해 LG 트윈스에서 수석코치, 2군 감독을 맡은 뒤 1군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팀의 10년 간의 비밀번호 66685876672013 시즌에 끊었고 이후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해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지만 LG에 이어 KIA도 시즌 도중 자진 사퇴를 하게 되는 아픔을 또 겪었고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타격 코치로 다시 활동을 하다가 kt wiz의 2군 감독으로 다시 KBO 리그에 복귀하였다.

선수로서나 지도자로서나 상당한 성과를 이뤘다고 볼 수 있으나, 지도자 성과의 이면에는 논란이 굉장히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11]KBO 리그 정식 감독 커리어에 두 번이나 '자진 중도 퇴진'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형님 리더십, 동행 리더십이라고는 하지만 비판하는 쪽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선수만 동행이라는 리더십이라며 호불호가 갈리고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2. 선수 경력[편집]


김기태의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편집]



3.1.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기태(1969)/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기태(1969)/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KBO의 이슈메이커 감독 중 한 명이다. 대체적으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이다. 호의적인 평가는 선수단을 강하게 통솔하면서도 관계는 원만하다는 점, 일정 수준의 팀성적을 보장한다는 점이며, 불호는 경기운영 및 경기 외적인 구설수에 주로 관련되어 있다.


5. 별명[편집]


현역 시절에는 '왕방울', '그라운드의 보스' 등의 별명이 있었다. 왕방울은 현역 시절 소속팀인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가장 타격이 좋아서 붙은 별명이었다. 또 쌍방울, 삼성, SK 등 그가 속했던 모든 팀내에서 선수단 전체를 휘어잡는 맏형으로서의 위압감이 상당했던 선수였기에 '보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파일:김기태별명들.jpg

선수 시절에는 근엄하고 무서운 선배의 이미지였으나 감독으로 활동할 때 워낙 이슈가 많았던지라 기괴한 별명도 상당히 많았다. 대부분 그의 기행에서 비롯된 별명들이며 별명 많은 옛 제자처럼 '○기태' 또는 '○○태'로 끝나는 별명이 많다.

  • 눕기태 - 2015년부터의 별명이며 가장 유명한 별명. 심판의 쓰리피트 오심에 항의하며 경기장 2루 베이스 옆에 누워버렸고 이후 이슈가 되었다. 심지어 이모티콘 별명까지 생겼다.
  • 런기태 - 2014년부터의 별명. 그가 감독을 맡았던 LG 트윈스에서 임기 도중에 자진 사퇴해서 생긴 별명. KIA 타이거즈에서도 결국 자진 사퇴하였다.
  • 숲기태 - 2012년 한정 별명.
  • 포기태 - LG 감독 시절부터의 별명. 경기 막판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생긴 별명.
  • 돌기태 - LG 감독 시절부터의 별명. 간혹 '돌태'로 줄여서 까는 팬들도 여럿 있다.
  • 숨기태 - 2018년부터의 별명. 퇴장 당한 이후 숨어서 경기를 보다가 걸려서 붙여진 이름이다.
  • 꽃게태 - 위의 사진 속 자막에는 꽃기태라고 나와있는데 사실 꽃게태다. 하체의 밸런스를 잡기 위해 꽃게처럼 걷는 훈련을 시킨 것에서 비롯된 별명.
  • 망치태 - 타자의 컨택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망치로 공을 때리는 훈련을 시켰는데 거기서 비롯된 별명. 유사 별명으로 토르가 삽입된 토르태, 김기토르 등이 있다.
  • 줍기태
  • 관종태
  • 소고기태, 소고기김밥 - 2018년도 선수단 운영과 임창용 방출 문제로 인해 KIA 타이거즈 갤러리가 주도로 시작하여 KIA팬들이 챔피언스 필드 앞에서 퇴진시위를 하였다.[12] 청문회 전에 김기태 감독이 본인을 기다리던 팬들을 위해 소고기 김밥을 사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분탕들이 만들어낸 루머였다.[13][14]


6. 여담[편집]


  •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상당한 노안이다.


  • 앞서 언급된 사례 말고도 또 하나의 미담 아닌 미담(?)이 있다.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선수 전담 코치로 활동했는데 팬들 사이에서 이승엽 싸인 받으러 갔다가 김기태 싸인만 받고 돌아왔다는 증언이 꽤나 존재한다.(...)

  • 홈런왕과 타격왕을 둘다 차지해본 KBO 리그 선수 6명 중 하나.[15] 그러나 140안타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당시 경기수를 144경기로 환산하면 5번을 기록)1997년에 그보다 낮은 타율을 기록한 이승엽이 170안타를 기록한 것을 보면, 분명 그는 최다 안타와는 인연이 없다. 대신 어마무시한 볼넷을 얻어내는 중장거리+출루형 타자로 보면 된다. 아무래도 팀 전력 자체가 약한 쌍방울에서 오래 뛰다 보니 투수들도 정면 승부보다는 거르는 플레이를 많이 했기 때문. 다만 언급되는 이야기로, 김기태 감독이 현역시절 클러치 상황이 아닐 때 의도적으로 루킹 삼진을 당하며 약점인 척 노출시키고 결정구의 구질이나 위치 등을 기억하고 있다가 중요한 시점, 한방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투수가 전 타석에서 사용한 똑같은 결정구를 던지면 쳐냈다는 일화도 있는 걸 보면 본인도 굳이 욕심부려가며 안타를 생산해내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듯 하다.

  • KIA 감독을 맡기 이전에 선수 시절과 코치 시절에 우승이 없기로 유명했다. 약체 쌍방울 소속이라 우승 근처도 못가보다가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에 밀려 준우승을 기록해 콩라인에 가입되었다. 커리어 기준으로도 번번이 장종훈, 양준혁, 이승엽에 밀린 2인자 인생. 1994년에 홈런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절친한 동생인 이종범에 밀려 MVP를 받지 못했다. 200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우승하기 직전에 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콩라인에서 탈퇴하지 못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참가해 금메달을 획득한 게 선수, 지도자 합해서 유일한 우승 경력이었으나, 마침내 2017년 KIA가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첫 우승을 감독의 이름으로 맛보며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렀다.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창립을 결사 반대했던 유지현, 김경기, 김태형, 이호성과 함께 선수협 오적으로 불리우는데 63빌딩 창립총회 당시 뒤늦게 들어와 TV 방송 카메라들이 뻔히 중계하고 있는 자리임에도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을 거친 말과 행동을 위협해 모두 끌고 나갔고 자신의 행동에 반발하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 송진우를 회장으로 뽑고 나서도 시간이 더 걸렸다고 들었는데.

“말도 마라. 두 시간 걸려서 회장을 뽑았는데 이제는 어느 팀이 먼저 입장하는 것을 두고 다퉜다. 선수들이 63빌딩에도 있고, 포장마차에서 우동도 먹고 있고, 버스 안에 대기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입장을 하지 않는 거다. 서로 눈치만 보고 절대 먼저 들어가려는 팀이 없었다. 삼성은 LG만 쳐다보고 있었다. 삼성의 K 선수는 LG Y 선수에게 LG 몇 명 왔냐,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Y 선수는 왜 우리 팀 이야기를 하냐,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말대꾸한다고 욕하고. 멱살 잡고 고성 오가고 몸싸움 벌어지고 막 그랬다.”


- 그리고 나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당시의 사단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지 않겠나. 긴 설명 하고 싶지도 않다. 삼성 K 선배가 삼성 선수들 끌고 나갔고, 안 따라 나온다고 고함 지르고 난리 치고. LG는 삼성이 나가는데 우리는 왜 남아 있냐고, 우르르 따라 나가고 그랬다. 아주 가관이었다. 200여명 모였던 선수들이 8개 구단 수는 맞췄지만 100명도 남지 않았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야구 팬들에게 너무 죄송한 기억이다. K 선배가 나가는 순간 나는 야구를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산 대표는 나오지도 않았고, 얼떨결에 내가 대표를 하게 됐다. 최동원 선배가 구단에게 보복 당한 학습효과가 있어서 그렇게 안 되려고 진짜 총회 개최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는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출처


  • 마구마구 관련 고정글 중 해기태와 비기태에 대한 비교글이 있다.보러가기 첨언하자면, 꼭 쌍방울 올스타를 하지 않을바에야 파워-컨택 모두 나은 비기태가 많이 쓰이며, 저 글에서는 7렙을 찍는다는 가정하에 해기태>비기태 드립을 치는 것이다. 낚이지 말자.

  • 김기태의 주변 인맥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세 명 있는데 바로 이종범, 염경엽, 조계현이다. 이종범과 염경엽은 어린 시절 광주에서부터 이어진 인연인 반면 조계현과는 프로에 와서 가까워진 인연이다.
이종범과는 어린 시절 친한 동네 형-동생 사이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김기태가 이종범의 집에 자전거를 끌고 가서 종범아~ 자전거 타자~라고 자주 불러내서 놀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 소년이었던 이종범이 학교 축구부 해체 후 야구부에 가입하게 됐는데 이종범에게 야구부 가입을 이끈 사람이 바로 김기태였다고 한다. 선수 시절에도 이종범이 김기태의 배트를 거리낌없이 가져갈 정도였다.
염경엽과는 광주 충장중-광주제일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서로 절친이라고 한다.[16] 충장중 3학년 때 야구를 안하겠다고 서울로 도망쳐서 서울역 앞에서 3일간 같이 구두닦이를 했을 정도. #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던 김기태를 박종훈의 요청을 받아 LG 트윈스로 데려온 장본인이 염경엽이었고, 김기태가 감독에 선임되었을 때 염경엽을 수석코치로 기용하려고 했지만 염경엽 본인이 거절하고[17] 넥센 히어로즈로 옮기는 바람에 같은 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여담으로 염경엽 감독에게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야타족’ 출신 감독”이라고 놀리기도 했다.[18]
조계현은 현역 당시 1999년 한 시즌만 삼성 라이온즈에서 함께 뛴 바 있지만[19]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에서 투수코치로 같이 일하면서부터다. 대표팀 시절 호흡이 잘 맞았던 영향인지 김기태가 LG 감독으로 선임되자 조계현을 수석코치로[20] 앉혔다. 김기태가 LG에서 사임한 후 조계현은 "나는 김기태의 사람"이라고 밝히며 의리를 강조할 정도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덕인지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선임된 후에도 조계현을 수석코치로 데려왔고 나중에는 감독과 단장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다.

  • 두 사람의 프로필을 봐도 알겠지만 염경엽 감독이 원래 1살 더 많은데, 김기태 감독과 동기동창이 된 이유는 빠른 1968년생[21]인 염경엽 감독이 중학교 때 1년 유급했고, 김기태는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 같은 1969년생 양준혁에게 선배님 소리를 듣는다. 참고로 1970년생 이종범이 1993년 데뷔, 1969년생 양준혁은 상무를 거쳐서 1년 늦게 25세인 1993년 데뷔. 3일 늦게 태어난 양준혁은 학년상으로는 1년 후배지만, 한달 남짓 늦게 태어난 구대성은 유급까지 해서 학년상으로 무려 2년 후배다.


  • 원래는 오른손잡이였으나 야구를 시작하면서 3개월만에 왼손잡이로 전향했다. 우투좌타 스타일이 있는 줄 알았다면 자신도 그랬을 것이라고 하였다.# 공교롭게도 동네 동생인 이종범은 그 반대로 왼손잡이이지만 우투우타라는 것.

  • 해태-KIA 타이거즈 연고인 광주광역시 출신이었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받은 이후로 고향 연고인 타이거즈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22] 이 때문에 좌타자 잔혹사에 시달렸던 타이거즈에서 뛰어 봤었음 하면 어땠을까 하는 많이 아쉬워했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는데, 23년 후 그 김기태는 감독으로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고 고향팀의 11번째 우승을 이끈 지도자가 됐다.

  •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하였다. 골든 글러브도 지명타자로서 2번을 받기도 했고, 경기 출장도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 수비도 나빴다기 보단 입단 초기에 어깨 부상으로 송구가 어려워 지명타자로 나온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실제로도 회복 후엔 1루수로도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23]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지명타자 출신 감독이며, 지명타자 출신 감독 최초의 우승 커리어도 추가됐다.[24]

  • 거포 이미지와는 달리 주루도 프로야구 선수 평균 이상이었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2차례나 성공했고, 두 자릿수 도루도 네 차례나 기록했다. 거기다가 빵사마도 못해본 11년 연속 3루타 기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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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본인에게는 잊을 수가 없는 흑역사이지만, 워낙 오래 된 일이다보니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라고 안도했으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이파이브를 하러 손을 건넸다가 저걸 본 심성보의 기분은 어땠을는지…. 다행스럽게도 해당 게시글은 전혀 뜨지 못하여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모른다는 것. 참고로 저 영상은 네이버 스포츠에 올라온 한국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동영상 김기태 편에서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김기태는 위 기사에서 보이듯 1995년 경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는데 당시 쌍방울+롯데의 유니폼과 상대 투수로 미루어 보아 실제 시기는 1996~1997년으로 추정된다. 애초에 박보현은 1995년 당시 신인이라 등판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고 이로 인해 해당 시즌 피홈런 기록도 없었다. 1996~1997 시즌 동안 김기태가 사직에서 박보현을 상대로 홈런을 친 경기는 1997년 8월 9일 경기가 유일하기에 해당 경기인 것으로 보인다.##


  • 가족들이 미국 오하이오 주에 거주한 적이 있어서 한때 기러기 아빠였다. 1995년 12월에 결혼했는데[25] 1993년 미스코리아 본선에 나갔던 미스 전북 출신 신세영 씨가 부인이다. (레전드 올스타 화보 촬영현장)

  • 첫째 아들 김건형에게 야구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자식의 뜻을 꺾진 못했는지 첫째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의 지원을 받고 미국에서 꾸준히 야구를 하다가 2020년 9월 열린 2021 KBO 트라이아웃에 심정수의 아들 심종원과 함께 참여했다. 트라이아웃 받으러 가던 날 아침엔 아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줬다고. 아마추어 리그에서 40도루를 기록하는 등 주력은 좋은 편이며 포지션은 우투좌타 외야수. 김건형은 결국 2021년 신인드래프트 2차 8라운드에서 kt wiz의 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2023년 3월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면서 아버지를 2군 감독님으로 만나게 되었다.

  • 2015년 시즌을 맞이하고 적극적인 어필 제스처와 의욕적인 모습 덕분에 이 해에만 5월 기준으로 7개의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직은 박용택, 김태균의 별명왕 명성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2015년에 이 두 명의 별명왕을 능가하는 별명 획득 페이스를 보이고 있어서 만약 시즌을 희망적으로 마치고 김기태 감독이 KIA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한다면 별명 문서가 생길 수준이 되었다.

  • 인터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목소리가 상당히 깬다. 얼굴만 봐서는 꼭 굵직한 저음에 할 얘기만 할 것 같은데 의외로 하이톤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머로 운을 떼며 더듬더듬 정신없이 빠른 속사포가 마구 섞여서 마치 시골 이장님같은 수더분하고 푸근한 인상을 준다. 그 덕에 머동님이라 불리며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친구인 염경엽 감독이 비교적 안정된 톤에 달변가인 것과 대조된다. 2016 KBO 리그 미디어 데이에 어떤 팬이 그뭐저를 사용하지 않고 기아 팬들에게 영상편지를 남겨달라고 하는 질문에 팬들이 빵 터졌는데 SPOTV에서 그 질문을 예상하고 김기태 감독의 예뭐저를 영상 자료로 준비한 것에 2차로 빵 터졌다 카더라.출처

  • 보상선수 픽의 귀재다. 2012년 LG 감독으로 부임 시 FA와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조인성, 이택근, 송신영, 박현준, 김성현의 대규모 이탈이 발생했고, 곧이어 전력 보강의 기회로 3명의 보상선수 영입 기회가 돌아왔다. 아무리 리빌딩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어도 차포도 모자라서 마상까지 떼고 장기를 두는 정도의 대규모 전력 출혈이 발생한 이상 즉시전력감 선수를 지명하고 싶은 유혹이 클 것이지만, 김기태의 선택은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프로 1년차 루키 3명 임정우, 윤지웅, 나성용이었다. 심지어 셋 가운데 그래도 즉시전력감이라고 평가할 만했던 윤지웅은 이미 경찰청 입대가 확정된 상황.[26] LG 팬들 입장에서야 꽤 기대할 만한 유망주들이기에 결과 자체에는 호의적이었지만, 그 선택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놀라워하는 분위기였다. 2013년 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이대형이 FA로 나가게 되는데 이때는 꽤 나이가 있는 신승현을 선택한다. LG 팬들 입장에선 나가도 아쉬울 게 없는 이대형에 대한 보상선수인지라 어차피 누구든지 일단 받기만 하면 이득이라는 분위기였지만 정작 신승현으로 결정된 이후에는 뭔가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앞서 뽑은 루키들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자원들이지만 신승현은 과거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건 이젠 무리다 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기대치 자체가 높아질 수가 없었기 때문. 차라리 앞서처럼 신인이나 뽑지 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 이 보상선수 4인방 가운데 임정우와 윤지웅은 2014년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이미 LG 마운드 구상에서 제외할 수 없는 자원이 되었다. 또한 2015년에는 LG가 전년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을 쑤는 가운데 전혀 기대도 안했던 신승현은 뜬금없이 나타나서 7월 기준으로 1점대 방어율을 유지하며 음주운전으로 자숙에 들어간 정찬헌과 폼이 박살나서 2군에 틀어박힌 유원상, 신재웅의 공백을 제법 훌륭하게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타선의 노쇠화, 부상, 시즌전 기대했던 최승준 등이 삽질을 하는 가운데 기회를 얻은 나성용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상선수로 뽑은 4인 모두가 1군 엔트리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보상선수 선구안을 보여줬기에 KIA 팬들은 송은범의 보상선수로 선택한 임기영[27]에 대해서 기대를 해보는 상황. 전년도까지 성적은 그렇게 훌륭하진 않지만 어쨌건 젊은 선수들 재능을 꿰뚫어보는 일엔 일가견이 있는 김응용 전 감독이 눈여겨보던 자원이었으며 상무 입대 후 2군 리그에서 썩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과연 보상선수 불패신화를 계속 이어갈 가능성도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 임기영은 군에서 복귀한 2017년 시즌 놀라운 호투를 거듭하며 보상선수 불패 정도가 아니라 보상선수 대박 신화를 보여주었다.

  • 자타 공인 고졸 출신 선수 성애자이다. 2016 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고졸로 도배하다시피 선발을 해서 전임 선동열 감독의 미래가 없는 미칠 듯한 대졸 사랑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며 팬들이 환호중이다. 또한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는 김기태 감독의 평소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는 평. 앞으로도 김기태 감독의 이런 신인 선발은 꾸준할 것으로 보인다.

  • 롯데 자이언츠가 2016 시즌을 이끌 새 감독으로 조원우를 선임함으로써 길게 이어져왔던 막내감독 딱지를 드디어 뗐다.

  • 슬하에 아들 2명이 있는데, 이들 중 장남 김건형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야구를 하고 있다. 미국 아이다호 주에 있는 보이시 주립대학교 졸업 예정으로, 워싱턴의 아마추어 야구팀 카울리츠 블랙 베어스에서 외야수로 선수 생활을 했으며, 2021년 신인 2차 지명을 앞두고 개최되는 해외선수 트라이아웃에 신청했다고 하며 kt wiz에 입단하였다.

  • 표창원 전 국회의원과 닮은 꼴인데 정작 표창원은 삼성 라이온즈 팬이다. 애초에 표창원 전 의원은 포항 출신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 롯데 자이언츠 마무리였던 강상수와도 묘하게 닮았다. 이에 대한 에피소드도 존재하는데 선수 시절 마산 원정을[28] 갔다가 마산 시내에서 택시를 한번 탄 적이 있는데 택시 기사가 김기태를 강상수로 착각하고 "아이고 강상수 선수 아닙니까" 하면서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기태는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고 "강상수 선수 아닙니다" 라고 했는데 택시 기사가 끝까지 믿지 않자 전라도 사투리로 "제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데 어떻게 강상수 선수입니까" 라며 항변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시 기사는 "일부러 전라도 사투리로 쓰는거 압니다" 라며 김기태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목적지에 도착한 김기태가 택시비를 내려고 하자 끝까지 김기태를 강상수로 착각한 택시 기사는 자신이 롯데 팬이라 택시비를 받지 않겠다며 그냥 가라고 보냈고, 덕분에 택시를 꽁짜로 탔다고 한다.# 이후 김기태가 LG와 KIA에서 감독을 맡으면서 강상수를 투수코치로 기용하자 이 에피소드가 재조명되었다.

  • 그 외에도 최형우와도 닮았다는 의견도 있다.

  • 전지훈련 사진인데, 배트를 이용해 만든 쌍절곤이 눈길을 끌었다.[29]

파일:눕동님빠따.jpg

파일:감독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jpg

  • 유독 투수를 타석에 세우는 기행을 자주 보여주는 편이다. LG 시절에도 투수로서 1군 데뷔도 하지 않은 신인 투수 신동훈정우람을 상대하라고 대타로 기용한 적이 있었고, 외국인 투수들도 지명타자 소멸 등을 이유로 타석에 내보낸 사례가 있다. 조쉬 스틴슨, 헥터 노에시 등이 그 예. 그러다 경기 포기 논란에 휩싸여 징계를 받기도 하였다. 2019년 3월 26일 한화 경기에서도 6점차로 벌어진 9회말 2사에서 정우람을 올리자 투수 문경찬을 대타로 기용했다.

  • 역대 타이거즈 감독 중 유일한 좌투좌타이다. 김동엽, 김응용, 김성한, 유남호, 서정환, 조범현, 선동열은 전부 우투우타였지만, 김기태만 좌투좌타다.[30] 하지만 김기태 역시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오른손잡이인 탓에 아직 기아에 완벽한 왼손잡이 감독은 없다.

  • 양준혁과는 선수협 문제로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관계가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김기태가 감독이던 시절 해설위원 자격으로 그라운드에 방문한 양준혁과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여러차례 포착되었으며,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한 양준혁이 김기태를 "기태 형"이라 불렀다. 역시 불편한 관계인 선동렬은 방송 내내 선배라고 호칭한 것과 비교되는 부분.


  • 일본에서 펜싱을 활용한 특이한 방법으로 타자 코칭을 했다. 선수 인터뷰에 따르면 효과가 있는 모양. 그 외 요미우리 공식 인스타와 유튜브에서 김기태의 코칭하는 모습이 자주 올라온다고 한다.#

  • 이종범이 해외에 진출할 때 본인도 해외진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크게 관심이 없었고 쌍방울 팀 사정도 힘든데 장종훈보다 100만원을 더 올려 최고 타자연봉으로 만들어 자존심을 세워준 팀에 배신이라는 악평이 생기자 조용히 일본진출을 포기했다.

  • 2015년도 대구 삼성전을 앞두고 타격 연습중이던 삼성 2루수 야마이코 나바로에게 배팅볼을 던져준 적 있다.


7. 관련 문서[편집]


[조기입학] [1] 1969년 7월생이지만 학교를 조기입학하여 1968년생-87학번들과 동기다. 그러다 보니 생년월일이 무려 1년 넘게 차이나는 염경엽과 친구로 지내고, 양준혁보다 불과 3일 먼저 태어났지만 양준혁은 김기태를 형이라 부른다.[2] #[3] 전체 커리어에서는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기가 많다. 레전드 올스타에서도 지명타자로 선정되었다.[4] 95~98시즌까지 주전 1루수로 출전했고, 이후에도 종종 나왔다. 통산 600경기 가까이 나왔으며 수비력도 나쁘지 않았다.[5] 삼성 시절인 99~01시즌 한정. 당시 이승엽과 1루 포지션이 겹쳤다. 당시 삼성 용병이던 찰스 스미스와도 포지션이 겹쳐 스미스와 함께 지명타자와 좌익수를 돌아가며 뛴 경험이 있다. 다만 이적 첫 해인 99시즌만 많이 나왔고 그 이후론 대부분 지명타자로 나왔다.[6] 역시 삼성 시절인 99시즌 한정. 99시즌 중반에 보면 우익수로 뛴 경기도 몇 경기 있다.[7] ~7월 30일[8] 7월 31일~[9] ~4월 24일[10] ~5월 16일[11] LG 트윈스 시절 암흑기 탈출과 KIA 타이거즈 시절 우승을 이루어내는 등 성과는 확실하지만, 그 이외 시즌들이 상당히 부진했고 감독 본인의 운영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압도적으로 좋았다고 볼 수 없으며 운에 의한 성과가 아니었냐는 논란이 존재한다. 전 삼성 감독 허삼영과 유사한데, 특히 LG 시절 김기태는 허삼영의 삼성 커리어와 매우 유사한 흐름을 탔다.[12] 실제 참가자 외에도 퇴진시위를 위한 자금조성에 기여하는 등 간접적으로 퇴진시위에 참가한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KIA 타이거즈 갤러리 뿐만 아니라 MLB파크, 호사방, 심지어는 V12 등 사실상 다양하게 구성되어있었다.[13] 즉, 김밥을 전달한 것은 사실이나 김밥을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김밥인지 어떻게 알겠냐는 것. 당연히 김밥은 안받았고 회수되었다.[14] 첨언하여, 호마당날에 열린 퇴진시위가 실패작처럼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분노한 군중들이 순식간에 결집하고 자금을 모으는 데까지는 성공하였으나, 성공한 것은 거기까지였고, 시위를 진행하기 위하여 준비할 시간이나 조직, 인물 등이 규모에 비하여 너무나도 부족했었던지라 호마당에 열리는 퇴진시위가 즉각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시위는 퇴진 여론조성에는 성공했으나, 일처리가 굉장히 미숙했었던지라 진행상황을 기다리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분탕들의 먹이가 되어 신나게 물어뜯기게 되었다. 이후 몇차례 시위를 더 진행하였으나 자금을 다 쓰진 않았고, 김기태 퇴진 이후 잔여 자금은 결국 기부는 했는데 모종의 사정이 있었는지 기부가 굉장히 늦어진데다가 퇴진시위 카페의 변경 후 이름으로 기부되었던지라 그 사실조차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15] 김기태는 1994년에 홈런왕, 1997년에 타격왕을 차지했다. 나머지 다섯 명은 이만수(1984년 트리플 크라운), 이대호(2006, 2010년 트리플 크라운), 김태균(2008년 홈런왕, 2012년 타격왕), 최형우(2011년 홈런왕, 2016, 2020년 타격왕), 에릭 테임즈(2015년 타격왕, 2016년 홈런왕)이다.[16] 염경엽 문서에도 있지만 그 염경엽과 김기태의 후배가 바로 이종범이다. 포지션은 염경엽과 이종범 모두 유격수로 동일.[17] 당시 염경엽은 실력은 없는데 정치력을 발휘해 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설이 돌아서 LG에 남아 있기가 힘들었다.[18]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염경엽도 대단한 게 기사 내용대로, 술 안 먹고도 잘 놀려면 애주가의 몇 배 노력이 필요하기에 더욱 놀라움 그 자체.[19] 둘 다 삼성에서의 생활이 길지 않았다. 조계현은 해태에서 현금 트레이드된 후 삼성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1999년 시즌 후 방출됐고 김기태 역시 쌍방울에서 트레이드된 후 양준혁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메우기는 했으나 수비 포지션 문제가 터지면서 2001년 시즌 후 SK로 트레이드된다.[20] 위에 서술된 것처럼 원래 염경엽에게 제안했던 자리였지만 염경엽이 거절하면서 공석이 되자 조계현이 낙점된 것이다.[21] 즉, 염경엽은 원래 1967년생과 동기다.[22] 참고로 절친인 염경엽도 광주 출신이지만, 태평양 돌핀스의 지명을 받아 타이거즈에서 뛴 전력이 없다.[23] 통산 비율로 따지면 40% 정도 출전.[24] KBO 리그 한정으로 하면 백인천 역시 지명타자로 분류할 수 있지만 NPB 시절을 포함한 전체 커리어로 보면 주로 외야수로 뛰었다.[25] 결혼식은 1995년 12월인데, 1996년 7월에 첫째를 봤다. 그 아들이 바로 김건형.[26] 넥센 입장에선 군입대를 통해 픽을 막으려고 한 것이고 실제로 김민성 정도로 추측되는 1군급 선수를 떡밥으로 풀어 그 쪽으로 픽을 유도하려 했으나 LG의 선택은 윤지웅이었다. 이후로 보상선수 픽에 있어서 한승택 등 군 입대가 확정된 선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기 시작한다.[27] 윤지웅과 마찬가지로 군입대가 확정된 이후에 보상선수로 결정됐다.[28] 김기태가 선수 생활을 하던 시절까지만 해도 마산은 롯데의 제2연고지였다.[29]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배트의 중간 부분이 쇠사슬로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30] 김기태의 후임감독인 맷 윌리엄스김종국(야구)역시 우투우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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