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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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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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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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wins_champion_v2.pn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4
2007
2008
2010


파일: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18 자카르타 • 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코치)
2018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코치)
2019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한국시리즈
2007 한국시리즈 MVP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1998 준플레이오프 MVP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5 KBO 리그 출루율왕


김재현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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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7번}}}
김재박
(1982~1991)

김재현
(1994~2004)


김상현
(2007~2008)
{{{#fff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7번}}}
신주일
(2004)

김재현
(2005~2010)


박진만
(2011~2015)
{{{#fff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85번}}}
장종훈
(2013~2014)

김재현
(2015~2016)


최계훈
(2017~2019)



LG 트윈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김재현
金宰炫 | Kim Jaehyun[1]

출생
1975년[2] 10월 2일 (48세)
서울특별시 성동구[3]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성동초 - 신일중 - 신일고 - (경희사이버대)
신체
177cm, 79kg
포지션
지명타자[4], 좌익수[5], 1루수[6]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4~2004)
SK 와이번스 (2005~2010)
지도자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2015~2016)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17~2021)
프런트
LG 트윈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2023~)
해설위원
SBS ESPN 야구 해설위원 (2013~2014)
SPOTV 야구 해설위원 (2017~2022)
경력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20~2021)
응원가
LG 시절 : 동요《모두 다 뛰놀자[7][8]
SK 시절 : 뚜띠 - 짝짝짝[9]
가족
배우자 김진희
슬하 1녀 (2007년생, 17세)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4. 해설자 경력
4.1. 1기 SBS ESPN
4.2. 2기 SPOTV
5. 지도자 경력
5.1.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5.3. LG 트윈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6. 이야깃거리
6.1. 고관절 수술과 지명타자 전향
6.2.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소속의 좌익수, 지명타자. 등번호는 7번이었다. 가장 잘 알려진 별명은 캐넌 히터.

데뷔 시즌 부터 활약하며 고졸 신인으로서 20-20 클럽에 가입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팀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후에도 뛰어난 타격을 보이며 리그를 대표하는 좌타자로 성장하였으나 고관절 문제로 수비와 주루툴을 잃어버리고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위기를 겪는다. 그럼에도 타격 능력을 유지하며, 본인의 가치를 꾸준히 보여주었다. LG 트윈스의 레전드이자 SK 와이번스의 왕조에 큰 기여를 한 스타 플레이어로 양팀의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았던 선수였다.

2. 선수 경력[편집]


김재현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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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편집]



선수 시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트 스피드와 호쾌한 타격 폼[10] 덕분에 힘이 잔뜩 실린 타구를 많이 만들었고, 그 타구가 마치 캐넌같았다하여 캐넌 히터란 별명을 갖고있다. 타구 궤적이 큰 포물선을 그리지 않고, 낮고 강하게 관중석을 향해 날아가는 라인 드라이브성 홈런, 일명 '캐넌포' 또한 그의 트레이드마크.[11]

사실 김재현의 최대 장점은 바로 엄청난 선구안으로, 통산 타출갭이 0.108에 달하며 사륜안이란 별명도 있다.[12][13] 은퇴한 시점에서 통산 사사구 역대 3위.

하지만 수비는 타격과는 정 반대로 영 좋지 않았다. 흔히들 고관절 부상 이후로 수비가 급락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원래부터 돌글러브로 유명했다. 잠실 좌익수 쪽 외야석에서 김재현의 수비를 직관한 모 관중은 눈이 썩는 수비였다고 평하기도. 뜬공 처리가 심하게 약했지만 그나마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활용해 수비를 해왔으며 외야 뎁스가 강하고 본인도 고관절 부상으로 수비를 뛰기 어려워진 LG 후반부터 수비는 대수비 수준으로나 간간히 나왔고 SK 이적 이후로는 풀타임 지명타자가 되어 사실상 수비를 전혀 뛰지 않았다. 이 수비력 때문에 주전 경쟁에서 간간히 손해를 보기도 했다.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후로 플래툰으로 기용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

4. 해설자 경력[편집]



4.1. 1기 SBS ESPN[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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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시즌부터 SBS ESPN에서 해설가로 일하게 되었다. 초보 해설자이면서도 꽤나 달변가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일단은 호평. 그리고 5월 17일 롯데 자이언츠SK 와이번스의 경기가 SBS 중계로 잡히면서 처음으로 지상파 해설을 맡게 된다.

평가가 상당히 엇갈리는 해설 중 하나인데, 일단 목소리 톤은 상당히 좋다는 평. 해설가 데뷔 첫해임에도 긍정적인 평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경기 중에 화장실에서 선수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 썰을 자주 푼다. 그리고 출신은 속일 수 없는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실책 또는 아쉬운 플레이가 나왔을 경우 해설 중에 한숨을 쉬는 모습이 포착되며 SK 와이번스에도 우호적인 해설을 많이 하는 편이라 LG 트윈스SK 와이번스의 상대가 된 팀의 팬들은 꺼리는 반응을 보이고, 특히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김재현 해설을 굉장히 싫어한다. 차라리 양준혁이 낫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또한 어법에 안 맞는 말을 자주 구사하여 답답하다는 평도 많다.

스포티비로 이적한 후에는 표현력도 개선되고 편파중계 문제도 나아졌다는 평과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점이 남아있다라는 평이 갈린다. 그렇지만, 경험이 쌓여가면서 초창기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2. 2기 SPOTV[편집]


아앜. 넘어갔어요.[14]


2017 시즌부터 SPOTV에서 다시 KBO 리그 해설을 하고 있다. 해설은 전체적으로 SBS Sports 시절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평. 게다가 해설할 때의 톤과 목소리가 여전히 좋아서 평가가 확실히 좋아졌다. 사투리가 문제가 되는 해설자들과 달리 언어 구사력 및 어휘 선택 등의 문제이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2022년 7월 5일, 두산 베어스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두산의 내야수 강승호가 9회초 2아웃 만루 상황에서 게임을 터트리는 송구 실책을 저질러 역전이 되자 귀신이라도 본 듯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현직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답게 세세한 타격 분석 위주로 해설한다. 본인이 몸 담았던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특히 코치로 2년을 보냈던 한화 이글스 경기 중계를 하게 되면 추억팔이도 상당히 많이 하는 편. 특히 코치 시절 지도했던 선수들에게는 애정 어린 쓴소리도 자주 한다. "우리가 알던 하주석 선수가 저랬나요? 드립도 자주 구사한다. 아재요

그러나 아직도 답답하고 문장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운 해설을 하여 약간씩 까이는 중이다.[15] 타격에서 가장 강조하는 내용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칠 구종을 미리 생각하고 들어가라는 것. 특히 신인급의 타자들에게 강조하는 방법이다.[16]


5. 지도자 경력[편집]



5.1.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편집]



파일:Ng3hCt2.jpg

2014년 11월 11일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부임했다. 코치로서 첫 발을 뗀 것이니만큼 팀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김성근 감독 밑에서 선수 생활을 한만큼 감독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현역 시절 깔끔한 타격폼과 빠른 뱃 스피드 위주의 타격 스타일을 보였으며, 은퇴 기념으로 구단이 보내주는 몇 개월짜리 해외 나들이가 아닌 자기 돈을 들여가면서 장기 연수를 받을 정도로 열성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코치로서 한화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더 이상 김재현의 해설을 안 들어도 된다는 것에 기뻐하였고(...)[17] LG 트윈스 팬들은 이상훈에 이어 왜 또 레전드 출신 코치를 타팀에 빼앗기냐고 프런트에 불만을 늘어놓았다.

흥미로운 점은 두산 2군 투수코치가 된 야생마와 한화 코치로 온 캐넌 사이의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LG의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모두 6668587667 초반에 LG에서 SK로 이적하여 은퇴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같은 시기에 원 소속 팀이 아닌, 완전 다른 팀의 코치로 프로 현장에 복귀했다는 것도 일치한다. 차이점은 이상훈은 잠실 라이벌 팀 2군에서 코치 역량을 검증받은 후 친정으로 복귀했다는 것.

2016년 시즌 후 사임했다.기사 일본인 코치 3명도 김성근 감독의 야구관에 비판을 표하며 스스로 물러난 것으로 보아, 김재현도 비슷한 이유로 결별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임 후 삼성 라이온즈가 그에게 김한수 타격코치의 감독 승격에 따라 공석이 된 1군 타격코치직을 제의했으나,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어서 영입이 힘들다는 기사가 떴다.


5.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편집]



파일:1572333289954221.jpg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을 앞두고 선동열 감독을 보좌할 대한민국 야구국가대표팀의 타격코치로 선임됐다. 선동열호 시절에는 처음으로 참가했던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서는 대한민국이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받으면서 좋은 성적을 이끌었다. 이후 선동열 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김경문 감독이 새로 부임했으나 그동안의 활약을 인정받아 김경문호에서도 계속 유임됐다.

김경문호 첫 대회였던 2019 WBSC 프리미어 12에서는 대한민국이 결론적으로는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2020 도쿄 올림픽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슈퍼라운드 최종전과 메달 결정전에서 일본한테 연달아 2연패를 하는 등 아쉬움도 남겼다.


5.3. LG 트윈스 전력강화 코디네이터[편집]



2023년 1월 29일, LG의 전력강화 코디네이터에 임명되면서, 2004년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 된 이후 19년 만에 LG로 돌아오게 되었다. 원래는 염경엽 해설위원이 이 자리에 내정되어 있었으나 2022년 플레이오프에서 LG의 무기력한 탈락 및 피업셋으로 구본능 LG 구단주대행의 극대노를 유발하여 류지현 감독이 재계약 불가로 당초 LG의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로 합류할 예정이있던 염경엽이 후임 감독으로 낙점되면서 추후 김재현이 이 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류지현 감독이 재계약 불가 선언을 받고 퇴단한 타이밍에 코디네이터로 선임되면서 류지현과의 불화설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김재현이 이미 해설위원 시절에 본인 입으로 해명을 했기 때문에 류지현과의 불화는 이제 낭설일 확률이 높다.

2023년 시즌 후 차명석 단장이 퇴임하면 후임으로 김재현이 취임한다는 썰도 있다.

10월 2일 수원에서 펼쳐진 LG vs kt 경기를 차명석 단장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며 오랜만에 현장에 방문하였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차기 단장 면접을 봤다는 썰이 나왔는데, 이후 삼성은 이종열 SBS 스포츠 해설위원을 단장으로 임명하면서 없었던 일이 되었다.

6. 이야깃거리[편집]



6.1. 고관절 수술과 지명타자 전향[편집]


고관절 부상[18]으로 선수 생명이 끝났다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한 케이스. 일반인이 아닌 운동선수인지라 무리하다 재수술을 할 수도 있었다카더라. 그러나 원래 포지션인 외야수 수비는 거의 보기 힘들게 되었고, 이후 지명타자로 주로 출장했다. 부상 복귀 이후에도 수비에 많이 나섰다면 은퇴가 더 일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데뷔시즌 20-20을 기록했을 정도의 준족이었지만, 고관절 부상 이후 도루 능력을 거의 상실한 것도 아쉬운 점. 헌데 알려진 이미지는 다르게 김재현이 17시즌 동안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시즌은 4시즌에 불과하며 지명타자 전환 이후 은퇴시즌까지 통산 성적을 보면 알겠지만 도루숫자가 매년 5개 ~ 8개 정도를 꾸준히 기록한걸 보면 그럭저럭 준수한 발은 유지한듯 하다.

사실 고관절 부상 이전 외야수를 보던 시절에도 우수한 타격과는 별개로 외야 수비 능력은 가장 수비가 쉽다는 좌익수 포지션에서도 그닥 좋지 못한 편이었다.[19] 부상 이후 지명타자로 고정한 것은 본인 커리어를 위해서도 잘 한 일이다. 1990년대에 LG 트윈스에서 좌익수로 뛰었을 당시에 상당한 미남으로 팬들에게 인기가 많아 잠실 3루 외야쪽 좌익수 자리가 홈팀 자리보다도 먼저 찼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거기에 모여있던 팬들도 수비력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2005년 SK 와이번스 입단 후 2010년 은퇴까지 6시즌을 치르면서 소화한 수비이닝은 고작 24이닝으로, 그마저도 대부분 교체로 인한 대수비 출장이었다. 2005년과 2006년은 수비 출장 기록은 없고, 2007년 중견수로 1경기 2이닝, 2008년 우익수로 2경기 11이닝, 2009년 1루수와 좌익수로 각각 4경기 7이닝과 2경기 2이닝, 2010년 1루수와 좌익수로 각각 1경기 1이닝씩 나섰다. 그래도 수비 연습은 꾸준히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2009시즌 1루 대수비로 나와 그것도 플라이를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 후 수비 연습도 안 끼워준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2010시즌에도 한번 좌익수로 나온 적이 있었다. 당시 유격수를 보던 김연훈이 좌익수 수비 위치까지 달려가 플라이를 잡아냈는데 그때 김재현의 표정이 오묘(...)했다.

고관절 괴사의 원인[20] 중에 약물이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장타력 상승을 위한 스테로이드계 약물 복용이 의심되는 선수 중 하나로 지목되곤 한다. 하지만 김재현의 홈런 커리어 하이는 21개를 친 94년[21] 데뷔 해와 99년[22]으로 발병 시점에 비해 상당히 과거의 일이다. 발병 직전 시즌에는 오히려 홈런을 8개 밖에 못 쳤을 만큼 장타력이 떨어져 있었으므로 약물 복용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약물 복용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급격한 체중 증가 또한 현역을 넘어 은퇴한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김재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SK 와이번스 구단부터가 아시아 시리즈에 두 번 참여하면서 도핑테스트도 받았기 때문에 KBO 팀 중에선 약물에서 그나마 깨끗한 팀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김재현 약물설은 호사가들의 의혹일 뿐 확실히 알려진 바 없는 음모론 수준에 가깝다. 그래도 LG에 있을때는 두 자릿 수 홈런을 곧 잘 치고 3할 타율도 쓰고 그랬다. 단지 구장이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 야구장이라 손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하게 비슷한 케이스로 성적을 좀 까먹어도 어마어마하게 기록을 쓴 동갑내기 라이벌 심정수[23] 김동주도 비슷했다.[24]

오히려 이 고관절 부상에 가장 유력한 요인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소싯적 문란한 사생활(…)이다. 후술하겠지만 LG 시절 음주운전으로 2차례 적발된 바 있고, 1990년대 후반 LG에서 심재학, 최향남[25] 과 더불어서 가장 잘 노는 선수였던 만큼 , 나이트 등 목격담도 수두룩하며, 고관절 악화가 과다한 음주 등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약물보다 오히려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일례로 당시 한 집에서 같이 살던 장인어른[26]이 참다못해 김재현의 차 키를 압수했다는 유명한 카더라가 있고, 가끔 구리 시내에서 LG 2군 경기장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타면, 나이 지긋하신 기사분 중에 젊을 때 김재현이 워커힐에서 술이 쩔어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데려다줬다는 증언도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김성근 감독과 그 당시 LG로 트레이드됐었던 양준혁을 만나 많은 걸 배웠고[27], 그 이후로 베테랑급이 된 뒤에는 팀의 정신적 리더로 발돋움하였다[28].

그리고 김재현의 고관절 부상지명타자 전업은 앞에서도 말했듯 이병규에게 밀리는 계기를 제공[29]했으며, SK에서도 플래툰 시스템으로 묶이면서 누적 스탯을 상당히 손해봐야 했다.


6.2. 기타[편집]


  • 잘 알려지지 않은 흑역사로, 재활 중이던 2003년에 음주측정 거부로 입건된 적이 있다.[30] 문제는, 그 전에(1995년) 이미 음주운전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추돌 사고를 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사람을 치지 않아서 망정이지 한 번 그런 사고를 내고 또 다시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쉴드의 여지가 없는 악질 범죄다. 1995년 음주운전 당시에는 사고가 난 5일 뒤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올스타전에 출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같이 올스타전에 출장하기로 예정된 홍현우는 폭행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났지만, 한화 이글스정경훈[31]으로 대체되었었다. 2010년대 중후반인 현재야 시민 의식이 개선되어 오히려 단순 폭행보다도 음주운전이 더 질이 나쁜 범죄로 취급되지만, 90년대2000년대 초반 정도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비했기에 벌어진 촌극. 2005년 김상혁의 그 유명한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발언, 잇따른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인식 개선 노력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오늘날처럼 음주운전이 중범죄라는 인식이 잡히게 되었다. 요즘 저랬으면 임의탈퇴까지도 가능한 중범죄이고 2017년에는 앞으로 KBO에서 음주운전자들에 대해 선수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의사까지 표시할 정도로 처벌이 강력해졌으니 시대를 잘 타고난 어찌 보면 본인의 표현대로 운이 좋은 선수.

  • SK 선수였던 이진영LG로 옮긴 후 SK와의 홈 경기 때 SK 선수들에게 찾아와 "LG 선수들은 팬서비스를 위해 항상 펜을 들고 다녀. 사인해 줘야 하거든."이라고 말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김재현이 "야, 팬들에게 싸인이 아니라 승리를 줘라."는 말을 하여 이진영을 한 큐에 데꿀멍시킨 적이 있다. 이는 OBS 불타는 그라운드에 방송된 장면.[32]
짤이 처음 나온 2000년대 후반에는 성적은 제대로 못 내면서 연예인 행세만 하고 다니는 선수들에 대한 일침으로 주목받았지만, 팬 서비스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이진영의 발언 또한 팬을 대하는 선수들의 기본 자세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세월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 그리고 김재현이 당시 저렇게 말하긴 했지만, 왕년의 잠실 아이돌답게 팬 서비스에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던 선수였다. 후배 이진영 역시 사인해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말만큼이나 팬서비스는 좋은 편이었다.

파일:ki77X1X.jpg

  • 쓴소리의 대가. 워낙 쓴소리를 잘 해서, 앞서 말한 이진영을 단번에 데꿀멍시킨 승리 발언은 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똑 부러진 성격 때문에 친정인 LG 프런트에 제대로 찍혔을지도.

  • 목소리가 대단히 좋은 편이다. 해설자로서 첫 시즌을 보냈을 때 호평받는 이유 역시 거북하지 않게 나오는 목소리 덕분일 것이다.

  • SBS 해설자 시절 정말 말도 안 되는 비문 표현이 많아서 당당히 최악의 해설자로 꼽혔다. 특히 김정준과 더블해설이라도 하는 날에는 늘 포털사이트 중계창 댓글에는 둘의 해설을 욕하는 댓글이 폭발했었다.(...) 반대 예로는 양준혁 위원 & 이동근 아나운서가 있는데 양 위원[33]은 그렇다 치는데... 이 위원은 왜인지는 의문. 당시에도 가끔은 정우영 아나운서 톤이 비슷하다고 해서 까이는 것도 그럴 듯하다.

  • 조인성신일중, 신일고 동문이며 둘이서 신일고 야구부의 26연승을 이끌었다. 여담으로 조인성은 중학교 때부터 앉아쏴를 시전했다고 증언했다. 사실 '앉아쏴'는 당시 신일중 감독이었던 양승호의 작품인데, 당시 조인성이 비만이라 제대로 일어나지를 못해서 앉아쏴를 가르쳤다고 한다(...).[34] 그리고 함께 LG의 한국시리즈 경험을 한 적 있다. 이듬해는 6668587667가 시작되는 것도 같이 하였다.

  • 워낙 LG와 SK 양 팀에서 쌓은 스탯이 출중한지라 마구마구 게임에서 어느 쪽의 레전드로 나오는지가 논란거리였는데 결국은 LG 레전드로 나왔다. 아무래도 출장연차나 누적 스탯에서 LG 시절이 앞섰기 때문이었던 듯. 더구나 홈런 커리어 하이가 94년과 99년의 21홈런이고, 통산 타율이 3할에 육박하며 장타율이 4할 6푼인 전형적인 교타자를 카드 팔아먹기 위해서 파워형으로 내놓았다. 덕분에 LG올, M-L올, LG 세트덱 유저들에게 거의 필수 카드가 돼버려서 김재현 레전드카드는 한때 300만 거니가 넘는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 뭐 살 사람은 다 산 지금은 싸다. 이후 본래 가장 출전이 많았던 좌익수로의 듀얼 포지션도 추가.
2014년 듀얼 레전드 추가로 SK 레전드 카드도 추가 되었다. 능력과 포지션 모두 기존의 레전드와 동일.[35]
최고등급 카드인 블랙도 LG/SK 전부 나왔다.[36] 게다가 포지션도 레전드와 똑같이 우익수에 좌익수 듀포까지. LG 카드는 현역시절과 유니폼은 맞는데. SK 카드는 초기 입단 했던 푸른색 유니폼이지만, 이미지 컷 타격자세는 붉은색 유니폼 그림...

  • 박동희 기자와 인터뷰가 올라왔다. 여기서 그는 2007 시즌이 끝나고 자신을 트레이드해 줄 것을 김성근 감독에게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동안 사람들이 막연히 김성근 감독 부임 초기에 김성근 감독과 약간의 마찰이 있는 정도로만 알려졌지만, 김재현의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과 매우 심각할 정도의 수준의 불화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물론 김재현이 마음을 다잡고 야구에 전념하여 2007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탔지만.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서 2009년 최정을 패전투수로 만든 625 대첩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후반기 막판에 연승 신기록을 세우고도 정규시즌 1위를 못한 것을 지적했다. 그 경기가 1년 농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경기임을 역설하면서 김성근 감독의 실책임을 시사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다만 이 인터뷰만으로 '김재현과 김성근이 실제로는 견원지간이었다!'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고, '그 다음 해 삼성과 한국 시리즈를 보고 그런 야구를 하고 싶어 지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한 점, 저렇게 심각한 불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존경하는 지도자중 한 명으로 뽑은 점을 통해 실제로는 애증관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 2015년 김재현이 한화 이글스 1군 코치를 맡아 다시 한 번 김성근 밑에서 야구를 하게 된 점 때문에 적어도 증오하는 사이는 아니라는 것이 확실히 입증된 상황.[37]

  • 컴투스 프로야구 2012의 02년 레전드 카드로 올라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사진이 SK때 사진이다.

  • '나는 야구감독이다'에서는 05김재현이 SK덱 코레기(...)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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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구 팬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대로 유지현과 김재현은 선수시절부터 서로 성향이 정반대라 너무 맞아서 사이가 안 좋았고, 은퇴 뒤에도 김기태가 LG 감독으로 있을 때 김재현이 해설위원 자격으로 구장을 찾아왔다가 유지현이 대놓고 언짢은 표정을 지어서 김기태 감독까지 무안하게 만들기도 했다.[41] 김재현이 LG 코치를 하려면 유지현이 LG를 떠나야 한다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2017년 APBC 대표팀에 코치로 함께했을 때 서로 "지현씨", "재현씨" 하고 호칭한 걸 보면 여전히 서먹하다는 걸 알 수 있다.[42][43]2019년 1월 9일 94년 우승멤버들 모임에 전원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유지현과 자리를 함께했다. 기사참조 최근 들어서는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것도 그렇고 유지현 코치와의 소통도 많이 늘어난 모습들이 계속 보이고 있어서 '김재현과 유지현은 견원지간'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이 줄어들었다. 2020년 현재에도 김재현 위원이 해설하는 도중 유지현 코치에 대한 칭찬을 종종 한다.
    • 2021년 9월 30일 LG와 두산의 경기에서 이 불화설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류지현 감독과 사이가 나쁜 줄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선수 때는 핑클 노래에 맞춰 같이 춤을 췄을 정도로 류 감독과는 잘 지냈다고 밝혔다.[38] 팬들의 의견으로는 보통 둘의 관계가 정말 멀어진 것은 2000년 선수협 사태 때의 일로 보는 편. 당시 김재현은 선수협 찬성 측이었고 유지현은 선수협 자체는 찬성하지만 노조 전환, 구단 비인정 상황은 반대하는 쪽이었는데, 양준혁, 강병규 등의 강경파와 충돌하며 유지현이 선수협 반대파로 돌아섰다. 이 과정에서 선수협 창립 총회 당시 선수협에 찬성하는 김재현을 제외한 LG 선수 전원을 유지현이 총회에서 끌고 나오면서 둘의 관계가 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 2023년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로 LG에 복귀하면서 인터뷰를 통해 '4번 정도 LG에서 코치 제의가 있었는데, 그때는 스스로 준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수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들이 볼땐 류지현이 팀을 떠나자마자 영입되었기 때문에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39] 그러나 류지현과의 관계 문제가 아닌 실제로 준비가 부족했을 가능성이 높다.[40]


  • 선수시절 잘생긴 외모로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았고 류지현, 서용빈과 함께 신인 3인방으로 활약하였다.선수 은퇴한 지금도 외모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 엘린이 출신이다. 2023년 LG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로 영입되고 엘튜브 영상에서 어릴때부터 좋아하던 팀에 복귀하게 되었다고 했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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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BSC 등록명.[2] 호적상으로는 1975년생이고 실제로는 1974년생이라고 한다. 기사 참조.[3]광진구. 그러나 성동구는 아직 존재하고, 1995년 이전까지 성동구 소속이던 화양동, 중곡동, 광장동, 구의동, 자양동, 군자동, 능동 등(동일로 동쪽 지역)이 광진구로 분리되었다.[4] 고관절 문제가 생긴 2002년 이전까진 8년의 기간 동안 지명타자로 출전한 경기가 30경기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솔리드한 포지션 플레이어였으나, 2002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지명타자로 고정되며, 결국 선수 생활 중 지명타자 출전 비중이 절반을 근소하게 넘기며 가장 많이 출전한 포지션이 되었다.[5] 마구마구의 영향으로 주로 우익수를 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2002년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가 발병하기 전까지 좌익수 출전 비중이 압도적이었으며, 실제로 우익수를 본 적은 거의 없다. 참고로 고교 시절엔 중견수였으나 입단 전부터 인정 받아온 타격에 비해, 수비는 타구 판단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프로에서 주전 중견수를 맞기엔 부족하여 좌익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여담으로 1990년대 LG 트윈스의 홈경기가 열린 잠실에는 유독 3루쪽 외야가 먼저 자리가 차곤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좌익수 수비를 나섰던 김재현 때문이었다.[6] SK 와이번스 이적 후 2008년 1경기, 2009년 4경기, 2010년 1경기에 출장하며 총 6경기 출전하였고, LG 트윈스 시절엔 1루수로 단 한경기도 출전한 적이 없다.[7] 날려라 날려라 김재현↘~ 날려라 날려라 김재현↗~ 날려라 날려라 김재현↘~ 날려라 날려라 김재현~[8] 이후 이 응원가는 김상현에게 넘어간다.[9] 따단딴단 따~라라라 김재현! 따단딴단 따~라라라 김재현! 날려버려 안타! 날려버려 홈런! 캐넌히터 김!재!현! 짠짠짠짠 짠짠짠짠 짠짠짠짠 홈!런! 짠짠짠짠 짠짠짠짠 짠짠짠짠 홈!런![10] 코나미컵에서 일본 해설자는 김재현의 타격 폼을 보면서 '가장 완벽하다'라고 극찬했을 정도.[11] 현역/은퇴 선수 중 장효조와 가장 유사한 타격폼을 갖고 있는데, 사실 수많은 타자들이 벤치마킹한 모델이지만 감히 따라하기조차 쉽지 않다. 빠른 배트 스피드와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많이 나오는 특징 또한 유사하다. 단 방망이를 굳이 짧게 잡지 않는 것은 차이인데, 컨택능력은 장효조 쪽이, 장타력은 김재현쪽이 낫다고 봐야하겠다.[12] 1999시즌까진 타율 3할과 출루율 4할을 찍은 시즌이 없었고 매시즌 삼진이 볼넷보다 많았으나 양준혁이 LG에 들어온 2000시즌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볼삼비가 좋아졌다. 실제로 2000년 이후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후반기에만 나온 2003시즌을 제외하고 은퇴할 때까지 모든 시즌에서 볼넷이 삼진보다 많았다.[13] 다만 1999년 시즌까지도 볼넷 수가 적은 타자는 아니었다. 타출갭 즉 타율과 출루율의 마진이 가장 적은 해인 1998년에도 0.069를 기록했을 뿐 다른 해들도 0.080 이상의 타출갭을 기록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전에도 삼진이 많을 뿐 선구안 자체는 양호했지만 2000년 시즌 이후에 더 많은 볼넷을 얻어내는 발전을 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14] 홈런성 타구가 나올 때 쓰는 특유의 멘트. 이순철과는 달리 약간 격앙된 톤이 특징이다.[15] 해설 자체는 괜찮아서 해설 능력으로는 비판을 그렇게 많이 받지는 않는 것 같다.[16] 본인도 신인 시절 변화구면 변화구, 직구면 직구 하나만 노리고 타격하던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경험이 부족할 때는 타석에서의 대처가 어렵기 때문에 말하는 것. 선배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뭐 1년차부터 주전+골든글러브+우승이었으니..[17] 다만 해설위원으로서의 연차가 쌓인 현 시점에서는 대체로 좋은 평을 듣고 있다.[18] 정확한 병명은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19] 사실 이것도 점잖은 표현으로, 눈을 썩게 만드는 수준이었다는 증언이 많다.(...)[20] 고관절 괴사의 정확한 원인은 잘 밝혀져 있지 않다. 스테로이드약물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곤 하지만 스테로이드와 관련 없는 일반인 중에서도 고관절 괴사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21] 당시 엄청난 투고타저라서 홈런 5위권이었다. 1위는 25개를 친 당시 방위병 출신인 김기태.[22] 이 해는 KBO 역사상 손꼽히는 타고투저 시절이었다.[23] 단, 심정수는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어 잠실에서 실질적으로 있던 시기는 약 7년에 불과했다.[24] 김동주는 풀타임으로 뛰고도 3-4-5 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것은 덤이다.[25] 특히나 최향남의 경우 그 유명한 해태에 지명받은 선수였다. 그 시절 놀기 좋아라 하는 성격인데 팀은 80년대 똥군기시절이고, 툭하면 거의 줄빠따 맞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해태의 빡센 군기를 피하려 현역병으로 군문제를 해결했을 정도.[26] 참고로 김재현의 장인은 코스닥 상장기업이자 동국제강 제1협력업체인 기전산업의 김종원 회장.[27] 여담으로 이듬해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재현과 양준혁은 서로 적으로 만난다.[28] 클로저 이상용의 등장인물인 안준민이 이 시기의 김재현을 모티브로 했다는 추측이 있다.[29] 이병규도 역시 LG 2기 시절 국내로 복귀 했을때는 2년간은 풀타임 외야수 1년은 지명타자와 외야를 겸업했으며, 나머지 시즌에는 아예 지명타자로 전업을 했다.[30] 당시 김재현의 차량엔 코치였던 정삼흠이 동승하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무능한 코치로 팬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했던 정삼흠은 이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돼서 시즌 후 LG의 코치에서 잘렸고 다시는 프로야구계에 발을 못 붙이고 있다.[31] 그리고 정경훈은 미스터 올스타가 되었다. 감독 추천으로 뽑혔으나 하필 그 날 따라 컨디션이 안 좋아서 선발 출전을 못한 권준헌(당시 태평양의 유일한 3할 타자)만 지못미.[32] 2009년도에 방영된 2기 22화 中.[33] 이 분 유튜브에서도 "양준혁 어-예 라고" 검색을 하면 죄다 댓글부터가 가관이다.[34] 정작 조인성은 TV 프로그램 진기명기에서 앉아쏴를 보고 했다가 되길래 그냥 했을 뿐이라고 했다.[35] 논란인 게 SK에서는 지명타자로만 99% 뛰었는데 외야까지 주는 건 좀 상식이 아니지 않냐는 반발성 분위기였는데... 나중에 그냥 값이 떨어지자 주최 측이나 유저 측이나 개돼지가 되었다...[36] LG 카드로 먼저나왔고 추가패치로 SK카드로도 출시.[37] 김재현은 처가가 준재벌급에 본인 집안도 금수저이므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 밑에서 억지로 일할 필요가 없다.[38] 사회에서는 류지현이 4살 형이지만 류지현이 대졸 선수이기 때문에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 김재현과 1994년 드래프트 입단 동기이며, 입단하자마자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누렸고 그 뒤로도 10년 간 선수시절을 보냈다.[39] 류지현은 감독에서 물러나고 해설위원을 하고 있다.[40] 애시당초 김재현의 KBO 리그 지도자 경력은 한화 이글스 타격코치가 전부였다.[41] 참고로 김기태와 김재현은 2005년 SK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반대로 유지현과 김기태는 선수협 창립총회 때 서로 맞디스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김기태가 LG 감독을 했을 때 유지현은 함께 있었다...[42] 그러나 본인이 LG 경기를 해설할 때 "유지현 코치에게 물어보니까..."라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하는 걸 보면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견원지간 수준으로 나쁘지 않고 그냥 서먹서먹한 사이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부분은 관계자나 동료가 아니면 알 수 없다.[43] 사실 오랫동안 동료로 안본 사이여서 어색해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엔 친분이 있더라도 오랫동안 안보면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만한게 김재현이 LG를 떠난 게 2005년이고 은퇴 때까지 단 한번도 LG로 다시 돌아오지 않은데 반해, 류지현은 2004년 은퇴 이후 쭉 LG에 눌러앉았다. 다시 둘의 인연이 맺어진게 앞서 서술한 것처럼 2017년 APBC에서 코치로 재회했을 때이니, 아무리 우승을 함께한 동기라도 12년 간 접점이 없으니 어색해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