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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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프리카 동부에 있는 국가. 수도는 기테가.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탄자니아에 둘러싸여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내륙국이지만 탕가니카 호와 접하고 있다.
인구는 2021년 통계상 1255만명 가량이지만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특성상 6.0에 인접하는 폭발적인 출산율로 인하여 실제론 이보다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웃한 나라 르완다 만큼은 아니지만 인구 밀도가 상당히 높다.
르완다와 비슷하고도 대조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공용어 키룬디어는 르완다에서 사용하는 르완다어와 사투리 수준으로 가까운 언어인데다 두 국가의 민족 구성도 비슷하다. 둘다 벨기에 식민 지배를 겪었고, 한창 독립으로 들떴을 때 르완다와 연방 국가 구성 논의도 있었을 정도였다.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의 시발점인 비행기 요격 사건 때 부룬디의 대통령도 덤터기로 끼어서 사망했을 정도... 다만, 르완다의 현 집권 세력이 투치족 위주라면, 부룬디는 후투족 위주이고,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기간까지 르완다에서는 후투족이 득세했다면, 부룬디에서는 정반대로 투치족이 득세했다는 게 차이점이다.
국기에 육망성이 들어가지만, 다윗의 별은 아니고 후투족, 트와족, 투치족을 상징하는 뜻이라고 한다.
부룬디의 국가.
2. 상징[편집]
2.1. 국장[편집]
자세한 내용은 부룬디/국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역사[편집]
지금의 부룬디 지역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피그미족의 일원인 트와족이었지만 대다수는 반투족에 흡수당했다. 그 이후에 에티오피아와 수단으로부터 들어온 투치족들이 들어와서 지배계급으로 군림하였다.
16세기부터 왕국이 있었고 현 부룬디의 전신인 부룬디 왕국은 은타레 루샤치에 의해 17세기 후반에 건국된다. 부룬디 왕국은 초기에 그냥저냥한 부족국가들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세를 넓혀갔으며 은타레 4세가 재임하면서 르완다 남부 지역과 탄자니아 일부 지역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정도로 강성해지게 되었다. 부룬디 왕국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19세기 후반에 강력한 자치권을 갖게 된 부족장들과 므와미(mwami, 국왕)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므와미는 왕권을 탈환하기 위해서 독일의 손을 빌렸고 그 대가로 군사권을 독일에게 넘겨주며 독일의 보호령으로 들어감에 따라, 탄자니아와 함께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독일 제2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1차 세계 대전 후 벨기에로 넘어갔다. 이 당시 부룬디는 '루안다-우룬디(Ruanda-Urundi)'라는 이름으로 르완다와 하나의 구성체로 묶여 있었지만 르완다와는 별개의 왕이 있었으며 1959년에 므왐부차 4세가 르완다와 부룬디를 별개의 국가로 분리시켜 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르완다와 별개의 국가로 분리독립하게 된다. 르완다에서 종족 간 분쟁으로 투치족이 추방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부룬디에서도 후투족이 대거 추방되거나 살해당하는 참사가 벌어졌으며, 그 해 치러진 총선에서 르완다에서 후투족 정당이 압승을 거둔 것에 비해 부룬디에서 투치족 정당(민족진보연합)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1961년에 루이 르와가소레 왕자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종족간 분쟁이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62년에 왕국으로 독립하고 1965년 총선에서 후투족 정당이 승리했지만 므와미는 후투족 총리의 임명을 거부했고, 이에 후투족들이 대거 반란을 일으켰지만 투치족 군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그리고 1966년에 은타레 5세가 쿠데타를 통해 므왐부차 4세를 폐위시켰지만 얼마 안가 또 쿠데타가 터지면서 공화국이 세워졌다.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투치족을 핍박했던 것처럼, 부룬디에서는 투치족이 후투족을 탄압하는 양상으로 국가운영이 이뤄졌다. 그 이후의 내전 관련 부분은 부룬디 내전 참고.
약 40년 이상의 내전은 종식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내전에 준하는 분쟁들이 진행되었다.
2015년 5월 14일에 부룬디에서 피에르 은쿠룬지자 대통령에 충성하는 정부군이 국제공항을 장악했다.# 또한, 쿠데타군과 대통령을 지지하는 군대가 격렬히 전투를 했다.# 결국 쿠데타군은 군부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부룬디는 2019년에 말라리아가 발생하면서 인구의 절반이 말라리아로 인한 고통을 겪고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부룬디 정부는 비상사태선포를 거부했다. #
부룬디 동북부에서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적어도 38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현지 당국이 밝혔다. #
코로나19가 부룬디에도 퍼지고 있지만, 부룬디 정부는 대선에 돌입했다.# 그리고 5월 20일에 부룬디에서 총선이 시작됐다.# 이때 대선은 무사히 끝났다.# 총선에서 여당 후보인 에바리스트 은데이시미예가 당선됐다.#
6월 9일 부룬디 정부는 피에르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망을 두고 코로나19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일부 외신들이 밝혔다.#
6월 12일 부룬디 헌법재판소는 새로 선출된 에바리스트 은데이시미예 대통령 당선자가 피에르 은쿠룬지자 대통령의 돌연사에 따라 곧바로 취임하도록 결정했다.#
6월 18일에 에바리스트 은다이시미예 당선자는 취임식을 가졌다.#
12월 18일에 부룬디의 피에르 부요야 전 대통령이 파리시에서 코로나19로 사망했다.#
2021년 12월 7일에 부룬디의 한 교도소에서 불이 나 38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4. 행정 구역[편집]
부룬디는 18개 주로 구성되어 있다.
- 루이기
- 루타나
- 기테가
- 므와로
- 카루지
- 마캄바
- 부루리
- 부줌부라
- 부반자
- 응고지
- 치비토케
- 카얀자
- 카루지
- 무잉가
- 키룬도
- 창쿠조
- 부줌부라 교외주
- 무람비아
5. 자연환경[편집]
'천 개의 언덕을 가진 땅'으로 불리는 이웃나라 르완다와 마찬가지로 언덕이 많은 지형이다. 영토의 절반 가량이 농경지 및 초원으로 꽤 풍요롭다. 가장 낮은 지대도 해발 770m 가량 되며, 가장 높은 지대인 헤하산(Umusozi Heha, Mount Heha)은 부줌부라 남동쪽 30km 거리에 있고 해발 2,684m이다.
하지만 지하 자원이 거의 없는 반면 인구 밀도는 높아서 일단 식량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처지라 국민 소득은 매우 낮은 편이다. 이 점은 같은 동네에 위치한 내륙국가인 말라위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로 나일 강이 이 나라에서 발원한다. 정확히는 나일 강의 두 본류 중에서 가장 긴 백나일이 여기서 발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에 걸친 내전과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자연 생태계가 많이 훼손되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인 사바나얼룩말과 아프리카코끼리, 사자 같은 동물들이 멸종됐으며[4] 현재 관두루미와 하마, 원숭이, 침팬지, 악어, 수달, 뿔닭, 땅돼지 등 약간의 동물들만이 서식하고 있다.
5.1. 기후[편집]
적도 부근에 있으나 국토 전체가 고지대에 위치한 관계로 미칠듯이 덥지는 않다. 부룬디에서 가장 낮은 지대 중 하나인 부줌부라(해발 약 770m)는 열대 사바나 기후를 띤다. 부줌부라의 우기는 10월부터 4월까지이며, 건기는 5~9월에 나타나며, 평균 최고기온은 29℃, 평균 최저기온은 19℃ 정도를 나타내며, 연평균 기온은 23℃ 정도이다. 평균 최저기온과 평균 최고기온만 놓고 봤을 때, 서울특별시의 6월과 비슷하다. 이밖에 중앙부 고원 지대는 약 20℃ 가량의 평균 기온을 보여주며, 고산 지대에선 연평균 16℃ 가량의 기온을 나타낸다.
6. 경제[편집]
자세한 내용은 부룬디/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세계적인 니켈 산지이며, 석유 및 코발트, 구리, 백금 등과 같은 광물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을 거라 추정되고 있다. 허나 국내 정세가 좋지 않아 투자가 가로막혀있고, 오랜 내전의 여파로 경제적 및 농경지적으로도 크게 황폐화되어서 빈곤층이 50% 이상일 정도로 경제 사정이 매우 나쁘다.
특히 부룬디는 후술할 바와 같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내에서도 최악으로 꼽히는, 명실상부 세계 최악의 극빈국으로 꼽히는 나라인데,[5] 2023년 기준으로도 IMF가 추산한 부룬디의 1인당 GDP는 고작 249$로[6] , 194개국 중 194위, 즉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부룬디는 갓 독립한 1962년 기준으로도[7] 1인당 GDP가 73.9달러[8][9] 에 불과한 최빈국이었고, 1986년까지는 1인당 GDP가 238.36달러[10] 로 어느 정도 성장하긴 했으나[11] 이후 경제가 추락하며 내전과 그 후유증에 시달리던 1992~2008년에는 1인당 GDP가 100달러권을 기록하기도 했다.[12]
부룬디산 커피가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있기에 커피 생산과 수출이 국가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7. 보건[편집]
세계적으로 보면 매우 가난한 편이나 이런 곳도 에이즈와 말라리아의 감소로 은근히 보건이 개선되고 있어 2017년 기준 여성 63.6세, 남성 59.7세가 기대수명이다. 이는 1990년에 비해 10년 이상 늘어난 수치다. 한국의 1970년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영아사망률은 90년보다 2017년이 3분의 1정도로 줄어들었다. #
8. 정치[편집]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체제의 국가로 피에르 은쿠룬지자가 2005년부터 2020년 까지 철권통치를 이어나갔다. 사실 은쿠룬지자는 합법적인 민주적 선거에 의해 당선되었고 집권 초기에는 무너진 부룬디 사회를 통합해나가는 나름 긍정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그러나 2010년 선거에서 불법적인 선거조작을 일삼았고 게다가 정치깡패들의 수류탄 테러로 반대파들이 사망하면서 은쿠룬지자는 본격적인 독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2015년 4월 26일, 은쿠룬지자가 대통령 선거 3선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부룬디 민중들의 불만은 폭발했고 전국에 걸쳐 광범위한 반정부 시위로 촉발되었다. 그러자 은쿠룬지자는 공권력을 동원해 수천 명의 시민들을 학살하거나 구금-고문해버리는 가혹한 조치로 진압해버렸다. 은쿠룬지자의 독재로 인해 수만 명의 부룬디 국민들이 정치적 탄압을 피해 해외로 망명해버렸으며[13] 국제사회의 제재조치까지 겹쳐 부룬디의 경제는 나락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은쿠룬지자는 부룬디 1위의 부자로 등극하는 등 자신의 배만 불리는데 힘썼다.
은쿠룬지자는 2018년 개헌을 감행했는데 대통령 임기를 7년으로 늘리고 재선까지만 가능하도록 개헌했다. 다만 여기서 자신에 대해서는 예외 조항으로 2034년까지 대통령에 재임할 수 있도록 바꿔놓았다. 게다가 대통령에서 퇴임하게 되면 거액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신설해버렸다. 심지어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사진에 낙서한 여학생을 국가원수모독 혐의로 구금시키는 등 권위주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14]
은쿠룬지자는 2020년,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도저히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그만두고 대신 애국심의 최고 지도자라는 새로운 직책을 신설해 자신이 대통령에서 퇴임한 뒤에도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돌연 심장마비로 인해 급사하면서[15] 무주공산이 되었다.
은쿠룬지자 사망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여당의 은다이시미예 후보가 당선되어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9. 문화[편집]
9.1. 언어[편집]
공용어는 룬디어와 프랑스어이다. 프랑스어를 쓰는 이유는 이웃 나라 르완다 및 콩고민주공화국과 함께 벨기에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16]
프랑스어를 벨기에 제국주의의 잔재로 여김으로써 프랑스어를 배제하고 모국어 사용을 장려하는 르완다와 달리, 부룬디는 프랑스어를 배척하지 않고 있다. 현재 프랑스어와 현지 언어를 섞은 부룬디 프랑스어 피진도 사용하고 있다.
프랑코포니 회원국이다. 이와 더불어 동아프리카 공동체에 가입해 있어서 스와힐리어가 주요 외국어이기도 하다.
9.2. 스포츠[편집]
2010년에 부룬디 난민 출신이던 마라토너 김창원(귀화하기 전의 성명은 도나티엔 부징고·Donatien Buzingo)씨가 대한민국 국적을 얻고 귀화해 화제가 되었다.[17]
부룬디는 1993년에야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에 가입하는 등 스포츠에서 많이 늦은 나라이다. 올림픽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 첫 출전을 하였고 남자 육상 5000m 부문에서 금메달 1개를 땄다.
10. 외교[편집]
자세한 내용은 부룬디/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여행[편집]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부줌부라 공항 혹은 육상 국경에서 도착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할 수 있다.
부룬디는 1993년부터 2005년까지 장기간에 이어진 내전으로 피폐해진데다 여전히 극심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나라이며 이로 인해 아프리카 지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가 되었다. 치안 부재에 물자 부족이 극심한 지역이므로 여행하는데 있어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2005년에 평화 협정이 조인되고 내전이 종식되었지만 내전 당시 전쟁을 치렀던 군인들을 해산시키면서 뭘 해줄 수가 없어서 그냥 여비만 쥐어주고 고향에 돌아가라고 보내버렸는데, 당연히 먹고살 길이 없는 전역병들은 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강도단이 되어 시장 근처에서 출몰하고 있으며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총격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서 위험한 국가를 뽑으라 하면 차드,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리비아, 나이지리아, 남수단, 소말리아 등과 손을 얹을 정도로 매우 위험한 국가들 중 하나일 정도. 부룬디의 이웃 아프리카 나라들인 르완다와 탄자니아는 관광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이 나라는 극도로 열악한 인프라와 치안 때문에 정상적인 관광이 불가능하다. 거기에 내전 당시 민간인 학살 등 전쟁 범죄를 벌였던 크고 작은 여러 인사들이 아직도 높은 자리에 남아있거나 처벌받지 않는 등 과거사 청산도 이뤄지지 못해 사회가 굉장히 혼란스럽다.[18]
현재 한국 외교부에선 부줌부라를 제외한 전 지역을 출국권고로 정해놓았고, 호주 외무부에서는 전 지역을 여행금지지역으로 설정해놓은 상태이다. 참고
12. 둘러보기[편집]
[1] 프랑스어: Unité, Travail, Progrès
영어: Union, Work, Progress[2] 최대도시는 부줌부라. 원래는 부줌부라가 수도였지만, 2018년 12월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1966년까지 부룬디 왕국의 수도였던 기테가로 수도를 옮길 것임을 선언하였고, 2019년 1월 16일 부룬디 의회에서 이를 승인하면서 공식적으로 수도를 이전하게 되었다.[3] 부줌부라가 부룬디의 남서쪽에 치우친 것과는 달리, 기테가는 부룬디의 정가운데에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현재 법률적으로는 기테가가 공식적인 수도이다.[4] 단 이웃한 아프리카 나라들인 탄자니아와 르완다에는 개체군이 서식하고 있다.[5] 부룬디와 완벽히 정반대 포지션의 국가는 룩셈부르크다.[6] 이는 한국전쟁 직후 대한민국의 1인당 GDP의 현재 가치보다도 낮은 수치다. 실제로 한국전쟁 직후 한국의 1인당 GDP는 2023년 가치로 환산해도 370$ 정도밖에 되지 않는 명실상부 최악의 극빈국이었는데, 2023년 기준으로 1인당 GDP가 370$ 미만인 국가는 부룬디 1개국밖에 없다.[7] 이하 세계은행 통계 참조[8] 2023년 가치로는 736.6달러[9] 이당시 대한민국은 106달러였다.[10] 2023년 가치로는 654.27달러[11] 이후 부룬디의 1인당 GDP가 1986년의 수치를 넘겼던 해는 2013~2017년 5년밖에 없었다. 다만 물가 변동을 고려하면 오히려 1인당 GDP의 실질 가치는 추락했다.[12] 특히 부룬디의 1인당 GDP가 가장 낮았던 2003년에는 1인당 GDP가 114.37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2023년 가치로도 187달러에 불과하다.[13] 오죽하면 같은 독재자인 폴 카가메가 지배하던 르완다로까지 이민 갈 정도였다.[14] 아이너리하게도 이 독재자의 원래 직업은 목사 겸 축구선수였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축구를 매우 좋아해서 지방 순시 때마다 관료들과 같이 축구를 했는데 본인은 언제나 스트라이커로 뛰었다고 한다.[15] 은쿠룬지자의 영부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치료받고 있었기에 코로나에 확진되어 사망한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부룬디의 열악한 의료 시설과 환경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같었으면 사망하지 않았을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사망한 것이다.[16] 벨기에는 프랑스어 외에도 독일어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나, 193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어 독단 정책을 취했었다. 이로 인해 벨기에 국내에서도 프랑스어를 못 하는 이들은 많은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 실제 벨기에에서는 네덜란드어 사용 빈도가 프랑스어보다 월등히 더 높다. 해당 문서 참조.[17] 통상적으로는 한국어식 어순을 따른 '부징고 도나티엔'으로 알려져 있으나 도나티엔이 이름, 부징고가 성씨이다. 관련 자료 1, 관련 자료 2.[18] 이는 부룬디와 똑같이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에 내전을 겪었던 윗나라 르완다가 내전 당시 학살 등 전쟁 범죄 혐의에 개입했던 전직 인사들을 처벌하고 빠르게 국가를 안정시킨 것과 대비된다. 다만 르완다 역시 1994년 르완다 학살 당시 학살에 참여한 다른 나머지 민간인 가담자들을 다 처벌할 수 없어서 이들 민간인 가담자에 대해서는 용서를 배풀었다.
영어: Union, Work, Progress[2] 최대도시는 부줌부라. 원래는 부줌부라가 수도였지만, 2018년 12월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1966년까지 부룬디 왕국의 수도였던 기테가로 수도를 옮길 것임을 선언하였고, 2019년 1월 16일 부룬디 의회에서 이를 승인하면서 공식적으로 수도를 이전하게 되었다.[3] 부줌부라가 부룬디의 남서쪽에 치우친 것과는 달리, 기테가는 부룬디의 정가운데에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현재 법률적으로는 기테가가 공식적인 수도이다.[4] 단 이웃한 아프리카 나라들인 탄자니아와 르완다에는 개체군이 서식하고 있다.[5] 부룬디와 완벽히 정반대 포지션의 국가는 룩셈부르크다.[6] 이는 한국전쟁 직후 대한민국의 1인당 GDP의 현재 가치보다도 낮은 수치다. 실제로 한국전쟁 직후 한국의 1인당 GDP는 2023년 가치로 환산해도 370$ 정도밖에 되지 않는 명실상부 최악의 극빈국이었는데, 2023년 기준으로 1인당 GDP가 370$ 미만인 국가는 부룬디 1개국밖에 없다.[7] 이하 세계은행 통계 참조[8] 2023년 가치로는 736.6달러[9] 이당시 대한민국은 106달러였다.[10] 2023년 가치로는 654.27달러[11] 이후 부룬디의 1인당 GDP가 1986년의 수치를 넘겼던 해는 2013~2017년 5년밖에 없었다. 다만 물가 변동을 고려하면 오히려 1인당 GDP의 실질 가치는 추락했다.[12] 특히 부룬디의 1인당 GDP가 가장 낮았던 2003년에는 1인당 GDP가 114.37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2023년 가치로도 187달러에 불과하다.[13] 오죽하면 같은 독재자인 폴 카가메가 지배하던 르완다로까지 이민 갈 정도였다.[14] 아이너리하게도 이 독재자의 원래 직업은 목사 겸 축구선수였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축구를 매우 좋아해서 지방 순시 때마다 관료들과 같이 축구를 했는데 본인은 언제나 스트라이커로 뛰었다고 한다.[15] 은쿠룬지자의 영부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치료받고 있었기에 코로나에 확진되어 사망한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부룬디의 열악한 의료 시설과 환경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같었으면 사망하지 않았을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사망한 것이다.[16] 벨기에는 프랑스어 외에도 독일어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나, 193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어 독단 정책을 취했었다. 이로 인해 벨기에 국내에서도 프랑스어를 못 하는 이들은 많은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 실제 벨기에에서는 네덜란드어 사용 빈도가 프랑스어보다 월등히 더 높다. 해당 문서 참조.[17] 통상적으로는 한국어식 어순을 따른 '부징고 도나티엔'으로 알려져 있으나 도나티엔이 이름, 부징고가 성씨이다. 관련 자료 1, 관련 자료 2.[18] 이는 부룬디와 똑같이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에 내전을 겪었던 윗나라 르완다가 내전 당시 학살 등 전쟁 범죄 혐의에 개입했던 전직 인사들을 처벌하고 빠르게 국가를 안정시킨 것과 대비된다. 다만 르완다 역시 1994년 르완다 학살 당시 학살에 참여한 다른 나머지 민간인 가담자들을 다 처벌할 수 없어서 이들 민간인 가담자에 대해서는 용서를 배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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