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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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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6개월의 재임 기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통해 단성론 논쟁을 종식시켰다."는 것이다.[1] 전임 교황 도노에게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4세가 단성론에 대한 공의회를 열것을 제안했으나 제안이 도착하기 전에 도노가 선종하여 아가토가 이 일을 이어받게 되었다.
아가토는 공의회에 앞서 서방 교회 곳곳에 특사를 보내 지지를 얻어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열리는 공의회에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한다. 680년 11월 7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황궁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진 존재로서 신이면서 인간이기도 하다는 정통 신앙에 대해 설명하는 아가토의 친서가 낭독되었고, 황제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비롯한 다수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러한 지지를 통해 단의설을 이단으로 선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가토는 회의의 최종 결과를 보지 못하고, 681년 1월 10일 선종하였다. 사후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1월 10일이다.[2]
한편 단의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동서 교회의 화합을 이끌어낸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는 681년 9월에 폐회되었다.
[1]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이외에 치적으로 취임 직후 캔터베리 대주교와 요크 주교 간의 다툼에 대한 송사를 처리한 것이 있다. 캔터베리 대주교 테오도로가 요크 주교 윌프리드를 주교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요크 교구를 3개 교구로 분구하여 주교를 임명하자 송사한 사건이다. 송사 결과 분구에 대해서는 인정하되 새 주교는 윌프리드가 임명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2] 때문에 그의 이름 아가토는 세례명으로도 쓰인다. 다만 그리 흔히 보이는 이름은 아닌지라 한국의 비신자들에게는 검은 사제들을 계기로 약간 알려졌다. 오히려 여성형인 아가타(아가사)는 좀 나이들어 보인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렇지 드물지는 않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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