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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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어원
3. 역사
4. 지리
5. 민족 및 언어
5.1. 독립 운동
6. 와인
7. 주요 도시들
8. 출신 인물
9. 대중 매체에서


파일:알자스지도.png


1. 개요[편집]


파일:2000px-알자스 깃발(합성형).png
알자스 지역의 깃발. 이것과 함께 붉은색과 흰색의 이색기 (Rott un Wiss)도 함께 쓰인다.

프랑스어, 영어: Alsace
독일어: Elsass, Elsaß[1]
알자스어: Elsàss

프랑스의 옛 지명이자 옛 레지옹.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지방이다. 현재는 그랑테스트[2] 레지옹의 바랭(Bas-Rhin)과 오랭(Hauts-Rhin) 데파르트망들로 남아 있었다가[3] 2021년에 오랭과 바랭을 신설 특별 행정구역인 알자스 유럽 집합체(6AE)로 합침으로써 알자스라는 이름이 데파르트망으로 다시 부활했다. 의회는 오랭과 바랭을 합쳤고 행정적인 업무는 그랑테스트 레지옹 지사가 한다. 인구는 2020년 기준 1,898,533명, 면적은 8,280.17 제곱킬로미터이다.

2. 어원[편집]


알자스의 어원은 많은 가설들이 존재하며 특히 언어들의 접경지에 위치한지라 새로운 자료의 등장으로 자주 가설들의 위치가 뒤바뀌는 편이다. 다만 널리 알려진 세개는 아래와 같다.
1. 고대 고지 독일어로 외지를 뜻하는 "Ali-Saz", 혹 "Elisaz"에서 유래했다는 설
2. 알레만어로 일 강 (Ill → El)에 위치하였다는 (sitzen → saß)
3. '범람하는 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고유럽 제어의 어순 "AL-(i)S"에서 왔다는 설


3. 역사[편집]


기원전 1500년 무렵 켈트족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유틀란트 반도와 북독일에 살던 게르만족이 점차 남하하였고, 기원후 1세기경까지 알자스와 슈바벤 지역까지 남하해서 정착했다. 알자스라는 지명은 고대 게르만어에서 비롯되었다.[4]

한편 기원전 5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갈리아 전쟁을 통해 로마 제국에 복속되며 알자스 지방(pagus Alsatiae, district of Alsace)이 되었다. 로마 치하에서 와인 포도의 재배가 중점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동쪽의 다른 게르만족으로부터 이 포도주 재배 구역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요새들과 정착지들이 세워지고 이는 추후 상당수 알자스의 도시들의 기원이 되었다.

357년경 게르만족의 대이동에 따라 로마 제국은 알자스에 대한 통치력을 상실했고, 게르만족의 일파인 알레만니족의 치하에 들어갔다. 알자스 방언은 지금도 알레만니의 언어의 후예인 알레만어, 스위스 독일어와 함께 방언연속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후 6세기에 알자스를 포함한 알레마니 지역은 메로빙거 왕조프랑크 왕국의 치하에 들어갔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알레만니 지역은 슈바벤이라는 지명이 점차 대체해갔다.[5][6]

메로빙거 왕조 시절에는 알자스 공국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741년 카롤루스 마르텔 사후 742년 알레만니족이 대대적인 반란(혹은 독립 운동)을 벌였을 때 마르텔의 장남 카를로만이 수년간의 전쟁 끝에 결국 알레만니의 반란을 평정했고, 알자스 공국은 사라졌다. 이후 카롤루스 대제 사후 829년 잠시 알자스 공국이 부활하기도 했다.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 왕국이 분할될 때 중프랑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동프랑크 왕국(독일 왕국)에 귀속되었다. 이후 925년 하인리히 1세에 의해 로트링겐 공국에서 분리되어 슈바벤 공국에 편입되며 다시 과거대로 돌아갔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슈바벤 공국에 속하는 영지였고, 13세기 초 남부 지역을 합스부르크 가문이 차지하게 되면서, 오스트리아 대공국월경지인 외지오스트리아(Vorderösterreich)가 되었다. 이후 13세기말 슈바벤 공국이 여러 가문의 영지로 쪼개지며 사실상 해체됨에 따라 알자스의 북부 지역도 여러 가문의 영지로 쪼개졌다.

15세기 중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알자스의 중심도시 슈트라스부르크(현 스트라스부르)에서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여 독일어 성경 등을 찍어내었다. 이는 전유럽에 인쇄 혁명과 이를 통한 지식혁명, 과학혁명, 그리고 계몽사상의 파급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발달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번역 성경의 대량 인쇄의 결과 개신교가 급격한 확장하여 종교개혁이 전유럽으로 확산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슈트라스부르크는 유럽 인쇄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1639년 30년 전쟁 중 프랑스가 알자스 지역을 (일시) 점령하였다. 이후에도 이 지역에서는 독일과 프랑스 양측의 전투가 벌어졌다.

1646년 알자스 남부 준트가우(Sundgau) 지역을 합스부르크 제국으로부터 구매했다.

1648년 30년 전쟁의 종막인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일자스 남부의 프랑스 귀속이 확정되었다.

1681년 스트라스부르 지역을 점령했다.

1688년 9년 전쟁 발발

1697년 레이스베이크 조약 체결로 (묄루즈 제외) 알자스 전역 병합.

이렇게 알자스는 프랑스의 일부가 되었으나 어느정도 자치를 인정받으며 프랑스 다른 지역들이 퐁텐블로 칙령에 의해 개신교도들을 탄압하던 와중에도 알자스의 루터교 신도들은 이 탄압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스트라스부르 대학도 이 시기에 세워진다. 다만 프랑스는 알자스 내에서 가톨릭을 장려하고 이의 일환으로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알자스의 주민들도 이에 호응하였고 1792년에는 현 프랑스 국가이자 혁명 당시의 진군가인 라 마르세예즈가 4월에 알자스 시장 앞에서 최초로 대중공연 되기도 하였다. 장바티스트 클레베르와 같은 혁명기 장군들을 배출해 내기도 하였다.

알자스 남부의 도시 묄루즈는 1466년부터 스위스의 일부였으나 1798년 프랑스의 일부가 된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알자스 지역은 가파른 인구 성장을 겪게 되는데 1814년 약 80만명이었던 인구가 1846년 경에는 백만을 돌파하면서 많은 이들이 알자스를 떠나 프랑스 전역, 독일 지역과 신대륙으로 이민하여 알자스계 이민자 사회들을 구축하게 된다.

이후 프랑스와 독일이 알자스를 주고받게 되면서 알자스는 로렌의 모젤 데파르트망과 역사를 함께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알자스-로렌엘자스로트링겐 제국영토 문서 참조.


4. 지리[편집]


알자스의 면적은 8,283 제곱킬로미터로 2016년 그랑테스트의 일부가 되기 전까지는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레지옹이었다. 서쪽으로는 보주 산맥이, 그리고 동쪽으로는 라인 강이 위치하고 있다. 기후는 대륙기후를 띄며 역대 최저기온은 1956년 그랑-발롱(Grand-Ballon) 에서 기록된 섭씨 영하 24.8도, 그리고 최고 기온은 2003년 콜마르에서 기록된 섭씨 40.9도이다. 이중 콜마르는 프랑스에서 두번째로 강수량이 적은 지역으로 이러한 기후는 알자스 와인 산업의 성장에 기여하였다.

또한 알자스 지역은 석탄의 매장량이 높아 16세기부터 채굴이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기후변화 대책의 일환으로 석탄 채굴이 기실상 중단되었으나 산업 혁명 시기에는 중요도가 부각되었었다.

5. 민족 및 언어[편집]


오랜 기간 독일 문화권의 일부였다가 프랑스의 일부가 되었기에 독일어 방언인 알자스어가 널리 쓰였고 현재도 상당수 쓰이고 있다. 표준 독일어에 비해 프랑스어의 영향을 심히 받았고 알레만어로 비롯된 언어이기에 사투리가 괴악하기로 유명하다.

프랑스가 이 지역을 점령한 후 한동안은 지역의 언어까지 규제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후부터 프랑스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빡세게 프랑스어 교육을 시키고 독일어 사용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보불 전쟁 이후 독일로 환원되었고, 독일 치하에서 표준 독일어 교육이 이뤄지고 프랑스어 교육은 사실상 중단되었다.[7]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시점인 1918년에는 단 2%만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다고 한다.

이후 다시 프랑스 영토가 됨에 따라 학교에서 철저한 프랑스어 교육이 실시되었다. 알자스 스트라스부르 출신 전후 세대인 아르센 벵거는 어린 시절 지역 사회에서 독일어 방언만 쓰고 자라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프랑스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지속적으로 (라인)강 건너 사는 사람(독일인)들에 대한 증오를 가르쳤기에 그렇게 알고 자랐으나, 성인이 되어 보니 독일에서도 똑같은 사람이 사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집중적인 표준 프랑스어 교육으로 현재는 인구 대다수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는 한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로렌 지역의 프랑스어 사투리가 쓰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알자스어는 음성학적으로 급격한 혼선을 겪었다. 전통적으로 독일 남부 지방은 p, t, k와 b, d, g의 구분을 무성-유성 체계가 아닌 무기-유기 체계로 발음했는데, 무기음만 존재하는 프랑스어의 영향을 받으면서 p, t는 b, d와 차이가 사라졌고 k, g의 구별만 간신히 남은 상태가 되었다.

5.1. 독립 운동[편집]


이렇게 프랑스 다른 지역들과 확연히 다른 민족 구성을 가졌으며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거쳤기에 지금은 세가 위축되었지만 엄연히 독립운동도 존재한다. 전간기에는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에는 독립된 평의회 공화국을 수립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대독일주의에 입각하여 독일에 잔류여론도 상당수 존재했다. 그러나 알자스를 병합하겠다는 프랑스의 야욕으로 알자스-로렌전간기 독일에서 할양된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 국민투표도 일절 없이 프랑스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전간기 독일이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경제가 만신창이가 되자, 독일 편입론 대신 프랑스 내 자치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나치가 집권하게 되자 독일 편입에 대한 회의론이 높아졌다. 이는 나치에 대한 거부감도 컸지만 현실적으로 독일의 빡센 징병제도에 대한 반발도 주 이유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나치 독일에 합병되었지만, "독일인은 되기 싫고 프랑스인은 될 수 없는", "독일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알자스인" (ni Allemands, ni Français, mais Alsaciens)이라는 구호를 펼치기도 했다.

현재 알자스에서는 미약하지만 알자스 제일당과 같은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들도 활동하고 있으며 알자스 분리독립주의자들은 주로 자유의 여신상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르트 바르톨디의 고향인 콜마르의 자유의 여신상 레플리카 동상에서 데모를 벌인다.

6. 와인[편집]


해당문서 참고

7. 주요 도시들[편집]


  • 스트라스부르 - 알자스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이며 과거 알자스가 레지옹이었을 때에는 주도였다. 나무위키에 유일하게 문서가 존재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 콜마르(Colmar/Kolmar)
  • 뮐루즈(Mulhouse/Mülhausen)
  • 생루이(Saint-Louis/Sankt Ludwig)
  • 아그노(Haguenau/Hagenau)
  • 셀레스타(Sélestat/Schlettstadt)
  • 사베르뉴(Saverne/Zabern)


8. 출신 인물[편집]


  • 기 사예르 - <잊힌 병사>의 저자. 다만 출생지는 파리이고, 이후 알자스에서 성장했다.
  • 마리 손탁
  • 아르센 벵거 - 축구선수, 감독, 행정가. 아스날 FC의 역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감독. EPL 유일 무패우승을 기록한 명장이다. 알자스 스트라스부르시 듀틀렌하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동네 사람과 마찬가지로 알자스 독일어 방언을 쓰며 자랐으며, 초등학교에 들어가 학교에서 처음 프랑스어를 배웠다고 한다. Wenger 역시 독일계 성씨이기 때문에 프랑스어 표기법인 벵게르가 아닌 벵거로 읽는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8]
  • 알프레드 드레퓌스 - 군인. 드레퓌스 사건의 당시자. 묄루즈 출신으로 알자스-로렌이 독일에 넘어갈 당시에 프랑스로 이주한 실향민이다.
  • 에밀 발퇴펠
  • 에밀 베낭트 - 프랑스의 축구선수
  •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 - 프랑스의 조각가. 대표작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 샤를 뮌슈(Charles Münch, Karl Münch) -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지휘자로 꼽히는 인물.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를 거쳐 프랑스 정부가 창단한 파리 오케스트라의 초대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샤를 뮌슈(칼 뮌히)는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나 자란 후 독일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하여 베르됭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1930년대 초반까지 독일의 명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역임했다. 1932년 프랑스 네슬레 그룹의 딸과 결혼한 후 아내의 재력으로 오케스트라를 사서 파리에서 지휘자로 데뷔하였고 이후 프랑스로 귀화했다.
  • 토미 웅거러 - 동화작가.
  • 한스 베테 - 물리학자. 스트라스부르 출생으로 1912년 로 이주할 때까지 스트라스부르에서 성장했다.[9] 이후 프랑크푸르트, 뮌헨을 거쳐 튀빙겐에서 거주하다, 나치의 유대인[10] 공직 추방령으로 튀빙겐 대학교 조교수직에서 해임되자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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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대중 매체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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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6년 발음법 개정 이전[2] 그랑테스트 레지옹이 알자스, 샹파뉴아르덴, 그리고 로렌 레지옹들의 통합으로 만들어졌다.[3] 현재는 부르고뉴프랑슈콩테의 일부지만 테리투아르드벨포르(Territoire de Belfort)도 보불전쟁 이전에는 바랭 데파르트망으로 알자스의 일부였다.[4] "one who sits in another land."라는 뜻[5] 원래 알레만니족과 수에비족은 이웃하고 있고 서로 연관성이 높은 부족이었다.[6]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동네를 스스로 슈바벤이라 불렀지만, 프랑크 왕국 궁정에서는 여전히 알레만니라 불렀던 것 같다. 이후에도 프랑스에서는 현대까지 여전히 해당 지역을 알레만니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7] 알퐁스 도데가 쓴 프랑스 소설 마지막 수업이 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8] 본인의 정체성을 독일인으로 여겼지만, 알자스-로렌이 프랑스에 반환되어 프랑스 국적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자 프랑스 식민지인 가봉에서 활동하려면 프랑스 국적인 것이 더 편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국적을 프랑스로 바꾸었다. 그래서 슈바이처 박사는 말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여받을때 프랑스인이었다.[9] 그의 아버지는 슈테틴(현 폴란드 슈체친) 출생으로, 다시 말해 스트라스부르 토박이는 아니었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생리학 강사로 일하게 되어 스트라스부르에서 거주하게 되었고 이때 한스 베테가 태어났다. 이후 킬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킬로 이사했다가 1915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하게 되었다.[10] 한스 베테는 유대계이긴 했으나, 유대교 집안이 아닌 개신교 집안이었고 특별히 유대인이라는 자각도 없었다. 당대 유대계 중 비유대인으로 동화되어 유대교를 믿지 않고 유대인이라는 자각 없이 사는 경우는 상당히 흔했으나, 조상 중에 유대인이 있다고 하여 나치에 의해 유대인으로 몰린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