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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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5.30. ~ 2016.5.29.'''

[ 임기 개시 ]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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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석

야당
파일:민주통합당 흰색 로고.svg

127석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svg

13석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svg

5석

무소속

3석

재적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580009; font-size: .8em"
300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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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반기 개시 ]
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svg

149석

야당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svg

127석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svg

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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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석

무소속

1석

재적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580009; font-size: .8em"
300석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33.3%; margin: 0 -10px">
[ 임기 종료 ]
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svg

145석

야당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svg

103석

파일:국민의당(2016년) 흰색 로고.svg

20석

파일:정의당 흰색 로고.svg

5석

파일:민주당(2014년) 흰색 로고.svg

1석

무소속

17석

재적

291석

제국 중추원 · 임시의정원
제헌 · 2 · 3 · 4 · 5민 · 5참 · 6 · 7 · 8 · 9 · 10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국민중심당

자유선진당

(新) 자유선진당
한나라당
국민중심연합
(舊) 자유선진당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국민중심연합
국민생각
(개별 합류)

파일:자유선진당 로고.svg
자유선진당
한자 명칭
自由先進黨
영문 명칭
Liberty Forward Party (LFP)
약칭
선진당
1차 창당일
2008년 2월 4일
해산 ·
신설 합당

2011년 10월 17일[1]
당명 변경
2012년 5월 29일 (선진통일당)
해산일
2012년 11월 16일 (새누리당에 흡수합당)[2]
흡수 정당

[[국민중심당|
파일:국민중심당 흰색 로고타입.svg
]]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
[[국민중심연합|
파일:국민중심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이념
충청 지역주의
보수주의[3]
경제적 자유주의
반공주의
중앙당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0길 23, 3·4층 (여의도동, 용산빌딩)
비상대책위원장
이인제 (5선, 13~14, 16~18대])
원내대표
김낙성 (재선, 17~18대)
의석 수
5석 / 300석 (1.66%) 해산 직전
광역단체장
2석[4] / 17석 (11.76%)
기초단체장
12석 / 228석 (5.26%)
당 색
파란색 (#00529C)}}}
사이트
홈페이지

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자유선진당 창당
3.2.1. 후보
3.3. 제18대 국회와 원내교섭단체 구성
3.4. 2010년 지방선거의 참패
3.5. 19대 총선에서의 참패
3.5.1. 후보
3.5.2. 총선 패배와 문제점
3.6. 총선 후
3.7. 해산 후
4. 역대 당 대표
4.1. 총재
4.2. 대표최고위원
4.3. 원내대표
5. 선진당 구성 세력
5.1. 자그마한 반론
5.2. 결론
5.3. 인물난?
6. 당가
7. 여담
8. 역대 선거 결과
8.1. 국회의원 선거
8.2. 지방선거
8.3. 재보궐선거
9. 지지도
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선진당.jpg}}}

대한민국충청권 보수정당. 이회창 세력심대평충남지사 세력인 국민중심당이 뭉친 당으로 충청도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었다.

2008년에 창당하여 당해 4월 18대 총선에서 18석을 획득하였고 문국현창조한국당과 원내 교섭단체 선진과 창조의 모임을 구성했으나 2009년 9월 교섭단체가 해체되었고[5], 이후 2010년 지방선거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연달아 참패하면서 2012년 5월 당명을 선진통일당으로 교체했으나 6개월 뒤인 2012년 11월 새누리당에 합당되었다.

이후 충청권 보수정당은 한동안 없었지만 충청의미래당의 창당으로 마지막은 아니게 되었다. 다만 이 정당은 원외정당이다.


2. 상세[편집]


자유선진당은 초기부터 끝까지 충청도의 자존심을 내세웠지만, 창당 당시의 실상은 김종필의 정계 은퇴 이후 세가 줄어든 구 자유민주연합 출신 중 대전광역시 - 충청남도 지역 인물들이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충남 연고를 주장했던 전국구급 인물인 이회창을 중심으로 뭉친 것에 가까워서 세력은 약했다.

참고로, 대전과 충남만 거론되는 데는 다 이유도 있다. 충청북도 지역은 애초부터 자민련의 1995~1998년리즈 시절을 제외하고는 자민련의 텃밭이 아니고 앞마당 정도였으며[6], 17대 총선 이후 자민련의 몰락 후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엎치락뒤치락[7]하는 곳이었다. 자유선진당은 창당 직후인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북 지역 8개 선거구 중 6개 선거구에만 후보를 냈으나, 겨우 1개 지역구 승리에 그쳤다. 더군다나 그 1개 지역구도 민주당에서 탈당하여[8] 보은군, 영동군, 옥천군 남부 3군의 지지가 확고한 이용희 의원이 당선된 것.[9]

당의 이념을 보자면 이합집산을 한 끝에 창당한 만큼 각기 다른 세력들의 사정이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10] 초반의 자유선진당은 정치적 노선을 보수주의로 하되 보수주의이지만, 자민련 마냥 한나라당과는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으며, 창조한국당과의 교섭을 통해 1년 반 동안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누리기도 했다. 물론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은 원내교섭단체라는 한 배를 타고 있었지만, 사실 남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예를 들어 2008년박왕자 씨 피살사건 때 민주당과 비슷한 성격을 띄던 창조한국당은 청와대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는 논평을 내놓았지만, 한나라당과 비슷한 성격을 띄던 자유선진당은 이 기회에 북한의 해상에 쳐들어가야 한다고 논평을 내놓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2009년 심대평이 이회창의 당 운영에 반발해 탈당하여 국민중심연합을 창당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 일을 계기로 이회창이 2선으로 물러나게 된 이후 자유선진당이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거나 정책을 내놓는 일은 크게 줄어들었다. 뭐 애초에 원내 3당으로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신민주공화당 이래의 전략이었으나, 이마저도 특정 정당이 압도적인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여 캐스팅보트의 역할이 컸던 13,15~16대 국회와는 달리 18대 국회는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다수당[11]이었기에 자유선진당의 캐스팅보트 전략은 별 힘을 쓰지 못했고, 이렇게 존재감이 줄어들면서 그보다 의석이 적은 민주노동당은 물론 원외정당인 진보신당, 국민참여당보다도 의제를 점하는 일이 없어졌고[12] 정치적 비중이 문국현 대표의 2선 후퇴 이후로 아예 식물정당으로 전락한 창조한국당이나 당 대표도 없이[13] 한나라당 멀티 역할을 하던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과 동급으로 전락해 버렸다.[14]

정당의 정의가 공공 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집단이고, 그 목적이 지지층을 대변하고 정권을 창출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유선진당은 원내 3당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기반한' 지지층은 있되 이념적인 지지층은 희박했고, 심지어 의원별로 색도 달랐다.[15] 한 마디로 구시대적인 지역 분할 구도에 의존하고 있었던 격이었다. 2011년에 변웅전 전 대표가 한 발언이었던 "경상도에는 당이 하나밖에 없는데, 충청도에는 당이 여러 개 있다"는 발언도 자세히 곱씹어 보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의도가 충만한 발언이다. 그나마 당시 민주당과 새누리당, 혹은 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에서 이런 류의 발언이 나왔다면 당장 전국 단위로 욕을 먹었을 것인데[16], 자유선진당은 인지도도 낮고 존재감도 약해서 그냥 넘어갔다.


3. 역사[편집]



3.1. 자유선진당 창당[편집]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에서는 당명으로 최종안인 '자유신당'과 '자유한국당'?? 중 만장일치로 자유신당이 채택되었지만, 2008년 1월 26일에 당명을 자유선진당으로 확정했다. 창당준비위원장은 강삼재신한국당 사무총장[17]으로 내정되었다. 한나라당 친박계 현역의원이었으나 공천에서 배제된 곽성문 의원과 이용휘 박근혜 선대위 사이버후보위원장이 입당했다.[18] 이후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박상돈 의원과 유재건 前 비상대책위원장, 김혁규 前 의원[19], 이용희 국회부의장, 이상민 의원이 입당[20]했으며, 국민중심당(심대평, 김낙성, 권선택[21], 류근찬) 세력과 통합을 이루었다. 조순형 前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하고 한동안 무소속 의원으로 있다가 2008년 초에 상임고문으로 입당했다. 그리고 이상돈 교수와 전원책 변호사, 조영환 같은 재야인사들도 입당했다.


3.2. 제18대 총선[편집]


창당 이후 처음 치러진 총선인 18대 총선에서 지역구 14석, 비례대표 4석(비례 득표율 6.8%)으로 총 18석을 획득, 20석이 기준인 원내교섭단체 지위 획득에 아슬아슬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충청남도대전광역시의 16석 가운데 13석을 확보하는 등 이 정도의 확보도 크게 선전한 것으로 여겨졌다.[22] 다만 충청북도에서는 8석 중 단 1석[23]만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어찌 되었든 이런 승리를 통해 이회창은 정계에 안정적으로 복귀했다.

사실 자유선진당 입장에서 18대 총선의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일단은 제3당으로 등극하긴 했지만,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원내교섭단체 지위부터 확보했어야 했으나, 기준인 20석에 간발의 차로 미달해서 그러지 못한 것이다. 대선 때 이회창에게 투표했던 비주류 보수표가 친박연대로 대거 이동하는 바람에[24] 비례대표에서 겨우 6.8% 밖에 건지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25] 한편 지역구에서는 나름대로 유력 인사들을 모아 총선을 치렀지만, 충청권 외의 모든 지역구들에서 다 낙선해버리는 바람에 결국 지역정당 이미지가 완전히 굳어져버리고 말았다.[26] 자민련이나 국민의당 등이 지역정당이라며 비아냥을 받긴 하지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자민련은 충청도 외에도 강원도, 경상북도, 심지어는 수도권에도 진출에 성공하여 의석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었고, 국민의당은 대표 안철수김성식서울특별시에서 의석을 획득한 것에 더해 나름 비례대표 표는 전국적으로 고르게 받았다는 점에서 자유선진당보다는 사정이 많이 나았다.[27]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민련과 국민의당은 각각 20석을 가볍게 넘겨 원내교섭단체를 단독으로 구성했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3.2.1. 후보[편집]


지역구
이름
당시 경력
비고
서울 종로
정인봉
전 국회의원[28]

서울 중
신은경
전 KBS 9시 뉴스 앵커
[29]
서울 용산
이인숙
전 서울여고 교사

서울 광진 갑
김준교
전 이회창 대선후보 사이버 보좌역

서울 광진 을
김홍준
성균개발 대표이사

서울 중랑 을
이용휘
한미준 공동대표

서울 강북 을
임강신
2002년 대선 이회창후보 교육분과위 부위원장

서울 은평 갑
조일호
전 서울시의원

서울 은평 을
정두형
이산건축설계사무실 회장

서울 양천 갑
강삼재
전 국회의원[30]

서울 강서 갑
백철
이회창 총재 정책특보

서울 강서 을
김백중
이회창 총재 정책특보

서울 구로 을
한형교
구로 상공회의소 부회장

서울 금천
장영호
전 서울시의원

서울 강남 을
신대철
이회창 총재 경제특보

서울 송파 병
이재권
고려고속관광 대표

서울 강동 갑
박용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부산 중,동
오경석
중, 동구 재향군인회 이사

부산 부산진 갑
최우원
아시아철학회 공동회장

부산 부산진 을
황백현
발해투어 대표

부산 해운대,기장 갑
이병희
전 이회창 대선후보 유세특보

대구 중,남
곽성문
현 국회의원[31]

대구 동 을
정동희
실천연대 대표

대구 북 갑
구본항
전 대구시의원

인천 남 을
민만기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인천 연수
김성중
인천대 교수

인천 남동 을
김석우
삼환운수 대표
전 남동구의회 의장

인천 부평 갑
권순덕
이회창 총재 특보

인천 부평 을
조용균
전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인천 계양 갑
김유동
전 프로야구 선수

인천 계양 을
박희룡
전 계양구청장

광주 동
구봉우
축산경제신문 호남취재본부장

대전 동
임영호
전 동구청장
당선
대전 중
권선택
국회의원
전 대전광역시 행정부시장
당선[32]
대전 서 갑
백운교
전 충남도지사 비서실장

대전 서 을
이재선
전 국회의원[33]
당선
대전 유성
이상민
현 국회의원[34]
당선[35]
대전 대덕
김창수
전 대덕구청장
당선
경기 수원 권선
손종학
전 수원시의원

경기 수원 영통
임희수
자유선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경기 성남 수정
김경수
경원대 교수

경기 의정부 을
송우근
전 육군 대령

경기 안양 만안
홍두화
전 안양시의원

경기 안양 동안 갑
고강
KOMA 기술개발 대표

경기 부천 원미 갑
안동선
전 국회의원[36]

경기 부천 소사
전덕생
전 부천시의회 부의장

경기 광명 갑
임종금
전 광명시의원

경기 고양 덕양 갑
이국헌
전 국회의원[37]

경기 고양 일산서
김형오
명지대 교수

경기 구리
조재호
현대로템 수석연구원

경기 남양주 을
조정무
전 국회의원[38]

경기 오산
박동우
오산제일신용협동조합 이사장
[39]
경기 하남
유성근
전 국회의원[40]

경기 이천,여주
이희규
전 국회의원[41]

경기 안성
이병호
법무사

경기 김포
김두섭
전 국회의원[42]

경기 광주
이건희
전 경기도의원

강원 춘천
류종수
전 국회의원[43]

강원 원주
유영돈
전 영월군의원

강원 속초, 고성, 양양
황정기
한국산업발전연구원 수석연구원

강원 홍천, 횡성
원종익
전 강원도의회 부의장

강원 철원, 화천, 양구, 인제
이부균
전 강원지방병무청장

충북 청주 상당
김현문
전 청주시의원

충북 청주 흥덕 갑
최현호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대외협력특보

충북 청주 흥덕 을
오효진
전 청원군수

충북 제천,단양
정우택
전 세명대학교 대학원장
[44]
충북 청원
장한량
전 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

충북 보은, 옥천, 영동
이용희
현 국회부의장
현 국회의원[45]
당선
충북 증평, 진천, 괴산, 음성
송석우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대표이사

충남 천안 갑
도병수
전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수석검사

충남 천안 을
박상돈
현 국회의원[46]
당선[47]
충남 공주, 연기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
현 국회의원[48]
당선
충남 보령, 서천
류근찬
전 KBS 보도본부장
현 국회의원[49]
당선
충남 아산
이명수
전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당선[50]
충남 서산, 태안
변웅전
전 국회의원[51]

충남 논산, 계룡, 금산
신삼철
전 조달청 차장

충남 부여, 청양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당선
충남 홍성, 예산
이회창
전 국무총리
전 국회의원[52]
자유선진당 총재(당대표)
당선
충남 당진
김낙성
현 국회의원[53]
당선
전북 전주 완산 갑
이강욱
자유선진당 전북도당 부위원장

전북 남원, 순창
황의돈
자유선진당 전북도당 부위원장

전북 진안, 무주 ,장수, 임실
박병관
전 전북지역사회복지연구소장

전남 나주, 화순
이광웅
자유선진당 광주광역시당 부위원장

경북 안동
김윤한
신현학 국무총리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경북 구미 갑
임경만
전 구미시의원

경북 영천
송두봉
전 민주국민당 경북도당위원장

경북 상주
도현기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특별보좌역

경북 군위, 의성, 청송
전병오
전 이회창 대선후보 특보

경남 사천
이순근
뉴라이트 국민연합 상임고문

경남 김해 갑
옥반혁
전 경남도의원

경남 밀양, 창녕
박한용
전 국정원 경제조정관

경남 산청, 함양, 거창
김홍업
농촌총각장가보내기 운동본부 후원회장

제주 제주 을
강창재
전 부산동부지청 고등검찰관

제주 서귀포 을
오영삼
전 남제주군의원

재보궐선거
지역구
이름
당시경력
비고
경북 경주[2009]
이채관
전 국회 정책연구위원

경기 안산 상록 을[2009]
장경우
전 국회의원[54]

충북 증평, 진천, 괴산, 음성[2009]
정원현
한국 귀금속보석단체장 협의회 회장

충남 천안 을[2010]
박중현
전 천안시의원



3.3. 제18대 국회와 원내교섭단체 구성[편집]


자유선진당은 2008년 촛불집회에서는 여당을 비판하는 등, 제3지대 위주로 "보수 야당"으로서의 입지를 세우려고 했다.

2008년 8월 6일, 당시 3석의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는 원내교섭단체를 만들었다. 이때 선진을 교섭단체명의 앞으로 하는 대신 1년씩 교대를 하는 원내대표는 4개월만 권선택 의원이 하고, 문국현 의원이 2009년 1년짜리 원내대표를 맡기로 하였다.[55] 다만 창조한국당의 이한정 의원[56]과 이를 승계한 시민세력 출신 유원일 의원은 여기에 불참하였다. 그리고 이 선택은 문국현 의원의 정치 생명에 결과적으로 큰 악수가 되었다.[57] 자유선진당이 교섭단체를 자치하면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보건복지부를 감사)의 위원장은 자유선진당에게 넘어갔고, 이는 자유선진당이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음에도[58] 18대 국회 내내 이어졌다. 당시 각 분과 위원장은 한나라당 11명[59], 민주당 6명[60], 자유선진당 1명이었다.

창당 초기에 있던 강삼재, 김혁규, 이상돈, 전원책 등의 인사들은 이회창 총재와의 노선 차이[61]로 인해서 탈당했다. 특히 전원책 변호사는 단 4일만에 대변인직을 사퇴했다.[62]

2009년 8월 30일, 갑작스러운 심대평 대표의 탈당 선언[63]으로 19석이 되면서 창조한국당과 합쳐도 20석이 안되어 교섭단체 해체 위기에 처했다. 부족한 1석을 급히 채우기 위해 소속만 창조한국당일 뿐 사실상 독자 행보를 보이고 있던 유원일 의원과 접촉했으나 성향이 달랐기에 거절당했고, 무소속 이인제 의원에게 입당을 제의했지만 무산되었다. 거기에다가 창조한국당의 문국현마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는 바람에 결국 이로부터 이틀 후인 9월 1일, 원내교섭단체는 해체되었다.

이후 이회창은 스스로 비판받던 '제왕적 총재'직에서 물러나, '총재'를 '대표최고위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게 2010년 3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3개월 앞두고의 일이었다. 이 와중에 탈당한 심대평은 잠깐 자신의 정당인 국민중심연합을 차려 자유선진당에서 일부 인사를 뺏어가 자유선진당을 상대로 경쟁했다. 이후 정부의 세종특별자치시 건설 계획 수정안(즉, 행정기관 이전 취소)에 반발해 소속 의원들의 전원 사퇴서를 결의했으나 이회창 대표의 측근[64]이영애 의원(비례대표)이 수정안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사퇴서를 찢어버리는 해프닝을 빚는다.


3.4. 2010년 지방선거의 참패[편집]


충청북도에서 도지사 후보 공천을 하지 못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충청도의 자존심'을 슬로건으로 2010년 지방선거를 치른다.

그리고 결과는 참패. 서울특별시, 충청남도, 대전광역시 세 곳에 광역단체장 후보를 냈지만, 대전의 염홍철 후보만이 유일하게 당선되었고[65][66] 충남은 당 원내대표를 지낸 박상돈 후보가 민주당의 풍운아 안희정 후보에게 역전패당하면서[67] 대전 자민련 인증을 확실히 했다. 그나마 염홍철 후보[68]가, 민선 3대 전직 시장으로서 제4회 지선에서 '아깝게' 패배할 정도로, 나름 기반이 있었기에 망정이었다. 서울에서 히든카드로 출마한 지상욱 후보[69]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보다 득표율이 낮았다.[70]

앞서 말했듯이 충청북도지사는 후보도 하나 못 내는 꼴을 겪었다. 거기에 충남에서도 기초단체장 절반을 다른 정당들에 내주기까지 했다.(선진 7, 한나라 4, 민주 3)[71] 그래도 충북에서는 3곳의 지역(보은군수·옥천군수·영동군수)을 확보했으나, 이것은 이용희 의원의 남부 3군 세력권이었으므로 의미가 크지 않다.[72]

이런 참패 속에 이회창이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듯 했지만 1주일 만에 도로 복귀했고, 박상돈 전 원내대표의 도지사 출마로 치뤄진 2010년 7월천안시 을 보궐선거에서는 14%의 지지율로 3위에 그치는 등(선거는 한나라당이 승리)[73] 같은 선거에서 역시 참패한 은평구창조한국당[74] 함께 공멸할 징조를 보인다. 한편 당의 생명을 걸었던 세종시 문제는 결국 한나라당 친박의 힘으로 수정안이 부결되었으나, 이것은 친박계의 승리였지 선진당의 승리가 아니었다.

이후 존재감을 잃고 당 내에서 다선의원이었던[75] 변웅전을 대표로 추대했지만 소리 없이 묻혔고 2011년 9월 8일, 지방선거 당시 탈당했으나 공주에서만 승리를 거둔 심대평의 국민중심연합과 다시 신설합당을 하고, 이름도 '자유선진당' 그대로 가기로 결의했다. 덤으로 무소속인 이인제 의원도 같이 입당하여 어느 정도 세를 불렸다.


3.5. 19대 총선에서의 참패[편집]



총선 광고


심대평, 이인제, 변웅전이 요리사로 출연한 총선 광고

그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하게 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서 심대평이회창이 내분까지 일으키는 최악의 상황에서 선거를 치렀다. 이회창 전 총재는 4선 출마가 아닌 불출마를 선언했고[76], 이에 반발해 탈당하라는 발언까지 나오는 등 사실상 심대평의 독자 세력 선거였고 여기에 6선에 도전하던 이인제가 거드는 형국이었다. 여기에 이상민, 이용희, 권선택 등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다시 선진당에서 나가고 야권 대통합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민주당으로 되돌아가버려서 사실상의 사망 선고를 받았다.[77][78]

이런 상황에서 자유선진당은 50석 이상을 얻겠다는 허황된 꿈에만 빠져 있었다. #

한 마디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자민련이 얻었던 의석을 재현하겠다는 뜻인데,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는 뻔할 뻔자. 과거 자민련이 50석이 되는데 일조했던 대구광역시는 이미 철저한 새누리당 지지세로 돌아섰고[79], 수도권은 택도 없고, 그나마 비벼볼 언덕인 충청권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의 공천 신청자는 겨우 32명이었다. 따라서 50명 당선은 전혀 불가능했다.

그 결과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원래 연기군 출신 의원이던 심대평 대표가 민주통합당이 내세운 전국구 거물 이해찬 前 총리에게 큰 차로 밀려 떨어졌고, 달랑 5석 밖에 건지지 못했다. 17대 총선 당시 자민련의 4석보다 1석 많기는 한데, 그때 자민련은 비례대표 3% 득표에 실패, 즉 4석이 다 지역구였다. 반면 2012년 자유선진당은 지역구는 3석으로 줄었고,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간신히 3.2%를 차지해서 2석을 추가했다.

※ 당선 의원
  • 지역구: 이인제 -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성완종 - 서산시·태안군, 이명수 - 아산시
  • 비례대표: 문정림, 김영주[80]황인자 (승계)

충북에서는 역시나 이용희 의원이 민주통합당으로 가버리면서 힘을 못 쓰고 전멸했고[81], 정당 득표율에서는 통합진보당에도 밀리는[82][83] 꼴만 자꾸자꾸 겪었다.[84] 4년 전 5석이나 쓸어담은 대전광역시는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에게 모조리 뺏겼으며, 당의 존립 기반이라는 충남에서도 천안과 공주 등 도시권은 민주당에, 농촌권은 새누리당에 다 뺏기고 말았다.[85]


3.5.1. 후보[편집]


지역구
이름
당시 경력
비고
서울 광진 을
김홍준
자유선진당 서울시당 부위원장

서울 도봉 을
박영대
전 우석대학교 총학생회장

서울 노원 갑
김철수
한국외국어대학교 학군단 교수부장

서울 노원 을
이기재
전 노원구청장

서울 강서 갑
백철
전 자민련 강서 갑 지구당위원장

서울 금천
임부재
전 금천구의원

서울 관악 갑
김용섭
자유선진당 당대표 정책특별보좌역

부산 북,강서 을
조영환
전 올인코리아 대표

대구 중,남
조병기
영남문화연구소 대표

대구 서
정재현
생활법률무료상담소장

대구 수성 을
이원기
전 한국투자증권 직원

대구 달서 갑
김동국
전 경북대 강사

대구 달서 을
김원이
전 자유선진당 대구시당위원장

인천 연수
윤형모
전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인천 부평 갑
이수일
전 국토통일원 정책보좌관

인천 부평 을
이근호
꾸메푸메 어린이집 대표 권한대행

인천 서,강화 을
민우홍
전 인천시의원

광주 동
구봉우
축산경제신문 호남취재본부장

대전 동
임영호
현 국회의원[86]

대전 중
권선택
현 국회의원[87]
[88]
대전 서 갑
송종환
자유선진당 청년위원장

대전 서 을
이재선
현 국회의원[89]

대전 유성
송석찬
전 국회의원[90]

대전 대덕
이현
민변 대전충청 지회장

울산 동
김지준
전 울산시의원

세종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
현 국회의원[91]

경기 성남 분당 갑
홍관희
고려대학교 교수

경기 안양 만안
문갑돈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이사

경기 부천 소사
전덕생
전 부천시의원

경기 안산 단원 을
백남오
에스엘하이테크 대표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류승규
전 국회의원[92]

충북 청주 상당
김종천
자유선진당 충북도당 부위원장

충북 청주 흥덕 갑
최현호
충청북도 해병대 전우회장

충북 제천,단양
정연철
전 국회 보좌관

충북 청원
박현하
전 대전광역시 정무부시장

충남 천안 갑
강동복
전 충남도의원

충남 천안 을
박상돈
전 국회의원[93]
[94]
충남 공주
윤완중
전 공주시장

충남 보령,서천
류근찬
현 국회의원[95]

충남 아산
이명수
현 국회의원[96]
당선[97]
충남 서산,태안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당선
충남 논산,계룡,금산
이인제
현 국회의원[98]
당선
충남 부여,청양
홍표근
전 충남도의원

충남 홍성,예산
서상목
전 국회의원[99]

충남 당진
김낙성
현 국회의원[100]

전북 전주 덕진
백병찬
포천 중문의과대학교 객원연구위원

전북 정읍
김정기
자유선진당 문화예술 특보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장갑호
대구대학교 겸임교수

경남 사천,남해,하동
김일수
사회봉사 40년

제주 제주 을
강정희
전 은빛마을노인복지센터 근무



3.5.2. 총선 패배와 문제점[편집]


이 총선 패배는 스스로 자멸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애초에 텃밭이라는 충청남도에서도 30%대 후반의 허약한 지지도가 2010년 지방선거 이래 계속되어 왔고, 그 이후 2년 간 자유선진당은 충청권의 자존심 운운 이외에는 별다른 노력을 한 게 없었다.

사실 회심의 수가 딱 하나 있었다. 친이와의 연대. 심대평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배신자로 찍혀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을 끌여들여 실제로 40여석의 3번 정당으로 선거를 치루려고 했었다. 그리고 김무성에게 전권을 넘기기로 약속까지 한 모양. 그러나 김무성이 중간에 대의를 위한 총선 불출마와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불발되었다. # 비밀 해제 MB 5년 사실상 자유선진당의 입장에서는 골든타임이었지만 그대로 실패하고 만 것.

그 밖에도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예를 보듯이 자유선진당도 비슷한 성향의 정당인 새누리당과의 연대로 충청권에서 자유선진당 단일 후보를 내고, 그 이외 지역들은 새누리당에게 양보하던가, 아니면 반대로 수도권에서 일정 지역구를 양보받는 대신 자유선진당도 충청권 일부를 양보해주던가 하는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정책이라던지 대북 이슈를 선점해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새누리당에서 지속적으로 제의했지만 김무성과 친이계의 합류만 기대하던 자유선진당은 모두 거절했고, 후자의 경우는 박선영 前 의원이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로 단식 투쟁을 벌이는 등 대북 이슈 자체는 먼저 선점했지만 자유선진당은 여기에 거의 관심도 주지 않았고, 그마저도 후반 가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여기에 대거 동참하는 바람에 결국 이 이슈조차도 뺏기고 말았다. 실제 자유선진당 인사들 중 여기에 그나마 관심을 보인 것은 이회창[101]이었고, 그 이외에 관심을 보였거나 지원해준 것은 전부 한나라당만이 유일했다.

하지만 이는 원칙을 지키는 보수 야당과 제3의 선택이라는 스탠스 하에 새누리당 정권(이명박/박근혜)에 계속 반대하는 스탠스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유선진당은 민주당/제3지대 의원도 여럿 섞여 있는 등 은근히 성향도 불분명했으니 새누리당과는 입장에 차이가 있어 새누리당과의 연대는 무리였을 수도 있다.

재보궐 선거에서도 자유선진당은 2008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연기군수와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태안군수만 승리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서산시장에서 0.6% 차로 패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연기군은 심대평의 오랜 텃밭이고, 서산시·태안군 지역구는 19대 총선에서 선진당이 승리한 3곳 가운데 하나였다는 거다. 재보궐이 터지는 원인도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지도 않고 말이다.

따지고 보면 공천 과정도 엉망이었다.

  • 우선 현역으로 있던 의원 대부분을 공천했다. 불출마를 결정지은 사람이래봤자 이회창 밖에 없었고[102][103], 공천 탈락자라고 해봤자 부여군·청양군의 이진삼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진삼의 경우는 민정계 출신인데다 이미 75세의 고령이어서 어디에서라도 쳐냈어야 할 인물이었다. 또한 하나회 출신이기도 했고, '천안함 사태에 관련된 청문회'에서 '군번줄, 경례' 같이 주제에서 벗어나 청문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잘리지 않는 게 이상한 인물이었다.[104]

  • 가장 황당한 경우는 대전 유성구에 공천되었던 송석찬 후보의 경우였다. 그는 아주 화려한 정치 경력으로 유명한데, 18대 총선에는 통합민주당에서 나온 사람이었다.[107] 한편 민주통합당의 후보는 자유선진당으로 승리했다가 막판 탈당해 경선에서 승리한 이상민이었다. 즉, 후보는 같은데 당은 바뀐 웃지 못할 상황이었던 격. 송석찬은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하자 출마를 위해 자유선진당으로 왔고, 자유선진당은 어차피 후보도 없었던 마당에 옳타꾸나 하고 받은 것. 결국 이상민 의원이 다시 승리.

  • 한편 이회창 의원의 원 지역구였던 홍성군·예산군에는 이회창의 측근이었던 서상목(...) 前 장관을 공천했는데... 세풍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이력이 있어 한나라당에서도 이미 10여년 전에 퇴출된 인물이라 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새누리당 홍문표 후보에게 참패하고 낙선.

  • 심대평 前 대표 역시 총선 패배에 한 몫 했다. 애초에 역량이 없는 정치인[108]으로서 지역주의 읍소 밖에 남은 카드가 없었는 데다가, 선거대책본부를 자신이 출마한 세종특별자치시로 옮겨버린다. 이건 누가 봐도 자신의 정치 생명을 더 늘리기 위한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109] 총선을 전력으로 도와도 모자란 마당에 자신의 원 지역구였던 연기군(세종시)으로 출마했다는 건... 당장 상대 후보는 그래도 명색이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 텃밭 중 하나인 관악구 을[110][111]을 버리고 온 이해찬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이 패배로 심대평은 대표직에서 사퇴했고, 당 내 최다선 의원(6선)인 이인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3.6. 총선 후[편집]


5월 20일, 말 그대로 올 것이 왔다. 이회창 前 대표가 탈당을 선언했다. 당내 두 축 중 하나인 이회창 前 대표의 탈당으로 자유선진당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았으며, 미미하게나마 남아있던 非충청권의 세도 완전히 상실되었다. 심대평 대표야 칠순을 넘긴 고령인데다가 자신과 자신의 세력이 주도한 19대 총선에서 참패를 했으니 재기 불능.

이런 상황에서 껍데기만 남은 당을 이인제가 접수했다. 자유선진당은 선진통일당으로 당명을 바꾸게 되어 자유선진당이란 이름은 19대 국회 시작을 앞둔 5월 29일로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영문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선진통일당은 대선 과정에서 정운찬 전 총리 영입과 일종의 역할론을 펼쳐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였고 끝내 이회창 前 대표와 함께 새누리당과 협력 노선을 구축하더니 아예 11월에는 새누리당과 합당하여 소멸된다. 합당에 반발한 일부 인사들은 민주통합당으로 들어갔다.


3.7. 해산 후[편집]


현재는 국민의힘(심대평, 이인제, 이명수, 지상욱, 한현택 등), 더불어민주당(권선택, 이상민, 이용희 등), 민생당[112](임영호, 송석찬[113] 등), 친박신당(곽성문 등) 등으로 인사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만큼 인사 구성이 다양했다는 소리이다.


4. 역대 당 대표[편집]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아이콘.svg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총재 및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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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총재
이회창
2대 대표
이회창
3대 대표
변웅전
4대 대표
심대평
비대위
이인제
초대 대표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
선진통일당 대표
국민중심연합 대표





4.1. 총재[편집]


대수
이름
임기
비고
초대
이회창
(李會昌)
2008년 2월 1일
~ 2010년 3월 17일
[114]


4.2. 대표최고위원[편집]


대수
이름
임기
비고
초대
심대평
(沈大平)
2008년 2월 12일
~ 2009년 8월 30일
[115]
2대
이회창
(李會昌)
2010년 3월 17일
~ 2011년 5월 9일

3대
변웅전
(邊雄田)
2011년 5월 9일
~ 2011년 10월 9일

3대
변웅전
(邊雄田)
2011년 5월 9일
~ 2011년 10월 9일

4대
심대평
(沈大平)
2011년 10월 10일
~ 2012년 4월 12일

대행
김낙성
(金洛聖)

2012년 4월 12일
~ 2012년 4월 16일

[116]
비상대책위원장
이인제
(李仁濟)
2012년 4월 16일
~ 2012년 11월 16일



4.3. 원내대표[편집]



파일:선진통일당 흰색 아이콘.svg 파일:선진통일당 흰색 로고타입.svg 원내대표
(자유선진당 시절 포함)

[ 펼치기 · 접기 ]

||<-5><tablewidth=100%><bgcolor=#00529c> 자유선진당 ||
||<width=20%> 초대
박상돈 ||<width=20%> 제2대
권선택 ||<width=20%> 제3대
류근찬 ||<width=20%> 제4대
권선택 ||<width=20%> 제5대
김낙성 ||
||<-5><bgcolor=#025bad> 선진통일당 ||
|| 제6대
성완종 || || || ||
||<-5><bgcolor=#ffffff,#191919> ||




대수
이름
임기
비고
초대
박상돈
(朴商敦)
2008년 2월 12일
~ 2008년 4월 21일

2대
권선택
(權善宅)
2008년 4월 22일
~ 2009년 5월 7일

3대
류근찬
(柳根粲)
2009년 5월 8일
~ 2010년 6월 21일

4대
권선택
(權善宅)
2010년 6월 22일
~ 2011년 6월 16일

5대
김낙성
(金洛聖)
2011년 6월 17일
~ 2012년 5월 29일
[117]


5. 선진당 구성 세력[편집]




우선, 이회창, 심대평 등 주요 정치인이 아닌 대부분의 당원을 놓고 따져봤을 때, 진정한 보수/보수 야당이라 내걸며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듯 하나, 그 안에는 민주당/한나라당 출신서부터 비박, 친박, 강성 우파세력[118]까지 정말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의원별로 색이 다를 정도였다. 이러한 스펙트럼 탓에 당이 해산된 후, 현재는 정당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당 역사에서 보듯 크게 이회창, 심대평, 이인제 세력이 이합집산을 계속했다. 자유선진당이 이런 복잡한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것은 자유선진당의 탄생 배경 자체에 있다. 실질적으로 한나라당과 이념상의 큰 차이는 없지만 충청권 정당으로 오래 딴 살림을 차려왔던 사람들과 여러 사정으로 인해 한나라당(혹은 민주당)과 한 배를 타기엔 무리가 있어 독자적 세력화를 꾀하려는 사람들이 뭉쳤던 것.

당 출범 이후부터 중심인물격인 심대평이회창이 계속해서 충돌하는 것도 이 배경을 감안하면 설명이 가능하다. 이른바 '충청의 맹주'로서 지역을 기반으로 세력과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심대평과 보다 큰 그림, 즉 전국 정당화를 꿈꾸었던 이회창은 지향이 다르다. 이회창의 인지도와 장악력, 독단적이란 평을 들을 수준의 행보에 따라 당은 의도대로 움직이는 편이었지만, 이에 반감을 가진 심대평의 세력 등이 이탈을 하게 되면서 이회창의 리더십도 점차 흔들리게 되었던 것이다.[119]

전자의 경우 근원격인 신민주공화당 이후 지역감정 구도 아래에서 전통적으로 충청도를 차지해왔기에 당의 인물들 상당수가 충청도 지역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나마 자민련에서도 쓸만했던 사람들은 다 거대 양당으로 빠졌기 때문에 남은 인물 중 네임드 인물이 적었다.

염홍철 시장이나 권선택, 이상민 의원 등 열린우리당 출신 충청권 거물들도 많이 합류했다. 조순형 의원과 함께 이들의 성향은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막판에 이회창 총재의 권력이 줄어들면서 의원들의 개개인의 활동 폭이 넓어져 정치성향에서 (중도 성향의) 의외성을 드러낼 때도 있었다.[120] 대표적인 경우가 앞서 말한 촛불 시위 정국에서의 여당 비판을 들 수 있고, 또 하나의 큰 사례는 2011년 한미자유무역협정 통과 반대와 재협상를 당론으로 설정한 것이었다. 때로는 의료민영화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런 자유선진당의 변화에서도 이회창 의원은 유일하게 여당에 동조해 찬성표를 행사했고, 결국 탈당 행보의 시작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5.1. 자그마한 반론[편집]


물론 애초에 해외를 포함해서 정당이 이념적인 지향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초창기엔 정당은 지역이나 인맥 중심의 '당파'에 가깝다가 점차 이념적으로 헤쳐모이게 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념이 생긴 뒤에도 지역적인 지지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즉, 단순히 특정 지역에서 표를 몰아준다고 무조건 잘못은 아니다.


5.2. 결론[편집]


이렇게 지역 중심으로 모인 정당인 자유선진당은 한국의 정치체제가 진보-보수로 모일 때 특별한 개성도 없이 흩어진 경우에 가깝다. 제 3당 지위까지 올라갔던 자민련이 '원조 보수'론과 내각제를 지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한국당의 개혁 행보[121]와 이에 따른 자민련의 충분한 입지 확보로, 내각제 개헌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변한 정치환경에서 이회창이 선택할 수 있었던 스탠스는 '(원칙은 세우는) 보수 야당'이었다. 이것은 여당 내 소수파였던 친박계와 정확히 겹쳤다. 더구나 200석에 가까운 압도적인 여당의 의석 수 앞에서, 캐스팅보트의 지위는 애시당초 상실했으며, 그렇다고 자유선진당이 민주당과 강력하게 결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또한 이회창 총재가 17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세웠던 지방 세력의 확보를 위한 '강소국 연방제 개헌(연방제 통일안이 아님)' 역시 같은 최후를 맞았는데, 여당 친이계의 개헌 계획이 다음 대선의 후보로 이미 확고했던 친박계의 반발과 함께 무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회창 총재의 의원 장악력도 '제왕적 총재'라는 비판과는 별개로 상당히 떨어졌다. 결국 여러모로 자유선진당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5.3. 인물난?[편집]


자유선진당 인물난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심대평 대표의 경력을 보아도 심히 빈약한 인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문 행정공무원 출신인 심대평은 17대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처음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민선 충남도지사를 3번 역임했다. 지방자치제 이전에는 관료로 임명직 관선 지사를 한 경력도 있으며 청와대 행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적도 있다. 이런 경력의 그를 충남지역에서는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행정가라고 해줄 수는 있겠지만, 철저하게 중앙정치에서 벗어난 지방 토호일 뿐이다.[122]

이외의 국회의원 명단을 살펴봐도 (정치에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 이상) 알 만한 인물은 이회창, 이인제, 박선영, 조순형, 변웅전, 류근찬 의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 중에서도 변웅전은 전 MBC 아나운서, 류근찬은 전 KBS 뉴스 9 앵커 출신으로 유권자들에게 친숙한 얼굴이었고, 박선영은 동국대학교 헌법학 교수 출신으로 탈북자 관련 행보와 자유선진당의 붙박이 대변인으로서 알려진 것 뿐이다. 즉,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정치적 거물이라 할 사람들은 이인제와 이회창, 조순형 의원 뿐이다. 그나마 조순형은 18대 국회의원 중 최다선(7선)의원이었지만 원래의 지역구 및 정치적 기반이 서울이고, '미스터 쓴소리'라는 기존 별명과 다르게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다가 민주당을 망친 인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민주당에서 내쫓기듯이 나와서[123] 그동안의 정치적 행보와 상반된 정당[124]에 입당한데다 그나마 지역구도 아니고 비례대표제로 얻은 의석이라 당내에서의 발언권이 그리 크지 않았다.[125]

하지만 심대평은 충남지사를 세번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었던 사람으로, 겨우 지방 토호 수준으로 매도하기엔 급이 높다. 조순형 의원도 민주당 소속이긴 했으나, 민주당 내에서도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사람으로[126] 정치적 행보와 상반된 정당으로 갔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양당제가 고착화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면 원내 제 3당에서 이회창, 이인제, 박선영, 조순형, 변웅전, 류근찬 정도의 라인업이 과연 빈약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들 뿐 아니라 염홍철 시장, 권선택, 이상민 등도 있었다.


6. 당가[편집]


악보
자유와 평화 위해 우리는 전진한다
국민과 함께하는 국민 위한 자유선진당
건국과 호국의 역사 개방 개혁 평등의 정신
세계 향해 나간다 새로운 역사 만들자
정직과 나눔 봉사 전진한다 자유선진당
희망찬 내일 향해 우리는 전진한다
부강한 나라 위해 앞장선다 자유선진당
확고한 비전과 철학 진취적 경쟁과 도전
세계 향해 나간다 새로운 역사 만들자
반듯한 대한민국 전진한다 자유선진당


7. 여담[편집]



  • 자유선진당 당사인 용산빌딩의 뒤에는 한나라당 당사인 한양빌딩이 있었다. 애초에 국회 근처 오피스빌딩에 당사를 꾸리다보니 생긴 해프닝.


8. 역대 선거 결과[편집]



8.1. 국회의원 선거[편집]


연도
선거명
지역구 (비율)
비례대표 (득표율)
총 의석 (비율)
결과
2008년
18대
14 / 245 (5.7%)
4 / 54 (6.8%)
18 / 299 (6.0%)
원내 3당
2012년
19대
3 / 246 (1.2%)
2 / 54
5 / 300 (1.5%)
원내 4당


8.2. 지방선거[편집]


연도
광역단체장 (비율)
기초단체장 (비율)
광역의원 (비율)
기초의원 (비율)
2010년
1 / 16 (6.3%)
13 / 228 (5.7%)
41 / 762 (5.4%)
117 / 2,888 (4.1%)


8.3. 재보궐선거[편집]


연도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2008년 6월

0 / 9
2[127] / 29
2[128] / 14
2008년 10월

1[129] / 2
0 / 3
2 [130]/ 9
2009년 4월
0 / 5

0 / 1
0 / 3
0 / 5
2009년 10월
0 / 5

2010년 7월
0 / 8

2010년 10월

0 / 2
0 / 1
0 / 3
2011년 4월
0 / 3
0 / 1
1[131] / 6
0 / 5
3[132] / 23
2011년 10월

0 / 1
0 / 11
0 / 11
1[133] / 19
2012년 4월

1[134] / 1
0 / 5
0 / 37
0 / 19


9. 지지도[편집]



[ 펼치기 · 접기 ]
주차
지지도
자세히
한나라당 / 민주통합당 / 자유선진당 / 미래희망연대 / 통합진보당 / 창조한국당 / 기타 / 무당층
1월 1주차
28%}}}
2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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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1%
40%

1월 2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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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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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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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1월 3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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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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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
0%
1%
42%

1월 4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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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4%
0%
2%
38%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자유선진당 / 통합진보당 / 창조한국당 / 기타 / 무당층
2월 1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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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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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월 2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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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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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0%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자유선진당 / 통합진보당 / 창조한국당 / 기타 / 무당층
2월 4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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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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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월 1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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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6%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자유선진당 / 통합진보당 / 창조한국당 / 국민생각 / 기타 / 무당층
3월 2주차
2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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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
36%

3월 3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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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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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
36%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자유선진당 / 통합진보당 / 창조한국당 / 국민생각 / 진보신당 / 기타 / 무당층
3월 4주차
32%}}}
3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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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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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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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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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4월 1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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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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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2%
21%

4월 2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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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2%
2%
7%
0%
1%
2%
2%
18%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자유선진당 / 통합진보당 / 기타 / 무당층
4월 3주차
38%}}}
38%
28%
1%
6%
2%
25%

4월 4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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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
2%
28%

5월 1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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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
2%
27%

5월 2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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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31%

5월 3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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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2%

5월 4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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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4%
0%
3%
1%
35%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통합진보당 / 선진통일당 / 기타 / 무당층
6월 1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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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5%
4%
0%
1%
35%

6월 2주차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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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4%
1%
1%
36%

6월 3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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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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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38%

6월 4주차
35%}}}
3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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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7%

6월 5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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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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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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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7월 1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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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1%
3%
1%
1%
42%

7월 2주차
33%}}}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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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1%
40%

7월 3주차
31%}}}
31%
22%
3%
1%
0%
43%

7월 4주차
34%}}}
34%
23%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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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8월 1주차
36%}}}
36%
22%
3%
0%
1%
38%

8월 2주차
34%}}}
34%
20%
2%
0%
0%
43%

8월 3주차
35%}}}
35%
22%
2%
0%
1%
40%

8월 4주차
38%}}}
38%
22%
1%
1%
0%
37%

8월 5주차
36%}}}
36%
24%
2%
1%
1%
36%

9월 1주차
34%}}}
34%
25%
3%
0%
1%
36%

9월 2주차
36%}}}
36%
25%
2%
0%
1%
36%

9월 3주차
33%}}}
33%
27%
2%
0%
1%
37%

9월 4주차
34%}}}
34%
29%
1%
0%
1%
34%

10월 1주차
36%}}}
36%
29%
1%
0%
1%
32%

10월 2주차
36%}}}
36%
25%
2%
0%
1%
36%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진보정의당 / 통합진보당 / 선진통일당 / 기타 / 무당층
10월 3주차
32%}}}
32%
28%
1%
1%
0%
1%
37%

10월 4주차
32%}}}
32%
25%
1%
1%
0%
1%
40%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진보정의당 / 통합진보당 / 기타 / 무당층
11월 1주차
33%}}}
33%
27%
1%
1%
1%
36%

11월 2주차
35%}}}
35%
27%
1%
2%
1%
35%

11월 3주차
32%}}}
32%
28%
1%
1%
1%
37%

11월 4주차
34%}}}
34%
26%
1%
1%
1%
36%

11월 5주차
36%}}}
36%
31%
1%
1%
1%
29%

12월 1주차
38%}}}
38%
29%
1%
2%
1%
28%

12월 2주차
39%}}}
39%
37%
0%
1%
0%
21%

12월 3주차
미조사
-
12월 4주차
2013년 ▶
이 자료는 한국갤럽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2012년 정당 지지도 주간집계 결과임. 각 주차마다 3일간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하였음.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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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지지도
자세히
대통합민주신당 / 한나라당 / 민주노동당 / 민주당 / 국민중심당 / 창조한국당 / 기타·무당층
1월 1주차

14.2%

14.2%
52.6%
8.1%
2.5%
2.7%
4.1%
15.8%

1월 2주차

18.3%

18.3%
49.6%
4.6%
1.6%
5.8%
20.1%

1월 3주차

17.4%

17.4%
52%
6.2%
1.8%
1.2%
2.5%
18.9%

대통합민주신당 / 한나라당 / 민주노동당 / 민주당 / 자유선진당 / 창조한국당 / 기타·무당층
1월 4주차

11.6%

11.6%
58.9%
2.9%
2%
6%
4%
14.6%

1월 5주차

13.5%

13.5%
51.7%
0.8%
4.2%
3.6%
26.2%

통합민주당 / 한나라당 / 민주노동당 / 자유선진당 / 창조한국당 / 기타·무당층
2월 2주차

10.4%

10.4%
51.5%
6.3%
8%
2.3%
21.5%

2월 3주차

19%

19%
52.1%
4.3%
5.2%
2.8%
16.6%

주차
지지도[1]
자세히
한나라당 / 통합민주당 / 자유선진당 / 민주노동당 / 미래한국당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기타·무당층
2월 4주차

48.4%

48.4%
19.4%
6.4%
3.9%
5.3%
16.6%

3월 1주차

54.7%

54.7%
17%
2.2%
4.6%
1.7%
19.8%

3월 2주차

54%

54%
19.2%
4.8%
6.2%
2.8%
1%
12%

3월 3주차

48.9%

48.9%
20%
6.6%
3.5%
0.2%
1%
1.2%
18.6%

주차
지지도[2]
자세히
한나라당 / 통합민주당 / 자유선진당 / 민주노동당 / 친박연대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기타·무당층
3월 4주차

48.9%

48.9%
20.2%
3.7%
3.8%
7.1%
2.6%
4.6%
9.1%

4월 1주차

48.4%

48.4%
18.5%
4.8%
3.7%
6.8%
3.6%
1.9%
12.3%

4월 2주차

45.8%

45.8%
18.3%
7.4%
5.1%
8.6%
6.2%
4%
4.6%

4월 3주차

37.7%

37.7%
20.6%
7%
8%
10.5%
3.3%
4.9%
8%

4월 4주차

40.5%

40.5%
15.6%
5.5%
7%
12.4%
4.7%
4.1%
10.2%

4월 5주차

33.4%

33.4%
22.1%
6.1%
5.3%
10.5%
6%
4.4%
12.2%

5월 1주차

26.3%

26.3%
25.2%
7%
9.2%
6.7%
4.2%
5.6%
15.8%

5월 2주차

31.3%

31.3%
16.9%
6.4%
7.7%
6.5%
3.1%
1.8%
26.3%

5월 3주차

45.4%

45.4%
18.6%
5.1%
7.7%
4.2%
3.8%
2.2%
13%

5월 4주차

32.9%

32.9%
23.1%
7.8%
10.3%
6.2%
2.1%
3.2%
14.4%

한나라당 / 통합민주당 / 자유선진당 / 친박연대 / 민주노동당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기타·무당층
6월 1주차

27.2%

27.2%
25.1%
7.6%
5.5%
9.9%
3.4%
3.6%
17.7%

6월 2주차

34.1%

34.1%
24.7%
4.7%
3.4%
7.7%
4%
4.3%
17.1%

6월 3주차

39.7%

39.7%
21.5%
5.1%
3.3%
7%
5.3%
2.7%
15.4%

6월 4주차

39.7%

39.7%
24.6%
4.9%
3.9%
6.7%
2%
3.5%
14.7%

7월 1주차

32.7%

32.7%
13.5%
5.4%
4.3%
8.5%
4.2%
5.9%
25.5%

주차
지지도[3]
자세히
한나라당 / 민주당 / 자유선진당 / 친박연대 / 민주노동당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기타·무당층
7월 2주차

34.2%

34.2%
22.3%
5.3%
3.8%
7.3%
3.2%
4.8%
19.1%

7월 3주차

28%

28%
20%
5.9%
7%
13.3%
4.9%
4.8%
16.1%

7월 4주차

32.6%

32.6%
27.3%
3.5%
2.4%
8.1%
4.2%
3.3%
18.6%

7월 5주차

32.6%

32.6%
23.9%
6.4%
2.9%
10.3%
4.2%
2.6%
17.1%

8월 1주차

37.8%

37.8%
23.6%
5.9%
2.9%
8.3%
1.7%
0.9%
18.9%

8월 2주차

41%

41%
16.8%
6.2%
3.6%
4.7%
1.1%
4.8%
21.8%

8월 3주차

35.5%

35.5%
22.8%
3.5%
3.8%
7.4%
2.4%
2.2%
22.4%

8월 4주차

40%

40%
19.7%
5.2%
2.5%
8.7%
3.8%
4.7%
15.4%

9월 1주차

30.6%

30.6%
21.1%
5.6%
2.3%
10.2%
4.5%
4%
21.7%

9월 2주차

40.3%

40.3%
20.5%
6.1%
1.8%
4.6%
3%
3.7%
20%

9월 3주차

46.5%

46.5%
17.1%
4%
2.4%
5.4%
1%
1.4%
22.2%

9월 4주차

37.6%

37.6%
21.3%
4.3%
3.5%
7.4%
3.3%
2.5%
20.1%

10월 1주차

35%

35%
22%
6.1%
2.7%
9.7%
2.4%
2.2%
19.9%

10월 2주차

34.9%

34.9%
21%
6.2%
4.3%
6.8%
1.8%
2.7%
22.3%

10월 3주차

29.2%

29.2%
24%
8.7%
3.2%
11.4%
1.7%
4%
17.8%

10월 4주차

33.4%

33.4%
23%
6.8%
1.5%
6.7%
0.8%
3.7%
24.1%

10월 5주차

35.2%

35.2%
24.8%
3.4%
3%
9%
0.9%
2.1%
21.6%

11월 1주차

45.1%

45.1%
19.3%
7%
1.3%
6.2%
1.3%
0.9%
18.9%

11월 2주차

41.7%

41.7%
18.6%
5.6%
2.7%
12.4%
2.4%
3.2%
13.4%

11월 3주차

38.9%

38.9%
19.7%
3.9%
5.1%
5.7%
2.1%
3.4%
21.2%

11월 4주차

40.4%

40.4%
19.4%
5.1%
1.8%
6.5%
1.9%
2.2%
22.7%

12월 1주차

37.8%

37.8%
20%
6.6%
3.3%
9.7%
2.3%
2.6%
17.7%

12월 2주차

34.8%

34.8%
20.3%
8.4%
5.6%
8%
3.3%
1.6%
18%

12월 3주차

39.2%

39.2%
19.1%
3.7%
2.5%
9.8%
2.4%
3.9%
19.3%

12월 4주차

34.5%

34.5%
24.2%
4%
3.4%
9.6%
2.2%
4%
18%

12월 5주차

31.5%

31.5%
23.2%
7.3%
4.3%
8.6%
1.7%
1.1%
22.4%

2007년 ◀ ▶ 2009년
이 자료는 리얼미터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2008년 정당 지지도 주간집계 결과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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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지지도
자세히
한나라당 / 민주당 / 자유선진당 / 친박연대 / 민주노동당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기타·무당층
1월 1주차

29.8%

29.8%
20%
4.8%
5.2%
9.5%
3.2%
0.8%
26.9%

1월 3주차

35.2%

35.2%
13.9%
6.3%
5.8%
6.1%
1.9%
1.4%
29.4%

2월 2주차

30.8%

30.8%
14.5%
7.7%
4.9%
6.2%
3.1%
2.9%
29.9%

2월 3주차

34.4%

34.4%
17.4%
6.9%
5.9%
6.9%
2.6%
2.6%
23.3%

3월 3주차

30.6%

30.6%
16.9%
7.9%
4.8%
8.8%
3.1%
2.5%
25.4%

4월 3주차

34.7%

34.7%
14.2%
4.6%
5.7%
7.6%
1.3%
2.4%
29.5%

4월 5주차

23.5%

23.5%
16.7%
4.5%
6.3%
13.3%
2.2%
3.5%
30%

5월 3주차

24.2%

24.2%
15.7%
5.1%
7.6%
6.9%
1.8%
2.1%
36.6%

5월 4주차

27.8%

27.8%
21%
4.6%
4.3%
5%
2.9%
4.2%
30.2%

6월 1주차

24%

24%
27.9%
5.3%
5.5%
7.5%
2.1%
6.2%
21.5%

6월 4주차

22.9%

22.9%
18.1%
5.6%
7.8%
8.1%
2.4%
2.9%
32.2%

7월 3주차

29.6%

29.6%
22.4%
4.8%
6.1%
6.8%
2.1%
3.3%
25%

7월 5주차

28%

28%
25.6%
5.2%
5%
6.2%
1.8%
2.3%
26%

8월 2주차

27.7%

27.7%
23.7%
4.6%
3.6%
6.1%
2.3%
2.4%
29.6%

8월 4주차

32%

32%
25.9%
4.8%
4.8%
4.8%
1.3%
1.3%
25.1%

9월 3주차

37.9%

37.9%
30.2%
2.8%
3.7%
3.7%
1.2%
2.4%
18.1%

9월 5주차

39.1%

39.1%
27.1%
5%
2.9%
3.9%
2.2%
1.9%
17.9%

10월 2주차

37.1%

37.1%
29.9%
3.5%
2.3%
5.5%
1.5%
2.6%
17.6%

10월 4주차

38.4%

38.4%
30.2%
2.6%
2.8%
5.8%
0.8%
1.9%
17.7%

11월 1주차

36.1%

36.1%
34.9%
2.6%
3.2%
3.7%
1.1%
2.2%
16.2%

11월 2주차

38.8%

38.8%
28.6%
2.9%
4.6%
4.6%
0.9%
2.1%
17.5%

한나라당 / 민주당 / 자유선진당 / 친박연대 / 민주노동당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국민참여당 / 기타·무당층
11월 3주차

35.2%

35.2%
29.3%
3.8%
5%
3.2%
0.6%
1%
5.9%
16%

11월 4주차

37.7%

37.7%
27.8%
3.3%
4.9%
4%
0.6%
1.6%
3%
17.1%

12월 1주차

41.3%

41.3%
24.8%
3%
5.2%
3.5%
0.7%
1.5%
3.3%
16.7%

12월 2주차

37.8%

37.8%
27.8%
3%
4.9%
4.1%
0.9%
1.1%
5.2%
15.2%

12월 3주차

37.3%

37.3%
27.1%
3.9%
4.7%
3.9%
0.6%
1.3%
3.9%
17.3%

12월 4주차

37.4%

37.4%
29.1%
2.9%
4.5%
3.5%
0.8%
2.1%
4.3%
15.4%

12월 5주차

42.9%

42.9%
25.2%
3.5%
5.1%
4.4%
1.4%
1%
2.4%
14.1%

2008년 ◀ ▶ 2010년
이 자료는 리얼미터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2009년 정당 지지도 주간집계 결과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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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지지도
자세히
한나라당 / 민주당 / 자유선진당 / 친박연대 / 민주노동당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국민참여당 / 기타·무당층
1월 2주차

43.7%

43.7%
25.7%
3.2%
4.7%
3.2%
1%
1.4%
2.7%
14.4%

1월 3주차

40.5%

40.5%
22.8%
3.4%
5%
3.7%
0.9%
2.1%
5.3%
16.3%

1월 4주차

40.9%

40.9%
24.9%
3.4%
5.5%
3.8%
1.5%
2%
5.2%
12.8%

2월 1주차

38.5%

38.5%
25.3%
3.5%
6%
4.3%
1.6%
2.2%
4.9%
13.7%

2월 2주차

39.5%

39.5%
24.4%
3.9%
6.6%
4.6%
0.5%
1.8%
3.8%
14.9%

2월 3주차

39.8%

39.8%
25.7%
3.4%
7.5%
3.2%
1%
1.7%
3.9%
13.8%

주차
지지도[1]
자세히
한나라당 / 민주당 / 자유선진당 / 미래희망연대 / 민주노동당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국민참여당 / 기타·무당층
2월 4주차

40.9%

40.9%
24.4%
3.5%
6.7%
4.9%
0.9%
1.9%
4.5%
12.3%

3월 1주차

39.4%

39.4%
24%
4.4%
7.6%
3.8%
0.5%
2%
4.2%
14.1%

3월 2주차

41.1%

41.1%
25.3%
4.2%
5.9%
3.3%
0.8%
2.1%
4.2%
13.1%

3월 3주차

45.1%

45.1%
23.9%
2.9%
5.3%
4%
0.3%
1.4%
4.7%
12.4%

3월 4주차

39.9%

39.9%
27.2%
3.7%
5.7%
4.1%
0.3%
0.9%
3.7%
14.5%

3월 5주차

41.4%

41.4%
26.8%
3.2%
4.7%
3.6%
0.8%
2%
3.5%
14%

한나라당 / 민주당 / 자유선진당 / 민주노동당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국민참여당 / 기타·무당층
4월 1주차

41.5%

41.5%
28.4%
4.4%
4.3%
1.5%
1.5%
2.8%
18.7%

4월 3주차

40.5%

40.5%
26.7%
4.9%
3.7%
0.8%
1.3%
3.6%
18.5%

4월 4주차

42.6%

42.6%
25.8%
4.6%
3.5%
0.7%
2%
2.6%
18.2%

5월 1주차

43.3%

43.3%
27%
4.3%
3.9%
0.9%
0.9%
2.9%
16.8%

5월 2주차

38.8%

38.8%
30.5%
3.9%
4.6%
0.6%
1%
3.3%
17.3%

5월 3주차

42.7%

42.7%
27.4%
4.4%
4.4%
0.6%
1.6%
4.1%
14.8%

5월 4주차

43.3%

43.3%
27.5%
3.8%
2.8%
0.7%
1.6%
4.2%
16.1%

6월 1주차

41.8%

41.8%
31.6%
4.7%
3.1%
0.3%
2.3%
3.9%
12.3%

6월 2주차

36.9%

36.9%
34%
3.6%
4.8%
0.7%
1.5%
5.7%
12.8%

6월 3주차

37.6%

37.6%
31.5%
3.2%
4.7%
0.6%
2.5%
5%
14.9%

6월 4주차

36.6%

36.6%
33.4%
2.9%
4.8%
0.7%
1.7%
4.7%
15.2%

6월 5주차

38.1%

38.1%
30.9%
3.4%
3.8%
0.6%
2.2%
4.2%
16.8%

7월 1주차

39.3%

39.3%
29.4%
3.3%
5%
0.7%
1.8%
4%
16.5%

7월 2주차

42.1%

42.1%
27.7%
3.3%
4%
1.9%
4.2%
16.8%

7월 3주차

37.7%

37.7%
28.4%
2.7%
5.8%
1.4%
4.7%
19.3%

7월 4주차

39.6%

39.6%
29.6%
3.2%
5.1%
1.3%
4.4%
16.8%

8월 1주차

40%

40%
29.2%
2.5%
5%
1.9%
3.4%
18%

8월 2주차

39.8%

39.8%
27.1%
3.5%
4.9%
2.3%
3.5%
18.9%

8월 3주차

38.8%

38.8%
30.6%
3%
4.6%
1.5%
2.8%
18.7%

8월 4주차

38.5%

38.5%
30%
3%
4.5%
1.5%
3.7%
18.8%

9월 1주차

38.6%

38.6%
28.9%
2.3%
4.4%
1.3%
3.6%
20.9%

9월 2주차

37.1%

37.1%
28.9%
2.8%
5.2%
2%
2.8%
21.2%

9월 3주차

38.9%

38.9%
27.5%
3.2%
5.8%
4.3%
20.3%

9월 4주차

40.8%

40.8%
28.7%
2.8%
4.6%
3.3%
19.8%

10월 1주차

39.5%

39.5%
28.8%
2.9%
4.5%
1.7%
4%
18.6%

10월 2주차

40.1%

40.1%
28.2%
2.7%
3.9%
1.7%
3%
20.4%

10월 3주차

39.6%

39.6%
27.4%
2.8%
3.7%
2.1%
3.2%
21.2%

10월 4주차

40.5%

40.5%
26.9%
3%
3.6%
1%
3.3%
21.7%

11월 1주차

41.5%

41.5%
28.3%
2.3%
4.8%
0.5%
1.1%
2%
19.5%

11월 2주차

39.1%

39.1%
25.6%
3.4%
5.3%
1.3%
3%
22.3%

11월 3주차

39.8%

39.8%
27.5%
2.5%
4.6%
0.5%
2.4%
3.7%
19%

11월 4주차

38.5%

38.5%
28.1%
3.1%
4.1%
0.5%
2.2%
3.8%
19.7%

12월 1주차

42.6%

42.6%
24.4%
3%
3.8%
0.2%
1.5%
3.1%
21.4%

12월 2주차

38.8%

38.8%
26.3%
2.7%
4.7%
0.5%
1.2%
2.7%
23.2%

12월 3주차

39.6%

39.6%
25.7%
2.4%
4.2%
0.8%
2.1%
3.2%
22%

12월 4주차

40.2%

40.2%
24.5%
3.4%
4.3%
1.4%
3.1%
23.1%

12월 5주차

40.3%

40.3%
26%
2.7%
4%
1%
1.6%
2.9%
21.5%

2009년 ◀ ▶ 2011년
이 자료는 리얼미터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2010년 정당 지지도 주간집계 결과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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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지지도
자세히
한나라당 / 민주당 / 자유선진당 / 민주노동당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국민참여당 / 기타·무당층
1월 1주차

42.1%

42.1%
26.2%
2.6%
3.9%
0.8%
1.9%
3.8%
18.7%

1월 2주차

39.8%

39.8%
26.6%
3%
4.7%
0.9%
2%
3.3%
19.8%

1월 3주차

40.6%

40.6%
25.9%
3.2%
4.3%
0.6%
1.9%
3.2%
20.3%

1월 4주차

39.8%

39.8%
26.6%
2%
4.2%
0.7%
1.5%
3.4%
21.8%

2월 1주차

39.5%

39.5%
28.3%
3.8%
5.3%
0.3%
2%
3.2%
17.6%

2월 2주차

39.1%

39.1%
25.7%
3.5%
4.5%
0.8%
2%
4.5%
19.9%

2월 3주차

39%

39%
25.4%
2.9%
4.3%
1%
1.7%
3.4%
22.3%

2월 4주차

38.1%

38.1%
26.9%
3.5%
4%
1%
1.9%
3.4%
21.2%

3월 1주차

37.3%

37.3%
27.7%
3.2%
4.1%
0.6%
1.8%
4.8%
20.5%

3월 2주차

40.2%

40.2%
25.4%
2.6%
4.7%
1.3%
1.8%
3.5%
20.5%

3월 3주차

38.3%

38.3%
25.8%
3.3%
4%
1%
1.3%
4%
22.3%

3월 4주차

36.6%

36.6%
26%
3.7%
3.5%
1%
2%
4.8%
22.4%

3월 5주차

37.1%

37.1%
25.7%
3.4%
4.7%
0.6%
2.2%
4.7%
21.6%

4월 1주차

36.1%

36.1%
28.1%
2.8%
3.8%
1.1%
1.3%
3.8%
23%

4월 2주차

33.7%

33.7%
29.3%
2.9%
5.1%
1.5%
4.6%
22.9%

4월 3주차

35.5%

35.5%
27.8%
2.7%
4.9%
0.4%
1.1%
5.3%
22.3%

4월 4주차

35%

35%
30.4%
2.9%
4.8%
1.3%
4%
21.6%

5월 1주차

31.2%

31.2%
34.5%
2.4%
4.3%
1.3%
4.5%
21.8%

5월 2주차

31.4%

31.4%
31.8%
2.5%
4.9%
1.3%
4.1%
24%

5월 3주차

32.2%

32.2%
32.3%
2.5%
5.2%
1.3%
3.7%
22.8%

5월 4주차

30.2%

30.2%
33.4%
2.8%
5.1%
1.7%
4.2%
22.6%

6월 1주차

31.8%

31.8%
32.5%
3.2%
4.8%
1%
3.5%
23.2%

6월 2주차

31.9%

31.9%
31.7%
2.9%
4.1%
1.7%
3.5%
24.2%

6월 3주차

32.5%

32.5%
31.8%
2.6%
4.6%
1.3%
3.8%
23.4%

6월 4주차

32.6%

32.6%
29.9%
3%
5.6%
1.6%
3.1%
24.2%

6월 5주차

31.9%

31.9%
32.2%
2.5%
3.8%
1.3%
3.1%
25.2%

7월 1주차

34.3%

34.3%
29.6%
2.2%
5.2%
1.9%
2.5%
24.3%

7월 2주차

33.9%

33.9%
31.2%
1.8%
4.8%
1.8%
2.4%
24.1%

7월 3주차

34.5%

34.5%
32%
2.2%
4.2%
1.2%
3.3%
22.6%

7월 4주차

36.1%

36.1%
28.9%
2%
4.4%
2.1%
3.5%
23%

8월 1주차

32.5%

32.5%
31.6%
2%
4.4%
2%
2.1%
25.4%

8월 2주차

35.1%

35.1%
29.6%
1.9%
4.4%
1.1%
3%
24.9%

8월 3주차

36.9%

36.9%
28.6%
1.6%
4.8%
0.9%
2.5%
24.7%

8월 4주차

35.9%

35.9%
29%
1.9%
3.7%
1.1%
3.1%
25.3%

8월 5주차

36%

36%
28%
1.8%
3.2%
1.8%
2.6%
26.6%

9월 1주차

31.8%

31.8%
24.5%
2%
3.3%
1.7%
2.6%
34.1%

9월 2주차

33.9%

33.9%
23.9%
1.6%
4.2%
2.1%
1.5%
32.8%

9월 3주차

31.9%

31.9%
26.1%
2%
3%
1%
2.3%
33.7%

9월 4주차

32.7%

32.7%
29.6%
1.5%
3.6%
1.2%
3.2%
28.2%

10월 1주차

33.5%

33.5%
29.2%
3.1%
2.6%
1.4%
1.7%
28.5%

10월 2주차

33.1%

33.1%
26.9%
2.2%
3.2%
0.9%
2.3%
31.4%

10월 3주차

34.6%

34.6%
28.5%
2.1%
2.8%
1%
2.4%
28.6%

10월 4주차

33.2%

33.2%
29.4%
1.1%
3.7%
1.2%
2.3%
29.1%

11월 1주차

30%

30%
26.3%
1.6%
3.1%
1%
2.7%
35.3%

11월 2주차

30.5%

30.5%
25.5%
1.5%
4.2%
1.1%
2.9%
34.3%

11월 3주차

29.9%

29.9%
25.7%
1.5%
4.8%
0.6%
1.8%
2.6%
33.1%

11월 4주차

31.2%

31.2%
23.9%
1.8%
5.1%
1.3%
3%
33.7%

12월 1주차

28.7%

28.7%
26.1%
1.5%
4.8%
2.1%
2.1%
34.7%

한나라당 / 민주당 / 자유선진당 / 통합진보당 / 진보신당 / 기타·무당층
12월 2주차

28.7%

28.7%
23.5%
2.1%
10.3%
1%
34.4%

12월 3주차

29.9%

29.9%
22.2%
1.6%
10.2%
1.3%
34.8%

한나라당 / 민주통합당 / 자유선진당 / 통합진보당 / 진보신당 / 기타·무당층
12월 4주차

31.2%

31.2%
30.9%
2.2%
6.1%
1.3%
28.3%

12월 5주차

30.5%

30.5%
30.6%
1.9%
3.4%
1.5%
32.1%

2010년 ◀ ▶ 2012년
이 자료는 리얼미터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2011년 정당 지지도 주간집계 결과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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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지지도
자세히
한나라당 / 민주통합당 / 자유선진당 / 통합진보당 / 기타·무당층
1월 1주차

30.6%

30.6%
33%
2.2%
4.5%
29.6%

1월 2주차

29.5%

29.5%
34.7%
2.4%
3.2%
30.2%

1월 3주차

29.1%

29.1%
39.7%
1.9%
3.6%
25.8%

1월 4주차

30.3%

30.3%
37.1%
2%
4%
26.6%

2월 1주차

32.9%

32.9%
36.9%
1.5%
3.9%
24.8%

2월 2주차

33.9%

33.9%
35.8%
2.4%
4.2%
23.7%

주차
지지도[1]
자세히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자유선진당 / 통합진보당 / 기타·무당층
2월 3주차

32.6%

32.6%
37.8%
1.9%
4.9%
22.8%

2월 4주차

36.5%

36.5%
37.5%
1.9%
4.7%
19.4%

2월 5주차

36.3%

36.3%
36.3%
1.7%
6.1%
19.6%

3월 1주차

40.3%

40.3%
32.7%
2.3%
4.8%
19.9%

3월 2주차

39.4%

39.4%
33.7%
2.3%
5.7%
18.9%

3월 3주차

37.4%

37.4%
33.3%
2.1%
7.5%
19.7%

3월 4주차

39.8%

39.8%
30.5%
2.3%
8.1%
19.3%

4월 2주차

43.6%

43.6%
33.8%
2.8%
8.7%
11.1%

4월 3주차

43.9%

43.9%
33.4%
1.7%
9.5%
11.5%

4월 4주차

43.6%

43.6%
33.8%
1.7%
8%
12.9%

5월 1주차

43.5%

43.5%
32.4%
2.1%
7%
15%

5월 2주차

44.1%

44.1%
32.1%
1.1%
5.7%
17%

5월 3주차

45.5%

45.5%
30.8%
1.6%
4.9%
17.2%

5월 4주차

43.4%

43.4%
33.4%
2.1%
4.3%
16.8%

주차
지지도[2]
자세히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통합진보당 / 선진통일당 / 기타·무당층
5월 5주차

45%

45%
32.5%
4.8%
0.8%
16.9%

6월 1주차

45%

45%
32.9%
3.9%
0.4%
17.7%

6월 2주차

45.4%

45.4%
29.6%
4.3%
0.9%
19.8%

6월 3주차

44.7%

44.7%
31.1%
3.6%
0.9%
19.7%

6월 4주차

44.5%

44.5%
32.9%
4%
0.6%
18%

7월 1주차

43.8%

43.8%
32.4%
3.7%
20.1%

7월 2주차

42.7%

42.7%
32.2%
3.2%
21.9%

7월 3주차

43.6%

43.6%
33.4%
3.7%
0.7%
18.6%

7월 4주차

41%

41%
29.1%
4.3%
0.6%
25%

8월 1주차

43.2%

43.2%
30.3%
2.8%
0.4%
23.3%

8월 3주차

40.6%

40.6%
30.6%
2.8%
0.5%
25.5%

8월 4주차

44.7%

44.7%
31.5%
2.4%
0.6%
20.8%

8월 5주차

42.8%

42.8%
31.7%
2%
0.3%
23.2%

9월 1주차

43.4%

43.4%
30.6%
2.5%
0.1%
23.4%

9월 2주차

41.3%

41.3%
31.7%
1.9%
0.6%
24.5%

9월 3주차

40.5%

40.5%
31.5%
1.5%
0.5%
26%

9월 4주차

38.5%

38.5%
30.4%
2.3%
0.5%
28.3%

10월 1주차

41.1%

41.1%
29.5%
1.8%
0.4%
27.2%

10월 2주차

38.7%

38.7%
28.5%
2.4%
0.5%
29.9%

10월 3주차

41.1%

41.1%
27.7%
1.4%
0.3%
29.5%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통합진보당 / 진보정의당 / 기타·무당층
10월 4주차

41.4%

41.4%
28.3%
1.4%
1.4%
27.5%

10월 5주차

41.2%

41.2%
28.2%
1%
1.3%
28.3%

11월 1주차

40.8%

40.8%
31.7%
1.2%
1.3%
25%

11월 2주차

42.3%

42.3%
30.6%
1.6%
1.3%
24.2%

11월 3주차

41.5%

41.5%
32.5%
1.7%
0.8%
23.5%

11월 4주차

45.3%

45.3%
38.9%
0.8%
0.6%
14.4%

12월 1주차

47.2%

47.2%
39.9%
1%
0.6%
11.3%

12월 2주차

46.4%

46.4%
42%
1.7%
1%
8.9%

12월 3주차

47.9%

47.9%
41%
1.4%
0.8%
8.9%

12월 4주차

51.1%

51.1%
33.3%
1.1%
1.6%
12.9%

2011년 ◀ ▶ 2013년
이 자료는 리얼미터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2012년 정당 지지도 주간집계 결과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10. 둘러보기[편집]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계파 역사

[ 펼치기 · 접기 ]
자유당 창당 ~ 사사오입 개헌
대한국민
국민회
원내자유당
원외자유당
사사오입 개헌 ~ 4대 총선
국민회
이재학계
이승만계
이기붕계
4대 총선 ~ 4.19 혁명
이재학계
이승만계
이기붕계
4.19 혁명 ~ 5.16 군사정변
전진한계
헌정동지회
자유당
5.16 군사정변 ~ 민주공화당 창당
정치 활동 금지
민주공화당 창당 ~ 민정이양
한독당
자유당
박정희계
김종필계
민정이양 ~ 3선 개헌
한독당
자유당
반김
박정희 친위
김종필계
3선 개헌 ~ 7대 대선
반김
박정희 친위
김종필계
7대 대선 ~ 10월 유신
반김
박정희 친위
김종필계
10월 유신 ~ 10.26 사건
공화
유정회
김종필계
민정회
10.26 사건 ~ 5.17 내란
공화
5.17 내란 ~ 12대 대선
정치 활동 금지
12대 대선 ~ 6월 민주 항쟁
한국
민정
6월 민주 항쟁 ~ 3당 합당
공화
민정
3당 합당 ~ 14대 총선
상도동계
청구동계
민정계
14대 총선 ~ 자민련 창당
상도동계
새한국
신정
국민
청구동계
민정계
자민련 창당 ~ 신한국당 당명변경
상도동계
신민당
자민련
민정계
신한국당 당명변경 ~ 15대 총선
신한국
자민련
민정계
15대 총선 ~ 한나라당 창당
상도동계
이회창계
자민련
민정계
한나라당 창당 ~ 15대 대선
민주계
상도동계
국민
이회창계
자민련
민정계
15대 대선 ~ 3회 지선
민주계
이회창계
민국
한국
자민련
민정계
3회 지선 ~ 16대 대선
민주계
이회창계
민국
자민련
민정계
한미연
16대 대선 ~ 17대 총선
통합
민주계
이회창계
민국
하나로
자민련
민정계
친박
17대 총선 ~ 17대 대선
중심
소장파
민주계
이회창계
자민련
친박
17대 대선 ~ 18대 총선
중심
이회창계
친이
친박
18대 총선 ~ 새누리당 당명변경
국민련
선진
친이
친박
새누리당 당명변경 ~ 19대 총선
민주계
선진
생각
친이
친박
19대 총선 ~ 18대 대선
선진
비박
친박
18대 대선 ~ 새누리당 분당
비박
친박
새누리당 분당 ~ 자유한국당 당명변경
바른
늘푸른
비박
친홍
친박
친조
삼성동계
자유한국당 당명변경 ~ 바른미래당 창당
바른
통합파
늘푸른
비박
친홍
친박
새누리
바른미래당 창당 ~ 바른미래당 분당
호남계
손학규계
친안
친유
복당파
친홍
친황
친박
애국
바른미래당 분당 ~ 미래통합당 창당
바른
새보수
전진
친무
친홍
친황
친박
통일
공화
미래통합당 창당 ~ 21대 총선
국민
통합
경제
친박
공화
21대 총선 ~ 국민의힘 당명변경
국민
통합
국민의힘 당명변경 ~ 20대 대선 ·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국민
국민의힘
20대 대선 ·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 8회 지선
친안
친유
친윤
친홍
8회 지선 ~ 현재
비윤
친윤
정당별 계파 (기타 진보정당 · 진보 · 정의 · 민주 · 민생 · 국민의힘 · 극우정당)
계파 역사 (진보정당 · 민주당계 · 보수정당)





''' 2004.5.30. ~ 2008.5.29.'''

[ 임기 개시 ]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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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석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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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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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석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svg

9석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_축약.svg

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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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

무소속

2석

재적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580009; font-size: .8em"
299석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33.3%; margin: 0 -10px"
[ 후반기 개시 ]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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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석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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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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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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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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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석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_축약.svg

1석

무소속

2석

재적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580009; font-size: .8em"
297석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33.3%; margin: 0 -10px">
[ 임기 종료 ]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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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석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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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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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석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svg

7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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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석


파일:창조한국당 흰색 로고.svg

1석

무소속

17석

재적

295석

{{{#!wiki style="font-size: .8em"
제국 중추원 · 임시의정원
제헌 · 2 · 3 · 4 · 5민 · 5참 · 6 · 7 · 8 · 9 · 10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008.5.30. ~ 2012.5.29.'''

[ 임기 개시 ]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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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석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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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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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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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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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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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석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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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580009; font-size: .8em"
299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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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반기 개시 ]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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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석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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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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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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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 종료 ]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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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석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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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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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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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석

무소속

29석

재적

291석

제국 중추원 · 임시의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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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민중심연합과 자유선진당이라는 이름으로 신설 합당을 했기 때문에, 2008년 창당한 자유선진당과 신설 합당하여 생긴 자유선진당은 엄밀히 말하면 다른 정당이다.[2] 공고[3] 다만 신민주공화당이나 자유민주연합 시절과 다르게 보수적인 색채는 약했다. 이회창은 한 때 그가 상도동계와의 관계가 최악이라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 민정계에서 전략적 지지를 보낸 적은 있으나 그와 별개로 이회창 개인의 성향은 중도 성향에 훨씬 가까운 인물이다.[4] 대전광역시장, 세종특별자치시장.[5]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대표의 의원직 상실과 심대평 전 대표의 탈당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2석을 잃었다.[6] 이는 전신인 신민주공화당 시절에도 그랬다.[7] 이럴 때는 열린우리당 - 민주당이 소폭 우세했다.[8] 18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은 인물들을 전부 공천에서 탈락시켰는데 알선수재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공천에서 탈락했다. 당연히 한나라당에는 갈 수 없으니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려고 자유선진당으로 이적한 것.[9] 당시 충북은 민주당이 총 8석 중 6석이라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이은 대승리를 거두었다.[10] 당 내 세력간의 구성과 갈등은 구성 세력 문단 참고.[11] 당시 자유선진당,친박연대,친박 무소속이 출마하여 보수표를 상당히 잠식했고, 덕분에 일부 선거구에서는 민주당이 어부지리로 당선되기까지 했을 정도였음에도 한나라당만의 의석으로도 과반을 찍을 정도였다.[12] 그나마 참여당은 유시민존재감이 컸으며, 진보신당도 노심조와 야권통합으로 자주 언급되었다.[13]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규택 대표가 탈당한데다가 서청원 대표는 공천헌금 사건으로 인해 당적을 가질 수가 없어서 2010년부터 해산시까지 2년간 노철래 원내대표가 당 대표 직무대리를 맡았다.[14] 창조한국당은 문국현의 의원직 상실 이후로 문국현계(공성경 등)와 비주류(이용경 등)가 내분을 일으켜서 사실상 잊혀져갔고, 친박연대도 구성원들의 연이은 한나라당 복귀와 서청원의 구속과 한나라당과의 합당결의 및 한나라당의 유승민을 위시로 한 친박의 부활로 인해서 잊혀져가던 상황이었다.[15] 이용희, 권선택, 이상민 같이 민주당에서 넘어온 진보~중도성향 국회의원들과 이회창, 이인제 같은 보수성향 국회의원들이 한 당에 있었다.[16] 변웅전이 해당 발언을 하기 무려 11년 전이었던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노무현이 부산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했던 허태열은 당시에도 크게 욕을 먹었음은 물론, 해당 발언을 한 지 2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노무현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노력이 언급될 때마다 같이 언급되면서 까이는 신세가 되었다.[17] 초대 최고위원이었고,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서울 양천구 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정계를 은퇴했다.[18] 대다수의 친박계가 백의종군하거나 친박연대로 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친박 주류인 서청원, 최경환과의 연관성도 적고, 인지도도 없어서 그런지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을 맡은 것이 전부.[19]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경남지사직을 사퇴하고 2004년에 열린우리당으로 가서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 이후 탈당으로 의원직 상실.[20] 이용희, 이상민 의원은 당시 통합민주당 소속이었으나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하여 당적을 옮긴 것으로 다른 민주당계 탈당자들에 비해 합류가 늦은 편이다. 이를 두고 이삭줍기라는 비판이 있자 이회창이 이삭줍기가 아닌 보석줍기라고 대응한 건 유명한 일화. 이 두 명은 후일 자유선진당이 몰락할 즈음에 다시 민주당으로 복귀한다.[21]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쪽도 열린우리당 출신이다. 대전광역시장 공천을 못 받자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찍 열린우리당을 이탈한 것.[22] 당시 충남에서 자유선진당이 아닌 지역구로는 민주당의 1석(천안시 갑), 그리고 당시 무소속의 이인제(논산ᆞ계룡ᆞ금산)였다. 대전에서는 민주당이 1석을 차지했다.[23] 보은군·옥천군·영동군이용희. 그나마도 애초에 민주당계 정당에 오래 몸 담은 열린우리당 탈당파 출신이고, 이후에 다시 민주당계 정당으로 가서 사망하는 날까지 쭉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였다.[24] 이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영남권의 총선 결과이다. 대선 때는 20% 안팎의 표를 이회창에게 던진 영남에서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의 득표율이 5%도 넘지 못했고, 대신 친박연대가 역시 20% 정도의 득표율을 올렸다. 대선 당시 박근혜 지지층이 일부는 이명박, 일부는 이회창 지지로 갈라졌다가 총선에서는 다시 친박연대로 결집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25] 충남권의 지지세는 보존했으나, 충북을 포함한 나머지 지역들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고 이 때문에 대선 때와 비교하여 득표율이 반토막이 났다. 참고로 직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올린 15.1%의 득표율이 총선 때에도 이어졌다면 최소 4석의 의석이 추가되므로 선진당은 무난하게 원내교섭단체가 될 수 있었다.[26] 그나마 춘천시에서 당선권에 근접하긴 했으나, 결국은 한나라당 현역 의원이던 허천에게 패했다.[27] 당시 비례대표에서는 원내 제 1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보다 많은 표를 받아 전국 2위를 기록, 총 13석이나 획득했다.[28] 16대[29] 박성범 의원의 아내[30] 12, 13, 14, 15, 16대[31] 17대[32] 이후 대전광역시장 역임[33] 15, 16대[34] 17대[35] 이후 19, 20, 21대 총선 당선[36] 12, 14, 15, 16대[37] 15대[38] 16대[39] 이후 경기도의원 당선[40] 16대[41] 16대[42] 14대[43] 14, 15대[44] 충북도지사를 역임한 정우택과는 동명이인이다[45] 9, 10, 12, 17대[46] 17대[47] 이후 천안시장 역임[48] 17대[49] 17대[50] 이후 19, 20, 21대 총선 당선[51] 15, 16대[52] 15, 16대[53] 17대[2009] A B C [54] 11, 13, 14대[2010] [55] 창조한국당의 세력이 미미했지만 사실 아쉬운 쪽은 자유선진당이었기 때문에 원내대표 임기를 길게 정해준 것.[56]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57] 당시 언론에선 문국현의 정치적 자살이라 평하기도 했다.[58] 18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 재구성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의석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자신들 몫으로 보건복지위를 가져올 것을 주장했으나, 야당들이 반대했고, 결국 민주당과 합의를 거쳐 후반기에도 보건복지위를 선진당 몫으로 주기로 했다.[59] 운영위(홍준표), 정무위(김영선), 기재위(서병수), 정보위(최병국), 국방위(김학송), 행안위(조진형), 문광위(고흥길), 외통위(박진), 국토위(이병석), 예결위(이한구), 윤리위(심재철)[60] 법사위(유선호), 교과위(김부겸), 지경위(이종걸), 농수산위(이낙연), 환노위(정장선), 여성위(신낙균)[61] 강삼재는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희대 동문이었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이상돈은 국민의당 소속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다.[62] 이상돈 교수의 글에 따르면 자신은 대변인직을 받은 대신 비례대표에 공천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상돈 교수는 당선권 내에 공천될 것이라고 믿었다가 공천 결과가 다르게 나오자 실망한 것 같다.[63] 세종특별자치시 수정안, 충청권 총리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이회창 총재와의 불화가 있었다.[64] 판사 출신이었다.[65] 이 곳은 염홍철 전 시장과 박성효 현 시장의 리벤지 매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에 염홍철 시장(열린우리당) 휘하에 있던 박성효 정무부시장이 한나라당으로 들어가 지선에 나오면서 사이가 험악해졌다. 그 상황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과 "대전은요" 발언을 통해서 박성효가 이겼다.[66] 다만 박성효가 대전광역시장을 4년간 하면서 각종 사업들을 호구 마냥 털려서 평판이 상당히 나빴던 것 덕분에 염홍철의 복귀가 먹힌 점도 있다. 이 시절의 행보 때문에 박성효는 대전시장에 출마하는 족족 낙선하고 있다.[67] 이후 박상돈은 체급을 낮춰 천안시장 선거에 도전했고 첫 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두 번째 도전에서 당선되었다.[68]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전시장에 당선되었으나, 2004년에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고, 2006년에 열린우리당 디버프를 제대로 받아서 낙선하고, 2008년에 권선택, 이상민 등과 비스무리한 시기에 자유선진당 입당.[69] 배우 심은하의 남편. 대표적인 이회창 라인으로 뽑힌다. 이후 합당 과정에서 새누리당에 합류하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중구·성동구 을에 공천을 받아서 당선되지만, 이회창 전 총재가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길 때에 동행한다.[70] 이후 지상욱은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다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중구·성동구 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원내에 입성했다. 이후 바른정당에 입당하고 현재는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을 거쳐 국민의힘 소속이다.[71] 심대평의 국민중심연합이 공주시 1곳에서 승리한 게 전부였다.[72] 이 지역들의 별명이 이용희 나라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이용희 의원과 같은 당이면 사실상 누구나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이용희 전 의원이 정계를 은퇴한데다가 이용희 의원 아들을 상대로 연거푸 승리를 거둔 박덕흠이 내리 3선을 해버린 지금 시점에서는 옛날 이야기지만...[73] 이 때 당선자는 빙그레 회장 김호연. 18대 총선 당시에는 패했지만, 이번에는 승리했다.[74] 은평구 을 지역구 의원이 문국현인데, 문국현의 의원직 상실로 치뤄진 보궐선거에서 은평구 을에서 내리 3선을 했던 한나라당 후보이자 친이계 실세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당선되었다.[75] 당시 3선. 물론 7선의 조순형과 5선의 이용희라는 두 거물이 있었지만 민주당계 출신이던 이 둘은 나서지 않았고 이들 다음으로 선수가 높았던 변웅전 의원이 대표로 추대되었다.[76] 다만 이회창이 당 내에서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이었다고는 해도 중간에 공기업 사장을 하느라 지역구를 비운 홍문표에 비해 인지도나 인기가 더 강력했기 때문에 출마했어도 승리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77]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서 이회창 지지를 선언한 자민련 의원들이 줄줄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을 생각하면 비슷하다.[78] 이 때 김창수도 복당을 시도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혼자만 복당이 거부되었다. 당시 대덕구 당협위원장이던 박영순과 사이가 나빴던 것이 원인으로 추정.[79] 당시에 TK를 상징하는 인물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인 박근혜였으니 말 다했다.[80]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81] 다만 이용희 의원의 아들인 민주당 이재한낙선했는데, 당시에는 지역구 세습에 따른 비판이 더 컸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정치신인 박덕흠이 당선됐다. 또한 옥천군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모친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인지라 새누리당이 표를 좀 더 얻은 것도 있다. 이 구도는 지금도 굳어져서 20대 총선에서도 또 이재한 후보가 박덕흠 의원에게 패했고, 21대 총선에서는 아예 공천조차도 받지 못했다. 박덕흠이 3선 중진이 된 것은 덤.[82] 물론 진보세력과 참여계가 통합하면서 지지율이 쏠린 것과 선진당의 민주당 출신 의원들과 이회창계가 이탈한 것을 감안해야 한다.[83] 심지어 통합진보당이 충북에서 지지율이 높았냐면 그것도 아니었다.[84]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게 썰린 자유민주연합을 생각하면 쉽다.[85] 훗날 명색이 텃밭이라는 호남에서 민주당에 완전히 썰려버린 민생당과 유사하다. 두 당 모두 지난 총선 때 돌풍을 일으켰다가 내부 계파 갈등이 일어나 지방선거에서 완패한 후 다음 총선 때 더욱 크게 참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86] 18대[87] 17,18대[88] 이후 민주당 복당 후 대전시장 역임[89] 15,16,18대[90] 16대[91] 17,18대[92] 13,14대[93] 17,18대. 다만 2010년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서 현직 국회의원이 아니었다.[94] 이후 천안시장 역임[95] 17,18대[96] 18대[97] 이후 20,21대 당선[98] 13,14,16,17,18대[99] 13,14,15대[100] 17,18대[101] 이 말인 즉슨 자유선진당에서 이회창을 빼면 정치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102] 당초 불출마를 선언했던 변웅전은 비례대표 4번으로 공천. 만일, 자유선진당 출신 비례대표 의원 1, 3번 중 하나가 사퇴했더라면 승계를 받아 변웅전은 4선을 할 뻔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103] 당초 서울 중구에 조순형 상임고문을 전략공천할 계획이었으나 3월말에 공천을 반납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이 때 그는 왕년의 동지 정대철의 아들인 정호준 지지를 표한다.[104] 그나마도 이진삼은 공천에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했다. 그러나 선진당 홍표근 후보와 아예 한 자리수의 득표율을 득표한 이진삼의 표를 합쳐도 당선자였던 새누리당의 김근태보다 한참 밀렸다. 정작 김근태도 1년만에 의원직을 잃는 바람에 이 자리는 자민련 출신 친박계 거물인 이완구가 차지한 상태.[105]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역임.[106] 이후 탄핵 정국에서 개표함을 집어던진 것이 이슈가 되자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려 했으나 결국 불출마했다.[107] 송석찬 前 의원은 원래는 오랜 동교동계였다. 16대 총선 전후로 새천년민주당 소속. 당시 자유민주연합은 참패하여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다. 민주 - 자민련, 즉 DJP 연합은 일단은 한번 깨진 상태였으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견제하기 위해 '공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송석찬 후보와 충청권 2명의 의원을 탈당시켜 자민련에 입당시키는 '의원 꿔주기'를 시전한다. 이때 송석찬이 남긴 불후의 유행어'한 마리 연어 되어 (민주당으로) 돌아가겠다'(...) 나중에 자민련의 강창희 의원[105]이 이에 반발해 출당되면서 한 명 더 보내야 했다. 송석찬은 나름 충정으로 맡은 고육지책이었으나, 결국 이로서 철새 정치인으로 이미지도 구긴데다가 설상가상으로 16대 대선 당시 후단협 활동까지 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고 말았다. 그래서 17대 총선에는 나오지도 못 했고[106] , 이후 지방선거에서 구청장 공천도 못 받는 바람에 이리저리 원외 신세를 돌고 고깃집을 운영하다가 이상민 의원이 나간 뒤에야 돌고돌아 간신히 민주당에 복당한 상황이었다.[108] 지방행정가로서의 심대평은 전설을 쓴 인물이었다. 하지만 중앙정치인으로서의 감각은 영 시원찮았다는 것이 중론.[109] 17대 총선에서 전국구 1번을 고수한 김종필 수준이었다.[110] 이해찬 전 총리는 관악구 을에서 13~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111] 이해찬 이후 구민주계 출신 김희철관악구청장이 18대 의원을 지냈고,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대표인 이정희가 단일 후보로 나가나 싶었지만, 여론 조작 논란에 사퇴하고 이상규를 내보내서 이상규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상규는 통합진보당 해산에 따라서 의원직을 잃고,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정태호이해찬의 적인 정동영을 꺾고, 새누리당 후보오신환이 당선되어 27년만에 보수정당 의원이 관악구 을 국회의원직에 앉게 되었다.[112] 자유선진당 세력을 흡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정확히 말해서는 새누리-선진 합당 후 선진계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거 공천 배제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동한 것. 실제로 이 당시에 모든 충청권 광자단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승리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때 비노계의 일원으로서 국민의당으로 이동했고, 그 후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을 통해 대부분의 인사가 다시 바른미래당으로 이동했다.[113] 원조 동교동계로써 새천년민주당이 자민련에 꿔준 인물.[114] 이후 총재직 폐지.[115] 이회창 총재가 총재직을 대표최고위원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심대평 이후 대표최고위원직이 없었다.[116] 불확실. 당시 원내대표로 재직 중이라 4일 동안 김낙성 당시 원내대표가 대행직을 수행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117] 엄밀히 말하면 5월 30일 제19대 국회가 개원했고 선진통일당으로의 당명 변경은 5월 29일날 이루어졌기에 김낙성은 딱 하루 선진통일당의 제18대 국회 원내대표였다.[118] 홍관희, 조영환, 최우원 등[119] 이회창이 '축출'되었다는 견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회창은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대표적 사례로, 19대 총선에서 이회창 전 대표의 오랜 측근이었다가 심대평 대표와 손을 잡고 이회창의 정계 은퇴를 주장한 사람이 있었는데, 논란이 불거지자 심대평 자신이 무시하고 이회창을 칭찬하며 무마해버렸다.[120] 다만 충남 지사로 출마했던 박상돈 의원의 경우 열린우리당 소속이었으나 당시부터 가장 보수적인 의원으로 손꼽혔고, 그래서 특별한 돌발 행보를 보이진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로 정계를 떠나기 까지 의원 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박상돈은 합당과정에서 당적을 옮기지 않았고 2020년 재보궐선거에서 미래통합당(舊 새누리당) 소속으로 천안시장직에 당선되며 정계로 복귀한다.[121] 아이러니 하게도 그 개혁행보를 펼치던 신한국당의 중심에는 이회창이 있었다.[122] 정계에서의 어설픈 행보는 심대평 본인도 아쉽게 생각하는지 본인을 정치인이 아닌 행정가로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는 회고를 남겼다.[123] 정확히 말하면, 중간에 신계륜의 의원직 상실로 벌어진 보궐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어서 구 민주계의 주주로 부활하나 싶었지만, 17대 대선 경선레이스에서 민주당(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결정된 이인제와의 갈등으로 탈당해서 선진당으로 들어갔다. 이후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되어 7선에 성공했다.[124] 애초에 조순형은 민주당계 의원이다.[125] 19대 총선에 서울 중구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새누리당 정진석(정석모 국회부의장 아들)과 민주통합당 정호준(정대철 전 의원 아들), 선진당 조순형(조병옥 전 대선후보 아들)의 대결로 인해서 생긴 '2세 정치인의 대결'이란 말에 스스로 사퇴, 양보하고 의원직 임기를 종료한 후 정계를 은퇴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조순형 의원은 이인제와도 악연이 있다. 민주당(2007년) 항목 참조.[126] 현재의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은 상당히 보수적인 정당이었다. 동교동계 정치인들은 이념이나 행보만 놓고 보면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았고 15대 대선을 전후해서 영입된 인사들과 한나라당에서 빼온 인사들까지 있으니 보수적으로 변했을 정도. 이후 열린우리당 분당 및 합당을 거치면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386 세대 정치인들이 주류가 되고 야권 대통합이라는 명분 아래에서 박용진 같은 진보성향의 인사들을 영입했고, 반면 보수적인 인사들이 정계은퇴, 국민의당 분당 등을 통해 나가면서 현재와 같은 성향으로 이어진 것.[127] 충청남도 공주시 제1선거구, 충청남도 부여군 제1선거구[128] 충청남도 천안시 다, 바선거구[129] 충청남도 연기군수[130] 충청남도 연기군 가선거구, 충청남도 홍성군 라선거구[131] 충청남도 태안군수[132] 충청남도 보령시 가선거구, 충청남도 부여군 나선거구, 충청남도 서천군 가선거구[133] 충청남도 당진군 가선거구[134] 세종특별자치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