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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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YSLER
크라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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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명
스텔란티스 노스 아메리카
Stellantis North America
설립일
1925년 6월 6일
본사 소재지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미시간디트로이트 오번 힐스
핵심 인물
크리스틴 퓨엘 (CEO)
마크 스튜어트 (COO)
기업구분
대기업
모기업
스텔란티스
업종
자동차 제조업
공식 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미국에서 만듭니다. (America's Import).

현재 브랜드 슬로건

1. 개요
2. 연혁
3. 상세
4. 대한민국과의 관계
5. 생산 차량
6. 단종 차량
7. 컨셉트카
8. 계열사
8.1. 현재
8.2. 과거
9. 묘한 튜닝문화
10. 여담
11.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미국자동차 회사. 포드 모터 컴퍼니, GM과 함께 미국 자동차 업계 삼대장이다. 적어도 그랬었다. 이 삼대장이 손잡고 영화 터커로 알려진 프레스턴 토머스 터커(1903~1956)의 터커 모터스[1]를 뭉개 버린 흑역사도 존재한다.

그룹으로서의 크라이슬러는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1998년까지 존속했다가 다임러벤츠와 합병, "다임러크라이슬러"로서 2007년까지 유지되었으며 다임러로부터 매각되어 2009년부터 서서히 피아트에게 지분이 잠식되었고, 2014년 공식적으로 인수되어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의 북미 지사가 되었다. 이후 FCAPSA 그룹스텔란티스로 합병됨에 따라 현재 스텔란티스 소속이 되었으며, 크라이슬러라는 이름은 그룹 산하의 브랜드로만 남아있다.

브랜드로서의 크라이슬러는 가격 대비 앞선 수준의 기술력을 내세우던 매스티지 브랜드로 운영되었으며, 같은 계열의 브랜드로 닷지, 지프, SRT[2] 등이 있다. 염가의 보급형 브랜드 플리머스, 중산층 대상의 드 소토(De Soto), AMC의 후신이자 수입차 브랜드와 경쟁하는 포지션의 이글, 그룹 최상의 프리미엄•럭셔리 브랜드 임페리얼도 있었지만 폐지되었으며, 지프AMC로부터 인수했다. 현재는 닷지, 크라이슬러, 지프의 3사 형태로 밀고 나가고 있는 중이며 크라이슬러는 미니밴 전문 브랜드로, 각각 닷지는 퍼포먼스카 및 기타 대중차 브랜드, 지프는 SUV 및 오프로드 전문 브랜드로 구성하고 있다.

1962년부터 그룹 차원에서 쓰던 오각별 마크 "펜타스타(Pentastar)"가 한때 유명했고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크라이슬러는 물론 닷지, 플리머스에서까지 공통으로 써 왔으나 지금은 쓰지 않는다. 1995년부터는 브랜드 설립 초창기 엠블럼을 되살린 "메달리온" 엠블럼[3]이, 그리고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부터는 여기에 날개를 추가한 날개모양 로고가 도입되었는데, 당시에는 모회사 입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삼각별과 혼동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그리 되었다고 한다. 미국 정부의 금융구제를 받던 시절에 잠시 오각별 마크를 부활시켰지만, 피아트 산하가 된 뒤로 다시 날개모양 로고를 쓰고 있다.

PT 크루저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생산 차량들의 주유구가 왼쪽에 위치해 있다. 같은 계열사인 닷지, 지프도 주유구 방향이 모두 왼쪽이다.[4][5]


2. 연혁[편집]


파일:external/www.allpar.com/chrysler_wing.jpg
2011년까지 사용한 로고
파일:Chrysler Logo.png
2011년부터 쓰는 로고

캐나다계 미국인 월터 P. 크라이슬러(1875~1940)가 1925년에 설립했다. 1921년에 월터 크라이슬러가 지분을 인수하여 운영하던 자동차 회사 맥스웰 모터 컴퍼니(Maxwell Motor Company)를 전신으로 하며, 본인 명의로 준비한 첫 신차인 크라이슬러 식스를 1924년에 "크라이슬러 B70"[6]이라는 이름으로 선공개했다. 회사 설립 첫 해동안은 맥스웰 브랜드의 차종들과 병행판매하다가 맥스웰 브랜드를 폐지하고 기존 맥스웰 차종들도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통합시켰다. 이후 1928년에 크라이슬러의 4기통 라인업을 크라이슬러로부터 독립시켜 만든 보급형 브랜드 플리머스, 중산층을 겨냥한 드 소토를 설립했으며 같은 해에 닷지 브라더스와 파고를 인수하며 상용차 시장에 진출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사이에 플리머스, 닷지, 드 소토, 임페리얼과 공존하던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설립 초창기의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임페리얼보다 한 등급 아래로서 가격 대비 높은 수준의 엔지니어링과 첨단기술을 적용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지셔닝했으며, 타 브랜드의 신차에도 경쟁차 대비 앞선 기술력을 무기로 정착시켰다. 설립 10주년 기념으로 출시한 신차 에어플로우가 설립 초창기의 크라이슬러 브랜드, 그리고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추구한 개발철학을 보여 준 절정이었다.# 에어플로우는 공기역학 중심의 현대적인 외장 디자인, 당대의 통상 승용차보다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승차감과 무게배분, 그리고 프레임이 탑승공간 전체를 감싸는 골격구조로 인한 높은 안전성으로 고객을 모으고자 했으나 이질적인 스타일링, 비싼 가격, 초창기의 품질불량 문제로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이후에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해 스타일링과 편의성 중심으로 흘러가던 1940~50년대 자동차 트렌드도 반쯤 무시하고 엔지니어링과 내구품질에만 몰두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중후반기와 1960년대에는 설립 초창기처럼 혁신적인 이미지를 다시 심으며 잘 나갔다. 회사의 초대 수석디자이너로 부임한 버질 엑스너가 엔지니어들이 스타일링까지 맡았던 크라이슬러의 회사 분위기를 바꿔가기 시작하면서 1955년형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차종들의 공통 디자인 테마인 "원 헌드레드 밀리언 달러 룩"과 그 후신으로서 1957년형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차종부터 적용되는 공통 디자인 테마인 "포워드 룩"[7]을 만들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기술적으로도 300C에 들어가는 고성능의 헤미 엔진과 1957년식 임페리얼에 적용되는 미제차 최초의 곡면 옆유리, 1958년식 임페리얼을 통해 데뷔한 케이블식 크루즈 컨트롤, 임페리얼 외의 1960년식 라인업부터 적용된 대량생산 유니 바디, 1960년식 밸리언트에 도입된 업계 최초의 알터네이터, 1962년의 가스터빈 자동차처럼 실험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1960년대에도 계열사인 닷지, 플리머스를 통해 머슬카 시장에 진출하여 흥행했지만 1960년대 후반 들어 그룹 차원에서의 마케팅 전략 실패로 판매 부진을 겪으며 고전하였다.[8][9]

1976년, 포드에서 명성을 쌓다가 헨리 포드 2세와의 갈등으로 해임된 리 아이아코카가 사장으로 영입되었다. 아이아코카는 먼저 35명에 달하던 부사장급 임원 중 33명을 자르고 그가 일했던 포드 출신을 포함한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하였다. 더불어 노동조합을 설득하여 2번이나 임금 삭감을 이끌어 냈으며, 1980년 한 해만 1만 5천 명의 정규직원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5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 절감을 이루었다. 그리고 워싱턴 D.C.에 가서 상원, 하원 청문회에 불려 다니며 노력한 결과, 연방 정부로부터 15억 달러 규모의 융자금 보증을 얻어 냈다.[10] 이런 노력 끝에 1982년 여름, 부채 15억 달러를 일시에 갚고 7억 달러의 순이익을 남기는 신화를 일궈 냈다. 5% 삭감했던 노동자 연봉도 원래 수준으로 올려 놓았고 해고했던 직원들의 상당수도 다시 불러들였다. 신차 라인업에서도 크라이슬러 K-플랫폼으로 대표되는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 기반의 컴팩트카를 키워 1980년대 초 미국의 경제 불황기를 돌파했는데, 이 시절 나온 대표적인 작품이 미니밴인 닷지 캐러밴이다.[11][12][13]

1980년대 후반에는 람보르기니AMC/지프를 인수할 정도로 정상 궤도를 달릴 수 있었고, 고수익성 브랜드로 자리잡은 지프와 함께 중형 컨버터블,[14] 미니밴 등의 시장에서 꾸준한 수요를 유치할 수 있었다. 1992년 아이아코카가 은퇴한 뒤에는 로버트 이튼 회장[15]밥 루츠 등의 경영진들이 회사를 이끌면서 캡 포워드 스타일과 탁월한 성능을 지닌 신차들, 세로배치 전륜구동 구성의 크라이슬러 LH 플랫폼과 미니밴 패키징으로 대표되는 각종 기술력, 그리고 AMC 인수 이후 AMC로부터 이어받은 유연한 기업문화와 신차개발 과정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16] 당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미국에서 수익성이 가장 좋은 축이면서도 크라이슬러 자체 브랜드만이 아닌 닷지, 플리머스 등으로도 눈에 띄는 제품들을 내놓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흥행 가도를 달렸다. 크라이슬러 자체 브랜드는 세브링 컨버터블과 미니밴 타운 앤 컨트리/그랜드 보이저가 판매고를 꾸준히 올려 주었다. 또한 1977년 이후 철수했던 유럽 시장에도 1980년대부터 재진출해 비전, 네온 등을 수출하고 지프 SUV와 미니밴을 유럽에서 현지생산하여 파는 노고를 보이기까지 했다.

1988년에는 알파 로메오의 모회사인 피아트가 크라이슬러로부터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하고 1995년에는 크라이슬러와 피아트 간에 상호합의에 이르게 된다. 두 회사 간의 접촉은 1990년 아이아코카 회장과 피아트의 지오반니 아넬리 회장의 미국과 유럽 합작 투자 설립과 피아트의 크라이슬러 지분 인수 가능성에 대한 고위급 회담으로 이어졌지만, 얼마 안가 대화가 종료되고 만다.[17]

그러나 고질적인 품질 문제로 무상수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1998년 이튼 회장의 주도 하에 품질 문제를 해결하고자 메르세데스-벤츠로 유명한 다임러 벤츠와 합병해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되었다.[18][19] 애초 동등한 합병을 모토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으나, 어느 새 다임러가 점령군이 되어 독일 문화를 마구 주입한 결과 융화 실패했다. 다임러 휘하에서 각종 경직된 개발절차가 도입됨에 따라 AMC 인수 이후 1990년대 내내 존재했던 크라이슬러의 유연한 기업 분위기가 없어져 버렀으며, 품질 문제도 원가절감을 강요받는 바람에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당시 크라이슬러에서 일한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다임러 출신 임원들은 크라이슬러 임원들을 하대하고, 이들의 의견을 흘려듣고 무시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며 또한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사항들이 여럿 있었던데다가 다임러의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을 낸 인사들이 얼마 안 가 퇴출당했다는 제보도 나오는 등, 제대로 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크라이슬러가 기존에 보유하던 제품 개발 팀까지 반쯤 와해되는 사태[20]가 벌어질 정도로 답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밥 루츠, 프랑수아 카스탱, 톰 스톨캠프, 크리스 시어도어같은 부흥기 시절 인재들이 크라이슬러를 떠난 것도 다임러크라이슬러 초반의 일이었다.#[21] 브랜드로서의 크라이슬러 역시 그룹 내의 보급형 브랜드 플리머스가 폐지되자 보이저, PT 크루저같은 플리머스 계열 차들이 라인업에 편입되는 등, 사실상 플리머스의 자리까지 대체하는 대중차 브랜드로 격하되었다.

결국에는 위와 같은 이유로 심각한 내상을 입은 다임러에서 크라이슬러를 뱉어내기로 결정했으며, 2007년에는 케르베로스 캐피탈 매니지먼트라는 사모 펀드 업체에 팔렸다가[22][23]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제너럴 모터스와 함께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고 2009년 4월 30일 챕터 11 파산보호를 신청해 겨우 살아남다가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와 제휴를 맺기 시작하여 2011년 상당수의 지분을 매각했고, 2014년 1월에 피아트 계열로 완전히 편입됐다.

2021년 1월, 스텔란티스가 성립되자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존속이 확정되었다. 닷지, 램과 함께 미국 브랜드 3종으로 분류되었으며,[24]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닷지를 담당하고 있는 팀 쿠니스키즈가 수장 자리를 같이 담당하게 된다.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과 정체성이 불투명한 탓에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존속 가능성이 미국의 크라이슬러 계열사 딜러점 내에서 화제가 되자, 카를로스 타바레스 회장은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푸조, 피아트와 함께 스텔란티스의 대들보격 브랜드이자 한때 미국에서 가장 최고의 기술, 미국 기술의 상징이었던 브랜드임을 잊지 않았다며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존속 및 개편을 공언했다.#

2021년 7월 8일, 스텔란티스가 EV 데이를 통해 각 브랜드 전동화 비전을 공개할 때 크라이슬러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으나 에어플로우 비전 컨셉트카의 양산화 버전의 미리보기격으로 보이는 컨셉트카가 등장했다. 북미 및 남미 지부의 수석디자이너 랄프 길즈가 이 컨셉트카를 타고 등장했다. 이 컨셉트카는 같은 해 12월의 "소프트웨어 데이"를 통해 에어플로우라는 이름으로 정식 공개되었다.#

2021년 9월,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CEO로 포드, 존슨 컨트롤즈(현 에디언트), 하니웰 인터네셔널 출신의 크리스틴 퓨엘(Christine Feuell)을 임명했다.# 2022월 1월 5일 CES를 통해 에어플로우 컨셉트카의 공식 런칭 및 전시, 그리고 크리스틴 퓨엘의 첫 공개활동이 이루어졌다. 브랜드로서의 크라이슬러를 "주류 시장에 혁신을 가져오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낸" 혁신 브랜드로 정의했으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25년에 첫 전기차 라인을 출시하고 2028년부터는 전기자동차만을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는 디트로이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크라이슬러가 지속가능성과 기술력을 토대로 고객 입장에서 보다 접근 가능하고 필요에 맞는 형태로 제품군을 변화시켜나갈 예정이며, 미니밴과 300뿐이었던 2010년대~2020년대 초까지의 "패밀리카" 이미지 이상으로 고객층을 확대하고 고속충전 기술을 비롯한 전동화 기술력으로 차별화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계획이 최종 확정난 것은 아니지만 라인업에 대해서는 300과 퍼시피카를 통해 이미 진출한 대형 세단, 미니밴 등의 세그먼트를 재정의하고, 고객층은 퍼시피카 PHEV의 고객층으로 부상한 도심지 및 외곽지에 거주하는 대졸자 학력의 밀레니얼 세대 여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는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연간 1차종씩 전기자동차 전용 신차를 출시하고, 기술에 관심이 많은 고객층들을 크라이슬러로 유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텔란티스 휘하의 첫 전기차 에어 플로우의 컨셉트카를 발표했는데 뒷부분이 포르쉐 카이엔과 완벽하게 똑같다.# 크리스틴 퓨엘 현 CEO는 에어플로우가 양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이름 자체가 계승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차기 라인업으로는 전기 미니밴과 SUV를 약속했고, 크라이슬러 300에 대해서는 단종만 확답한 채 말을 아끼며 SUV에 대한 설명에 집중했다고 모터 트렌드가 전혔다.#

현지시간 2022년 4월 13일, 뉴욕 오토쇼에서 에어플로우 컨셉트카의 업데이트 사양이 공개된다. 날개 모양 로고에 기반한 신규 엠블럼이 적용되었다.#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는 이를 통해 차기 크라이슬러의 디자인 테마를 보여주었으며, 이때 에어플로우에 대한 반응이 고객이 당장 바라던 차량이었으며 에너지가 차오르는 반응이었다고 밝혔다. 동시에 크라이슬러의 디자인 테마를 보다 현대적이고 하이테크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디지털 개인 어시스턴트를 포함해 차기 라인업에 도입할 신기술 몇몇을 검토중이며, 고객이 가치를 부여하고 사용할 만족스러운 기능을 갖추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고객만족도 항상을 위한 고객조사과정으로서 "프로젝트 인지뉴이티(Project Ingenuity)"를 출범, 현존하는 고객 및 잠재고객들로부터 신규 디자인 테마, 기술적 인터페이스, 차기제품기획 관련 아이디어 등의 피드백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는 프로젝트 인지뉴이티를 통해 고객들과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고객이 원하는 바를 차량에서부터 회사와의 관계, 고객을 대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해하여 2025년까지 고객경험을 혁신, 동급 브랜드 내 최고의 고객경험을 구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2022년 8월 1일,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가 포브스 지를 통해 브랜드 운영 계획에 대해 다시 입을 열었다.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창업주 월터 P. 크라이슬러의 발표[25]를 인용하며 합리적인 가격대이되 혁신적인 기술력과 솔루션을 제시하는 "aspirational but accessible"로 크라이슬러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이를 계승하되 현대화하여 시대에 발맞출 예정이라고 밝혔다. 향후 라인업으로는 수년간 최소 3종의 신차를 출시하되 SUV 2종을 포함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2023년 2월 14일,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는 300이 단종된 후 2025년에 신차가 추가될 때까지 1년 이상의 기간동안 크라이슬러 브랜드가 퍼시피카만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퍼시피카를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영웅으로 높게 평가하며 "미니밴 브랜드" 이상의 것을 추구하겠지만 미니밴도 라인업에 잔류할 것이라고 오토블로그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밝혔다. 2025년에 출시되는 신차를 통해 한동안 크라이슬러 브랜드가 진출한 적이 없었던 세그먼트에 진입하며,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이 비즈니스 모델로 제시한 소프트웨어 기반의 옵션구독제에 대한 입장을 묻자 잠재고객들의 반응을 인용하며 신기술의 도입은 고객의 입장에서 실익이 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현지시간 2023년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크라이슬러 300의 은퇴식을 겸하는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기념 행사인 라임 락 파크 히스토릭 페스티벌(Lime Rock Park Historic Festival)이 예정되어 있다. 미국 코네티컷 주 레이크빌에 위치한 라임 락 파크에서 크라이슬러 300의 송별회로서 1955년형 300C와 크라이슬러의 역대 콘셉트카들을 전시하고 모터스포츠 대회, 퍼레이드와 함께 스텔란티스의 수석디자이너 랄프 길즈가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다.#

2023년 11월 8일,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가 2024년 연초에 새로운 컨셉트카를 공개할 것이라고 디트로이트 뉴스에서 밝혔다. 추후 출시되는 신차는 에어플로우 컨셉트카를 참조한 스타일링에 STLA 라지 플랫폼 기반의 2열 크로스오버로 출시되며 스텔란티스가 전동화 비전 발표 당시 제시한 핵심기술인 STLA 브레인, STLA 스마트콕핏, 레벨 3 자율주행기능을 포함한 STLA 오토드라이브를 북미 차종 최초로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후 자동차 시장에 대해서는 고객이 전기차를 찾는다면 주행거리, 접근하기 쉬운 충전소, 합리적인 가격대를 원한다고 말하는 동시에 일반 승용차 세그먼트가 다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동시에 온라인 구입, 적시에 이루어지는 배송 전후의 정보전송, 가정용 충전기 설치와 유지보수 업데이트 제공, 인공지능을 활용한 고객문의 서비스를 포함해 자동차 구매 및 서비스에 해당되는 고객경험을 개발하면서 대폭적인 가격할인으로 고객을 모으되 리스 및 서비스에서 마진을 충당하던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신차리스를 장려하는 사업모델을 제안했다. 신차개발에 필요한 자원은 오펠, DS를 포함한 스텔란티스 그룹의 유럽 신차들과 공용화해 개발비를 줄이고 빠른 시판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3. 상세[편집]


크라이슬러 자체의 브랜드로는 1970년대부터 닷지에는 퍼포먼스를, 크라이슬러에는 럭셔리를 기반하는 브랜드 구축이 계속되었다.[26] 따라서 같은 플랫폼의 차종이더라도 닷지와 달리 고급 세단형 이미지가 부각된 차량을 생산하긴 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리 효과가 없었다. 고급 브랜드[27]였던 크라이슬러가 브랜드 정체성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해 시간이 지나면서 고급 이미지가 희석되는 등, 그 브랜드 자체를 운용하는 능력이 문제가 있다 보니 포드링컨이나 GM캐딜락 등에 속절없이 밀렸다는 것. 믿기 힘들겠지만, 크라이슬러 자체 브랜드는 이 브랜드들과 경쟁을 하려는 계획이었으나 결론적으로 별로 끝이 안 좋았다. 1960년에 중산층 중심의 드 소토 브랜드가 사라지자 뉴포트를 도입해 크라이슬러로 대체했으며, 이전에는 임페리얼이 크라이슬러 윗급으로 있었으나 1975년부터 크라이슬러로 흡수되었다. 또한 1960년대에도 한동안 대형차만 고집하다가 석유파동에 대응하고자 중형차인 코르도바를 시작으로 중~소형 라인업을 추가하고 1977년부터는 코르도바의 하위급인 레 바론이 도입되었다. 1980년대에는 레 바론이 K-바디 플랫폼을 토대로 다운사이징을 거쳤고, 레 바론만이 아닌 뉴요커, 임페리얼도 전륜구동 K-바디 기반으로 전환해 대폭 다운사이징을 거쳤다. 이후 미국에서는 세브링, 시러스 등의 중형차 라인이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가장 낮은 마지노선이었으나, 다임러크라이슬러로 넘어가면서 PT 크루저, 보이저같은 플리머스 계열 차들까지 라인업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원가절감 문제도 다임러크라이슬러 때 심해져서 "고급" 이미지와 포지셔닝이 거의 다 사라졌다.

전반적으로 미국적인 차를 많이 만들다 보니 닷지 쪽에서는 미국차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컬럼식 자동변속기를 달고 나왔지만, 크라이슬러의 200과 300처럼 재규어-랜드로버에서 많이 이용 중인 로타리식 기어레버에 맛을 들인 이후에는 닷지도 아예 컬럼식을 버리고 센터페시아에다가 로타리식 자동변속기를 달아 놨다. 2017년 현재로서는 CES에 컨셉트카를 출품하거나 BMW-인텔, 구글 웨이모 등과 협력해서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을 위한 제휴관계를 맺는 등, 자율주행자동차 기술 및 미니밴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28] 이 때문인지 웨이모와 계약하여 퍼시피카 미니밴을 꾸준히 자율주행차 베이스로 납품하고 있으며, 2017년의 포털 컨셉트카와 2020년의 에어플로우 비전 컨셉트카도 자율주행과 인테리어 패키징 중심의 컨셉트로서 CES에 출춤했다.

포드, GM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럽 쪽의 기반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유럽 포드오펠(영국에서는 복스홀)이 각각 버티고 있었으나 그 중 오펠/복스홀은 GMPSA 그룹에 매각했다.(대신 망한 사브는 제외하자. 쉐보레대우 브랜드를 대체하여 10여년간 있었으나 2013년에 철수 결정.) 이들에 비하면 크라이슬러는 상황이 좋지 않다. 1960년대부터 영국루츠 그룹프랑스 생카 등을 인수해 유럽형 차량을 개발하고, 스페인에서 디젤엔진 제조사 바레이로스(Barreiros)와 계약해 1963년부터 현지 생산을 진행하는 등으로 유럽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본사의 경영 악화로 무산되었고, 유럽 지사를 푸조에 매각했다.[29] 그 당시 크라이슬러는 유럽 시장용 미니밴을 유럽의 회사 마트라에다가 개발 및 생산을 위탁한 후 크라이슬러의 로고를 붙여서 판매하려고 했는데, 유럽 진출이 무산되어 유럽 지부가 매각된 후 그 미니밴은 르노에 넘어가서 현재의 르노 에스파스가 되었다. 그리고 한때 벤츠와 손잡고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되었다가, 벤츠가 이 회사는 해로운 회사같다 싶어서 2007년 사모 펀드인 서베러스에다가 크라이슬러를 갖다 버렸다.[30]

그 덕에 크라이슬러의 컨버터블인 크로스파이어SLK후륜구동 플랫폼을 이용했으며, 닷지 스프린터는 아예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배지 엔지니어링도 아니고 뱃지 체인징 수준으로 출시되었다. 피아트가 인수한 후에는 크라이슬러 및 닷지의 차량을 다른 브랜드로 출시하기도 했다. 300, 그랜드 보이저, 200의 경우 란치아 브랜드로 팔았다. 닷지 저니는 피아트 프리몬트와 같은 형태로, 입실론 플랫폼의 오펠 인시그니아의 경우 뷰익 리갈로 팔리는 중이다.

국제시장에서의 크라이슬러 브랜드와 북미 내수 시장에서의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포지셔닝 자체에 차이가 있었다. 독립법인으로서의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존재하던 1960~1990년대에 미국에서는 뷰익, 올즈모빌, 링컨과 경쟁하던 매스티지 브랜드로서 크라이슬러 브랜드가 쓰였던 반면, 국제시장에서는 시작부터 대중차인 호라이즌이나 밸리언트, 네온같은 차들까지 크라이슬러 명의로 판매하여 사실상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라는 그룹 이름으로서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사용했다. 미국에서는 리 아이아코카 휘하의 1980년대부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으로서의 크라이슬러를 언급하는 마케팅 방식이 미국에서도 도입되었다.[31] 이러한 시장별 포지셔닝의 구분은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창설된 이후에 서서히 사라졌다.

커먼레일 디젤 엔진이 달린 승용 모델에는 산하 브랜드에 상관없이 CRD라고 붙는다. 주로 대한민국이나 유럽에 팔기 위해 수출용에 달리는 커먼레일 디젤 엔진은 메르세데스-벤츠제를 쓰다가, 벤츠와 갈라선 이후에는 한때 폭스바겐TDI 유닛을 이용했다. 크라이슬러 세브링 디젤, 닷지 캘리버 디젤(대한민국에는 미출시)이 폭스바겐의 2.0리터 TDI 엔진을 이용했다. 단, 자동변속기는 주로 게트락의 유닛과 맞물렸다. 현재는 4기통은 피아트, 6기통은 VM 모토리 유닛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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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품질이 영 좋지 않기로 유명했었는데다가 하필 유럽에서 마찬가지로 품질 나쁘기로 유명한 피아트에 인수되면서 미국에서 신뢰도, 품질 평가에서 늘 바닥을 친다. 이번 컨슈머 리포트 결과에서 굴욕을 맛보고 품질관리 부사장을 해고했다.

2018년부터는 닷지 브랜드와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본 등에서 파는 우핸들 사양[32]을 단종시킬 예정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시장에서는 2018년 초에 판매를 중단하며, 피아트, 지프, 알파 로메오 차종들을 대신 투입하기로 방향이 잡혔다. 반대로 호주 시장에서는 2018년 이후에도 판매 계획이 있다는 공식 발언이 있어서 변수가 남아 있다. [33][34]

2018년 5월, 크라이슬러 브랜드가 FCA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지만, 2018년 6월 초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FCA 회장은 크라이슬러와 닷지 브랜드를 계속해서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35] 2018년 12월의 어느 이메일에서는 크라이슬러가 미니밴과 크로스오버, SUV에 집중하며 300을 단종시키되 2023년까지 총 5종의 라인업을 투입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2019년 2월, J.D. 파워에서는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최근 3년 간 내구품질이 가장 크게 개선된 브랜드로 선정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품질 및 신뢰도가 나아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19년 말에는 닷지가 미국 브랜드 중 유일하게 컨슈머 리포트의 2019년 신뢰도조사 10위권에 진입했다. 단 지프나 알파 로메오 등이 신뢰도 조사에서 최하위권에 있고, 닷지 자체도 챌린저와 그랜드 캐러밴같은 사골 라인업들이 점수 개선에 기여하여 더 두고봐야 될 일이다.#

전동화 시대를 앞둔 2023년 8월, 36년간의 품질관리 업무 경력이 있는 경력자로서 7월부터 스텔란티스에 담당업무 수석으로 입사한 빌 켄달(Bill Kendell)은 모든 품질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전동화 시대에는 준비되기 전까지 신차를 출시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이 접근방식이 신차개발과정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디트로이트 부류(The Detroit Bureau) 지를 통해 밝혔다. 여기에 개발 초기 과정에 부품업체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딜러의 도움으로 예전 관행보다 일찍 품질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보증수리 비용도 보증수리 건수와 함께 정비례하여 감소했다고 밝혔다.[36]#

4. 대한민국과의 관계[편집]


의외로 대한민국과 인연이 깊은데, 엔진 개발비를 아끼기 위해서 현대/미쓰비시/크라이슬러가 각자 4, 6, 8기통 엔진을 개발하고 글로벌 엔진 얼라이언스(GEMA)라는 이름의 법인을 통해 엔진을 공유해서 각각 커스터마이징을 따로 해서 쓰기로 했다. 이 때 현대가 맡아 개발한 4기통 엔진이 바로 세타 엔진이고,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가 개발을 맡기로 했던 6기통과 8기통은 흐지부지되었다. 따라서 크라이슬러의 월드 엔진과 미쓰비시 4B1 엔진현대 세타 엔진을 기반으로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가 각각 커스터마이징한 것이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닷지 브랜드로 일부 차량을 OEM 수출하고 있으며, 4세대 그랜드 보이저의 디젤 모델이 나왔을 적에는 크라이슬러가 대형택시 기사들을 위해 현대자동차의 영업망을 통해 그랜드 보이저 디젤 택시 100대를 판매하기도 했다.

밀리터리의 경우, 크라이슬러가 대한민국 전차 개발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전차 제작 노하우를 익히는데 쓴 M48 패튼과 그 전신인 T43 전차를 개발 및 생산했고, K-1 전차와 그 전신인 M1 에이브람스를 개발하는데 관여했다.[37] 알다시피 군용 1¼톤 트럭(K-311)은 군 복무를 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닷지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실제로 이 군용차의 원형인 M37을 만든 곳이 닷지라서, 원조의 제조사 이름을 본뜬 별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92년부터 우성그룹 계열 우성타이어[38]에서 크라이슬러 및 산하 브랜드의 차량[39]을 수입하여 판매했다가 1994년에 우성유통으로 이관했으며, 우성그룹이 도산한 이후인 1996년 9월에 미국 본사에서 대한민국 법인인 "크라이슬러 한국판매"를 세우고 직판 체제로 운영 중이다.[40]

같은 식구인 피아트의 이미지가 워낙 똥망이기도 하지만, 크라이슬러도 이미지는 좋지 않다. 인테리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디자인이 좋은 것도 아니고 성능이 좋은 것도 아니고 AS가 좋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매우 나쁘다. 품질이야 이미 이탈리안 감성으로 증명된 사실인 데다가 인지도가 떨어지니, 산하 브랜드의 랭글러를 제외하면[41] 감가율도 상대적으로 커서 중고차값도 낮은 편이다.

한때 다임러한테 인수 합병 될 무렵에는 벤츠 기술이 들어간 덕분에 그나마 품질이나 꽤나 괜찮은 성능과 내구성, 그리고 타 브랜드와 다르게 합리적인 가격 덕분에 300C 1세대가 적지 않게 많이 팔렸지만 피아트에 인수된 이후부터는 품질 저하와 심한 잔고장과 잦은 결함 문제로 인하여 판매 부진이 일어났으며, 대한민국 한정으로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판매는 중단됐다. 그후 FCA는 인기가 좋고 판매량이 좋은 지프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해 크라이슬러 전시장을 지프의 전시장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크라이슬러는 2017년 11월을 마지막으로 300C의 판매를 중단했고, 피아트는 2018년 9월까지 재고를 소진한 후 판매를 중단했으며 이후 2019년까지 전부 지프 전시장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지프는 처음으로 2019년에 볼보, 미니와 함께 1만대를 넘었으나, 2020년에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미국 등에 있는 공장의 가동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바람에 판매량이 잠시 떨어지기도 했다.

대한민국가솔린 엔진 픽업트럭을 처음으로 정식 발매한 곳이 크라이슬러다. 닷지픽업트럭인 다코타 크루 캡을 들여와서 판매했는데, 주한미군이 아닌 이상 픽업트럭이 당시 생소한 장르의 차량이었고 이 때문에 형식승인을 놓고 쌍용자동차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V8 가솔린 엔진의 연비 때문에 다코타는 인기를 얻지 못하고 수입이 중단됐으며, 2020년에 지프 글래디에이터를 들여오며 픽업트럭 판매를 재개했다.


5. 생산 차량[편집]




2022년 기준으로 크라이슬러 브랜드로는 다음 차량이 주로 생산되고 있다. 2009년에 경영난을 겪은 후 라인업이 대거 정리된 것.
  • 퍼시피카 - 아래의 크로스오버 퍼시피카와는 이름만 똑같고 사실상 미니밴 그랜드 보이저의 후속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 새로 나온 2세대 모델은 유려한 곡선 디자인으로 좋은 평가를 듣고 있다. 다만 2세대 모델의 플랫폼은 200의 플랫폼을 개조해서 쓴다고 한다.
  • 보이저 - 퍼시피카의 하위트림에서 분리된 차량. 2022년부터 법인 고객 전용으로만 판매된다.

6. 단종 차량[편집]


  • 크로스파이어 : 나름 인지도가 있고 수집가들에게는 꽤 인기가 있는 차량이긴 한데, 어중간한 엔진 성능과 어중간한 생김새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판매고 등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결국 2007년 12월에 생산이 중단되면서 후속 없이 단종되었다. 4년 동안 총 76,014대가 판매되었다.
  • 프라울러 : 2001년 플리머스 브랜드 폐기 이후 2002년까지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판매되었다.
  • PT 크루저
  • 스트라투스 : 닷지의 모델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판매했다. 크라이슬러 브랜드로는 차명이 시러스다.
  • 세브링: 시러스의 후속으로 출시했다. 페이스리프트 후 200으로 개명했다. 본래는 플리머스의 중형 라인업 명칭이었으나 1990년대 크라이슬러의 중형 쿠페와 컨버터블로 등장했고, 2000년 이후에 세단이 등장했다.
  • 콩코드: 한국에서는 이 차의 형제차인 이글 비전이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수입되었다.
  • 네온: 본래는 닷지의 모델이다. 이 차량의 후속이 닷지 캘리버.
  • 퍼시피카: 전륜구동 기반 4WD 크로스오버.
  • 그랜드 보이저, 타운 & 컨트리[42]
  • LHS
  • 임페리얼[43]
  • 아스펜: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내놓았던 최초의 SUV. 닷지 듀랑고와 형제차였다.
  • 에어플로우: 크라이슬러에서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뜨려 시동을 거는 테스트를 선보였던 차량, 엄청난 인기와 달리 생산능력이 따라가질 못해 단종되었다.
  • 로얄
  • 에어스트림
  • 윈저
  • 뉴요커
  • 사라토가
  • 뉴포트
  • 코르도바[44]
  • 컨퀘스트
  • 레 바론/레 바론 GTS
  • 알파인[45]
  • 180/2-리터
  • 선빔
  • 호라이즌
  • 헌터[46]
  • 어벤저[47]
  • 입실론
  • 델타
  • 200
  • TC 바이 마세라티
  • 바이 크라이슬러[48]
  • 밸리언트[49]
  • E클래스 - 크라이슬러 뉴요커의 염가 사양이었다.
  • 300 - 크라이슬러의 주력 플래그십 준대형 세단이다.
  • M4A4 - 중형전차이다. 1943년 10월에 단종.


7. 컨셉트카[편집]



8. 계열사[편집]



8.1. 현재[편집]





8.2. 과거[편집]


  • 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
  • GEMA
  • 크라이슬러 AM 플렉스[50]
  • 크라이슬러 마린[51]
  • 크라이슬러 호주[52]: 1885년 코치빌더로 시작한 호주 자동차 회사 TJ Richards & Sons가 전신.
  • 그레이엄 브라더스[53]
  • 루츠 모터스, 생카[54] - 크라이슬러 유럽[55]
  • 드 소토[56]
  • 이글[57]
  • 파고[58]
  • 글로벌 일렉트릭 모터카스(GEM)[59]
  • 임페리얼[60]
  • 플리머스[61]
  • 발리안트[62]
  • 람보르기니[63]
  • ENVI[64]


9. 묘한 튜닝문화[편집]


다음은 크라이슬러 차량에서만 볼수 있는 독특한 튜닝문화들이다.

  • 300 컨버터블: 이상하게도 크라이슬러 300은 항상 튜너들의 좋은 장난감이 된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의 300과 달리 과거 300은 미국의 대형 럭셔리카의 대표주자이기도 했고 4도어가 아닌 2도어 쿠페, 컨버터블이 주력이였다. 300의 컨버터블 모델이 실제로 출시가 고려되기도 했고 2도어 쿠페가 나올거라는 떡밥이 돌았는데, 결국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용자스러운 튜너들이 스스로 개조한 버전들이 몇 있다. 이 밖에도 과거의 가죽 비슷한 비닐 재질의 소프트탑 씌우기 등, 빈티지 룩이나 레트로 튜닝이 꽤 많다.

  • 롤스로이스 팬텀 킷: 형상이 비슷해서인지 롤스로이스의 전면 패널을 씌운 레플리카 킷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벤틀리의 차량을 흉내낸 킷 역시 존재한다고 하며 이건 보통 세브링에 많이 쓴다.[65]

  • 벤틀리 컨티넨탈 GT 컨버터블 & 쿠페 레플리카: 이건 신형이 아닌 구형 300M이나 세브링을 기반으로 하는 풀킷인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다. 멀리서 보면 진짜 벤틀리처럼 보일 정도. 일부 튜너들 중에서는 그냥 차라리 중고 컨티넨탈을 구입하는 게 나을 정도로 엄청난 마개조를 해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구동 방식을 후륜[66]으로 바꾸고 엔진도 헤미 스왑을 한 사례.

  • 매그넘 세단: 크라이슬러 300의 경우는 닷지 매그넘과 플랫폼이 같아서 프론트페시아만 바꾸면 매그넘을 300 왜건으로, 300을 매그넘 세단으로 만들수 있다는 이점이 존재한다. 그 구닥다리 룩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경우 실제로 이걸 스왑해 버리는 경우가 있었고, 2008년도 매그넘 전면부의 경우가 가장 태가 나온다는 의견이 많다. 닷지는 초기에 차저가 있으니 매그넘 세단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 대신 차저 왜건을 고려했으나 차저보다는 왠지 각진 인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개인 취향이 만들어 낸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면 대략 이해가 갈 듯 하다. 이건 뭐 바디킷이라기 보다는 그냥 매그넘의 전면 패널을 바꿔 장착하는 것이므로 굳이 튜닝이라고 치기도 애매하다.[67]

10. 여담[편집]



  • 자동차 업계에서는 품질불량 이미지를 넘어서 일종의 물귀신으로까지 취급받고 있다.[68] 현재의 미국차 이미지는 GM이랑 크라이슬러가 사이좋게 물 말아 먹은 걸로 유명하고, 포드라고 마냥 그 쪽에서 자유롭지만도 못하다[69]. 혼자 있을 때도 위기를 거듭하더니 어디에 인수되든 개선이 없고, 결국 인수자까지 수렁에 빠뜨리고 있는데, 천하의 다임러 벤츠도 견디지 못한 것을 보면 답이 없어 보인다.[70][71] 현재 주인인 피아트도 부진을 겪다가 어느 정도 회생하게 되면서 시장확대를 하겠답시고 10조 원이나 들여서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것인데 그러자마자 다시 나락으로 빠져서 그룹이 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72] 사실 이탈리안 감성의 고-품질 자동차 제조사미국에서도 유명한 고-품질 자동차 제조사가 합쳐지니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에 그리도 노래를 부르던 시너지가 아예 환장의 하모니를 이루어 이제는 얼마 되지도 않는 구매자들의 복장을 뒤집어 놓고 있다.

  • 현재 대한민국의 수입차 시장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등의 독일차 브랜드가 석권하고 있는데, 비주류인 미국차 중에서도 피아트로 인수된 이후부터 품질이 조악하기로 소문난 크라이슬러는 다임러 시절때는 그나마 품질이 뛰어났지만 그래도 일반 브랜드 답게 일반 대중차 브랜드로 내세워서 비교적 낮은 가격을 무기로 들었다. 적당한 값에 수입차를 타고싶은 고객들을 주 타겟삼아 판매한 결과 그나마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옛날 말인것이 중저가 수입차 대체제로 독일의 폭스바겐, 미국의 포드, 일본의 토요타, 렉서스, 혼다, 스웨덴의 볼보 등 품질 면에서도 검증 된 중저가 브랜드들이 큰 인기를 받고있는 상황이라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FCA코리아는 크라이슬러와 피아트 모델의 수입을 중지하고 지프 브랜드만 남겨 지프 전시장으로 전환했으며, 한때 알파 로메오를 들여오는 것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 2016년 기준으로 사용되는 변속기가 중구난방인 것으로 유명하다. 5단 자동변속기벤츠의 고토크 변속기로 유명한 5G-Tronic을 NAG1[73]이란 이름으로 채용하고 있고, 컴패스에 들어가는 자동변속기는 아예 현대파워텍제 6F24/6F26을 사용하고 있다.[74] 벤츠와 결별한 이후에는 2022년 기준으로 8단 및 9단 미션은 ZF의 것을 사용하고 있다. 한 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굴지의 자동차 메이커가 이젠 미션도 자체적으로 못 만들어서 여기저기서 긁어다 쓰는 꼴이다.[75]

  • 일본의 미쓰비시 자동차와 뿌리 깊은 관계가 있다. 1970년대에 갤랑이나 미라쥬 등을 크라이슬러 자체 브랜드인 닷지, 플리머스로 판매해주는가하면[76] 1980년대~90년대 크라이슬러 차들에 미쓰비시제 엔진 옵션이 제공되기도 했고, 1990년대에는 더 나아가 합자회사인 다이아몬드 스타 모터스를 통해 플랫폼을 공용하는 차들을 공동생산한 바 있었다.[77] 다임러크라이슬러 시기에도 기술제휴가 이어져서 다임러 측이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를 더 폭넓게 제휴토록 했고,[78]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 시대에도 아트라쥬, 트라이톤[79] 같은 차량들이 일부 시장에서 피아트-크라이슬러 계열사 명의로 판매되었다.

  • 1930년에 건설한 크라이슬러 빌딩은 완공 직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본사 소재지였던 곳으로 이 회사의 상징이다. 다만, 크라이슬러 본사가 이 빌딩을 소유한 적은 없다.[80]

  • 1950년대에는 당시 항공기에 사용된 터빈 엔진을 개량해 자동차에 넣어보는 터빈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터빈엔진을 10:1의 감속 기어와 차축에 맞물려서 일반적인 내연기관처럼 움직였으며, 상하로 움직이는 피스톤 때문에 진동하는 일반적인 엔진과 다르게 회전만 하는 터빈 엔진 특성상 진동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 또한 연료를 가리지 않고 뭐든 받아먹었다(...)[81] 컨셉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주행 가능한 차량을 55대 제작한 뒤 선택된 사람들에게 리스 형식으로 판매하기도 하는가하면 회사가 휘청이던 1977년에도 엔트리 라인업 레 바론에 기반한 콘셉트카를 출품하고 닷지 아스펜, 미라다에 가스터빈 엔진을 얹어 정부기관을 통해 테스트하는 등 거의 완성에 가까운 프로젝트였으나, 이후 회사의 재정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리 아이아코카가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해버리면서 결국 완성되지 못한다. 저 55대의 실 주행이 가능한 차량들은 현재 9대만이 남은 상태이며, 그 중 한대는 제이 레노가 소유하고 있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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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0년대에 획기적인 자동차 기술과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이들이 노골적으로 박살낸 업체다. 미국에서도 터커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자동차 기술은 수십년을 앞당겼다는 정설이 전해질 정도. 1988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 제프 브리지스 주연 영화 터커가 이 터커를 그린 영화다.[2] 고성능 서브 브랜드이며 대체로 닷지의 차종에 SRT 라인업이 많다.[3] 설립 당시 크라이슬러의 수석디자이너 올리버 클락(Oliver H. Clark)이 디자인했다. 기본 형상은 편지 등을 승인하여 봉인할 때 쓰는 실링왁스(wax seal) 인장에서 따 와서 리본과 함께 "품질"을 상징하며 중앙부를 띠 모양으로 감싸는 노끈은 크라이슬러 차의 내구력, 노끈 안쪽에 세겨진 가느다란 번개 두 줄은 크라이슬러 차의 힘을 상징한다고 올리버 클락의 아들 딘 클락이 정리했고, 이를 전해들은 크라이슬러 전직원 워랜 스틸(Warren C. Steele)이 크라이슬러 전문 웹사이트 AllPar에 올렸다.#[4] 뿐만 아니라 크라이슬러가 속하기도 한 이탈리아의 피아트 계열 브랜드인 마세라티도 주유구가 항상 왼쪽이다. 단, 체로키 5세대와 레니게이드는 주유구가 오른쪽에 있다.[5] AMC를 인수한 시기에는 주유구가 오른쪽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AMC가 크라이슬러에게 인수되기 전에 프랑스의 르노에게서 기술이전을 받았기에 주유구를 오른쪽으로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現 계열사인 닷지와 舊 계열사였던 이글, 플리머스 차량들의 주유구 위치가 오른쪽으로 세팅이 되었다.[6] 이름의 70은 본 차량의 최고시속인 70mph(약 113km/h)에서 따 왔다. 당대 신차들의 평균 최고시속이 60mph(약 96km/h)임을 의식한 작명으로, 최종 모델명이 된 "식스"는 직렬 6기통 엔진에서 따 왔다. 이외에도 최초의 양산형 유압식 4륜 브레이크, 카뷰레터 에어필터, 오일 필터, 엔진 내의 가압 윤활 시스템(pressure lubrication), 고압축비 엔진도 크라이슬러 식스에 처음 적용되었다.[7] 낮은 루프라인과 길고 넓은 프로포션을 갖춘 공격적인 실루엣에 말끔한 면처리, 초대형 테일 핀을 둘러 웅장함을 강조하고 공기역학을 고려(버질 엑스너는 테일핀이 공기역학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한 디자인 테마로, 포워드 룩의 런칭 연도에 스타일링의 절정을 맺으며 엑스너와 디자인 팀이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인스티튜트(Industrial Designers Institute)의 골드 메달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8] 1973년에 출시된 신형 대형차 라인은 등장하자마자 석유파동의 직격탄을 맞았으며, 반면에 소형차 라인은 영국 지부인 루츠 그룹과 제휴업체인 일본 미쓰비시에서 끌어와 적당히 땜빵하는 수준이었다. 크라이슬러 및 임페리얼같은 경우는 1960년대부터 자사의 고급 브랜드에 엔트리 라인을 추가해온 포드, GM과 달리 대형차만 고집한다고 선언한 게 발목을 잡은 건 물론,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서비스점을 염가 브랜드인 플리머스와 공유하던 전략이 크라이슬러 고객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항공기 디자인을 참고하여 볼륨감과 공간감을 강조한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의 디자인 랭귀지인 퓨즈레이지 스타일링이나 1970년대 중순부터 자사 V8 엔진 라인업에 도입한 전자식 린번 시스템#도 그 후과는 좋지 못했다.[9] 그 이전인 1950~60년대에도 각 브랜드별로 가격대, 사양, 사이즈가 겹치기 시작하는 문제를 가만히 내버려둬서 중산층 브랜드인 드 소토가 1961년에 사라지고 닷지가 플리머스의 윗급에서 플리머스와 동격 브랜드로 인지되기 시작하며 독립 딜러점 설립이 예정된 플리머스를 크라이슬러 딜러로 통합하는 등, 마케팅 쪽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외에도 GM의 컴팩트카 쉐보레 노바에 대한 루머를 GM 라인업 전반의 다운사이징으로 오해해 버질 엑스너가 작업중이었던 1962년식 닷지, 플리머스 승용차 라인 전반을 휴가기간 동안 멋데로 다운사이징했다가 실적폭락에 시달렸고, 그 책임을 버질 엑스너에게 씌워 해고한 일도 있었다. 크라이슬러 계열사의 딜러점주 아버지를 둔 전직 보안관이자 AllPar의 에디터 커티스 레드갭(Curtis Redgap)의 회고록에서 당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1940년대~1960년대 동향을 엿볼 수 있다.#[10] 크라이슬러의 전 부회장 밥 루츠는 자서전 "빈 카운터스"에서 리 아이아코카의 청문회 현장을 일부 서술했는데, 크라이슬러에 국고를 퍼 주는 대신 대중교통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아이아코카가 "우리 크라이슬러가 우습게 보입니까?"라고 강하게 호소하자 질문의 논조가 좀 더 누그러졌다고 회고했다.[11] 형제차로 플리머스 보이저가 있었고, 1세대 미니밴이 끝물일 때에 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타운 앤 컨트리를 추가했다. 우성유통에서 크라이슬러를 수입했을 적에는 닷지 캐러밴 3세대가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팔렸다.[12] 기아산업에서 기아 봉고 코치를 내놓았을 때 김선홍 당시 회장을 대한민국의 아이아코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13] 또한 리 아이아코카는 광고와 토크쇼, 신차 발표회 등을 통해 대중 앞에 자신을 자주 노출시키고, 회사 사정과 제품의 개발 배경을 스스로 털어놓기까지 해 미국 국민들의 신뢰를 사기도 했다. 반면 이러한 "쇼맨쉽" 전략이 문제가 될 때도 있었고,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회장 자리 및 회사 주가에 집착하거나 보수적인 디자인을 계속 고수하는 등의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14] 1982년에 출시한 크라이슬러 레 바론 컨버터블이 미국 자동차시장에 순정 메이커 컨버터블 라인업을 부활시켰다. 1970년대를 거쳐 안전규제의 강화, 에어컨의 보급, 비닐 루프의 유행 등으로 쇠퇴하다가 캐딜락 엘도라도를 끝으로 코치빌더의 개조 패키지로만 연명하던 미국산 오픈카 시장을 부흥시켰으며, 2세대에 걸쳐 레 바론의 컨버터블 버전을 만든 것은 물론 세브링도 컨버터블이 만들어져 2010년대 초까지 라인업에 잔류했다.[15] GM 출신의 인물로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창설에 기여했다. 회사 내부의 비용을 효율적으로 다뤄 꾸준한 이익을 내는 데 기여한 반면, 비용 절감이 지나쳐 품질과 평판을 깎아먹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16] AMC 시절의 유산 중 하나로, 리 아이아코카 후반기에 크라이슬러로 영입된 르노/AMC 출신의 엔지니어인 프랑수아 카스탱(Francois Castaing)이 있었다. 프랑수아 카스탱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플랫폼 팀을 혁신, 각 차량의 부위별, 담당업무별로 쪼개져 있던 제품개발팀을 철폐하고 컨셉트부터 양산에 이르는 프로젝트 팀을 구축해 보다 적은 인원으로도 빠르고 저렴하게 신차를 개발할 수 있는 제품개발환경을 구축했다. 이렇게 AMC의 창의적이고 유연한 인재들과 제품개발과정이 1990년대 크라이슬러 내부에 널리 퍼짐에 따라, 1990년대의 크라이슬러는 오히려 AMC가 크라이슬러를 집어삼킨 거나 다름없었다는 평가도 나올 정도였다.[17] 훗날 2009년에 크라이슬러의 구조 조정 이후 피아트가 크라이슬러 지분을 인수하였다.[18] 참고로 이 때의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그 유명한 마이바흐를 부활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도 내놓는 등 새로운 시도를 여럿 했는데, 결과는 모두 실패. 2000년대 초반 벤츠에 달린 서스펜션 기술인 ABC는 중고 벤츠의 가격을 똥값으로 만들었고, SLR은 맥라렌 욕만 잔뜩 먹고 판매량도 부진했다. 마이바흐 또한 벤틀리 플라잉 스퍼 때문에 판매량이 망해서 결국 S클래스 상위 브랜드 수준으로 변경. 사실 5억 원이 넘어가는 엄청 비싼 차를 내놓으면서 매일 한 대씩 팔리리라 기대한 다임러의 잘못도 크다.[19] 참고로 다임러와 합병하기 전에는 BMW와 제휴하여 닷지 네온과 신형 미니가 1.6L 엔진을 공용하기도 했다. 로버 그룹의 재정상황을 안정시키려는 BMW와 유럽 진출을 확대하려던 크라이슬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20] 가령 미쓰비시와의 제휴 강화에 앞서 2,000명이 감축되었던 사례에서는, 네온 등을 개발한 소형차 개발 팀원 상당수가 정리해고되었다.[21] 반대로 크리스 시어도어같이 벤츠 임원들 사이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일부 임원들은 대우를 잘 받았으며, 개발 과정에도 동등하게 같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실력을 검증받기 전에 시달리는 거만한 시선과 태도"를 견뎌내야 하는 점이 문제였다고 회고했다(#).[22] 메르세데스-벤츠와 공동 개발한 마지막 작품은 현재 크라이슬러의 주력 V6 가솔린 엔진으로 밀고 있는 펜타스타 V6 3.2/3.6리터 DOHC 가솔린 엔진과, 3세대 M-클래스 플랫폼이다. 따라서 그랜드 체로키 4세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벤츠의 차대가 사용된다. 단, 커먼레일 디젤 엔진피아트의 것을 사용한다. 피아트로 넘어온 후에는 펜타스타 V6 가솔린 엔진을 페라리에서 튜닝하고 터보 2개를 장착하여 F160이라는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을 만들었다.[23] 케르베로스 휘하에서는 닛산자동차나 치루이기차와의 협력관계 구축을 고려하였다. 예컨데 2006년에 공개한 소형차 닷지 호넷 컨셉트카를 닛산 베르사 기반으로 2009년부터 양산, 일본에서 생산한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24] 지프는 글로벌 브랜드로 분류.[25] 포브스 지의 인용에서는 'we will deliver quality, beauty, speed, comfort, style and power all at a low price.'[26] 1960년대까지만 해도 닷지는 중산층 브랜드였는데, 머슬카포니카 붐을 계기로 "고성능", "스포티함" 이미지를 도입하기 시작했다.[27] 크라이슬러가 자체 브랜드의 첫 다운사이징 라인업이었던 코르도바를 준비했을 때만 해도,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링컨, 올즈모빌 정도와 비교되는 최소 준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었다. 고급 이미지가 흐려져 있던 1990년대 중후반에도 올즈모빌, 뷰익 차량을 경쟁차로 직접 올려 명분상 프리미엄 브랜드임을 어느 정도 갖추려고 한 편.#[28] http://marketrealist.com/2017/09/fiat-chrysler-continues-to-collaborate-on-self-driving-cars/[29] 공교롭게도 푸조에 매각한지 38년 이상 지난후 스텔란티스로 크라이슬러와 푸조가 한가족이 되면서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30] 이 때 밥 루츠제너럴 모터스 부회장의 저서인 '빈 카운터스'에서 여러 장점이 존재했기에 GM이 크라이슬러를 인수하려고 시도했다는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31] 닷지와 플리머스 차량을 광고 하나에 묶어서 "K-카"나 "크라이슬러 미니밴"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마케팅 방식이 1980년대에 쓰였다.[32] 크라이슬러 300닷지 차저.[33] https://www.allpar.com/news/2017/10/chrysler-dodge-cancel-right-hand-drive-38586[34] https://www.allpar.com/news/2017/10/right-hand-drive-not-quite-dead-yet-38637[35] 이 발언을 하고 한 달 후에 마르치오네는 FCA 회장에서 물러난 직후, 수술 합병증으로 타계했다. 후임은 마이크 맨리가 이어받았다.[36] 단, 올파 포럼을 비롯한 크라이슬러 계열사 오너 포럼에서는 딜러들이 보증수리 자체를 거부한다는 불만이 종종 올라가는 상황이다. 차후 이 관행이 어떻게 변화하는가가 중요한 사안.[37] 이 모든 전차들은 Philip Wood. Lett라는 부사장 엔지니어가 담당했다.[38] 전신은 우성산업이다. 우성타이어는 1999년 3월 흥아타이어에 넘어갔다. 그리고 사명을 바꿔 현재의 넥센타이어가 된다.[39] 당시 들어왔던 닷지의 모델은 (그랜드)캐러밴, 네온, 스트라투스(현재 200 모델의 전신인 세브링의 형제차). 이들은 닷지산양 로고 대신, 오각형 마크를 붙여서 판매했다. 다만, 네온과 스트라투스와 달리 캐러밴은 영문명으로 DODGE가 붙었다.[40] 이후 다임러-벤츠와 합병하여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다임러가 크라이슬러를 사모펀드에 매각한 이후에는 크라이슬러코리아, 피아트에 넘어가면서 2015년부터 FCA코리아를 거쳐 PSA와 합병 이후 2021년부터 스텔란티스코리아로 변경하면서 사명을 여러 번 변경했다.[41] 랭글러는 대표적인 미국제 오프로더지만, 옛날 군용차윌리스 MB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최대한 유지하는 데다가 대한민국의 험로 사정에도 잘 맞아서 인기가 좋은 편이다. 게다가 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차종들이 대한민국에 대부분 정식 수입되지 않아서, 랭글러는 수입차 치고 상대적으로 감가율이 낮다고 한다.[42] 지금은 미니밴이지만, 1988년까지만 하더라도 왜건 내지 컨버터블에 해당되는 차종의 명칭이었다.[43] 초기에는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최고급 라인업으로 존재했으나 이후 1956년 별도의 독립 브랜드로 분리되어 1970년대까지 운영되었고, 1980-1983년에 잠시 부활했다가 1980년대 말에 기함급 차종으로 잠시 등장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때인 2005년에 콘셉트 카로 다시 재등장했다.[44] 북미 크라이슬러 최초의 중형차급 라인업. 1970년대 중순에 인기가 높았던 중형 자가용 시장에 진입해, 잠시 동안 흥행기를 달렸다.[45] 크라이슬러의 유럽 지사인 루츠 그룹에서 개발한 해치백 중형차. 일부 시장에서는 생카(Simca) 브랜드로 판매되었다.[46] 힐만 헌터의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인 중형차. 1976년에 힐만 브랜드를 폐기하면서 브랜드가 바뀌었다.[47] 힐만 어벤저의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인 준중형차. 1976년에 힐만 브랜드를 폐기하면서 브랜드가 바뀌었다.[48] 호주 시장용 고급차.[49] 북미 지역에서는 닷지와 플리머스 명의로 팔았지만, 호주를 비롯한 해외에서는 크라이슬러로 판매했다. 1971년에 나온 4세대 호주 사양부터는 북미 사양과 독립.[50] 베어링, 기어 생산 회사, 1988년에 ICM 인더스트리스에 매각됨.[51] 해양 선내, 선외기 및 각종 보트 생산 부서, 1980년 폐지됨.[52] 1951년 설립. 홀덴, 포드와 같이 여타 미국 회사들처럼 호주 시장용 모델을 개발, 생산, 판매하고 있었으나 1979년 미쓰비시 자동차와 미쓰비시 그룹에 지분을 전량 매각하곤 호주 시장에서 철수했었다. 이 후 1994년에 미국 생산 모델들을 수입하며 재진출을 시작했다.[53] 1929년 트럭 부문은 닷지와 파고로 이전되어 생산되었고 승용차 부문은 독립되어 그레이엄-페이지로 변경되어 유지됨.[54] 1971년 폐지되고 크라이슬러 유럽으로 변경됨.[55] 1978년 푸조에 매각됨.[56] 1961년 모든 모델들이 통합되고 크라이슬러 뉴포트로 대체됨.[57] 1998년 폐지됨.[58] 1972년 폐지됨.[59] 2011년 폴라리스 인더스트리스에 매각됨.[60] 1983년 폐지됨.[61] 2001년 모든 모델들이 크라이슬러로 통합되고 폐지됨.[62] 1976년 폐지됨.[63] 1994년 말레이시아 투자사 마이컴과 인도네시아 V파워 그룹에 매각됨.[64] 2007년 설립된 전기차 사업부. 피아트가 크라이슬러 인수 이후 2년만에 바로 폐지함.[65] 애초에 300 SRT의 경우 아예 벤틀리같은 매쉬그릴이다.[66] 크라이슬러 300M은 LH 플랫폼에 기반한 세로배치 전륜구동이며, 세브링은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을 사용했다.[67] 300 왜건의 경우는 호주와 유럽 시장에서 발매되었지만, 미국에서는 발매되지 않았다. 실상은 발매 요구가 많았지만 캐딜락 CTS 왜건 등의 경쟁자를 상대하기엔 밀릴게 많다고 생각한 크라이슬러에서 출시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앞면만 바꾼 닷지 매그넘이 출시되었다. 300과 워낙 많은 부품을 공유하는 문제로 인해서 그냥 스왑이 가능한 경우라 별다른 개조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68] 미국의 국토를 달리는 용도의 차량 기준으로 국내나 유럽의 소형차와 다르다.[69] 포드 산하에 있던 브랜드 대부분은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매각당했는데, 포드는 여전히 세단에서 죽쑤고 있는 반면 중국이나 인도에 매각된 메이커들은 현재 승승장구 중이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재규어와 볼보[70] 다만 이 시기의 품질문제는 1990년대 중후반의 크라이슬러에서도 과도한 비용절감 때문에 심각하다는 걸 알고 바로잡으려고 했는데, 인수 직후에 벤츠 측에서 비용절감을 또다시 강요한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인수 초반에 단행된 실내 개발비용을 40% 절감하는 목표가 있었고, 제조단가를 낮추려고 발악한 탓에 납품업체들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졌다. 벤츠도 가만 보면 안 보이는 쪽에서 비용절감에 만만찮게 집착하는 업첸데, C클래스 같은 메이드 인 미국 차량들 품질도 영 좋은 소릴 못 듣는다.[71] 1990~2000년대 크라이슬러의 엔지니어였던 크리스 시어도어는 최후기형 크라이슬러 PT 크루저를 렌트했을 때 "괜찮은 차를 다임러가 되려 망쳤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독립법인 시절 개발하여 다임러크라이슬러 시기에 판매한 PT 크루저가 각종 마이너체인지를 할 때 다임러의 손을 거치면서 말년에는 방음설비 하나하나까지 다 빠져버렸다고 한다. 시어도어가 크라이슬러에서 근무할 당시 PT 크루저와 3세대 크라이슬러 미니밴, 2세대 닷지 네온 등의 개발에 참여했던 경력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눈물흘릴 만할 일이다.[72] 단, 수익구조로 보면 지프, 램, 닷지로 상당수의 수익을 차지하는 크라이슬러 파트가 FCA 그룹을 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피아트의 텃밭인 유럽이 그룹 수익구조상 미국보다 수익성이 낮아 고전하는 중이다.[73] 뜻은 '새로운 1세대 자동변속기(New Automatic Gearbox Generation One)'[74] 본래는 CVT를 이용했다.[75] BMW도 미션은 사다 쓰지만 애초에 고정 고객이나 다름없어서 관계 자체가 다르다.[76] 크라이슬러 그룹의 소형차 라인을 보충해주면서 미쓰비시의 미국 진출로를 열어준 계기인 동시에, 미쓰비시에게는 한동안 미국에서 자체 브랜드 진출이 막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77] 이 영향 때문인지 미쓰비시의 일부 차량들의 주유구와 머플러가 각각 우측, 좌측으로 바꿔진 것으로 보인다.[78] 크라이슬러 세브링 3세대, 닷지 어벤저 세단과 캘리버, 지프 패트리어트와 컴패스 등을 랜서, 갤랑 등의 플랫폼으로 옮겨 개발을 완료했다. 하지만 기술제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임러 측의 잘못된 결정들과, 악화되어가는 재정난, 개발비 투자 부족 등으로 인해 개발에 차질이 심해져서 시장경쟁력을 크게 잃었다.[79] 시장에 따라 피아트 풀백, 램 1200으로 판매되었다.[80] 사실 이는 발주자가 회사가 아닌 월터 크라이슬러 개인이었기 때문이다.[81] 일반적인 항공유는 물론이고 디젤, 가솔린같은 자동차 연료도 들어가며, 프랑스에서 크라이슬러 홍보를 위해 행사장에서 사람들이 마시던 코냑을 넣고도 잘 돌아갔다는 일화가 있다. 땅콩기름을 넣었을 때도 잘 돌아갔는데, 그 부작용으로 중국집 냄새가 났다는 증언도 있다.[82] 원래 엔진이 고장난 상태였고, 인수 당시 크라이슬러 쪽에 친분이 있어 얼마 남지 않은 터빈 엔진을 달아 실 주행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2021년 엔진 과열로 인해 이 엔진마저 퍼져버리자 AGM-137 등의 미사일과 항공기에 장착된 터빈 엔진을 만든 윌리엄즈 인터내셔널과 당시 터빈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엔지니어들까지 수소문해 고쳐진 화려한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