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링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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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링겐 자유주
Freistaat Thür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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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州旗)
주장(州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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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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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시간대
(UTC+1/+2)
주도(州都)
에어푸르트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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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6,202.35km²
인구
2,126,846명(2022년 12월)
인구밀도
131명/km²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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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리
보도 라멜로프
주의회
여당

29석 / 90석

8석 / 90석

5석 / 90석
야당

22석 / 90석


21석 / 90석


5석 / 90석
연방하원

5석 / 19석

5석 / 19석

3석 / 19석

3석 / 19석

2석 / 19석

1석 / 19석
연방상원
4석


1. 개요
2. 역사
3. 사회
3.1. 인구
3.2. 종교
3.3. 정치
3.3.1. 2019년 주총리선출투표 파문
4. 행정구역
5. 출신 인물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Freistaat Thüringen, 튀링겐 자유주 [1]

독일 중부의 주(州). 주도는 에어푸르트이다.

독일어 발음으로는 "튀링엔"이 적절하다. 독일어의 ng는 영어와 달리 /g/가 덧나지 않기 때문.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튀링겐이 올바른 표기이고 독일 관광청도 이 두 가지 용어를 섞어서 쓴다.

현재 독일의 정중앙인 니더도얼라(Niederdorla)가 바로 이 주에 있다.[2]


2. 역사[편집]


지금의 튀링겐 지방은 고대부터 게르만족의 왕국 투링기(Thuringii)가 있던 곳이다. 투링기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헤르문두리(Hermunduri)의 후손들이란 뜻으로, 헤르문두리의 어미인 'duri'에서 시간이 지나 변형된 'thuri'와 후손을 뜻하는 '-ing'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추정된다. 6세기 프랑크 왕국에게 복속된 후 프랑크 왕국은 그 지방을 그대로 이어 튀링겐 변경백령을 만든다. 튀링겐 변경백은 동프랑크에 속하게 되면서 공작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공작의 대우를 받게 되었으나, 엄밀히 말해 온전한 공작령은 아니였기 때문에 독일의 5대 공국(부족 공국)(작센, 바이에른, 슈바벤, 프랑켄, 로트링겐)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908년 튀링겐의 마지막 공작이 마자르족과의 전투에서 죽으면서 작센 공작령으로 흡수된다. 이후 튀링겐은 변경백들의 분할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후 4백년간 수많은 후작과 다른 지역에서 옮겨운 귀족들에 의해 각축장을 벌였다. 11세기에 들어서면서 루도빙거(Ludowinger) 가문이 튀링겐 전역을 지배하였으나 1247년 하인리히 라스페(Heinrich Raspe)[3]가 후사 없이 사망하며 공백이 생겼고, 하인리히 라스페의 조카인 브라반트 공작부인 튀링겐의 조피(Sophie von Thüringen)[4]베틴 가문 출신의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Heinrich der Erlauchte)[5]의 17년간의 튀링겐 계승 전쟁 끝에 튀링겐은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가 상속하고, 튀링겐 동부의 일부를 헤센으로 분리하여 튀링겐의 조피의 아들 하인리히가 상속하며 헤센 방백국이 탄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튀링겐은 베틴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베틴 가문은 마이센과 튀링겐을 분할상속했지만 1440년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 1482년 작센 선제후 에른스트에 의해 베틴 가문의 모든 영지가 통합되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의 둘째 아들이자 에른스트의 동생 알브레히트가 분할 상속을 요구하자 이를 못이긴 에른스트는 1485년 라이프치히 조약을 체결하여 본인은 작센 선제후 자리와 작센-비텐베르크 공작령, 남부 튀링겐을 가져갔고, 알브레히트에게는 작센 공작위와 마이센 변경백령, 북부 튀링겐을 나누어주면서 베틴 가문은 다시 분열되었다.

16세기 종교 개혁이 일어나며 에른스트 계열은 개신교로 개종하고 신교도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1547년 슈말칼덴 전쟁에서 신교도인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에 사로잡히자 폐위당해 베틴 가문 본가인 에른스트 계열의 선제후직은 방계인 알브레히트 계열로 이전되었고 1806년 작센 왕국이 된 후 지금의 작센 주가 된다.

에른스트가 상속받은 남부 튀링겐은 4대를 거친 1554년, 요한 프리드리히 1세의 세 아들이 분할 상속하여 에른스트 대공국들(Ernestinische Herzogtümer) 또는 작센 공작령들의 시초가 되었다. 이들 영토의 경계는 1572년에 에어푸르트 분할로 재조정되었고, 그 이후의 변화상은 한 공작령의 제후의 대가 끊기면 그 영토를 다른 공작령들이 나눠먹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영토가 이합집산을 거듭하는고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826년에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령의 대가 끊기면서 영토 재조정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1개 대공국, 3개 공국으로 확정되었다.

작센 공작령들 말고도 튀링겐 지역에는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의 영토들, 로이스 가문의 영토들이 분립해 있었다.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의 영토들은 1599년에 2개로 나뉘어진 영토가 20세기까지 이어졌고, 로이스 후작령들은 1678년경에는 9개로 분립되다가, 1806년에 2개로 정리되었다.

이상의 튀링겐 제국(諸國)이라는 이들 소공국들은 1826년에 8개로 정리되었다. 북독일 연방을 거쳐 1871년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1910년 당시 총면적 12,325 km2에 159만 명의 인구가 있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61px-THUERINGEN.png
20세기 초 튀링겐의 분할도. 월경지투성이[6]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에 발생한 킬 군항의 반란의 영향으로 일어난 혁명으로 일곱 제후[7]들이 모두 퇴위하면서 각 소국들은 자유주로 개편되었다가[8], 1920년에 이들 자유주를 모두 통합해(단, 코부르크 자유주는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바이에른으로 편입되었다) 현재의 명칭인 튀링겐 자유주로 바꾸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끌날때까지 유지한다.

1945년 미군이 점령했으나 종전 이후 소련군 관할 지역이 되었고, 오늘날의 주도인 에어푸르트[9]를 비롯한 노르트하우젠, 뮐하우젠 근교 지방을 흡수하면서 튀링겐 주의 경계가 이때 대략 확정되었다. 1952년에 이르러 동독 중앙정부가 주정부들을 해체하자, 에어푸르트 관구와 게라 관구와 관구로 나뉘어졌으나, 1990년에 이르러 동서독 양국의 평화통일을 실행하기 직전에 주정부가 부활하였다.


3. 사회[편집]



3.1. 인구[편집]


통일 직전이었던 1987년의 인구수가 270만명에 달했었다. 통일 이후 경제적으로 부유한 서독 지역으로의 이주가 급증하여 인구수가 빠르게 감소했다. 2022년에 210만이 되어 30년 사이에 무려 60만이 줄었다.[10] 출산율도 1.42명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11] 고령화+인구이탈 콤보로 골치를 앓는 다른 구 동독지역에 비하면 한 시름 놓은 상황. 그러다가 2023년에 212만명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삶의 질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촌 지역의 인구감소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3.2. 종교[편집]


작센과 함께 중세 마르틴 루터종교개혁의 중심지로 루터회의 본산과 같은 곳이었지만 공산정권을 거치면서 많이 세속화되었다. 인구의 70%가 무교인 상황. 그나마 개신교가 25%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한 때 나마 이 곳이 루터회의 성지였음을 알려주고 있기는 하다.


3.3. 정치[편집]


파일:Landtag of Thuringia logo.png
튀링겐 주의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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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여당
[[좌파당(독일)|파일:Landesverband_Thueringen__logo_bg_e1fab78239.png
좌파당

29석
]]
[[독일 사회민주당|파일:1280px-SPD_TH.svg.png
사회민주당

8석
]]
[[동맹 90/녹색당|파일:Gruene_LV-Thueringen.png
동맹 90/녹색당

5석
]]
야당
[[독일을 위한 대안|파일:독일을 위한 대안 로고(2013-2017).svg
독일을 위한 대안

22석
]]
[[독일 기독교민주연합|파일:1213px-CDU_LV_Thueringen.svg.png
기독교민주연합

21석
]]
[[자유민주당(독일)|파일:logo0001_1485382665.png
자유민주당

5석
]]
재적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88석



1990년 통일 이후로 2014년까지는 기민련이 꾸준히 주정부를 장악해왔지만, 다른 구 동독 지역과 마찬가지로 좌파당이 통일 부작용으로 생긴 주민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사민당까지 제치면서 매섭게 성장해 2014년부터 집권하고 있다. 심지어 2020년대 초반 기준 좌파당이 집권한 유일한 주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좌파당-사민당-녹색당의 적적록 연정이 결성되었다. 과반에 미달하는 소수정부를 CDU가 후방지원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정식으로 신임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후술할 2019년 사태 때문에 독일을 위한 대안의 준동을 저지하려고 적적록 연정을 지원하게 되었다.

2023년 하반기 이후 독일에서 AfD가 창당 10년만에 기초지자체 시장 당선인을 배출해낸데 이어 여론조사상 전국 20%대 초반 지지율을 기록하며 CDU/CSU에 이어 2위를 차지해 기성정당인 신호등연정 3당을 제치면서까지 대단히 약진하고 있는데, 2024년 예정된 튀링겐 주의회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AfD는 30%대 초반 지지율로 올라서 지역1당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까지 나와 나치 패망 이후 보수-좌파 불문하고 독일 모든 정계에서 불문율처럼 지켜져온 이른바 방화벽[12]이 깨지고 AfD가 주정부 연정에 참여하게 될것인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13][14][15]

3.3.1. 2019년 주총리선출투표 파문[편집]


2019년 튀링겐 주의회 선거 결과
선출의석: 90석 / 과반의석: 46석

좌파당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
기민련
대안
29
8
5
5
21
22

2019년 주의회 선거에서 좌파당이 제1당, 독일을 위한 대안이 제2당이 되는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극좌와 극우를 대표하는 두 정당이 나란히 주의회 원내에서 최대 정당이 된 것.

이러한 결과로 인해 연립정부 수립에 난항이 예상되었다. 모든 정당이 독일을 위한 대안과 손잡는 것을 거부[16]하고, 기민련자민당좌파당과의 협력까지도 배제하는 통상적 구도에서는 연립정부를 구성할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 기존 적적록 연정은 물론, 심지어 기민련-사민당-녹색당-자민당 조합도 과반에 미달하였다. 대안당과 좌파당만으로 이미 과반이 넘었기 때문. 보통 이 조합까지 안 되는 경우는 진짜 드문데

결국 좌파당, 사민당, 녹색당은 소수정부로라도 기존 적적록연정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하였다. 기민련과 자민당이 비록 우파 성향이긴 하지만, 그들도 극우파와는 손잡지 않는다는 명확한 방침을 고수해왔기 때문. 따라서 두 당이 독일을 위한 대안과 연합하여 함께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은 현저히 낮으므로, 적적록 소수정부를 출범시킬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선출절차] 그러나...

2월 튀링겐 주지사 선출 결과
후보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보도 라멜로프
좌파당
43
X
44
X
44
X
토마스 켐머리히
자민당

불출마
불출마
45
당선
크리스토프 킨더발터
독일을 위한 대안
25
X
22
X
0
X
기권
22
24
1
2020년 2월 5일 실시된 제3차 총리선출투표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표를 대거 받은 자민당의 토마스 켐머리히 주의원이 주총리로 당선되는 이변이 벌어졌다. 이 결과에 따라 튀링겐주는 1930년 나치 집권 시절 이래 최초로 90여 년만에 극우의 지지를 받은 주정부 수반을 자신들의 정치지도자로 맞이하게 되었다.# 게다가 토마스 켐머리히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45표는 독일을 위한 대안뿐 아니라 기민련 소속 주의원들 대부분이 합세한 결과[17]였다.

사실상 극우파(대안)와 중도우파(기민련)가 손잡고 자유주의 우파(자민당) 정치인을 지도자로 올린 셈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극우 민족주의를 적대시하며 철저히 배제해온 독일 정치권은 "극우파와 손잡고 합법적으로 집권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생각에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오랫동안 자랑스럽게 유지되어온 기민련의 가치가 훼손된 날"이라며 "용서될 수 없는 사건"이고 "기민련의 노선은 물론 기민련이 역사적으로 밟아온 행적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며 튀링겐 주의회에서의 사태를 강하게 비판했고, 독일 정치권에서는 좌우정당을 가리지 않고 토마스 켐머리히에 대한 사임 요구가 쏟아졌다. 한편, 튀링겐의 주도에어푸르트를 중심으로 독일 전국 각지에서 이번 사태를 규탄하는 격렬한 항의 시위가 진행되었다.

튀링겐 주 기민련자민당은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독일을 위한 대안의 단독행동"이라는 입장을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주총리로 선출된 토마스 켐머리히가 자진사퇴를 거부했고, 기민련과 자민당 내 일각에서 "켐머리히의 주총리 선출을 인정하며 환영한다"는 의견이 공개적으로 나오며 여론의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급기야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18] 연방내각 차원에서 이번 사태 수습을 의제로 연립여당 CDU/CSU사민당 사이의 공식적인 협의까지 진행되었다. 2월 8일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기민련, 기사련, 사민당 3당 대표 공동성명으로 이번 사태를 규탄하고, 새로운 주의회 선거를 촉구하며, AfD를 연정에서 배제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같은 날,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거센 비판과 압력 속에 토마스 켐머리히 주총리는 결국 사퇴하였다. 3일 천하 2월 10일에는 사태 전후로 기민련 내에서 발생한 이견 및 내부 갈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당대표 역시 사퇴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파문은 자민당 입장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자당 소속 주총리를 날린 셈이 되었고, 기민련 입장에서는 연방 당대표를 날린 셈이 되었다.

2월 21일, 좌파당, 사민당, 녹색당, 기민련 4당은 정국 타개를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에 합의하였다.

자민당이 표결에서 기권할 것이 확실시되자, 쌍방 합의 하에 기민련은 1~3차 투표에서 모두 기권하기로 했다.[19] 한편 독일을 위한 대안비요른 회케를 자당의 주총리 후보로 내세웠는데, 이들 중 일부는 "이번에는 고의로 보도 라멜로프에게 투표하여 다시 한번 우리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주총리를 만들어보자. 좌파당 소속인 라멜로프가 우리 AfD의 표를 받아 주총리에 당선된다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막가파식 주장을 제기했지만 해당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막장

3월 4일, 주의회는 다시 한번 주총리 선출 투표를 진행했다.[선출절차]

3월 튀링겐 주지사 선출 결과
후보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보도 라멜로프
좌파당

42
X
42
X
42
반대 23[20]

당선
비요른 회케
독일을 위한 대안
22
X
22
X
불출마
X
기권
26
26
20
불참
0
0
5[21]
결국 좌파당 소속 보도 라멜로프가 선출되면서 합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행되었고, 사태 자체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후 또다른 합의 사항인 조기 주의회 선거를 개최하는 것은 여전히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1월, 코로나19로 선거 진행이 어려워지자, 좌파당, 사민당, 녹색당, 기민련 4당은 2021년 9월 26일로 선거를 다섯 달 연기해 연방하원 선거와 동시에 진행하기로 재합의하였다.

당초 여야 4당은 이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의회해산안을 2021년 7월 19일 상정해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표결 이전부터 좌파당과 기민련에서 반란표가 확인되면서 주의회 2/3 동의가 필요한 의회해산안 처리가 어려워졌다. 결국 7월 16일, 통과가 불투명해진 의회해산안이 자진 철회되면서 조기 주의회 선거는 결국 무산되었다.

4. 행정구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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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kre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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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텐부르거란트
Altenburger Land
파일:아이히스펠트 군 문장.png
아이히스펠트
Eichsf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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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
Go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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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이츠
Greiz
파일:힐트부르크하우젠 군 문장.png
힐트부르크하우젠
Hildburghau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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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름
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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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호이저
Kyffhäu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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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트하우젠
Nordhau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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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레홀츠란트
Saale-Holzland
파일:잘레오를라 군 문장.png
잘레오를라
Saale-Or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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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펠트루돌슈타트
Saalfeld-Rudolstadt
파일:슈말칼덴마이닝겐 군 문장.png
슈말칼덴마이닝겐
Schmalkalden-Mein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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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메르다
Sömmer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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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네베르크
Sonne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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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슈트루트하이니히
Unstrut-Hain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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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부르크
Wart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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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러란트
Weimarer Land



군급시
Kreisfreie Städte

파일:아이제나흐 문장.png
아이제나흐
Eisenach
파일:에어푸르트 문장.svg
에어푸르트
Erfurt
파일:게라 문장.png
게라
Gera
파일:줄(독일) 문장.png

Suhl
파일:바이마르 문장.svg
바이마르
Weimar
파일:예나 문장.svg
예나
Jena




독일의 행정 구역


파일:330px-Thuringia,_administrative_divisions_-_de_-_colored.svg.png
현이 없고 바로 군으로 이루어져있다.

군급시


5. 출신 인물[편집]


신기하리만치 이 지역에서는 독일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많이 등장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철학도가 많다. 철학자 갈락티코


6. 여담[편집]


주기가 폴란드 국기처럼 생겼다. 그래서 혼동을 막기 위해 주기 가운데에 주장을 그려넣은 깃발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지역의 소도시인 베드하임시의 상징동물이 릴리엔스테르누스인데 베드하임시의 문장에 새겨질 정도로 해당지역의 상징동물이다.
이지역의 릴리엔스테르누스문장은 이후 공룡판타지 작품속 문장들의 중요자료로 활용중이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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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로는 Free State of Thuringia.[2] 1945년까지 독일의 정중앙은 현 브란덴부르크 주 슈프렘베르크(Spremberg)였다.[3] 콘라트 4세의 대립 독일왕이기도 했다.[4] 하인리히 라스페의 형 루트비히 4세의 딸.[5] 하인리히 라스페의 누나 유타의 아들.[6] 거기다가 작센왕국이 나폴레옹 전쟁 패배 후에 프로이센왕국에게 영토를 할양하는 바람에 튀링겐 지역엔 프로이센왕국의 영토도 있었다.[7] 1909년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의 대가 끊기면서,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와 동군연합 상태가 되었다.[8] 이들 중 작센코부르크고타는 1919년에 코부르크 자유주와 고타 자유주로 분할되었고, 로이스게라 자유주와 로이스그라이츠 자유주는 같은 해에 로이스 인민주로 통합되었다.[9] 2차 대전 이전에는 프로이센의 작센 주에 속함[10] 여담으로 1910년에 인구수가 210만이었다. 80년 걸려서 60만 늘렸더니 30년만에 원상복귀...[11] 그나마 90년대 중반 통일 부작용으로 경제상황이 최악이었을 시기에는 0.8명 선까지도 떨어졌었다.[12] 극우세력과 그 어떠한 형태로든 연정구성이나 정치적 협력관계 구성 금지[13] 2023년 7월 INSA 튀링겐 주 여론조사 결과 AfD 32%, 좌파당 22%, CDU 20%, 사민당 10%, 녹색당 5%를 얻어 현재 튀링겐 주 소수정부를 구성하는 좌파3당은 여전히 과반에 미달하게 되며 이 여론조사결과대로 선거결과가 나온다면 주정부구성을 위해서는 AfD가 연정에 참여하던가 AfD를 제외한다면 좌파3당의 소수정부는 지금처럼 CDU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해진다.[14] #[15] AfD 소속 기초지자체 시장당선인이 배출된 직후 CDU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는 사후철회하기는 했지만 연방정부 단위는 불가하더라도 각 지역 단위로는 AfD와 협력할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해 독일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16] 독일 정치권은 극우 민족주의 정당 나치가 집권했을 때의 만행에 대한 기억을 소름돋을 정도로 싫어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며 꾸준히 반성하고 있기 때문에, 양극단의 정치세력 중에서는 극좌보다 극우를 훨씬 더 경계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극좌를 경계 안 하는 건 아니지만...[선출절차] A B 주의회 내 선거를 통해 주총리(주지사)가 선출된다. 선출 절차는 최대 3라운드로 진행된다. 1라운드가 불발되면 2라운드, 2라운드에서 불발되면 3라운드로 이어지는 구조. 1~2라운드에서는 반드시 재적 의원의 과반을 얻어야하지만, 최종 3라운드에서는 1위 후보가 표수와 무관하게 당선된다.[17] 제1~2차 투표에서는 대부분 자당의 주총리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기권표를 던졌던 독일을 위한 대안, 기민련 소속 주의원들이 제3차 투표에서는 토마스 켐머리히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특히, 독일을 위한 대안 소속 주의원 대다수는 3차 투표에 자당의 크리스토프 킨더발터 후보가 도전했음에도 토마스 켐머리히에 투표하였는데, 대안 측은 이후 이 행동이 자민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전략적 투표였음을 인정했다.[18] 연방제 국가인 독일에서 연방정부가 주의회 차원 문제에 개입한다는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까지도 마찬가지. 당시 이러한 원칙을 뛰어넘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던 것이다.[19] 기민련이 내각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공식적인 신임 공급 협정을 체결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표결에서 기권하는 것이 선례를 감안해볼 때 맞기는 했다. 물론 예외적으로 급박한 상황이기는 했지만.[20] 기민련 내에서 최소 1명의 주의원이 당의 합의를 무시하고 반대표를 행사하였다.[21] 자민당 소속 주의원 5명 전원[22] 물론 러시아 출신이다. 독일 국적을 얻었을 시기 튀링겐에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