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 마리노 (문서 편집) [[라틴어]]: Sanctus Marinus [[이탈리아어]]: San Marino [[파일:external/www.croatia-rab-lopar.com/lopar1.jpg]] ? ~ 366(?) [목차] == 개요 == [[기독교]]([[가톨릭]], [[정교회]])의 [[성인(기독교)|성인]] 중 하나. 성 마리누스라고도 한다. 성 마리노는 [[한국 천주교]]에서 쓰는 명칭. == 생애 == 본래 [[달마티아]](Dalmatia) 지방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한 랍(Rab) 섬[* 오늘날 [[크로아티아]] 북부에 있는 섬] 출신의 석공이었다. 기독교인이 된 계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당대 달마티아는 [[로마 제국]]의 영토였고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이어서 심한 박해를 받았다. 마리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피해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리미니(Rimini)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리미니 성채를 재건한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석공 레오(Leo)와 함께 티타노(Titano) 산에 있는 채석장에 가서 석공으로 일했다. 채석장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예]]가 되어 중노동을 하는 이들이 섞여 있었다. 성 마리노와 레오는 일하는 중에 틈틈이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한편, 비신자 석공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그 후 레오는 리미니의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고 인근의 몬테펠트로(Montefeltro)로 갔고, 성 마리노는 [[부제(성직자)|부제]]서품을 받고 나서도 이전의 석공 일을 계속했다. 12년 동안 그는 수로공사 일을 하며 뛰어난 기술자이자 모범적인 신자 노동자의 모델로 널리 존경을 받았다. 그러던 중 불행한 일이 발생했는데, 실성한 한 여성이 나타나 그를 별거중인 자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며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결국 성 마리노는 그 여인을 피해 티타노 산으로 들어가, 외진 곳에 있는 동굴을 처소 삼아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는 은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져 찾아오는 이들이 늘자 [[성당]]을 짓고 [[수도원]]을 세웠다. 301년경 이렇게 모인 이들과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366년경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 기타 == 성 마리노와 함께 지내던 이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산마리노라고 불렀다. 후에 성 마리노가 성인품에 오르고 그가 설립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모여 생활하던 작은 공동체는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발전했다. 그 나라가 성인의 이름을 딴 [[산마리노|산마리노 공화국]]이다. 지금도 산마리노 공화국은 매년 성인 축일인 9월 3일을 국경일로 성대히 기념하고 있다. 12년 동안 수로공사 일을 했고 그 이후가 301년인 관계로 15살때부터 석공을 했다는, 석공으로서는 최소한의 나이로 가정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못해도 274년 이전 출생자이며 366년 무렵에 사망했으므로 아무리 못해도 92살 이상 장수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 출처 == [[http://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saint&ctxtSaintId=639|가톨릭정보 - 성 마리노]] [[분류:가톨릭 성인]][[분류:로마 제국의 기독교 신자]][[분류:산마리노의 인물]][[분류:정교회 성인]][[분류:366년 사망]][[분류:프리모레고르스키코타르 주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