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BT-42 (문단 편집) ==== [[계속전쟁]] ==== || [[파일:Vyvorg_BT-42.jpg|width=100%]] || || '''비보르그 전투 당시 마스콜라 조차장에서 격파된 핀란드 방위군 소속 BT-42''' || BT-42가 사용된 최초이자 마지막 실전은 계속전쟁이었다. 당시 BT-42들은 1943년 5월에 벌어진 '''"스비르 강 전투"'''에 참전했으며, 겨우 10문 남짓한 BT-42들이 '''[[일기당천|무려 100대 정도의 적 차량을 파괴하고, 200대 정도를 손상시키는 대전과]]'''를 이룩해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BT-42의 한계가 점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고폭탄의 위력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4.5인치 곡사포의 고폭탄은 [[T-26]]과 [[BT 전차]] 시리즈 등을 상대로는 충분히 격파 가능했지만, [[T-34-76]], [[T-34-85]]를 위시로 한 소련의 신형 전차들을 상대로는 영거리에서도 격파가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잘해야 무한궤도 파괴 정도가 한계였기 때문이었으며, 그에 반해 차체 자체가 [[BT 전차]]인 만큼 T-34 전차들은 영거리는 물론 원거리에서도 BT-42 전차들을 단숨에 격파할 수 있었다. 결국 핀란드군은 [[대전차고폭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낸 나치 독일에게 기술 지원을 부탁하여 114mm 포의 대전차고폭탄을 자체 생산하였으며, 일명 이 탄은 '''"Hkr 42/C"'''라는 명칭을 부여받고 전선에 투입된 BT-42들에 이 고폭탄들이 지급되었다. 새롭게 생산된 대전차고폭탄 덕분에, 어떻게든 일단 맞추기만 한다면 T-34 전차들과도 승부를 볼 수 있었으나, 1944년 중기에 들어서며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핀란드와의 전쟁이 지지부진하자, 소련 군부에서는 [[IS-2]], [[ISU-152]]와 같은 고화력 중장갑 장비들을 실전 투입하기로 결정하며, 결국 BT-42들은 대전차전 임무에서 배제되고, 후방 지원용 자주포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그리고 동년 6월, '''"비보르그 전투"'''가 벌어지며 BT-42들은 격전을 겪게 되는데, 당시 투입된 9문 중 8문이 격파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스티그 시펠(Stig Sippel) 소위가 지휘하던 BT-42 한 문이 비보르그로 진격하던 T-34 전차를 향해 무려 18발을 발사하여 공세가 더디게 하는데 일조하였다고 전해진다. 비보르그 전투 이후, '''"카르얄라 지협 전투"'''에서의 사용을 끝으로, BT-42가 도태되었다고 판단한 핀란드군은 결국 나치 독일에 지원을 요청해 [[3호 돌격포]]를 도입해 '수투르미'라는 명칭으로 운용하였으며, 잔존한 BT-42들은 전량 후방으로 돌려 예비역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