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GB (문단 편집) == 상세 == KGB의 창설은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후 시작된 소련의 권력투쟁과 [[라브렌티 베리야]]의 숙청에서 시작되었다. [[NKVD|내무인민위원]] 출신이었던 베리야가 자신의 권력 강화를 꾀하면서 국가안전부를 내무부로 합친 결과 '''경찰, 첩보, 수사, 내부감시기관'''이 하나로 통합된 거대한 부서가 만들어졌으며,[* 한국으로 치면 [[행정안전부]] + [[경찰청]] + [[해양수산부]] + [[해양경찰청]] + [[대통령비서실]] + [[대통령경호처]] + [[국가안보실]] + [[국가정보원]] + [[감사원]]이 모두 '''한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셈이다.] 베리야 자신이 거대해진 내무부의 수장인 내무장관에 취임했다. 물론 베리야의 목적은 정보기관과 내무기관을 자기 휘하로 두어 권력투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나라 혹은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일지라도 국가권력이 [[정보기관]]을 [[정치경찰]]처럼 만들어 [[국가]]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현대 역사에서 매우 자주 있었던 일 중 하나였다. 당장 [[한국]]만 봐도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시작해 오늘날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어떤 논란]]에 휩싸이는지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베리야가 숙청된 이후 이렇게 권력이 강한 부서를 계속 유지시키기에는 여러모로 지나치게 부담스러웠기에 1954년에 내무부를 기존 방식대로 경찰행정 부서로 축소하고, 첩보 및 방첩 부서를 [[소련 장관회의]]에 소속된 별도 기관으로 분리하기로 결정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보안위원회가 탄생했다. KGB는 창설된 직후 탈스탈린화 및 해빙기와 맞물려 기존 직원의 절반 이상을 감축했다. 사실 KGB의 전신이었던 [[NKVD]]가 스탈린 정권에서 [[대숙청|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감안한다면, 당시 소련 정부 및 군 인사들은 자신을 포함하여 동료 정치인들의 목숨을 쥐고 흔들었던 소련 비밀경찰의 영향력을 어떻게 해서든 감축시키고 싶어했다. 따라서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가 집권하는 시기 사이 '''스탈린의 사냥개들'''이었던 비밀경찰은 숙청을 피할 수 없었다. 이렇게 숙청된 인사 중 대표적인 인물로 스탈린 시절 NKVD의 해외공작을 총괄했었던 파벨 수도플라토프가 있었다. KGB가 다시 영향력을 회복한 계기는 [[헝가리 혁명]] 과정에서 진압과 반체제 인사 체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부터였다. 헝가리 혁명 이외에도 국내 소요사태 진압과 [[프라하의 봄]] 진압에 참여했으며, [[유리 안드로포프]]가 주석으로 취임하면서부터 매우 엄격한 검열 및 탄압 정책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반체제 인사들이 감시, 여론을 통한 압박, 명예훼손, 협박, 대도시에서의 주거 금지, 국외추방 또는 정신병자라는 딱지가 붙여져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처분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소련 반체제인사로 명망이 높았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KGB에 의해 추방당하거나 연금되었다. 또한 KGB는 [[미합중국 중앙정보국|CIA]]와 [[영국 비밀정보국|MI6]] 등 서방의 여러 내로라하는 정보기관에 침투해서 [[케임브리지 5인조]]와 같은 내부 스파이를 통해 정보를 입수할 정도로 뛰어난 첩보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MI6의 경우에는 한때 '''국장'''이 내부 스파이로 의심받았을 정도로 서방의 정보기관들은 [[냉전]]이 끝날 때까지 조직 내에 침투한 KGB의 스파이에 대한 공포가 심했다. 심지어 타국의 [[대사관]]을 비롯한 [[외교공관]]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도청을 해 '''[[소련]]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미국]] 대사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공산권]] 국가 소재의 미국 대사관들은 방음실을 따로 만들어 비밀첩보작전에 관한 계획 수립은 전부 방음실에서 수행했다.] 하지만 냉전 시기의 정보기관이 항상 완벽했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처럼, KGB 역시 '''지나치게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과 [[8월 쿠데타]]에 참여하면서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기여했다. 대표적으로 8월 쿠데타 당시 현직 주석이던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가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참여했다가 체포되면서 KGB 역시 해체되었고, 이후 소련 구성국들의 정보기관으로 계승되었다.[* [[발트 3국]]의 KGB는 [[https://en.wikipedia.org/wiki/OMON|OMON]]과 함께 '''소련 점령의 첨병 역할을 맡았기에''' 공화국 최고회의가 직접 나서서 철저히 관련 인력들을 공직에서 해임시키거나 체포했고, [[변호사]]나 [[외교관]], 경찰 출신을 모집하여 새로운 정보기관을 설립했다.] [[소련 붕괴]] 이후의 혼란기 속에서 KGB 출신 인사들은 자신들이 가진 정보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재산을 불려나가면서[* 특히 러시아의 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주식을 불하받은 일반인들이 나중에 큰 돈이 된다는걸 알아도 당장의 생계가 어렵기 때문에 주식을 헐값에 팔아들인 경우가 많았는데, [[올리가르히]]와 KGB 출신 인사, 마피아들이 이 헐값에 판 주식들을 대거 매입해서 이득을 본 경우가 많았다. 일반인들이 다시 주식을 살 여유가 되었을 때는 이미 주요 기업들이 이들의 손에 넘어갔다.] 사회지도층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역시 KGB 출신의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밑에서 [[실로비키]]라는 이름으로 주요 [[정치]], [[사회]], [[경제]] 분야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에서도 아제르바이잔 KGB 주석 출신인 [[헤이다르 알리예프]]가 혼란기를 거쳐 정권을 잡은 뒤, 독재자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