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34 (문단 편집) === 단점 === 보통 독소전 초기에는 훌륭한 공수주 스펙에 비해 뒤떨어지는 소프트 스펙이, 독소전 후기에는 단차시점에서 독일의 중전차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스펙이나 서방제 전차와 비교되어 신뢰성 부분, 그리고 그런 신뢰성 부족의 원인이 된 인명경시사상에 기반한 설계가 까인다. 모든 소련제 병기에 해당되지만, 특히 부품자체의 정밀도가 낮거나 마무리가 거칠어 잔고장이 심했다. 흔히 2차 세계대전기 소련군 무기는 단순하고 고장안나는 튼튼한 신뢰성을 가진것으로 적, 아군 모두에게 평가를 받았다. 이는 소총이나 화포등 일부 장비에 관하여는 사실인데, T-34의 경우 크게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 있었다. * 트랜스미션, 조준용 광학 장비 같이 고도의 정밀성이나 기술력을 요하는 부위에 대한 기술력이 모자르다. 해당 부분 기술은 다른나라에서는 민간 기업들끼리의 판매 경쟁으로 기술력이 발전 하였으나 소련은 이런 체제가 아니었다.[* 다만 독일 전차도 전쟁 후반기로 가면 엔진이나 트랜스미션이 감당 가능한 무게를 넘어 중장갑과 화력을 갖추느라 구동계 신뢰성이 개판이 된다. 이쪽은 기술력은 있으나 그 이상을 바란게 문제. 타이거 1 정도까지만 되어도 운전병이 조심만 하면 기동성이 매우 뛰어났다고 베테랑들이 증언 했으니...] * 그나마 소련에서 상태 양호한 공장과 산업기반은 전쟁 초반에 죄다 독일에게 점령당했다. 독일군의 점령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후방으로 옮긴 열악한 공장에서 제작되었다. * 만드는 사람들도 원래 이 일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대거 투입 되었다. * 전장에서의 소모가 극심했던 까닭에, 소련군은 개별 단차의 마무리나 성능 개선에 신경쓸 상황도 거의 없었다. 실제로 개전이후 T-34의 개선점은 대부분이 생산성 개선을 위한 단순화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다. 다르게 말하면 고장나기 전에 적 포탄에 터져나가니 한대라도 더 많이, 빨리 만드는게 중요해진 것이다. 이후 전황이 조금 나아지자 또 당황스러운 사태가 벌어진다. 이번에는 '''탱크는 있는데 사람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41~42년간에 남자 군인이 수백만명씩 희생된 소련은 슬슬 후방에서 징집해 전방으로 보낼 병사 숫자가 모자라지는 상황이 온 것이다. 게다가 전장에서 싸울 전투병의 숫자가 모자른다고 군수, 지원분야 병과를 전부 해체해버리고 죄다 전투병으로 밀어넣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럼에도 전쟁후반기로 가면 보병부대 전투원 숫자보다 포병과 기갑병과 숫자가 더 많은 부대도 흔한 지경이 된다. 결국 T-34가 고장나도 정비지원을 해줄 정비부대나 군수지원대 같은게 사실상 없다. 이 상황에서 소련군이 선택할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전차가 고장나면 그대로 버리고 새 전차를 받거나, 전차병을 보병부대로 보내 버리는것. 엔진이나 트랜스미션 같이 복잡한 부품을 정비교육도 제대로 받은적 없는 징집병들이 쉽게 교체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나마 예비부품이 있으면 브레이크 라이닝 등 툭하면 고장나는 부품은 아예 고장날 것이라고 간주하고 해당 부위 전체나 예비부품을 전차에 탑재한 상태로 출격했다. 그나마 후방에 과생산 해놓은 전차는 많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조치였던 셈.[* 미국도 [[B-29]]를 정비할때 비슷하게 '''비행시간 75시간마다 모든 엔진 교체'''로 고장을 해결하기도 했는데, 이경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당시 B-29가 장착하던 엔진들은 피스톤 엔진 기술의 절정을 찍은, 무려 18기통 2200마력짜리 엔진들로, 실제 수명은 수천시간마다 오버홀 받으면 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쪽은 엔진 카울링과의 설계가 안 맞아 엔진 온도가 수천도까지 달아오르는게 문제였던것. 단 시간 안에 설계를 고칠 방법은 없는데, 반대로 정비인력과 군수능력은 수백대에 달하는 이 B-29들의 각 4개씩의 엔진을 75시간마다 교체 가능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T-34는 사람도 군수력도 없는데 후방에서 기형적으로 탱크만 많이 만들어서 벌어진 사태, 그리고 B-29는 시간이 없는데 사람과 군수력은 빵빵해서 벌어진 일이다.] * 설계상의 문제 * 불편한 구조 승무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구조와 승무원의 배치. 실제로 T-34의 내부는 온갖 장비들이 꽉차서 지독일게 비좁았고, 승무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포탄 피격 및 관통시, 최소한 3명은 중상 또는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 전차장과 포수의 역할 통합 2인용 [[포탑]]을 사용하므로 전차장이 포수의 역할도 해야하기 때문에 사격시에는 주변관찰이 안되고, 주변관찰시에는 사격이 안되므로 독일의 전차보다 반응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진다. 이점 때문에 T-34는 카탈로그 스펙상으로는 동등한 [[4호 전차]]는 물론, 카탈로그 스펙상으로는 T-34가 우위인 [[3호 전차]]에게도 맥없이 무너졌다. 이 문제는 T-34의 개량형인 [[T-43]]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하여 해결되었으나, T-34보다 기동성이 나빠서 생산되지 못했으므로 결국 T-34/85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해서 해결한다.(소련 전차의 1인 2역의 역할은 PT-76에서 드디어 끝난다.) [[파일:external/c.foto.radikal.ru/4c53ac0fa518.jpg]] (왼쪽이 전차장 겸 포수 자리,오른쪽은 탄약수 겸 동축기관총 사수) * 승무원간 간섭되는 구조 [[트랜스미션]] 레버가 옆의 무전수(및 전방 기총 사수)의 탄약고(기관총 탄약을 넣어두는 곳)와 가까워서, 레버가 앞으로 가 있으면 기총수가 기관총 재장전을 할 때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또한 이 전방기총사수용 관측창은 오로지 손가락만한 기총 조준구밖에 없었다. * 장갑강화 불가 [[포탑]]이 전방에 치우쳐 있으므로 전면장갑을 강화할 경우 차체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장갑강화가 힘들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42년 이후에 등장한 대전차 화기 상대로는 방어력의 우수성이 퇴색했다. [[파일:external/907f3b05940ff0b5aefff334bce9df68de84567339b3e30be39bc2e50bc6fd23.jpg|width=500]] 영화 [[서부전선(영화)|서부전선]] 예고편의 한 장면. 참고로 해당 영화에서는 T-34 내부 모습을 판터를 능가할 정도로 매우 크게 묘사했다.(승무원들이 정좌세로 앉아있고, 안에서 일어서기까지 한다.)] * 전면의 약점 노출 [[포탑]]이 너무 앞으로 치우친 관계로 전차 상면에 조종수 해치를 못 만들기 때문에 '''전면장갑에 조종수용 출입구를 만들었다.''' 게다가 조종수용 관측창도 작아서 시야 확보가 힘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이동시에는 위사진과 개요의 영상처럼 출입구를 열고 다니는 일도 많았다. 이렇게 되면 차체 전면에 큼직한 약점이 생기는 셈이라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 한국전쟁때는 이 약점을 노린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의 37mm포에 당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전면전에선 생각외로 큰 약점이 아닌데, 해치만 노리고 쏘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고 후기형의 경우 해치의 두께가 전면 장갑보다 더욱 두껍도록 개조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무거운 해치를 여는걸 돕기 위해 전용 스프링 장치가 달려있어서 해치를 열 때는 스프링의 힘으로 밀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전면 장갑에 저렇게 큰 구멍을 뚫을 경우 전면 장갑의 강성과 내구성이 전체적으로 약해지고, 당연히 전차의 전체적인 생존성에 악영향을 끼친다. 후기형 전차인 [[IS-3]]와 [[T-44]]에서 전면 해치를 없앤 결정적인 이유이다.] * 생존성 부족 해치의 수량이 모자라고 위치가 빠른 탈출에 적합하지 않다. 포탑의 전차장 해치와 조종수/보조 조종수겸 기관총수 바로 위의 해치를 합쳐서 총 3개의 해치를 설치한 M4 셔먼과 다르게, 이쪽은 해치가 2개밖에 없으므로 탈출을 제 때 못하다가 승무원이 유폭으로 사망했다. 특히 전면 조종수 해치는 구조적인 약점이었으므로 일반적인 해치보다 작게 만들 수 밖에 없었는데, 키가 큰 현대인들은 전면 해치를 열어두어도 탈출하기 버거울 정도다. 바닥에는 [[https://www.youtube.com/watch?v=rTnS0XS2al8#t=11m2s|조종수용 탈출구가 있었지만]] 크기가 워낙 작았으므로 실효성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방연합군에서 T-34에 대비되는 [[M4 셔먼]]에 비해 압도적으로 승무원들의 생존율이 낮았는데 특히 조종수는 거의 90% 확률로 사망하였고 전방기총사수도 조종수보다는 낫지만 어차피 피차일반으로 생존율이 낮았다. T-34가 격파될 때마다 생존하는 승무원은 평균 2~3명밖에 되지 않았다. * 비좁은 내부구조 전차 내부가 비좁아 내부에서 이동이 상당히 제약되었다. 전술한 것과 같이 조종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처럼 있어야 조종이 가능했다. 3인용 포탑을 채용했지만 전차장은 좌석에 앉을 경우 무릎이 포수의 등에 닿아 방해가 되었고, 탄약수는 딱히 앉을 공간도 없이 탄약 상자 위에 서서 허리를 숙여 탄을 장전하는 생고생을 해야 했다. 이 같은 내부공간 협소로 인해 체구가 평균적으로 작은 동양계를 선호했다.[* 그래서 [[월탱]]에서 연재되던 웹툰인 붉은 마녀에서 동양인 병사들이 승무원으로 나오며, 영화 [[화이트 타이거|화이트 타이거: 최강전차군단]]에서도 T-34의 탄약수로 동양계 병사가 등장한다.] * [[크리스티 현가장치]]의 내부공간 차지 크리스티 서스펜션은 고속이동과 장거리 주행에 적합하여 소련의 상황에 맞았지만 내부공간을 서스펜션이 차지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국은 옆면에 [[공간장갑]]을 만들어 서스펜션을 넣었지만 수리시 옆면의 바퀴를 모두 때어내야한다는 단점을 가져버렸다. * 환풍기 부족 전면에 해치가 달린 문제점과 겹쳐서 운전수들이 전투 중 문을 열어놓아 격파되는 경우가 다른 전차보다 많은데, 환풍기가 부족하여 포연이 빠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 장비의 문제 * 부실한 조준장치 [[렌즈]]의 시야가 왜곡되고 상이 흐리게 나오며 사격시 충격으로 깨지는 등 전반적인 품질이 뒤떨어져 조준에 크나큰 지장이 있었다. 렌즈는 고난도의 재료 및 가공기술을 요하는 물건으로 조금만 삐뚤게 깎아도 상이 왜곡되거나 희미해지는 문제가 생기므로 숙련된 기술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대량생산에는 이런 품질을 유지할 노하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또한 광투과율에도 큰 문제가 있어 광량이 부족한 새벽, 해질녂은 물론이고 기상이 나쁠때에도 조준기를 통한 상 획득이 쉽지 않았다. 미국과 더불어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독일은 이미 충분한 기술적 노하우를 쌓은 후여서 전쟁시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후발주자였던 소련은 이런 기술적 토대가 부실했다. 더욱이 렌즈를 제작한다고 해서 좋은 조준경을 만드는 건 또다른 문제인 것이 조준경은 포 발사에서의 엄청난 충격을 견뎌낼 내구성 및 조준 정밀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노하우를 요구하는 건 똑같았다. 미 병기국이 공여받은 T-34를 테스트하며 "미국제 조준기에 비하여 선진적이다"라고 극찬했다는 이야기를 인용하며 2차대전의 잘못 알려진 오류 10가지라며 영어권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 있는데 이는 전간기 교환장교들이 독일전차를 탑승해보고 [[자이스]]사의 슈트리히 조준법을 기억해 소련 기술자들에게 리버스엔지니어링 시킨 부분에 대한 칭찬이었다. T-34의 조준기는 광학적으로는 명백한 실패작이었다. * 저품질 잠망경 조준장치의 문제와 겹쳐 관측용 잠망경의 품질과 시야확보가 상당히 부실했다. 넓은 시야와 주변 관측은 전차전이건 대보병전이건 생존성과 방어, 선제공격 등 여러가지와 직결되는 부분인데, 잠망경의 시야가 20~30도 정도만 확보 가능할 정도로 끔찍하게 좁았고 진흙 등의 이물질이 묻는 것에 매우 취약했다. 게다가 보이는 영상의 품질까지 엉망이라 기동중에 흔들거리면 잠망경을 통한 주변 관측은 더더욱 힘들었다. 그로 인해 평상시는 물론 전투중에도 해치를 열고 운전하거나 시야를 확보하려 하는 막장사태가 벌어졌고 이는 전차장갑에 보호받지 못하는 취약점까지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은 물론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 부분을 공격받아 파괴당한 사례들이 상당히 많다. [[http://blog.daum.net/uesgi2003/955|참고자료와 잠망경 사진포함]] * 조약한 구동계의 신뢰성 트랜스미션 자체가 소련의 저열한 금속가공 기술 덕분에 수명이 매우 짧았고 조작하기가 힘들어 어떤 때엔 기어 자체가 안 들어가 망치로....때려 넣어야 했다. 따라서 운전수는 망치를 필수품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런 점이 비좁은 운전석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기동력을 저하시켰다. * 한국에서는 독소전에서의 이겼던 상대인 독일전차들의 구동계 신뢰성이 훨씬 더 심각했었고 T-34가 판터나 티거 같은 중전차에 비하면 훨씬 우월한 구동계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이세환]] 기자에 의하면 거짓말이라고 한다.[[https://youtu.be/1t5XElo0Qko?t=305|#]] 실제로는 잔고장이 많았고 독소전 초기에 공장지대를 빼앗겨서 저열한 금속가공 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는 수준[* 장점에 속하는 생산시에 숙련된 노동자나 기술자가 별로 필요하지 않는 특징에 의해서 비숙련자들의 가공력에 정밀한 금속부품이 나올래야 나올수 없었기 떄문인 것으로 밝힌다.]이었다며, 단순히 독소전에서 전략기동으로 승리했다는 사실만으로 부품의 신뢰성이 비교적 좋다고 할 수 없다한다. 이에 대해 소련식 신뢰성 개념을 완벽히 충족되었기 때문으로 신뢰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정확히 말해서 이 당시 소련쪽의 신뢰성 개념은 서구쪽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 장점으로서 신뢰성이 좋다는 논리로 언급되나, 사실 철도에 의존해야 했던 독일의 탱크들에 비해 탁월한 항속거리와 자력으로 전략기동이 가능함은 신뢰성이 아닌 스펙성능으로 봐야할뿐 부품의 신뢰성이라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잦은 잔고장과 망치로 고치는 해괴한 수리 등도 교체/수리가 쉽게 가능한 것을 의미할 뿐이지 이를 전차의 신뢰도로 보지는 않는다.[* 애초에 소련식 신뢰도라 해도 굳이 현대의 관점에서 이를 신뢰도로 인정하거나 평가할 이유가 없다.] * 잦은 엔진 고장의 원인은 초기형에 사용하던 공기 필터가 대기중 부유물을 걸러내기는 커녕 공기의 흐름만 차단하는 불량품이었기 때문이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니 출력 자체가 낮아지고, 걸러지지 않은 모래는 실린더 내부로 끼어들어가 엔진 자체를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애버딘 시험장에서 [[http://english.battlefield.ru/evaluation-of-the-t-34-and-kv-dp1.html|평가를 받은 보고서]]에서는 미군이 '스파이가 방해 공작의 일환으로 설계를 엉망으로 한 것 같다'고 혹평했다는 언급까지 있다. 이 문제는 1943년형 등 후기형에서 일명 사이클론 필터로 교체하고서야 해결되었다.[* 소련이 미국에 운반을 위해 유조식 여과기에 오일을 제거한 것을 미국인들이 건식 여과기로 착각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기술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시험평가 때는 실물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설명서 및 제원표도 같이 보내어서 평가받도록 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신빙성이 낮다. 6.25 전쟁 당시 노획한 T-34/85를 미국이 애버딘에서 재평가한 테스트에서도 앞선 테스트에 비해서 나아진게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차량 상태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이 필터문제는 사이클론 필터로 교체하고도 완벽히 해결된 것은 아니고 IS-2부터 적용된 신형 필터에서 최종 해결된다.] * T-34와 반대로 셔먼은 고장이 적어 호평이었는데, 본국이 대서양 건너편에 있었던 탓에 공장으로 돌려보내서 수리를 받을 수 없는 여건에서 싸우는 것을 감안하고 소련이 생산 비용을 악착같이 줄인 것처럼 신뢰성을 악착같이 강화했기 때문이었다. T-34가 T-34/85로 전환되는 과정에 수천대의 구형 T-34/76 재고를 안고도 전선에는 전차가 부족한 공급문제가 생겼을 때가 있는데 이때 [[무기대여법|랜드리스]]로 들어온 2000여대의 [[M4 셔먼]]을 부족한 T-34 대신 정예부대에 집중적으로 몰아주었으며 전차병들은 셔먼을 '''무고장 전차'''라며 사랑했다. 1944년 이후 들여온 76mm M4A2 셔먼은 [[https://en.wikipedia.org/wiki/1st_Guards_Mechanized_Corps_(Soviet_Union)|제1근위기갑사단]], [[https://en.wikipedia.org/wiki/9th_Guards_Motor_Rifle_Division|제9근위기갑사단]] 등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T-34/85 대신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물론 75mm 셔먼이나 [[발렌타인 전차|발렌타인]]같은 전차는 T-34/85에 비해서 화력이 떨어지므로, 지휘부 입장에서는 다른 T-34/85가 있을 때는 비교적 쉬운 임무에 투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차병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든 잘 고장이 안나면서도 어차피 어려운 임무는 강력한 T-34가 먼저 투입되고 화력이 떨어지는 랜드리스 차량들은 비교적 쉬운 임무에 투입되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과거 한국군 전차병들의 선호전차는 M47 > M48 > K1 순이었다. 뒤로 갈수록 성능이 훨씬 좋지만 갈수록 좁아져서 전차병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육상자위대 소속 전차부대원들도 90mm포를 장착했지만 결함이 많은 [[61식 전차]]보다 포는 작지만 조종성이 훨씬 뛰어난 [[M41 워커 불독]]을 선호했다.] 전차 자체의 전투력과는 별개로 개별 부품의 품질은 워낙 우수했기에 수직안정기를 비롯한 여러 부품이 카피되어 T-54를 비롯한 후기형 전차에 사용되었다. * 무전기의 부재 T-34는 중기형 까지 무전기가 없어서 각 전차들에게 무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전차장은 해치를 열어 다른 전차에게 손짓이나 작은 깃발로 지휘를 해야만 했다. 무전기가 장착된 차량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상부의 지시를 수신받을 지휘차량만 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즉, 차량간 긴밀한 전술 이행을 위한 용도가 아니었으므로 차량간 통신은 수신호에 의존해야 했다. 게다가 주변을 관측할수 있는 관측장비가 부족했다.[* 중기형인 T-34/76까지 이랬고 T-34/85부터는 관측장비를 늘렸다. 하지만 여전히 기총사수는 손가락만한 기관총 조준구밖에 관측장비가 없었다.] T-34에 무전기가 일찍이 장착되었더라면 적어도 손실율은 많이 줄었을 것이다. 사실상 초기 모델에도 전 무전기를 장착하려 했으나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우랄 산맥 너머로 공장 이전중이었다.) 다수를 투입할 수가 없었기에 지휘 차량에만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급 상황이 나아진 이후에는 전 차량에 설치하게 되었고(대략 43년 중반) 1944년에 나온 85모델은 차체에 있던 장비를 포탑으로 옮겼다. 무전기가 없거나 있어도 도움 안되고 숙련자 외엔 협동플레이가 되지 않으며 자신의 상황이나 잇점을 살피지 못하고 있다 정도로 정리된다. [[오토 카리우스]]가 말한 소련 전차병들 최대의 약점이 무전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