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부장제 (문단 편집) === 과거의 가부장제 === 농업사회에서는 땅을 일굴 노동력 때문에 남성의 힘이 강해졌다고 보통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도 상당부분을 농사일, 혹은 남편의 본업에 같이 참여하였다. 이에 더해 남성 또한 가사노동에 자주 참여하는 등 분업의 경계는 상대적으로는 모호했다. 이는 한 명이라도 더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던 자급자족 사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힘이 필요한 일에는 집안 남성이 필수적이었다. 과거엔 사회 제도가 정비되어있지 않고 치안이 좋지 못했기에, 집단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남성의 신체력에 상당부분을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신체적 요건의 차이는 남성에게 권력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그만큼, 남성에게는 가족, 나아가 사회 집단을 보호할 책임이 생기게 된다. 허나 이런 남성의 권력은 시간이 지날 수록, 사회.경제 제도가 정비되고 정부의 통제력이 강해질 수록 약해졌다. 한 마을에 모여살며 남성들이 치안을 담당하고 의견을 조율하던 과거와는 달리,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려들며 집단촌이 점차 해체되기 시작했고, 도시로 모여든 주민들은 주변 남성들이 아닌, 국가의 경찰력과 사법력으로 보호받게 되었다. 허나 가부장제가 쉽게 해체되진 않았다. 해가 지면 집에 들어왔던 농본사회와는 달리, 산업화 이후엔 남성이 오랜 시간을 공장에서 일하게 되며 집에 밤 늦게 들어오게 된 것이다. 결국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식으로 분업화되었고, 이에 따라 혼자 일하는 남성이 오롯이 경제력을 쥐게 되었다. [* 이런 외벌이 현상은 미국의 경우 20세기 중반에 가서야 일반적인 모습이 된다. 일하는 남편, 가정에 충실한 아내의 스테레오 타입은 미국의 50년대 중산층 가족을 대표하는 이미지.] 물론 이 또한 여성의 사회,경제,정치에 참여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점차 해체되었으며, 종국에 21세기에는 가부장제가 '구시대의 유물' 취급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통해 알 수 있듯, 가부장제 = 여성차별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가부장제는 차별이 아닌, 구시대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체재였을 뿐이다. 즉, 가부장제 자체가 여성차별적이거나 바로 여성차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이와 여자들(아녀자)'[* 이는 권력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의무의 대상으로서도 압력이 가해지는 표현이다. 사고나 재난시 '여자와 아이들 먼저' 탈출시킨다는 서양의 관념이나, 과거로 돌아가서 '여성(과 과부), 아이들을 지키는 기사도' 라는 로망적 계율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이라는 표현은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표현이라 봐도 좋다 단, 여성이라고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과거, 권력은 주로 신분과 재산을 따라갔었다. 높은 신분이거나 재산이 많은 경우 여성도 [[선덕여왕|권력을 가진 경우]]가 존재한다. 다만 상술했듯이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잘 정비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신체력이 약한 여성이 스스로를 지킬 수단이 별로 없는데다가 모든 활동에 신체력이 많이 필요하던 과거에는, 남성에 비해 권력을 유지하기 더 어려운 상황에 자주 노출되었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맨몸뚱이 빈털터리로 무연고자가 살아가야 할 때(전근대 사회에서 재난이나 전쟁, 불상사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밭을 갈거나 산이나 숲, 강에서 먹을 것을 찾거나 누구 밑에 들어가 일을 해주며 살거나 어떠한 생존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단독 생존을 시도하려면 노동력이 높은 남성의 생존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결국에 여성이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려면 상호보호를 보장하는 어떠한 집단에 소속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거기다 가부장제의 조건은 일단 남자는 자기가정을 부양할 능력을 가져야한다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나온 것처럼 가족부양도 안하고 술과 도박이나 계집질에 빠진 주제에 가장대우 받으려고 하는 것은 가족을 포함한 모두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다. 단지 남의 집안일에 크게 간섭하는 것을 꺼리기에 터치를 안하는 것뿐이다. 가부장이 되는 남성은 집안에 속해있는 모든 재산(토지, 동산을 포함)에 대해서 그 처분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며, 가문의 재산권은 가부장에게 속해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가부장은 가문 내부에서 아내와 자녀 등 가문의 구성원에 대하여 인신구속권을 가지며, [[결혼]] 등으로 [[가문]]을 나갈 때는 미리 가부장의 허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부장의 허가를 받지 않은 무단 결혼은 [[간통]]과 같이 취급된다. [[노예]]가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구성원을 [[노예]]로 파는 것도 용인된다.[* 로마의 [[십이표법]]을 보면 "아버지가 자식을 3번 노예로 팔면 자식은 아버지의 지배권에서 해방된다."는 조항이 있다. 바꿔 말하면 '''3번씩이나''' 노예로 팔 수 있다는 거다.] 또한 중국에서도 [[1911년]] [[중화민국]]이 성립하기 전에는 법률에 의해서 가부장이 자식들을 노비로 팔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 중국의 오래된 속담인 "아버지가 죽으라고 명령하는데, 자식이 이를 거부하면 불효자식이다."도 이를 반영한다.] 가부장은 인신구속권에 따라서 구성원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처벌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처벌은 많은 경우 폭력적이다. 처벌을 내릴 권한은 법률적으로 인정되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받는다. 극단적인 경우, 가부장은 구성원을 [[살인]]하는 것도 허용받는 '''생살여탈권'''까지 가진다. 아프간의 [[탈레반]]들이 바로 이런 극단화된 가부장제의 가장 명확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장은 (집단의 위기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맡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군대의 사령관을 떠올려 보면, 사령관은 부하인 군인들을 지킬 의무를 가지지만 동시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더 많은 부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소수의 부하들에게 사망확률이 지극히 높은 임무를 강요할 권한 역시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과거 여성들이 가부장제로 인해 겪은 대표적 폐단이 [[남아선호사상]]이다. 과거 사회에서 여성은 내부 활동이, 남성은 외부 활동이 잦았기에 남성이 대다수의 책임을 부여받게 되었다. 때문에 관직에 오르거나 높은 자리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따라서 집안의 대를 잇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남성의 몫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에서는 변질•심화된 남아선호사상이 [[80-90년대의 여아 낙태 문제]] 같은 사회적으로 매우 좋지 못한 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98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부계[[혈통주의]]였으며, 기혼녀는 [[호주제]]로 인해 남편 호적에 들어갔다. 심지어 남편이 사망 시 장남이 호주가 되어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호적 아래 들어가는 이상한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행보는 근대 사회에 들어서며 생겨난 폐단들이지, 과거 사회에서부터 쭉 이어져온 현상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양반가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평민들은 집안의 대를 이을 이유가 없었고, 더욱이 호적•족보가 없없기 때문에 이같은 폐단은 생기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한편 [[동성애]]나 [[비역|남색]]을 강하게 [[혐오]]하는 [[종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영향력이 강한 지역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가부장제가 매우 심한 지역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성소수자 권리가 비교적 잘 보장되어 있는 나라들은 성평등 의식 역시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가부장적이면서 [[동성애]]가 만연한 고대 로마와 그리스, 중세 일본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는,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및 문화권에서는 게이나 레즈비언뿐 아니라 남녀간의 결혼을 통한 성행위 이외에는 전부 안 좋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고대 그리스]]의 영향으로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큰편이 아닌 [[고대 로마]](기독교 도입 전)조차도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고대 로마에서는 아버지는 자식의 '''생살여탈권'''까지 가지고 있었고, [[로마]] [[시민]]은 '''남자답게''' 박을지언정(penetrate) 박혀서는(penetrated) 안되는 존재였다. 즉, 고대 로마에서 [[황제]]나 [[원로원]] 의원 등 [[높으신 분들]]이 [[동성애자]]인 경우 전부 다 [[공]] 즉 [[탑]] 포지션이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트라야누스]] 황제가 특히 그러했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경우 20대 초 청년시절에 [[술라]]의 [[숙청]]을 피해 비티니아에 망명해 있으면서 비티니아 왕 니코메데스 4세과 관계를 맺으며 [[바텀]] 역을 했다는섹스 스캔들이 퍼진 이유만으로 정계활동 내내 카이사르의 약점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놓고 로마 시민 자신이 바텀임을 주장한 결과가 어땠는지는 [[엘라가발루스]] 황제의 최후가 이를 말해준다.][* 실제로 [[로마 제국]]에서든 [[수메르 신화]]에서든 "남자로서 삽입 당하는 것"을 그 자체로 사회적 죽음인 것처럼 이야기하며, 수메르 신화에서는 자기가 남자를 강간해 놓고서 "이 남자는 삽입 당했으므로 자유민이 아니다"라고 언플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