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의선 (문단 편집) === 구한말 및 일제강점기 === [[1905년]] 11월 5일에 개통됨으로써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의 대동맥 역할을 했다. [[러일전쟁]] 시기에 [[일본 제국|일제]]가 전쟁에 활용하기 위해 [[경부선]]과 함께 완공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경의선 철도가 완전히 개통된 일자를 서기 1906년 4월 3일로 간주하고 있다.[* [[http://sillok.history.go.kr/id/kza_14304003_002|조선왕조실록 > 자료열람 > 고종실록 > 고종 43년 > 고종 43년 4월 > 고종 43년 4월 3일]]] 최초 개통 당시에는 [[용산역]]이 기점이었으며 용산에서 효창, 공덕, 서강을 지나 가좌역으로 향하는 [[용산선]]이 경의선의 본선이었으나 [[1919년]]에 서울 도심에서 북부 지방으로 가려면 경의선이 분기하는 용산역까지 남하해서 열차를 타야하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 신촌역을 경유하는 선로를 건설하여 [[서울역|남대문역]][* 현재의 서울역이다. 최초 개통 당시 시종착역은 [[서대문역(폐역)|서대문역]]이 수행하였으나 서대문역은 1919년 폐지되고, 현 서울역의 전신으로 경인선 노량진 이북 구간 개통 당시인 1900년 남대문정거장으로 개통되었으나 경부선 개통 당시인 1905년에 남대문역으로 개칭되고 1923년에 경성역, 1947년 서울역으로 역명이 재차 변경되기 전까지 서울역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까지 연장하였다. 원래 기존 노선상에 소재하던 [[서대문역(폐역)|서대문역]]을 거쳐서 이 역 이북 연장하려고 했으나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자 남대문역에서 분기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노선 변경 이후로, 경의선이 기점이 남대문역(이후 경성역)으로 변경되고 용산역에서 분기되는 기존 선로는 나중에 [[용산선]]으로 분리되었다. [[3.1 운동]]의 여파로 인해 새로운 선로의 개통이 앞당겨졌었다. 그리고 경부선의 시종착역을 담당했던 서대문역은 새로운 경의선 선로가 지나가지 않음으로써 1919년 폐역되었다. 그런데 이 경의선이 남대문역(1923년 경성역 개칭, 1925년 역사 신축)과 연결된 선로는 애당초 계획에 없었던 노선 연장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운전하기 까다로운 구간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성역에서 경부선과의 직결되는 노선이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경부선과 유사한 시기에 복선화가 완료되었고 신의주역에서는 압록강 너머의 [[남만주철도]]와도 직결되어 부산 - [[선양시|봉천]](현재의 [[선양시|선양]]), [[창춘시|신경]]([[창춘시|창춘]], 당시 [[만주국]]의 수도)까지 운행하는 직통 노선도 있었다.[* [[복거일]]의 [[대체역사소설]]인 [[비명을 찾아서]]에서도 이 부분이 짤막하게 묘사가 되어있다. 본 소설에서는 조선(현재의 대한민국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일본 영토의 일부, 만주가 일본의 식민지로 간주되어 있는데 가마야마(부산)를 출발해서 게이조우(경성, 광복 이후 서울)를 지나 만주국의 수도인 신징(이후 중국 지린성 장춘)까지 운행하는 특급열차로 해설되었다.] 1930년대 당시 남만주 철도의 급행이던 히카리와 노조미가 부산과 신경 간을 직통으로 왕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