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무원 (문단 편집) === 근대 관료 제도 ===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공무원은 [[인류]]의 [[역사]] [[시대]] 이래 존재한 매우 오래된 직종이나,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공무원과 공무원 조직은 [[근대]] [[독일]]에서 나타나게 된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근대 독일 지역에서는 국가가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정책적 수요가 발생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 [[행정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관방학(官房學; Kameralwissenschaft)[* 여기서 관방이라는 것은 [[왕정]] 국가의 신료들이 업무를 보는 장소를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사무실. [[영국]]과 [[일본]]에서는 아직도 관방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관방학자들이 효율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제안한 것이 [[연공서열]]과 수직상하관계의 조직 체계였다. 이들이 제안한 조직 체계는 [[관료제]]의 완전한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으나, 부서ㆍ직원 별 업무 분장 체계, 시험에 의한 공직자 선발 제도,[* 프로이센에서 시험으로 공무원들을 선발하기 이전까지 유럽에서는 공직자 시험 제도가 없었다.] [[문서]]주의[* 일명 '''"공무원은 [[문서]]로 말한다."'''] 등이 주요 골격을 이루었다. 이러한 초기의 공직 제도를 시행한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이러한 공무원 조직은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과 결합하여 당시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독일을 통일]]하고 유럽에서 영국 및 프랑스와 어깨를 겨룰 정도의 국가로 발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비스마르크의 통치 아래 이러한 공무원 조직은 방대한 규모로 확대되었고, 1883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각종 [[연금]] 제도를 뒷받침[* 보통 연금과 같은 기금관리형 공공 기관은 전국적인 조직과 자금 운용 조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고도로 발달한 공무원 조직이 필요하다.]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확대된 공무원 조직은 [[관료제]]와 같이 체계화 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효율]]성이 매우 심해진다. 이럴 때 등장한 개념이 바로 [[막스 베버]]의 [[관료제]]이다. 막스 베버의 관료제 개념은 관방학자들의 공직 조직 개념보다 훨씬 발전한 것이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사]] 분리와 전임직 제도다. 공사 분리라는 개념이 훗날 발전하여 정치 중립 의무로 발전하였다. 전임직 제도는 공무원의 직책을 보장함으로써 정치, 행정적 외풍으로부터 공무원이 직무를 엄정히 수행할 수 있게 한다는 개념이다. 이 외에도 막스 베버가 체계화한 관료 조직의 특징에는 계급제도, 법전평등,[* 法前平等; 법 앞에서의 평등.] 전문지식,[*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공무원으로 임용함.] 비개인화[* 공무원은 자신의 직무 앞에선 한 인격체가 아니라 조직 내의 조직원이라는 개념.] 등이 있다. 관료제에 의해 치밀하게 조직된 공공 조직은 그 이전 시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와 양의 공공 사무를 처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료제가 일찍이 정착된 [[유럽]] 지역에서는 [[사회개량주의]]와 함께 복지 국가론이 대두되었으며, 특히 독일에서는 외연적인 국력을 관료제로 극복하여 [[제1차 세계대전|두]] [[제2차 세계대전|차례]]의 세계 대전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독일]]의 관료제도에 의한 공무원 조직이 유럽으로 [[확산]]되는 동안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의 공무원 조직이 나타나게 된다.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선거]] 제도가 이른 시기에 정착되어 선거에 의한 [[정치]]와 [[행정]]이 어느 정도 결탁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 가운데서 나타난 것이 [[엽관주의|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 말 그대로 선거를 통해서 관직을 [[사냥]]한다는 의미.]이다. 엽관제는 쉽게 이야기해서 중앙 선거, 지방 선거에서 당선된 당선인이 자신을 당선시키는데 조력한 사람들에게 [[논공행상]]식으로 관직을 뿌리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정치적 '''[[보스]]'''가 이러한 엽관제 시스템에서 탄생한다. 엽관제 체제에서는 [[행정권]]과 [[입법권]]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패]]한 [[정치인]]뿐만 아니라 부패한 공무원들도 양산되었는데, 만일 한 지역의 선출직 공직자가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게 되면 그가 엽관한 수많은 공직자들의 자리도 함께 날아가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에 [[게리맨더링]]과 같은 선거구 조작과 같은 선거 부정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엽관제의 폐해는 [[19세기]] 후반 극에 달해 경쟁적인 정당끼리 [[담합]]을 하고 출마인을 선정하거나 엽관을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는 식의 [[부정부패]]가 횡행했다. 이러한 미국의 전근대적인 관료제도는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는데, [[관료제]]를 창안한 [[막스 베버]]는 자신의 저서 '경제와 사회', '직업으로서의 정치' 등에서 미국의 엽관제에 대한 조롱을 수도 없이 한다. 결국 이러한 미국의 엽관제는 [[우드로 윌슨]] 때부터 개혁하기 시작하여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때 [[뉴딜 정책]]을 실행하면서 사실상 폐기된다. 뉴딜 정책과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이고 투명한 공무원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로널드 레이건]] 정부 들어서 엽관제 제한이 완화되면서 한국으로 치면 정무직공무원들을 엽관 인사하는 관행이 부활하게 된다.[* 근대 미국에서는 [[말단]] 공무원들까지도 엽관 인사를 통해 선발했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9급 공무원도 정치적 [[후광]]이 있어야 할 수 있고, [[정권]]이 바뀌어서 정치적 배경을 잃으면 지위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엽관제의 관행은 아직까지도 미국에 남아서 입법부와 행정부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고, 공무원의 정치 행위뿐만 아니라 정당 가입&정당 활동까지도 허용[* 근무 시간 중에 동료 공무원이나 민원인에게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것도 허용되어 있다.]되어 있다. 반면, 유럽의 공직 사회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고용]](신분) 보장은 비교적 느슨해서 정치적 파국이 일거나 재정적 어려움이 닥치면 공무원의 고용이 해지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일본]]의 관료 제도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잔재가 바로 [[고등고시]]로, 이것은 일제 강점기의 고등 문관 시험의 후신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 경제 성장을 하면서는 미국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무원 제도와 조직의 [[하드웨어]]는 유럽식인데, 공직 문화와 조직의 [[소프트웨어]]는 미국식[* 한국 행정학은 미국 행정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인 기형적인 공무원 조직을 낳게 되었다.[* 유럽의 공무원 제도가 근간이 된 한국의 공직 사회에서는 일단 [[시스템]]적으로는 [[비리]]가 일어나는 것이 어려우며, 감사를 통해서 그러한 비리를 매우 쉽게 적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곳곳에서 공직 비리가 만연하고 투명하지 못한 공직 문화는 공무원 조직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상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주요 기관장의 인선을 전문적인 위원회나 인사 기구를 통해서 하지 않고 [[논공행상]]식으로 하는 것도 유럽의 시스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일반적인 [[관례]]로 통용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