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관동별곡 (문단 편집) == [[고려]]의 [[경기체가]] == 고려 중기~말기의 문인인 안축의 작품으로 《근재집》에 실려 있다. 2와 마찬가지로 관동의 경치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2에 비해선 유명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국문학]]을 [[대학]]에서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이 [[경기체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다만, 문학 교과서에 지나가듯이 실려있고, EBS 올림포스 고전문학에 경기체가가 2편 정도 실려있어 고등학생 때 공부해본 사람도 있다.]경기체가 형식에 대해 '고려 시대 문인들은 이렇게 시 쓰면서 놀았대요'라는 문학사적 의미 말고는 작품으로서의 문학적 의미는 희박하다고 보는 입장이 학계 내에 적지 않다. 한편 [[이황]]은 경기체가의 대표격인 한림별곡을 언급하며 '한림별곡 부류'를 대차게 비판했는데 이황의 비판 이유와 현대 문학자들의 비판 이유는 좀 다르다. 국문학자들이 경기체가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대략 아래의 2가지 이유 때문이다. * 국문(한글/한국어)으로 지었음에도 한자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여 자국어문학/민족문학으로서 가치가 높지 않다. * 시가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서정성'이 약하고 지나치게 교훈적, 교술적인 내용이 많다. 물론 이러한 입장이 여전히 학계의 정설로 있지만, 근래에는 민족주의에 입각한 민족문학론이 상당한 반론에 부닥치고 있는 실정이고, 애초에 안축이 이 작품을 지은 시기는 훈민정음 창제보다 백년 쯤 전, 민족어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특정 문학 작품을 교술적, 교훈적이라고 (그래서 시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것이 지나치게 현대인의 입장에 매몰된 것 아니냐라는 입장도 제기되는 등, 여러모로 재평가의 가능성이 있다. 반면 이황이 '한림별곡 부류'라며 경기체가 전반을 비판한 이유는, 유학자답게 겸손하고 절제하며 자기수양에 힘쓰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술 마시고 풍류 즐기며 노는 내용, 서로서로 글솜씨가 뛰어나다고 칭찬하는 내용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해당 내용은 이황이 <도산십이곡>을 지으면서 남긴 발문 <도산십이곡발>에 자세히 나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