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귀족 (문단 편집) === 군사 === 귀족이 군대에 입대할 경우 평민과는 다른 신분임을 표시해 뒀는데 이를 '''[[위관급 장교|위(尉)]]'''라 하며 이는 오늘날 [[위관급 장교]]의 유래가 된다. 전근대 군대는 위계서열과 명령체계가 중요한 집단인 까닭에 귀족과 평민을 구분해 두고 귀족의 지휘하에 평민이 움직이는 체계를 구축하였는데, 그 귀족을 군대에서는 "offic(i)er"([[관료]], [[장교]])라 칭했다.[* 전근대에는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정도를 제외하면 군정과 민정을 잘 구분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에서 귀족이나 기사는 군인이자 관리였고, 동일하게 서임 즉 임관(commission)되는 존재였다. 이것이 "officer"가 장교도 관리도 뜻하고 [[동원어]]로서 "official"(공무원, 관료), "office"(사무소) 등과 연관된 이유이자, "commissioner"(판무관)가 외교관으로서 [[속령]]이나 [[식민지]] 등의 군정과 민정을 아우르는 행정장관(총독)이 되기도 하는 이유이다.] 이는 지휘권은 아주 중요하고 명예로운 "권한"이자 "권리", "의무"였고, 일반적으로 그러한 업은 고귀한 신분인 귀족에게 맡기는 사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귀족이 지휘관으로서의 교육과 전사로서의 훈련을 받았다는 이유도 있었다. 상술하였듯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전사였으며, 그를 통해 자기 지위를 유지했다. 그렇기에 옛 "[[기사(역사)|기사]]/귀족"은 신분제가 해체된 근대에도 "사관/[[젠트리|신사]]"로 변모하여 흔적을 남긴 것이다. 참고로 근세에 평민출신 일반병들과 귀족출신 장교들 사이를 연결해주던 베테랑 병사들이 현대 [[부사관]]([[서전트|sergeant]])의 기원인데, 이들도 더 과거에는 하급귀족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계에서 신분제 색채를 지우고 [[민주주의]]를 가미한 것이 현대의 군대이기에, 과거와는 달리 귀족 신분이 아니어도 자기가 원하면 임관할 수 있다. 대부분 따로 시험을 응시해서 합격한 이후 소정의 훈련을 거쳐 임관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사병에서부터 하나하나 진급해 올라가기도 한다. 다만 사병에서 시작해서 하나하나 진급할 경우, 18살 땡 하자마자 바로 [[이등병]]으로 입대해서 단 한 번도 진급누락이 없다 한들 [[소령]]이나 [[중령]]정도까지 올라가면 60살이 되어 정년퇴임해야 한다. 그러니까 [[대령]] 이상 진급하려면 어쩔 수 없이 따로 장교로 지원해야만 한다.[* 다만 이는 평시의 경우고 전시에는 전공에 의해 더 빨리 진급할 수 있었다. [[사병 출신 장성]] 문서 참고.] 결론적으로 현대의 군대에서 장교란 능력만 받쳐주면 누구나 될 수 있는 계급이다. [[영국]]에서는 귀족들이 [[영국군]] 장교로 지원하면 일반인 지원자들보다 우선적으로 합격 및 선발되는 혜택을 받는다. 단, [[군종장교]]는 예외로 각 종파별 군종장교 지원 자격에 따라 선발될 뿐 신분 상의 혜택이 없다. 1차대전까지도 유럽에서는 귀족들이 장교를 맡고 전투를 지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군사적 능력과 상관없이 장교가 되는 경우가 있어 승패를 떠나서 많은 희생자를 낳은 전투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서양에서는 [[발라클라바 전투]]와 윈스턴 처칠의 [[갈리폴리 전투]]가 유명하다. 반대로 1차대전보다도 전이었으나 귀족이 없던 미국의 남북전쟁이 더 현대적인 부분이 있기도 하였다. 동양의 경우를 보더라도 사대부 출신 의병장들은 의욕만 너무 앞서서 전투를 그르치는 경우가 있었고, 전쟁사에서 승리한 전략, 전술을 상황을 살피지 않고 적용하는 경우나 전투에 나가있는 장수에 대한 사대부의 정치적 간섭 혹은 전략, 전술의 몰이해로 전쟁 자체를 패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귀족들은 최근 역사까지는 생각보다 상당히 군사적인 능력이 좋았다. 애초에 유럽의 귀족은 군사력으로 인한 특권계층으로, 그 시초가 로마를 침략한 게르만족 추장이나 그 추장의 부하 전사였으며, 그 이후로도 특권 계급을 기반으로 하여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으니 당연한 것이였다. 그들이 실질적으로 군사적 역할을 하는 동안, 군사적 능력이 없다면 다른 경쟁자한테 도태되어 자기 신분 내에서 존속할 수가 없었다. 이들의 무능이 주로 드러낸 것은 근대의 일로, 이는 오히려 이들이 군사적 역할을 맡는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적 계급으로 변모하였는데도 여전히 [[문화 지체|옛 관습대로 우선적으로 종군시킨 관성]]이 원인이었다.[* 이러한 법제적·사회적 구조는 근세에 많은 하급귀족들에게 비극으로 다가왔는데, 전통적인 전사였던 귀족들은 노동에 종사하는 것이 금기시되거나 아예 금지되기도 하여서, 상당수 토지가 없는 이들은 빈곤하게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지식을 쌓아 변호사나 관료가 되어 공무에 종사하든가 하급군인이 되어 전쟁에서 목숨을 걸어야 했다. 특히 후자를 잘 보여주는 문학 속 인물상이 바로 [[삼총사]]의 달타냥이다.] 인구가 늘고 기술이 발전하며 [[국민국가]]가 등장하면서, 특별히 잘 싸우고 군무를 더 많이 배운 개인에 의존하는 시대를 벗어나, [[화기|균일한 무력]]을 지닌 [[국민|광범한 다수]]가 군대를 [[징병제|구성하게]] 되었고, 체계화되는 군사학적 연구성과를 더 넓어져가는 식자층한테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체제가 형성되면서, 귀족들이 전사집단으로 남을 이유가 없어졌고 점차 시민사회에 권력을 넘기고 뒤편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특별한 무력적 지위를 잃고도, 귀족은 한동안 전쟁지도자이자 공공책임을 부담하는 사인으로서, 식자층 지주로서 권력을 유지하였으나, 그 지위는 상공업과 금융업에 힘입은 [[부르주아]]에게 빠르게 넘어가게 되었다.] 다만, 그런데도 한동안은 귀족들이 장교단 다수였던 것은 여전히 대다수 문맹 노동계급 시민으로서는 군사학적 지식을 소화해낼 능력이 없었던 까닭이며,[* 이러한 현상은 딱히 귀족이나 전사가 아닌데도 행정관이나 교사, 언론인, 지식인 등 "관료"나 "명사"로 취급되던 이들이 우선적으로 장교로 선발되는 상황하고도 상통한다. 가령 갑작스레 군 규모가 확대되었던 [[미국 내전]]기 미군에서도 이런 식으로 군에 몸담은 일이 없는 상류층 인사가 장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기 동안 [[매관매직|매관제]]로써 최소한의 자격을 지닌 이들을 선별하는 동시에 [[사관학교]]로써 유능한 이들을 골라 전문지식을 지닌 장교를 양성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귀족이 정치권력이나 경제적 주도권을 내려놓은 것처럼 군대에서도 더는 유의미한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저 장교 임관에서의 미미한 혜택 수준으로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