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한 (문단 편집) == 개요 == 前 [[해태 타이거즈]] 야구선수이자 前 [[KIA 타이거즈]] 감독. [[선동열]], [[김응용]]과 함께 타이거즈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이종범]]의 등장 전까지 [[해태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전국구 스타였다.[* 해태 타이거즈의 전국구 스타 타자 계보로 [[김봉연]]-김성한-[[이종범]]이 있으며, 김성한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한대화]]와 [[이순철]], 이종범과 함께 활약했던 [[홍현우]], 그 이후 세대인 [[장성호]] 역시 전국구적인 모습을 보였다.] 현역 시절 주 포지션은 1루수로 원년에 투수를 겸했다는 점이 유명하며, 특유의 '오리궁뎅이' 타법 역시 유명하다.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멤버로, 은퇴할 때까지 해태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던 타이거즈 [[원클럽맨]]이다. 리그 초창기의 슈퍼스타로 [[KBO 리그]] 최초로 단일 시즌 10승-10홈런, 30홈런, 20-20 클럽, 통산 1,000안타, 통산 2000루타, 통산 700득점 등 기록을 달성하였고, 1983년부터 1999년까지 16년 간 통산 최다안타 1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2022년 현재 스탯티즈 기준 통산 wRC+가 3천 타석 이상 소화한 선수 가운데 20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오랜 기간동안 선보였다. 그리고 그가 10승투수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조차 모르는 사실이 해태 원년 유일 10승 투수이고 타이거즈 최초의 10승 투수였다. 원년에 10승[* 말이 10승이지 당시 팀당 80경기씩을 치렀기 때문에 그 해의 10승 투수는 팀이 치른 총 경기 수의 1/8 이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얘기다.]을 찍은 투수는 고작 8명, 그중 한명이 김성한이었던 것. 선수 시절 등번호는 11번. 은퇴 후에는 코치로 활동하다가 [[김응용]]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로 자리를 옮기며 감독직을 이어받기도 했다. 다시 말해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감독이자 [[KIA 타이거즈]]의 첫 감독이다. 한편으로는 대대적인 타이거즈의 [[똥군기]]가 30년 넘게 이어지게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몇연패를 하거나 분위기가 안좋으면 최고참으로써 줄빠따를 떄리기도 했다.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끊을 수도 있는 사람이 오히려 그걸 더 즐겨서 후배들을 잡았다. 타이거즈는 [[이종범]] 대에서 구타가 끊기기는 했으나..[* 요즘엔 다행인게 2023년 기준 타이거즈는 다른팀보다 오히려 군기없이 선후배가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았다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