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창종 (문단 편집) == 개요 == 대한민국의 전직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 2012년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었다. 함께 지명된 [[이진성(법조인)|이진성]] 재판관과는 달리, 1957년 3월 20일 [[경상북도]] [[선산군]] [[도개면]]에서 김교훈의 4형제 중 장남으로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7306|태어나서]] 대구광역시에서 [[영신고등학교(대구)|대구 영신고등학교]]([[https://m.oheadline.com/articles/LzNnqXRrG5evz6eZeXnCvw==|19회]]), [[경북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사법]] 전공으로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아 줄곧 대구·경북지역에서만 줄곧 근무한 대표적인 지역법관이다. 아래 경력 문단에서 보듯, 연수원 수료 후 모든 커리어가 [[대구고등법원]] 관할에서 이뤄졌다. 관행적으로 불려지는 이른바 향판(鄕判)이다. 지역 특성상 등의 이유 때문인지,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가장 보수적인 재판관이라고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2/2016121200177.html|한다]]. [[2016년]], 아들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했다는 제보를 받은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은 '사법시험 존치 헌법소원'(2012헌마1002 등 사건)에서 안창호 재판관과 함께 기피신청을 하였으나, 기각결정을 받았다.(헌재 2016. 9. 29. 2015헌사839)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위 헌법소원 사건에서 정작 김창종, 안창호 재판관 둘 다 위헌의견이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 재판관으로 참여하였다. 8명의 재판관 중 가장 보수적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장 임팩트가 떨어지는 재판관(...)이다. 질문 횟수도 단 2차례로 적었다. 때문에 소추위원들이 불안해 한 재판관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나, 탄핵 심판에선 전원일치로 인용을 결정하였다. 보수측면이 강하다고해도, [[최순실]]의 국정개입 및 국정농단을 한 부분은 사실이라고 본 모양. 탄핵 심판이 끝난 이후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재판관들에게도 관심이 쏠리면서 과거 김창종 재판관이 질의했던 저 두 질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일부 언론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참고로 털리는 대상은 정호성, 이영선.[*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uExYl7phF3Q|#]],[[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04691|#]]] 2018년 9월 19일, 임기가 끝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직에서 물러났다.[[https://m.news.naver.com/read.nhn?aid=0010352931&oid=001&sid1=102|#]] 이후 [[2019년]] 1학기부터 모교인 경북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임용되었다. [[2021년]] 법무법인 민주의 고문변호사로 영입되었다.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17326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