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장금 (문단 편집) === 역사재현의 오류 === 작품성에서 호평받았지만 [[창작물의 반영 오류|오류]]는 좀 있는 편이다. * 3회에서 아역배우 장하린이 생각시로 등장했는데, 마지막회에 나온 민정호와 장금이의 딸 소헌 역을 [[옥에 티|맡는다.]] * 유명한 실수가 있다. 6회에서 미처 [[가스버너]]를 [[옥에 티|치우지 않고 촬영해서 본방송에 나가버린 것이다]]. ||[[파일:/pds/201003/17/62/d0045462_4b9fa7cf6246c.jpg|width=100%]]|| * 초반에 '단도리(段取)'란 [[일본어]]를 너무 남발하다 시청자들에게 지적을 당했다. * 어렸을 때 [[서장금|장금]]에게 [[최금영|금영]]은 언니였는데 성인이 됐을 땐 '금영아'라고 맞먹는 소설과는 다른 설정변경이 있다. 이는 실수로 그런 것이 아니라 의도한 설정변경이다. 방송 당시 홈페이지에 매번 같은 위치에서 맞붙어야 하는데 나이차이가 있으면 품계는 물론 진급에도 [[최금영|금영]]이가 먼저 진급하는 등 차이가 나 전개대로 할 수 없어서 나이 설정을 변경한다는 공지가 올라왔었다. 소설에서는 금영이 후궁의 자리까지 오르는데 드라마에선 장금과 금영을 계속 라이벌로 남기기엔 후궁과 의녀라는 신분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금영 대신에 연생을 후궁으로 하고, 금영을 수라간 최고상궁으로 설정했다는 의견도 있다. * '대장금'을 통해 널리 알려진 '생각시'는 원래 지밀과 침방, 수방의 각시들만이 해당되었으며, 수라간은 생머리를 드리지 않은 그냥 각시들이었다. * 수라간에서 [[궁녀]]들이 한 일은 잡다한 일이나 음식을 데우는 정도(특히 소주방)였으며, 실제 음식의 조리는 남성인 '''숙수'''들이 도맡아 하였다.[* 궁중요리는 '''정교한 화력 조절'''이 요구되는 메뉴가 많았으며, 당시엔 현대식 가스 버너가 없었기에 직접 불조절을 하는 것이 엄청난 육체노동이었다. 워낙 고된 일인지라 숙수들 조차 힘들어서 무단 결근했다가 귀양가는 일도 있었고 임금에 따라선 숙수들의 가벼운 일탈은 너그럽게 봐주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 따라서 당시 통념으로 3D 업종이었던 궁중요리를 여자들에게만 맡기기엔 무리가 따랐다.] 따라서 수라간도 거의 허드렛일을 하는 곳으로 취급하였다. 따라서 수라간 최고[[상궁]]이 [[상궁#s-4.1.1|제조상궁]]에 오른 예는 없다. 수라간보다는 왕과 왕비, 대비의 수발을 드는 지밀과 부제조, 침방과 수방의 최고상궁이 더욱 권력이 컸기 때문이다. * 대장금의 시대 배경은 16세기 초 [[조선시대]] [[중종(조선)|중종]]대인데, 대장금에서의 복장들은 조선 후기 18세기 쯤에 나타나는 형태이다. 대장금에서 의복의 저고리가 짧은 편인데 원래 조선 초기에는 저고리가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차차 짧아지게 된다. 게다가 극중 상궁, 대비, 중전, 후궁들을 비롯한 궁중여성들도 죄다 당의를 입고 나오는데,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이 당의는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치세 때부터 나왔던 저고리 형태였고, 그 전까지 궁중여성들은 주로 장저고리나 장삼 등을 주로 입었다. 조선 후기의 형태만 한복이라고 인식하는 고정관념이 있어 현대의 개량 한복은 저고리를 짧게 만들기 때문에 [[용의 눈물]]과 같은 조선 초기 한복을 다룬 사극은 드문 게 현실이다. *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 [[대장금/등장인물#s-2.6|최 상궁]]이 [[만한전석]]을 대접하는데, 만한전석은 사실 이때부터 약 200년 후인 [[청나라]] [[강희제]] 때 만들어진 것이다. 차라리 이병훈 PD의 후속작인 [[이산(드라마)|이산]]에 만한전석이 나왔다면 그 때는 강희제의 손자인 [[건륭제]]가 청나라를 통치하던 시기였으므로 옳았을 것이다. * 6회 [[효혜공주]](10세 내외)가 밥을 거부할 때나 11회 [[인종(조선)|원자]](5~6세 가량) 가 충조전압탕으로 쓰러졌을 당시 [[장경왕후]]가 등장한다. 그러나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6일만에 산후병으로 사망하고(당시 효혜공주 5살), 2년 뒤에 [[문정왕후]]가 제2계비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6회부터 이미 문정왕후가 등장했어야 한다. * [[명나라]] 사신의 복색을 묘사할 때 한국 사극의 고질병인 어떻게든 조선의 관복과 차별화를 둘려는 발상인 긴머리와 기괴한 사모뿔 형상이 그대로 묘사되었다. 여기에 더해 이 작품에서는 아예 명나라 사신의 관복 색상을 황색으로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행태까지 저질렀다.[* 당연히 황색은 오직 황제의 황룡포에만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이었다. 일반 관료가 관복에 황색을 사용할 경우 반역죄로 처리당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의 중죄이다.] * 42회에서 열이가 연생이의 지병인 지병을 이용해 태아를 사산시키려는 음모[* 고혈압이라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음식 관리를 까다롭게 해야 난산을 피할 수 있는데, 오히려 고량진미를 올려야 한다고 처방한다. 지병만 아니면 문제가 없는 처방이기 때문에 발각되더라도 발뺌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 듯.]를 꾸미다 발각당하나, 내의원 내에서 조용히 자숙하는 것으로 넘어가는 에피소드가 있다. 극에서는 내의정이 주도하여 조용히 덮고 넘어가는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실제로 일어난다면 고의여부를 떠나서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해치려고 한 대상이 종4품 숙원이든, 태아였든 왕족을 해치려고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에 왕실의 안전과 권위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간주되어 '''반역'''이나 '''역적'''의 죄까지 물을 수 있을 만큼 매우 중대한 사안이고, 열이가 그동안 보여왔던 실력과 평범한 의녀들도 알 수 있는 수준의 질병이라는 점들이 조합되어 열이의 발뺌이 통하지 않는게 정상이다.[* 신익필은 "신비조차도 잡아낸 맥이다. 네가 모른다는게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일축해버린다.] 이게 외부로 보고되는 순간 최씨 일가까지 잡혀갈 것은 뻔한 수순이기 때문에 극의 단계적 전개를 위해 조용히 봉합한 것으로 보인다. *46화에서 윤막개가 오겸호에게 박나인, 한상궁, 최상궁 관계에 대해서 말할 때 최상궁이 나인 시절 인수대비에게 해가되는 재료를 넣어야 한다는 말을 인수대비가 아닌 인목대비로 잘못 말하였다. * 50회에서 [[출산씬|출산]] 직후 심정지가 온 연생이를 [[서장금|장금]]이 흉부압박법을 통해 소생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CPR/흉부압박 등이 체계화된 시기는 20세기 중반이다... 의학사에 혁명을 일으킬만한 사건이라는 말이 있다. * 유황오리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연루된 인원들이 전부 체포되었는데 [[대장금/등장인물#s-2.6|최 상궁]]은 걸어서 궁을 나와 명이의 무덤을 찾아간다. 의금부에 최 상궁의 도주 사실이 보고되었고, 궁에 소문이 돌아 최 상궁이 연루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인데, 어떻게 나간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작중 대사로는 도망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뒷간을 보낸 틈에 사라졌다 언급이 되며, 잠시 몸을 숨겼다가 궁을 빠져나갈 때는 장금에게 들켰으나 장금이 묵인하여 빠져나갔다. * 극 말기에 명종 6년이라는 배경이 명확히 등장하는데,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생각시로 궁에 들어갔던 [[서장금|장금]]의 나이는 50대 초중반일 시기다. 민정호는 장금보다 10살은 위이니 60대다. 그런데 배우는 물론 분장조차 안 바뀌어서 전혀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딸을 낳은 시기도 장금이 50대 초반일 때이다. 일반적으로는 여성은 폐경기이고 남성도 정력이 부족하여 아이를 보기가 몹시 힘들다. 자순대비는 1530년에 승하하였고 경원대군(명종)은 1534년에 태어났다. 경원대군(명종)이 두창에 걸렸을때는 자순대비는 이미 승하하신 이후이다. * [[정현왕후|자순대비]]는 수라간 최고상궁 경합이자 자신의 생신연에서 장금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마늘이 들어가 톡 쏘는 맛이 일품이라 하더니, 나중에 장금이 의녀가 되어 들어와 각기병 치료를 할 때는 마늘은 입에도 못 대는 설정이 되었다. 여기서 일부 의문점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대장금/등장인물#s-2.6|최 상궁]]에 대해서는 허구 내지는 최 상궁의 비극적 최후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연출진의 각색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의 최후는 최판술이 유배지로 가는 도중 장독이 올라 객사하는 것으로 표현되긴 하였다.] 작가도 이 부분이 걸렸는지 작중에서도 관리의 말을 빌어서, '설마 제조상궁이 도망갈줄은 몰랐다' 라고 언급하고 (경계가 허술 했다는 점) 최상궁이 숨어 있는곳은 궁중 여인들이 있는곳(대비전 상궁을 만나는 장면이 있다.)으로 아무리 의금부라고 하더라도 진입이 다소 어려운 지역들인 점을 감안하면 의금부 보다는 내시부쪽에서 수색을 해야 하는 곳들인데 작중 대비전 상궁이 '옛정을 생각해서 봐줄테니 빨리 가시라 나는 바로 내시부에 고할것이다' 라는 언급이나 나인들에게 발각 되었을때도 나인>민상궁>의녀 [[서장금|장금]]에게 알리고 장금이 민상궁이 의금부에 고하는걸 말리는 장면이 있다. 따라서 소문이 났지만 쉬쉬하였고 결정적으로 장금이가 최상궁이 스스로 죄를 고할수 있게(죄값을 치룰수 있게) 봐준것에 가깝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