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엔필드 (문단 편집) === Rifle No. 4 계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ee-Enfield_No_4_Mk_I_%281943%29_-_AM.032027.jpg|width=100%]]}}} ||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3ALee-Enfield_No_4_Mk_I_(1943)_-_AM.032027.jpg|사진 출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yIm1eSrMnAs)]}}}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GY_Ui78DiY4)]}}} || ||<-2> hickok45의 No. 4 Mk I(좌) / No. 4 Mk II(우) 리뷰 영상 || No. 1 Mk VI 기반의 염가형. 리시버와 가늠쇠울의 형상을 가공 난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단순화하고 탄창 차단기와 총몸의 체커링도 삭제하였다. 기존 SMLE에 비해 제작과정에서 리시버를 덜 깎고 총열은 두꺼워서 SMLE보다 무겁다. [[총검]]은 기존의 P1907 대신 대량생산이 용이한 스파이크식 총검으로 바꾸었다. 1930년대 초반에 시험용으로 약 2,500정 가량 생산해놓은 상태였고, 영국군의 주력 소총은 여전히 대부분 Mk III와 Mk V 모델로 SMLE 계열의 물건이었다. 그런데 1940년 [[됭케르크 철수작전]]으로 대부분의 소총들을 프랑스에 버리고 오게 되는 바람에 당장 쓸 총이 없어진 영국군은 그때까지 가장 최신형이며 대량상산에 가장 적합한 Rifle No. 4를 1941년 본격 도입하기로 한다. 파생형으로 내부구조가 조금 더 단순한 No. 4 Mk I*, 방아쇠를 개량하고 총몸을 간략화시킨 Mk2[* 영국은 1944년부터 제식명에서 [[로마 숫자]]를 폐지하였다.] 가 있다. 또 기존의 No. 4 Mk I 소총에 이 Mk2 총몸을 적용한 것을 Mk I/II, Mk I*에 Mk2 총몸을 적용한 것을 Mk I/III라고 불렀다. 가늠자 또한 절삭가공식>프레스식>2단계식([[M16 소총]]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간략화되었다. 됭케르크 이전에 이미 북아프리카에 배치되어 있던 영국군들은 SMLE를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이탈리아로 전선이 옮겨가면서도 상당수가 사용되었다. 1954년에 [[L1A1 SLR]]이 공식적으로 도입되기 전까지 No. 4 소총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6.25 전쟁]]에서도 사용되었고, L1A1 SLR 채용 이후인 1956년에 생산이 종료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