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설주 (문단 편집) === [[김정은]]의 아내가 되기 전 === 1989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나 [[평양시]]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대부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 권력자의 정실부인으로 간택됐다는 점은 리설주의 출신 성분이 상당히 좋다는 방증이다.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에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을 다녔다고 알려져 있다. 처음 행사에 등장한 건 2003년 3월 금강산에서 남북 청소년들이 분단 이후 첫 공동 행사인 남북 청소년적십자 우정의 나무심기 행사에 참가했다. 당시 북측 참석자 명단에는 리설주라는 이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11살이라고 하였는데, 사진을 보면 99% 동일인물임을 알 수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05 리설주 사진.jpg|width=100%]]}}} || || '''2005년 [[인천광역시|인천]] 방문 당시의 리설주''' || 2005년에 개최된 아시아육상선수권 대회에 북측이 보낸 청년학생협력단 단원으로 파견되어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때 사진을 보면 치열이 고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치아교정]]을 한 듯. 이 당시 학력은 금성학원 전문학부 1학년이었다고 한다. 이 때 경기 응원과 예술 공연에도 참가했는데, 남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전문 과정을 밟은 뒤 [[피바다가극단]] 같은 예술단에서 활동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금성학원]]은 북한에서 유명한 예술전문학교로, 리설주는 여기서 본격적으로 [[성악]]을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성학원 입학 이전에는 [[평양]] 중구역의 경상유치원과 창전소학교를 다닌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들 교육 기관도 예술 인재 양성으로 유명하며 김정은이 집권 후 가장 먼저 방문한 교육 기관이었다. 그리고 2007년 5월에 [[중앙일보]]를 비롯한 남측 언론사 기자들이 금성학원을 방문했을 때도 기자들을 환영하는 학생 예술공연에 참가해 동기들과 7중창을 선보였고, 2008년에 학원을 졸업한 뒤에는 잠시 1년 동안 중국, 독일 등 해외에서 외유한 뒤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을 다니다가 2009년에 [[은하수관현악단]]과 자주 협연하는 여성 6중창단인 모란봉중창단 단원으로 발탁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당시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의 신임을 받아 국가영화위원회 영화부장으로 발탁된 [[최익규(1933)|최익규]]가 후견인으로 뒤를 봐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남한 언론에서 확인한 것 외에 대부분의 이력은 추측성 혹은 비공식 정보만 존재하고 있는데, 일단 [[은하수관현악단]] 협연 가수로서 리설주의 이력은 2010년 9월에 개최된 9월 음악회부터 2011년 2월에 개최된 설명절 음악회와 북한에 체류하는 [[중국]] 고위층 인사들을 위한 특별 공연까지로 상당히 짧은 편이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2011년 2월을 끝으로 리설주가 성악가 생활을 접고 김정은과 본격적으로 교제 혹은 [[동거]]를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해 12월에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죽었기 때문에, 김정은과 리설주는 일단 [[장례식]]과 100일간의 애도 일정을 마친 뒤에 비공개로 [[결혼식]]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리설주와 그보다 더 이른 2009년에 처음 만나기 시작했다고 보기도 한다. 같은 해에 리설주의 후견인 최익규가 영화부장에 임명되면서 김정일에게 리설주를 소개해줬을 가능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