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야심경 (문단 편집) == 특징 == ## 나무위키 문서에서 '개요' 문단을 제외한 문단이 2개 이상 존재할 경우, '상세', '소개', '설명'이라는 문단명은 사용하지 않는 것을 우선합니다. '편집지침/일반 문서 3.서술 우선 순위' 참고. 6백 권이나 되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을 [[한문]]으로 260자도 안 되게 짧게 요약하여 [[대승 불교]]의 깊은 진리를 함축했다는 경전이다. [[동아시아]]에 한문으로 번역하여 전래한 사람은 [[당나라]] '''[[현장]] 법사'''. [[서유기]]에서 [[삼장법사]](=[[현장]])가 고향을 그리워한다거나 앞길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심란해하면 [[손오공]]이 '''"스승님, 또 반야심경의 깊은 뜻을 잊으셨군요."'''라고 [[태클]]거는 장면이 제법 많이 나온다. 서유기에서는 저팔계가 삼장법사의 제자로 들어온 뒤 오소선사라는 인물이 대단하다며 추천하였고, 심경은 이 오소선사가 삼장법사를 만나서 전수한 것으로 나온다. 원래 현장 이전에도 반야심경이라는 [[불경]] 자체는 '마하반야바라밀다명주경'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알려졌다. 번역자는 현장 (649년 번역본)과 함께 불경 번역의 거두로 꼽히는 412년 [[쿠마라지바]] 번역본.(출처: [[http://www.kyba.org/bbs/board.php?bo_table=05_2&wr_id=18|대한불교청년회 게시판]] 및 [[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srch=%E5%BF%83&rowno=64|동국역경원 불교사전]]) 다만 요새는--원래부터, 한중일 두루두루-- 현장의 번역이 더 많이 유명하다.--인기가 많다는 뜻-- 후술하겠지만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정한 반야심경 한국어 표준번역도 현장이 한역한 반야심경을 기준으로 한다. 원래 반야심경도 다른 경전과 마찬가지로 [[석가모니]]가 반야심경의 내용을 설한 계기, 장소, 설해진 후의 결과 등이 다 쓰인 [[http://abc.dongguk.edu/ebti/c2/sub2_pop.jsp?nbooknum=456&startpage=0&endpage=3|광본]](廣本)[* 풀버전. 분량은 현장역본의 약 두배 정도가 된다. 반대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현장역본을 학계에서 (대조의 의미를 담아) 소본小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있으나 보통 핵심부분만 독송한다. 한국 천주교에서 미사 때마다 신앙고백문으로 (길고 복잡한)[[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대신 (쉽고 짧은)[[사도신경]]으로 대체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짧은 버전(현장역본:사도신경)의 신앙고백문이 긴 버전(광본: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보다 판본이 오래되어 보인다는 문헌학계의 컨센서스도 주목할만한 유사점. 사실 이쯤 되면 광본 기준으로도 3쪽 밖에 안 되는 내용을 600권으로 늘린 분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티베트]]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광본을 독송한다. 이 산스크리트어 광본을 두고, 소품반야경과 대품반야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위경|창작된]]''' 광본을 현장, 또는 누군가가 산스크리트로 역번역(back-translation)했다고 보는 불교학자(대표적으로 Jan Nattier)들도 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쓰는 관용구에 맞지 않는 표현이나, 중국식 언어습관이 섞인 산스크리트어 조어가 광본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라고. 현재로서 반야심경 위경 논란은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서 결론이 나진 않았다. 하지만 산스크리트 원본이 있었다 하더라도 각 번역자의 선택에 따라 번역본 혹은 음역본이 일부 축약/편집되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의견이 많다. 참고로 학계에선 현장과 쿠마라지바 둘 다 짧은 판본만 건드렸지 광본을 번역한 흔적을 찾지 못했으며, 광본의 대표 역자로는 저 두 사람이 아닌 법월法月(739년역), 반야般若/리언利言(790년역, 위의 동국대 한글대장경 링크도 반야/리언 판본의 한글 번역이다.), 법성法成(856년역), 지혜륜智慧輪(860년역), 시호施護(980년역) 등이 있다. 소본의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트 사본은 일본 [[법륭사]](法隆寺)에 [[패엽|패엽본]]으로 소장하고 있고, 광본의 산스크리트 사본은 일본 나라 하세데라(奈良 長谷寺)가 소장하였다. 짧으면서 의미가 깊기 때문에 [[대승 불교]] 의식에서 매우 자주 독송하고, 우리나라 불교계도 역시 거의 모든 법회의식에서 독송한다. [[기독교|그리스도교]]와 비교한다면 [[주기도문]]/[[주님의 기도]]나 [[사도신경]], [[이슬람]]에서는 [[알 파티하]](개경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반야심경을 동아시아 불교계에 이처럼 널리 퍼트린 사람 또한 바로 당나라 [[현장]] 법사. [[대승 불교]]의 '[[공 사상]]'을 설명하는데, 이를 터득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평생 반야심경만 독송하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불교]]의 주요한 키워드이므로 [[불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졌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이 널리 알려진 경구이다. 재미있는 점은, '[[공 사상]]의 측면에서 보면'이라는 전제 하에 초기불교의 교리가 깡그리 부정되는 듯하다는 것이다. 순서대로, 초기불교에서 [[무아]]를 설명하는 데 쓰이는 오온과 육입처, 육경, 육식은 물론, 순관과 역관을 포함한 [[12연기]]의 제1항부터 제12항, [[사성제]]가 깡그리 모두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 '없다'고 하는 것은 진짜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자성(自性, 고정불변하는 실체, 혹은 본성)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공 사상]] 문서로. 성경의 [[전도서]]에서 지혜자와 우매자의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언제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스리랑카]] 출신 [[승려]]가 일본에서 반야심경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고 책을 내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대충 요지는 '색즉시공은 [[불교]]의 교리에 부합하고 철학적으로 보아도 논리가 맞지만, 공즉시색은 말이 안 된다. 공즉시색은 틀렸다.'는 것. 이는 상좌부 불교의 관점 때문인데, 상좌부에서는 공(空), 즉 무아(無我)인 것은 물질, 마음, 마음부수, [[열반|닙바나]]로 실제로 있는 것 네 가지 전부이며, 그러므로 공은 물질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는 '모든 가로수는 나무이다'와 '모든 나무는 가로수이다' 두 가지 명제의 참/거짓 여부와도 비슷하다. 반면 대승 불교에서는 공(空)뿐 아니라 유식(唯識)을 함께 고려해서 논리를 전개한다. '색즉시공'은 공으로 해석가능하고, '공즉시색'은 유식으로 해석가능하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것이 '색즉시공'이고, 그러한 하나를 모든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것이 '공즉시색'. 따라서 '하나의 빛이 온 세상을 장엄하게 비춘다'는 화엄(華嚴)의 사상은 '공즉시색'의 유식론에 기반을 둔 논리인 것이다. 2011년 9월 20일 대한불교 조계종 187회 중앙총회에서 종단표준의례 한글반야심경[* [[조계종]] 측에서 이렇게 발표했는데, 개념적으로는 [[한국어]](국어, 국문) 반야심경이라고 해야 옳다.] 동의안을 가결하였으며, 10월 5일 공포되었다. 이하 본문의 한국어 부분은 [[조계종]] 표준 한글반야심경을 인용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